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은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을 거부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한번 베푸신 사랑과 은총을 다시 거두어들이지 않는데, 사람들이 하느님의 그러한 사랑과 은총을 거절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지옥이다. 이처럼 지옥은 하느님께서 결코 원하지 않으시는 상태다. 그러므로 지옥에 대한 교리는 죄에서 출발해서는 안 되고 하느님의 사랑에서 출발해야 한다. 다시 말해 대죄를 지으면 지옥에 간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사랑과 은총을 거절함으로써 스스로 하느님과 단절된 상태 즉 지옥을 선택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 인간들에 의해 거부될 수 있는 사랑이다. 하느님은 인간의 결정을 무시하지 않으신다. 즉 인간이 스스로 하느님과 단절된 지옥을 선택하는 것까지도 존중할 정도로 그렇게 인간의 자유와 결정을 존중하신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지옥에 가지 않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당신의 외아들까지 우리에게 주신 것이 그 증거다. 못된 인간들의 손에 죽임을 당할 것을 알면서도 하느님은 당신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 그 정도로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지옥에 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신다.
비록 성경이 명백하게 가르치고 교회의 가르침에도 분명히 나타나지만 지옥은 그래도 역시 의아스럽다. 우리 인생의 최후 목적이 하느님인데, 하느님을 영원히 잃는 지옥이라는 모순이 과연 가능할까? 두 가지 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지옥 교리는 하느님의 모상에 따라 창조된 인간이 절대자 하느님을 모실 능력이 있음을 말해 준다. 지옥 교리는 인간이 본래 하느님께 향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하느님께 나아간다. 그래서 사실은 하느님을 거부하는 것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하느님을 거부하는 것은 인간본성이라는 물살을 거꾸로 헤엄쳐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 가운데 있고 우리를 포위하고 있다.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다. 다만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기를 거부할 수 있을 뿐이다. 하느님은 우리의 목적을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으신다. 우리의 결정에 상관없이 천당에 가도록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는 것처럼, 지옥도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으신다. 그렇다면 지옥이란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는 모순이다.
대죄를 범해도 회개할 능력이 인간에게 있다. 그러나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자, 하느님과 화해하기를 포기하는 자는 지옥에 간다. 지옥은 일평생 하느님을 거부하고, 하느님께서 베푸는 사랑을 배척하며 살아온 상태가 폭로되는 곳이다. 인간은 하느님이 자신의 최후 목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하느님을 거부할 수 있는데, 이런 분열상태가 곧 지옥이다. 그리고 이러한 분열상태를 자유롭게 원하여 일평생 계속 유지했기 때문에 하느님과 영원히 단절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원한 벌은 하느님이 내리시는 벌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 벌이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묻게 된다. ‘이런 모순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인간의 최후 목적은 하느님인데, 하느님과 영원히 등지고 영원히 벌을 받는 지옥을 인간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까?’ 그래서 지옥은 모순이다. 그러나 이런 모순은 있을 수 있다. 인간이 스스로 천당을 선택하듯이 인간은 스스로 지옥을 선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둘째, 그리스도께서도 죽음과 지옥의 고통을 체험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느님께서 공연히 지옥을 만들어 놓고 인간을 괴롭히는 것 아니냐?’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지옥은 하느님 편에서 볼 때 무슨 수를 쓰더라도 막아야 할 최악의 사태다. 위협이나 경고가 결코 아니라 하느님으로서는 어떻게든 막아야 할 최악의 위기상황이다..........님에게 도움이 됬으면 합니다...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