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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잡아함경 - 아라한이 "존재한다는 번뇌"로 고민해?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2,609 작성일2004.11.06


 

눈귀코혀몸뜻을 관찰하라
892. 육내처경(六內處經)

 

 

892. 육내처경은 6입처를 잘 관찰하면 수다원과를 거쳐 아라한에 이를 것이라는 내용으로 눈귀코혀몸뜻(안이비설신의)를 잘 관찰하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을 읽어나가다가 의혹이 생겼습니다.

 

 

다시 이러한 모든 법을 바른 지혜로 관찰하면, 온갖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탐욕을 여의어서 해탈하나니 이것을 아라한이라고 이름한다. 그는 모든 번뇌는 이미 다 끊어졌고, 할 일을 이미 마쳤으며, 온갖 무거운 짐을 벗어던지고, 자기 자신이 이익을 얻으며(逮得己利), 존재하는 것이라고 집착하는 모든 번뇌를 다 끊고(盡諸有結), 바른 지혜로서 마음이 잘 해탈하느니라.“
此等諸法正智觀察。不起諸漏。離欲解脫。名阿羅漢。諸漏已盡。所作已作。離諸重擔。逮得己利。盡諸有結。正智心善解脫。

 

 

 

위의 번역은 동국역경원의 번역인 데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kyoung/index_kyoung.asp?kyoungList=213

 

 

자기 자신이 이익을 얻으며(逮得己利)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하고,

 

 

두 번째는 “존재하는 것이라고 집착하는 모든 번뇌를 다 끊고”의 번역이 아무래도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盡諸有結을 그렇게 번역한 것인데 有結을 “존재하는 것이라고 집착하는 번뇌”라고 번역한 것이겠지요.

 

하지만 수다원과에 들어서면서 끊어지는 삼결(三結, 세가지 결박)중에 <내가 존재한다>고 여기는 신견(身見)이 있습니다. 사다함 아나함은 이러한 세가지 결박을 끊고 오하분결을 끊은 경지에 이르른 것이며, 마지막에 오하분결을 끊고 어리석음(痴)까지 끊은 경지가 아라한이라고 초기경전은 누누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에 비추어 본다면 盡諸有結의 有結을 “존재하는 것이라고 집착하는 번뇌”라는 수다원과에서 해결해야 할 번뇌로 해석하는 것은 이상합니다. 有자 하나만 믿고 “존재하는 것이라고 집착하는”이라고 번역하신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혹 저처럼 이상하게 여기시는 분이 계신지 궁금합니다.
저의 문제제기가 일말의 타당성이라도 있는 것 같으면 이 부분의 올바른 번역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盡諸有結의 유결을 “(아직) 남아있는 번뇌”라고 해석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아라한의 입장에서 본 번뇌의 경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892. 육내처경(六內處經)
참조: Pali: S.25. Okkanta-samy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如是我聞。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

 

 

“안의 6입처(入處)가 있다. 어떤 것이 그 여섯 가지인가? 눈[眼]이라는 내입처(內入處:안의 감관)와, 귀,코,혀,몸,뜻이라는 내입처가 그것이다.
有內六入處。云何爲六。謂眼內入處。耳.鼻.舌.身.意內入處。

 

 

여기에서 여섯 가지 법(法)에 대해서 그 인(忍:理法에 대한 확실한 認知)을 관찰하면 그것을 신행(信行,saddhanusarin)이라고 한다. 그는 초탈하여 생(生)을 여의었고 범부(凡夫)의 지위를 벗어났더라도, 아직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지는 못했나니, 그러나 결국에는 그가 목숨을 마치기 전에 반드시 이 수다원과를 얻게 되느니라.
於此六法觀察忍。名爲信行。超昇離生。離凡夫地。未得須陀洹果。乃至未命終。要得須陀洹果。

 

 

만일 이 모든 법을 더욱 늘려 향상시켜서 인(忍)을 관찰하면 그것을 법행(法行, dhammanusarin)이라고 한다. 그는 거기서 초월하여 생을 여의고 범부의 지위는 벗어났더라도, 아직 수다원과는 얻지 못했나니, 그러나 결국에는 목숨을 마치기 전에 반드시 수다원과를 얻게 되느니라.
若此諸法增上觀察忍。名爲法行。超昇離生。離凡夫地。未得須陀洹果。乃至未命終。要得須陀洹果。

