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

질문 기독교의 전도와 하나님의 자유의지 그리고 예수천국 불신지옥에 관한질문이에요.
gija**** 조회수 3,252 작성일2008.05.08

안녕하세요. 오늘 우연히 진화론과 창조론에관한것을 찾아다니다가 성경과 기독교의 시초논리인 자유의지에 관해 궁금한게 있어서 질문합니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들고, 안티 예수의 문화가 생기는 모든게 애초에 자유의지를 주어 선택하게 한것이라고 교인들이 말하던데요. 하나님이 인간만을 사랑하여 자유의지까지 주어가며 만들었는데 왜 그 피조물이라는 인간은 애초에  하나님의 뜻인 자유의지를 역으로 거슬러 전도를 하고, 아프간에 갔다가 죽어나가고, 타종교를 부정하는등의 행동을 하는것이죠? 하나님조차 강요와 권유가아닌 선택하도록 한것을 왜 교인들은 천당아니면 지옥이라는 두가지 모토로 선택을 강요하게 하는건가요. 자유의지로인해 선악과에 손을대고 그결과로 예수가 죽고 살아나는걸로 원죄를 짊어지었다고 하는데, 애초에 하나님이 설정한 자유의지 라는것은 말이 자유의지인것이지 결국 양갈래 길에서 한쪽길은 낭떠러지인것과 같이 어느 한쪽으로만 가게끔 하기위한 반강제적 흑백논리가 아닌가요?

애초에 하나님이 모든것을 만들었다면 믿는것도 하나님의뜻이고 안믿는것도 하나님의뜻 아닌가요? 어차피 하나님이 시작이 자끝이면 하나님자체가 무이자 유인것이라고 생각되네요. 선악과를 만들어 손대는것의 의지(불신=무), 손대지 않는것의 의지(믿음=유)중에 손대지 말아야할 것에 손을 대게 하는 의지와 손댄후의 결과는 어디서 생겨났으며 누가 만들어 주는것이 되는거죠?

이렇게 믿는것도, 안믿는것도 하나님이 만든 의지라면 하나님을 믿어야만 한다는 기독교의 신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을 안믿기에 믿게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죽고살아난 예수만 되는걸까요?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며 자유의지를 주어 신과같이 동격체로 만들었다면 구태여 예수가 내려와 죽고 살아나는일이 왜 필요했던걸까요.

 

기독교와 성경 그리고 하나님에대한 각종 이야기들은 너무많아 찾아보고 읽어봐서 답을 알려면 너무 막막하네요.

두서없이 쓴글일지라도 답을 찾을수 있으면 좋겠네요. 사실 하나님을 믿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하나님을 욕하거나 신이나 하늘등에 욕하면 재수없는일이 생겼을때 좀 꺼림찍한 그런거때문에 많이 민감한거 같네요.

프로필 사진

답변자님,

정보를 공유해 주세요.

7 개 답변
9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탈퇴한 사용자 답변

님의 글 순서대로 답변을 드려보겠습니다. 어떤 교리나 신학 이론이 아니라 오직 성경에 있는 그대로 말씀드립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전도는]

 

성경에서 말하는 전도란 하나님의 도를 전하는 것이고, 그 하나님의 도는 "전도서"를 말합니다. 전도서는 인생이 하는 모든 것들이 결국 헛되다는 가르침으로 마음의 괴로움이 자기 안의 채움과 높아짐을 향한 욕구에 있다는 것과 만물 안에 조물주의 뜻이 있음을 보고 세상과 인생이 무엇인지 깨달으라는 가르침입니다.

 

이 전도를 하는 것은 사람을 얻기 위함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전하기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함의 목적은 사람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세상에 속한 내가 무엇을 추구하고 살았는지, 얼마나 많은 욕심을 갖고 살았었는지를 깨닫게 하는 과정일 뿐인 것입니다.

 

또한 성경에서는 사람을 내 설득으로 모으거나, 억지로 낮아짐과 비움의 길을 가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에 조물주가 침범하는 것으로 명백히 불법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은 반드시 자기 자신의 욕심이므로, 그 욕심만큼 마음의 괴로움을 받게 되므로 그 마음도 비워야 하는 욕심이라고 훈계합니다. 사람을 설득하고 모으려 한다는 것은 내 마음에 무엇인가 채우려는 욕심이 있다는 것이고, 그렇게 사람을 모으면 그 사람을 자기 소유로 생각을 한다는 증거입니다.

 

이 말씀을 전하는 것이 전도이고, 높음과 채움을 향하는 세상에 이 말씀을 전하며 그 반응은 대체로 냉담합니다. 그리고 낮아짐과 비움을 길을 가면 가족들,친구들이 모두 등을 돌립니다. 자신들의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하고, 자신들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반드시 자신에게 유익이 있을 때 상대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물질적으로도 욕심을 비우게 되기 때문에 남들이 보기엔 초라해 보이므로, 세상 사람들이 무시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고난과 핍박을 받는다고 합니다.

