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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기 이름
비공개 조회수 6,942 작성일2007.07.02

우리나라의 최초 비행기의 이름과 셰계의 몇 번째로 만들어 졌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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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잎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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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spartacus2님의 오픈백과

 

비행기를 처음 만든 사람은 미국의 [라이트(Wright)형제]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1903년 12월 17일 [키티호크]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동력비행기를 운전해서 비행기의 실제 운행에 성공했고, 곧 비행시간을 30분 이상으로 늘릴 수 있게 되었다. 이들 형제가 ‘비행기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 역사를 보면 그 보다 훨씬 전에 이미 우리 선조들이 세계 최초로 비행기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경우로는 지금부터 140년전 쯤 [대원군] 시대에 만들었다는 비행기 이야기가 있다. 예를 들면 1961년에 7권 짜리로 출판되어 지금도 학자들이 널리 인용하고 있는 [진단학회](震檀學會)의 ‘한국사’(韓國史)(을유문화사 발행) 최근세편에는 1867년 쯤에 만든 [비선(飛船)]을 비행기의 원조라고 소개하고 있다. 비선이 비록 비행기로 발전하지는 못했지만,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보다 대원군의 비선이 36~37년이나 앞섰던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여기 소개한 비선이란 정확하게 말하자면 [학우조비선(鶴羽造飛船)]이다. 이 책에도 설명한 것처럼 학과 두루미 날개를 수집해 배에 아교로 붙여 놓은 것으로, 포탄을 맞더라도 주춤하고 뒤로 물러가기만 할 뿐 물 속에 가라앉지는 않는다. 이 사실은 1890년 전후해 나온 책으로 보이는 [박제경](朴齋炯=또는 絅)의 ‘[근세조선정감]’(近世朝鮮政鑑)에 나오는 이야기를 근거로 하고 있다. 하지만 원래의 이 책에 쓰여진 내용으로는 이 비선을 만들기는 했지만, 한 번 물에 넣으면 아교가 녹으면서 학과 두루미 털이 모두 떨어져 버리는 바람에 비선은 쓸모가 없었다고도 적혀 있다. 하지만 그후의 우리 선조들이 자꾸만 ‘비선’이라는 용어에 집착하다 보니 정말로 비행기라도 만들어 실험했던 것처럼 과장되어 온 셈이다. “비선”이란 당장 누구에게나 [비행선](飛行船)을 연상시키기 딱 좋기 때문에 그랬을 것같다.

일제 시대 우리 역사 연구에 탁월한 공을 세운 [이능화](李能和) 역시 1928년에 쓴 그의 책 ‘[조선기독교급외교사]’(朝鮮基督敎及外交史)(하, p. 123)에서 비선을 대원군 시대의 대표적인 신기한 무기라고 소개하고 있다. 물에만 넣으면 아교가 녹아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는 ‘근세조선정감’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면서도, 여전히 신기한 무기라는 점을 길게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로 비행기 같은 기록은 그보다 훨씬 앞서서도 우리 역사에 나타난다. 예를 들면 8년전인 1995년 초 ‘동아일보’에는 신기한 기사가 하나 실린 일이 있다. 1월 4일자 신문에 ‘비행기 세계 최초 발명자 조선인 [鄭平九]’ 라는 제목의 기사가 그것이다. 조선 선조 때 사람 정평구가 세계 최초로 비행기를 발명했다는 기록이 발견되었다는 북경발(北京發) 기사다. 만주 심양시(瀋陽市)에 사는 조선족 동포가 제공한 자료에 그런 기록이 있고, 또 자신이 ‘일제 시대 서울에서 공부할 당시 조선어를 가르치셨던 선생님으로부터 우리의 자랑스러운 조상인 鄭平九선생이 [임진왜란] 때 새가 나는 까닭을 연구한 끝에 [비거]를 발명해 하늘을 날아다니며 적장을 해치는 등 왜군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고 증언했다는 기사다. 그리고 이 동포가 갖고 있다는 자료는 1923년 한글학자 [권덕규](權悳奎)가 쓴 ‘[조선어문경위]’(朝鮮語文經緯) 112쪽에 나온다는 설명도 곁들여 있었다. 이 기사는 ‘연합통신’의 제공이라 밝혀져 있었으니 당연히 다른 신문에도 실렸을지 모른다.

