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모르는 이들 나무라다 깊은 회의
다솔사 넘어갈 때 역할 못해, 종회 그만둔다”
“부끄러움 모르는 이들 나무라다 깊은 회의
다솔사 넘어갈 때 역할 못해, 종회 그만둔다”
  • 조현성 기자
  • 승인 2015.09.15 17:55
  • 댓글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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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 스님, 9월 정기법회서 “집중하고 의심하고 철저하게 비워라”


명진 스님이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회의원직을 내놓겠다고 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집단에 대한 회의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명진 스님은 13일 서울 성동청소년수련관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주제로 개최한 9월 정기법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스님은 봉은사 주지 소임을 마친 후 성동구민회관, 청담동 벙커,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등을 옮겨 다니며 ‘유랑법회’를 열고 있다. 스님은 “이날 법회를 위해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 대관 신청을 했지만 조계종 총무원은 기기점검을 이유로 대관 신청을 불허했다”면서 법문을 시작했다.

다음은 명진 스님의 법문을 요약한 것이다.

신부가 성모상 훔쳤다면 신부 하겠나

바른말 좀 한다고 해서 빌려줬던 공간을 시설점검을 한다는 이유로 안 빌려준다. 이게 조계종 현실이다.
내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다. 본보기를 들면, 자기 절 탱화 훔쳐서 아는 비구니 절에 감춰 뒀다가 들통이 났다. 그 일이 알려졌는데도 호계원장을 지내고 동국대 이사장 하다가 이번에 종회에서 동국대 이사로 추천 않기로 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가톨릭 신부가 성모마리아상 훔쳤다가 세상에 알려지면 신부를 계속 할 수 있겠나? 이게 조계종 수뇌부의 행태이다.

수원 용주사는 주지가 결혼을 해서 애를 둘이나 둔 것이 탄로가 났다며 신도들이 봉기했다. 본인은 선거로 주지선출 됐으니 못나간다고 한다. 신도들이 나서 은처승 나가라고 외치고 있다. 조계종이 이렇다. 부끄럽고 창피하다.

길가와 길 한가운데의 차이

중요한 결심을 했다. 이를 밝히기에 앞서 공자 이야기를 하겠다.

공자가 제자들을 데리고 길을 가는데, 어느 놈이 길가에 똥을 쌌다. 이를 본 공자는 그를 꾸짖었다. 한참 길을 가니 이번에는 길 한가운데 똥을 싸는 놈이 있었다. 제자들이 공자보다 먼저 가서 혼내려니 공자가 말렸다.

제자들은 의아했다. “아까는 혼내더니 왜 막습니까?”라고 공자에게 물었다.

공자가 답했다. “아까 내가 혼낸 놈은 창피한 줄은 알고 길가에 똥을 쌌다. 창피한 줄 아니 혼낼 만했다. 길 한가운데 똥을 싸는 저 놈은 부끄러운 줄 모른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잘못을 저지르는 놈에게 뭐라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조계종 상층부 있는 중들 행태가 길 가운데 똥을 싸고 뭉개고는 온 동네 똥내 풍기는 것과 같다. 나는 그동안 봉은사 주지하면서부터 종단과 정치권력에 대해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탱화 도둑놈이 있는데 이를 적당히 무마하려는 종단, 처자식을 거느린 사람이 본사 주지를 하는데도 이를 비호하는 종단을 보면서 내가 그동안 길 가운데 똥 싼 놈을 나무란 것은 아닌가 하는 깊은 회의가 들었다. 

상좌뻘에 욕먹으며 종회활동…내키지 않아

수년 동안 종단이나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은 할 만큼 했다. 종단이 좀 맑아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갖은 욕을 먹으면서도 한 것이다.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했다. 이젠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종회의원으로 들어간 것은 무슨 자리 때문이 아니라 종단 개혁을 위해 일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쌍계사에서 추천을 받아 종회에 들어갔다. 그런데 쉽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보면 지난번 종회에서는 내가 발언하려니 발언을 막았다. 내가 발언하겠다고 하니까 기자들을 내쫓고 비공개로 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모른다는 이유에서였다. 종책질의를 해도 총무원 집행부에서 답변을 제대로 하지 않고 문제를 회피하는 등 역할에 한계가 많았다. 종회에서 내가 제일 고령자였다. 상좌뻘 되는 사람들과 종회의원을 하는 것도 마땅치 않았다.

사천에 다솔사라는 절이 있다. 쌍계사와 범어사 간 갈등이 있는 절이다. 이번 종회에서 종회의원들이 결의를 해서 쌍계사 절인데 범어사 것으로 바꿔버렸다. 쌍계사 종회의원으로서 내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 차라리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에 종회의원직을 내려놓겠다. 앞으로 다른 방식으로 활동해야겠다는 생각이다. 구체적인 건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다.