 

님의 말씀대로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스스로 인생을 살아보고, 스스로 진리를 찾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종교를 갖는 것이므로, 남을 설득하거나 억지로 사람을 끌어 오는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전도가 아닙니다. 전도는 단지 우체부처럼 말씀만 전하는 것으로, 받지 아니하면 그냥 돌아서서 자기 길을 가야한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의 흑백논리는 인간이 상대적 사고를 하기 때문이며,  선과 악의 기준은 윤리적 선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선과 악의 기준은 윤리적 선과 다릅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높아지고 채우는 것은 악이고, 낮아지고 비우는 것은 선입니다. 흑백 맞습니다. 그러나 깊이 상고해 보시면 이것만큼 정확한 기준 또한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인간이 규정한 선은 "더와 덜"을 기준으로 조금 더 많이 갖거나 조금 더 높아지면 악이고, 덜 갖거나 덜 높아지면 선으로 인식합니다만, 이 기준은 상대적일 뿐 아니라, 언제나 가변성이 있는 비 진리라는 것입니다. 

 

욕구는 채우고 싶고, 그러나 본능대로만 살자니 짐승과 다를 바 없는 것 같고, 높아지고는 싶고, 그러나 높아져 있는 사람들을 보니 그 사람들에게서 선을 보지 못하겠고...그 사이에서 양 다리를 걸치며 적당히 맞춰 사는 것도 물론 자신의 선택입니다.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행하라", "네 눈에 보이는 대로 가라 " 라는 말씀은 반복해서 나옵니다.

 

성경은 흑백논리로 되어 있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그 흑과 백중 선택하라고 자유의지를 준 것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은 선과 악 사이에서 자기 합리화를 하여,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싶은 마음일 뿐입니다.

 

성경이 흑백논리인 것은 인간이 상대적 사고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안에서의 논리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흑백사고를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 수준에 맞춰, 무식한 자든, 유식한 자든 진리를 찾는 자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논리로 기록된 것이 성경입니다. 만물을 보십시오. 그 만물에 흑백논리만 있나요?

 

성경은 인간의 사고에 맞는 논리를 갖고 있는 말씀이고,  사고하는 인간에게 주신 책입니다. 인간은 하얀색을 알지 못하면 검은색을 인지하지 못하고, 빛을 인식하지 못하면 어둠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대적 사고를 한다는 것을 간과한 채 흑백논리만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흑백논리, 즉 선악 논리를 비판하는 것은 인간이 20:80 이든, 50:50이든, 60:40이든 양 선상에 있고 싶어하는 마음때문입니다. 온전히 100% 선한 사람도 없고, 온전히 100%악한 사람도 없습니다.

 

자기 마음에 원하는대로 생각하고 행하는 것이고, 그것에 대한 결과도 자신이 받는 것으로, 세상에서 볼 수 없는 공평의 섭리가 있는 것이 성경입니다. 무엇이든 자기 욕심만큼 괴롭게 되어 있는 이치라고 하겠습니다. 또 그 욕심만큼 쾌락도 갖습니다. 그 모든 것은 자신이 선택하고 자신이 선택한 만큼 받는 것입니다. 단지 그 욕심의 결과가 헛되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 욕심을 버리는 것 뿐이고, 그 욕심이 좋은 사람은 마음에 있는 만큼 그 욕심을 채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달림에 대한 오해]

 

기독교가 말하는 예수님이 인간의 원죄를 다 갖고 갖다는 것은 성경에 없는 말입니다. 단지 세상에 속한 마음이 왜 악한지, 즉 높아지고 채우려는 그 마음이 왜 악한지를 가르치시고, 그 악한 마음을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 낮아짐과 비움을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본을 보이신 것 뿐입니다.

 

하나님이 행위의 율법인 모세율법을 주어 인간의 욕심을 지우게 하려 했지만 인간이 그 율법을 씹어버렸기에, 예수님이 오셔서 선으로 악을 이기는 마음의 법인 성령의 법을 주신 것뿐이지, 인간의 죄를 다 지고 가신 것이 아닙니다. 단지 인간이 씹을 수 없는 절대적인 법을 지키라고 주신 것뿐입니다. 물론 자유의지로 낮아짐과 비움을 가기로 선택한 사람에게만 주신 법입니다.

 

법이라는 것은 내가 그 나라에 속한 국민일 때 지키는 것이지,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나라의 법은 지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주신 법은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르겠다는 선택을 한 사람만 지키는 법입니다.

