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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백제역사 문의
KuGa 조회수 5,717 작성일2016.06.29
안녕하세요 최근 환빠라는 단어가 궁금하여 알아보던중 과거 백제와 관련된 의문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때는 고교시절 당시 TV에서 방영하던 태왕사신기를 보던중 삼국의 지도가 잠깐 나오는 장면이 있었는데요 이게 참 신기한게 백제의 영토가 황해를 사이에 두고 동백제 서백제 이렇게 나뉘어 져 있더라고요 당시에는 그냥 속으로
'뭐지? 감독이 미쳤나? 퐌타지라 막 지멋대로 설정 짰나??'
하고 넘어 갔는데 몇일 후 학원 문학시간에 당시 문학선생님이 태왕사신기의 그 지도 예기를 하시더라고요
기억이 가물가물 하긴 한데 말씀하셨던게 "니들은 그거 보고 저게 왜 저러지 했지? 사실그게 진짜 백제영토..."이런식으로 음 아마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엇을 뿐 실제 고문서를 토대로 그게 실제 백제 영토였다 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레서 속으로는 '아 우리가 배운역사에는 아직도 일제의 피해가 남아있구나... 뭐 또 어디서 누가 고문서 한권 풀었나 보네 젠장 수능 출제 범위 또 늘것네 한 10년 뒤에ㅋㅋ' 이렜는데 최근 환빠에 대해서 알고 나서부터 갑자기 과거에 이 문학선생님의 말씀에서 환빠의 냄새가 나는것 같아 좀 불안하여 문의 드려 봅니다
진짜 백제의 영토가 동서로 나뉘어 있었나요?
그럼 도대체 제가배운 한강 이남에만 종속되었던 백제는 뭔가요??
아 참고로 환빠는 키보드에서 손때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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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수많은 사서들이 증명하고 있는 대륙백제

 

 

 


대륙백제

 

백제가 요서(遼西)를 경력한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사서는 통전(通典)을 비롯하여 송서(宋書)·양서(梁書)·남사(南史)》 등에 다 들어 있으며 사마광의 자치통감(資治通鑑)에도 북사(北史)를 인용하여, "진대에 고구려가 요동을 빼앗아 차지했고백제도 요서 진평 2군을 빼앗아 점령하여 차지했다고 하였다특히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에 이같은 사실을 그대로 전하고 있으며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았다이 책의 편자들은 자기들과 견해가 다를 때에는 반드시 안어(按語)라는 형식으로 주석을 하였다는데 일언반구 말이 없다도리어 백제의 강역에 대해 우리도 놀랄 만큼 남만주 일대부터 백제의 강역을 설명하고 있다.

출처 http://blog.daum.net/eodls4420/161

 

백제는 변진(弁辰)의 나라로 진대(晉代)에 일어나 번작(蕃爵)을 받았다스스로 백제군을 고려(고구려동북(중국측 방향:우리방향 요서)에 두었다." -[남제서] <백제전

>

"그나라(백제본래 고구려와 함께'요동'의 천여리밖에 있었는데, '서진'때에 '구려(고구려)'

이미'요동'을 다스리자'백제'역시 '요서''진평' 2군의 땅을 점령하여 스스로'백제군'을 설치하였다." -[남제서] <백제전>


백제 동성왕이 광양태수를 고달로,대방(중국 화북지역)태수로 조선태수를 양무로,광릉태수를 회매로청하태수를 모견으로조선태수 양무를 광릉태수로낙랑태수를 왕무로 임명하여 중국 남조에 승인을 요구하였다황제는 모두 들어주었다."


"이 해에(서기490위나라가 또 기마병 수십만명을 징발하여 백제 국경선에 침공했으나,

모대가(동성왕사법명,찬수류,해례곤,목간나 장군에게 군사를보내 위나라 군사를 습격하여 크게 격파하였다." -[남제서 권58] <동남이전 백제편>(양나라 숙자현)

"백제국이 진대로부터 시작하여 송양대에 양자강 좌우를 차지하고 있었다."

-[북사] <백제전

>

"봄 정월백제의 왕 여창을 사지절 도독 동청주자사로 삼았다."