 

 

만일 이 모든 법을 사실 그대로의 바른 지혜로 관찰하면, 이른바 신견(身見),계취(戒取),의(疑) 등의 세 가지 번뇌[三結]가 다 끊어지고 이미 끊어진 줄을 알리니, 이것을 수다원이라고 이름한다. 그는 결정코 나쁜 세계에는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삼보리(三菩提)에 나아가 일곱 번 천상과 인간을 왕래하면서 태어났다가 마침내는 괴로움을 완전하게 다 벗어나느니라.
若此諸法如實正智觀察。三結已盡.已知。謂身見.戒取.疑。是名須陀洹。不墮決定惡趣。定趣三菩提。七有天人往生。究竟苦邊。

 

 

다시 이러한 모든 법을 바른 지혜로 관찰하면, 온갖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탐욕을 여의어서 해탈하나니 이것을 아라한이라고 이름한다. 그는 모든 번뇌는 이미 다 끊어졌고, 할 일을 이미 마쳤으며, 온갖 무거운 짐을 벗어던지고, 자기 자신이 이익을 얻으며(逮得己利), 존재하는 것이라고 집착하는 모든 번뇌를 다 끊고(盡諸有結), 바른 지혜로서 마음이 잘 해탈하느니라.“

 

此等諸法正智觀察。不起諸漏。離欲解脫。名阿羅漢。諸漏已盡。所作已作。離諸重擔。逮得己利。盡諸有結。正智心善解脫。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안의 6입처에 대해서 설한 경에서와 같이, 바깥의 6입처,6식신(識身),6촉신(觸身),6수신(受身),6상신(想身),6사신(思身),6애신(愛身),6계신(界身),5음(陰)에 대해서도 똑같이 설하셨다.
如內六入處。如是外六入處.六識身.六觸身.六受身.六想身.六思身.六愛身.六界身.五陰亦如上說。

 

<이 경의 마지막>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법에 귀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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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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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11위, 한문 91위, 한문 해석, 문법 72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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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공부하시는 군요
제가 보기에는 逮得己利는 소승사과에서 自利의 완성이 무학위(아라한)에 이르는
것이니까 "自利(己利와 같은 말)를 얻는데 이르고" 를 "자신이 이익을 얻으며"라 새긴것인데 이부분은 의역을 하자면 아라한 과를 증득했다는 뜻입니다

또 盡諸有結에서의 諸有의 結은 法執즉 (身이 아닌)대상의 존재에 대한 집착까지 없어져서 法空의 상태가 되었다는 의미로 여겨집니다

2004.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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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as****
시민
불교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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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말은 거짓말이니 믿지 마십시오.
수다원에 들어서면 절대광명의 깨달음을 얻어 상대적인곳에서 벗어납니다. 그러나 아직 그 자리를 확연히 알고서 몸과 깨달음을 구별을 할줄 모릅니다. 범부와 성인의 경계가 무너져 절대평등지에는 올랐으나 여전히 먹으면 먹는줄 알고 마시면 마시는줄 압니다. 몸과 마음이 행함이 남았으나 깨달음을 얻었으므로 그 깨달음의 밝은 지혜로 바라보면 실로 행한것이 없다라는것을 여실이 알게 됩니다.
그래서 3가지의 결박이 있지만 결국은 밝은지혜로 보면 3가지의 결박은 없다라고 합니다.
아라한을 이 3가지의 결박을 없앤자라 확연히 성인과 범부를 구별하거나 구별하지 못하거나 하는것을 뛰어넘는것이라 합니다.
아라한뿐만 아니라 깨달음에 이르러도 부처님께서 인정하시는 이득(깨달음, 자유, 평등)을 확연하게 알게 되어 상대적인 이 육신과 마음을 완전히 벗어나버린인물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아직 먹으면 먹는줄 알고 마시면 마시는줄 아는 수다원과는 차이가 있게 되는것입니다. 그러나 깨달은 밝은 지혜로서 보면 원래 먹는것이 없고 마시는 것이 없는것이랍니다. 그러므로 수다원도 없고 아라한도 없습니다.

2004.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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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연기(緣起)

연유하여(조건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 즉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하여 현상이

일어나는 방법의 원리. 연기는 이치이고 진리이기 때문에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건 안 나타나건 그것과는 관계없이 영원히 존재하는 이치이다.

