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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숙빈최씨 진짜 천민출신인가요?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5,601 작성일2011.02.28
숙빈이 천민출신이라들었는데 일명 무수리라고하더군요 그런데 어떻게 후궁이되는지 궁금하네요 ㅋ 실제로그당시에 천민이라도 후궁까지 오를수있나요? 그렇게 숙빈이 대단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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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 바에 따르면 숙빈 최씨는 무수리 출신으로 부모가 없던 고아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천한 후궁도 임금의 승은을 입어 왕손을 잉태하게 되면 후궁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숙원에 봉해졌다가 연잉군 금(영조)를 낳고 "빈"첩지를 받아 숙빈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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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해주(海州). 후일 영의정으로 추증된 최효원의 딸로, 무수리로 입궐하여 폐비(인현왕후)의 만수무강 축원을 하다가 숙종의 눈에 들어 승은을 입고 내명부종4품 숙원의 후궁 첩지를 받았습니다. 이후 숙의, 귀인 등을 거쳐 마침내 그 품계가 정1품 빈에까지 이르렀구요, 그 출신 성분이 미천한 무수리라 본인은 물론 아들인 영조에게까지 매우 큰 콤플렉스가 되었다고 합니다. 다른 역사 서적에서는 그녀가 숙종의 정비(초비) 인경왕후의 교접비로 궐로 들었다가 우연히 만났다는 설도 있습니다. 숙종의 제1계비(계비) 인현왕후민씨와는 친분이 두터웠으며 희빈 장씨가 중전일 때는 그녀에게 모진 박해를 받다가 인현왕후가 갑술환국으로 복위되자 평상을 되찾았습니다. 하지만 인현왕후가 죽은 뒤에도 숙빈 최씨는 왕후가 될 수 없었는데요, 숙종이 장희빈에 대한 미움때문에 궁녀에서 왕비로 오르지 못하게 하는 법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1694년, 왕자 금을 낳으니 이가 바로 후일의 영조입니다. 1718년병으로 49세로 죽었습니다. 연잉군(영조)는 이후 숙종의 또 다른 후궁인 영빈 김씨(인현왕후와 더불어 희빈장씨를 투기했다는 명목으로 쫓겨났다가 민비가 복위될때 함께 복위)가 양육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선원록(선원계보기략)에 의하면 영조의 위에 "영수"라는 이름의 아들과 이름을 짓기도 전에 죽은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녀의 아들 연잉군은 왕세제를 거쳐 마침내 왕으로 등극하니, 바로 조선의 제 21대 왕 영조이죠. 그는 즉위 원년에 어머니 최씨의 사당을 지어 숙빈묘라 하였고 이것이 후일 육상묘를 거쳐 현재의 육상궁이 되었습니다. 숙빈의 묘소 또한 소령원으로 승격되었으며영조가 그녀를 기리는 제사를 지내니 그 정성이 지극하여 백관이 모두 흐느꼈다고 합니다. 영조가 그녀에게 화경의 시호를 올려 화경숙빈으로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후일 여러차례에 걸쳐 휘덕안순수복의 존호가 올려졌습니다.

=

여담)고종이 후궁 두사람에게 한 말에 따르면 영조가 왕자시절 어머니 숙빈에게 침방나인으로 있을때 뭐가 가장 힘들었느냐고 하자 숙빈이 다 힘들지만 세누비가 가장 힘들었다고 한 뒤로 영조가 이후 누비옷을 입지 않았다고 들었다고 하는데 침방나인일 가능성도 조금은 있는 거 같습니다. 후세 사람들이 고의적으로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를 "무수리"로 까내렸을 가능성도 배재할 순 없습니다.(어떤 책에서 봄)

2011.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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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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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in.naver.com/open100/detail.nhn?d1id=11&dirId=111001&docId=1332650 전편

http://kin.naver.com/open100/detail.nhn?d1id=11&dirId=111001&docId=1332654 후편

 

--전략--

 

숙빈 최씨에 대한 기록은 다른 후궁들 보다는 많은 편이다.

그녀가 왕의 어머니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기록들은 대부분 풍문이나 설화의 성격이 강했다.

예를 들어 최씨와 인현왕후와의 관계 등이 그렇다.


기록들은 일관되게 최씨의 출신이 미천하다고 기록 하고 있는데 미천한 최씨가 어린 시절부터 인현왕후와 인연이 되어 그 집에서 길러졌고, 인현왕후가 중전이 되어 입궐하게 되자 왕후를 따라 궁에 들어왔다는 설도 있는데 실록에는 최씨가 숙종 2년(1676) 7세에 궁녀로 선발되어 입궁 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므로 전자는 설화에 가깝다.


최씨의 출신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많다.

최씨는 무수리로 알려져 있었다.

무수리는 궁에서 일하는 노비를 말하는데 주로 물을 길어 나르는 것을 주업으로 해 수사라고도 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최씨가 7세에 선발되어 입궁했다는 실록의 기록을 들어 본래 궁녀출신이라고 하기도 한다.


