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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우리나라의 전통문화
fb1x**** 조회수 17,801 작성일2018.09.10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에대해서 알고 싶어요 ㄷ

제가 10분이내로 해야되서 빨리좀 부탁 드립니다

1.우리나라의 전통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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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악놀이

말을 타는 기예

말을 타는 기예

말을 타는 기예

말을 타는 기예

말을 타는 기예

말을 타는 기예

한복을 입고 외줄을 타는 기예 모습

아래는 한복을 입은 아름다운 모습들 입니다.

혼례복

[정의]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혼인할 때 신랑과 신부가 입는 옷.

[개설]

혼례(婚禮)는 성이 다른 남녀가 치르는 일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통과 의례 중 하나로, 혼례 의식에서 착용하는 옷을 혼례복이라고 한다. 과거 혼례를 신부 집에서 하던 시절에는 제천 지역에서는 마을 공동으로 보관하던 혼례복을 입었다. 요즘에는 결혼식장에서 혼례를 하기 때문에 서양식으로 신부의 경우 드레스를 입고, 신랑의 경우 양복을 입는다.

[전통 혼례복]

신부의 집에서 혼례를 올리던 시절 신부는 노란 저고리에 빨간 치마 혹은 연두색 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고, 그 위에 원삼(圓衫)을 입었다. 원삼의 소매는 빨간색, 연두색, 파란색을 사용한 색동 소매의 형태였다. 전체적으로 금박을 수놓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신부의 머리에는 족두리를 쓰고, 두 손 위에는 길게 하얀 천을 덮었다. 신랑의 경우 정해진 색깔 없이 저고리와 바지, 도포를 입고 단령(團領)을 입었다. 머리에는 사모(紗帽)를 쓰고 목화(木靴)를 신었다. 과거 마을에는 공동으로 상례 관련 도구를 보관하는 ‘행상 집’이 있었는데, 혼례 용구도 마을에서 공동으로 보관하는 집이 따로 있었다. 혼례복 역시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혼례 당일 날 빌려 입었다.

[현대 혼례복]

현재 신식 혼례에서 신부는 드레스를 입고 신랑은 양복을 입는다. 예식을 마친 후에도 신부나 신랑 모두 양복을 입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폐백을 드릴 때는 전통 혼례복을 착용하고 있다. 전통 혼례에 대한 관심으로 요즘에는 전통 혼례를 치르는 신랑, 신부도 늘어나고 있다. 전통 혼례를 치르는 경우 향교 등에서 전통 혼례복을 대여하기도 한다. 결혼식을 마치고 친정과 시댁으로 인사를 갈 때 더러 신부의 경우 한복을 착용하기도 한다. 이때 신부는 새댁이라고 하여 노란 저고리에 빨간 치마 혹은 연두색 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는다.

[의의]

제천 지역 혼례복은 다른 지역에 비해 뚜렷한 특징을 찾기가 쉽지 않다.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기성복의 보급으로 인하여 전통적 의미의 혼례복은 사라지고 없다. 그 자리를 기성복 형태의 서양식 복식이 대신하고 있으나 혼례에 대한 기본적인 의미는 변함이 없기 때문에 그 형태만 바뀌었을 뿐이다.

과거나 현재나 혼례 자체에 대한 기본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혼례복은 기성복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기성복 형태로 유지되는 상황 속에서도 폐백을 할 때는 전통 혼례복을 착용한다든지, 갓 결혼한 신부는 새댁이라고 하여 노란 저고리에 빨간 치마 혹은 연두색 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는 것이 변하지 않는 것은 눈여겨 볼만하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우리나라 전통한복 입고 전통혼례 상식

일반적으로 웨딩홀이나 성당,교회에서 결혼식을 진행하는데요~
기억에 남을 만한 결혼식으로는 전통혼례식을 빠트릴수 없는데요
보편화되지 않은 예식의방법이라서 이 분야에서 경험이 많은 전문가와 함께 진행을 하시는게 좋습니다.
의상, 진행순서, 도우미이모님, 음식 등등 예식에 차질이 없도록 미리미리 꼭 체크하셔야 합니다. 특히 여름철에 결혼을 하신다면 조금은 생각을 해보시는게..^^
전통혼례복은 의상이 크기 때문에 이동하기가 힘들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전통혼례를 생각하시다가 일반 예식홀 결혼식 하시는걸로 계획 변경되시는분들도 꽤 많습니다.

2. 한복에 잘 어울리는 우리나라 전통 문화 장신구

1). 비녀와 뒤꽂이
한복에 어울리는 헤어스타일로 가장 무난한 것이 올림머리, 즉 업스타일들이다. 머리가 짧은경우에도 달비라고 하는 부분가발을 이용하기도 한다. 비녀는 뒤쪽에서 가지런히 모아 정리한 쪽머리를 가다듬고 고정하는 역할 외에 장식적인 의미가 크다.
비녀는 볼록하게 장식된 잠두 부분과 몸체로 나뉘며 잠두 부분의 장식이 비녀의 멋을 결정한다. 왕실 여인네들은 용이나 봉황을, 일반 여성들은 대나무나 매화 등의 나무와 꽃이 조각된 비녀를 사용하였다.
비녀와 함께 쪽머리 위에 덧꽂는 헤어 악세사리인 뒤꽂이 또한 한복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는 장신구이다.


