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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디자인을 배우는 학생인데요? 기호에 대해서좀....
back**** 조회수 12,597 작성일2004.11.17
지금 디자인과ㄴ를 전공하는 학생입니다.. 교수님께서 기호에 대해서 시험을 보신다고 하시는데.. 검색을 해도 수학적 기호밖에 않나오네요..
예로 우리가 살로 가지고 있는 것들은 전부 기호이다?? 아무튼 정의와 사례를 좀 써주세요.. 뭐라고 질문을 드려야할기... 답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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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미원
영웅
시각디자인, 제품디자인, 환경디자인 81위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예전에 논문때문에 모아둔 컬럼중에 권영걸씨의 글이 있어 올립니다...
기호학에 대해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실내디자인을 중심으로)

인간이 역사 속에서 창조해온 모든 것 즉, 자연에 대비되는‘문화(文化)’는
그 시대와 사회의 반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로 부터 이어져 내려온 모든
문화적 요소들을 인류역사의 기록으로 인식하고, 그것에 내포된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
문화 자체는 그것을 형성해낸 인간의 의식, 사상, 신념 등과 같은 내면세계인
기의(記意: signified)를 담고 있는 기호이다. 그리고 우리는 외연적인 물질적
존재형식인 그 기표(記票: signifier)를 지각하고 의미작용을 통해 기의를 추출해내어 그것을 해석한다.
공간디자인에 의한 구축물도 그러한 맥락에서 파악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공간디자이너가 의도한 의미와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는 물리적 실체인
동시에, 그 시대와 사회의 신념과 사건의 기록으로서의 의미전달체계이기도
하다. 공간디자인에 의한 구축물은 과거와 미래, 인간과 환경, 인간과 사회,
인간과 인간 사이를 매개하는 의미전달체계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구축된 공간은 인간행태를 결정하고 그 의미를 전하는 문화적 메시지체계이자,
인간-공간간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하는 매개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간기호학은 모든 문화의 과정을 기호작용으로 보고, 비언어적 커뮤니
케이션의 매개체로서의 구축물이 내포하는 메시지를 이해하며, 나아가 새로운 구
축물의 창조에 어떠한 의미와 상징을 결합시킬 것인가를 연구한다.
공간을 기표, 문화를 기의로 보는 공간기호학은 공간의 의미를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공간 의미 파악에서 가장 중요한 인식 대상은 공간의 주체로서의 인간이나 객체로
서의 시각적 요소들이 아니라, 양자간의 상관관계 속에서 정의된 구조론적, 위상학적 공간이요 장소이다.




기호체계로서의 공간

구축된 공간에 대한 기호학적 해석은 주로‘공간기호학(空間記號學)’에 의거한다.
공간기호학적 관점에서 볼 때, 사람에 의해 구축된 공간은 모두 인간-공간의 상호
작용의 결과로 존재하며, 하나의 기호-상징체계로 간주된다.
공간을 기호체계의 산물인 텍스트로 보며, 그 공간적 텍스트의 의미를 분석해
내려는데 중점을 둔다.
기호체계는 기표와 기의로 이루어져 있는바, 의미를 내포하는‘공간’과, 형태로
외연되는‘실재’간의 기호적 조직체계이다. 즉 공간설계가의 목표, 의도, 가치체
계와 여러 사회문화적 요구와 시대 정신등은 창조과정을 통해 조형언어를
수단으로 삼아 결국 외연적 공간 형태로 나타나게 되고, 그로 인해 창출된 공간은
다른 공간들과의 관계적 맥락 속에서 파악되는 총체적 텍스트가 되는 것이다.
공간은 기호체계로서 일정한 형식을 이루게 되며, 기호작용은 그 속에 내재된
사회문화적 의미나 디자인 의도와 같은‘기의’범주와, 공간조직이나 형식과
같은‘기표’범주의 관계성에 의해서 발생되고 의미가 형성되는 것이다.
기표에 의한 직접적 지각과정과 기의에 의한 인지과정에 의해 하나의‘기호의 장(場)’이 형성되는 과정을 거친다.
인간은 공간 속의 기호를 풀어 의미를 파악하면서 행동하며, 능동적으로 기호를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공간기호학은 공간 내의 寬@?지각과정과 반응적 행태에도 관심을 갖는다.
공간기호학에서는 표현적 차원 즉, 표층구조에 대한 통사론적 코드
(syntactical code:공간형식을 나타내는 도상학적 코드로서 예를 들어 원형
평면, 십자가형 평면, 개방형 평면, 혹은 미로, 고층화 등과 같은 관습적 코드를
말한다.)와 내용적 차원 즉, 심층구조에 대한 의미론적 코드(semantic code:구축
된 공간의 표현단위 즉, 공간기호에 대해 그 내재적 외연적 의미 관계를 말한다)
에 의한 해석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공간의 의미는 통사적 차원만으로는 그 본질을 파악할 수 없고, 그것에 내재된
사회적, 기술적 제 조건과 문화적 의미와의 관계 하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벽, 기둥, 천장, 문, 창문과 같이 물질화 된 기표체계 만으로 건축을 정의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기표체계의 시각적 특징들로 구성된 전체적인 공간형태의 분석을 통해 시대정신, 사회성, 디자이너 의도 등과 같은 기의 체계의 함축적 의미를 유도해낼 수 있어
야 한다. 마지막으로 움베르트 에코는 기술적 코드(technical code:공간 설계학
이 취급하는 분절된 요소들이다.
가령 보, 기둥, 바닥, 단열재, 배선 등과 같은 구조적 기술적 코드로서 공간의 문
틥?전달이나 소통적 의미는 없다.
그러나 일부 기술적 코드 역시 공간적 문맥상에서 의미전달코드로 취급되기도
한다.)개념을 제시하였다.
공간디자인은 구축된 공간이라는 물리적 대상을 매개로 진행된다.
구축된 공간은 그것이 속해 있는 컨텍스트를 반영한다. 즉, 구축된 공간의 형태 구조에서 그 시대의 정신, 세계관, 사회조직 체계 등을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공간디자인의 첫 단계는 컨텍스트의 분석에서 시작된다.
컨텍스트는 집단이나 하나의 담화가 지닐 수 있는 축적된 정보의 배경, 즉 인식적
인 배경을 제공한다. 이러한 컨텍스트의 분석은 거시적으로는‘문화적 컨텍스트’
에서 미시적으로는 구축물이 놓여지는‘장소적 컨텍스트’까지를 포함한다. 본 강
의는 한국 문화의 특성으로 일반화되어 있는 자연성, 관조성, 실용성, 해학성...
등이 전통 조형예술 영역으로서의 회화, 공예, 건축에서 어떠한 기표로 외화(外化) 되었는지를 밝히되, 그 내용을 공간기호학의 체계 위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전통성과 한국성의 논의

