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

질문 구약 성경 사무엘상 18-23장 및 사무엘하 1-9장좀 아시는분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9,369 작성일2004.10.20
아시는분은 좀 써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내용이길면 핵심만이라도 알려주세요;;
프로필 사진

답변자님,

정보를 공유해 주세요.

1 개 답변
1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HolyGlory
식물신
개신교 43위, 가톨릭, 소규모종교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제가 가는 성경 사이트 http://bible4u.pe.kr/

 

다윗의 등장(삼상16-31장)

 

16장부터는 사울과 다윗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대조를 이룬다. 사울은 점점 쇠퇴하고 다윗은 많은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그의 입지가 굳건히 되어 감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다윗과 사울을 비교하여 어떤 의미를 갖고 있으며,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봄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이 약속과 성취로 이어져 있음을 제시하고자 한다.

 

 

1. 새로운 왕 다윗(삼상16-18장)

 

 

사울과 다윗은 대조된 모습으로 그들의 첫 만남을 시작한다. 이때에 사울은 악신이 들려 고통 가운데서 폐위된 상태였고, 다윗은 왕으로 지목되어 성신의 감동으로 평화로운 상태였다. 여기서 다윗의 등장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으며, 이것과 어린 다윗이 믿음으로 골리앗을 이긴 사건과는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1) 인류의 구원자

 

하나님은 다윗을 택하시고 그의 믿음과 순종을 외모보다 중히 여기심으로(삼상16:7), 장차 나타날 만왕의 왕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성격을 계시하고 계신다(마1:1).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고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새 생명을 부여하셨다(골2:12). 그리고 그분은 지금도 우리를 통치하시며 그의 통치는 압제와 귄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랑과 정의와 평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사26:1-7). 요나단은 다윗의 모습 속에 왕권과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통치를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다윗에게 관대함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2)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이해

 

과거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예수를 병고 치는 의사나 물질을 부어 주는 도깨비 방망이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주님이시다. 이것은 예수께서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 지금도 우리 곁에서 영적인 힘을 제공하시는 분이심을 증거 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바로 이해한다면 객체나 주변인으로 살기보다는 그분의 사랑을 체험하면서 기쁨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2. 다윗의 도주(삼상19-26장)

 

 

다윗은 하나님에 의해 왕으로 지목되었으며, 그분 앞에서 순종의 삶을 살았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다윗을 올려 세우기보다 사울에 의해 잔혹한 추적을 받게 하셨다. 그렇다면 왕인 다윗이 받는 고난과 역경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런 삭막한 도주와 추적의 과정 속에서 요나단과의 눈물 어린 우정과 약속을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인가? 25장에서 아비가일은 그의 남편 나발과는 다르게 다윗을 후대하고 있는데, 이런 아비가일의 태도는 과연 무엇 때문인가?

 

 

1) 다윗의 고난과 승리

 

다윗은 많은 고난과 두려움 가운데서 실제로 편히 머리 둘 곳조차 없었다. 그런데 이런 도주와 고난은 그가 왕으로서 다스릴 자신의 땅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8:20)고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모형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광은 십자가와 고난의 터널을 통과한 영광이었다. 그는 갈채와 대관식을 치룬 왕이 아니시고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의 백성을 세우시고 다스리시는 왕이시다. 이와 같이 다윗은 결국에 가서 하나님의 은혜로 고난의 역경 후에 승리를 얻게 될 것을 묘사하고 있다. 이런 다윗의 나라에 대한 약속은 아비가일의 고백 속에서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삼상25:28).

 

 

2) 성도의 고난과 영광

 

모든 성도들은 뜨거운 광야를 지나 예루살렘을 향해 기쁨을 안고 가는 디아스포라처럼 이 죄된 세상에서 고난과 역경을 인내하고 약속을 소망하며 살고 있다. 많은 죄악으로 둘러싸여 있는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다윗을 통해 이런 교훈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보다 먼저 고난받으신 후에 영광의 자리에서 우리를 부르시고 도와주시면서 인도하고 계신다. 그러기에 이 세상의 삶은 슬픔과 절망이 아닌 소망으로 인한 기쁨과 평화의 삶이다.

 

 

3. 버림과 회복(삼상27-31장)

 

 

사울과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는 위대한 왕으로서 그들의 전부를 의탁했던 자들이다. 그런데 본문에서 하나님은 사울을 죽게 하시고 다윗은 적군의 위치에 있게 하셨다. 과연 이런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이며, 이런 사울과 다윗의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에게 주어진 진정한 승리는 무엇인지를 살펴봄으로써 우리의 진정한 통치자는 어떤 분인지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1) 그리스도의 통치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공했을 때 다윗은 땅에 대적으로 있었으며(삼상27장), 사울은 미약해져 마술의 힘을 의존하려 하였다(삼상28:3-25). 결국 하나님은 이런 사건과 사울의 죽음을 통해 인간 중심의 통치의 최후와 그들이 의지하던 자에게 당하는 좌절을 가르치고 계신다. 오직 백성을 신실하게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리고 다윗의 통치가 사울의 종말과 연결되어 있듯이 예수그리스도의 통치 역시 창3:15의 말씀과 같이 사단의 패배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사단을 누르시고 그의 통치를 회복하셨다. 이런 그리스도의 통치는 그의 재림을 통해 완성될 것이고, 사단의 세력은 영원한 불꽃에 던지워질 것이다(계 20-22장).

 

 

2) 우리의 통치자

 

그리스도의 통치가 완성되지 않은 현실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사울과 같은 통치자를 세우기에 분주하다. 심지어 그리스도를 왕으로 고백하는 기독교인마저도 입술의 고백과는 다르게 자기의 의지와 세상의 정욕을 그들의 통치자로 세우고 있다. 그래서 세상이 명예를 위해서 윤리와 양심을 손쉽게 저버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다윗처럼 대리자로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나의 삶을 하나님이 지배하시도록 마음의 자리를 비워 드려야 할 것이다.