<떨잠과 첩지의 생김새>

2). 떨잠과 첩지
원앙 한쌍이 정답게 마주보고 있는 가운데 별과 나비가 날아다니는 형상을 표현한 떨잠. '떨철반자'라고 불리기도 하는 떨잠은 왕비를 비롯한 상류계급의 여성들이 사용하던 장신구이다. '어여머리'나 '큰머리'를 할 때 앞가리마 중심과 양 옆에 꽂첩지는 쪽진머리 앞가리마 중심에 꽂는 장신구이다.



<반지>

3). 반지
예나 지금이나 백년해로의 언약에 있어 가장 중요시하는 상징물이 반지일 것이다. 반지는 부부의 언약과 여자의 정절을 의미하는 장신구로 기혼여성들은 항상 반지를 끼고 다녔다.
반지 또한 그 재료가 다양하여 금, 은을 비롯하여 칠보, 호박, 옥, 비취 등이 주로 애용되었다. 여름에는 시원한 느낌의 은반지 또는 옥, 비취등의 반지를, 겨울에는 금과 칠보 등을 따뜻한 느낌을 주는 반지를 즐겨 끼었다.

<노리개>


4). 노리개
다른 장신구와는 달리 지금까지도 가장 보편화된 장신구가 노리개이다. 가슴선에서 치마폭으로 살짝 내려앉은 노리개는 외형상 섬세하고 화려한 매듭장식을 특징으로 하고있다.
부귀다남, 불로장생의 의미를 갖고있는 노리개는 때론 향주머니로, 때론 호신용 은장도로 멋과 함께 실질적인 의미도 크다.
보통 저고리 고름이나 치마에 다는 것으로 맨 위에 고름으로 연결되는 띠돈, 몸체, 술과 이것들을 띠돈에 연결하는 근목으로 구성된다. 여성들이 패물로 소중히 여기는 노리개는 금, 은, 보석을 재료로 자수와 매듭으로 장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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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주머니>


5), 귀주머니
우리가 흔히 복주머니라 알고 있는 귀주머니는 복을 비는 마음을 담고있는데서 유래되었다. 비단 혹은 양단에 고운자수를 놓아 여인들의 주머니로 사용되었다. 요즘에는 한복지와 같은 원단으로 마무리한 손가방으로 귀주머니를 대신한다.

<버선>

6).버선

<꽃신 신은 모습>7). 꽃신 신은 발의 모습

<꽃신>

8). 꽃신

<꽃신>


< 버선>9). 버선과 꽃신
비단에 꽃자수가 놓여진 꽃신은 한복차림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으로 버선과 함께 치마자락의 아름다운 선을 살려주는 소중한 아이템이다. 여자의 것은 '당혜' 남자의 것은 '태사혜' 라고 불렀으며 한복의 색깔과 어울리는 것을 선택하도록 한다.

3. 우리나라 전통 문화한옥

북부형 겹집과 제주도 민가
같은 겹집구조를 지니고 있지만 제주도는 한랭지의 겹집형과는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온난다습한 기후적 특성으로 상방마루라는 공간이 중앙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 공간은 기후적 스트레스로 인해 옥내생활을 많이 하게 되는 지역에서 발달한 겹집구조에 있어서 내부공간들 사이의 행랑공간으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그리고 전용공간으로서 여름의 양실로서의 기능도 함께 수행하며 겹집의 폐쇄적인 성격을 완화시켜주는 개방적인 공간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제주도 민가가 겹집구조의 형태를 띠는 이유는 공간의 기능분화과정에 있을 수도 있고 유난히 바람과 비, 그리고 여름의 태풍과 같은 기후적 스트레스에 연유할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단동일체형 주가가 아닌 다동분립형 주가의 배치를 이루게 된 것이라고 보여진다. 제주도 전통민가에서 보여지는 건축의 지역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기본적으로 한랭지에서 보이는 겹집형태의 구조이며 다동분립형의 주가구성이 주를 이룬다. 남부지방의 온도가 높은 지역에는