 

님의 말씀처럼 예수님이 모든 인간의 죄를 다 지고 가셨다면, 인간은 자유의지도 필요없고, 오직 선한 상태이므로 예수 이후의 모든 사람은 천국에 있어야 하는 것이 논리적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원죄론과 예수님이 그 죄를 대속하셨다는 말은 성경에 없는 이론입니다. 그러므로 님이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즉 성경에도 없는 주장을 듣고 오해를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게 하려고 오신 것도 아니고, 하나님을 믿게 하려고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이론은 어디서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성경에 없는 말씀입니다. 한 번 만든 세상과 만물을 두 번 못 만들겠습니까?  다시 만들면 되는 세상이고 피조물에게 무엇이 아쉬워서 자신을 강제로 믿게 하려고 자기 아들을 인간 손에 개죽음을 당하게 합니까?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무엇이 아쉬울까요?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과 지옥이란]

 

천국이나 지옥은 내가 살아있을 때 느끼는 것이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죽어서 가는 천국과 지옥은 없습니다. 아무 근심도 없이 평안한 마음 상태를 천국이라고 하고, 고민과 번뇌의 마음 상태를 지옥이라고 합니다. 땅에 갇힌 생각, 즉 세상에서 채워가지고 높아지려는 생각으로 늘 마음이 괴로운 것은 바로 땅에 속한 생각을 하기 때문에 지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땅지 옥옥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이란]

 

믿음은 의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고 안 믿고는 선택이지, 믿는데 의지까지 필요하진 않습니다. 의지로 믿는 것을 어찌 믿음이라 할 수 있겠는지요. 그건 자기 최면입니다. 그러므로 님의 믿음에 대한 것을 자유의지와 부합하는 것은 전제가 오류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맹목적인 비 이성의 맹신이 아니라 말씀을 읽고, 알고, 깨달아, 따르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인간이란 피조물은 신과 동격이 아닙니다.]

 

누가 인간을 신과 동격체로 만들었다고 하나요? 티끌하나, 물 한방울, 풀 한포기조차 만들지 못하는, 흙으로 썪어 없어지는 피조물인 인간을 누가 신이라고 하던가요? 한정된 수한을 살다 사라지는 존재가 어떻게 신입니까? 아무것도 만들지 못하는 인간이 어떻게 신과 동격입니까?  자기가 만든 작위적 신이라면 가능합니다만, 자신이 신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입증할 논리를 가진 증거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비 이성에 대해 판단하고 비판하려면..]

 

어떤 신에 대해 욕하면 재수없는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은 무속신앙에 기인한 비 이성입니다. 무 논리와 비 이성의 무속신앙을 믿고 계신다면, 눈에 보이는 허상과 비 이성을 믿고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성경은 완전한 논리로 된 책입니다. 비 이성으로 성경을 본 사람들이 신학이라는 학문을 만들어 앞.뒤 안 맞는 이론을 붙여 현재의 구원론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짐성과 다른 이성을 가진 인간을 창조하셨고, 만물에 하나님의 뜻을 심어두시고 그것을 보고 깨달으라고, 그리고 무엇이 진리인지 찾으라고 성경을 주셨습니다. 성경을 왜곡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고 성경을 판단하시는 것도 비 이성입니다. 적어도 내가 보고, 읽고,확인한 후에 옳고 그름을 주장하든지, 비판을 하든지 해야 하겠습니다.

 

님이 비판하시는 기독교인들이 바로 성경을 보지도 않으면서 성경을 안다하고, 목사, 신학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만 믿고 맹신하고 있는 비 이성의 상태입니다. 그 비 이성을 지적하려면, 적어도 나는 이성을 갖고 과연 그러한가 성경을 상고하시길 바랍니다.

 

공부를 못하는 사람의 책임이 교과서에 있지 않고,  범죄를 하는 사람의 책임이 법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2008.05.08.

  • 채택

    질문자⋅지식인이 채택한 답변입니다.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
2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ws****
초수
본인 입력 포함 정보
율법으로는「저주」지만 예수님의 은혜로「축복」을…
 등록일 :2007-10-22 15:16:30[프린트 하기]
율법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켜야 한다. 그러면 율법을 어떻게 지킬까?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면 간음해도 되고 도둑질해도 되나?” 대부분 사람들이 율법에 대해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면 좋겠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은 믿음으로 사는 것을 방해합니다.
‘우리가 헌금을 하는 것이 율법에 매인 것이라면 헌금 안 해도 되지 않느냐?’ 하며 율법도 아니고 믿음도 아닌 애매한 상태에 있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이런 율법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 자신도 믿음이 없고 연약하지만 성경을 읽을 때마다 말씀이 마음에 들어오면서 ‘내가 이런 걸 몰랐구나!’ 하는 사실을 깨우치게 됩니다. 그러면서 삶이 달라지고 좋아지는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복을 받을 수 있는 조건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 28:1~6)
제가 어릴 때 우리 교회 목사님이 저희 집에 심방을 하시면 저희 누님은 음식을 정성껏 장만했습니다. 목사님은 오셔서 신명기의 성경 구절을 늘 읽어 주시며 복을 빌어 주셨습니다. 저는 그 때마다 이 복에 대해 무척 감사했습니다. 모든 복이 내게 임한다는 말만 들어도 좋아서 목사님이 심방하시는 것이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구원받은 후 신명기 28장을 다시 읽으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예전에는 1절에서 6절까지 읽을 때 복을 말한다고 생각했는데, 정확하게 읽어 보니 복을 받는 데는 조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축복과 저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신 28:1) 그 조건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모든 명령을 다 지켜 행해야 복을 주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두려운 말씀은 15절부터 19절까지입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또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우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신명기 28장은 복과 저주가 명백히 나뉘어져 있는데, 복을 받으려면 모든 명령을 다 지켜 행해야 하고, 그렇지 아니하면 모든 저주가 임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제가복을 받을 사람인지 저주를 받을 사람인지 재판해 보았습니다.

