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1987 이한열열사
비공개
조회수 20,300
작성일2018.02.23
1987년에 일어난 사건 때문에 이한열열사 말고도 돌아가신분들이 많을텐데 왜 이한열열사가 제일 조명 받고있는거예요?
답변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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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째 답변
비공개 답변
시민
시위 당시 전투경찰의 최루탄 직사로 인해 머리를 맞아 돌아가신 이한열 열사는 ‘탁 치니 억 죽었다’로 알려진 박종철 열사와 함께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한열 열사는 당시 연세대학교 학생으로써 시위의 최전선에 있었고, 이한열 열사의 죽음 이후 연세대학교 학생들의 ‘이한열을 살려내라!’ 라는 구호로 더욱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있기도 합니다. 이 문구와 플랜카드는 현재 연세대학교 학생회관에 걸려있기도 합니다.
특히, 이한열 열사는 당시 연세대학교 학생으로써 시위의 최전선에 있었고, 이한열 열사의 죽음 이후 연세대학교 학생들의 ‘이한열을 살려내라!’ 라는 구호로 더욱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있기도 합니다. 이 문구와 플랜카드는 현재 연세대학교 학생회관에 걸려있기도 합니다.
2018.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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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째 답변
그톤
초인
인터넷개인방송 16위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경찰의 최루탄을 맞고 (최루탄에) 처음으로 죽으신분이세요....
2018.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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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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