 

 

사울의 통치는 이스라엘 백성의 상대성과 개인적 이기주의를 대변하고 있다. 반면에 다윗의 등장은 이런 불순종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통치의 회복을 알리는 서곡으로 제시되었다. 아담에게 비롯된 인간의 불순종과 반역은 그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불순종의 벽을 무너뜨리시고 회개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그 선포에 순종하고 돌아오는 자들을 그의 백성으로 삼으신다.

 

 

1. '성령의 떠남'의 의미

 

1) 개인에게 하나님의 능력 공급이 중단됨

 

구약 시대 성령 사역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자들에게 특별한 능력을 공급하는 것이다. 즉 여호수아에게 지혜를(신34:9), 사사들에게 특별한 힘을(삿3:10; 삿6:34) 그리고 선지자들을 감동하사 말씀을 전할 수 있게 한 것(겔2:2; 느9:20)같이 사울에게도 성령께서 이스라엘 왕으로서 백성들을 통치할 수 있도록 능력을 계속 공급하셨던 것이다(삼상11:6). 그런데 이와 같은 성령의 능력은 영구히 지속되지 않았다. 사울의 경우처럼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고 범죄하셨을 경우 하나님이 그 능력을 거두어 가신다. 이 같은 사실은 삼손에게도 발견된다(삿16:20).

 

2) 신약 시대의 성령사역과 구별됨

 

구약 시대에 있어서 성령의 사역은 구약 선민인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조력하는 것이었으며, 개개인의 구원 서정과 관련된 활동은 하지 않았다.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의 계획에 따라 어떤 개인에게 성령이 임했다가도 그 계획이 성취되면 언제든 떠나셨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이르러 성령은 각 성도들 안에 내주 하셔서 그들의 보혜사로서 그들 속에서 역사 하시며 능력을 공급하사 하나님의 일을 감당케 하셨다. 그리고 한 번 개인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결코 떠나지 아니하시며 끝까지 성화(Sanc-tification)의 길로 인도하사 하나님 앞에 이르게 하신다. 그러므로 구약에서의 성령의 떠남은 개인의 구원 문제와 관련된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이 한 개인을 하나님의 사역자로 삼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된 표현이다.

 

 

2.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힘있게 내렸다고(삼상18:10)했다. 여기서 악신은 인간을 도덕적, 영적으로 악하게 만드는 사단의 영(evil spirit)을 가리킨다.

 

1)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음

 

하나님이 직접 악한 신을 부리시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악신이라도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사단은 타락한 천사로서 하나님께로부터 천상에서 내어 쫓김을 당하였다(계12:9). 그리고 할 수가 있다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방해하며 인간을 유혹하여 죄에 빠뜨리고자 한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사단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때문에 사단이 어떤 활동을 하고자 할지라도 결코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그 목적을 성취시킬 수 없다.

 

2) 사단의 활동을 묵인

 

하나님은 어떠한 경우에 사단의 활동을 묵인하여 주시는가?

 

첫째, 타락한 인간이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할 때 하나님은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신다(롬1:28). 이럴 때에 인간은 자신의 죄악된 본성에 따라 모든 불의를 추구하게 된다. 이 때 사단의 영이 강하게 역사 하여 그가 속히 멸망의 구렁텅이 속으로 떨어지도록 한다. 사울의 경우가 바로 이 경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진 사울이 다윗에 대한 극도의 시기심에 불타 있을 때, 악신이 역사 하여 다윗을 살해하도록 살인 의지를 심어 준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사람들이 영적으로 미성숙 상태에 있을 때 그들을 연단 하실 목적으로 사단의 활동을 허락하시기도 한다(삼하24; 욥1:6-12). 그러나 하나님은 백성들이 시험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보여 주시고, 스스로 그 시험에 빠지지 않고 말씀에 따른 선한 길로 나오게 하신다(고전10:13).

 

 

3. 히브리인의 인사법

 

1) mwlv(샬롬)

 

히브리인이 가장 즐겨 쓰는 인사말은 '샬롬'이다. 이는 '평안, 번영'이란 뜻으로 단순히 사회적 관습에 따라 타인의 건강이나 안녕을 묻는 인사말 이상의 종교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이 말은 상대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평안을 누리도록 기원하는 축복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창43:29; 삿6:12). 그리고 신약 시대에 와서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함께 보다 깊은 의미를 내포하게 되었다. 즉 그리스도에 의해 회복된 하나님과의 평화를 믿음 안에서 누리도록 기원하는 축복의 의미를 내포하게 된 것이다(마10:12, 13; 롬1:7; 갈1:3). 나아가 은혜와 평강이란 말도 신약에서 종종 사용되었는데, 이는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을 은혜의 선물로 받았으며,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영원한 평화를 누리게 된 사실을 강조하는 인사말이다(롬5:1).

 

2) 그 밖의 인사법과 그 의미

 

① 땅에 엎드려 절함(창18:2; 42:6) : 웃 사람에 대한 존경, 문안.

 

② 목을 어긋맞기고 입맞춤(창33:4; 눅15:20) : 형제간 우애, 매우 반가움.

 

③ 몸을 껴안고 입맞춤(창29:13; 행20:37) : 감격적인 만남, 형제간 우애.

 

④ 발이나 땅에 입맞춤(시2:12; 눅7:45) : 경의와 복종.

