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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우리날 전통문화에 대해 자세히 가르쳐 주세요.
prin**** 조회수 14,602 작성일2018.07.16

초등학교5학년숙제입니다. 오늘안에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급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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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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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예절, 의식 1위, 사회문화 1위, 폭행 15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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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질문에 답변을 합니다.

 

우리날 전통문화에 대해 자세히 가르쳐 주세요.

초등학교5학년숙제입니다. 오늘안에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급해요

 

1.우리나라의 전통문화

 

답변 : 님이 요청하신 우리나라 전통 문화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럼 의식주 그리고 한옥 등등 너무 많아 다는 올리지 못하고 인터넷 용량이 되는데 까지 한번 올려봅니다. 

 

 우리나라 전통 문화

 

 

1. 우리나라 전통 한복(韓服) 복장

 


한복(韓服)의 유래

 

한복(韓服 문화어 : 조선옷)은 한민족 고유의 옷이다. 이어져 개량되며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역사적으로 한민족은 고유한 의복을 입었으며 위정자와 귀족은 외래 문물의 영향을 받은 복식을 도입해 입으면서 유행을 만들어 내고 격식에 따라 다른 옷을 입기도 하였다. 색이 들어간 천은 관복으로서 각 시대의 위정자가 내린 복식금제에 따라 다른 양상을 띠었으나 대다수의 평민들은 흰색 옷을 즐겨 입었으며 한복의 기본 구성인 치마와 저고리, 바지 등은 변치 않고 오랜 세월 동안 기본 골격을 유지하고 있다.

한복은 전통 복식으로서 나타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기본적으로 상체가 길고 하체가 짧은 한국인의 체형에 따라 만들어졌기 때문에 활동성을 중시하며 딱 붙는 옷이 아니어서 살집이 있다고 해도 꾸밈에 따라 아름답게 보일 수 있다. 또한 천 자체를 보면 직선형이지만 몸에 입을 경우 곡선이 살아나게 도와주는 미적 특징도 나타나는데 이는 주머니가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기모노나 한푸 등 이웃 국가들의 복식과 달리 한복은 저고리와 치마, 즉 상·하의가 분리되어 있어 형태상으로 구분된다. [네이버 백과사전]

 

 

우리나라 전통 한복의 종류

 

1). 남자 의상 한복

 

1) 평상복

① 속옷 : 속적삼, 속고의
② 저고리 : 적삼, 겹저고리, 솜저고리
③ 바지 : 고의,잠방이,겹바지,솜바지
④ 조끼,마고자,두루마기

 

2) 예복

① 평례복 : 평상복위에 두루마기
② 혼례복 : 평상복위에 옥색 두루마기,관복,각대,사모,목화,포선
③ 상례복 : 바지 저고리에 베 중단,굴건제복

             

3) 전통혼례복

(1) 사모관대
신랑이 입는 옷은 보통 '사모관대'라 일컬어지는 관복 일습인데,
평민 양반의 구별 없이 사모,단령,흉배,각대,목화를 착용했습니다.
 
2) 사모
사모는 원래 직품을 가진 자가 평상복에 착용하던 것이나,

직품을 갖지 않은 자라도 혼례때에는 이를 쓰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

재료는 검정색 실이며 뒤쪽에 붙은 양쪽 날개에는 구름 무늬를 넣었습니다.
 
3) 단령
단령은 관직자가 평상복으로 입던 옷으로,

작품에 따라 홍색,청색,흑색 등의 비단으로 만들었으며,

혼례 때에 입던 단령은 주로 청색계통이었습니다.
단령에는 흉배를 다는데, 보통 두 마리의 학이나 구름 등의 모양으로 수를 놓았습니다.
단령을 입은 뒤 허리에는 각대를, 신발로는 목화를 착용하였습니다.
 
4) 목화
목화는 원래 조선조 때 문무백관이 평상복에 신던 신발인데, 혼례 때에는 서민들이 신었습니다

 

 

2). 우리나라 여자의상 한복

 

1) 평상복

① 속옷 : 속저고리,속적삼, 다리속곳,속속곳,바지,단속곳
② 치마

 - 모양(통치마,풀치마,스란치마)
 - 안감의 유무(홑치마,겹치마)
③ 저고리

 - 봄·가을 (물겹저고리, 박이겹저고리)
 - 여름 (적삼, 깨끼저고리)
 - 겨울 (솜저고리)
④ 마고자,배자,두루마기,버선

 

2) 예복

① 평례복

 - 젊은이(다홍 치마,노란색(연두색) 회장저고리)
 - 중년이후(남치마,옥색 회장저고리)
② 소례복 : 당의,화관(족두리)
③ 혼례복 : 원삼(활옷),한삼(흰수건),화관(족두리),용잠,도투락댕기
④ 상례복 : 깃 광목으로 지은 치마,저고리,흰 족두리,짚과 삼으로 엮은 띠,짚신
⑤ 기제사복 : 옥색 치마 저고리

 

3) 전통혼례복

1) 활옷
원래는 궁중에서 의식이 있을 때에 왕비가 입던 대례복이었으나,

후에는 서민의 혼례복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활옷은 홍색비단에 청색으로 안을 받쳐서 만들었는데

이는 청색(여성)과 홍색(남성)의 화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 원삼

고려시대부터 대례복으로 궁중여인들과 신부의 웃옷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황후는 황색, 왕비는 홍색, 비빈은 자색, 공주나 옹주는 녹색원삼을 입었는데,
그 중에서 녹색원삼이 서민층의 혼례식에 사용되었습니다. 민간 원삼에는 금박을 하지 않았습니다.

 

3) 대대
홍색 공단에 심을 넣어 만들어 금박무늬를 찍습니다.
활옷이나 원삼을 입은 뒤 앞가슴께에 대대의 중앙이 오도록 대고
양쪽으로 돌려 뒤에서 묶어 늘어뜨립니다.
 
4) 스란치마/대란치마
스란치마는 소례복에 입고, 대란치마는 대례복에 입던 치마입니다.
금박무늬가 찍힌 천을 덧댄 스란단을 한 층 뭍인 것이 스란치마리고, 두 층 붙인 것이 대란치마입

니다.
가례나 길례 때는 속에도 남색 스란치마를 입었습니다.
 
5) 족두리
원래 몽고에서 여인들이 외출할 때에 쓰던 일종의 모자였으나,
고려말 우리나라에 들어온 뒤로 모양이 왜소해져 머리장식품으로 변하였습니다.
영조 때의 가발금지령에 따라 왕비나 세자빈이 칠보족두리를 쓰면서부터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는

데,
궁중이나 양반집에서 의식용으로 소례복에 족두리를 썼습니다.

 

 

3). 전통 의상 한복의 특징 및 우수성

 

1). 한복은 아름답고 우수성 및 특징이 있는 옷입니다.

   한복의 아름다움은 세계인들이 인정하는 의상입니다.

   사선과 직선의 아름다움 - 동정, 버선코처럼 살짝 들어올린 아름다움 - 섶코,

   처마의 곡선을 보는 듯한 도련과 배래, 오방색을 사용하여

   화려하면서도 품위있는 아름다움으로 품위를 살린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간직한 옷입니다.