길들여지는 것 경계해야, 익숙해지는 것은 묶인다는 것

야생 곰을 우리에 가둬놓으면 철장 안에서 왔다 갔다 한다. 몇 년을 가뒀다 풀어 놓으면 가둬진 습이 들어서 철장 안에서 왔다 갔다 하던 그대로 움직일 뿐 그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늘 익숙한 것, 편한 것에 길들여져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길들여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길들여지면 편하기는 하지만, 익숙해진다는 것은 다른 의미로 보면 묶인다는 것과 같다.

여당 대표 사위가 마약을 했다고 해서 이슈가 되고 있다. 마약은 중독성이 강하다. 중독은 거기에 묶이고 길들여지는 것이다. 중독은 그것에 노예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와 같이 무엇에 길들여진 것이 없는지 스스로 돌이켜 봐야한다.

부처님의 궁극적 가르침은 해탈이다. 자유로워지라는 것이다. 길들여지지 말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부처님은 심지어 당신의 가르침으로부터도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했다. 어떤 것이 나의 길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길인가? 나는 무엇 때문에 사는가를 물을 때, 삶의 익숙한 것을 회의하면서 길들지 않고 자유를 찾아나가는 것이 수행의 길이다.  

사람들은 “법당에 가서 기도 좀 하면 부처님이 나를 극락으로 보내주겠지”라고 생각 한다. 부처님이나 절대 신에게 자신의 고통과 고민을 맡긴다. 의지하는 것이다. 내 인생을 왜 남에게 맡기나? 잠시 불안으로부터는 벗어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결코 근원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다.

우리의 결정은 과연 올바른 것인가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 끝없이 고민하고 판단하고 결정을 내린다. 올바른 결정을 하는지 늘 돌이켜보고 생각해봐야 한다. 내가 잘한다고 한 것이 어떤 때는 남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요즘 설악산에 케이블카 놓겠다고 하는 것도 같은 것이다. 이미 반은 결정이 났다. 그곳에는 산양 등 우리가 보호해야할 동식물이 많다. 누구는 산양이 그리 중요한가하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구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인간은 지구에서 갖은 악행을 저질러 왔다. 전쟁, 환경 파괴를 일삼는 인간은 지구에 기생하는 가장 악질적인 존재이다. 인간만 없다면 지구가 얼마나 편안하겠나.

사자 등 맹수는 배고프지 않으면 사냥을 하지 않는다. 인간은 배가 고프나 안고프나 죽인다. 재미로도 죽인다. 짐승을 잔뜩 잡아다가 비축한다. 소시지 등이 그 본보기이다. 욕망 때문이다. 욕망을 좇아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돌아봐야 한다.

최근 설악산 인근을 간 적이 있다. 양양군 곳곳마다 케이블카 허가 받았다며 환영 플랫카드 걸렸다. 이유는 돈이 된다는 것이다. 돈만 가치 있는 세상, 돈 때문이라면 뭐든 할 수 있는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다.
 
노동개혁보다 먼저 할 일 많은데

소시민들은 전세 월세 낼 돈이 없어서 고통을 받는다. 우리나라도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처럼 사회보장제도를 잘 갖춰야 한다. 돈 번만큼 세금을 내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보살피는 사회가 돼야 한다. 그래야 사람살맛 나는 세상인 것이다.

정부가 노동개혁을 부르짖고 있지만 노동개혁에 앞서 재벌개혁부터 해야 한다. 귀족노조라며 현대차 노동자들 지적한다. 연봉이 1억 원이라고 한다. 노동자는 연봉 1억 원을 받으면 안 되나? 법조인은 전관예우로 재벌 구속 면케 해 주고 몇 십억 씩 받기도 한다. 이게 더 문제 아닌가?

다른 구조적인 문제는 그대로 두고 노동개혁을 하지 않으면 나라 운영이 안 된다고 한다. 약자에게 희생과 양보를 강요하는 것이다. 노동개혁의 본질은 노동자들 쉽게 내쫓을 수 있고, 적게 임금 주자는 것 아닌가.  해고는 죽으라는 것과 다름이 없다.

사람이 아프면 병원에 가야한다. 돈이 없어서 병원에 못가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공무원이 정직하면 세금 내는 것이 아깝지 않게 된다. 마찬가지로 절에 내는 시주금이나 교회에 헌금하는 것처럼 세금이 아깝지 않아야 한다. 부정부패 비리만 없으면 우리나라도 북유럽 국가들 못지않은 사회복지를 할 수 있다.