 

 

 

본문은 다윗이 통일 왕국의 명실 상부한 왕으로 즉위하는 역사적인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사울의 죽음은 이스라엘 내에 혼란과 싸움만을 과중시켰다. 다윗은 자신의 능력보다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던 중 사울이 죽은지 7년 만에 헤브론에서 남유다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다윗이 왕으로 즉위하는 데에는 사울의 아들인 이스보셋이 걸림돌이 되기도 하였지만 다윗은 수많은 내란과 혼란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로 통일 왕국의 왕이 될 수 있었다.

 

 

다윗의 즉위(삼하1:1-5:5)

 

1. 유다 왕으로 즉위하는 다윗(삼하1:1-2:7)

 

 

사울 왕은 생전에 다윗을 죽이고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원수라 할 수 있는 사울 왕이 죽자 다윗은 참으로 애통해 하였다. 다윗은 왜 이토록 애통해 하였을까? 그리고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하며 '활 노래'라는 애가를 불렀는데, 이 노래의 주제는 무엇인가? 끝으로 다윗은 어떤 절차를 통해 유다 왕으로 즉위하였는가?

 

 

1) 왕으로 즉위하는 다윗

 

다윗은 사울의 전사 소식을 듣고 저녁때까지 애곡하였다. 이렇게애통해 했던 이유는 다윗이 사울 왕을 진정으로 사랑했으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그의 직책을 존경했고 또한 여호와의 법을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다윗의 이러한 태도 속에서 원수마저도 사랑하라고 하시며 실천하신 주님을 보게 된다. 다윗은 두 "용사가 엎드려졌도다"(삼하1:19)라는 주제하에 용맹스러웠던 지도자와 사랑하는 친구를 잃은 데 대한 슬픔을 노래했던 것이다.

 

다윗은 사울 왕이 죽자 스스로 왕위를 찬탈할 기회를 얻었지만 여호와의 뜻만을 7년 동안 기다렸다. 7년 후 어느 날 헤브론에 가라는 여호와의 명대로 다윗은 헤브론에 가서 유다 사람들에 의해 두 번째로 기름부음을 받았다. 이는 사무엘에 의해 기름부음 받은지 15년 만의 일이었다. 왕으로 즉위한 다윗은 사울 가문의 지지를 얻어내는 데 꼭 필요한 길르앗 야베스 사람과 화친을 권하는 덕을 쌓기도 하였다.

 

 

2) 원수도 사랑하라

 

사울은 다윗에게 왕위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를 죽이고자 하였다. 하지만 다윗은 사울을 왕으로 삼은 여호와를 사랑했기에 사울을 황으로 끝까지 존경하였다. 바로 이러한 점을 성도들은 본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빛과 소금으로서 그 광채와 맛을 이웃에게 전해야 되는 사명이 있다. 이웃에 대한 적개심을 버리고 사랑의 본을 보일 수 있어야 하겠다.

 

 

2. 다윗과 이스보셋의 전쟁(삼하2:8-4:12)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이 되었을 때 북이스라엘에도 사울 왕조가 형성되었다. 누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하였는가? 그리고 이스보셋을 왕으로 옹립했던 아브넬이 이스보셋을 배반하고 다윗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끝으로 이스보셋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가?

 

 

1) 다윗의 승리로 끝난 싸움

 

사울 왕이 죽자 사울의 군대 장관 넬의 아들인 아브넬은 사울의 아들인 이스보셋을 마하나임에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이스보셋과 다윗은 2년 동안 동족 상잔의 비극을 겪게 된다. 그러던 중 아브넬이 교만하여 사울의 첩인 리스바를 통간하자 이스보셋이 이를 책망하게 된다. 이에 분히 여긴 아브넬이 대세가 기울고 있는 상황을 판단하여 다윗 편으로 가게 된다. 이 사건 이후 낙심한 이스보셋은 다윗 편으로 가고자 하는 레갑과 바아나에 의해 살해를 당하고, 이들도 결국 다윗에 의해 죽음을 당한다. 이로써 2년 동안의 싸움은 상처만을 남기고 다윗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2) 배은망덕한 자의 최후

 

이스라엘의 왕인 이스보셋은 불쌍한 지도자였다. 그가 믿었던 신하들에 의하여 배신을 당하고 끝내는 죽기까지 하였다. 그의 신하들은 기회 주의적인 발상을 가지고 다윗에게 호감을 사려고 했으나 오히려 다윗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이 사건을 보면서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악행을 범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하겠다. 하나님보다는 세상을 사랑하고, 그 은혜에 회의를 갖고 있다면 이는 배은망덕한 죄를 짓는 것이다.

 

 

3. 통일왕국의 왕으로 즉위한 다윗(삼하5:1-5)

 

 

다윗은 이제 통일된 이스라엘 왕국을 다스리게 되었다. 이스보셋이 죽자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다윗에게 찾아와 우리들의 왕이 되어 주기를 간청하였다. 이때 장로들은 다윗이 자신들의 왕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이유로 무엇을 제시하였나? 드디어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아 통일 왕국의 왕이 되었는데, 몇 번째 기름부음을 받은 것인가? 끝으로 다윗의 통치 연한은 얼마였나?

 

 

1) 기름부음을 받는 다윗

 

이스라엘 장로들은 첫 번째로 다윗과 자신들이 한 핏줄이요 한 민족임을 지적하고, 두 번째로 다윗의 업적을 말했다. 세 번째로 하나님께서 당신을 왕으로 임명하였기에 자신들의 왕이 되어 주기를 요구했던 것이다. 결국 다윗은 세 번째로 기름부음을 받고(삼상16:13; 삼하2:4), 명실 상부한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다윗은 30세에 왕이 되어 세브론에서 유다 왕으로 7년 6개월을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는 통일 왕국의 왕조로 33년 동안을 다스렸다.

