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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찻잎향기 Dec 01. 2018

[영화&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영화, 소설 함께 읽기

#영화&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_영화, 소설 함께 읽기



#소감_세 문장

     

영화적인 연출과 문학적인 행간 사이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생략되어 있다, 그 간극을 채우는 일이 관객의 몫이라면 기꺼이 수용하리라. 영화 보는 일에 방해가 될 것 같아서 소설을 책상 위에 두고는 읽지 않았다.

     



#영화 개요 범죄, 스릴러, 2017, 15세 관람가

     

[감독] 원신연

[출연] 설경구, 김남길, 설현



영화 속으로_


#배우 설경구

     

 나는 설경구의 팬이다. 그래서 이번 영화 관람도 스토리 및 연출에 대한 관심보다는 설경구라는 배우가 '김병수'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소화하는지 관객의 몰입에 어떤 영향력을 주는지 알고 싶어서. 기대감을 갖고 본다.

 그런데 관객인 내가 김병수에 몰입되는 정도보다 배우인 설경구가 캐릭터 김병수에 몰입하는 정도가 더 큰 것 같다. 한편으로 그의 연기와 연기를 위한 노력에 대단하다 박수를 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쓰럽다는 마음마저 들고 만다. 

 그는 왜 이토록 연기에 몰입하고 마는가, 아니 왜 이런 어려운 연기에 자신을 몰아넣고 마는가, 캐릭터의 괴기스러움과 자책감, 딸에 대한 부성애, 심리적인 압박감 등이 무겁게 다가온다.


 영화적인 기승전결의 스토리를 매듭짓기 위해서는 민태주(김남길 분)의 사연이 불가피했나 보다. 

 후반부 민태주가 구구절절한 사연을 독백하는 부분은 어쩐지 김병수만의 스토리적인 부분과 심연의 고통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를 매듭지으려는 강박적인 조급함을 버리고. 김병수만의 잃어가는 기억과 뒤죽박죽 엉망이 되어가는 기억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천착을 거듭하는 것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냈다면. 이 영화는 더 큰 재미와 여운을 남겼으리라. 

 그리고 민태주는 그런 김병수의 기억을 현실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는 ‘악인’ 역할만으로도 충분했을 것 같다.

 두 사람의 비중을 나름 균형 있게 안배하려다 보니 영화적인 긴장감이 다소 느슨해지고 밋밋해진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나는 간만에 스릴러 영화 한 편 재밌게 보고 왔다고, 위안을 만든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는다.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이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의 농담을 마주친다. 결코 웃을 수 없는 농담을 말이다.
 

치매는 늙은 연쇄살인범에게 인생이 보내는 짓궂은 농담이다. 아니 몰래카메라다. 깜짝 놀랐지? 미안 그냥 장난이었어.


너무나 적확한 표현에 유쾌해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간담이 서늘해진다.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사금파리보다 더 날카롭게 빛나는 한마디에 으스스해질 정도다. 


미안하지만 그것들은 비유가 아니었네. 이 사람아.


살인 행위와 살인의 과정을 생생한 언어로 비유한다. 
 .
 시인이 숙련된 킬러처럼 언어를 포착하고 그것을 끝내 살해하는 존재인 것처럼 
 주인공 '병수'는 실제로 그렇게 숙련된 킬러이다. 
 천부적인 살인자, 살인이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
 ..
 그런 그가 치매를 앓는다, 그리고 혼돈이 시작된다
 죄의식 하나 없는 인간이 의식과 기억 사이를 오고 가며 자신의 과거를 잃어버린다 
 기억하려고 애를 쓸수록 그것은 무의미한 망상에 불과하다
 ..
 은희를 살리기 위해, 은희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 살인을 준비하는 의식은 
 이미 무의식의 지배에서 농락당한 또는 패배당한 망상일 뿐이다 
 .
 간결하고도 명료한 빛나는 문장들로 이루어낸 살인자의 기억법.
 .
 역시 영화와 문학은 완전히 다른 세계로 읽힌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서로 같을 수도 없고, 같은 빛깔이 되어서도 안 되는, 고유의 영역이다. 
 .
 그래서 문학도 영화도 
 따로따로 아름답다
 .
 김영하 작가는 말한다. “이 소설은 내 소설이다”


책을 읽으면서,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그가 왜 이렇게 말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
 김영하 작가는 그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세계에 방문하고 온 것 같다. 
 글 쓰는 일을 여행에 비유했던 것만큼 그만의 글여행 경험이 녹아 있는 것 같다.
 .
 아주 좋은 작품을 읽었다. 신선했다
 .
 농담의 공포
 악마적인 재능과 허물어가는 인간의 의식 
 망각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인간의 고통
 .
 공(없다, 비다, 아무것도 아니다)의 세계로 돌아가는 인간의 마지막 여정 
 .
 그 망가지는 인간 기억의 여정을 참으로 빛나는 언어로 잘 빚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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