율법을 지킬 수 있는가?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계명은 ‘내가 우상이나 부처에게 절한 적은 없지만 마음에 하나님 외에 더 사랑하는 게 있다면 그게 우상인데…’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대충 믿을 때는 괜찮았는데 정확하게 따지니까  법에 걸렸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계명도 저는 주일에 교회만 나가면 안식일을 지키는 줄 알았는데, 정확하게 읽어 보니까 안식일에는 어떤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저는 안식일을 못 지켰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지니라” 등 십계명을 자세하게 살펴 보니 거의 다 못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 자신이 저주를 받을지 축복을 받을지 계산해 보니 저는 100%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저는 그것도 모르고 그냥 복을 받는다는 말씀만 좋아했습니다.

신앙을 잘 모르니까

저희가 예배당 건축을 할 때 목수들을 씁니다. 똑같은 목수인데, 어떤 사람은 일당 20만 원을 받고 어떤 사람은 일당 10만 원을 받습니다. 왜 차이가 납니까? 저는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고 목수들을 썼습니다.
계단을 만들 때 틀을 짜서 만든 후 거기에 콘크리트를 붓습니다. 콘크리트가 다 굳어진 후에는 돌을 붙이는데 돌을 붙이는 사람이 와서 욕을 했습니다. 제가 왜 욕을 하냐고 물어보니까 “이것 짠 놈도 목수냐? 이거 어느 놈이 짰냐?”고 하는 겁니다. 계단에 돌을 붙이는데 계단의 높이가 다 달랐습니다. 높은 것은 돌을 깨야하고, 낮은 것은 시멘트를 붙여야 하니까 돌 붙이는 사람이 짜증을 내고 욕을 했던 겁니다.
제가 건축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선교회 안에서 수양관도 짓고 예배당도 짓다 보니 이제는 돌을 보는 눈도 생겨서 중국석인지 포천석인지 거창석인지 그 정도는 압니다.
사람들이 집을 짓다보면 적당히 대충 짓기도 하는 것처럼, 신앙생활을 잘 모르니까 연보 많이 하면 흐뭇해하고 성경 많이 읽으면 신앙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잘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너무 멀어진 생각의 거리

제가 대구에서 사역할 때 우리 교회에 연세 많으신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그 할머니가 일제 시대에 시집 간 지 석 달 만에 남편이 일본 군대에 잡혀갔습니다. 그 후 혼자 한평생 살다가 일본의 조총련계 동포들이 남한으로 고국 방문하러 왔을 때 무척 설레는 마음으로 몇 십 년 만에 남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우리도 기뻐서 할아버지를 찾아가 인사도 하고 음식도 대접했습니다.
며칠 뒤에 제가 그 집에 다시 찾아갔는데 할머니가 “아이고, 목사님. 나 이 영감 너무 진절머리 납니다”라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중매로 결혼해서 석 달 살다 헤어졌으니 깊은 정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다가 몇 십 년 지나 만났지만 매일 담배를 피우고 아침마다 신상 앞에서 남묘호랑개교, 남묘호랑개교” 하고 계신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두 분의 삶이 너무 다르니까 할머니가 견디기 힘들어 했습니다.
부부가 이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살면 생각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기 때문에 다시 만나도 같은 마음이 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주시려고