 

 

2)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

 

하나님의 시간표와 우리들의 시간표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바로 신앙이요, 믿음이다. 다윗은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 받은 지 15년만에 유다의 왕이 되었고, 이로부터 7년 후에 합법적인 다윗 왕국을 수립할 수 있었다. 참으로 인고의 세월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이러한 하나님의 깊은 섭리하심에 예외일 수는 없다. 우리들도 기다려야 한다. 내 생각, 내 의지, 내 욕망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일하실 그 때를 참고 기다려야 한다.

 

 

드디어 다윗이 공식적이고 합법적인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여기까지 오는 데에는 사울 왕과 이스보셋의 죽음, 여러 차례의 싸움과 배신 그리고 끝없는 저항을 참고 극복한 인재의 나날들이 점철되어 있다.

 

다윗은 오직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기회만을 소망하면서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 받은 지 22년만에 다윗 왕국을 수립하게 되었다. 이 다윗 왕국이 중요한 이유는 이 왕국이 훗날 도래하게 될 메시야 왕국을 예표하기 때문이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그리스도의 나라가 점차 우리 앞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1. 활의 애가(삼하1:17-27)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하여 애가를 지었다. 다윗이 이 애가를 지은 것은 사울 가문을 기념하고,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이들이 행한 업적을 기리고, 군사적인 용맹을 기념하기 위해서이다. 이 애가는 야살의 책에 기록되어 이스라엘 족속에게 지속적으로 가르쳐 졌다. 본 시의 구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두 용사의 쓰러짐(삼하1:19)

 

사울은 다윗이 승승장구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마음이 다윗에게로 향하는 것을 알고, 다윗을 죽이려고 지속적으로 쫓아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사울 왕에 대하여 원망하거나 불평하는 기록이 전혀 없다. 도리어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이 죽자 이들을 이스라엘의 영광이요, 길보아 산에서 쓰러진 용사로 묘사하고 있다. 이미 죽은 사람의 허물을 들추어내는 것이 아니고, 업적을 찬양하고 드높이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우신자를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2) 귀중한 지도자를 잃은 것에 대한 애도(삼하1:20-24)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은 이방에 대한 하나님 백성의 패배를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가 실패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의 범죄에 대한 징벌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징벌은 하나님 백성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징벌 후에는 명확하게 다시금 회복이 뒤따르며, 악한 이방 백성에 대한 심판이 병행된다. 따라서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사울왕에 대한 애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사울 왕고 요나단에 대한 개인적인 사랑에 의한 애도를 표명하는 것이다.

 

3) 요나단에 대한 슬픔(삼하1:25-27)

 

요나단은 사울 왕의 맏아들로서 다윗이 블레셋의 용장 골리앗을 죽이고 나서 서로간에 깊은 우정이 생겼다. 그 우정은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는 것을 막고, 다윗이 이스라엘의 장애의 왕이 될 것을 알면서도 요나단은 다윗을 보호하는 귀중한 우정이었다. 그래서 다윗은 여인의 사랑보다 요나단과의 우정이 승하다고 필역하고 있다.

 

이처럼 요나단과 다윗의 우정은 서로의 목숨과 왕위까지도 초월한 것이다. 이 요나단의 죽음은 다윗에게 있어 귀중한 친구의 죽음임과 동시에 이스라엘의 용사의 죽음으로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는 것이다.

 

 

2. 아브넬과 요압의 살인의 차이점

 

1) 아브넬의 살인

 

사울 왕이 죽은 후에 다윗은 유다 족 속의 왕으로 추대되었고, 이스보셋은 나머지 이스라엘 땅의 왕으로 추대되었다. 아브넬은 이스보셋의 군장이고, 요압은 다윗 왕의 군장으로 이 두 진영이 기브온에서 싸움을 하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다윗의 진영이 승세를 잡자 다윗 진영은 아브넬을 쫓았다. 요압의 둘째 동생인 아사헬이 아브넬을 향하여 진격하였고, 이 아사헬은 아브넬의 적수가 되지 못하는 자였다. 이것을 알고 있는 아브넬은 아사헬에게 자신을 쫓는 것을 중지하도록 두 번이나 종용하였다. 그러나 아사헬은 시종 아브넬만을 추격하기에 아브넬은 결국 아사헬을 창으로 죽였다. 이 살인은 전장에서의 정당한 방위였다. 일부러 사람을 죽이려는 의도에서가 아니라 자신이 살기 위한 수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이 행위는 계획적으로 살인하는 행위와는 구분되어야 한다.

 

2) 요압의 살인

 

아브넬은 이스보셋의 진영에서 접접 그 세력이 확대되어 갔다. 그러한 가운데 결정적으로 이스보셋과의 사이에서 틈이 생기게 된 계기는 아브넬이 사울의 첩 리스바와 간통한 사건 때문이었다. 이스보셋이 아브넬을 책망하자 아브넬은 화가 나서 이스보셋에게 등을 돌리고 다윗과 타협하기를 시도했다. 다윗왕은 아브넬의 타협을 받아들여 그를 선대했으나, 요압은 전장에서 자신의 동생의 죽음을 잊지 않고 돌아가는 아브넬을 죽였다. 이 살인은 계획적이고 악한 의도에 의한 원수갚음으로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에 의하여 저주를 받은 사건이 되었다. 그리고 다윗이 요압을 멀리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다윗의 사후에 솔로몬 왕에 의하여 요압은 결국 제거되고 말았다.

