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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조선의 경종만 동생인 연잉군을 왕세자가 아닌 왕세제로 삼은 이유는?
비공개 조회수 1,649 작성일2016.08.09

조선의 정종과 순종은 자신의 동생을 모두 왕세제가 아닌 왕세자 혹은 황태자로 삼았는데 말입니다.


무슨 차이가 있어서 이런 현상이 발생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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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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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답변드리겠습니다.

 원론적으로는 왕세제가 정상적인 왕통 승계입니다.

실상 숙종 7년 이전까지는 태조 - 태종 - 세종 으로 왕위가 이어진 것으로 '정종'

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조선의 2대 왕인 ‘정종(定宗·재위 1398~1400년)’은  1417년(세종 원년) 승하한 후 무려 264

년 동안  명나라가 내린 사시(賜諡), 즉 공정왕(恭靖王)이라는 이름만 갖고 ,묘호(죽은 뒤에

 나라가 내리는 이름)을 받지 못했다가 1681년(숙종 7년)이 돼서야 겨우 ‘정종’의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당시 정안대군동생을 후사로 옹립하는 것이니, 왕세제가 옳은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는

데, 실제로 1400년 2월4일, 정종이 정안군을 ‘왕세자’로 삼자 일부 대신들이 이의를 제기했습

니다.

“예부터 제왕이 친형제를 세울 때는 모두 황태제로 봉했고, 세자를 삼은 일은 없었습니다.

 청컨대 왕세제로 삼으소서.”<태종실록>


그러나 정종은 “지금 이 순간 과인은 이 아우를 아들로 삼겠다”고 선언하고 ‘왕세자’로 책립했다,

 정종으로서는 동생을 세제가 아닌 세자로 삼아, 즉 양자로 삼아 대를 잇게 한 것입니다. 당연히 정안대군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입니다.안대군으로서는 두 차례의 골육상쟁에 이어 형의 왕위까지 찬탈했다는 혐의를 받을 수는 없었기때문에  따라서 정안대군은 태조로부터 직접 왕통을 승계한 것으로 종통을 꾸몄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경종에서 연잉군의 왕세제 왕통 승계는 정상적이란 말이 됩니다.


2016.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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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신

일단 경종은 아들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병약했죠 야사에 장희빈이 아들인 경종의 중요부위에 심각한 위해를

가했다고 할정도였는데 설마 그랬을까요

물론 아직 나이가 젊었지만 연잉군(후에 영조)을 밀었던 노론들이 주장해

후사를 이복동생인 연잉군을 왕세제로 삼게 되는 거죠


경종의 왕권을 장악하는데 문제가 발생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아버지인 숙종은 상당히 강했고 정치적 능력도 뛰어났지만

경종은 그러지 못한 듯 합니다

결국 신권이 왕권을 이겼고 신권이 밀었던 연잉군이 왕세제가 된거죠

2016.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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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
태종은 왕세제 출신입니다. 왕세자가 된 것은 정종과 중전 사이에 아들이 없어서 왕위를 이방원에게 물려줘야 했는데(서자가 있긴 했지만 정종의 왕권이...ㅠㅠ)그렇기에 이방원을 양자로 삼고 왕세자로 책봉해 자리를 물려줍니다.

순종의 경우엔 개혁 이후 당시 대군이나 왕세제 등 전통 왕실 용어가 모두 사라진 상태였기에 동생임에도 황태자로 지목한 것으로 압니다.

결국 연잉군이 왕세제가 된 것은 그렇게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2016.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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