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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소녀 Jul 31. 2017

영화 <청년경찰>

가벼운 영화에 대한 다소 무거운 생각


잘 알고 지내던 경찰대 후배 두 명이 있었다. 그 둘이 왜 경찰대에 진학했다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한 명의 이유는 확실했다. 학비와 기숙사비가 모두 무료라서. 그 아이는 경찰대에서 배우는 수업에 별 흥미가 없었고, 그래서 학교를 다니며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일을 택했다. 학교를 다녀야 안위를 보장받을 수 있으니 수업시간에는 잠만 자되 밤을 새워 사시 공부를 하는 방법으로 말이다. 아마 그 당시에 그런 경찰대 학생들이 자신만은 아니라고 들었던 것 같다.


영화 청년경찰은 혈기 넘치고 좌충우돌하는 경찰대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첫 만남부터 남다른 케미와 빵빵 터지는 빙구유머를 자랑하다 룸메이트에 절친이 된 두 젊은이 역시도 별 이유 없이 경찰대에 온 아이들이었다. 한명은 아까 언급했던 이유처럼 학비가 공짜라서, 한명은 과학고 출신이 카이스트를 가는게 너무 뻔해서라는 4차원적인 이유로. 특별한 목적의식 없이 들어온 이들에게 학교에서 행해지는 수많은 훈련과 교과서적 가르침이 재미가 있을 리 없었고, 당장 눈앞에 더 관심있는 것은 이번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낼 것인지, 혼자 보내지 않아도 되는 여자친구를 만들 수 있는지였다.

외출 허락을 받고 본격적으로 청춘사업을 벌이러 학교 밖으로 나간 밤에 둘은 우연히 젊은 여자가 골목길에서 납치되는 범죄현장을 목격한다. 당장 경찰서에 신고하러 갔지만 경찰들은 위에서 내려온 수사 지시에 모조리 출동하느라 방금 일어난 범죄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고, '실종사건의 크리티컬 아우어(경찰수사의 골든타임)는 7시간'이라는, 학교에서 배웠던 지식에 마음이 급해진 둘은 실전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사에 맨몸으로 뛰어든다.


쓸데없다고 생각했던 학교에서의 배움이 이렇게 요긴할 줄은 몰랐다. 범인과 몸싸움을 벌이다 범인을 잡아묶는 방법, 수사도구를 쓰는 방법 등을 배운대로 하나하나 떠올려가며 두 젊은이는 피해자들을 구출하기 위한 활약을 펼친다. 경찰이 아닌 경찰대 학생의 신분으로 무모한 수사를 하는 것은 학교에서 퇴학을 당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본인들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둘은 자신들의 안위보다는 피해자들의 안전을 선택한다.  

영화는 너무나 재밌다. 장면마다 터지는 유머와 주연배우들의 남다른 케미, 그리고 그들의 서투르지만 진실된 활약이 관객을 실컷 웃기다가 마음 졸이게 하다 뿌듯하게 하기도 한다. 분명 작품으로 보면 평균 이상의 완성도로 즐기기 좋은 오락영화이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저들이 왜 나는 지금 젊은이들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걸까? 경찰대에 특별한 목적의식 없이 온 모습은 요즘 젊은이들과 다를 것이 없어보이는데, 자기의 안위를 내려놓고라도 젊은 패기로 현장에 뛰어드는 모습은 자기 잇속 챙기는데 더 능하고 익숙해진 요즘의 젊은이들과는 꽤나 괴리가 있어보이는 것이다.


영화 속 시험 장면에서 수사의 3요소를 묻는 질문에 공부를 하지 않았던 기준은 '열정, 집념, 진심'이라는 전혀 교과서적이지 않은 답을 한다. 하지만 무작정 뛰어든 수사현장에서 그들은 정말로 열정과 집념과 진심을 다해 범인들을 좇았다. 그 셋이야말로 수사의 3요소를 넘어 청년경찰에서 말하는 '청년'의 3요소일텐데, 이미 우리의 현실은 청년들이 갖고 있던 저 세 가지를 배신하는 상황으로 비친다면 세상을 보는 나의 눈이 너무 비관적인 것인지, 아니면 '청년'에 충실한 요즘 청춘을 직접 접하지 못해서인지.  


맨몸으로 범인을 잡는데 성공하고, 무단행동을 하고도 학교에서 잘리지 않은 운좋은 두 녀석들은 영화 막바지에 이제는 정말로 경찰이 되고 싶어졌다고, 학교에서 배우는게 쓸데없는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고 이야기한다. 청춘의 패기를 갖고 몸소 실천할 줄 알았고, 마침내 꿈까지 찾은 녀석들은 정말로 운이 좋은 청년들이 틀림없다. 청춘의 때에만 감행할 수 있는 것들이 영화 밖의 수많은 청춘들에게도 더욱 허용될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나는 영화 <청년경찰>을 더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덧.

그나저나 우리 자식은 서울대나 시립대가 아니면 안보낼거라고(학비 때문에) 평소 농담처럼 진담을 말해왔던 신랑이 영화를 보고나와서 한마디 한다.


- 서울대 시립대, 경찰대 아니면 보내지 말아야겠어.


영화를 보고 제일 인상적인 게 경찰대가 무료라는 거였나보다. 글쎄 여보 청년의 진로는 그런식으로 정하는게 아니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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