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

질문 선사시대 생활 모습
비공개 조회수 713 작성일2011.03.25

선사시대중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옷차림의 대해 알려주세여

프로필 사진

답변자님,

정보를 공유해 주세요.

3 개 답변
3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zi****
우주신
철학, 심리철학 5위, 사회, 도덕 7위, 국어, 한문 5위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 청동기 시대인들의 복식 체험을 하는 아이들 ⓒ 오창경

2011.03.26.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
2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sjd1****
시민
본인 입력 포함 정보

삼국 시대의 문화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초기의 부족 연맹체적 특징과 함께 한자 문화권에 편입되었다는 점과 고분 및 유물과 벽화로써 전해졌고, 불교 색채를 띤 유물과 유적이 많다는 점이다. 부족 연맹체적 성격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삼국의 문화는 현존하는 것이 적어서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가 없다. 그러나 삼국 시대인은 원시 사회의 유풍을 일면 답습하면서도 그들의 생활 모습을 차츰 달리해 간 것 같다. 삼국 초의 문화에서는 시조신에 대한 제사 의식이 행해졌으며, 또한 제천 의식의 전통이 그대로 유지되어 갔던 것 같다. 삼국이 정립이 되어 가기 훨씬 이전에 벌써 그들의 생활을 표현하는 노래가 나타났다. 추수감사제에 온 씨족원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음주와 가무를 즐겼다는 것은 벌써 가사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일이며, 특히 고구려 유리명왕이 지었다는 황조가는 유명하다. 또 서기 28년에 신라에서는 처음으로 도솔가를 지으니 이것이 가락의 시초라는 기록이 있으나 확실치 않으며, 유리왕 9년에는 오늘날의 한가위가 처음으로 마련된 듯하다. 사회 체제가 점차 정비됨에 따라 삼국의 각 사회에는 그 신분을 나타내는 표시로 복장의 모양과 빛깔이 각각 달리 제정되었다. 또 장례하는 풍습은 원시적인 유습을 그대로 유지하였으나, 지배층의 무덤은 그들의 위엄을 나타내기 위하여 장대하게 구축되었고 많은 부장품을 매장하였다. 삼국 시대에는 한자가 널리 보급되었다. 한자가 처음 전래된 것은 중국의 철기 문화와 함께였다고 여겨진다. 기원전 2세기에 진국에서 한나라에 외교 문서를 보내려는 것을 위만조선이 가로막은 일이 있었다. 보다 더 구체적인 예로서 기원전 1세기 유적인 경상남도 창원시 다호리의 무덤에서 붓이 출토되어, 이미 한자가 보급되었음을 알려준다.그러나 한자를 사용해 본격적으로 문자 생활을 하게 된 것은 삼국 시대부터였다. 삼국이 자체의 국가 체제를 정비하고 운영해 나가기 위해 능동적으로 선진 중국 문물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함에 따라 한자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율령의 반포와 함께 한문 소양이 관리에게 필수적인 요소가 된 것이다. 특히 불교가 수용되어 한역 불경이 보급됨으로써 한문에 대한 이해가 촉진되었으며, 승려들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으로서 한문의 보급에 큰 역할을 하였다. 또한 고구려에선 372년에 세워진 태학(太學)과 청소년 조직의 경당에서, 그리고 신라에서는 화랑도에서 한문 경전을 가르친 것으로 여겨진다. 오늘날 전해지는 고구려의 광개토왕릉비, 백제의 북위에 보낸 국서, 진흥왕순수비등은 5~6세기 삼국의 한문학 수준을 보여준다.

 

 

채택부탁

2011.03.25.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
1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IVY
중수
본인 입력 포함 정보
가죽이나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었겠져 아마..

2011.03.25.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