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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미국 가톨릭교회에 대한 질문
samj**** 조회수 2,907 작성일2005.08.01
또다시 교회관련 질문을 올리는 가톨릭 신자 쌈장입니다 저기 여러분 오늘은 오랜만에 미국 가톨릭 교회에 대하여 질문을 올리고자 합니다 미국 교회는 매우 규모가 크다고 알고있는데요 미국 교회에도 우리와같이 중고등부주일학교도 있고 레지오같은것도 있을까요? 그리고 미국 최대의 교구는 어디입니까? 이외에도 궁금한것이 있지만 나중에 질문드리기로 하고 저의 질문에 좋은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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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x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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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레지오는 미국에도 있습니다.

레지오마리애는 세계적으로 공인된 평신도 사도직 단체입니다.

따라서 세계적으로 있죠. 그러나 한국처럼 모든 본당에 다 있지않고

있는 본당이 있고 없는 본당이 있습니다.

2. 본당마다 틀립니다. 보통은 천주교 재단 학교에 자녀들을

보내니까 따로 성당에서 주일학교가 없습니다.

3. 미국최대교구는 보스턴인것 같습니다. 왜냐면 미국주교회의가

보스턴에 있는 걸로 압니다. (한국은 서울이겠죠).

 

이 정도 답이면 궁금증이 어느 정도 풀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국천주교회는  한국교회의 특징이 있고

미국교회는 미국의 특징이 있습니다. 모든 천주교회는 나라별로

특징을 가지고있으며 모든 것은 로마교황청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2005.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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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가톨릭 교회 현황에 대한 추가 답변입니다

1. 개 황
  (면)9,372,614 (인)284,800 (신)64,051 (교)194 (본)19,296 (주)417 (교신)31,197 (수신)17,135 (교부)13,391 (수부)59
  (수사)5,783 (수녀)76,356 (재사)10 (재녀)416 (전교)1,018 (교사)370,334

2. 주교회의
  National Conference of Catholic Bishops(N.C.C.B.)
  정관 승인일: 2000.11.28.
  의 장: S.E.R. Mons. Gregory Wilton Daniel, Vesc. di Belleville

  연락처: Washington, D.C. 20017-1194, 3211 Fourth Street, N.E.
  ☎ 1-202-541-3000, 팩스 541-3222, 541-3166, tlx 7400424
  http://www.nccbuscc.org