 

3) 성경적 적용

 

인간은 불가항력적 상황에서 살인과 같은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을 위하여 도피성이라는 제도를 마련하셨다. 정당한 재판을 받기 전에 불의의 가해자는 도피성에서 살 수 있고, 과실이 인정이 되면 도피성에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살고 그 후에는 다시금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반면 계획적인 살인에 대하여는 단호하게 대처하셨다. 요압은 결국 자신의 악한 꾀의 보응을 받은 것이다.

 

 

왕권의 확립(삼하5:6-6:23)

 

통일 왕국의 정통성 있는 왕으로 등극한 다윗은 이제 자신의 왕권을 확고히 하는 데 전력을 기울인다. 다윗은 왕권을 확립하기 위해 두 가지 일을 진행시킨다. 첫 번째 일은 새로운 수도를 정하는 것이며, 두 번째 일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다윗 성으로 옮겨 오는 것이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으로 모든 일들을 계획대로 추진하게 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다윗이 수도를 어떻게 정하고, 언약궤를 어떤 경로를 거쳐 옮기게 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1. 예루살렘으로의 환다(삼하5:6-16)

 

 

다윗은 이제 온 이스라엘을 합리적으로 다스리기 위한 첫 번째 작업으로 새로운 수도를 정하고자 하였다. 다윗이 생각한 수도로서 적합한 위치는 어디였나? 수도를 정한 다윗은 자신이 거할 다윗 성을 건축하였다. 이때 다윗 궁을 짓는 데, 많은 협조를 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다윗은 여러 명의 처첩을 거느리는 등 하나님의 율법에 위반되는 행위를 하는데, 이렇게 많은 아내를 둔 이유는 무엇인가?

 

 

1)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한 다윗

 

다윗은 자신이 머물던 헤브론이나 사울 왕이 수도로 삼은 기브아를 수도로 정할 경우 어느 한쪽 지파에 편중되어 전체 국민의 화합을 도출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리하여 생각한 곳이 시온 성이라고도 하는 예루살렘이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여부스 사람들이 터를 잡고 있었다. 다윗은 이들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았다. 이때에 두로 왕 히람은 다윗의 왕위를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히람은 다윗이 궁을 짓고자 할 때 기술자와 재료들을 보내 주어 큰 도움을 주었다. 이러한 일들을 계획성 있게 추진하는 중에 다윗은 율법에 위반되는 여러 명의 아내를 거느렸다. 이는 당시의 일부다처제 풍속을 다윗이 쉽게 받아들인 것이고, 또한 왕으로서 정치적인 목적에서 많은 지역,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자 아내를 맞아들였던 것이다.

 

 

2) 다윗을 지키시는 하나님

 

 

성경은 한 인물을 다룰 때 그 사람의 장점 내지는 업적만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약점과 실수도 함께 기록한다. 이는 어는 인간도 결국은 똑같은 것이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영원함을 간접적으로 가르쳐 주는 것이다. 다윗도 마찬가지이다. 큰 일 뒤에는 사소한 실수가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보호막이 되어 주셨다.

 

 

2. 블레셋과의 전투(삼하5:17-25)

 

 

본문은 이스라엘의 정적이라 할 수 있는 블레셋과의 싸움을 다루고 있다. 이 싸움에서의 승리는 다윗의 왕권을 더욱 확고히 하였으며,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만방에 알리는 것이 되었다. 그럼 블레셋이 2차에 걸쳐 이스라엘을 침공한 이유는 무엇인가? 다윗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다음에 그곳 이름을 무엇이라 불렀는가? 끝으로 다윗이 블레셋에게 승리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1) 블레셋을 물리친 다윗

 

이스라엘을 다윗 같은 강력한 왕이 통치한다는 사실에 블레셋은 심기가 불편하였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영토의 많은 부분을 블레셋이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블레셋은 선수를 쳐서 다윗의 기세를 미연에 꺾을려고 침공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다윗의 승리였다. 하지만 결과는 다윗의 승리였다. 다윗은 승리한 곳을 '바알브라심'이라 명하였다. 이 말의 뜻은 여호와께서 블레셋을 무참히 패배시킨 것을 의미하였다. 이렇게 다윗이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블레셋의 참공 때마다 저들과의 전투를 하나님께 문의한 후에 하나님의 명령이 임할 때 나가서 싸웠기 때문이다. 결국 이 싸움은 하나님께서 직접 앞장서서 블레셋과 싸우신 거룩한 성전(聖戰)이었던 것이다.

 

 

2) 기도로 승리하자

 

다윗이 블레셋을 이길 수 있었던 근본적인 비결은 기도에 있었다. 블레셋은 호전적인 민족이요, 무기가 일찍이 개발된 족속들이라 실질적인 싸움에서는 이스라엘이 패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도라는 무기가 전세를 뒤바꿔 놓은 것이다.

 

이처럼 기도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영적 무기요, 신앙적 특권이며, 오직 하나님의 자녀만이 갖을 수 있는 능력이다.

 

 

3. 예루살렘으로 옮긴 언약궤(삼하6:1-23)

 

 

본문은 다윗이 기럇여아림에 있는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그럼 언약궤가 왜 기럇여아림에 있었는가? 그리고 다윗이 바알레유다에서 언약궤를 가져올 때에 무슨 일이 생겼는가? 끝으로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하고자 했던 동기는 무엇인가?

 

 

1) 다윗 성에 안치되는 언약궤

 

언약궤는 제사장 엘리 때에 아벡 전투에서 블레셋에게 빼앗겼다(삼상4:11). 그런데 블레셋은 언약궤로 인한 놀라운 사건을 접하자 이것을 벱세메스로 옮겼다. 이곳 주민들도 언약궤를 무례하게 다루다 많은 사람들이 죽자 기럇여아림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으로 보낸 것이다(삼상6:19-7:1). 이러한 법궤를 다윗이 옮기는 과정에서 웃사가 인간의 부정한 손으로 언약궤를 만지다가 그만 죽고 말았다. 다윗이 이러한 고충을 겪으면서도 언약궤를 옮긴 이유는 이스라엘 민족의 삶 가운데 안치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석 달 동안 언약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있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 집에 복을 주셨던 사건이 입증해 주었던 것이다.