2). 한복은 건강을 지켜주는 옷입니다.

   한복은 평면재단으로 넉넉하게 만들어 몸을 조이지 않음으로 건강에 아주 좋습니다.

   “가슴 위는 차게, 배꼽 아래는 따뜻하게 하여야 건강하다”는 한방의 이론에 잘 맞습니다.

   목 부위는 시원하게 터주고, 허리끈과 대님으로 겨울의 찬바람을 막아줍니다.

   또 “삼음교”라는 경혈자리에 대님을 묶어 비뇨기과 계통의 건강을 돕습니다. 


3). 한복은 더불어 사는 옷입니다.

   넉넉한 품과 허리로 키만 비슷하면 내옷 네가 입고, 네옷 내가 입을 수 있는 옷입니다.


4). 한복은 몸을 감춰줍니다.

   한복은 넉넉한 옷으로 뚱뚱하거나 마른 체형을 감춰주어 신체의 부끄러움을 감춰줍니다.

   

5). 한복은 자신이 살찌거나 마르거나 상관이 없습니다.

   입는 사람이 마르거나 뚱뚱해져도 아무 문제없이 입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한복의 최고의 우수성 입니다.

 

 

4). 전통 의상 한복의 문화적 가치

 

우리의 전통미를 상징하는 문화적 가치인 한복. 특히 여성 한복은 세계적으로도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습니다. 직선과 곡선이 어우러져 화려하고도 단아한 자태를 풍기는 치마와 저고리는 우리 고유의 전통 의상입니다. 팔을 끼워 넣어 입는 저고리는 상체를 작게 보이게 하고, 허리에 감아 입는 치마는 하체를 풍성하게 보이도록 만들어 균형을 잡아줍니다. 우리나라 여성의 체위는 물론 어떤 나라 여성들 체형에도 무난하게 어울립니다.「대장금」에서 「동이」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사극()이 외국에서 인기를 끄는 배경엔 분명 한복의 영향도 크게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 한복은 '제대로' 입어야 자태가 살아납니다. 고전적인 격식의 의미가 아니라 한복의 멋을 살리는 최소한의 문화적 가치와 기준을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복은 우리(한국인 기준)의 미(美)를 담은 하나의 문화입니다. 한국의 미를 담고있다는 의미를 풀어 말하면 직선과 곡선의 미학입니다. 한복의 문화적가치는 다른 국가에서 한복과 같은 형태의 복식을 가지고 있더라면 가치가 극소 하지만 가깝게는 중국이나 일본등의 복식에서도 찾을 수 없는 복식이며 서양의 복식과는 또 다름니다. 한복은 한국의 고유 복식이기에 그 가치는 상당합니다. 예로 이집트의 피라미드의 문화적 가치를 알려달라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한복의 문화적가치는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상상 이상의 문화적 가치입니다.

 

 
5). 우리나라의 품위 있는 전통 한복
 
먼저 살아가면서 입었던 호화 찬란했던 의상입니다.
옷을 만들때에 한올 한올의 정성이 담긴 것이 조상들의 얼이 담겨있지요. 그리고 바느질 하나하나에 담겨있는 선조들의 솜씨 입으면 멥시있고 우와하며 돋보이는 것이 우리나라의 한복 입니다.
 

 

아래는 전통한복 이미지도 올려드립니다.

 

6). 전통 혼례복

 

남산한옥마을에서 식전 촬영을 마치고, 부랴부랴 한국의집으로 내려와서 본식준비 시작!

한국의집에서 전통혼례 준비중인 분들중에, 혹시 본식이 우리처럼 늦은 오후라면 꼭! 그전에 한옥마을 촬영을 강추합니다. 바로 옆에 붙어있는데다가 사진에도 참 예쁘게 나오기 때문에.....

 

나는 식전 촬영은 생각도 안하고 있었는데, 시월의봄 대표님이 먼저 제안해주셔서 촬영을 갔었고,결과는 매우 만족함.(사실 본식때보다 더 맘에 드는 사진이 여기서 많이 나왔다)



 

여하간 세시쯤 한국의집으로 돌아와서, 옷 갈아입는 중(이라기보단 옷 더 껴입는중....) 4월 12일이었고 날씨도 상당히 선선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야외예식이라 추울까봐 걱정했는데) 걱정이 무색하게도 한복을 겹겹이 껴입은 결과...매우 더웠음. 가뜩이나 더위에 약한 크렉은 본의아니게 4월초에 땀을 뻘뻘 흘리며 전통혼례를 치러야 했다. 다행히 센스있던 수모님들이 식 내내 열심히 크렉 땀을 닦아주심 ​이거 진짜 놀라웠다. 크렉이 조금이라도 땀을 흘린다 싶으면 어디선가 막 휴지가 송송 한복에 주머니도 없는데, 수모님들은 휴지를 어디에 숨겨두고 계셨던걸까...?!

 


 

족두리 쓰고 연지곤지 붙이는 중. 시엄마는 어머 이게 스티커였냐며 매우 놀라워하셨고 혹시 자기도 이걸 붙여야 하냐고....굉장히 조심스럽게(그리고 두려워하는 어조로) 물어보셨다 우리가족들 다 빵 터짐시.....신부는 저에요 어머님?!

 


 


 

식 시작하기 약 한시간 전, 신부는 언덕위 신부대기실에서, 신랑은 아래에 내려가서 하객맞이를 하는데 그전에 잠깐 짬을 내서 촬영중. 원래 서양에서(특히 북미에서는) 결혼식 당일엔 절대로 신랑이 신부를 봐선 안된다며 그래서 크렉도 절대 결혼식 당일엔 식전까지 나랑 만나는 일이 없게 동선을 짜자고 했지만, 근데 그럼 본식전에 촬영도 못하고, 메이크업하러갈때 알아서 혼자 길 찾아가라고 하자니 크렉이 한국어를 못하고 결국 아무리 상의를 해봐도 도저히 답이 안나와서, 한국에서 결혼하는건 한국식대로 따르라!고 설득한 끝에 우리는 한국의 여느 커플들처럼(?) 식 당일날 아침 메이크업부터 함께할 수 있었다. 대신 캐나다 결혼식때는 무슨일이 있어도 캐나다식으로 할거라며 크렉이 신신당부함

 


 


 

하객맞이중, 나는 이 시간 내내 신부대기실에 있었는데 네이버에서 한국의집 검색해본 예비신부들은 모두 알겠지만....한국의집 신부대기실은 언덕꼭대기에 있다. 그나마 신부대기실 위치 알려주는 표지판도 한군데밖에 없어서, 이건 정말...아는 사람만 찾아올 수 있는 신부대기실임 친구들은 물론이고 친척들(특히 나이드신 분들)은 더더욱 찾아오기 힘들다며 불평하는 후기들을 나도 많이 봤는데 우리도 그러했음. 식전에 신부대기실까지 무사히 찾아온 사람들이 내 베프들 여섯명을 포함해 열다섯명이 채 안됨. 신부대기실에서 약 한시간을 앉아있었는데...그동안 여길 스쳐지나간 사람이 열다섯명임 그나마 베프들은 식전 30분쯤 전에나 도착해서 그전까지 나는.........참.....할게 없었다.