一자형의 민가가 대다수인데, 제주도 민가의 경우에는 건물 자체는

一자형이긴 하지만 별동 배치를 함으로써 전체적으로 비교적 폐
쇄적인 형태를 띠게 된다.겹집구조와 다동분립 배치로 인한 폐쇄성과 상방마루라는 공간의 개방성을 동시에 지닌다. 상방마루가 중앙에 위치하며 육지의 온돌방에 비해 발달이 덜 된 구들이 좌우에 있다. 제주도와 중부의 몇몇 도서를 제외하고는 다른 도서지역의 민가들은 홑집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서해중부 북단의 백령도와 남단의 제주도의 경우는 겹집이 민가의 일반형으로 분포하고 있어 지리적으로 가장 격리된 두 도서에서 겹집구조가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홑집의 분포를 보이는 도서는 모두 연안도서로서 이는 상대적으로 비바람, 눈의 기후스트레스를 덜 받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





일반적으로 홑집은 가옥의 내부의 각 공간이 간벽에 의해 서로 차단되어 폐쇄적 성격을 띠나 외부적으로는 개구율을 높여 개방성을 갖는다. 겹집에 있어서는 이와는 반대로 가옥 외부의 개구율은 낮추어져 폐쇄적 성격이 강하고 내부에 있어서의 각 공간간의 간벽은 개구부를 두어 내적 개방성을 갖게 된다. 이것 역시 민가에 주는 기후요소의 영향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1).우리 나라 전통 주택기와집

중국에서는 기와를 춘추 전국시대에 사용하였다고 하나 우리 나라에서 언제부터 쓰게 되었는지 구체적인 기록이 없어 분명히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삼국사기 신라 본기 지마니 사금 11년 조"에 '큰 바람이 불어서 나무가 꺾이고 기왓장이 날렸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우리 나라에서는 기원 전후한 시기에 궁궐이나 큰 건물에 기와를 덮엇던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일본 서기"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목조 건물이라고 하는 법륭사를 지을 때, 백제에서 기와 박사 네 사람이 일본에 건너 가서 기와를 구어 주었다고 하므로 7세기 경에는 기와를 굽는 기술이 외국에까지 널리 알려질 정도의 수준에 올라 있었던 듯하다.

정읍 김동수가옥의 사랑채 기와집

기와를 기와장이가 얹는다. 예전에는 기와를 만들 때, 큰 틀 안에 모래와 흙 그리고 물을 붓고 나서 소로 하여금 이리저리 밟고 다니도록 해서 잘 이긴 뒤에, 이 흙을 기틀에 넣어 꼴을 잡아 말리고 잿물을 발라 가마에 넣어 구었다. 따라서 큰집을 지을 때에는 돈을 미리 주고 필요한 수량의 기와를 맞추어 두어야 하였다.

서민 가옥의 기와 일은 먼저 암기와를 나란히 깔고 사이사이에 숫기와를 덮고 나서, 숫기와 앞에 흙과 백토로 빚은 아귀토로 막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러나 잘 짓는 집에서는 암막새를 먼저 놓고, 암키와를 서너 겹으로 겹쳐 깔아서 한두 장이 깨져도 물이 새지 않도록 한다. 수키와도 역시 숫막새를 먼저 놓고 홍두깨흙을 얹은 뒤에 덮어 나간다. 지붕 마루에는 적새라 하여 암기와를 여러 겹으로 쌓아 올리고 맨 위에 숫기와를 덮는다. 따라서 암기와를 많이 덮을수록 지붕 마루가 높아져서 집 자체가 커 보인다.

어떤 기와집에서는 복문이라고 하여 적새 위에 숫기와를 얹을 때, 한가운데의 두 장을 서로 어스러지게 팔자(八字) 모양으로 마주 세워 두는 일이 있다. 이를 세울 때 주인은 기와장이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므로 상량을 올리는 날이 목수의 생일이라고 하듯이 이날을 기와장이의 생일이라고 한다. 민간에서는 이 문으로 복이 들어 온다고 하나 까치구멍처럼 원래는 채광이나 배연을 위해 마련해 두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한편 팔작 지붕의 경우에는 지붕 마루마다 망와라 하여 도깨비 모양의 암막새를 얹는다. 망와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귀면에 가까우나 뒤에 점차 약화되어 왔으며, 곳에 따라서는 태극이나 주역무늬가 새겨진 것을 쓰기도 한다. 근래에는 사람 얼굴모양의 것을 많이 얹으며 단지 꽃잎을 양각한 것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망와는 잡귀를 물리쳐 준다는 속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2). 우리 나라 전통 주택초가집

볏짚을 언제부터 지붕에 덮기 시작하였는지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으나, 벼농사가 시작된 삼국 시대에 이미 이것을 사용했으리라고 추측된다.

볏짚은 속이 비었기 때문에 그 안의 공기가 여름철에는 내리 쬐는 햇볕을 감소시키고, 겨울철에는 집안의 온기가 밖으로 빠져 나가는 것을 막아준 다. 그리고 겉이 비교적 매끄러워서 빗물이 잘 흘러 내리므로 두껍게 덮 지 않아도 스미지 않으며 누구든지 이를 쉽게 덮을 수 있어 편리하다. 또 초가 지붕은 짚 자체가 지닌 성질 때문에 따뜻하고 부드럽고 푸근한 느낌을 주며, 한 해에 한 번씩 덧덮어 주므로 집에 각별한 치장을 하지 않아도 거의 언제나 밝고 깨끗한 모습을 보여준다.