부처님은 다만 이를 발견하고 터득하여 사람들을 위하여 설하셨다.

석존시대에 인도에서는 창조신이 움직여 지배한다고 하는 신의론(神意論),

과거의 선악업의 과보로써 움직인다고 하는 숙업론(宿業論), 출신과 계급에

의 행동이 결정될 수 있다고 하는 계급론(階級論), 육체를 구성하는 물직적

요소의 결합상태의 좋고 나쁨에 지배된다고 하는 결합인론(結合因論),

현상을 움직이는 지배자와 원인 등은 없고 모든 것은 우연한 기회에

생긴다고 하는 무인무연설(無因無緣說) 등이 존재하였다.



* 현상 발생의 인과관계

- 유인유과설(有因有果說): - 정인정과설(正因正果說);업보설, 연기설

- 사인사과설(邪因邪果說);신의론

- 무인유과설(無因有果說)

- 유인무과설(有因無果說)

- 무인무과설(無因無果說):무인무연론



* 업보심과 연기설의 비교

- 업보심 : 좁은 의미이며 사성제와 연기설에 유인하기 위해 예비적인

입문으로 업보설을 설했다.

선인 선과 악인 악과의 인과관계를 설하는 것이며 시간적으로

선후의 인과관계만을 고찰.

- 연기설 : 넓은 의미이며 시간적인 인과관계뿐만 아니라 주위의 사상(事象)

과의 동시적인 횡적인 관계.

이론상으로 보면 앞에서 뒤로 뿐만 아니라 뒤의 것이 앞의 것과

관계, 또 전후 좌우로 갖가지 관계를 지닌다.



* 연기

가. 일반적 연기(外緣起)

- 우주와 인생의 현상이 모두 연기적으로 관계되고 있다고 하는 연기

일반의 입장을 가리키는 것.

- 마음 밖에 있는 세상의 사물이나 현상에 있어서의 연기

- 원시 경전에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도 있고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도

없다. 이것이 생하기 때문에 저것도 생하고, 이것이 멸하기 때문에

저것도 멸한다] 는 말이 있다.

나. 가치적 연기(內緣起)

- 선악과 같이 윤리적 또는 종교적인 가치에 있어서의 연기

- 마음의 움직임으로 가치에 관계되는 것이다.

- 불교에서 연기가 설해지는 목적은 가치적연기를 밝히기 위해서이다.



* 연기설에 대한 해석

가. 찰나 연기(刹那 緣起)

:십이항목이 한 찰라 동안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 연속 연기(連續 緣起)

: 십이항목이 일상생활에서 연속으로 계속해 일어나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기에 심리현상의 설명으로 본다.

다. 분위 연기(分位 緣起)

: 십이항목을 과거 현재 미래라는 분위로 구별하여 삼세에 걸친 인과의

연쇄를 설하는 것이며 전통적인 불교에서는 대승과 소승이 모두

이 입장에 입각하고 있다.

라. 원속 연기(遠續 緣起)

: 십이항목이 관계를 삼세에 한정하지 않고 더욱 먼 과거로부터 아득한

미래의 몇세에 걸쳐 있다고 보는 것.



* 12 항목.



가. 무명(無明)

: 밝은 지혜가 없는 것을 말하며 세상의 학문 등의 지식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인생의 이상을 달성하기 위한 바른 세계관이나 인생관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선, 악을 모르고 선악의 과보를 모르며 삼세 인과를 인정하지 않고

불, 법, 승의 삼보를 믿지 않으며 연기와 4제의 이치를 모르는 것이다.

나. 행(行)

: 업과 같은 의미이며 신행(身行), 어행(語行), 의행(意行) 이 있으며 습관적

여력으로써 역할이라는 뜾도 있다. 이 습관력이 그 뒤의 마음작용과

활동에 커다란 영향을 가지기 때문.

다. 식(識)

: 의미상으로 나누어 아는 것 => 인식 판단의 주체

나누어 하는일 => 인식 판단의 작용

즉 식에는 인식주체와 인식작용 두가지 의미를 가지나 연기에서는

인식주체라는 의미가 강하다

안, 이, 비, 설, 신, 의 등의 육식이 있는데 감각 지각의

인식 주체라 할 수 있다.