오늘날 세계의 모든 지역과 민족의 문화적 가치가 교차되고 융합되는 신세기를
조망하면서, 우리들 사이에는 우리문화를 연구하고 그 고유가치에서 현재와 미래를
대비하려는 논의가분분하다. 일찍이 수많은 선구자들이 제 것을 바로 알고 그에
서 대안을 찾을 것을 권고하였던 바, 한말의 시인이자 문장가로 비바람 몰아친 역사의 전환기를 표표히 걸어간 이건창(李建昌:1852-1898)도 이렇게 말하였다.
"대저 예(藝)는 본디 제 성정(性情)에서 길어 올려지는 것, 율여(律呂)는 그 뒤에 있다. 성정 구하기보다 율여에만 급급함은 천박한 일이라 차마 말할 것이 못된다….
예는 아무리 소예(小藝)라 해도 반드시 뿌리가 있는 법…. 제 집 닭의 문채(文菜)로 족하거늘 어찌 남의 닭 부리와 발톱을 쓰리오….” 과거에 발생하였거나 있었던 것이 오늘날에도 이해되고 사랑받을 수 있는 가치를 지닐 때, 우리는 그것을 ‘전통’이라 한다. 이기백은 ‘과거에서 이어온 것을 객관화하고 이의 비판을 통해서
현재의 문화 창조에 이바지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라고 하여, 전통을 받아들이는 현재의 역할을 중요시하고 있다. 전통에
대한 논의가 무성하나, 잘 살펴보면 두 가지의 주요 관점이 발견된다. 첫째로 전통이 변하고 발전하는 것이며, 과거에 이루어져
정지되어 있지 않고 동적인 속성을 갖는다는 점이다. 둘째로 그 역사적 생명력이 현재의 삶에 의미와 효용을 지닌 문화유산이라
는 점이다. 따라서 전통이라는 것의 개념은 오랜 세월을 통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원형적 요소로, 자연히 현대와 결부되
어진다. 즉 그것을 논하는 시점에서 소급되어지는‘시간성’과 생활로서 체험되고 공감되는‘공간성’이 동시에 검토되어야 하는 것
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이‘전통성(傳統性)’을 논할 때 갖게 되는 정신상태는 서구의 사상이나 기술, 양식 등의 측면에서
벗어나 우리의 것을 찾고자 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즉 과거의 관습이나 유형, 무형의 유산을 참조하여 이를
계승하고자 하는, 다소 소극적이고 과거지향적인 경향을 띤다. 따라서 과거의 규범만을 좇는 전통성의 개념과 범위를 확장할
필요가 있으며, 그러한 배경에서 오늘날‘한국성(韓國性)’의 개념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의미수용의 측면에서 볼 때, 전통성이
통시적(通時的) 측면만 강조되는 경향이 있음에 비해, 한국성은 통시적이고 공시적(共時的)인 측면을 모두 강조한다. 또 근대건
축과의 관계 측면에서는 전통성이 그것을 불연속적 과정으로 보고 역사의 단절을 연결하려는 노력으로 나타나는 것에 비해,
한국성은 연속적인 과정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인 시각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그리고 서구건축과의 관계 측면에서도 전통
성이 차별성을 전제로 우리 공간의 특수성과 원형을 도출하려는 노력을 보이는 것에 비해, 한국성은 쌍방간의 현실적인 상황을
인정하는 입장을 취한다. 오늘날 우리 공간의 정체성 연구는 전통공간을 통해서만 정립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 건축을
구성하고 있는 공간개념을 우리의 문화적 상황 속에서 현실적인 문제로 설정하고 해결하려는 시도를 병행해 나가야 한다. 전통
성의 문제를 우리에게 보다 다양하고 폭넓은 논의의 장으로 끌어가기 위해, 한국성의 개념에 대한 보다 열린 논의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본 강의는 한국인의 자연관,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 미의식, 기질 등을 통해 추출해낸 공간문화의 특성에
관해 공간기호학적 시각에서 조망해 보고자하는 것이다.


