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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제주도의문화재 사진좀 가져다주세요
rhek**** 조회수 3,324 작성일2010.04.14

제주도의 문화재 사진좀 가져다주세요 내공 아주 팍팍 드립니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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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독사
지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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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덕정

 

종목 : 보물 제322호
분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조경건축/ 누정
수량 : 1동
지정일 : 1963.01.21
소재지 : 제주 제주시 삼도1동 983-1
시대 : 조선시대

 

관덕이란 문무의 올바른 정신을 본받기 위해 ‘사자소이관성덕야’에서 따온 말로, 평소에 마음을 바르게 하고 훌륭한 덕을 쌓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이 누정 건물은 『탐라지』에 의하면 조선 세종 30년(1448) 병사들의 훈련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세웠다.

 

 

 

불탑사 오층석탑

 

종    목  보물  제1187호   
지 정 일  1993.11.19  
소 재 지  제주 제주시  삼양1동 696  
시     대  고려시대

원당사의 옛 터에 세워져 있는 석탑이다. 원당사는 조선 중기에 폐지되었고, 1950년대 이후 절터에 새로이 지어진 불탑사가 대신 자리잡고 있다.고려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탐라순력도

 

종    목  보물  제652-6호 
지 정 일  1979.02.08  
소 재 지  제주 제주시  이도2동 제주시청 내 
시     대 조선시대

 조선 숙종 28년(1702년) 제주목사 겸 병마수군절제사로 제주도에 부임해온 이형상(1653~1733)이 그해 관내 각 고을들을 돌며 진행한 행사들과 풍광들을 가로 35㎝, 세로 55㎝의 종이에 그린 총 41폭의 채색 화첩이다. 그림은 제주목의 김남길이라는 화공이 그렸다.

 

천여부수반수기앙이

종    목  보물  제569-24호 
지 정 일  1999.12.15  
소 재 지  제주 제주시   일도2동 417-3 서해 APT 2동 301호시    

시 대 대한제국시대

 

안중근 의사가 정성을 다하여 쓴 친필 휘호이다.

즉“천여불수반수기앙이(天與不受反受其殃耳)”는 “하늘이 준 것을 받지 아니하면 도리어 그 벌을 받는다.”는 뜻으로 안의사가 항일투쟁과 구국운동의 좌우명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 친필은 안중근 의사가 남긴 유묵 가운데서 최상의 가치를 지닌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최익현 초상

 

종    목  보물  제1510호 
지 정 일  2007.02.27  
소 재 지  제주 제주시  삼사석로 11  
시     대  대한제국시대

 

면암 최익현(1833-1906)의 초상화로, 우측 상하단의 기록을 통해 1905년에 채용신이 그린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채용신의 초기 작품에서 풍기는 조심스럽고 근실한 화법과 소박한 화격이 최익현의 우국지사적인 분위기를 더욱 잘 살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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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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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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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위사극락전

 


 

2. 경복궁(조선시대의 정궐)

 

 

 

(1)경복궁 근정전 ↓

 

 

 

(2)경복궁 근정문과 유화문 ↓

 

      

 

(3)경복궁 근정전 행각 ↓

 

 

(4)경복궁 자경전 ↓

 

  

 

(5)경복궁 자경전 꽃담 ↓

 

 

(6)경복궁 사정전 ↓

 

  

 

(7)경복궁 사정문 ↓

 

 

(8)경복궁 만춘천 ↓

 

   

 

(9)경복궁 수정전 ↓

 

 

 

(10)경복궁 경성전 ↓

 

 

 

(11)경복궁 함원정 ↓

 

 

 

(12)경복궁 근정문과 유화문 ↓

 

 

3. 운현궁

 


 

4. 앙부일구

 

 


 

 

5. 도갑사해탈문

 

 

6. 해인사장경판전

 


 

7. 은해사거조암영산전

 

 

8. 훈민정음

 


 

9. 대동여지도

 


 

10. 성균관 명륜당

 

 

 

 

 

2010.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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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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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j****
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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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옛 관청 '제주목관아지'
제주시내에서도 유별나게  눈에 띄게 기와지붕이 여러채있는 곳이 바로 조선시대 제주지방을 통치하던
제주목 관아였던 역사의 장소이다.