지붕의 물에는 매우 완만하기 때문에 농가의 마당이 좁을 때에는 고추 따위의 농작물을 널어 말리며, 천둥 호박이나 바가지의 덩굴을 올려서 지붕을 밭의 일부로 사용하 기도 한다. 짚으로 지붕을 잇는 방법에는, 비늘 이엉법과 사슬 이엉법의 두가지가 있다.

앞의 이름은 그 모양이 물고기의 비늘을 닮은 데에서 온 것으로 짚 의 수냉이를 한 ? 정도 밖으로 내어서 엮는 방법이다. 길게 엮은 날개 두 장을 이엉 꼬챙이로 꿰어 올린 다음, 지붕의 앞뒤를 덮고 남은 부분으로 좌우 양쪽의 벽을 가릴 수 있다. 수명은 사슬 이엉보다 오래 간다.

초가집

한국민속촌에는 약 270여 동에 이르는 전통 가옥이 지방별로 특색을 갖추고 있으며 당시 생활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습니다.

사슬 이엉은 수냉이가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일정한 크기로 엮은 날개 수십 장을 둥글게 말아서 지붕 위로 올린 뒤에, 멍석을 펴듯이 펴 나가면 서 지붕을 덮는 방법이다. 처음에는 수냉이가 처마 밑으로 오도록 깔고, 다음에는 이와 반대로 하여 덮어 나간다. 사슬 이엉으로 이으면 지붕의 표면이 매끈하며,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적당한 간격을 두고 새끼를 늘여 서까래 끝에 잡아 맨다.

우리나라의 서북지방에서는 주로 비늘 이엉으로 그리고 나머지 지역에서는 사슬 이엉으로 덮는다. 이렇게 이엉으로 지붕을 덮은 뒤에는 용마루에 용구새를 얹어서 마무리 짓는다. 이것은 빗물이 잘 흘러 내리게 좌우양쪽으로 비탈이 지도록 솜씨 있게 엮어야 한다. 또 바람이 심한 데에서는 바람에 날리는 것을 막기 위 해 새끼를 그물처럼 엮어서 덮는다.

충청도에서는 가로로 길게 매는 것을 '장매', 세로로 짧게 매는 것을 '가르매' 라고 하며 서까래 끝이 썩지 않도 록 이엉을 길게 늘어뜨리는 것을 '지스레미'라고 한다. 초가지붕은 대체로 모임 지붕의 형태를 이루나 겹집인 경우 이른바 까치 구멍이라고 하여 용마루를 짧게 하고 좌우 양끝의 짚을 안으로 욱여 넣어 서 까치가 드나들 만한 구멍을 내어 두는 일이 있다. 이 구멍으로 집안에 햇볕이 들어 오고 연기가 빠져 나가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멍은 초 가집뿐만 아니라 너와집이나 굴피집에서도 볼 수 있다.

또 기와집에는 양 합각에 작은 구멍을 내거나 창을 달며 구멍에 덮개를 장치하고 집안에서 여닫기도 한다. 전남의 장흥, 강진, 보성 등지의 초가 지붕 위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유지기라는 것이 있다. 이들 지역에서는 초가 지붕의 용마루에 굵은 통대나무나 통나무를 가로 지르고 이 위에 용구새를 덮는데, 나무와 나무 의 이음새나 좌우 양측에, 볏짚 한 단 가량을 단단히 묶어 매고 수냉이쪽 을 낫으로 잘라서 가즈런히 한 다음, 이것을 거꾸로 용마루에 잡아 매어 서 마치 상투를 틀어 올린 모양을 이룬다. 유지기는 한 지붕에 하나만 세 우기도 하나 두세 개를 올린 집도 있다.

3). 우리 나라 전통 주택너와집

너와를 강원도에서는 느에, 또는 능애라고도 한다.

이것은 2백 년 이상 자란 소나무 토막을 길이로 세워 놓고 도끼로 쪼갠 작은 널판이다.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나 보통 가로 20~30 센티미터, 세로 40~60센티미터이며 두께는 5센티미터 내외이다. 지붕의 용마루 쪽으로부터 끝을 조금씩 물리면서 덮어 나가며 바람에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해 군데군데에 돌을 얹어 둔다.