평담과 천진의 순천주의



‘자연성(自然性)’을 지향하는 미적 가치는 한국인이 예로부터 지녀온 경천사상과 자연숭배사상 등에서 그 근원을 찾아볼 수
있다. 자연에 대한 친화적 정서와 외경(畏敬)은자연과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으며, 자연의 혜택과 영향력 안에서 자연
의 순리에 적응하는 자연관이 확립되었다. 이러한 자연관은 우리 민족의 정서적 기질을 형성시킨 자연풍류사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리하여 조선시대에 이르면 고려시대에서 부차적인 평어(評語)에 지나지 않던, 평담(平淡), 자연(自然), 천진(天眞)
등에 대한 미적 취향이 고조된다. 인위적인 기교를 부리지 않고 자연스러운 것을 존중하는 이러한 미의식은 그 이후 오늘날까지
우리 문화의 대표적 특질로 지속성을 갖고 있다. 에른스트 짐머만(Ernst Zimmermann)은 1920년에 낸‘한국의 미술’에서 이미
한국미술의 전반이 자연에 대한 편향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특히 회화에 있어서 그러한 특징은 두드러지는데,
예컨대 순수하고, 건강하고, 자연스런 색이 이용되어‘자연에 대한 순수한 표현의 기쁨이 드러나고 있다’고 보았다. 고유섭도
자신의 연구‘조선 미술문화의 몇 낱 성격’과‘조선 고대미술의 특색과 그 전승 문제’에서 논의한‘무기교의 기교’,‘무계획의 계획’
에서 기교와 계획은 생활과 유리되기 이전의 상태 즉, 생활 자체의 본연적 양식화 작용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결국 그는 한국미
의 특질을 민예적인 것으로 본 것이다. 자연에 대한 직관적인 파악과 그것에서 환기되는 정감을 바탕으로 하여, 자연스럽고
소박한 무기교의 미가 창출되는 것이다. 회화 중에서도 산수화는 동양의 자연관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으로 도법자연(道
法自然)과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사상이 그 바탕을 이룬다. 그리고 회화에서 표현되는 기운, 생동하는 생명력의 강조도 자연성
을 현실화하기 위한 또 다른 시도이다. 조선의 미를 대표하는 백자는 천연스러운 백색과 소박한 모양의 윤곽선 등에서 꾸밈없는
자연성을 보인다. 또 일그러진 형태나 자연스러운 유약의 처리로 질박한 전체적 효과를 얻어내는 것도 자연미를 존중하는 조형
의지의 발로이다.‘완벽성에 대한 무관심’이거나 그것을 의식적으로 회피함으로써 자연성에 도달하고자 했던 것이다. 완벽의
상태는 기(氣)의 정지상태를 말하는 것이며, 곧 죽음을 뜻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그 기저에 있는 것이다. 고대로부터 한국 전통건
축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성으로 자연과의 융합(融合)을 들 수 있다. 이상적인 주거조건으로서의 한옥은 살기 위한 집이라는
일차적 개념에서 출발하지 않고, 자연 속의 선경에 어울려 땅에서 솟아 오른 듯한 모습을 생각하였다. 이는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서 자연과의 합일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던 농본문화적 가치관과 무관하지 않다. 큰 들이 있으면 큰 마을이 형성되고, 앞으
