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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인간문화재 김혜란님과 국악인 김보연님
mk_1**** 조회수 9,295 작성일2008.09.29

인간문화재 김혜란님에 대해서 자세히좀 알려주세요

 

 

그리고 국악하시는 김보연님에 대해서도요~

 

 

간단한 약력과 소개 부탁드립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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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신
한국사 52위, 예금, 적금, 강남구 14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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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란

- 중요무형문화재 제 57호 경기민요 보유자후보

- 안비취의 수제자

-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기예능보유자들인 묵계월, 이은주, 안비취 등을 이어 경기민요 2세대로는 이춘희, 김혜란, 임정란 등을 들수 있다.

 

서울굿의 대가 김혜란 명창

▲ 서: 김혜란 씨는 경기민요의 명창으로 알려져 있지만, ‘서울굿’, 하면 김혜란, ‘김혜란’ 하면 서울굿이 연상되는데, 특별히 서울굿에 애정을 갖게 된 배경이나 이유를 말 씀해 주시지요¡

△ 김: 저의 스승이신 안비취 선생님의 권유로 시작했습니다만 하다 보니까 그 매력, 말하 자면 다양한 장단의 변화나 즉흥성이 발휘되는 멋진 가락, 강약의 대비나 신명 등 에 제 스스로가 빠져버린 것입니다.

▲ 서: 서구문화의 합리적인 논리에 밀려 굿은 구습(舊習)의 잔재로 취급되고 있는 실정인데¡

△ 김: 서구문화의 과학이나 논리를 설득하지 못한다 해서 굿 속에 담겨 있는 노래나 기악, 춤 등이 전통문화의 영역에서도 밀려나 사장된다면 이는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신을 부 르고 신과의 교류를 위한 음악적 표현이 잘 녹아 있는 영역이 또한 굿의 형태일 것입니 다. 무속인들의 굿 자체가 아닌 무대예술로의 서울굿을 가꾸어 가려는 것입니다.

▲ 서: 경기민요에 입문한 시기와 계기는¡

△ 김: 여성국극단이 성행 했을 때 저희 어머니는 누구보다 열렬한 팬이셨지요. 아마 후원회장 직도 맡으셨던 것으로 압니다. 늘상 저를 국극공연장에 데리고 다니셨거든요. 공연을 보고 온 날이면 으레 그 날의 공연물을 울고 웃으며 그대로 흉내 낼 정도로 끼를 보였 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 꿈은 연극배우나 뮤지컬배우가 되고 싶었는데 소리를 배우게 되면서 소리에만 치중하게 되었지요. 그 당시, 연극 쪽에 사람을 알게 됐더라면 연극 배우가 되었을 것입니다.
어렸을 땐 그것이 남도음악인지 경기지역의 음악인지도 몰랐어요. 하여튼 저는 뮤지컬 배우를 동경하게 되었고 그를 위하여 무용을 배우러 다니기도 했습니다.
본격적으로 경기민요에 입문하게 된 시기는 17살 때 어머니 친구분의 소개로 종로 3가 의 이창배 선생님학원에 다니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 서: 청구고전성악학원에 입학을 하셨군요, 그럼 이창배 선생에게 배웠겠군요¡

△ 김: 이창배 정득만 두 분께 배웠어요. 두 분은 여자들은 선소리를 잘 안한다 하여 저를 안 비취 선생께 보내셨어요. 왜 그리로 보내셨는지는 모르고 가라고 해서 무조건 복종하는 자세로 간 것입니다.

▲ 서: 김혜란씨를 처음 보게 된 안비취 명창의 반응은¡

△ 김: 한 두 해 소리해서 되는 게 아닌데 청구 고전성악학원에서 5년 동안 배웠기 때문에 기 초가 충실하다고 칭찬하시면서 좋은 제자 받기 힘든데 제가 왔다고 이창배 선생께 고마 워 하셨지요.

▲ 서: 서울굿을 하게 된 것도 스승의 권유였나요¡

△ 김: 물론입니다. 제겐 큰 보물을 주셨지요. 굿 소리도 중요한데 그 공부를 하는 제자가 없었 어요. 목소리, 성격, 외모 등, 제가 적합하다고 저를 지목하시면서 이지산 선생을 소개 시켜 주셨어요.