 

 

2)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가 받는 저주

 

미갈은 언약궤 앞에서 기뻐 춤추는 다윗을 보고 비방을 하였다. 이러한 미갈의 비방은 사실상 다윗의 삶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공격이었다. 결국 미갈은 일평생 자식을 못낳는 저주를 받았다. 이 저주는 사울의 가문을 끊어 버리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 성취이기도 하다. 이처럼 하나님을 무시하는 사람은 이에 합당한 보응을 받게 된다. 따라서 불신자들은 당연히 영벌의 저주가 필연적이다. 성도들은 신앙과 삶 속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거나, 하나님의 섭리를 무시, 또는 원망해서는 안 된다.

 

 

언약궤가 드디어 다윗 성에 도착하였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한 가운데서 임재하셨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다. 아울려 다윗은 여호와를 중심으로 하는 신정 통치를 확고히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언약궤의 안치는 임마누엘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영광의 왕으로 당신의 왕국에 입성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제 다윗은 자신의 왕권 강화는 물론이거니와 여호와의 처소를 상징하는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몰두하게 된다.

 

 

1. 시온 성의 획득과 그 의미

 

1) 동기

 

다윗은 사울 왕에 이어 이스라엘의 공식적인 왕이 되었다. 왕이 되고 나서 최초의 사업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윗 왕은 자신의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최초로 취하여야 할 역사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한복판에 여부스 사람의 성이 있는 것이 전략상으로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으며, 하나님 나라에 사단의 세력인 이방 민족 집단이 살고 있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이같은 이유들로 인하여 다윗왕은 시온 성을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그리고 이곳에 다윗 성을 개축하여 이스라엘의 수도로 삼았다.

 

2) 의미

 

첫째, 다윗 왕은 하나님의 기름부은 자로 왕이 된 후 최초의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공식적으로 통치력을 인정받게 되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그 능력이 만백성에게 나타나서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이스라엘 한 가운데 있는 여부스 족속을 멸하므로 이스라엘의 국방력이 한층 강화되었다. 이같은 국방력의 강화는 이스라엘 민족의 생활에 직접적인 안정과 번영을 주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셋째, 여부스 족속의 시온 성에 다윗 성을 지음으로써 하나님 나라가 사단의 세력을 꺾고 승리하는 표상이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의 계보를 통하여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시기로 작정하셨고, 그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결정적으로 사단의 머리를 깨뜨리게 하셨다.

 

 

2. 웃사의 죽음(삼하6:3-7)

 

이스라엘의 사사인 엘리의 아들들인 흡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지고 바벨론과의 전투에 참여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기에 언약궤가 있으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악이 있는 곳에 결국 같이하지 않으신다. 결국 이스라엘은 패배하였고, 언약궤는 바벨론의 다곤 신상이 있는 곳에 옮겨졌다. 언약궤는 블레셋의 여러 곳으로 옮겼으나, 가는 곳마다 블레셋 지방에 지속적인 재앙이 있었다. 그래서 블레셋 족속은 벧세메스로 소에 수레를 지우고 언약궤를 보냈다.

 

이 언약궤가 다윗 왕 때 예루살렘으로 옮기워지게 되었는데, 궤를 운반하는 수단으로 소가 끄는 수레를 사용하였다. 또한 운반은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통솔하였다. 수레가 나곤의 타작 마당에 도착했을 때에, 수레를 끌던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다.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이 진노하사 웃사를 침으로 즉사시키셨다. 본 글에서는 웃사를 죽이신 하나님의 배경과 그 의미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1) 문제의 배경

 

성경 전체적으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기준을 통하여 이 사건의 잘못된 점들을 개혁적인 입장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운반할 때 어떠한 방법으로 궤를 운반해야 하는지 하나님께나 제사장에게 물어 보았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 다윗 왕이 선한 의도에 의하여 언약궤를 운반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하나님의 뜻을 먼저 살폈어야 했다.

 

둘째, 다윗 왕이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었더라면 이런 오류를 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성경에는 ① 궤는 해달의 가죽으로 만든 휘장으로 덮어야 했고, ② 궤 양측의 고리에 막대기를 집어넣어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이 어깨에 메어야 했으며, ③ 그 누구도 궤를 만져서는 안 되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민4:5-15; 민7:9). 다윗 왕이 먼저 성경에서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방법을 알았더라면 이러한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셋째, 궤를 수레에 싣는다는 생각은 블레셋에게서 나왔다(삼상5:1-11; 삼상6:3).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이방 족속에게는 이 일로 인하여 어떠한 심판도 행하시지 않으셨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이들에게는 계명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는 이미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을 신령으로 섬기는 방법을 주셨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행동에 대하여 하나님이 단호하게 심판하신 것이다.

 

2) 웃사의 죽음의 의미

 

첫째, 하나님의 의는 완전하다는 것이다. 다윗이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선한 의도와 궤가 넘어지려 하자 웃사가 궤를 잡은 것에 대한 열정을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그러나 그 열정이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하나님께 대한 잘못된 섬김은 도리어 하나님의 의를 거부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을 섬기되 그 완전함에 따라 섬겨야 하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은 합당한 존경과 경배를 받으신다. 이단의 특징이 하나님의 말씀의 본질을 변형시켜서 전하고 경배하는 것이다. 그 결과 이들은 사단을 경배하고 영원한 멸망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되 합당하게 섬겨야 한다.