로 작은 냇물이 흐르고 뒤로 작은 구릉이 있으면 작은 마을을 형성하여 자연과 융합하려 하였다. 한국의 대표적인 별서정원(別
墅庭園)인 소쇄원(瀟灑園)만 하더라도 자연과 정원의 경계가 모호하다. 자연이 정원 안으로 들어와 있어서 어디까지가 정원인
지 명확하지가 않다. 그것은 일본의 인공적이고 작위적인 정원의 형태와는 판이한 것이다. 소쇄원에는 대숲의 바람, 자연의
소리, 엷은 그늘과 밝은 달이 있다. 소쇄원의 모든 공간 구성요소들은 자연을 차단하지 않는다.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오곡
문(五曲門)의 아래를 틔워 자연스럽게 유입시켜 담장은 담장대로, 물은 물대로 연속성을 유지하게 한다. 담장은 양 끝이 개방되
어 안과 밖의 명확한 구분이 없는 위상기하학적 담장을 이루고, 광풍각(光風閣)은 전면과 양 측면의 창호를 들어올려 공간과
시선, 바람이 통하는 공간 환원을 이룬다.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지우면 그 경계는 자연의 연장이 되는 것이다. 같은 목조 건축
이면서도 일본은 목재를 정확한 척도로 제재하여 건축하나 한국은 휜 재(材)는 휜 대로 자연스럽게 쓰는 경우를 많이 본다.
예컨대 휜 재를 대들보로 쓸 때에는 응력이 집중되는 대공이 놓이는 자리에 휜 재의 휜 꼭지점이 오도록 하며, 문지방으로 쓸 때
에는 휜 꼭지점이 아래로 쳐지게 하여 시각적 자연스러움과 구조적 안정성을 동시에 얻어낸다. 특히 기둥의 밑동을 그랭이질
하여 막 생긴 초석(礎石)에 맞춘 사례가 많은 것은 한국의 전통건축이 얼마나 자연성을 지향하는지를 말해준다. 이런 경향성은
석조물에도 잘 나타난다. 삼국시대까지 비교적 정교하던 초석, 기단(基壇)들이 조선시대로 넘어 오면서 더욱 자연스러운 모습으
로 변했다. 그리하여 그 위에 서는 기둥들이 자연 형태에 최저한의 인공만을 가하여, 꾸미는 가운데 꾸미지 않은 듯이 보이게
함으로써 종국에는 자연과 융합하려 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심지어 기념비적인 한국 전통건축이자 조선왕조의 상징인 종묘
정전(正殿)에서조차 드러난다. 정전의 부재들, 특히 석재들은 투박하고 거칠게 가공되어 있다. 기단과 축대석들은 크게 잘려졌
을 뿐 아니라 어떠한 장식이나 기교도 없다. 계단 역시 긴 통돌들을 그냥 쌓아 놓은 모습이다. 곧 자연을 우선하고 인공을 겸양
하는 정신이 우리의 건축에는 깊이 배어 있는 것이다. 집을 짓는데 사용한 재료도 집이 지어지는 그 곳에서 나오는 재료를 사용
하여 지세에 맞는 형태로 집을 지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주위에 산재한 자연요소들을 집안으로 끌어 들였다. 즉 사용된 모든
나무는 자연 그대로의 형태와 나뭇결이 살아나도록 하고, 옹이나 갈라짐 등의 흠도 자연 상태 그대로 수용함으로써 벽체의 기둥
과 천장의 서까래 등은 거칠고 투박한 질감을 보여주고 있다. 문과 창호에 적용된 한지는 빛, 바람, 그리고 자연음(音)을 여과하
여 유입함으로써 자연과의 흐름을 가능하게 하는 훌륭한 매질(媒質) 요소이다. 또 자연과의 융합은 옥외공간의 구성 즉, 정원에
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한국정원의 식재는 늘 푸른 나무들이 아니라, 철따라 움트고 잎이 무성해지다가 낙엽이 지며, 겨울에는
눈꽃이 만발하는 활엽수가 주류를 이룬다. 이는 사계절이 분명하여 계절의 흐름을 좇아 경관이 늘 변화하므로 자연스럽게 조원
(造園)을 하려는 조형의식의 발로인 것이다.