-[북제서] <후주기> , [삼국사기] <백제본기

>

"백제란 조상이 동이다동이는 세 한국이 있으니 첫째 마한둘째 진한셋째는 변한이다변한과 진한은 각각 열 두 나라가 있고 마한은 54국이나 된다그 중에 큰 나라는 인가가 만여 호가 되고 작은 나라는 수천 호가 되어 모두 합치면 도합 10여만 호가되는데 백제란 그 중의 하나이다그것이 후대에 점점 강성해져 모든 조그마한 나라들을 병합했다그 나라는 본래 구려(句麗)와 함께 요동의 동쪽에 있었다()대에 구려(句麗)가 이미 요동을 차지하니 백제 역시 요서(遼西)와 진평(晉平)의 두 군()의 땅을 차지하고 스스로 백제군(百濟郡)을 다스렸다." -[양서] <백제전>


"백제는 예부터 내려오는 동이의 마한에 속한다()말에 구려(駒麗)가 요동을 차지하니 낙랑 역시 요서 진평현을 차지했다."-[양직공도

]

"백제는 군현을 담로'라고 부른다백제에는 22개의 담로가 있어 왕의 자제와 종족에게 나누어 웅거하게 하였다.(...)서기450

백제 비유왕이 방물을 바치며 사사로이 대사'풍야부'를 서하태수'로 삼을것을 요구하고 역림,서림(기문둔갑)등점술서와 쇠뇌 등 '병기'도 요구하였다.(...) 황제는 이를 모두 들어주었다."

-[남사] <백제전>

"백제의 영토는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 중국남방 월주에 닿고 북쪽으로 바다를 건너 고구려 국경까지 남쪽은 왜국에 이른다백제는 동(한반도),(중국대륙두 곳에 서울을 두고있다."

-[구당서] <백제전

>

"백제가 망한후 그 땅(한반도,대륙백제 영토)은 신라,발해,말갈에 의해 나눠어졌다."

-[구당서] <백제전>, -[신당서] <백제전>

"처음 백가(百家)로서 바다를 건넜다하여 백제라 한다진대에 구려가 이미 요동을 차지하니 백제 역시 요서와 진평의 두 군을 차지했다(현재의 유성(柳城)과 북평(北平사이)"

-[통전] <제도사>(당나라 제상 두우 편찬)


"백제국이 양자강 어구를 좌안을 진대로부터 시작하여 송양대에 이르기 까지 점령하고 있었고후위때에는 중원을 차지하였다."-[주서 49] <백제전>

"백제국은 본래 고려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 천여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그 후 고려가 요동을 침략하여 차지하게 되었고 백제는 요서를 공략하여 소유하게 되었다백제가 다스리는 곳은 진평군진평현이라 하였다."-[송서] <백제전>

"송서에서는 백제가 다스리던 곳으로 진평군을 거론하고 그 도성을 거발성이다 라고 하였다거발성은 진평성이다그 곳은 지금 금주,영원,광녕의 경내(요서 지역)에 있다백제의 또 다른 도성인'고마성'은 조선국(한반도)에 있다. -[흠정만주원류고] <대청제국 건륭제>

"금주의주애춘을 포함한 지역이 다 백제의 강역이다."

-[만주원류고

]

"백제왕은 동,서의 두성에서 거주하는데동쪽 성은 공주(충청도)로서 당시 국왕의 제2의 수도였다서쪽성은 지금의 부여현이니 양나라때 명농왕이 이산성에서 살았으며 성산으로도 쓰고 산동 영성현 동쪽에 있다." -[신당서 각외국전 지리고증] <대청제국 말기학자 정겸

>

"고구려와 백제는 전성시에 강한 군사가 100만이고 남으로는 오(), ()의 나라를 침입하였고,북으로는 유주,,,노나라를 휘어잡아 중국의 커다란 위협이 되었다.[삼국사기] <최치원전>


요서,진평은 백제땅이었다는 환단고기 기록


요서 땅에 백제의 영지가 있었는데 곧 요서,진평이고 강남에는 월주가 있었으니 여기에 소속된 현은 첫째 산음둘째 산월셋째 좌월이다(21세 문자제명치 11(단기 2834,501) 11월에 이르러 월주를 쳐서 취하고 군현의 이름을 바꾸어 송강,회계,오성,좌월,산월,천주라 하였다

.

명치 12(단기 2835,502)년에 신라 백성을 천주로 옮겨 그곳을 채웠다이 해에 백제가 조공을 바치지 아니하므로 군대를 보내어 요서,진평 등의 군을 쳐서 빼앗으니 백제군이 없어지고 말았다[환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상생출판 안경전 역주 1131p

백제가 군사를 일으켜 제 노 오 월의 땅을 평정하고 관서를 설치하여 호적을 정리하고 왕의 작위를 나누어 봉하고 험한 요새에 군대를 주둔시켰다그리고 군역과 세금과 특산물 납부를 모두 본국에 준하여 하게 하였다. (상생출판 환단고기 완역본 번역 1113)

환단고기에는 백제땅이 요서,진평 등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그리고 고구려 21세 문자제 제위시에 요서,진평의 백제군을 군대를 보내 없앴다는 기록도 함께 나와 있다.