 


 

그래서 뭘했냐면 잠을 잤음. 머리랑 한복 망가질까봐 앉아서 나름 예쁘게(...?) 잠들었지만 나중에 목이 부러질듯 아파서 깼다는거 대표님이 이것도 사진으로 찍어주신줄....몰랐는데 나중에 원본사진들 받을때보니 요 사진도 들어있었다ㅋㅋㅋㅋㅋ참 뻘쭘했음. 식전에 신부대기실에서 홀로 잠든ㅠㅠㅠ신부를 보며 대체 뭐라 생각하셨을까.....

 


 

내가 신부대기실에서 맘편히 졸고있던동안 가엾은 남편은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한 우리 가족들과 함께 어찌어찌 하객맞이를 해야했는데 다행히 기럭아범(서양식으로 치자면 베스트맨)인 크렉의 베프 토니가 한국어-영어 바이링구얼인 덕분에 무사히 하객맞이를 끝내고 그렇게 식 20분전, 장승 밑(ㅋㅋㅋ) 신랑대기석으로 돌아왔더니 왠지 너무 긴장이 됐었다고 합니다 숨을 못쉬겠다며 죽을거같다며 살려달라고 토니에게 호소했다는 슬픈 전설이 있...어요....!? 윗짤은....영혼까지 쥐어짜서 미소짓고 있는 소심한 남편 이 사진을 끝으로 극도의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고 합니다

출처 : http://blog.naver.com/jia_y?Redirect=Log&logNo=220099182322

 


 

 

조선족이 입고 있는 여성한복

 


조선족이 입고 있는 여성한복

 


어가 행렬

 


농악놀이

 


말을 타는 기예

 


말을 타는 기예

 


말을 타는 기예

 


말을 타는 기예

 


말을 타는 기예

 


   

말을 타는 기예

 


 

한복을 입고 외줄을 타는 기예 모습

 

 

아래는 한복을 입은 아름다운 모습들 입니다.


 

 


 

 

 

 


 

 


 


 


 


 


 


 


 


            

혼례복

 

 

 

 

 

 

 

 

 

 

 

 

 

 

 

 

 

 

[정의]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혼인할 때 신랑과 신부가 입는 옷.

 

 

[개설]

 

혼례(婚禮)는 성이 다른 남녀가 치르는 일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통과 의례 중 하나로, 혼례 의식에서 착용하는 옷을 혼례복이라고 한다. 과거 혼례를 신부 집에서 하던 시절에는 제천 지역에서는 마을 공동으로 보관하던 혼례복을 입었다. 요즘에는 결혼식장에서 혼례를 하기 때문에 서양식으로 신부의 경우 드레스를 입고, 신랑의 경우 양복을 입는다.

 

 

[전통 혼례복]

 

신부의 집에서 혼례를 올리던 시절 신부는 노란 저고리에 빨간 치마 혹은 연두색 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고, 그 위에 원삼(圓衫)을 입었다. 원삼의 소매는 빨간색, 연두색, 파란색을 사용한 색동 소매의 형태였다. 전체적으로 금박을 수놓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신부의 머리에는 족두리를 쓰고, 두 손 위에는 길게 하얀 천을 덮었다. 신랑의 경우 정해진 색깔 없이 저고리와 바지, 도포를 입고 단령(團領)을 입었다. 머리에는 사모(紗帽)를 쓰고 목화(木靴)를 신었다. 과거 마을에는 공동으로 상례 관련 도구를 보관하는 행상 집이 있었는데, 혼례 용구도 마을에서 공동으로 보관하는 집이 따로 있었다. 혼례복 역시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혼례 당일 날 빌려 입었다.

 

 

[현대 혼례복]

 

현재 신식 혼례에서 신부는 드레스를 입고 신랑은 양복을 입는다. 예식을 마친 후에도 신부나 신랑 모두 양복을 입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폐백을 드릴 때는 전통 혼례복을 착용하고 있다. 전통 혼례에 대한 관심으로 요즘에는 전통 혼례를 치르는 신랑, 신부도 늘어나고 있다. 전통 혼례를 치르는 경우 향교 등에서 전통 혼례복을 대여하기도 한다. 결혼식을 마치고 친정과 시댁으로 인사를 갈 때 더러 신부의 경우 한복을 착용하기도 한다. 이때 신부는 새댁이라고 하여 노란 저고리에 빨간 치마 혹은 연두색 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는다.

 

 

[의의]

 

제천 지역 혼례복은 다른 지역에 비해 뚜렷한 특징을 찾기가 쉽지 않다.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기성복의 보급으로 인하여 전통적 의미의 혼례복은 사라지고 없다. 그 자리를 기성복 형태의 서양식 복식이 대신하고 있으나 혼례에 대한 기본적인 의미는 변함이 없기 때문에 그 형태만 바뀌었을 뿐이다.

 

과거나 현재나 혼례 자체에 대한 기본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혼례복은 기성복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기성복 형태로 유지되는 상황 속에서도 폐백을 할 때는 전통 혼례복을 착용한다든지, 갓 결혼한 신부는 새댁이라고 하여 노란 저고리에 빨간 치마 혹은 연두색 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는 것이 변하지 않는 것은 눈여겨 볼만하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우리나라 전통한복 입고 전통혼례 상식

 

일반적으로 웨딩홀이나 성당,교회에서 결혼식을 진행하는데요~
기억에 남을 만한 결혼식으로는 전통혼례식을 빠트릴수 없는데요
보편화되지 않은 예식의방법이라서 이 분야에서 경험이 많은 전문가와 함께 진행을 하시는게 좋습니다.
의상, 진행순서, 도우미이모님, 음식 등등 예식에 차질이 없도록 미리미리 꼭 체크하셔야 합니다. 특히 여름철에 결혼을 하신다면 조금은 생각을 해보시는게..^^
전통혼례복은 의상이 크기 때문에 이동하기가 힘들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전통혼례를 생각하시다가 일반 예식홀 결혼식 하시는걸로 계획 변경되시는분들도 꽤 많습니다.

 

 

2. 한복에 잘 어울리는 우리나라 전통 문화 장신구

 

 

1). 비녀와 뒤꽂이
 한복에 어울리는 헤어스타일로 가장 무난한 것이 올림머리, 즉 업스타일들이다. 머리가 짧은 경우에도 달비라고 하는 부분가발을 이용하기도 한다. 비녀는 뒤쪽에서 가지런히 모아 정리한 쪽머리를 가다듬고 고정하는 역할 외에 장식적인 의미가 크다.
 비녀는 볼록하게 장식된 잠두 부분과 몸체로 나뉘며 잠두 부분의 장식이 비녀의 멋을 결정한다. 왕실 여인네들은 용이나 봉황을, 일반 여성들은 대나무나 매화 등의 나무와 꽃이 조각된 비녀를 사용하였다.
 비녀와 함께 쪽머리 위에 덧꽂는 헤어 악세사리인 뒤꽂이 또한 한복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는 장신구이다.