물아일치의 정관적 특성



사물에의‘관조성(觀照性)’은 명상성(冥想性)과 더불어 무애(無愛)와 무심(無心)의 아름다움으로 발전된 한국문화의 또 다른
특성이다. 실바(Padmasiri De Silva)는 자신의 불교환경윤리학(Buddhist Environmental Ethics 1990)에서 불교의 전통 안에
는 자연에 대한 두 가지의 가능한 접근방법이 있다고 하였다. 하나는 인간이 이용하기 위해 환경을 인간화함으로써 얻어진 자연
에 대한 숙달과 이용이요, 다른 하나는 명상적 태도이다. 후자는 명상적인 삶을 통하여 자연 속에서 평화와 고요함을 깨달아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생할 수 있는 자세를 나타내는 것으로 선(禪)의 세계와 맥락을 같이 한다. 명상을 통해 자신과 우주
가 일체화된 경험을 하는 것이며, 주객미분(主客未分)의 순수한 경험에 이른다. 이 체험은 분석과 논리에 의한 일상적인 이해가
아니라 직관적인 관조를 통하여 사물의 본성을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사상에 이르면 사물에 대해 인위적으로 관여하
기보다는 그저 있는 대로 파악하고 관조하는 자세를 갖게 된다.‘관조성’은 현란하게 눈에 두드러지는 미(美)를 취하는 것이 아니
라, 형태나 색채 등이 없는 듯 있음으로 해서 고요한 마음으로 관찰하거나 음미해야만 인식되고, 일단 인식되면 그 세련됨과
은근함에 끌리게 되는 미(美)를 지향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조성은 소박성이나 포용성, 그리고 탈기교성과도 그 맥을 같이하여,
한국의 전통공간의 곳곳에 배어 있는 특성이 되고 있다. 불교에서는 이와 같은 아름다움이 진실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언제나
시사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자재미(自在美) 즉,‘사물의 본디부터 지닌 아름다움’에 대해,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마음’ 즉, 자재심(自在心)을 이른 것이다. 선(禪)에서는 이와 같은 자재가 인간 본래의 면목이라고 가르친다.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이 있는 곳에서는 진실한 아름다움이 태어나지 않는다. 아니, 아름다움의 흔적을 남기려한다면 그 집념이 아름다움을 지워
버리게 된다. 선의 말씀에 교장불유적(巧匠不留跡)이라 하여‘훌륭한 장인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는 한국적 아름
다움의 본질과 잘 부합되는 말이다. 직관과 관조에 의한 본래의 자연스러운 마음으로 사물에 임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전통
회화도 대상에의 직관적인 관조를 통하여 사물의 본성을 바라보며, 물아일치(物我一致)를 추구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특히
선종과 관계되는 그림으로 수묵을 통하여 표현을 절제한 직관적인 내면표출기법이 발전하였다. 예를 들어 강희안(仁齊 姜希顔:
1417-1464)의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는 선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인물이 바위에 의지하여 팔짱을 끼고
엎드려, 맑고 잔잔한 호수를 내려다보면서 망연히 생각에 잠겨 있다. 절벽과 바위와 풀과 물결이 인물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인물과 산수가 합일됨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인물의 관조하는 태도는 자기를 완전히 비우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무위자연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다기(茶器)에는 언제나 무애와 무심의 아름다움이 있다. 불법에서는 흔히‘적(寂)’이라는 말을
쓰는데 이는 그저 쓸쓸하다는 단순한 뜻이 아니며,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 마음을 뜻한다. 맑은 마음은 마음의 솔직성을 뜻
하며 불교에서는 이를‘여(如)’라 한다.‘여’란 인위적으로 교정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을 말한다. 다기에는 이러한‘여’가 현저히
나타나 있다. 다도(茶道)에는 고요와 적막이라는 말을 흔히 쓰는데, 이것은 다름 아닌 관조적인‘적(寂)’의 아름다움을 지칭하는
것이다. 자연과 사물에의 관조는 마음을 자유롭게 하고 어디에든 순응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집을 짓기 위한 땅은 원래부터
평평하고 네모진 것이 아니다. 언덕이 있고 굴곡이 있으며 드나듦이 있는 법이다. 사실 우리의 땅은 고저가 심하며, 이러한 땅의
모습은 산수(山水)라는 하나의 낱말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수평적이기보다는 수직적이다. 예로 겸제가 금강전도를 그리기
위해 부감법을 썼던 것은 산(山)만 그리지 않고 산과 산 사이로 흐르는 내(川)까지 그리기 위해서였다. 산이 있다는 것은 한국의
자연 공간의 본질이며, 필연의 구성요인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전통건축은 거의 모두 그러한 땅의 사정을 그대로 받아들일 뿐,
굳이 평평하게 하거나 네모반듯하게 재단하려 하지 않았다. 지형지세의 고저에 맞추어 서로 어긋나게 조성한 부석사의 대석단
(大石壇), 창덕궁과 종묘 정전 및 영녕전(永寧殿)의 배치, 지형을 좇아 자연스러운 단차변화를 보이는 소쇄원, 산등성이와 산기
슭의 자연지형을 이용한 수원 화성(華城) 등 모두가 땅의 모습에 구애됨이 없이 순응하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땅위에 솟아오
른 건물들은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이 어울려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전통건축에는 전통 회화에서의 여백과 같은‘사이’를
강조한 매개 공간이 많고, 이것들로 하여 건축이 완성된다. 그래서 우리의 전통건축에는 따스함과 여유가 있다. 전통건축의
정관적(靜觀的) 특성은 유연히 자연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낮은 담장의 공간적 척도에도 나타난다. 한국 전통건축에 있어
담장은 공간을 구획할 뿐 외부와의 차단을 꾀하거나 사람의 교류를 막고자 하는 것이 아니어서 높을 까닭이 없었다. 그래서
전통건축의 모든 개구부는 외부공간을 끌어들여 즐길 수 있는 차경(借景)의 개념이 일찍이 도입되었다. 심지어 담장은 꽃담에
서 보는 바와 같이 그 자체로 관조를 위한 하나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건축의 곳곳에 자연에의 관조를 예비하는 고려
가 늘 있어왔다.
예를 들어 사랑채의 대청 옆벽에 창호를 설치한다든지, 개인적인 별업(別業)으로 지칭되는 독락당(獨樂堂)처럼, 사랑채인 독락
당과 계곡 사이에 담장의 일부를 뚫고 살창을 통해 흐르는 물의 일부를 볼 수 있게 하여 울 밖의 자연공간을 끌어들여 뜰이 되게
하는 등의 장치가 그것이다. 또 실내공간은 비워진 공간이 채워진 공간보다 많아 여백의 미가 강조됨으로써 허허롭지만 여유있
는 공간을 이루고 있다. 실내공간에는 꼭 필요한 가구나 그림만을 걸고 나머지 공간은 그대로 비워둠으로써 한가로움과 고요함
이 있도록 하였다. 집을 짓는 장인은 명상을 통해 공간을 만들었고, 그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자연을 관조할 수 있도록 공간
을 만들었다.