이 비행기에 대해서도 대원군 때의 비선 못지 않은 관심이 기울여졌다. 우선 대원군의 비선을 라이트형제를 들먹이며 소개한 진단학회의 ‘한국사’ 다른 책에는 바로 이 비거에 대한 기록도 소개되고 있다. 대원군의 비선이 소개된 ‘한국사’ 최근세편이 서울대 교수와 초대 정신문화연구원장을 지낸 [이선근](李瑄根, 1905∼1983)의 집필로 되어 있던 것과 달리, ‘한국사’ 근세전기편은 한국의 첫 올림픽 위원이었고 서울대 교수였으며 사회학의 개척자였던 [이상백](李相佰, 1904∼1966)이 집필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책에서 이상백은 임진란 때에 발달했던 여러 무기들, 몇 가지 대포 종류와 화차(火車) 등을 소개한 다음 “또 [비거](飛車)가 발명되었었다는 전설도 있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추가 설명이 주(註)로 달려 있는데, 거기에 정평구의 일화가 들어 있다. 임진란 때 영남의 어느 성이 적에게 포위당해 있을 때, 그 성주와 친한 [정평구]가 비거를 만들어 타고 들어가 성주를 구해 가지고 날아 30리 밖으로 비행해 나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전설에 대해 전라도에서는 그 사람이 김제(金堤) 사람 정평구라고 전해진다는 것이다. 이 정보는 [최남선](崔南善)의 ‘[고사통]’(故事通)에서 얻은 것이라고 진단학회 ‘한국사’는 밝히고 있다. 최남선이라면 우리가 잘 아는 일제 시기의 대표적 학자이며 문필가였다. 진단학회의 ‘한국사’가 그의 책을 신용하지 않을 수 없었을 법도 하다.

그런데 이 비거의 기록은 사실 1830년대 쯤 실학자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라는 책에서 처음 발견된다. 이규경은 그 전설을 소개하고 있지만, 정평구라는 이름을 말하지는 않고 있다. 호남 순창(淳昌) 사람 신경준(申景濬)이 비거 얘기를 썼다는 말이 붙여져 있을 뿐이다. 그는 이어서 자기가 들었다는 다른 소문으로 비거에는 4명이 탈 수 있는데, 새 모양을 하고 바람을 일으키면 공중으로 올라가 날아간다는 것이다. 또한 전주 사람 김시양(金時讓)의 말로는 호서의 노성(魯城) 사람 [윤달규](尹達圭)도 비거 만드는 방법을 기록해 두고 있지만 사람들에게 보여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정평구, 윤달규 등에 대해서는 나는 아직 그 이상의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다. 이미 대원군의 비선이 비행기와는 아무 연관이 없다는 것을 말했듯이, 라이트형제 이전 3세기에 이미 정평구와 윤달규가 비행기를 만들었다는 얘기도 신용하기는 어렵다. 진짜 비행기가 우리나라에 등장한 것은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가 성공한지 10년 뒤인 1913년의 일이었다. 일본 군인의 시험 비행은 처음 ‘사람을 태운 기계가 하늘에 떴다 내리는’ 정도였지만, 1917년 5월 미국인 아트 스미스의 곡예 비행은 여의도에 모인 5만의 조선인들을 놀라 자빠질 정도로 만들었다. 그의 ‘붉은 날개’는 하늘에서 공중 돌기를 거듭하여 사람들의 혼을 빼 놓고 말았다. 감탄한 조선의 젊은이가 일본에 건너가 비행사가 되어 귀국 비행을 한 것은 그로부터 5년 뒤의 일이었다. [안창남](安昌男)이 1922년 12월 10일 여의도를 떠나 서울 상공을 일주하며 곡예를 펴자 조선인들은 흥분했다. 그리고 그것은 과학의 상징인양 당시 조선인들에게 과학기술에 대한 열광적 관심을 높여주었다. “떴다 보아라/ 안창남 비행기--/ 굽어 보아라/ [엄복동] 자전거--”라는 노래가 유행하는 시절이었다.


바로 그런
시대였기 때문에 1920년대 우리 학자들([이능화], [권덕규], [최남선])은 우리 역사 속의 비행기 기록에 주목하여 이를 과장해 글을 썼던
셈이다. 그리고 그런 과장된 비행기 역사가 오늘까지 우리를 홀려주고 있다 할 것이다.
시대적 필요에 따라 역사란 이처럼 끊임없이 과장되기도 하고 왜곡될 수도 있는 법이다. 역사 기록이라면 그대로 믿어버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나는 걱정이다.

2007.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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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비행기는 안창남선생님의 금강호입니다.

 

세계에서 몇번째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으나 1920년대에 제작되었다고 하네요,

 

2007.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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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할게요

정평구 라는 사람이 만든 비차 입니다.

라이트형제보다 400년인가? 어쨋든 그만큼 빨리 만들어 졌습니다.

 

2007.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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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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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2008.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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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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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점.. 시험이라..

2008.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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