행복은 무엇인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의식주 해결뿐만이 아니다. 삶의 가치를 만들어 가야한다.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돈을 넉넉히 갖고 아낌없이 쓰는 것이 행복한 삶인가? 배가 고플 때 밥을 먹어야 맛있는 법이다. 매일 쌀밥 먹으면 쌀밥 귀한 줄 모른다. 남도 나처럼 잘 살면 만족도 줄어든다. 남의 불행에 비춰서 내 행복을 키운다. 이게 사바세계의 삶이다.

분명한 것은 행복의 가치는 물질에 있지 않다. 오죽하면 부처님은 하늘에서 황금비가 내린들 너희의 욕심을 다 채울 수는 없다고 했겠나.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세상을 파멸로 몰고 간다.

진정 행복하려면 어느 것에도 묶이지 않는 자유가 있어야 한다. 물질적인 것뿐 아니라 정신적 자유도 갖고 있어야 한다. 누가 나를 묶었다.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명주실로 묶었다고 가시철망으로 묶인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묶여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똑같다.

내가 어떤 견해를 갖는다면 그것에 묶인 것이다. 묶이는 순간 자유를 잃는다. 부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 것 또한 묶인 것이다.


목불 태워 땔감 쓴 선사처럼

우리는 분별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이렇다 저렇다 판단을 내려야 안심한다. 단하천연(736~824) 선사는 목불을 땔감으로 썼다. 이를 나무라는 주지에게 “목불은 불을 이기지 못하고 토불을 물을 이기지 못한다. 어느 것이 참 부처인가?”라고 되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이고 어떤 것이 참된 것인가? 물어야 한다. 이런 물음을 통해 고정관념을 지우는 것이 수행이다. 무엇보다 우리의 인식, 내 머리 속을 비워야 한다. 어떻게 비워야 하나? 어떤 것이 비워진 상태인가? 우리는 비운다고 애쓰고 수행한다. 그런데 바로 그 비워야하겠다는 생각 때문에 비우지 못한다. 비우려는 생각마저도 없어야 완벽한 비워짐이 된다. 그것이 완벽한 자유이다.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비움에 있다. 철저하게 비워야한다. 기독교가 믿음의 종교라면, 불교는 비움의 종교이다.

내 이름이 ‘명진’이다. 나의 실체는 무엇인가? 이름도 얼굴도 아니다. 내가 나의 실체를 모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가. 무엇이 나인지를 망각하고, 내가 누군지 모른다는 사실조차 잊고 우리는 내 눈앞에 보이는 현상을 따라다닌다. 이것을 불교는 경계에 떨어진다고 표현한다.

늘 집중하고 의심해야

선은 불교의 전유물 아니다. 기독교도 “하나님 아버지 어디계십니까?”하고 찾는다. 도마복음서를 두고 이단이라며 공개를 꺼렸다. 도마복음서에는 선적인 내용이 담겨있다. 하나님이 저 하늘에 있다면 하늘을 나는 새가 제일 먼저 닿을 것이고, 물속에 있다면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가 먼저 닿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하나님이 어떤 특정한 곳에 있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질적으로 물어 들어가는 것을 통해 우리는 선에 들 수 있다. 이게 뭘까? 물어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면 결론은 뭔가? 모른다는 것이다. 선정은 바로 모름이 가득한 상태이다. 집중해서 모르는 이 상태를 지속시키는 것이다. 고양이가 쥐 잡듯이. 의심을 지속시켜야 한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으면 집중이 잘되니 좌선을 하는 것이다. 부처님이 보리수나무 아래 가부좌를 틀고 앉은 것처럼. 부처님은 완벽히 비워짐의 상태에서 별을 보았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었다. 우리가 가야할 길도 바로 그 완벽한 비워짐의 상태, 완전한 자유의 상태다. 그것보다 중요한 일이 없다. 이 가을 우리는 그러한 골똘한 물음을 가지고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면서 살아가기 좋은 계절이다. 모두들 정진하는 가을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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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일/ 2015-09-18 12:09:34
봉은사 주지하시면서 타종교인들은 물론 시민사회 세력들까지도 명진스님께 감화를 받고 법회에까지 그분들이 이어졌습니다. 불자들 빼고요. 그런게 포교에요. 포교라는게 포교원을 차리고 사찰신도수 등록인원 늘려나가는 것만이 포교가 아닙니다.

