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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당집과 서낭당의 차이점이 뭐에요?
kej1**** 조회수 2,775 작성일2004.12.22
공부를 하다가 서낭당에 대해 나오더군요...
그런데 갑자기 당집과 서낭당이 생각났어요..
차이점이 너무 궁금하네요..--^
아는 분은 답변 꼭! 꼭! 꼭! 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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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도덕 36위, 한국사, 전통 예절, 의식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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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낭당

지방에 따라서 할미단[老姑壇:전남]·천왕단(天王壇:경북)·서낭단[城隍壇:경기·황해도]·국사단(國師壇:평안도)·국시당(함남) 등 여러 가지의 명칭이 있다. 서낭신은 토지의 부락(富樂)을 수호하는 신으로서 최근까지 가장 널리 제사지내던 신이다.

보통 고갯마루, 큰길 가, 부락 입구, 사찰 입구 등에 위치하며 그 표시로는 작은 돌을 무더기로 쌓아 놓고 가까이에 나무(神樹)가 있다. 이 나뭇가지에는 아이들의 장수를 위해 걸어 놓은 헝겊 조각, 상인이 이재(利財)를 꾀하기 위해 단 짚세기, 신랑·신부가 새집으로 옮길 때 부모계의 가신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신부가 자기 옷을 찢어서 걸어 놓은 건색 헝겊 조각 등이 걸려 있다.

흔히 통행인은 나그네길을 안전하게 하기 위해 돌을 주워서 단 위에 던지거나 침을 뱉는데 이것은 도로를 배회하는 악령의 해를 피하기 위함이며 또 이때 자기가 원했던 바를 마음속으로 또는 소리내어서 기원하기도 한다. 서낭신은 무당의 신이기도 하므로 이 단에서는 무당들에 의해 여러 가지 새신(賽神) 행사가 행하여졌다.

서낭[城隍]이라는 명칭은 고대 중국의 성읍(城邑)을 수호하는 신인 성지신(城地神)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육조(六朝) 때부터 '성황(城隍)'이라고 불렀으며 당대(唐代)를 거쳐 송대(宋代)에 크게 성하였다.

한국에는 고려 때에 전래되었고 조선시대에 와서 크게 성행하였는데 제일(祭日)은 지방에 따라 다르나 대개 음력 보름에 부락 공동제로 지내며 재액을 당한 사람은 개인적으로도 지낸다. 현재는 그 자취만이 약간 남아 있을 뿐 별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당집

다른 말로 신당이라고도한다.각각의 특색에 따라 몇 종류로 구분되는데 서울의 할미당이나 국사당(國師堂)처럼 굿판을 벌이는 굿당, 약수터나 영천(靈泉)에 세워진 용신당(龍神堂), 산신도를 모셔놓은 산신각(山神閣), 무당의 무구(巫具)나 무신도(巫神圖)를 모셔놓은 장소, 촌락공동체의 수호신당이 있다.

이 가운데 전국에 산재해 있는 수호신당의 비중이 가장 커서 신당이라고 하면 흔히 이것을 가리킨다. 수호신당은 8·15광복 이후 동제당(洞祭堂)으로 통칭하였으나 지방마다 차이가 있어 경기·충청지방에서는 산신당 또는 서낭당이라 하며 강원지방은 서낭당, 영호남지방에서는 당산, 서울 한강변 마을에서는 부군당(府君堂)이라고 한다.

동제당은 대개 신목(神木)만 있는 자연 그대로의 상태이나 간혹 신목 옆에 작은 사당을 지어놓은 경우도 있다. 주로 수령이 많은 거대한 소나무나 느티나무가 신목으로 모셔지는데 여기에는 신이 존재한다고 믿어 나무를 베거나 해치는 것을 금기시하였다. 신당에 모셔진 신 가운데에는 남신보다 여신이 월등히 많은데 이는 대지의 풍요로움을 빌던 오래 전 농경사회의 풍요 여신에 대한 숭배사상이 남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참고하시길.....

2004.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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