실사구시와 실미의 예술관




‘실용성(實用性)’과 실천적 진리의 추구는 한국의 문화 일반에 함유된 한국적 프래그머티즘 정신이다. 한국 문화의 또 다른 특성
으로 논의된‘직관’은 이 경우 실용성을 위한 기초가 된다. 직관이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진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몸소 찾을 수 있는 주관적 진리를 말하며, 인간의 삶에‘근원적으로 도움을 주는’ 진리를 요구한다. 이때 주관적이란 말은 개인적
이란 의미가 아니다. 이러한 직관적 진리, 그러면서도 그것을 논리적 타당성에 의하여 입증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가 소속
한 공동사회의 의견의 일치 - 이것이 곧 유교사상에서 말하는 예(禮)이다 - 에 의하여 교육적으로 그 타당성을 형성시키려는
태도, 그러한 실천적 진리의 추구야말로 한국적 실용주의라고 정의할 수 있다. 진리의 기준이 건전한 의미에서의 상식을 벗어나
지 않는다는 태도는 여기서 말하는 공동사회의 합의(合意) 즉,‘예’사상과 상통점이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이기, 심성
등의 문제만을 파고들던 형이상학적 문제로부터 현실적이고 실천적인‘공용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그들의 관심을 전환시켰다.
그리하여 태동된 것이 실사구시(實事求是)정신을 바탕으로 한 실학인 것이다. 실학자들은 예술에서 뚜렷한 현실인식을 바탕으
로 하는 독자적인 사실주의 미학을 발전시켰다. 이른바‘실미(實美)의 예술관(藝術觀)’을 연암 박지원(朴趾源:1737-1805)과
같은 사람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연암은 우선 예술이 시대정신에 입각하고 현실에 근거하는 진취의 예술로 다시 창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예술정신이 바탕을 이루어 탄생한 것들 중 대표적인 것으로 진경산수를 들 수 있다. 진경산수(眞景山
水)는 겸제 정선(謙齊 鄭敾:1676-1759)의 등장으로 앞 시대 보다 높은 회화성과 함께 한국적인 화풍을 독보적인 경지로 발전
시키면서 조선 후기 회화의 큰 줄기를 이루며 전개되었다. 그것은 우리나라에 실재하는 산하의 실경(實景)을 대상으로 삼았다
는 점과 이를 독특한 화풍으로 완성시켰다는 점에서 전 시대와 확연히 구분되는 큰 획을 그은 것이다. 겸제의 인왕제색도는
비구름이 걷히는 인왕산의 모습을 동쪽 언덕에서 사생한 작품으로, 우람한 암벽들을 자신의 독보적인 겸제준(謙齊浚:우리나라
산수의 진경을 표현하기 위해 정선이 독창적으로 개발한 준법(浚法)으로 그의 아호를 따서 붙인 준(浚)의 명칭이다.)으로 묘사
하였다. 조선자기의 두드러진 특성의 하나로 실용성이 꼽힌다. 실용할 수 없는 물건이나 실용적 가치가 없는 물건은 만들지
않았던 것이다. 생활 속의 기능을 떠난 그릇은 문화적 의미도 잃는다. 그릇의 경우 일단 실용성이 첫째다. 술잔이라면 흔들려도
쉬 쏟아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야한다. 주전자는 술을 따를 때 마지막 순간에 술을 깨끗이 끊어주어야 한다. 기능이 충족된
연후에야 아름다움을 이야기 할 수 있다. 우리의 전통 생활용품을 보면 그런 실용적 가치에 대한 배려가 다른 가치에 우선한다.
최공호는‘절용(節用)주의적 미의식의 형성과 전개’에서 당시 성리학의 생재론(生財論)을 근거로 조선시대 공예품의 미적 특질
을 자연미, 소박미, 질박미로 꼽았다. 이처럼 조선시대의 절용주의 정책이 공예품의 생산 강령으로 작용하여, 일정한 미의식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제작된 조선시대 목기와 장(欌)은 탁월한 비례감각과 실용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앉고,
무릎 꿇고, 서고 하는 일상생활의 인체동작 치수를 각 여닫이문의 위치에 적용함으로써 인간공학적인 측면까지를 고려하였다.
서양의 건축이 방의 기능에 관계없이 창의 크기를 일정하게 하여 입면에서 좌우대칭을 이루려 하지만, 한국의 전통주택에서는
창호의 설치를 공간의 크기와 기능에 따르게 함으로써 창호의 좌우 비대칭을 용인하는 경우가 많다. 전통주택의 구조 측면에서
창과 문은 대체로 머름대로 구분되는데, 형태가 같더라도 머름대 위에 설치되면 창이 되고, 머름대가 없으면 문이 된다. 머름대
는 방풍을 위한 수단으로 방바닥보다 조금 높게 만들어 방 안의 온기가 외부로 방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머름은 밖에서 안이직접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시각적 차단 역할을 수행하여 앉은 사람에게 아늑함을 제공한다. 또 높이를1.5척
(약 45cm)이 되게 하여 팔을 걸치고 밖을 내다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뒤퇴로 향한 문들은 창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머름대 위
에 설치되어 개구부를 좁히고 겨울에 북쪽에서 들어오는 한풍을 막도록 하였다. 이는 실용이 무엇보다 우선되는 가치관으로,
그 외형적인 결과도 나아가 자연의 비대칭성에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게 되었다. 또한 벽체에 비대칭의 창호를 내어 맞바람이
불도록 한 것도 통풍을 원활하게 하기위한 실용정신의 사례이다. 건축 재료의 사용에 있어서도 인공적으로 잘 다듬어 마감하지
않음으로써, 자연풍화에 더욱 잘 견디고 오래 지속되도록 하였다. 흙으로 구워 만든 흙벽돌로 쌓은 토담집이나 흙벽은 내부공간
의 습기를 빨아들이고 또 건조할 때는 습기를 내뿜어 공간을 쾌적한 자연 상태로 유지한다. 해인사 장경각의 목판대장경은 바람
의 흐름과세기를 조절하는 지혜로 7백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아무 탈 없이 보관되고 있다.