라. 명색(名色)

: 일체의 현상적 존재를 의미하는데 그 중에서 정신적인 것은 명이고

물질적인 것은 색이다. 육식의 대상으로서 색 성 향 미 촉 법 등의

육외처 즉 육경을 의미한다.

마. 육처(六處)

: 안 이 비 설 신 의 의 육내처 즉 육근이며 감각 지각의 기관 또는

능력을 가리킨다.

바. 촉(觸)

: 접촉하는 것이며 감각이나 지각에 의한 인식작용이 생기는 경우에

근(根)(감각, 지각 기관) 경(境)(감각 지각의 대상) 식(識)(감각

기관의 인식 주체)의 삼자가 화합 접촉하는 것이다.

사. 수(受)

: 고 와 락 등의 감수작용 또는 감수하는 고락 등의 상태

* 삼수(三受) : 락수(樂受) 고수(苦受)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

* 오수(五受) : 심수(心受) - 우(憂), 희(喜)

신수(身受) - 고(苦), 락(樂)

심신수(心身受) - 사(捨)

아. 애(愛) 혹은 갈애(渴愛)

: 목마른 사람이 물을 구하는 것처럼 심한 욕구를 의미한다.

신의 사랑이나 자비의 사랑과 같은 것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남녀간의 정욕은 갈애라든가 재산 명예 권력 등에 대한 맹목적인

욕구가 이에 해당되는 애이다.

* 욕애(慾愛) : 감각적 물질적인 욕구이며 세속적인 욕망은 여기에 속한다

* 유애(有愛) : 사후의 내세에 있어서의 행복과 쾌락이 많은 천국 등의

존재를 욕구하는 애이다. 현세가 절망적인 상태에 있으면

다음 생에라도 행복한 생활을 얻기를 원하며 고뇌없는

천국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유애를 낳게 되는 것이다.

* 무유애(無有愛) : 존재가 없는 허무를 희구하는 욕구이다.

절망적인 세계에 있어서는 다음 생의 복과 낙까지도

믿지 못하고 또한 비록 다음 생에서 천국의 즐거움을

얻는다하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것으로 결국은 또

고계(苦界)로 되돌아 가야한다. 따라서 절대적인 평안은

전혀 존재하지 않은 허무(즉 非有)의 상태가 아니면

안된다고 하여 허무를 원하는 것이다.

자. 취(取)

: 애의 뒤에 일어나는 그릇된 취착 등의 행동이라 할 수 있으며 몸과

언어로써 짓는 업이다.

* 부파 불교적인 형식적 해석

사취(四取)

- 욕취(慾取) : 탐욕에 의한 취착의 행동

- 견취(見取) : 인과 부정 등의 사견에 대한 취착 행동

- 계취(戒取) : 개나 코끼리의 흉내를 내는 것을 서약의 계율로

지키고 그렇게 함으로써 천국에 태어날 수 있는

과보를 믿으려고 하는 미신적인 행동.

- 아어취(我語取) : 실제적인 자아 등에 집착을 가지는 취착의 행위

차. 유(有)

: 유란 존재를 말하며 모든 현상적 존재를 말한다.

* 삼유(三有)

- 욕유(慾有) : 감각 등의 욕락이 뛰어난 존재

- 색유(色有) : 감각적 욕락은 없으나 아직도 물질적인 것이 남아 있는 것

- 무색유(無色有) : 물질적인 것이 없어지고 정신적인 것만이 있는 존재

* 유정(有情)의 생존상태를 사유로 설명하고 있다.

- 생유(生有) : 유정이 모태에 깃드는 최초의 결생찰나의 존재

- 본유(本有) : 결생 이후 유정의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생애의 존재

- 사유(死有) : 본유가 끝나서 죽음의 찰나에 들어가는 것

- 중유(中有) : 사후 그 유정의 내생 취(趣)가 결정되기까지의 중간적 존재

(칠칠일(七七日) 즉 사십구일이라 하며 그때까지 다음 생의 취가

결정된다, 이것이 생유이다)

카. 생(生)

: 나는 것이며 유정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생명이 생긴다는 것뿐이 아니라 인식과 경험 따위 현상의 발생도

생이라 할 수 있다.

