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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숙의 최씨가 아들 연잉군이 왕위에 오르는 것을 보고 죽었나요?
swan**** 조회수 37,610 작성일2003.08.15
숙의 최씨는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궁금..

최무수리의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었죠?

천민이었을 거라는 추측은 가지만...

최무수리는 정말 착하고 순박하기만 한 여성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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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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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빈 최씨는 1670년 11월 최효원의 딸로 태어납니다.

그녀의 아버지에 관한 자세한 기록은 나와있지 않으며, 단지 그녀의 아버지가 중인에서 천민으로 몰락한 집안이라는 것 밖에는 나와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지금의 KBS에는 내용이 잘못되어 있는데, 숙빈은 어린시절에 부모님을 모두 여의고 홀로 고아로 자랍니다.

그리고 5살때인 1675년에 영광군수로 발령받은 인현왕후의 아버지인 민유중이 대각교를 건너다 5살의 어린 숙빈 최씨를 발견하여 데리고 갑니다.

그녀는 인현왕후와 같이 살게 되었으며, 7살이 되던해인 1677년에 민유중이 내직으로 승진되어 한양으로 올라가자 그녀도 민유중을 따라 한양에 입궁하게 되었고, 잠시 민유중의 사가에 머물다가 7살의 나이로 궁에 입궁하게 됩니다.

그리고 4년뒤인 1681년에 민유중의 딸인 민씨가 제1계비인 숙종의 두번째 왕비로 책봉이 되자, 민왕비의 교전비로 수행하여 민왕비의 곁에 머물게 됩니다.

그러나 8년뒤인 1689년에 "기사환국"사건으로 인하여 민왕비가 폐서인으로 강등되어 궁에서 쫓겨나가자
민왕비를 모셨던 숙빈 최씨 역시 궁궐 안쪽으로 물러나 내명부와 외명부의 세숫물과 식수를 길러나르는 무수리로서 지내게 됩니다.

4년뒤인 1693년 1월, 숙빈 최씨는 인현왕후의 무명을 위한 기도를 올리다 이 곳을 지나던 숙종의 눈에 띄어 성은을 입게 됩니다.

3개월 뒤인 1693년 4월에 숙종은 궁인 최씨에게 종4품인 "숙원"의 첩지를 내려 궁인 최씨는 숙원 최씨가 됩니다.

그리고 6개월 뒤인 1693년 10월, 숙원 최씨는 첫 왕자인 "영수(永壽)"를 출산합니다.
그렇지만, 첫째왕자는 2개월뒤인 1693년 12월에 숨을 거둡니다.

다음 해인 1694년 4월, 갑술옥사로 서인들이 다시 기사회생하여 민왕비도 다시 왕비로 복위가 되고,
2개월 뒤인, 1694년 6월에 숙종은 숙원 최씨에게 "숙의"의 첩지를 내려 숙원 최씨는 숙의 최씨가 됩니다.
3개월 뒤인 1694년 9월, 숙의 최씨가 다시 둘째 왕자 "금(연잉군)"을 낳으니, 이 분이 훗날의 "영조대왕"입니다.


그리고 4년뒤인 1698년 11월에는 숙의에서 귀인으로 다시 한 계단 오르게 되고,
다음해인 1699년 10월, 숙종은 귀인 최씨에게 정1품인 빈의 첩지를 내려 "숙빈 최씨"가 됩니다.

1701년 8월에는 민왕비가 승하하시어 인현왕후로 추촌됩니다.
1701년 10월에는 희빈 장씨가 숙종의 명으로 자진(스스로 죽음)합니다.
1701년 11월에는 동평군 이항이 처형됩니다.("무고의 옥" 사건)

1702년 10월 김주신의 딸이 숙종의 제2계비로 책봉됩니다.(훗날 인원왕후 김씨)
그리고 숙종은 1702년 10월에 모든 후궁의 첩지를 올리는데,
귀인 김씨를 정1품인 "영빈"으로 내리고, 귀인 박씨를 "명빈", 숙의 유씨를 "소의"에 봉합니다.

1718년 2월에는 경종의 비인 세자인 심씨가 병으로 흉서합니다.
1718년 3월에는 숙빈 최씨가 49세의 나이로 숨을 거둡니다.

그후 6년뒤인 1724년 8월, 숙빈 최씨의 아들인 연잉군이 보위가 오르니 이분이 영조대왕입니다.

따라서 숙빈 최씨는 같이 살고 자신이 모셨던 왕비를 위해 기도를 드려서 숙종의 후궁이 되는 행운을 얻은 여인이므로, 인현왕후를 위해 기도를 드린 이유는 따로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2003.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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