 

 

다윗의 언약(삼하7-10장)

 

하나님은 아담을 창조하신 후에 행위 언약을 맺었다. 하지만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음으로 언약은 파기되었다. 이에 하나님은 일방적인 사랑으로 주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라는 은혜 언약을 우리 인간들과 또다시 맺으셨다. 이 언약은 노아, 아브라함, 다윗을 거쳐 예레미야 31장에서 약속된 '새 언약'으로 까지 이어져 갔다. 본문은 이러한 구속사적 흐름 속에서 다윗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을 말해 주고 있다. 이 언약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될 구원 역사를 예고하는 것이다.

 

 

1. 다윗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삼하7장)

 

본문은 선지자 나단을 통하여 다윗과 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과 이에 대해 감사 기도를 올리는 다윗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다윗은 언약궤를 다윗 서에 옮긴 후 여호와께 영광을 드리고자 무슨 일을 계획하였나?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들은 다윗은 어떤 감사 기도를 드렸는가?

 

 

1) 다윗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삼하7장)

 

 

다윗은 언약궤를 안치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였다. 또한 여호와 중심 사상으로 왕을 통한 신정 통치를 확고히 하고자 성전을 건축할 계획을 세웠다. 이때에 하나님은 나단을 통하여 자신의 뜻을 밝히시면서 다윗과 새로운 언약을 맺으셨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성전 건축이 그리 급한 일이 아니며, 그의 아들 솔로몬을 통하여 성전 건축을 허락할 것과 그를 축복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특별히 다윗의 후손 가운데 오실 메시야의 왕국에 대한 약속도 해주었다. 다윗은 이같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자기 집과 이스라엘 민족을 과거로부터 선택하시고 지금까지 보호하신 은혜에 감사드렸으며, 축복이 가득 담긴 하나님의 언약이 자기 집과 이스라엘 민족 위에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다.

 

 

2)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

 

 

축복이 가득 담긴 하나님의 언약이 선포되는 동시에 다윗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다시 한 번 상기하면서 감사 기도를 드렸던 것이다. 감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겸손한 신앙의 모습이다. 아울러 하나님과의 더 깊은 관계를 이어 주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성도들은 이미 모태에서 조성되기도 전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은 은혜를 입고 있다. 또한 날마다 삶 속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으며 영원한 안식처도 보장받은 상태이다.

 

 

2. 다윗의 영토 확장(삼하8,9장)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한 다윗의 주변 국가들을 정복하는 기사가 나온다. 이는 신본주의적 통치 이념을 확고히 한 다윗에게 주시는 언약의 성취 과정이기도 하다. 그럼 다윗이 어떤 나라들을 정복하였는가? 한편 다윗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대접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왜 다윗이 므비보셋을 대접하였을까? 끝으로 므비보셋을 대접하는 다윗의 모습을 통해 본 서의 저자는 다윗의 어떠한 점을 강조하고 있는가?

 

 

1) 사랑의 실천자인 다윗

 

다윗은 맨 먼저 블레셋을 쳐서 메텍암마를 빼앗았다. 그리고 모압과 다베섹에게는 조공을 받았고 소바 왕 아닷에셀을 쳐서 말의 힘줄을 끊고 금방패와 많은 놋을 빼앗았다. 또한 하닷에셀을 도우러 온 23,000명의 아람 사람들을 죽이고 에돔 사람 18,000명도 죽이는 커다란 승리를 거두었다. 한편 다윗은 옛날에 요나단과 맺었던 뜨거운 형제애를 인하여 그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즉 그의 조부인 사울의 밭을 므비보셋에게 다 주었고, 다윗과 한 상에서 식사를 하도록 은혜를 베풀었다. 이러한 사건을 본 서의 저자가 기록한 이유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체결한 다윗이 자칫하면 난폭한 정복자로만 비쳐질까 걱정되어 다윗의 따뜻한 인간미와 인격을 적절히 조명하여 하나님의 언약을 신실히 성취하는 자임을 보여 주고자 한 것이다.

 

 

2) 공로 없이 받는 그리스도의 자비

 

므비보셋이 다윗의 후한 접대를 받게 된 데에는 자신의 공력은 없다. 단지 그의 아버지인 요나단의 공로로 아들이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데에도 우리들의 공로는 없다. 다만 그리스도의 대속 죽음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도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이다. 아무 공로 없이 무가치한 죄인들이 의롭다 칭함을 받은 데 대해 감사드려야 할 것이다.

 

 

3. 암몬을 정복한 다윗(삼하10장)

 

 

므비보셋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다윗은 이제 암몬 족속에게도 호의를 베풀고자 하였다. 하지만 암몬 족속은 이 호의를 거부하고 다윗과 싸움을 한다. 그럼 다윗이 암몬과 싸우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암몬은 어떠한 방법으로 다윗과 싸우게 되는가? 이 싸움의 결과는 어떠하였는가?

 

 

1) 고의적인 거부의 대가

 

암몬 족속의 나하시 왕은 언제인지는 몰라도 다윗에게 친절을 베푼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가 죽자 다윗은 암몬에 조객을 보내 그의 죽음을 진정으로 애도하였다. 그러나 나하시 왕의 아들이 하눈은 다윗의 친절을 무시하고 다윗이 보낸 조객들을 간첩으로 오해하여 체포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수염을 깎고 옷단을 짜른 후에 송환하였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이스라엘과 암몬이 싸우게 되었다. 이때에 암몬에 다른 네 국가 즉 벧르흡 아람, 소바, 마아가, 둡 출신의 용병 33,000명을 청하여 일부는 성문에, 일부는 산에 복병하고 공격을 개시하였다. 결국 이 싸움도 다윗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다윗은 적의 병거 700승과 마병 4만 명을 죽이고 군대장관 소박을 죽임으로써 승전하게 되었다.