여러분, 우리는 수 천 년 동안 아담으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 반대편에서 살았기 때문에 여러분이 교회에 나와서 ‘내가 이러면 하나님이 만족하시겠지!’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신앙은 절대로 그렇게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교인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막힌 모든 문제를 정리해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믿음으로 사는 삶으로 인도하지 못하기 때문에 믿음이 아닌 걸 믿음이라고 속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 연보 하는 것, 기도하는 것을 예수 믿는 거라고 가르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회에 나가 연보하고, 주일 지키고, 기도했으니까 나는 예수를 믿어. 그리고 복을 받을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의 세계는 하나님과 우리가 한마음이 되어야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을 만날 때마다 늘 하나님의 마음을 넣어주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나는 자식을 못 낳아. 젊어서도 자식을 못 낳았는데 이렇게 늙어 어떻게 자식을 낳아?’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니야. 사라 네가 아들을 낳을 거야. 내 말 들어. 너는 아들을 낳게 돼.” 그 말씀을 듣고 사라가 웃었지만 하나님은 사라를 꾸짖었습니다. “사라야, 왜  웃느냐? 내가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 속에 넣어주시려고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온갖 일을 항상’ 행해야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나름대로 성경을 해석해서 ‘내가 이 정도 하면 어느 정도 믿음이 있겠지’라고 생각합니다. 사기 치고 바람 피우고 살인하고 강도짓 하는 사람들에 비해 자신을 진실하고 깨끗하다고 여깁니다. 그런 자신의 생각에 신앙의 기준을 두면 그 사람은  천국 가고도 남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0) 율법을 지키고 선하게 살면 천국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참 많은데,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가는 자는 반드시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율법을 지켜서 복을 받으려면 누구든지 예외 없이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온갖 일’이라는 의미는 완벽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간음 안 하고, 도둑질 안 하고, 진실하게 살아도 ‘저거 참 좋네. 저거 하나 가졌으면 좋겠다’ 하고 남의 물건을 탐내면 이미 저주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완벽하게 지킨 사람은 없어

저는 안식교 교인과 안식일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안식일을 성경대로 지킵니까?” “네, 지킵니다.” “그러면 성경을 펴고 같이 봅시다. 안식일에 아무도 일하면 안 되고 불도 피우지 말라고 하는데 안식일에 가스레인지 불도 안 씁니까?” “밥 먹으려면 해야죠.” “성경에서 안식일에 무슨 불이라도 피우면 안 된다고 했어요.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도 일을 시키면 안 되는데 안식일에 버스를 탔다면 버스 운전기사가 일한 것이잖아요.” “에이, 목사님. 그렇게 까다로우면 누가 안식일을 지킵니까?” “성경이 그렇기 때문에 적당히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안식일 못 지킵니다.”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 구절은 지금 이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율법을 한 번도 어기지 않고 다 지켰다고 할지라도, 그 전에 율법을 어겼으면 항상 행한 게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결국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율법을 완벽하게 지킨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에 미달되어 축복이 아니라 저주를 받게 됩니다.  

불효했다는 가책 때문에

제 형님은 1983년에 세상을 떠나셨는데 형님은 아버지를 극진히 섬기는 효자이셨습니다. 형님은 한평생 아버지를 섬겼고, 아버지를 떠난 적도 없었습니다. 때때로 아버지와 말다툼을 했지만 아버지를 존경하는 마음이 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뒤 장례식을 마치고 형님이 빈소를 차리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형님에게 “형님, 아버지는 구원받고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다시 와서 음식 잡수시는 것도 아닌데 빈소를 차릴 필요가 있을까요?” 했더니 형님이 말했습니다. “옥수야. 다 쓸데없는 짓인 줄 안다. 근데 내가 아버지께 너무 불효를 했다. 그 가책 때문에 아버지 앞에 송구스러워서 이렇게라도 하면 내 마음이 좀 나을 것 같아서 그러니까 이해해라.”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임종을 보았지만 형님은 보지 못하셨습니다. 일본에 갔다가 아버지 소식을 듣고 돌아오려고 했지만 비행기가 좌석이 없어서 배를 타고 밤늦게 부산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에 세관들이 출근하기 때문에 배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밤새 배 안에 있었던 겁니다. 그동안 형님은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할까봐 배에서 여러 번 뛰어 내리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임종 전에 구원을 받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저는 형님에게 “형님, 저는 아버지에게 효도했습니다!”라고 했더니 형님이 깜짝 놀라 쳐다보았습니다. 형님은 한평생을 아버지 앞에 불효자라고 생각하는데, 제 대답이 기가 막힌 거지요. “저는 형님이 아버지를 섬기는 것 100분의 1도 섬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돌아가실 때,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인도했습니다. 저는 효자입니다.” 저는 늘 아버지하고 떨어져서 살다가 아버지 돌아가실 즈음 되어 형님이 일본에 가시는 바람에 제가 몇 달 동안 아버지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 때 아버지가 구원을 받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버지가 임종하시기 전에, 아버지 친구 분들을 전부 불러다 놓고 “너희들 술상 좀 차려라” 하셔서 술상을 차렸습니다. 아버지가 누우신 채로 “자네들 한 잔씩 들게. 나는 둘째 아들 은숙이 애비가 믿는 하나님 믿고 하늘나라 가네. 내가 가서 좋은 자리 맡아놓을 테니까 자네들도 은숙이 애비가 믿는 하나님 믿고 그 나라에 같이 가서 우리 행복하게 사세. 나는 자네들과 살면서 즐겁고 기뻤는데, 그 나라 가서도 그렇게 하세”라고 말씀하시고는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예수님의 공로로