강원 삼척 신리 너와집

너와는 70장을 한 동이라고 하며 한 간 넓이의 지붕에는 보통 한 동 반에서 두동쯤이 들어간다. 너와 한 장의 수명은 5년 내외이며 기와 지붕을 수리할 때처럼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썩은 것을 갈아 내고 새것으로 바꾸어 끼운다. 이것으로 지붕을 덮을 때, 방 천장에는 느리개를 30센티미터쯤의 너비로 가로 놓고, 이를 중심으로 해서 잔나무를 촘촘하게 붙여 천장으로 삼으나 정지나 마구 등에는 천장 시설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에는 굴뚝으로 빠지지 못한 연기가 너와 사이로 뿜어져 나오므로, 지붕이 불에 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4). 우리 나라 전통 주택굴피집

굴피는 상수리나무의 껍질로, 산간 지대에서는 이것을 벗겨서 지붕을 덮기도 한다. 이십여년 이상 자란 나무의 껍질이지만 크기를 일정하게 벗겨 낼 수는 없으므로, 이를 덮은 지붕을 보면 마치 누더기를 걸친 것처럼 심한 불균형을 이룬다. 굴피는 대기가 건조해지면 바짝 오므라 들어서 군데군데 하늘이 보일 정도가 되지만 비가 내리든지 하여 습도가 높아지면, 이내 늘어나서 틈을 메운다. 이음새에는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돌로 지질러 둔다. 굴피 지붕의 수명은 매우 긴 편이어서 '기와 만 년에 굴피 천년'이라는 말이 전한다.

굴피껍질로 이은 지붕

5). 우리 나라 전통 주택귀틀집

귀틀집은 목재가 풍부한 산간 지대의 주민들이 짖고 살던 원시 주기의 한 가지이다. 둥굴이 나무를 가로 세로 우물 정자 모양으로 쌓아 올려서 벽체를 삼으므로 이를 방틀집, 또는 말집이라고도 한다.

양끝을 우묵하게 쪼아 낸 자리에 나무를 얹어서 움직이지 않도록 하며 나무와 나무 사이의 벌어진 틈에는 진흙을 발라 막는다. 벽체가 완성되면 느리개를 놓고 이에 산자를 깐 뒤에 흙을 발라 천장을 삼으며 이 위에 지붕틀을 덧씌운다. 따라서 귀틀집의 지붕은 맞배 지붕을 이루며 기둥이라고는 천장에서 마룻대를 받치는 동자 기둥 하나를 세울뿐이다. 지붕틀과 천장 사이의 합각은 수장 공간으로 이용된다.

백두산 일대의 귀틀집

지붕에는 너와를 덮으며 이것이 바람에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해 군데군데에 돌을 얹거나 통나무를 띄엄띄엄 걸쳐둔다.다른 나라에서는 서너 간의 집을 모두 귀틀로 만드나 우리 나라에서는 두 가늬 방만을 귀틀로 하고 부엌이나 마구 등의 공간은 일반 가옥처럼 널벽을 쳐서 벽을 삼고 나머지 공간은 기둥, 도리, 들보 등을 짜맞추는 가구식으로 꾸민다.

고구려에서는 부경이라 하여 창고를 귀틀로 짜서 만들었으며 이러한 것은 최근에까지 강원도와 경남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귀틀집에 대해 "삼국지 동이전 변진조"에 '나무를 옆으로 뉘어 쌓아 올려서 마치 감옥처럼짓는다'고 기록되어 있어 이 집의 역사가 매우 오래됨을 알 수 있다. 귀틀집은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만주, 시베리아, 미국의 록기 산맥, 북구의 스칸디나비아 반도 일대에도 퍼져 있었다.

6). 까치구멍집

안방 ·사랑방 ·부엌 ·마루 ·봉당 등이 한 채에 딸려 있고, 앞뒤 양쪽 으로 통하는 양통집의 속칭. 지붕 용마루의 양쪽에 공기의 유통을 위하여 구멍을 낸 모양이 까 치둥지와 비슷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한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주택을 평면구성으로 볼 때 외통집 ·양통집 ·곱은자집 ·겹집으로 나 눌 수 있다.

양통집은 처음에는 대개 6칸 집인 것이 8칸 ·10칸 또는 그 이상으로 발전하였다.

양통형 집은 안동지방뿐 아니라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동해안 산간 지방에서 아직도 많이 볼 수 있는데, 구조가 한국집의 고대양식이 라는 점에 특별한 의의를 가진다. 증거로서 낙동강 유역에서 출토 된 가야(伽倻)시대의 가형토기(家形土器)가 6칸 양통집과 외형이 같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으나, 근래에 발굴된 대부분의 선사시대 주거지가 모두 통간이기는 하지만 평면구성이 양통형이라는 점이 다. 고대사회에 하부계층 사람들의 집이 반구덩식[半竪穴式]이었던 점으로 보아 양통집은 부유한 계층 사람들의 집이었을 것으로 본다.

7). 우리 나라 전통 주택움집

움집의 바닥은 대부분 장방형을 이루나 방형의 것도 있으며 기둥을 두 줄로 세워서 벽과 지붕이 나뉘어지고 지붕은 맞배 지붕이나 모임 지붕의 형태를 이룬다.