특히 최씨와 아들 영조와의 일화를 들어 침방나인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 일화란, 어느 날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던 영조가 문득 어머니에게 묻기를

“침방에서 일하실 때 무슨 일이 제일하시기 어렵더니까?”

하니, 최씨가

“중누비, 오목누비, 납작누비 다 어렵지만 세누비가 가장 하기 힘들었더니다.”

라고 말하였다는 이야기이다. 모친의 말을 들은 영조는 이후 누비옷을 입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김용숙 교수의 조선조 궁중풍속 연구라는 책에 수록된 이야기로 김용숙 교수는 이를 고종황제가 후궁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숙종 당대 인물이었던 이문정의 저서인 수문록(숙종, 경종, 영조 시대 당쟁사를 기록한 책)에는 최씨가 중궁전 지밀나인 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숙종이 어느 깊은 밤 궁궐 안을 거닐다 나인들 처소를 지나게 되었는데 유독 한 나인의 방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어 호기심에 몰래 들여다보았더니 나인 하나가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상 앞에 꿇어 앉아 있더란다.

숙종이 이상히 여겨 “너 지금 뭐하고 있느냐?” 물으니 궁녀가 대꾸하길

“소녀는 중전의 시녀로서 특별한 총애를 받았습니다.” 라며, 폐비된 인현왕후의 탄신일이 내일이라 생신상을 차려놓고 하례 올리고 있었다는 대답이었다.

숙종이 그 충정을 가상히 여겨 최씨를 총애하기 시작했다는 기록이었다.

수문록은 이때를 1692년(숙종18년)이라 기록하였고, 인현왕후의 탄신일 하루 전날이니 음력 4월 22일이었다.


이렇게 왕과의 첫 만남을 이룬 최씨는 곧바로 다음해 숙원이 되어 영수왕자를 출산 하였고, 영수왕자가 두 달 만에 사망하여 상심한 와중에도 금세 임신하여 1694년 9월 13일 훗날 영조가 되는 연잉군 이금을 출산 하였다.

숙종은 몸을 푼 지 얼마 안 되어 임신을 한 최씨의 왕성한 생산력을 치하하며 출산 전인 6월 2일 종 2품 숙의를 내렸다.


물론 최씨의 승급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1694년 6월 1일 폐비된 인현왕후가 복위된 것이다.

인현왕후가 복위된 바로 다음날 숙의 책봉을 받았다는 것은 최씨가 인현왕후의 복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반증이었다.

최씨를 향한 왕의 총애는 날로 깊어졌고, 충심을 다한 인현왕후의 복위로 인해 든든한 뒷배까지 생긴 최씨는 그야말로 조선판 신데렐라의 전형이었다.

 

--후략--


숙빈 최씨의 출신은 대체적으로 무수리 즉 노비 출신의 천민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왕의 어머니이기까지한 그녀의 출신이 일관되게 천민으로 알려진 것은 그녀의 출신이 천민 이상은 아니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훗날 인현왕후 민씨의 총애를 입으면서 면천되어 무수리에서 궁녀로 승급한 것은 아닐까 추측하지만, 추측일 뿐입니다.

 

숙빈최씨의 출신을 짐작케 하는 다른 일화도 있습니다.

 

영조가 왕자시절 11세의 나이에 13세의 달성군부인 서씨를 맞아 길례를 올렸는데

 

첫날밤에 영조가 부인의 손을 보고 참 곱다고 하자 부인이 부끄러워 하며 고생을 하지 않아 그렇다고 대답했다 합니다.

 

이 대답에 영조는 거친 어머니의 손을 기억해 내고는 마음이 언짢아져 부인을 소박 맞히고 신방을 나왔다고 하는 일화 입니다.

 

영조가 왕위에 등극한 이후에도 정성왕후가 된 서씨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던 모양입니다.

 

둘 사이는 매우 소원했고 후사도 없었습니다.

 

영조가 총애한 후궁들 역시 모두 궁인 출신으로 사도세자를 낳은 영빈 이씨나 옹주 둘을 생산한 숙의 문씨 모두 궁인 출신 중에서도 하급 궁인에 속했던 여인들 이었습니다.

 

영조의 여인 취향도 어머니의 출신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추측해 봅니다.

 

 

질문에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2011.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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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j8****
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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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빈최씨는 궁궐에서 허드렛일을 하거나 물을 긷는 무수리 였습니다. 인현왕후 처소의 무수리 였는데 인현왕후가 폐위된 후로 남몰래 치성을 드리며 인현왕후의 복위와 안녕을 기원 하였다고 합니다......

숙종은 인현왕후를 폐위 시키고 몇년 후부터 폐위 시킨걸 후회 하였는데... 그러던 중 무수리 최씨가 치성을 드리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윗전을 생각하는 그 마음씨와 또 인현왕후에게 미안한 마음과 후회의 마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무수리 최씨는 승은을 입고 총애를 받게 되었고 조선 제21대 왕 영조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궁녀출신 승은후궁들은 많이 있었지만 숙빈최씨는 궁녀가 아니라 천민 무수리 출신 이었기 때문에 진정한 조선의 신데렐라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021.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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