형님과 저를 비교해보면 형님은 인간적인 정성을 다해서 아버지를 섬겼지만 저는 걱정을 끼치고 문제 일으키다가 마지막에 하나님이 저를 효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저희 집에 와 계셨고, 제가 아버지께 예수님을 믿으라고 했지만 안 믿으려고 하셨습니다. 마지막에 아버지가 위출혈로 피를 토하면서 이제 마지막이라는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피를 토하면서 아버지 마음이 다 깨져버린 겁니다.
그 전날까지도 아버지는 욕망이 많으셨습니다. 늘 “그 땅 한 자리 팔아서 내 병 좀 고쳐라”며 자식들에게 불평하셨는데 당신이 곧 세상을 떠나신다는 것을 느끼신 겁니다.
제가 아버지에게  “아버지, 지금 하시고 싶은 이야기 있으면 하십시오” 했더니 장례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장례는 아버지 말씀대로 치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영혼은 어디로 갑니까?” 아버지가 한숨을 푹 쉬면서 “내가 하늘나라에 가고 싶지만 너무 늦었다. 무슨 공로가 있어야 하늘나라에 가지.” 그때 저는 목사가 된 것이 무척 감사했습니다.
“아버지. 우리는 공로가 없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당신의 공로로 거룩함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공로로 하늘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아버지도 그 공로로 가시면 됩니다.” 그 때 아버지가 구원을 받으시고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내 죄를 다 지고 그 고난을 당하셔서 제가 구원을 받았습니다”고 하셨습니다.

율법을 지킨 유일한 분

저희 아버지는 율법에 의해 저주를 받아야 할 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하나도 어김없이 다 지켜 행해야 복을 받고, 하나라도 어기면 저주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는 저주를 받지 않았습니다.
신명기 28장 1절에서 15절까지 말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한 분이 한 분 계시는데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신명기에  나오는 복을 입기에 합당하게 행하신 분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신 28:3)” 라는 말씀처럼 저도 분명히 죄를 지어서 저주를 받아야 할 사람인데 제 삶이 복되게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든 복을 허락하셨고 제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속함으로 말미암아 이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받는 복은 율법을 지켜서 받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 들어가서 예수님과 하나 될 때 받는 복입니다.
예수님은 신명기 28장의 모든 명을 하나도 어김없이 지켰기 때문에 모든 복을 받기에 충분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받아야 할 그 복을 저에게 주시고 제가 받아야 할 그 저주를 가져가셨습니다.

어려움을 복으로 바꾸시고

민수기를 읽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주를 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간음하다가 2만 3천여 명이 죽고, 원망하다가 불뱀에 물려 죽고, 안식일에 나무 하다가 돌에 맞아 죽는 등 민수기에는 멸망 받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제가 민수기 시대에 있었다면 돌에 맞아 저주를 받고 멸망을 받아야 할 사람인데 저주를 받지 않고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제 행위는 예수님께 건너갔고, 예수님이 선하게 사신 그 복이 제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먹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고, 광주리가 복을 받고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고 자녀들이 복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제 삶 속에 어려움과 문제가 생기지만 하나님이 그것을 복으로 바꾸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뉴욕교회의 임민철 선교사님이 어제 마하나임대학교의 2008년 예산서를 보내왔는데 어마어마한 돈이 예산으로 책정된 것을 보고 처음에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곧 ‘이것이 내 일이냐 아니면 하나님의 일이냐? 이 일의 책임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 있구나!’라는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어마어마한 돈이 어떻게 준비가 될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저는 하나님이 그 돈을 어떻게 채워주고 어떻게 일을 하시는지 보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일 가운데 지금까지 어느 것 하나라도 우리 힘으로 된 적이 없습니다.

은혜로 받는 축복

제가 분명히 아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저주를 대신 받기 위함이었고 그 복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겁니다. 제가 민수기나 신명기가 기록된 시대에 살았으면 내가 반드시 멸망을 받고 저주를 받아야 하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의 복을 받아서 무척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잘해서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저주를 받기에 합당한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우리 기준에 잘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기준에는 우리가 다 저주를 받고 멸망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는 좀 착한 사람이 있고, 더 악한 사람이 있습니다. 깨끗하고 더러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 죄를 범해 저주를 받아야 할 인간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저주를 예수님께 넘기시고 신명기 28장 14절까지 예수님이 받기에 합당한 분이신데 예수님이 그 모든 명령을 지켜서 받아야할 복을 우리에게 넘겨주셨습니다. 값없이 은혜를 받는 것은 우리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 안에 머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2007. 10. 14 주일 낮 설교 (요약) -

2008.05.08.

  • 출처

    기쁜소식선교회 홈페이지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
3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manm****
초수
본인 입력 포함 정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왜 자유의지를 주셨을까요?