3. 역 사
  미국의 복음화는 독립 전쟁 후 볼티모어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전에는 먼저 스페인이 1512년 플로리다, 뉴멕시코, 텍사스 그리고 캘리포니아를 발견하였다. 이때 동행한 선교사들이 원주민들에게 전교를 시작하였다. 1565년 플로리다 세인트오거스틴에 미국 최초 그리스도 공동체인 놈브레 데 디오스 성당이 설립되었다. 남서부 지역에서는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에 이탈리아 예수회 에우세비오 키노가 스페인을 위한 선교 본부를 설립하였다. 서부 지역은 작은 형제회 선교사 주니페로 세라가 선교 본부를 설립하였다. 프랑스 선교사들은 메인과 뉴욕, 오대호 연안과 미시시피 강을 따라 남부 루이지에나 지역까지 선교 지역을 확대하였으며, 중서부 지역에서 원주민들과 32년 동안 활동하면서 1만여 명에게 세례를 주었다. 1727년에 프랑스 우르술라 수녀회가 뉴 오를레앙에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대서양 연안의 영국인 정착지에서는 가톨릭 신자들의 이주를 법률로 금하였다. 가톨릭이 세운 식민지는 메릴랜드뿐이었다. 종교의 자유를 원칙으로 세워진 식민지는 1649년 종교 관용주의를 입법화하였다. 그러나 1688년 메릴랜드가 영국의 직할 식민지가 되고, 이어 1692년 성공회가 이곳의 공식 종교가 되면서 가톨릭 신자들은 선거권을 빼앗기고 1776년까지 박해를 당하였다. 그 외 지역에서 가톨릭 신자들에게 어느 정도의 자유가 주어진 곳은 펜실베이니아뿐이었다.
  미국의 가톨릭 신자들은 전체 인구의 1%에 불과하였지만 영국에서 독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대륙 회의에서 선발된 캐롤 신부(1735-1815년)는 캐나다 중립을 보장하기 위하여 밴자민 프랭클린과 사무엘 체이스와 캐나다에 동행하였다. 또한 피에르 길버트(1737-1804년)는 독립군들이 북서부 지역을 수호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고, 필라델피아의 피츠 사이몬(1741-1811년)은 대륙군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하고, 요한 베리(1745-1803년)는 함장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수많은 무명의 가톨릭 용사들이 워싱턴 군대에서 복무를 하였다. 또한 프랑스, 스페인 등의 가톨릭 국가들도 경제적, 군사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789년 미국 헌법 수정 제1항에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었으나, 가톨릭 신자에 대한 차별은 19세기에 접어들 때까지 여러 주에서 유보되었다.
  1784년 6월 9일, 요한 캐롤 신부가 미국 가톨릭 교회 선교사의 장상으로 임명된 것은 이 나라에서 가톨릭 교회 조직의 첫 발걸음이다. 이 당시 인구 400만 명 가운데 가톨릭 신자는 약 25,000명, 사제 24명으로 대부분 펜실베이니아와 메릴랜드에 살고 있었다.
캐롤 신부는 1789년 미국 역사상 첫 주교로 임명되어 볼티모어 교구를 관할하게 되었다. 1790년 8월 15일 영국에서 주교 서품을 받고 12월 12일에 주교좌에 착좌한다. 1808년 보스턴, 뉴욕, 필라델피아 그리고 바르드스 타운(현 루이스빌) 교구가 신설되고, 볼티모어 교구는 대교구로 승격되고 캐롤 주교도 대주교가 되었다. 1840년에 교세는 전체 인구 1,700만 명에 볼티모어 외 15개 교구, 사제 500명, 신자 663,000명이었다.
  미국의 첫 신학교는 1791년 볼티모어에 설립된 세인트 매리 신학교로 술피치오 수도회의 지도를 받았다. 1815년 세인트 메리 신학교 출신 30명이 서품을 받았다. 이후 세인트 메리 신학교와 성 토마스 신학교가 1809년과 1811년 각각 설립되었다. 이들 신학교와 다른 비슷한 교육 기관들은 미국인 성직자의 양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초기의 교육 기관으로는 1791년 설립된 조지타운 학교(후에 조지타운 대학교)가 있다. 그리고 1799년 조지타운에서 성모 방문 수도회가 설립한 여자 중고등학교가 있다. 그리고 19세기 초반 엘리사벳 시튼이 에미츠버어그에 세운 비슷한 학교가 개교하였다.
교회의 재원을 운영하는 최고 주요 기관은 1917년 ‘미국 가톨릭 전쟁 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이 명칭은 몇 년 뒤 ‘미국 가톨릭 복지 협의회’(NCWC, 일명 ‘구제회’)로 바꾸었지만 설립 목적은 변하지 않았다. 이후 미국 가톨릭 복지 협의회는 1966년 11월에 미국 가톨릭 협의회(USCC)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이때 교계는 사목적 법적 권위를 가진 지역 협의체인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NCCB)를 설립하였다. 미국 가톨릭 협의회는 이전의 가톨릭 복지 협의회의 기능을 지금도 수행하고 있다.
  100여 년 전에 시작하여 1920년에 설립된 미국 가톨릭 뉴스 서비스(NC, 현 가톨릭 뉴스 서비스)는 미국 언론 발전에 중요한 사건이었다. 1930년부터 가난하고 궁핍한 이들을 위한 복지와 지원에 헌신하려는 평신도 가톨릭 단체들이 출현하였다. 물론 여러 가지 전문 사도직 활동은 미국 가톨릭 복지 협의회를 주축으로 이루어졌다. 주요 단체로는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1845년), 가톨릭 중앙 연맹(Catholic Central Union, 1855년), 콜럼버스 기사단(1882년), 성명회(Holy Name Society, 1870년) 그리고 묵주기도회(1871년) 등이 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지난 50년 동안 미국에는 캐나다, 중부와 동부 유럽 국가, 푸에르토리코, 남미 국가에서 이민자들이 계속 유입되고 있다.