이 곳 터는 조선시대보다 한참이전인 탐라국시대부터 성주청 등 주요 관아시설이 있었던 곳으로도
추정되어지는 역사적 기록인 <탐라순력도>와< 탐라방영총람>등의 문헌에서 제주도 중심 관아터임이
확인되어 지고 있다.

특히 이 곳에는  문화유산해설사로 계신 분들이 이 곳의 역사와 제주의 역사를 순차적으로 풀이를 해주어
쉽고 정확하게 제주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 분들은 자원봉사로 일하시면서 일반인들의 이해를
도와주고 있으며 언제든지 도움을 청하면 친절하게 답변을 해준다. 
  
몇년전만해도 목관아지 주변에는 상가건물과 경찰서등 관공서들이 있던 평범한 곳이었는데 제주시청에서
제주보물중하나인 "탐라순력도"에 소개된 옛 목관아지터를 발굴조사한결과 문헌에 소개된 내용과 모두
일치하면서 기존의 건물들을 철거하였고 1999년부터 복원을 시작하여 2003년 1월22일 개관하여서
일반인에게 공개되어졌다고 한다.

제주도에는 4개의 보물이 있다. 첫째가 관덕정이며 둘째는 특이하게도 안중근의사의 여순감옥에서 직접
친필서한중 보물로지정된 유묵(죽은 뒤에 남겨진 필적)이 제주시내에 살고있는 분의 개인소유로 있고
셋째는  원당봉에 있는 불탑사 5층석탑이 있고 네째는 조선시대 제주의 역사를 그대로 글과 그림으로
남겨준 탐라순력도가 보물중 하나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제주시내에서 관덕정은 탑동 바닷가 근처로 시내중심에 위치해 있어 누구든지 쉽게 찾을수있으며 주변에
일요일에도 우편업무를 본다는 제주중앙우체국이 있다.
바로 이 관덕정옆에 제주목관아지가 복원된것이다.
  

이 목관아지에 들어서면 서울의 경복궁과는 비교를 할수없지만 나름대로 지방의 관아로써 제주를 통치하던
제주목사의 생활상을 엿보면서 옛 문화를 느낄수있는 공간을 제공되었다.

특히 이 목관아지의 터는 조선시대 이전의 탐라국의 역사이기도 해서 낭쉐라는 탐라국 시절에 풍년을
기원하는 나무소형상을 목관아지 한컨에 재현해서 볼수 있었다.
또한 목관아지 입구현판에는 耽羅布政司 라는 현판을 걸어 조선시대뿐아니라 그 이전의 역사까지
포함하려는 숨은 뜻이 있는것같다.


제주목 관아터는 제주시 삼도1동 관덕정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은 고려시대 탐라군의 중심 지역이었을 뿐 만 아니라 조선시대에는 대촌현으로 제주목의
중심지이기도 하였다.

단편적인 기록들에 의하면, 탐라국 시대에는 성주청,고려 후기 원의 지배하에서는 탐라총관부가 위치했던
지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문헌상으로 이 일대 관아건물의 대략을 엿볼 수 있는 시기는
1435년(조선 세종 17) 이후이다.

그 후 관아 건물은 관덕정을 중심으로 북동쪽에는 목사의 동헌과 부속 건물이 위치하였다. 즉 북동쪽에는
종루· 홍화각 우련당 · 연회각 · 애매 헌 ·귤림당 ·영주관·옥 등이 있었으며, 남동쪽에는 찬주헌
·찰미헌 · 생백헌 ·향사당 등이 있었다.

관덕정 북동쪽 옛 경찰서가 있었던 곳은 몇년 전부터 발굴이 진행되어 오고 있다. 지금까지의 발굴 결과로
볼 때, 포정문(외대문)터, 외대문에서 중대문으로 통하는 도로, 그리고 몇개의 건물터가 확인되었다.
'
한라산등반의 첫코스로도 유명한 '제주 관음사'
제주 관음사(觀音寺)는 21개 말사를 보유하고 있는 조계종 제23교구의 본사로 알려져 있는 곳으로 제주
불교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사찰이다.
제주도가 전통적으로 불교의 융성지이자 국내에서도 가장 유서가 깊었던 곳이었다. 예전에는 마을마다 절이
하나씩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은 교회가 마을마다 있는 추세이다.