수행자 답게 말하고 행동하면 포교가 되는 것입니다.
돈문제로 허구헌날 승려들끼리 치고받고 싸웠던, 그래서 망신살만 뻗쳤던 봉은사가 어떻게 됐나요? 주지 스님 법문시 법문을 듣는 분들이 급증했어요.
봉은사나, 일개 승려가 종교내의 시선은 물론 세간의 시선까지 한꺼번에 받아본 적이 성철스님때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성공한 포교를 하셨는데 왜 포교를 안했다고 생각하시는지 모르겠네요.

명진스님은 종단내에서 왕따일 뿐이지 사회에선 존경받는 종교인중 한 분입니다.
네티즌 선정 당대 최고 종교인이기도 하셨습니다.
불교에 대한 이미지, 승려에 대한 이미지를 상당히 개선하신 분입니다.
포교를 아주 잘 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명진스님은 당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정치세력화 하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깨어있는 수행단체, 수행하는 재가자들의 모습을 원했지 그들이 정치 세력화 되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결재철만 되면 선방에 가시는 것도 당신의 승려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는 참다운 모습이 아닙니까. 지지자들도 결재철에 맞춰 수행하면 될 일인데 어떤 분들은 선방 다니는 것 평생하셨는데 이제 안하고 지지자들과 만나고 세상과 만나야 한다고 말하는 분도 계시더군요.

스님은 나이가 드셔도 순수하신데 지지자들이야 말로 매우 정략적인 것 같네요.

그리고 중은 나이가 들면 값어치가 더 나간다는 우스게 소리가 있어요.
행정등 복잡한 일이 아닌 이상 신도들은 나이 많은 고승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아무리 말잘하고 화려한 경력을 가졌더라도 젊은 승려들한테 점수 안줘요.

나이 60이면 아직도 한창 젊은겁니다.
요즘 사회에서도 환갑잔치 하면 욕먹어요, 50전에 다수가 사망하던 시대가 아닙니다.
70먹은 할아버지가 농촌 마을회관에서 막내로 주전자 날르는 시대에요.
승려가 무슨 UFC 파이터도 아니고 ^^ 넘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안타까운 일 2015-09-18 11:49:31
명진스님의 쌍계사 종회의원 사퇴는 불자들이 찬성하고 반대하고 할 것이 없다. 이미 본인이 결정을 내렸고 이유 또한 타당한 듯 하니 제3자가 왈가왈부 할 것이 못 된다. 여기서 아쉬운점은 명진스님 같은 사람이 선승으로 시간만 보낼 것이 아니라 일찍부터 포교에 원력을 갖고 일을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봉은사 주지 할때 이미 60 가까이 되었으니 먼가 새로운 일을 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고, 일을 책임지고 할 만큼 추진력 또한 길러지지 않은 상태에서 나이만 먹었기 때문에 현실을 회피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명진스님 이름으로 정치세력화 하는 거 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제 남은 생을 정리해야 할때 다시 복잡하고 부패한 세계에 몸 담기에는 너무 힘들어 보인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

명진불교문화재단/ 2015-09-18 11:34:14
“구체적으로 보면 지난번 종회에서는 내가 발언하려니 발언을 막았다. 내가 발언하겠다고 하니까 기자들을 내쫓고 비공개로 했다.”며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모른다는 이유에서였다. 종책질의를 해도 총무원 집행부에서 답변을 제대로 하지 않고 문제를 회피하는 등 역할에 한계가 많았다. 종회에서 내가 제일 고령자였다. 상좌뻘 되는 사람들과 종회의원을 하는 것도 마땅치 않았다.”고 토로했다.

자식뻘 되는 종회의원이 가득한 곳에서 저런식으로 공개 망신을 당하고 있는 명진스님의 모습이 안보입니까. 기자들 다 내쫓고 비공개로 진행하면서 명진스님을 더럽게 취급하고 상좌뻘 되는 의원들도 고성을 내며 스님을 비방하는 현실입니다. 인격적으로 스님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곳에 스님이 그래도 계셔야 한다구요?

정말 대단들 하십니다.

스님을 지지한다는 분들이 스님이 처한 현실을 전혀 고려해 주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여러분들의 바람과 달리 스님은 사직을 하셨습니다.
엎질러진 물이 됐는데도 사퇴를 철회해 주십사 한다구요?
여러분들 말씀 듣고 스님께서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생각이 짧았다, 사퇴를 철회하겠다" 이렇게 되면 여러분은 행복하시겠지만 스님 모양새가 참 볼만 하겠죠?
스님의 모양새가 그렇게 구겨지고 초라해 져도 여러분은 종회의원을 가지셨으니 기쁘고 행복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까.

사퇴번복으로 인해 쌍계사 출신도 아닌 명진스님을
쌍계사 할당 종회의원으로 추천하신 어른스님은 또 무슨죄를 지어
문중 도반들에게 욕먹어야 하죠?