하나님은 사랑을 나눌 대상을 원하십니다. 사람에게 사랑을 나누어주고, 하나님도 사람의 경배와 찬양과 사랑을 받고 싶어하십니다. 만일 사람이 자유의지 없이 로보트처럼 명령하고 프로그램되어진 대로만 움직인다면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부모님의 일을 도울 때, 부모님께 혼날까봐 무서워 도와 드리는 것보다, 어머니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기 때문에 청소하고 집안일을  도와 드리는 자녀가 훨씬 사랑스럽겠지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강요나 두려움에서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마음 중심으로 부터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자유의지가 있으니까 죄를 선택할 수 있고, 선을 선택할 수 도 있습니다.

그 결과는 전적으로 사람의 책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선의 길을 갈 수 있게 인도하시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인생의 시간동안 무한한 기회를 주시고 계십니다.

 

또 한가지 선악과의 문제입니다.

선악과를 허락하신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아담은 하나님께로 부터  좋은 것만 받았습니다. 일하지 않아도 되었고, 땅을 지배하고 다스렸습니다.

그렇지만 아담은 죽음이 무엇인지, 슬픔이 무엇인지, 고통이 무엇인지, 병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냥 좋은 것만 보고, 받고, 누리며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마음 깊은 곳으로 부터의 감사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부자집자녀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고 합시다. 이 들에게 값싼 음식이나 선물을 주면 별로 고마운줄 모를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처한 환경이 얼마나 좋은 것인 줄 모를 것입니다. 이들이 굶주림을 경험하고, 추움과 배고픔을 경험하게 된다면, 자신들의 환경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마음에서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예비하셨습니다.

선악과를 예비하신 것은 아담을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이 불순악?후 이 땅에서 고통과 슬픔속에서 살며 후회의 날을 보내어야만 했습니다.

자기 자식들이 서로 싸우며 죽이는 모습을 보며 죄의 더러움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 삶이었는지를 이 땅에서 고통을 경험한 후 깨닫게 되지요.

 

그리고 아담의 영혼이 다시 천국으로 인도되어 지면, 비록 죄를 범하였지만

다시 용서해 주시고 한없는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대하여

마음 중심에서 감사와 사랑과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시고 선악과를 허락하신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시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와 영원한 천국에서 사랑을 나누고 싶어하십니다.

 

자유의지를 받았다고 해서 하나님과 동격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성과 신성을 가지고 계시며,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속성 중 한 부분입니다.

2008.05.08.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
1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탈퇴한 사용자 답변

자유의지를 주어 신과 같은 동격체로 만드셨다구요?

 

세상에 어느 종파에서 그런 말을 하는 지 궁금합니다.

 

동격체라니.

2008.05.08.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
6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잇끼
고수
개신교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안녕하세요

 

순서를 말하면 또 짜증 날테구요....

 

하나님은 기독교를 만드신 분이 아니십니다...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만들었다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언급하고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는 자유의지....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질문 하신듯 한데요...

 

자유의지?란 선악과를 따먹는게 자유의지가 아닙니다...

 

성경은 비유로 되어 있는데요...그 성경이란게요....

 

글로써 인생의 육체와 내면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라 하겟습니다...

 

이와가 선택한 자유의지...란? 불순종이었죠...꾐에 빠져...큰 곤경에 처하게 되는데요...

 

하나님이 인생에게 주신 자유의지라는것은..선택이 아닙니다...

 

쉽게 말하자면 순종(자유의지)을 주었습니다...

 

그 예로 예수님은 한평생 순종의 삶을 살았습니다...자유한 자로 자유의지대로 말입니다...

 

그러나 인생이 가진 스스로의 자유의지는...꾐에 빠져..형벌밖에 받을 수 없음을 알린것입니다...

 

분명한것은 하나님은 인생에게 어떠한 선택권도 주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믿고 안믿고를 적어 놓은것이 아니고 믿는자에게 주는것과 믿지 않는자에게 주는 것을 적어 놓았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하나님을 믿게 되면 아무일도 생겨나지 않습니다...형벌이라는게 있을 이유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임의대로 먹게되면 벌한다 말했습니다....

 

모든것이 어려운 비유인데요...인생은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으면 어떠한 것도 성취할 수 없음을 알린것입니다...

 

하나님안에서 모든것이 이루어지도록 해 놓은 하나님만의 방식 그것이 성경입니다...

 

아주 이기적이고 독단적인 방법이죠....조물주라면 누구나 이방법을 채택하지 않을까요?

 

자기가 만든 세상에서 자기마음대로의 법칙을 정하고 자기마음대로 주관하며 사는방식 말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상식의 하나님이 아닌 자기 스스로 있는 자라하여 이름도 여호와(야훼)하였습니다..

 

이런데 무슨 자유의지입니까? 애초에 없던 자유의지를 추론해낸 인생들이 불쌍한것이에요...