남중국 역사서에만 기록되어있다고 딴지거는 학계


백제는 북중국을 점령했는데 어째서 송서 양서 남사와 같은 남중국 왕조들의 역사서에만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있냐는 것이다 그래서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한나라의 계승자인 후한이 약해지면서 중국은 위촉오삼국시대로 분열되었고 삼국시대가 끝난지 얼마뒤 다섯개의 북방유목민족이 남하하여 북중국을 차지햇습니다.

이로 인해서 북중국에선 유목민의 나라들이 세워지고 기족의 중국 한족 왕조는 남중국으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이시대를 4호 16국시대라고 부릅니다. 다섯 유목민족이 16개국을 북중국에 세운 시대라고 그렇게 부릅니다.


5호 16국 시대의 대혼란이 수습되면서 중국은 남북조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남북조시대에는 남중국과 북중국에 원칙상 각각 하나의 왕조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 남북조 시대에 순차적으로 출현한 남중국왕조가 유송,남제,양나라.진나라입니다.


<송사><양서><남사>는 바로 이나라들의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송사는 유송 양서는 양나라 남사는 사개국 모두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한국의 일부 학자들은 "남중국 역사서에 백제의 북중국 점령이 기록된 것은 남중국이 북중국을 폄하할 목적으로 거짓 역사를 기록했기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북중국 역사서에 이런 사실이 기록되어있지 않았으므로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남중국과 북중국이 서로 견제하다보니 남중국이 백제의 북중국 점령을 자기네 역사서에 기록했을 거라 믿고 있는 것입니다.


<송사>를 제외한<양서>와 <남사>는 북중국이 중국 전체를 통일한 뒤에 편찬된 책입니다.

양서와 남사는 북중국을 계승한 당나라때 편찬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책들은 북중국이 편찬한 책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중국이 북중국을 조롱할 목적으로 그런 사실을 기록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고려하면 백제가 요서땅을 점령했음을 부정하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이 옳지 않음을 알  수있습니다.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1743#none



2016.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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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씀 그대로 환빠의 주장입니다. ㅡㅡ;;;


역사적 근거라고는 전혀 없고 대부분이 "음모론"이라 볼 수 있는 것들이죠.



2. 이런 주장들은 대체로 2가지 계통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요서경략설과 관련된 백제, 다른 하나는 아예 대륙 백제. 그나마 요서경략설은 역사학계에서 거들떠라도 보고 있는 것인데 대륙 백제(물론 동서백제 포함)는 외계인이 피라미드를 만들었다는 말과 비슷한 수준의 헛소리입니다.


대륙 백제에 대한 주장들은 대체로 중국의 몇몇 기록을 근거로 듭니다. 물론 당연히 기록을 엉뚱하게 해석했거나 한 것들입니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백제의 영토에 대해 기록하면서 "북쪽은 고구려, 동쪽은 신라, 서쪽은 바다 건너 오월 지방, 남쪽은 바다 건너 왜에 접했다"라고 기록합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백제의 영토를 놓고 보면 이 기록은 아주 자연스럽게 해석되죠. 백제의 북쪽에는 고구려가 있고 동쪽에는 신라가 있으며 서쪽으로는 황해를 건너 중국의 오월지방, 남쪽으로는 남해를 건너 일본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대륙백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걸 이상하게 해석해서 백제가 바다 건너 오월 지방을 영토로 두었다고 주장합니다. 당연히 말이 안되는 것이 그렇게 되면 고구려와 신라도 백제의 영토여야 하겠지요. 똑같이 "접했다"는 표현인데 어떤 것은 영토이고 어떤 것은 영토가 아니라면 이상하잖아요? 일부 대륙백제론자들은 이 문제를 감추기 위해서 북쪽의 고구려, 동쪽의 신라가 접했다는 말을 쏙 빼놓고 "서쪽으로 바다 건너 오월 지방에 접했다"는 문장만 보여줍니다. 말 그대로 "사기 치고 있는 것"이죠.



다른 대륙 백제 관련 주장들도 모두 이런 식입니다. 중국에서 백제의 왕에게 "동청주자사"라는 관직을 수여한 것을 "실제로 동청주(지금의 산동 지방)을 지배한 것"이라 주장한다던가, 백제의 장군들이 수여받은 관작에 적힌 지명들이 "중국의 이러이러한 곳이다"고 주장한다던가 하는 식이죠.