이러한 집자리는 압록강, 두만강, 대동강 그리고 한강 유역에 많으며 앞의 움막이 빗살문 토기 시대의 주거임에 반해, 이것은 농경이 발달된 무문 토기 시대에 들어와 발생하였다. 이 집은 무엇보다 벽과 지붕이 분화되어 움막처럼 땅을 깊이 파고 지을 필요가 없어졌으며 이에 따라 벽이 땅으로 반쯤 들어가는, 이른바 '반움집'이었다가,

초기 철기 시대에 들어 와서는 모두 땅 위에 세워진다. 지붕에는 용마루가 생겨나며 이를 의지하여 원시적인 서까래를 걸고 짚 따위를 덮은 뒤에 흙을 얹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붕면에 채광 시설을 마련하고 맞배 지붕의 좌우 양측에는 배연을 위한 구멍을 내었으리라고 생각된다.

벽은 수직으로 세운 기둥과 기둥 사이에, 통나무나 널판을 가로 질러 대어서 꾸몄을 것이다. 그것은 지상에 세웠던 집자리에서 벽에 판자를 대었던 흔적과 불에 탄 널판이 나왔고 기둥 자리가 촘촘하지 않고 띄엄띄엄 있던 접으로 미루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영암선사시대유적지에서 재현한 움집

움집은 규모 또한 커서 장방형의 한 면이 4~7미터이고, 넓이는 50~60입방미터에 이른다. 그러나 서기 7세기쯤의 것으로 추측되는 경기도 파주군 덕은면의 집자리 중에는 깊이가 40~90센티미터, 동서 15.7미터, 남북은 3.7미터가 되는 것도 있다.

움집의 기둥 구멍은 모두 수직을 이루며 기둥이 주저앉는 것을 막기 위해 주추를 놓은 집도 있고, 어떤 집자리에서는 간을 막은 흔적이 나타나기도 하여 공간 분화의 가능성을 추측하게 한다. 움막에서는 중앙부에 있던 화덕이 어느 한 쪽으로 밀려 나며 두 개의 화덕을 갖춘 집도 있고 출입을 위한 층계나 비탈이 없는 경우도 많다.

움집은 서너 집 내지 백여 호가 모여 마을을 이루는 것이 보통이며 앞에서 말한 파주의 어떤 집자리에서는 여러 가지 연장들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공동 작업장으로 이용되었던 모양이다. 이 때에 공동 작업장이나 공동 집회소가 있었을 것은 상상하기에 어렵지 않은 일이다. 같은 움집 안에서도 안쪽을 상청, 가운데를 중청, 문간 쪽을 하청이라 하여, 노인들은 상청에 그리고 젊은이들은 하청에 모여 앉아 장기나 바둑을 두거나 짚신 등을 삼는 작업을 하였다.

8). 우리 나라 전통 주택토담집

움집이 불편하다고 느끼게 되자 인류는 지상으로 탈출을 시도한다. 최초의 지상 건물이 어떤 유형이었다는 정설이 없다. 지역마다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포괄해서 어떤 모습이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남쪽에서는 오두막집이 이미 지상에 노출되어 있었으므로 움집의 지상 노출은 지역적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 북방에서도 구들 시설이 필수였다면 벽체도 든든하고 두툼해야 겨울을 날 수 있었을 것이다.

전남 나주 ?야마을 토담집 전경

토담집벽면

고구려 터전에서 발굴되는 구들 시설이 있는 건물 벽체가 상당히 완고한 것으로 보아 지상에 노출된 최초의 집은 벽이 두꺼웠으리라 생각된다. 시골에 남아 있는 벽이 두꺼운 원초적인 토담집이 이런 유형의 초기 흔적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한다. 대단히 완고하게 생겼고 개중에는 마루가 없는 원초형 토담집도 있다.

4. 우리나라의 전통 문화 음식

1). 외국인이 더 좋아하는 전통 한식 쇠갈비구이

쇠갈비 600g, 양념장(배 1/2개, 진간장 물엿 4큰술씩, 술 깨소금 다진 마늘 1큰술씩, 통마늘 6족, 참기름 1/2큰술, 후춧가루 1작은술, 녹말가루 조금)

만드는법

갈비양념구이는 대개 숯불이나 가스불에 굽지만 오븐 레인지에 구우면 열 손실이 적어 조리시간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오븐에 갈비를 구우면 숯불이나 가스불에 구웠을 때 생기는 특유의 노란색과 질감이 덜하므로 양념장에 녹말가루를 섞어 고기 겉면에 윤기가 돌게 할 수 있다.

오븐에 갈비를 구울 때는 불의 세기는 13분 정도 예열하여 내부 온도가 25도 정도된 다음 고기를 넣고 10분 굽다가 뒤집어서 5분 더 굽는다.

1). 쇠갈비의 살 부분을 망치로 두들겨 고루 펴서 고기가 연해지도록 한다. 조리용 망치가 없을 때는 칼등으로 두들긴다.