제주시 아라동 한라산 동북쪽에 기슭에 있는 제주 관음사는  언제 누가 창건했는지 알 수 없다.
조선 숙종때 제주목사였던 이형상목사가 제주사람들이 생노병사를 의지하던 신당들을  잡신으로 여겨
사당과 함께 절 5백동을 폐사시켰을 때 폐허가 되었다. 이때 거의 모든 사찰과 신당들이 훼손되어
안타깝게도 자세한 기록이 없다.

그 후 관음사는 1905년 안 봉려관이란 비구니 스님에 의해 중창되었다.
봉려관은 원래 떠돌이 무당이었으나 1901년 비앙도로 가던 중 우연히 풍랑을 만나 죽을 지경이 되었는데,
관음보살의 신력으로 살아나게 되었다.   이에 감응하여 비구니가 되어 이 절을 짓고 불상을 모셨다.
한 때 주민의 반대로 한라산으로 피신을 했는데, 1912년 승려 영봉과  지사 도월의 도움으로 법정암을
창건했다.
그 뒤로 신도가 늘어나자 절 이름을 관음사로 바꿨다.

제주불교는 육지에서와 같이 본사 중심 또는 공찰 중심으로 발전해 오지 않았다고 한다. 제주도라는 독특한
지형적, 기후적 영향을 받아 애초부터 제주사람들의 토속적인 신앙을 인정하면서 같이 병행해야 했다

제주의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표선 민속촌'

우리나라에 민속촌은 여러군데 있습니다.
용인 민속촌, 낙안읍성 내 마을, 안동 하회마을,제주 표선 민속촌 등 이 있습니다.
규모면에서 용인민속촌 만큼은 크지 않지만 제주의 마을의 역사며 초가집이 제일 많은 민
속촌으로 역사의 현장이라고 볼 수 도 있습니다. 드라마 대장금을 제주에서 촬영할때 이 곳에서
했을 만큼 이곳은 제주인들에게 잘 알려진 곳입니다.
제주민속촌은 산촌-중산간촌-어촌-식물원-장터 -어구전시장-야외전시장-장터-무속신앙지구-관아 -무형문화재
가옥등이 있으며 천천히 구경하려면 한두시간이 걸릴정도로 규모가 있어 시간조절을 잘해야 하는 곳입니다.
각 촌락을 구성하고 있는 순수한 제주초가만 81동이며 장터의 식당, 무속신앙의 집, 방언의 집, 관아 등의
건물을 모두 합치면 117동이나 된다고 하니 천천히 하나하나 둘러 보기에는 시간이 꽤 걸립니다.
간간이 대장간, 연자매, 죽공예의 집, 말총공예의 집, 서당, 한약방, 띠공예의 집, 유배인의 집, 해녀의 집,
심방집 등이 배치되어 그야말로 옛 제주인의 삶을 걸음걸음마다 피부로 느낄 수도 있도록 세심하게 만들어진 곳입니다.
그리고 1백여명의 직원 모두가 갈옷을 입고 안내하기도 하고 공예 등을 직접 재현해 보여주기도 한며
제주의 민속문화인 제주민요, 해녀춤, 탈춤, 오고무 등을 하루 2차례 걸쳐 민속공연장에서 공연하며
목공예, 죽공예, 띠공예, 베틀공예 등 전통 장인들의 빼어난 공예기능도 재현되고 있습니다.
특히 관광열차가 시간별로 운행하며 무료라 한번 타 볼만도 합니다. 제주 초가와 유채꽃 필무렵 사진 촬영하기 정말 좋은 곳으로 사랑받는 곳이기도 합니다.