하지만 실제 기록의 면면을 살펴보면 엉터리입니다. 중국에서 동청주자사를 백제왕에게 수여한 시기는 남북조시대인데, 이때 관직을 수여한 중국의 왕조는 당시에 동청주 지역을 지배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나라의 영토였죠. ㅡㅡ;;; 아예 자기 땅도 아닌 곳을 관리하는 관직을 백제왕에게 준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쉽게 말해서 "그냥 감투만 주는 것"이죠. 백제 장군들의 관작도 한자를 억지로 바꾼다던가 하는 식으로 중국의 지명에다 가져다 붙인 것일 뿐, 역사적 가치가 전무합니다.



한마디로 태왕사신기나 기타 드라마는 환빠 드라마입니다.

2016.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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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남성 교육인 #중고등학교사회역사과교사 한국사 22위, 세계사 19위, 역사학 16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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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계시는 서백제는 중국 산동반도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대륙백제'입니다.

 

대륙백제가 등장하는 대목은 우리나라의 어느 고대 역사서에서도 찾을 수 없지만(일제강점기의 [조선상고사]를 집필하신 신채호선생은 제외)

 

중국 남조의 역사를 담고 있는 [송서], [양서]등에서 보여집니다.

당장 남북조시대의 북조 국가인 선비족의 '북위'가 중국 남조에 백제를 치러 가려 하니 길을 내라고 요구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상하죠... 백제를 치려면 고구려에게 길을 내라 해야지 왜 엉뚱한 중국 남조에 길을 내라고 할까요?

 

거기에 고이왕-근초고왕 등의 '요서지역 진출'을 두고 해석의 논란이 빚어지는데... [삼국사기]를 저술한 김부식은 신라 왕족의 후손이었는지라... 신라는 거품을 붙이고 고구려-백제는 깔아뭉갰고 대륙백제에 관한 이야기를 전혀 넣지 않았죠.

 

김부식 등은 백제를 한반도 남부에 한정된 국가로만 서술하여 대륙백제가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오직 중국역사서에서만 대륙백제가 보여집니다. 다만 이것이 기록에만 남아 있고 관련된 유물이나 유적이 거의 발견되지 않아 아직 정설로 채택되진 않았죠.

 

만약 이게 정설이고 사실이라면 백제의 위상이 지금보다 한층 뛰어오르겠지요^^

 

 

2016.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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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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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백제(외백제)>설 말이죠 ? ^^


중국의 사서 중에 <송서(宋書)>, <양서(梁書)> 나오는 백제의 요서공략에 대한 이야기죠.


중국 남북조 시대 송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송서>는 남조 제나라 무제 연간인 488년 심약이라는 사람이 무제의 명을 받들어 편찬한 책인데요... 권 97 열전 제 57 이만편에서 백제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 백제국은 본디 고려(고구려)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 1천여리에 있었으며 그 뒤에 고려는 요동을 공략하여 갖게 되었고, 벡제는 요서를 공략하였고, 이때 백제가 다스리던 지역을 일컬어 진평군 진평현이라 한다. " 이 내용중에 지명까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백제가 대륙의 요서 지방을 다스린 것은 분명한 걸로 여겨집니다.


당나라 태종 연간인 636년에 편찬한 <양서>는 남조의 양나라에 대해서 기록한 역사서인데요... 이 기록중에 " 백제는 본래 구려(고구려)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에 있었으나 진(晋 : 사마염이 세운 나라로, 위촉오 삼국을 모두 멸망시켜서 중국을 재통일시킨 나라)나라 때 구려가 이미 요동을 공략하여 영토로 하자 백제 역시 요서군과 진평군의 땅에 자리 잡고 스스로 백제군을 설치하였다."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양서>의 기록에 따르면 대륙 백제의 영토는 북으로 발해만에서 해안을 따라 남으로 내려와 산동반도를 모두 아우르는 지역입니다.


백제의 대륙 진출시기는 사록을 참고한다면 고이왕 13년(246) 8월에 위나라 유주 자사 관구검이 낙랑태수 유무와 대방 태수 궁준과 연합해 고구려를 공격하자 고이왕이 좌장 진충으로 하여금 낙랑의 변방을 공격해 그곳 주민들을 잡아오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위서>에서도 " 백제는 북쪽으로 고구려와 1천여리 떨어져 있으며 소해의 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 라는 기록을 통해 백제와 고구려의 국경이 붙어있지 않으며, 소해(발해)의 아랫쪽인 요서 남서쪽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위서>에서 백제의 날씨에 대해 기록한 내용도 위의 지역과 흡사합니다.


한국의 역사학계는 중국 사서에 등장하는 백제와 우리 역사의 백제가 같은 나라라는 증거가 없다면서 우리역사에 제외한겁니다.


현재는 민중사관의 역사학자들이 연구하고 있죠... 님도 이에 대해 알아보시면 나름 재미있을겁니다. ^^





2016.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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