 

 

2) 화목케 하는 자에게 임하는 복

 

암몬의 하눈이 멸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상대편의 호의를 악의로 받아들인 데에 기인되었다. 다윗은 진심으로 평화의 손길을 내밀었으나 하눈은 싸움으로서 응답하였다. 그 결과 하눈은 다윗에게 굴복하고 말았다. 이웃의 선의를 의심하는 것은 악한 마음이다. 진실로 이웃과 화목한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약속한 언약들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조금씩 이루어 가신다. 다윗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은 다윗의 영토 확장을 통하여 언약의 성취를 보여 주셨다. 이러한 영토 확장은 일찍이 아브라함(창15:18)과 여호수아(수1:4)에게 약속하신 언약들이었다. 한편 이방 민족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일방적 승리는 마지막 날에 악한 원수들을 무찌르고 승리의 찬가를 부르게 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예고하신 것이다.

 

 

1. 다윗의 하나님에 대한 열정(삼하7:13)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통하여 마침내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하고 궁에 평안히 거하게 하셨다. 이때에 다윗은 평안한 중에 자신의 안일을 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묵상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백향목 궁에 거하는데 하나님의 궤가 휘장 안에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마음을 선지자 나단에게 고하였다. 이 말을 들은 선지자 나단은 다윗 왕이 하나님을 생각하는 그 열정에 탄복하며, "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무릇 마음에 있는 바를 행하소서"라고 하였다.

 

1)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함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은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기보다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함으로 결국은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반면에 다윗 왕은 어려울 때에나 평안할 때에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관심사가 기울여져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약속과 성취에 감사하여 하나님께 보답할 것을 생각했다. 먼저는 하나님이 다윗을 택하시고 언약한 말씀을 성취하셨다. 다윗은 이것에 대한 믿음의 반응으로 하나님의 주권 적인 은혜에 너무도 감사하여 여호와의 전을 지으려 한 것이다.

 

2)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묵상함

 

다윗 왕은 평안한 시간에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더욱 영화롭게 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적극적인 방법을 실행하고자 노력했다.

 

3) 하나님을 섬길 방법을 생각함

 

다윗 왕은 단순히 하나님을 묵상함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묵상 가운데서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섬길 방책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 방책을 선지자 나단에게 이야기함으로 실행하기를 원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이 참으로 기뻐하시는 것이기에 다윗왕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요청을 거절하셨다. 그 이유는 다윗 왕이 피를 너무 많이 흘리게 했던 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 왕의 아들인 솔로몬을 통하여 그 요청을 수락하셨다. 하나님은 이러한 다윗 왕의 마음을 아시기에 그를 축복하셨고, 그 후손으로 메시야이신 예수그리스도가 태어난 것이다.

 

 

2. 이스라엘과 암몬의 전쟁

 

암몬 족 속의 왕인 나하스가 죽고, 그의 아들인 하눈이 왕이 되었다. 다윗 왕은 선친이 이스라엘에게 은총을 베푼 것을 기억하고 조객을 보냈었다. 그러나 하눈은 조문객들을 의심하여 수염을 자르고 옷을 중등볼기가 나오기까지 잘라 이스라엘로 돌려보냈다. 이같은 사소한 의심에 의하여 이스라엘과 암몬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암몬 족 속의 왕인 하눈은 자신의 행동이 이스라엘에게 미움을 산 것을 알고 아람 사람들 33,000명과 연합하여 이스라엘과 대적하였다. 그 전쟁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다윗과의 전투에서 승산이 없는 것을 알고 있는 암몬 족 속의 왕 하눈은 다른 제 국가, 즉 벧르홉 아람, 소바, 마아가, 둡 출신의 용병 33.000명을 확보하여 이스라엘과 대적하였다. 이들은 모두 이스라엘 북쪽과 서쪽에 거하는 아람 사람들이었다. 암몬 족속과 아람 사람들은 두 군데로 나뉘어 암몬 족속은 수도인 랍바 외곽에 머물고, 아람 군대는 약간 남쪽인 메드바에 진을 쳤다.

 

② 이스라엘의 군장인 요압은 암몬과 아람 군의 진을 살피고나서 이스라엘 진을 두 진영으로 나누었다. 아람 군쪽을 향하여는 요압이 이스라엘의 정예부대를 선별하여 공격하고, 암몬 족속을 향하여는 아비새가 나머지 군을 이끌고 공격하도록 하였다.

 

③ 요압에게 속한 군이 아람군대를 무찌르자 암몬 군대는 급급하여 도시 안으로 퇴각하였다. 요압은 군대를 거느리고 이스라엘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 전쟁은 이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④ 하닷에셀의 지휘하에 아람사람들은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하여 돕 근처에 있는 헬람에 모였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에게 패배 당한 것에 대한 설욕을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번에도 아람 군은 이스라엘 군에게 패배를 당하였고, 암몬족은 고립되고 말았다.

 

이 사건을 단순히 B. C. 약 3,000년 전에 있었던 한 정치적 상황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구속사적 흐름의 맥락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과 합한 사람을 택하시고 이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승리를 이루시는 것이다. 그리고 공의로운 하나님은 이유 없이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무리를 간과하시지 않으신다. 불의한 족속이 의로운 족속을 괴롭힐 때에 하나님은 자신의 의를 위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은 지키신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먼저 겸손하게 하나님 안에 지혜롭게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악한 세력을 대적할 때에 하나님은 자신의 의를 나타내신다.

 

2004.10.20.

  • 채택

    질문자가 채택한 답변입니다.

  • 출처

    갓피플 지식&자료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