제주인들이 살고 있는 민속 마을 '성읍민속마을'
<pre>제주의 재래식 화장실하면 똥도새기로 옛날 어른들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역사이지만 화장실 개량으로 지금은 찾아볼수 없게 되었다
. 이곳에서 만큼은 옛날 그모습그대로 볼수가 있습니다.
다만 전시용으로 사용해서 지금은 화장실로의 구실은 못한다고 합니다.
표선리에서 한라산방향인 북쪽으로 8km 쯤 가면 한라산 기슭 아래에 성읍마을이 있습니다.
성읍리는 원래 제주도가 방위상 3현으로 나뉘어 통치되었을 때(1410-1914)
정의현의 도읍지였던 마을로서 제주도 옛민가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유형, 무형의 많은 문화유산이 마을안에 존재하고 있고, 옛마을 형태의 민속경관이 잘 유지되어
그 옛모습을 계속 유지하고자 '민속마을'로 지정.보호한다고 합니다.
이곳에서는 옛민가, 향교, 옛관공서, 돌하루방, 연자방아, 성터, 비석 등의 유형 문화유산과 중산간 지대 특유의 민요,
민속놀이, 향토음식, 민간공예, 제주방언 등의 무형 문화유산이 아직까지 전 수되고 있으며 천연기념물 제 161호인 느티나무,
팽나무 등은 오백 년 도읍지의 사실은 전해주고 있는 듯 합니다
.정의고을의 유형의 문화유산으로는 돌과 진흙, 초가 지붕으로 된 3백여채의 민가군을 비롯하여 향교 정의현청이 있던 일관헌,
돌하르방, 성터, 연자매, 옛관공서터, 옛비석 등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곳의 관청인 일관헌은 정의현감이 정사를 보던 곳으로 지방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여러차례의 보수를 거쳤으며
지금의 건물은 1975년에 새롭게 단장한 것으로 무척 깨끗합니다.
이 일관헌은 성읍리 거리 한복판에 천연기념물 제161호인 느티나무와 마주하여 서 있어 운치가 더욱 더 하고 잇습니다.
현재 성읍마을에는 느티나무가 한그루 남았는데 높이 15m, 밑둘레는 5.3m이다. 그리고 땅위 1m 쯤 해서 가지가 갈라져 나갔고 수관은 사방으로 11m 쯤 뻗어나갔다.
이 느티나무를 둘러싸고 속신도 전승되고 있다고 합니다.곧 느티나무의 이파리가 동쪽으로부터 돋아나기 시작하면 성읍리 동쪽 지방에 풍년이 들고 서쪽으로부터 돋아나기 시작하면
성읍리 서쪽 지방에 풍년이 든다고 한다는 것입니다.이 곳은 특이하게 집집마다 해설하시는분이 있어 무료로 해설해주고 있지만 해설을 마치고 오미자차를 권하며 사가길 권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숨겨진 비경 '방선문 계곡'
신제주 정실마을을 지나 오등동 마을에 방선문이란 버스 표지판이 있다.
이 곳에서부터 작은 오솔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보면 넓고 시원한 계곡이 나오는데 이곳이 바로 방선문 계곡.
제주도는 돌 ·바람 ·여자가 많아 삼다도로 불린다.
이 가운데 섬 전역에 널려 있는 현무암 표면에 새겨진 옛 사람들의 글들이 있다고 하여 길을 나서보았다.
이름 하여 마애명(磨崖銘). 제주의 절경지 암석에 남겨져있는 일필휘지(一筆揮之)를 찾아 가 보았다.
이미 오래 전부터 영주십경 중에 하나로 소문난 곳으로 호기심을 끌던 곳이지만 워낙 외지고 일반인들에게는
덜 친숙하고 안 알려져 숨겨진 곳이기도 하다.
제주에 사는 사람들도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르는 분들이 태반으로 점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다.
오등동 사람들은 이곳을 '들렁귀' 라고도 부르며, 조선시대 이래로 방선문계곡이라고 불리는 이곳에 마애명 50여 기가 곳곳에 있다.
한라산 계곡물이 바다로 뻗어가는 거대한 계곡으로 이름나 영주십경(瀛州十景)중 영구춘화(瀛丘春花.들렁귀계곡의 봄꽃)로
이름난 이곳은 제주목사가 말을 타고 한라산 등정길을 떠날 때 쉬어갔던 곳이다.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기암괴석 사이로 한라산에서 터져 내려오는 물줄기가 구비 구비 휘어 감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게 무릉도원인가 싶은 기분에 빠져든다.
제주에서 옛 선인들의 정취를 맡아 볼 수 있는 귀중한 현장이지만 버스 정거장에 표시판 하나만 남아 있을 뿐 방선문계곡
어디에도 방선문을 알리고 소개하는 안내문이 없다.
모쪼록 잘 보존하여 제주의 대표적 역사현장으로 탈바꿈하여 옛 선조들의 풍류현장을 일반인들이 함께 느껴볼 수 있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도 활용되었으면 한다

2010.04.15.

  • 출처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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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ldo****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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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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