적료의 해학과 탈속의 미학



한국의 문화와 예술에는‘해학성(諧謔性)’이 넘친다. 한국의 문화에는 서구의 경우와 같이 사람을 긴장시키고 압도하는 초월적인
미학이 없다. 그 대신 익살의 아름다움이 회화, 공예, 건축 등의 영역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그러나 그 익살스런 표현은
민중적인 경향으로 표현된 조선시대의 도자기, 민화, 자수 등에서 더 자주 다루어졌고, 그것은 해학성에 힘입어 그 효능이 더욱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사물의 표현에서 대담한 생략과 왜곡, 그리고 과장을 자연스럽게 다룬 솜씨나, 둥근 것이 지니는 좌우대
칭에의 무신경, 그리고 이지러진 둥근 맛이 주는 공간미 등은 한국의 조형예술에 나타나는 두드러진 익살의 세계이다. 고유섭은
한국의 해학미를‘적료(寂廖)의 유머’,‘어른 같은 아이’로 표현하고 있으며, 해학미를‘대상과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지성에 의해
조용한 여운을 남기는 것’으로 규정하고, 한국인은 뽐내지 않으면서 지성을 활동시킨 민족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특유의 기질이
해학미를 가능하게 했다고 귀결지었다. 반야심경에는‘무괘애고무유공포(無?碍故無有恐怖)’라는 말이 있다. 구애받는 것이
없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다는 뜻이다. 전통 민화는 유ㆍ불ㆍ도교적인 것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발생은 민간신앙과
결부된 경우가 많다. 그림은 철저한 불합리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민화에는 원근법이 거꾸로 되거나, 경중이 반대로 되어 있거
나, 강약이 한데 섞여 있거나, 수평이 수직으로 되어 있거나 하는 등, 상식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기법이 두려움 없이 자행된다.
그러한 원칙으로부터의 자유로움과 불합리성이 해학성을 더한다. 호랑이 민화가 우리로 하여금 즐거운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은
그 안면에 감도는 엷은 미소에 기인한다. 호랑이와 미소라는 양자는 서로 걸맞지 않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민화 속에서 그
양자는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대조 때문에 우리는 골계(滑稽)의 감정 속으로 쉽게 몰입되는 것이다. 조선 중기
에 절파(浙派:중국 명나라 말기의 회화, 주로 산수화의 유파로, 화원(畵院) 회화의 주요한 양식이 되었는데, 필묵이 웅건하고
면밀하지 않아 화면에 조경감( 硬感)이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의 유행 역시 그 발생지인 중국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 예외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격에 맞지 않는 일을 개의치 않고 받아들이는 성향을 우리는 우리민족의 생래적인 해학적 기질로
보는 것이다. 조선시대 절파의 발단이 이처럼 해학적 본성과 무관하지 않을뿐더러, 그 화파에 속하는 몇몇 작가들 가운데는
주제의 선택과 표현이 다분히 해학적 요소를 농후하게 드러내고 있다. 사례로 김제의‘동자견려도’나 이경윤의‘고사탁족도’ 등이
있다. 김득신의‘파적(破寂)’도 툇마루에 앉았다가 엎어지듯 달려가 도둑고양이를 좇는 선비의 방정맞은 순간 장면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짙은 유머 감각을 일깨워 준다. 이형 토기들에서 비 일상성, 비기능성 등으로 해학을 일으키는 사례가 많다. 이러한
비일상적인 요소들이 우리에게 엉뚱한 감정을 순간적으로 환기시켜 해학의 내용이 되는 것이다. 기마인물형 토우를 예로 들면,
사실 토우로서의 기능은 기마인물 조각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기마인물 상을 위한 받침대, 그 아래 투창 형식의 굽다리 받침,
한쌍의 각배 등이 기마인물의 종속요소로 취급되고 있으며, 주제를 해학적으로 만드는데 봉사하고 있다. 이 경우 해학을 기술적
으로 말한다면,‘무관계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의외의 상황으로 급작스럽게 연결하며 교묘하게 표현’하는 골계의 일종인 것