 

 

 <떨잠과 첩지의 생김새>

 

2). 떨잠과 첩지
 원앙 한쌍이 정답게 마주보고 있는 가운데 별과 나비가 날아다니는 형상을 표현한 떨잠. '떨철반자'라고 불리기도 하는 떨잠은 왕비를 비롯한 상류계급의 여성들이 사용하던 장신구이다. '어여머리'나 '큰머리'를 할 때 앞가리마 중심과 양 옆에 꽂첩지는 쪽진머리 앞가리마 중심에 꽂는 장신구이다.



 

 

<반지> 

 

3). 반지
 예나 지금이나 백년해로의 언약에 있어 가장 중요시하는 상징물이 반지일 것이다. 반지는 부부의 언약과 여자의 정절을 의미하는 장신구로 기혼여성들은 항상 반지를 끼고 다녔다.
반지 또한 그 재료가 다양하여 금, 은을 비롯하여 칠보, 호박, 옥, 비취 등이 주로 애용되었다. 여름에는 시원한 느낌의 은반지 또는 옥, 비취등의 반지를, 겨울에는 금과 칠보 등을 따뜻한 느낌을 주는 반지를 즐겨 끼었다.

 

 

 <노리개>


4). 노리개
 다른 장신구와는 달리 지금까지도 가장 보편화된 장신구가 노리개이다. 가슴선에서 치마폭으로 살짝 내려앉은 노리개는 외형상 섬세하고 화려한 매듭장식을 특징으로 하고있다.
부귀다남, 불로장생의 의미를 갖고있는 노리개는 때론 향주머니로, 때론 호신용 은장도로 멋과 함께 실질적인 의미도 크다.
보통 저고리 고름이나 치마에 다는 것으로 맨 위에 고름으로 연결되는 띠돈, 몸체, 술과 이것들을 띠돈에 연결하는 근목으로 구성된다. 여성들이 패물로 소중히 여기는 노리개는 금, 은, 보석을 재료로 자수와 매듭으로 장식된다.

 
5), 귀주머니
 우리가 흔히 복주머니라 알고 있는 귀주머니는 복을 비는 마음을 담고있는데서 유래되었다. 비단 혹은 양단에 고운자수를 놓아 여인들의 주머니로 사용되었다. 요즘에는 한복지와 같은 원단으로 마무리한 손가방으로 귀주머니를 대신한다.

 

 

3. 우리나라 전통 문화 한옥
 

북부형 겹집과 제주도 민가
같은 겹집구조를 지니고 있지만 제주도는 한랭지의 겹집형과는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온난다습한 기후적 특성으로 상방마루라는 공간이 중앙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 공간은 기후적 스트레스로 인해 옥내생활을 많이 하게 되는 지역에서 발달한 겹집구조에 있어서 내부공간들 사이의 행랑공간으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그리고 전용공간으로서 여름의 양실로서의 기능도 함께 수행하며 겹집의 폐쇄적인 성격을 완화시켜주는 개방적인 공간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제주도 민가가 겹집구조의 형태를 띠는 이유는 공간의 기능분화과정에 있을 수도 있고 유난히 바람과 비, 그리고 여름의 태풍과 같은 기후적 스트레스에 연유할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단동일체형 주가가 아닌 다동분립형 주가의 배치를 이루게 된 것이라고 보여진다. 제주도 전통민가에서 보여지는 건축의 지역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기본적으로 한랭지에서 보이는 겹집형태의 구조이며 다동분립형의 주가구성이 주를 이룬다. 남부지방의 온도가 높은 지역에는

一자형의 민가가 대다수인데, 제주도 민가의 경우에는 건물 자체는

一자형이긴 하지만 별동 배치를 함으로써 전체적으로 비교적 폐
쇄적인 형태를 띠게 된다.겹집구조와 다동분립 배치로 인한 폐쇄성과 상방마루라는 공간의 개방성을 동시에 지닌다. 상방마루가 중앙에 위치하며 육지의 온돌방에 비해 발달이 덜 된 구들이 좌우에 있다. 제주도와 중부의 몇몇 도서를 제외하고는 다른 도서지역의 민가들은 홑집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서해중부 북단의 백령도와 남단의 제주도의 경우는 겹집이 민가의 일반형으로 분포하고 있어 지리적으로 가장 격리된 두 도서에서 겹집구조가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홑집의 분포를 보이는 도서는 모두 연안도서로서 이는 상대적으로 비바람, 눈의 기후스트레스를 덜 받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 


일반적으로 홑집은 가옥의 내부의 각 공간이 간벽에 의해 서로 차단되어 폐쇄적 성격을 띠나 외부적으로는 개구율을 높여 개방성을 갖는다. 겹집에 있어서는 이와는 반대로 가옥 외부의 개구율은 낮추어져 폐쇄적 성격이 강하고 내부에 있어서의 각 공간간의 간벽은 개구부를 두어 내적 개방성을 갖게 된다. 이것 역시 민가에 주는 기후요소의 영향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1). 우리 나라 전통 주택 기와집

 

중국에서는 기와를 춘추 전국시대에 사용하였다고 하나 우리 나라에서 언제부터 쓰게 되었는지 구체적인 기록이 없어 분명히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삼국사기 신라 본기 지마니 사금 11년 조"에 '큰 바람이 불어서 나무가 꺾이고 기왓장이 날렸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우리 나라에서는 기원 전후한 시기에 궁궐이나 큰 건물에 기와를 덮엇던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일본 서기"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목조 건물이라고 하는 법륭사를 지을 때, 백제에서 기와 박사 네 사람이 일본에 건너 가서 기와를 구어 주었다고 하므로 7세기 경에는 기와를 굽는 기술이 외국에까지 널리 알려질 정도의 수준에 올라 있었던 듯하다.

 

정읍 김동수가옥의 사랑채 기와집

 

기와를 기와장이가 얹는다. 예전에는 기와를 만들 때, 큰 틀 안에 모래와 흙 그리고 물을 붓고 나서 소로 하여금 이리저리 밟고 다니도록 해서 잘 이긴 뒤에, 이 흙을 기틀에 넣어 꼴을 잡아 말리고 잿물을 발라 가마에 넣어 구었다. 따라서 큰집을 지을 때에는 돈을 미리 주고 필요한 수량의 기와를 맞추어 두어야 하였다.

 

서민 가옥의 기와 일은 먼저 암기와를 나란히 깔고 사이사이에 숫기와를 덮고 나서, 숫기와 앞에 흙과 백토로 빚은 아귀토로 막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러나 잘 짓는 집에서는 암막새를 먼저 놓고, 암키와를 서너 겹으로 겹쳐 깔아서 한두 장이 깨져도 물이 새지 않도록 한다. 수키와도 역시 숫막새를 먼저 놓고 홍두깨흙을 얹은 뒤에 덮어 나간다. 지붕 마루에는 적새라 하여 암기와를 여러 겹으로 쌓아 올리고 맨 위에 숫기와를 덮는다. 따라서 암기와를 많이 덮을수록 지붕 마루가 높아져서 집 자체가 커 보인다.