▲ 서: 같은 창부타령이라도 굿속에서 부르는 것과 민요 전공자들에 의해서 불려지는 노래가 다르게 들리는데¡

△ 김: 굿 속의 창부타령은 걸죽하면서도 활발하고, 투박스럽고 힘차면서도 즉흥성이 발휘되지 만 경기소리 창자들이 부르는 노래는 세련된 창법을 구사하여 예쁘게, 애절하게, 맛깔스럽게 표현하는 반면 역동성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지요.

▲ 서: 서울 굿을 공부한지 20여년인데 공연이 잘 되려면¡

△ 김: 굿은 높은음을 자유자재로 구사해야 합니다. 그런 목이 안 따라 주면 못 하기 때문에 그런 소리를 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 위에 관객들이 환호를 크게 해 주고 박수도 쳐 주시고 추임새가 막 터져 나오면 더욱 흥이 나서 잘 되지요.

▲ 서: 김혜란 명창은 무형문화재 57호(경기민요)의 <보유자 후보>이시지요¡
자타가 인정하는 대 스타인데, 관계자들이나 행정기관이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 아닌가 요¡ 이제 <후보> 두 글자는 떼어야 할 때가 되었는데.

△ 김: 부끄럽습니다. 보유자후보를 1988년에 받았으니 17년이 되었는데도 아직 부족한 모양 입니다. 더욱 열심히 공부하라는 뜻이 아닌가 해요. 저보다도 더 나이 많이 드신 선배 님들이나 빨리 ‘후보’ 자를 떼어 주셨으면 좋겠네요. 선배님들을 뵈면 안타까워요

▲ 서: 후보를 달고 있어서 불편한 점이 있다면¡

△ 김: 다른 어떤 점보다도 애써 키우고 있는 제자들이 어느 날 무형문화재 이수증을 받기 위 해 제 곁을 떠나갈 때 허전하고 섭섭하지요. 얼마 전, 문화재청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교수님이 발표하신 무형문화재 「전승자 인·선정에 관한 방안」이란 주제발표를 들은 적 있어요. 그 때에 보유자뿐 아니라, 후보나 전수조교들도 이수자를 추천할 수 있도록 하자는 말씀과 과거제도의 개념을 도입하여 누구나 대상으로 하며 선정관리를 엄격하게 운영하자는 말씀이 설득력 있었다고 봅니다.

▲ 서: 제 의견에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 명창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공연도 많이 해 오 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공연을 꼽는다면¡

△ 김: 2002년, 벨기에에서 가졌던 『여성의 목소리 페스티벌』의 개막 초청공연이 인상에 남 습니다. 이유는 1시간 30분의 공연시간을 온전히 경기민요로만 꾸몄기 때문입니다.
창작음악이나 굿 음악도 안 된다고 하기 때문에 고민을 참 많이 했지요.

▲ 서: 그래서 공연내용이나 진행을 어떻게 했습니까¡¡

△ 김: 아리랑으로부터 시작해서 우리 나라를 서서히 알리기 시작하였지요. 국내에서 그런 공 연을 했더라면 별 호응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리랑, 구 아리랑, 강원도아리랑, 정 선아리랑, 긴아리랑 등 혼자 끌고 가는 게 힘들기는 했어도 이 페스티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눈치 챘기 때문에 순수한 우리의 민요들 만을 꼽았지요. 그야말로 한국민요 의 진수를 보여 주었습니다. 외국인들이 우리민요의 멋들어진 가락이나 변화있는 다양한 장단, 그리고 독특한 창법에 환호를 보내 주었습니다. 저에겐 공부도 많이 되었고 큰 의미 를 부여하고 싶은 공연으로 가장 뜻 깊게 생각합니다.

▲ 서: <우리 음악 연구회>의 예술감독을 맡고 계신데, 어떤 단체입니까¡

△ 김: 10년 정도 되었지요. 우리 음악을 젊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편한 음악으로 바꿔 보려 는 의도하에 조직했습니다. 경기소리를 했고 굿소리를 공부했지만 창작음악에 대한 의욕이 식지 않았지요. 옛 것만 붙잡고 있으면 거기서 머물게 되기에 ‘배 띄어라’, ‘예쁜 아이 착한아이’ 등을 담은 새로운 노래곡을 만들어 CD에 담았지요. 잘못하면 흉이 되고 욕이 될까봐 걱정입니다. 또 다른 활동은 ‘차세대 명인전’이란 무대를 만들어 능력있는 젊은 국악인들에게 발표의 기회를 주고 있는 일입니다.