2). 배는 강판에 갈아 즙을 내고 통마늘은 마늘쪽 모양을 살려 얄팍하게 저민다. 진간장에 물엿 깨소금 등 양념장 재료를 넣고 배즙과 마늘을 넣고 잘 저어준다.

3). 준비한 양념장에 갈비를 한 조각식 넣고 숟가락으로 고루 끼얹어 넓은 그릇에 담아 1시간 이상 재운다.

4). 프라이팬이 뜨겁게 달구어지면 양념장에 재운 갈비를 굽는다. 한쪽면이 충분히 익은 후 뒤집어야 맛의 손실이 없다. 너무 센 불에 구우면 갈비에서 물이 나오므로 불조절에 신경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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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이동갈비한우 중 질 좋은 암소고기를 선별하여 참나무 숯불에 구워내기 때문에 맛이 독특하면서도 매우 좋다고 한다.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장암리 영평천 주변에 약 20여개 이동갈비 점포가 늘어서 있어 갈비촌을 형성하고 있다.

2). 전통 한식 떡갈비

소갈비살 5대 분량, 갈비양념(간장 1 1/2큰술, 소금 1큰술, 설탕 2큰술, 쪽파 5뿌리, 다진 마늘 2큰술, 청주 1큰술, 참기름 1큰술, 깨소금 1큰술, 후춧가루 조금)

만드는법

1). 갈비는 기름, 힘줄을 다 떼어버리고 얇게 저며 펼쳐서 갈비살로만 준비한다. 구이용으로 손질해 놓은 것을 사도 좋다.

2). 발라낸 갈비살은 0.3cm 굵기로 채썬 다음 다시 반대 방향으로 놓고 잘게 다진다. 알갱이가 씹힐 정도로 다져야 떡갈비 특유의 씹는 맛이 있다.

3). 큰그릇에 잘게 썬 갈비살을 담고, 송송 썬 쪽파, 다진 마늘, 간장, 청주, 설탕, 참기름, 깨소금, 소금을 넣고 한참 주물러 양념한다.

4). 양념한 갈비살은 넓적하고 동그랗게 뭉쳐서 손바닥으로 한참 두들겨 준다. 그래야 고기가 부서지지 않는다.

5). 양면 석쇠에 놓고 숯불에서 바로 구워 먹는 것이 좋으나 집에서 숯불을 사용하기는 번거로우므로 오븐에 굽는 것도 간단하면서도 비슷한 맛을 낼 수 있다

3). 전통 한식돼지갈비구이

재료

돼지갈비1.2kg, 흑설탕4큰술, 청주약간, 파200g, 마늘80g, 참기름4큰술, 진간장5큰술,

만드는 법

1). 갈비를 7~8cm의 길이로 자른다.

2). 갈비뼈의 양가에만 살이 있는 것은 조리용 가위나 칼로 살 부위에다 약 0.7cm 너비로 칼집을 넣고 뼈의 양면 힘줄에도 칼집을 낸다.

3). 갈비뼈 한편에 두꺼운 살이 붙어 있을 경우에는 먼저 길이로 칼집을 넣은 다음 양면으로 다시 칼집을 낸다.

4). 다진 파, 다진 마늘, 참기름, 청주, 흑설탕, 진간장을 함께 섞은 것을 손질해 놓은 갈비에 고르게 묻혀 사이사이까지 양념이 베게 한다,

5). 석쇠를 뜨겁게 한 다음 갈비를 앞뒤로 고루 굽는다. 이때에 갈비를 재웠던 양념장을 바르면서 구우면 윤기가 난다.

참고 갈비에는 살과 힘줄 조직이 마치 층을 이루듯 섞여 있어 연하지는 않지만 암돼지의 갈비를 골라서 잘게 칼집을 넣어 손질하여 구우면 살코기와는 다른 좋은 것이다.

4). 전통 한식갈비찜

만드는 법 재료 및 분량쇠갈비(찜용) 2㎏, 무 200g, 당근 200g, 밤 5톨, 은행 10알, 대추 8개, 건표고 4장, 마늘 5개, 대파 1뿌리, 청양고추 3개, 통후추ㆍ청주 약간씩

양념장 : 간장 1컵, 청장 2큰술, 설탕 1/2컵, 다진 마늘 2큰술, 다진 파 4큰술, 후춧가루 1작은술, 배 1/3개, 참기름 3큰술, 깨소금 3큰술,

만드는 법

1). 갈비를 5㎝로 토막을 내어 찬물에 담가 핏물을 뺀다.

2). 냄비에 갈비가 잠길 만큼 물을 붓고 통마늘, 대파, 청양고추, 통후추, 청주를 넣고 푹 삶아 체에 거른다.

3). 삶은 갈비는 건져서 결 반대로 칼집 2~3번 넣고 국물은 차게 식혀 기름을 걷어 낸다.

4). 무, 당근은 둥글게 다듬고 마른 표고는 불려서 적당한 크기로 썬다. 밤은 껍질을 벗기고 대추는 씨를 발라 두고 은행은 볶아서 껍질을 벗긴다.

