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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숙빈최씨에 관한 조선왕조실록
cd02**** 조회수 19,525 작성일2010.08.07

안녕하세요~

제가 동이를 보고 책에 동이(숙빈최씨)에 관해서 쫌 나올까 싶어서 조선왕조실록을 읽었습니다.

책에는 동이(숙빈최씨)에 관해서는 안나오고 숙종의 가계도에는 나오더라고요.

그러다가 제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동이가 책에서는 영조를 비롯해서 1남2녀를 낳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드라마에서 동이가 낳은 영수가 딸로 기록이 되어있더라고요.

근데 드라마에서는 영수가 아들로 나오니까 2남1녀 잖아요.

다른책에서는 영수가 아들로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숙빈최씨에 알고 계신 분은 답변을 해 주세요.

너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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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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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in.naver.com/open100/detail.nhn?d1id=11&dirId=111001&docId=1332650

숙종의 여인들 전편

http://kin.naver.com/open100/detail.nhn?d1id=11&dirId=111001&docId=1332654

숙종의 여인들 후편

 

오픈사전에 등록한 숙종과 후궁들이란 테마의 글입니다.

 

그 중 숙빈의 출산에 관한 글만 추렸습니다. 

 

 

 

(상략)

 

최씨는 1693년(숙종19년) 4월 26일 24세의 나이로 처음 내명부 종 4품 숙원을 받았다.

최씨가 가장 먼저 후궁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잉태를 했기 때문이었다.


최씨가 아직 숙원에 책봉되는 계기가 되었던 일화가 하나 있다.

첩지를 내리지 않았으나 이미 왕의 승은을 입은 다음이었으니 승은상궁의 신분이었을 것이다.


하루는 숙종이 낮잠(임금의 낮잠은 오수라 한다)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

용이 땅속에서 나오지 못해 애를 쓰다가 머리를 겨우 빼고는 숙종에게 울면서 살려 달라 애원하는 것이었다.

잠에선 깬 숙종은 누군가의 태중에 있는 자신의 아이가 위급한 상황에 처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곧 바로 장옥정의 처소로 달려갔다.

승은을 입은 지 얼마 안 된 최씨가 아닌 자신의 아이를 둘이나 출산한 장옥정이 또 임신을 한줄 알았던 것이다.

왕비였던 장옥정의 처소에 도착한 숙종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장옥정과 궁녀들이 처소 뒷마당에 모여 안절부절 못하고 있음을 본 것이다.

캐물어도 묵묵부답인 장옥정을 의심한 숙종은 담장 아래 엎어져 있는 큰 장독을 보고 수상히 여겨 치우라 명하였고, 고문당하는 와중에 왕의 행차를 알고 부랴부랴 장독 안에 가둬 숨겨진 최씨를 구하게 된다.

장옥정은 최씨가 왕의 승은을 입어 회임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위기감을 느껴 잡아다 죽이려고 하였고, 마침 최씨의 태중에 있던 용종이 숙종의 꿈에 나타나 자신과 모친을 구했다는 이 일화 속 왕자는 최씨의 첫째 아들인 영수였다.


영수왕자는 1693년 10월 6일 태어났으나 겨우 두 달 만에 죽고 말았다.

그 첫 왕자는 일찍 죽었지만, 어머니인 최씨에게 든든한 첩지를 안겨 주었고, 후손이 빈(貧)한 왕실을 걱정하는 숙종에게 빠른 생산력을 보인 궁인 최씨를 인식 시켰다.


(중략)

 

영수왕자가 두 달 만에 사망하여 상심한 와중에도 금세 임신하여 1694년 9월 13일 훗날 영조가 되는 연잉군 이금을 출산 하였다.

숙종은 몸을 푼 지 얼마 안 되어 임신을 한 최씨의 왕성한 생산력을 치하하며 출산 전인 6월 2일 종 2품 숙의를 내렸다.


(중략)

 

3년 후인 1698년(숙종24년) 7월 7일, 세 번째 출산에서 세 번째 왕자를 낳았으나 왕자는 3일 만에 사망했다.

최씨를 향한 숙종의 사랑은 여전히 각별했으나 이 해(1698) 새로 첩지를 받은 후궁이 있었다.

 

(후략)

 

위의 글을 실록과 선원계보에 오른 기록입니다.

 

최숙빈은 총 3남을 낳았고 그중 차남인 영조만이 살아남아 천수를 누렸습니다.

 

최숙빈은 딸을 낳은적이 없으며 유일하게 숙종의 딸을 낳은 사람은 첫번째 왕비인 인경왕후 김씨입니다.

 

인경왕후는 딸만 둘을 낳았으나 둘 다 일찍 죽었죠.

 

 

그럼 도움 되시길 바랍니다.

2010.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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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j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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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빈최씨(淑嬪崔氏)에 대하여
1670년(현종 11)∼1718년(숙종 44).

조선 숙종(肅宗)의 후궁으로 영조(英祖)의 어머니이다.

증조부(曾祖父)는 최말정(崔末貞)이고 조부는 최태일(崔泰逸),아버지는 최효원(崔孝元)이며 어머니는 홍계남(洪季男)의 딸이다.

7세에 궁에 들어와 궁녀가 되었으나 주로 궁중에서 청소, 설거지 등의 허드렛일을 하는 여자종인 무수리였다. 인현왕후가 폐출되고 장희빈이 왕비가 되자 최씨인현왕후를 위해 기도를 드리는 중에 숙종의 은총을 받아 1693년 아들 영수군(永壽君)을 낳았다. 그러나 영수군은 두 달만에 세상을 떠났고, 1694년 인현왕후가 복위된 후에 그 해 9월 13일 연잉군(延礽君) 이금(李昑)을 낳았으니 후에 영조(英祖)이다. 이어 아들 하나를 더 낳았으나 일찍 죽었다.

최씨숙종 19년 4월에 숙원(淑媛)이 되었으며 숙종 20년에 숙의(淑儀)가 되고, 숙종 21년에 귀인이 되었다. 숙종 25년에는 단종의 복위를 축하하면서 정1품 숙빈(淑嬪)으로 봉해졌다.

양주(楊州) 고령동(高嶺洞) 옹장리(瓮場里)에 묻힌다. 1725년 영조가 즉위한 후에 휘덕(徽德)이라는 호를 올린다. 존호는 휘덕안순수복(徽德安純綏福)이다.

능원은 소령원(昭寧園)이고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 267에 있다.
 
사전찾아보니까 영수가 왕자네요.ㅇㅇ 책이 잘못된듯...
 
그리고 2남 1녀가 아니고 3남인듯 싶어요 백과사전만 보자면 ;;

2010.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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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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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네이버에서 많이 찾아봤더니

 

아들이3명이라고나와있고  딸은 안나와 있는데요

^^

201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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