타. 노사(老死)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다.)
(1) 사물의 진실된 모습
앞에서 우리들은 <반야경>의 핵심이 되는 공(空)이 실제에는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관해서 살펴보았다. 그 결과 우리들이 얻은 결론은 공은 다름아닌 사물의 실다운 모습 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지금까지 말한 공은 궁극적으로 우리들 인간을 규명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즉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을 규명하여 얻은 결론이 공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공이 사물의 실다운 모습 이라는 정의는 달리 표현하면 공이야말로 인간의 본래 성품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등식은 우리들의 본성이 어떤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공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이해함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렇다면 공은 어떠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가? 물론 공의 속성을 한마디로 말한다는 것은 용이하지 않다. 왜냐하면 공이란 사색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은 유(有)와 무(無)를 벗어나 있고, 따라서 유와 무의 개념에서 파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고 언설(言說)을 여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경전에서 이 부분에 관하여 전혀 언급을 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반야심경》에서는 이 모든 법은 공상(空相)이어서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다 고 설하여, 공의 모양을 세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들은 먼저 \'법(法)\'이라는 말을 만나게 되는데, 이 법이라는 개념을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법이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 다르마(dharma)를 번역한 것으로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해석하기가 곤란한 점이 있지만, 대체로 ①법칙·기준 ②도덕·종교 ③속성·성격 ④가르침 ⑤진리·최고의 실재 ⑥경험적 사물 ⑦존재의 형태 ⑧존재의 요소 등의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
이제 법의 의미를 가지고 경문의 이 모든 법은 공상이어서〔是諸法空相〕 에 대입시켜 보면, 모든 법〔諸法〕 이란 존재의 형태나 요소를 말하고, 공 이란 속성이나 성격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법은 공상〔諸法空相〕 은 실상의 진리 혹은 최고의 실재를 가리키고 있다. 즉 경에서는 공이야말로 모든 사물의 실다운 모습이라고 규정하고, 사물의 진실된 성품인 공의 모습을 세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 생기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둘째 더러운 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아니다. 세째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줄어드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본래 성품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 것 이라는 세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규명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2) 본성의 영원성(永遠性)
공의 세가지 속성 가운데 첫째는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 는 것이다. 우리들은 종종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는 말을 듣는다. 이것은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제2 수명품(壽命品)>에 있는 유명한 말인데, 생긴 존재는 반드시 그 마침인 죽음이 있다는 뜻이다. 무릇 세상만사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생(生)이 있으면 멸(滅)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멸이 있다는 것은 생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만약 생이 없다면 멸 또한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사물은 생기는 것인가?
사물은 인연에 의해서 생기고, 인연에 의해서 멸하기 때문에 생겼다고 말해도 거기에 고정적인 것은 없고, 멸했다고 해도 허무단멸(虛無斷滅)은 아니며, 모양을 바꾸어서 다음의 존재로 연결해 간다. 때문에 완전한 멸(滅)은 없는 것이다.
반야심경강의 8
4. 모든 법의 무(無) 연기(緣起)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空 無意識界_
(이런 까닭에 공 가운데는 물질적 존재도 없고 감각·표상·의지·인식도 없으며, 눈·귀·코·혀·신체·마음도 없고 형태·소리·냄새·맛·감촉·마음의 대상도 없으며, 눈의 요소도 없고 나아가 마음으로 인식하는 요소까지도 없다.)
(1) 일체 모든 것은 없다①
지금까지 우리들은 다섯가지 모임이 공(空)임을 살펴보았는데, 여기서는 다시 공 가운데는 다섯가지 모임뿐만 아니라 열두가지 영역〔十二處〕과 열여덟가지 요소〔十八界〕까지도 없다 고 설하고 있다.
먼저 다섯가지 모임이란 이미 설명한 것처럼,
물질적존재〔色蘊〕·감각〔受蘊〕·표상〔想蘊〕·의지〔行蘊〕·인식〔識蘊〕이다.
다음으로 열두가지 영역이란 여섯가지 감각기관〔六根〕과 이 감각기관의 여섯가지 대상〔六境〕을 말하는데, 이것을 육내처(六內處)와 육외처(六外處)라 부르기도 한다.
육내처 : 눈의 영역〔眼處〕·귀의 영역〔耳處〕·코의 영역〔鼻處〕·혀의 영역〔舌處〕·신체의 영역〔身處〕·마음의 영역〔意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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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체적 정신적 온갖 고뇌.

2004.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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