 

어떤 기와집에서는 복문이라고 하여 적새 위에 숫기와를 얹을 때, 한가운데의 두 장을 서로 어스러지게 팔자(八字) 모양으로 마주 세워 두는 일이 있다. 이를 세울 때 주인은 기와장이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므로 상량을 올리는 날이 목수의 생일이라고 하듯이 이날을 기와장이의 생일이라고 한다. 민간에서는 이 문으로 복이 들어 온다고 하나 까치구멍처럼 원래는 채광이나 배연을 위해 마련해 두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한편 팔작 지붕의 경우에는 지붕 마루마다 망와라 하여 도깨비 모양의 암막새를 얹는다. 망와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귀면에 가까우나 뒤에 점차 약화되어 왔으며, 곳에 따라서는 태극이나 주역무늬가 새겨진 것을 쓰기도 한다. 근래에는 사람 얼굴모양의 것을 많이 얹으며 단지 꽃잎을 양각한 것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망와는 잡귀를 물리쳐 준다는 속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2). 우리 나라 전통 주택 초가집

 

볏짚을 언제부터 지붕에 덮기 시작하였는지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으나, 벼농사가 시작된 삼국 시대에 이미 이것을 사용했으리라고 추측된다.

볏짚은 속이 비었기 때문에 그 안의 공기가 여름철에는 내리 쬐는 햇볕을 감소시키고, 겨울철에는 집안의 온기가 밖으로 빠져 나가는 것을 막아준 다. 그리고 겉이 비교적 매끄러워서 빗물이 잘 흘러 내리므로 두껍게 덮 지 않아도 스미지 않으며 누구든지 이를 쉽게 덮을 수 있어 편리하다. 또 초가 지붕은 짚 자체가 지닌 성질 때문에 따뜻하고 부드럽고 푸근한 느낌을 주며, 한 해에 한 번씩 덧덮어 주므로 집에 각별한 치장을 하지 않아도 거의 언제나 밝고 깨끗한 모습을 보여준다.

 

지붕의 물에는 매우 완만하기 때문에 농가의 마당이 좁을 때에는 고추 따위의 농작물을 널어 말리며, 천둥 호박이나 바가지의 덩굴을 올려서 지붕을 밭의 일부로 사용하 기도 한다. 짚으로 지붕을 잇는 방법에는, 비늘 이엉법과 사슬 이엉법의 두가지가 있다.

앞의 이름은 그 모양이 물고기의 비늘을 닮은 데에서 온 것으로 짚 의 수냉이를 한 뼌 정도 밖으로 내어서 엮는 방법이다. 길게 엮은 날개 두 장을 이엉 꼬챙이로 꿰어 올린 다음, 지붕의 앞뒤를 덮고 남은 부분으로 좌우 양쪽의 벽을 가릴 수 있다. 수명은 사슬 이엉보다 오래 간다.

 

초가집

 


한국민속촌에는 약 270여 동에 이르는 전통 가옥이 지방별로 특색을 갖추고 있으며 당시 생활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습니다.

 

사슬 이엉은 수냉이가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일정한 크기로 엮은 날개 수십 장을 둥글게 말아서 지붕 위로 올린 뒤에, 멍석을 펴듯이 펴 나가면 서 지붕을 덮는 방법이다. 처음에는 수냉이가 처마 밑으로 오도록 깔고, 다음에는 이와 반대로 하여 덮어 나간다. 사슬 이엉으로 이으면 지붕의 표면이 매끈하며,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적당한 간격을 두고 새끼를 늘여 서까래 끝에 잡아 맨다.

우리나라의 서북지방에서는 주로 비늘 이엉으로 그리고 나머지 지역에서는 사슬 이엉으로 덮는다. 이렇게 이엉으로 지붕을 덮은 뒤에는 용마루에 용구새를 얹어서 마무리 짓는다. 이것은 빗물이 잘 흘러 내리게 좌우양쪽으로 비탈이 지도록 솜씨 있게 엮어야 한다. 또 바람이 심한 데에서는 바람에 날리는 것을 막기 위 해 새끼를 그물처럼 엮어서 덮는다.

충청도에서는 가로로 길게 매는 것을 '장매', 세로로 짧게 매는 것을 '가르매' 라고 하며 서까래 끝이 썩지 않도 록 이엉을 길게 늘어뜨리는 것을 '지스레미'라고 한다. 초가지붕은 대체로 모임 지붕의 형태를 이루나 겹집인 경우 이른바 까치 구멍이라고 하여 용마루를 짧게 하고 좌우 양끝의 짚을 안으로 욱여 넣어 서 까치가 드나들 만한 구멍을 내어 두는 일이 있다. 이 구멍으로 집안에 햇볕이 들어 오고 연기가 빠져 나가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멍은 초 가집뿐만 아니라 너와집이나 굴피집에서도 볼 수 있다.

또 기와집에는 양 합각에 작은 구멍을 내거나 창을 달며 구멍에 덮개를 장치하고 집안에서 여닫기도 한다. 전남의 장흥, 강진, 보성 등지의 초가 지붕 위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유지기라는 것이 있다. 이들 지역에서는 초가 지붕의 용마루에 굵은 통대나무나 통나무를 가로 지르고 이 위에 용구새를 덮는데, 나무와 나무 의 이음새나 좌우 양측에, 볏짚 한 단 가량을 단단히 묶어 매고 수냉이쪽 을 낫으로 잘라서 가즈런히 한 다음, 이것을 거꾸로 용마루에 잡아 매어 서 마치 상투를 틀어 올린 모양을 이룬다. 유지기는 한 지붕에 하나만 세 우기도 하나 두세 개를 올린 집도 있다.

 

 

3). 우리 나라 전통 주택 너와집

 

너와를 강원도에서는 느에, 또는 능애라고도 한다.

이것은 2백 년 이상 자란 소나무 토막을 길이로 세워 놓고 도끼로 쪼갠 작은 널판이다.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나 보통 가로 20~30 센티미터, 세로 40~60센티미터이며 두께는 5센티미터 내외이다. 지붕의 용마루 쪽으로부터 끝을 조금씩 물리면서 덮어 나가며 바람에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해 군데군데에 돌을 얹어 둔다.