5). 배는 갈아서 즙을 내고 나머지 분량을 넣고 갈비 양념장을 만든다.

6). 냄비에 기름을 걷어 낸 국물을 붓고 양념장을 넣고 손질한 갈비를 넣어 끓인다. 중간 불로 낮추어 무, 당근, 마른 표고버섯, 밤, 대추, 은행을 넣고 뭉근하게 찜을 한다.

1). 준비한 사태, 양, 무, 당근은 각각 덩어리째 무르게 삶아 사태와 양은 큼직하게 저며 썰고 무와 당근은 비슷한 크기에 가로2-3cm로 썰어 놓는다.2). 썰어놓은 사태와 양은 갖은 양념으로 무쳐 놓는다.3). 천엽은 소금으로 주물러 씻어 잔칼질을 해놓고 생선은 포를 뜬다.4). 손질한 처녑과 생선은 소금과 후추 가루를 뿌려 간이 배게 한 다음 밀가루와 달걀 물을 입혀 전을 지진다.5). 준비한 안심의 100g만 얇게 저며 썰어 갖은 양념을 해 놓고 50g은 다져 놓는다.6). 두부는 칼을 비스듬이 하여 으깨놓는다.7). 안심 다진 것과 두부 으깬 것을 섞어 갖은 양념을 한 뒤 직경 1.5cm크기로 완자를 빚는다. 밀가루와 달걀 물을 씌워 기름 두른 팬에 노릇하게 쪄낸다.

5). 전통 한식 불고기

옛날에는 너비아니라고도 했다. 돼지고기로 만든 것은 따로 돼지불고기이라고 한다. 구이에는 결합조직이 적고 지방질이 조금씩 산재해 있는 고기가 맛이 있고 연하기 때문에 안심이나 등심 등의 부위가 가장 많이 사용된다. 연한 고기를 얇게 섬유를 끊어 저며서 가로세로로 잔칼질을 한 다음 배즙이나 청주, 설탕 등에 버무려서 잠시 놓아둔다. 이렇게 하면 효소 작용이 활발해져서 고기가 연해진다. 진간장에 다진 파, 마늘, 깨소금, 생강즙, 후춧가루, 참기름 등을 넣고 잘 주물러 약 30분간 쟁여 두었다가(30분 이상 경과되면 맛이 없어진다)먹을 때 중불에서 천천히 굽는다.

고기의 단백질인 미오신과 미오겐은 40℃ 전후에서 응고하는데, 이러한 단백질의 응고점 전후가 가장 맛이 좋기 때문이다. 불고기판을 먼저 불에 올려놓고 육수를 부은 다음 고기를 고루 펴놓고 익기 시작하면 1번만 뒤집어서 익힌 후 먹도록 한다. 석쇠로 구울 때는 먼저 석쇠를 불에 얹어서 달군 다음에 고기를 펴놓고 센불에서 겉만 재빨리 익힌 후 중불에서 속까지 익히면 고기국물이 빠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고기를 양념할 때 참기름을 처음부터 치면 양념의 맛이 배어들지 못할 뿐만 아니라 효소작용이 억제되어 고기가 질겨지므로 마지막에 넣도록 한다. 염통, 콩팥, 간 등도 같은 방법으로 구워낼 수 있다.

불고기 만드는 법

재료(5인분): 쇠고기 2½lbs, 적포도주 3큰술, 후추 ½작은술, 참기름 ⅓컵, 중간크기양파 ½개, 흑설탕 3큰술, 진간장 ⅓컵, 다진마늘 2큰술, 잣가루 2큰술, 볶음깨 1큰술, 녹차가루 ½작은술, 물엿 2큰술, 사이다 2큰술

1). 불고기 요리는 크게 양념 만들기, 고기양념에 재기, 불에 굽기의 과정으로 만들어진다.

2). 양념만들기 - 양파는 사이다와 함께 믹서로 곱게 갈아 준비하고 진간장, 참기름, 적포도주, 물엿, 다진마늘, 후춧가루를 넣어 잘 섞어 놓는다.

3). 고기재기 - 먼저 얇게 썰어 놓은 쇠고기를 준비해서 녹차가루와 흑설탕을 고기에 넣어 잘 섞어 양념이 잘 스며들도록 잘 주물러 준다.

4). 고기 굽기 - 불고기용 구이 판이나 석쇠, 프라이팬은 미리 뜨겁게 달구고 고온의 구이판에서 뒤집어가며 식성에 맞게 익혀 먹는다.

5). 이렇게 구워진 고기를 상추, 깻잎, 쑥갓 등 각종 야채로 쌈을 싸서 함께 먹는데 취향에 따라 된장으로 만든 양념장을 곁들이기도 하고 마늘이나 고추등을 함께 싸먹기도 한다.

6). 전통 한식 육개장



2018.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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