복합적으로 종합적으로 사고를 해도 모자랄 판에
좁은 틀안에 갖혀 자기들 입장만 옳다고 우기는 격이 아닐런지요.

나도 명진스님을 지지하는 불자인데
스님께서 쌍계사문중 종회의원으로 나가실때 이런 결과를 예상했습니다.
명진스님은 거대 여당과 존재감 전혀 없는 야로 나뉘어 지리라곤 생각도 못했을 겁니다.
대의, 정의, 명분에 힘이 실리면 의미있는 결과를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셨겠죠.
그런데 권승들은 스님께서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단결력이 대단했고 견고했습니다.
표절,절도,간통,모텔,은처,돈봉투...범계승이자 권승인 이들이 아무런 조치도 받지 않고
방치되는게 우연이 아닙니다.

명진스님이 종회의원으로 의미있는 활동을 할 조건,상황이 전무한데
어째서 종회의원으로 있어야만 한다고 하는지 도통 이해가 안가네요

명진불교문화재단 2015-09-18 10:30:16
다음카페 명진불교문화재단 무도입니다.

개인 사정상 저는 9월 13일 법회에 참석을 못했습니다. 따라 당일 법회 내용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고 이후 불교닷컴에 게시된 기사를 보고 당일 법회 내용과 스님께서 주셨던 말씀을 인지했습니다.

위 기사를 읽고 모임 관련 여러 회원께 연락을 드렸고 회신을 얻었습니다. 회신 주신 일부분은 반대 의견도 주셨지만 다수의 분은 "다른 곳은 몰라도 적어도 우리 모임만큼은 스님 종회 의원 사퇴 철회를 공지로 올려 정중하게 부탁을 드리는 것이 예의에 맞다"였습니다.

이에 따라 모임 회원 758분께 관련 소식을 문자로 보내드렸고 현재 공지 게시판에 8분이 오셔서 의사를 밝혀 주셨습니다. 의견 주신 8분중 2분은 사퇴를 찬성하셨고 6분은 안타까움과 동시 공지의 내용대로 종회 의원 사퇴 철회 부탁에 동의를 해 주신 상황입니다.

우리는 한국불교의 발전과 중흥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당대 현존하는 모든 불자님의 성불을 간절하게 원합니다. 동시 대한불교 장자 종단 조계종의 정상화와 발전을 함께 기대하고 있습니다. 충심입니다.

우리 모임은 2010년 3월 시작했고 단지불회는 2011년 봄에 출범했는데 단지불회 출범시 메인에 단지불회 가입 링크를 걸어 전 회원이 단지불회에 가입하기를 요청했고 대다수의 회원은 단지불회에 가입했습니다.

그 이후 단지불회가 선두에 서고 우리는 뒤로 물러나 조용히 동행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3년뒤 단지불회는 해체됐고 지금 인터넷상 스님과 공사 인연있는 모임은 크게 3군데이며 그 중 하나가 외람되지만 말석의 우리 모임입니다.

위 기사를 쓴 불교닷컴도 현재 저쪽으로부터 1억원의 소송을 당했습니다. 모두가 취급하지 않는 스님 법회 기사를 유일하게 올려준 언론사가 바로 위 불교닷컴입니다. 자리를 빌어 인연있는 불교닷컴 이석만 대표님과 모든 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공간에 의견 주시는 모든분께 정중하게 부탁을 드립니다. 우리 모두 유한한 삶 살아갑니다. 서로 조금씩만 감정을 추스리고 공동의 선을 위해 힘을 모아가면 참 좋겠습니다. 이번 일의 근원은 총무원과 종회의 전횡 독선 독단 비상식에 의한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 기준으로, 원장 스님보다는 명진 스님이 백배 천배 더 훌륭합니다.

불기 2559(2015)년 9월 18일 다음카페 명진불교문화재단 무도 합장

http://cafe.daum.net/lovemjbo/Qmuh/1

사골이냐 2015-09-18 04:56:17
천일기도 재산공개 일요법회 도량조경 등등등등 봉은사때 했던 거 잘한 일 맞긴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쫓겨났다고 고만 좀 우려먹었으면, 성철스님 밑에 같이 있던 도반들이 성철스님 관련 행사나 책 만들면 성철을 뼈다귀까지 울궈먹고 그 뼈다귀 가루까지 내어 환을 만들어먹는 못난이들 취급하더니 그렇게 무시하던 도반들이 성철스님 울궈먹는거나 봉은사 시절 영광을 아직도 울궈먹는 거나 똑같애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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