이다. 고려시대의‘청자상감포도동자문주자’에 묘사된 포도 넝쿨에 대롱대롱 매달린 동자(童子)들의 모습이라든가,‘청자진사연
화문표형주자’에 연봉을 껴안고 있는 왜소한 동자의 모습 등은 근엄하게 정제된 청자의 분위기와는 걸맞지 않을뿐더러 그 크기
의 대비에 있어서도 의외성을 느끼게 하는 사례이다. 한국의 웃음을 대표하는 것으로 하회별신굿 탈을 들 수 있다. 이 탈의 표정
은 분명 고정되어 있지만, 그 주름 속에 인생의 온갖 희노애락을 담고 있어 탈속(脫俗)의 경지를 보여준다. 탈속의 미학을 드러
내는 사례는 무수하지만, 경주 괘릉의 4기의 문인 무인석과 함께 왕릉을 지키는 네 마리 돌사자 중 한 마리는 다리와 고개를
비틀고 희희낙락 웃고 있다. 왕릉을 지키는 석상에까지 이 정도 해탈의 경지를 용인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그 해학의 품과
격이 어느 정도 인지를 짐작하게 하는 것이다. 창덕궁 연못에 조각된 이무기의 얼굴에는 솟아오르는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다.
구름 속에 머리를 내민 이무기는 왕을 지키는 근위병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의 크게 벌린 입과 부릅뜬 눈에도 불구하고 무섭기
보다는 오히려 친근감이 느껴진다. 그것은 서구의 여러 나라들이나 중국의 경우 수호상이 무서운 모습을 취하고 있는 것에
비해, 우리의 해태상이 해학적이고 친근감마저 주는 경우와 유사하다. 한계 내의 사례들이지만 여러 범례를 통하여 한국문화의
보편적 특성을 외화된 조형 형식을 통해, 그 내재적 의미를 해독하려 시도해 보았다. 문화의 세계에도 생태계의 질서와 유사한
법칙이 존재한다. 강자가 약자를, 고급한 것이 저급한 것을 지배하는 법이다. 문화란 본래 통합적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결국
‘어떤 문화가 더 인간을 행복으로 이끄는가’에 대해 현실적인 설득력을 가지는 쪽으로 승패가 결정된다. 한 나라의 문화는 그
나라 사람과 그들이 배경으로 살아가는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다. 문화란 그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며,
숙명이다. 문화는 학습과 훈련에 의해 민족문화로 발전한다. 한국문화는 고급문화에서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민중의 삶 속에
서 문화적 폭과 깊이를 길러 왔다. 비록 지난 세기동안 위축되고 쇠퇴했지만 우리의 미래에 숙명적으로 결부되어 있고, 인류의
미래를 향도할 하나의 대안으로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사실상 지난 세기는 미국 및 서구문화의 영향력 하에 있었고, 더욱이
그 문화의 건강성에 많은 회의가 제기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문화 전통 속에서 미래지향적 대안을 찾아내고 제시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조형언어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것을 추적하고 발견하는 차원을
넘어, 우리의 문화를 해석의 보편적 틀로 확장시켜야 한다. 우리 문화를 망막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렌즈가 되게 하는 것이
다. 이때 한국문화는 해석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해석하는 주체로서 새롭게 재창조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피차가 상호
해석의 주체로서, 그리고 대화의 주체로서 존중될 것이다.

200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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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자가 채택한 답변입니다.

  • 출처

    한국문화의 공간기호학적 해석 - 한국성과 전통성 _ 권영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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