 


강원 삼척 신리 너와집

 

너와는 70장을 한 동이라고 하며 한 간 넓이의 지붕에는 보통 한 동 반에서 두동쯤이 들어간다. 너와 한 장의 수명은 5년 내외이며 기와 지붕을 수리할 때처럼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썩은 것을 갈아 내고 새것으로 바꾸어 끼운다. 이것으로 지붕을 덮을 때, 방 천장에는 느리개를 30센티미터쯤의 너비로 가로 놓고, 이를 중심으로 해서 잔나무를 촘촘하게 붙여 천장으로 삼으나 정지나 마구 등에는 천장 시설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에는 굴뚝으로 빠지지 못한 연기가 너와 사이로 뿜어져 나오므로, 지붕이 불에 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4). 우리 나라 전통 주택 굴피집

 

굴피는 상수리나무의 껍질로, 산간 지대에서는 이것을 벗겨서 지붕을 덮기도 한다. 이십여년 이상 자란 나무의 껍질이지만 크기를 일정하게 벗겨 낼 수는 없으므로, 이를 덮은 지붕을 보면 마치 누더기를 걸친 것처럼 심한 불균형을 이룬다. 굴피는 대기가 건조해지면 바짝 오므라 들어서 군데군데 하늘이 보일 정도가 되지만 비가 내리든지 하여 습도가 높아지면, 이내 늘어나서 틈을 메운다. 이음새에는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돌로 지질러 둔다. 굴피 지붕의 수명은 매우 긴 편이어서 '기와 만 년에 굴피 천년'이라는 말이 전한다.

 


굴피껍질로 이은 지붕

 

 

5). 우리 나라 전통 주택 귀틀집

 

귀틀집은 목재가 풍부한 산간 지대의 주민들이 짖고 살던 원시 주기의 한 가지이다. 둥굴이 나무를 가로 세로 우물 정자 모양으로 쌓아 올려서 벽체를 삼으므로 이를 방틀집, 또는 말집이라고도 한다.

양끝을 우묵하게 쪼아 낸 자리에 나무를 얹어서 움직이지 않도록 하며 나무와 나무 사이의 벌어진 틈에는 진흙을 발라 막는다. 벽체가 완성되면 느리개를 놓고 이에 산자를 깐 뒤에 흙을 발라 천장을 삼으며 이 위에 지붕틀을 덧씌운다. 따라서 귀틀집의 지붕은 맞배 지붕을 이루며 기둥이라고는 천장에서 마룻대를 받치는 동자 기둥 하나를 세울뿐이다. 지붕틀과 천장 사이의 합각은 수장 공간으로 이용된다.

 


백두산 일대의 귀틀집

 

지붕에는 너와를 덮으며 이것이 바람에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해 군데군데에 돌을 얹거나 통나무를 띄엄띄엄 걸쳐둔다.다른 나라에서는 서너 간의 집을 모두 귀틀로 만드나 우리 나라에서는 두 가늬 방만을 귀틀로 하고 부엌이나 마구 등의 공간은 일반 가옥처럼 널벽을 쳐서 벽을 삼고 나머지 공간은 기둥, 도리, 들보 등을 짜맞추는 가구식으로 꾸민다.

고구려에서는 부경이라 하여 창고를 귀틀로 짜서 만들었으며 이러한 것은 최근에까지 강원도와 경남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귀틀집에 대해 "삼국지 동이전 변진조"에 '나무를 옆으로 뉘어 쌓아 올려서 마치 감옥처럼짓는다'고 기록되어 있어 이 집의 역사가 매우 오래됨을 알 수 있다. 귀틀집은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만주, 시베리아, 미국의 록기 산맥, 북구의 스칸디나비아 반도 일대에도 퍼져 있었다.

 

 

6). 까치구멍집

 

안방 ·사랑방 ·부엌 ·마루 ·봉당 등이 한 채에 딸려 있고, 앞뒤 양쪽 으로 통하는 양통집의 속칭. 지붕 용마루의 양쪽에 공기의 유통을 위하여 구멍을 낸 모양이 까 치둥지와 비슷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한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주택을 평면구성으로 볼 때 외통집 ·양통집 ·곱은자집 ·겹집으로 나 눌 수 있다.


양통집은 처음에는 대개 6칸 집인 것이 8칸 ·10칸 또는 그 이상으로 발전하였다.

 

 양통형 집은 안동지방뿐 아니라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동해안 산간 지방에서 아직도 많이 볼 수 있는데, 구조가 한국집의 고대양식이 라는 점에 특별한 의의를 가진다. 증거로서 낙동강 유역에서 출토 된 가야(伽倻)시대의 가형토기(家形土器)가 6칸 양통집과 외형이 같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으나, 근래에 발굴된 대부분의 선사시대 주거지가 모두 통간이기는 하지만 평면구성이 양통형이라는 점이 다. 고대사회에 하부계층 사람들의 집이 반구덩식[半竪穴式]이었던 점으로 보아 양통집은 부유한 계층 사람들의 집이었을 것으로 본다.

 

 

7). 우리 나라 전통 주택 움집

 

움집의 바닥은 대부분 장방형을 이루나 방형의 것도 있으며 기둥을 두 줄로 세워서 벽과 지붕이 나뉘어지고 지붕은 맞배 지붕이나 모임 지붕의 형태를 이룬다.

이러한 집자리는 압록강, 두만강, 대동강 그리고 한강 유역에 많으며 앞의 움막이 빗살문 토기 시대의 주거임에 반해, 이것은 농경이 발달된 무문 토기 시대에 들어와 발생하였다. 이 집은 무엇보다 벽과 지붕이 분화되어 움막처럼 땅을 깊이 파고 지을 필요가 없어졌으며 이에 따라 벽이 땅으로 반쯤 들어가는, 이른바 '반움집'이었다가,

초기 철기 시대에 들어 와서는 모두 땅 위에 세워진다. 지붕에는 용마루가 생겨나며 이를 의지하여 원시적인 서까래를 걸고 짚 따위를 덮은 뒤에 흙을 얹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붕면에 채광 시설을 마련하고 맞배 지붕의 좌우 양측에는 배연을 위한 구멍을 내었으리라고 생각된다.

벽은 수직으로 세운 기둥과 기둥 사이에, 통나무나 널판을 가로 질러 대어서 꾸몄을 것이다. 그것은 지상에 세웠던 집자리에서 벽에 판자를 대었던 흔적과 불에 탄 널판이 나왔고 기둥 자리가 촘촘하지 않고 띄엄띄엄 있던 접으로 미루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영암선사시대유적지에서 재현한 움집

 

움집은 규모 또한 커서 장방형의 한 면이 4~7미터이고, 넓이는 50~60입방미터에 이른다. 그러나 서기 7세기쯤의 것으로 추측되는 경기도 파주군 덕은면의 집자리 중에는 깊이가 40~90센티미터, 동서 15.7미터, 남북은 3.7미터가 되는 것도 있다.

움집의 기둥 구멍은 모두 수직을 이루며 기둥이 주저앉는 것을 막기 위해 주추를 놓은 집도 있고, 어떤 집자리에서는 간을 막은 흔적이 나타나기도 하여 공간 분화의 가능성을 추측하게 한다. 움막에서는 중앙부에 있던 화덕이 어느 한 쪽으로 밀려 나며 두 개의 화덕을 갖춘 집도 있고 출입을 위한 층계나 비탈이 없는 경우도 많다.