▲ 서: 오늘날의 새로운 것이 훗날 전통이 되는 것이지요. 김명창은 기획공연과 함께 ‘배따라 기’ 와 같은 소리극에도 관심이 많은 줄 알고 있는데.

△ 김: 혼자 나와서 장단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건 사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소리극은 연기를 해야 합니다. 소리극은 연기가 반, 소리가 반이지만 소리를 기본으로 연기가 나와야 합니다. 제 소리극에는 대사가 거의 없습니다. 대사가 들어가면 쉬운데 소리로만 만들 어 어렵지요. 노래를 관객의 가슴에 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 서: 김혜란 씨 성격은 옹졸하지 않고 시원시원해서 동료들이나 후배, 제자들이 가깝게 따른 다고 하는데.

△ 김: 좋게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단점이 많은 사람입니다.

▲ 서: 강원민요 연구원을 설립하였다는데

△ 김: 강원도에서 산 공부를 하다가 홍천에 <강원민요연구원>을 설립하였지요. 국악의 불모지 이다 보니 신경 써 달라는 요청도 있고 해서, 강원도에는 강원도 아리랑, 한오백년, 정 선아리랑 등 특유의 아름다운 노래들이 많고 농요를 비롯하여 토속적인 소박한 노래들 이 많아요. 이들을 되찾아 무대에 선보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 서: 앞으로도 젊은 세대들에게 우리 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 주시고 창작곡이나 농 요, 소리극을 통해 경기민요의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경기소리가 매일 그 타령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아 경기소리에 대한 일반인들의 애정이 더욱 증 폭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앞에서 이끌어 가는 일이 힘드시더라도 더욱 힘을 내 주 시기 바랍니다.

△ 김: 잘 알겠습니다. 많은 관심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해서 좋은 소리 들려 드리도 록 하겠습니다. 우리 노래가 이렇게 좋구나 하는 소리 듣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보연

- 용인대학교 예술대학원 석사, 제15회 경기국악악제 대통령상 수상

- 김혜런 명창 문하생

- 우리음악연구회 지도위원

그 사람 김보연, 경기소리를 하는 젊은 소리꾼입니다.

김혜란 명창 문하에서 소리를 배우고 익혔습니다.

용인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고, 전주대사습에서 차상을 수상했습니다.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의 민요 단원으로도 활동을 했고,

현재는 김혜란 명창이 이끄는 우리소리연구회의 지도위원으로 활동중입니다.

김보연, 그에겐 “평사낙안”이란 단어가 어울립니다.

평평할 평 / 모래 사 / 떨어질 낙 / 기러기 안,

평사낙안은“모래펄에 날아와 앉은 기러기”를 말하는데,

학문이나 예술, 성격이나 맵시가 매끈하게 잘 된 것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그의 경기소리는 이렇게 모래펄 위에 앉는 기러기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그에게 또 어울리는 사자성어는 낙화유수!

낙화유수(落花流水), 치명적인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죠.

꽃은 봉우리를 맺었을 때 예쁩니다. 또 활짝 피어났을 때 찬란합니다.

하지만 꽃이 떨어져 물 위에 흐를 때, 그 쓸쓸한 아름다움은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데,

어쩌면 김보연의 노래가 이렇게 낙화유수와 같은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보연, 그는 스스로 민요보다는 잡가가 더 어울린다는 생각한다.

그는 순리를 아는 사람이다. 한 발짝 물러서서 세상을 바라보면 노래하고자 한다.

스승(김혜란)의 대를 이어서 아름답게 노래하면서 살고 싶은 마음을 가진 김보연,

그는 전통과 창작을 아우르고, 무대와 기획을 섭렵하고 싶다고 합니다.

하지만 욕심내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요.

세상의 순리를 따르면서 자신의 음악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김보연,

그의 삶과 예술에서 평사낙안,

곧 기러기가 모래펄에 사뿐히 내려 안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200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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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인 지식 +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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