 

질문자형제님께 형제님이 성경에서 하나님의 입장이라면...어떻게 하실것인가요?

 

당신이 만든것이 당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이런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생겨나면 어떻게 될까요?

 

자유의지가 없는 인생이 죽기까지 번민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몰라서 그런겁니다...

 

죽어서 천국가는게 진실이라면....누가 그짓을 안하겠습니까...모르니깐 알수 없으니깐...의심나니깐..그런거죠..

 

그리고 더욱 중요한것은 현실과 거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하나님이 있는데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면 제대로 대답할자가 있을까요?

 

잘해야...하늘나라...네마음...이런식의 대답들 뿐이지...

 

당신에게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게 첫번째 믿을 수 없는 것이죠....이것을 불순종이라 한다면...

 

불순종이 아닌 사람이 이 땅위에 한명이라도 있을까요?

 

하략....

 

질문자 형제님께...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세상의 법을 따르고 지키면 됩니다....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고 세상이 정한 법을 하나도 어기지 않고 온전히 지켰다면...

 

형제님에게는 성경에서의 약속이 이루어 집니다...힘들어 할 이유가 없죠...

 

그러나 그것을 언제까지...지켜낼 수 있을 자신이 없다면요...

 

성경에서 그 예로...예수쟁이를 마구 죽엿던 사울을 주님은 구원하셧습니다...

 

그는 그가 속한중에서 가장 으뜸으로 그 법을 지키고 행하던 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이 방법외에...신이 있다면...조물주가 있다면...

 

또 다른 방법이 있어야 겟죠....그것이 기독교 집단에서 말하는 자유의지입니다...

 

형제님이 질문하신 자유의지입니다... 아주 말이 안되서 납득이 안되는 말을 하는 저 집단들 말입니다...

 

내생각과는 전혀 상관없는....예수만 믿어야 됩니다...

 

예수 안 믿으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둘 중에 쉬운 방법을 선택하는것은 완전한 자유의지이겟죠...

 

제가 보기에 쉬운 방법이라는게 순종한 삶을 살아간 사람이 나 대신 해주는게 더 쉽지 않을까요...

 

형제님이 정말 현명한 사람이라면....잘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아무렇게나...마음대로...해서...도에 이를자가 몇이나 있을까요...

 

스님 승철은 이런말을 했습니다...

 

내가 한평생 수행을 하면서 얻은거라고는 나무가 나무인것과 물이 물이라는 진리외에는...

 

발견한게 없음을 토로하셨다는 사실에서...

 

인생은 어떻한것도 새로운것을 발견하고 만들어 낼 수 없음을 피력했습니다....

 

이땅위에 모든것의 재료가 흙일진데..그 흙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말하고 있는것이 성경입니다...

 

사람이 흙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거짓말 쟁이일것요...

 

모든 육축과 짐승들이 흙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중에 흙이 없어 될수 있는게 과연 하나라도 있을까요?

 

세상에 진리는 사람은 죽는다는 사실과 그 죽은 사람을 절대 이 땅위에 돌아올수 없는것을 압니다...

 

그런것을 잘 아는 인생들이 하는행동중에 죽은자를 기념하고 추모하는 아주 아이러니한 행동을 합니다...

 

많이가진자나 적게 가진자나 많이 배운자나 일자 무식쟁이라도 말입니다...

 

더러..안하는 사람도 있긴 있겟지만 말입니다...

 

그런 사람이 죽어서 끝이인가 아닌가를 생각해보세요...죽어서 끝날 것이면 무엇이 두렵고 무서울까요?

 

죽으면 끝인데요...배고픔과 병듦과 아픔과 걱정과 염려를 왜 할까요?

 

그러나 인생에게는 죽어서도 아파서 병들어서도 안된다는 것을 스스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죽지 않는다면...배고픔과 병듦과 아픔과 걱정과 염려를 하게 될까요?

 

이렇듯 어렵습니다... 사람은 어떤것도 새로운것을 만들거나 발견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사람이 흙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진리는 없겠죠...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살고 잇는 저희들 세상에서...

 

성경은 소돔같고 고모라 같다 라는 비유를 하셨는데요...

 

정말 이땅위에 거짓의 우두머리가 대장을 하는 세상이 왔습니다...

 

서민과 노동자의 고혈을 짜는 자들이 자기배을 두드리며 호의호식하는 세상에서...

 

진정한 구원자를 만날 수 있을지가.....가장 문제인것 같군요....

 

질문자 형제님과...이 글을 읽는 모든자들에게 제가 하고픈 것은...

 

하루빨리 구원자 메시야..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아닐까요? 만약 신이 있다면 말입니다....

 

오래오래 아프지 말고 건강하시고...행복하세요....이것은 제가 빌어 드릴수 있을것 같군요....^^

 

 

2008.05.08.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