움집은 서너 집 내지 백여 호가 모여 마을을 이루는 것이 보통이며 앞에서 말한 파주의 어떤 집자리에서는 여러 가지 연장들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공동 작업장으로 이용되었던 모양이다. 이 때에 공동 작업장이나 공동 집회소가 있었을 것은 상상하기에 어렵지 않은 일이다. 같은 움집 안에서도 안쪽을 상청, 가운데를 중청, 문간 쪽을 하청이라 하여, 노인들은 상청에 그리고 젊은이들은 하청에 모여 앉아 장기나 바둑을 두거나 짚신 등을 삼는 작업을 하였다.

 

 

8). 우리 나라 전통 주택 토담집

 

움집이 불편하다고 느끼게 되자 인류는 지상으로 탈출을 시도한다. 최초의 지상 건물이 어떤 유형이었다는 정설이 없다. 지역마다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포괄해서 어떤 모습이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남쪽에서는 오두막집이 이미 지상에 노출되어 있었으므로 움집의 지상 노출은 지역적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 북방에서도 구들 시설이 필수였다면 벽체도 든든하고 두툼해야 겨울을 날 수 있었을 것이다.

 

전남 나주 쳘야마을 토담집 전경

 

 

토담집벽면

 

고구려 터전에서 발굴되는 구들 시설이 있는 건물 벽체가 상당히 완고한 것으로 보아 지상에 노출된 최초의 집은 벽이 두꺼웠으리라 생각된다. 시골에 남아 있는 벽이 두꺼운 원초적인 토담집이 이런 유형의 초기 흔적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한다. 대단히 완고하게 생겼고 개중에는 마루가 없는 원초형 토담집도 있다.

 

 

4. 우리나라의 전통 문화 음식

  

1).  외국인이 더 좋아하는 전통 한식 쇠갈비구이

 

쇠갈비 600g, 양념장( 1/2, 진간장 물엿 4큰술씩, 술 깨소금 다진 마늘 1큰술씩, 통마늘 6, 참기름 1/2큰술, 후춧가루 1작은술, 녹말가루 조금)

 

만드는법

 

갈비양념구이는 대개 숯불이나 가스불에 굽지만 오븐 레인지에 구우면 열 손실이 적어 조리시간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오븐에 갈비를 구우면 숯불이나 가스불에 구웠을 때 생기는 특유의 노란색과 질감이 덜하므로 양념장에 녹말가루를 섞어 고기 겉면에 윤기가 돌게 할 수 있다.

오븐에 갈비를 구울 때는 불의 세기는 13분 정도 예열하여 내부 온도가 25도 정도된 다음 고기를 넣고 10분 굽다가 뒤집어서 5분 더 굽는다.

 

1). 쇠갈비의 살 부분을 망치로 두들겨 고루 펴서 고기가 연해지도록 한다. 조리용 망치가 없을 때는 칼등으로 두들긴다.

 

2). 배는 강판에 갈아 즙을 내고 통마늘은 마늘쪽 모양을 살려 얄팍하게 저민다. 진간장에 물엿 깨소금 등 양념장 재료를 넣고 배즙과 마늘을 넣고 잘 저어준다.

 

3). 준비한 양념장에 갈비를 한 조각식 넣고 숟가락으로 고루 끼얹어 넓은 그릇에 담아 1시간 이상 재운다.

 

4). 프라이팬이 뜨겁게 달구어지면 양념장에 재운 갈비를 굽는다. 한쪽면이 충분히 익은 후 뒤집어야 맛의 손실이 없다. 너무 센 불에 구우면 갈비에서 물이 나오므로 불조절에 신경 쓴다.

 

 

포천 이동갈비한우 중 질 좋은 암소고기를 선별하여 참나무 숯불에 구워내기 때문에 맛이 독특하면서도 매우 좋다고 한다.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장암리 영평천 주변에 약 20여개 이동갈비 점포가 늘어서 있어 갈비촌을 형성하고 있다.

 

2). 전통 한식 떡갈비

 

소갈비살 5대 분량, 갈비양념(간장 1 1/2큰술, 소금 1큰술, 설탕 2큰술, 쪽파 5뿌리, 다진 마늘 2큰술, 청주 1큰술, 참기름 1큰술, 깨소금 1큰술, 후춧가루 조금)

 

만드는법

 

1). 갈비는 기름, 힘줄을 다 떼어버리고 얇게 저며 펼쳐서 갈비살로만 준비한다. 구이용으로 손질해 놓은 것을 사도 좋다.

 

2). 발라낸 갈비살은 0.3cm 굵기로 채썬 다음 다시 반대 방향으로 놓고 잘게 다진다. 알갱이가 씹힐 정도로 다져야 떡갈비 특유의 씹는 맛이 있다.

 

3). 큰그릇에 잘게 썬 갈비살을 담고, 송송 썬 쪽파, 다진 마늘, 간장, 청주, 설탕, 참기름, 깨소금, 소금을 넣고 한참 주물러 양념한다.

 

4). 양념한 갈비살은 넓적하고 동그랗게 뭉쳐서 손바닥으로 한참 두들겨 준다. 그래야 고기가 부서지지 않는다.

 

5). 양면 석쇠에 놓고 숯불에서 바로 구워 먹는 것이 좋으나 집에서 숯불을 사용하기는 번거로우므로 오븐에 굽는 것도 간단하면서도 비슷한 맛을 낼 수 있다

 

 

3). 전통 한식  돼지갈비구이

 

재료

돼지갈비1.2kg, 흑설탕4큰술, 청주약간, 200g, 마늘80g, 참기름4큰술, 진간장5큰술,

만드는 법

 

1). 갈비를 7~8cm의 길이로 자른다.

 

2). 갈비뼈의 양가에만 살이 있는 것은 조리용 가위나 칼로 살 부위에다 약 0.7cm 너비로 칼집을 넣고 뼈의 양면 힘줄에도 칼집을 낸다.

 

3). 갈비뼈 한편에 두꺼운 살이 붙어 있을 경우에는 먼저 길이로 칼집을 넣은 다음 양면으로 다시 칼집을 낸다.

 

4). 다진 파, 다진 마늘, 참기름, 청주, 흑설탕, 진간장을 함께 섞은 것을 손질해 놓은 갈비에 고르게 묻혀 사이사이까지 양념이 베게 한다,

 

5). 석쇠를 뜨겁게 한 다음 갈비를 앞뒤로 고루 굽는다. 이때에 갈비를 재웠던 양념장을 바르면서 구우면 윤기가 난다.

 

참고 갈비에는 살과 힘줄 조직이 마치 층을 이루듯 섞여 있어 연하지는 않지만 암돼지의 갈비를 골라서 잘게 칼집을 넣어 손질하여 구우면 살코기와는 다른 좋은 것이다.

 

 

4). 전통 한식  갈비찜

 

만드는 법 재료 및 분량쇠갈비(찜용) 2, 200g, 당근 200g, 5, 은행 10, 대추 8, 건표고 4, 마늘 5, 대파 1뿌리, 청양고추 3, 통후추청주 약간씩

양념장 : 간장 1, 청장 2큰술, 설탕 1/2, 다진 마늘 2큰술, 다진 파 4큰술, 후춧가루 1작은술, 1/3, 참기름 3큰술, 깨소금 3큰술,

 

만드는 법

1). 갈비를 5로 토막을 내어 찬물에 담가 핏물을 뺀다.