  1727년부터 루이지애나의 우르술라 수녀회, 1790년 조지타운의 방문 수녀회에 이어, 1790년에는 벨기에 가르멜 수도회 영국 분원에서 수련받은 미국계 가르멜 수녀 세 명이 포르트 토바코에 첫 번째 관상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최초의 방인 수도회는 1808년 엘리자베스 시튼 성녀가 에미츠버그에 설립한 성 요셉 자비의 수녀회이다. 그 외에는 1812년 켄터키에 세워진 로레타 수녀회, 나자렛 자비의 수녀회, 메리 엘리자베스 레인지 수녀가 1829년 볼티모어에 설립한 천주의 섭리 봉헌 수녀회 등이 있다.
  유럽에서 진출한 수도회 가운데 미국에 정착한 수도회 설립자 중에는 로즈 필리핀 더쉬네 성녀가 1818년 미주리에 세운 성심 수도회와 1840년 인디애나 주의 성모 천주 섭리회를 세운 테오도르 구에린 수녀 등이 있다. 대개 유럽 수녀회의 지부이던 수녀회는 교육과 자선 사업의 필요에 따라 급속도로 늘어났다.
  초기 교회의 몇몇 위기는 교회 일을 조직적으로 처리하지 못하거나, 가톨릭 신자들의 민족주의적인 감정, 신부들의 독단적인 행동에서 기인하였다. 필라델피아 독일계 신자들이 미국 최초로 삼위일체 성당을 세웠으나 교구장이 임명한 신부를 거부하고 스스로 본당 신부를 선출하였다. 결국 이들은 1796년 이교(離敎)로 분류되었다. 필라델피아는 1820년 윌리엄 호건 신부와 평신도들이 성 마리아 성당을 장악한 호건 이교가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1822년 교회법을 무시한 그의 운동은 최고 법원에서 무효화되었다. 이와 비슷한 사건들이 뉴욕, 볼티모어, 버펄로우, 찰스턴 뉴 오를레앙 등지에서 일어났다.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일어난 가톨릭에 반대한 편협주의는 1819년 공황과 함께 시작하여 가톨릭 이주민들이 현저히 늘어나던 1830년에는 최고조에 달했으며 근 25년간 지속되었다. 토착민 보호주의자들의 반가톨릭 운동은 심하게 폭력적이 되어 1834년에는 매사추세츠 찰스턴에서, 그리고 10년 후에는 필라델피아에서 수많은 생명과 재산을 파괴했다. 이들은 1850년경에는 성조기회로, 1866년부터는 KKK단, 1887년부터는 미국인 수호단과 자유 수호대로 나타났다가 1928년 알프레드 스미스의 대통령 후보 운동 당시에 극렬하게 폭발하였다. 1960년 존 에프 케네디의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이 문제는 대체적으로 잠잠해졌다. 이러한 편협주의에 대항하기 위하여 The U.S. Catholic Miscellany(1822-1861년)와 같은 가톨릭 정기 간행물들이 발간되기 시작하였다.
  1830년부터 1900년 사이에는 인구 증가와 세계 각지에서 온 이주민 그리고 개종으로 가톨릭 신자가 1,200만 명이 된다. 1890년대에는 동방 예법 교회 가톨릭 신자들이 대거 이주하였고 1907년 비잔틴 예법 교회의 첫 주교 서품식이 있었고 비잔틴 예법 교회와 동방 예법 교회 신자들을 공인하였다. 1846년에 열린 볼티모어 공의회에서 미국 주교들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미국의 수호 성인으로 정하였는데, 이는 교황청에서 이 교리가 선포되기 8년 전의 일이다. 1893년 1월 23일 교황청은 워싱턴 D.C.에 교황 대사관을 설치하였다.
  남북 전쟁 때 가톨릭은 노예 제도에 대하여 중도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1839년에 그레고리오 16세는 노예 매매 행위를 비난하면서도, 교황이나 미국 주교 중에서 어느 한 사람도 노예 제도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침례교나 감리교, 장로교에서는 이교가 있었으나 가톨릭은 이 문제 때문에 갈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전쟁 당시 20여 개의 수녀회에서 500여 명의 수녀들이 부상자들을 위해 봉사하였다.
  1863년 해방된 노예들 400만 가운데 10만 명이 가톨릭 신자였다. 19세기 가톨릭 교회는 노동자의 편이었고 노동자를 위한 정의 실현을 위해 노력했다. 1900년에는 미국 인구 7,600만 명 가운데 가톨릭 신자 수는 1,200만 명이며 14개의 관구에 82개 교구가 생겼으며, 12,000명의 신부와 약 40개의 남자 수도회가 있었다. 1908년 6월 29일 교황 비오 10세는 교황령 Sapienti Consilio로 미국을 전교 지역에서 제외시켜 그동안 프랑스나 바바리아, 오스트리아 등의 구호 기구에서 받아온 원조금을 중단하였다. 현재 미국은 전 세계 난민 구조를 위해 원조금을 보내고 있는 주요 국가 가운데 하나이다. 미국은 1906년 14명 이하의 선교사를 파견하였으나 1968년에는 그 수가 9,655명까지 늘어났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미국의 가톨릭은 수와 세를 더욱 확장하여 임신 중절 반대나 사형 폐지 운동, 안락사 반대, 인권 옹호, 정의 구현, 세계 평화와 공조를 위해 이바지하고 있다.
  2001년 현재 미국은 인구 281,800,000명에 신자 64,051,000명이다. 대교구 33개, 교구 159개, 본당 19,296개이며, 주교는 399명, 신부는 48,288명, 수사 5,609명, 수녀 79,630명이다.

2005.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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