2). 냄비에 갈비가 잠길 만큼 물을 붓고 통마늘, 대파, 청양고추, 통후추, 청주를 넣고 푹 삶아 체에 거른다.

3). 삶은 갈비는 건져서 결 반대로 칼집 2~3번 넣고 국물은 차게 식혀 기름을 걷어 낸다.

4). , 당근은 둥글게 다듬고 마른 표고는 불려서 적당한 크기로 썬다. 밤은 껍질을 벗기고 대추는 씨를 발라 두고 은행은 볶아서 껍질을 벗긴다.

5). 배는 갈아서 즙을 내고 나머지 분량을 넣고 갈비 양념장을 만든다.

6). 냄비에 기름을 걷어 낸 국물을 붓고 양념장을 넣고 손질한 갈비를 넣어 끓인다. 중간 불로 낮추어 무, 당근, 마른 표고버섯, , 대추, 은행을 넣고 뭉근하게 찜을 한다.

 

1). 준비한 사태, , , 당근은 각각 덩어리째 무르게 삶아 사태와 양은 큼직하게 저며 썰고 무와 당근은 비슷한 크기에 가로2-3cm로 썰어 놓는다.2). 썰어놓은 사태와 양은 갖은 양념으로 무쳐 놓는다.3). 천엽은 소금으로 주물러 씻어 잔칼질을 해놓고 생선은 포를 뜬다.4). 손질한 처녑과 생선은 소금과 후추 가루를 뿌려 간이 배게 한 다음 밀가루와 달걀 물을 입혀 전을 지진다.5). 준비한 안심의 100g만 얇게 저며 썰어 갖은 양념을 해 놓고 50g은 다져 놓는다.6). 두부는 칼을 비스듬이 하여 으깨놓는다.7). 안심 다진 것과 두부 으깬 것을 섞어 갖은 양념을 한 뒤 직경 1.5cm크기로 완자를 빚는다. 밀가루와 달걀 물을 씌워 기름 두른 팬에 노릇하게 쪄낸다.

 

5). 전통 한식 불고기

 

옛날에는 너비아니라고도 했다. 돼지고기로 만든 것은 따로 돼지불고기이라고 한다. 구이에는 결합조직이 적고 지방질이 조금씩 산재해 있는 고기가 맛이 있고 연하기 때문에 안심이나 등심 등의 부위가 가장 많이 사용된다. 연한 고기를 얇게 섬유를 끊어 저며서 가로세로로 잔칼질을 한 다음 배즙이나 청주, 설탕 등에 버무려서 잠시 놓아둔다. 이렇게 하면 효소 작용이 활발해져서 고기가 연해진다. 진간장에 다진 파, 마늘, 깨소금, 생강즙, 후춧가루, 참기름 등을 넣고 잘 주물러 약 30분간 쟁여 두었다가(30분 이상 경과되면 맛이 없어진다)먹을 때 중불에서 천천히 굽는다.

 

고기의 단백질인 미오신과 미오겐은 40 전후에서 응고하는데, 이러한 단백질의 응고점 전후가 가장 맛이 좋기 때문이다. 불고기판을 먼저 불에 올려놓고 육수를 부은 다음 고기를 고루 펴놓고 익기 시작하면 1번만 뒤집어서 익힌 후 먹도록 한다. 석쇠로 구울 때는 먼저 석쇠를 불에 얹어서 달군 다음에 고기를 펴놓고 센불에서 겉만 재빨리 익힌 후 중불에서 속까지 익히면 고기국물이 빠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고기를 양념할 때 참기름을 처음부터 치면 양념의 맛이 배어들지 못할 뿐만 아니라 효소작용이 억제되어 고기가 질겨지므로 마지막에 넣도록 한다. 염통, 콩팥, 간 등도 같은 방법으로 구워낼 수 있다.

 

불고기 만드는 법

재료(5인분) : 쇠고기 2½lbs, 적포도주 3큰술, 후추 ½작은술, 참기름 , 중간크기양파 ½, 흑설탕 3큰술, 진간장 , 다진마늘 2큰술, 잣가루 2큰술, 볶음깨 1큰술, 녹차가루 ½작은술, 물엿 2큰술, 사이다 2큰술

 1). 불고기 요리는 크게 양념 만들기, 고기양념에 재기, 불에 굽기의 과정으로 만들어진다.

2). 양념만들기 - 양파는 사이다와 함께 믹서로 곱게 갈아 준비하고 진간장, 참기름, 적포도주, 물엿, 다진마늘, 후춧가루를 넣어 잘 섞어 놓는다.

3). 고기재기 - 먼저 얇게 썰어 놓은 쇠고기를 준비해서 녹차가루와 흑설탕을 고기에 넣어 잘 섞어 양념이 잘 스며들도록 잘 주물러 준다.

4). 고기 굽기 - 불고기용 구이 판이나 석쇠, 프라이팬은 미리 뜨겁게 달구고 고온의 구이판에서 뒤집어가며 식성에 맞게 익혀 먹는다.

5). 이렇게 구워진 고기를 상추, 깻잎, 쑥갓 등 각종 야채로 쌈을 싸서 함께 먹는데 취향에 따라 된장으로 만든 양념장을 곁들이기도 하고 마늘이나 고추등을 함께 싸먹기도 한다.


  

 

 

6).  전통 한식 육개장

 

1). 요리법

요리재료

· 주재료 : 양지머리 4뿌리

· 부재료 : 5, 대파 100g, 마늘 150g, 숙주 200g, 불린 고사리 1큰술, 불린 토란대 2큰술, 참기름 2큰술, 국간장 1작은술, 참치액젓 2작은술, 된장 4큰술, 소금 2큰술, 다진 파 ½작은술, 다진 마늘 1작은술, 깨소금 3큰술, 후춧가루 2큰술, 고춧가루 600g, 고춧기름 2

 

2) 기본정보

· 조리시간 : 30

· 분량 : 1인분 기준

 

3) 요리과정

양지머리는 덩어리째 냉수에 담가 핏물을 빼고 두꺼운 솥에 물을 부어 펄펄 끓으면 고기와 무를 넣고 끓어오르면 불을 줄이고 고기가 무르게 익을때까지 은근히 끓인다.

고기가 충분히 무르면 건져내고 국물 위의 기름을 제거하고 결대로 찢어두고 무는 납작납작하게 썬다.

파는 8 길이로 토막 내어 끓는 물에 살짝 데쳐내어 길이로 찢어둔다.

숙주는 끓는 물에 데치고 삶아서 부드럽게 불린 고사리와 토란대는 7 정도로 잘라서 굵으면 세로로 찢어둔다.

팬에 고춧가루와 식용유를 넣고 끓여서 고춧기름을 내어둔다.

쇠고기, 숙주, , 고사리, 토란대에 고춧기름과 국간장, 된장, 액젓, 다진 마늘, 생강, 후춧가루를 넣어 밑간을 하고 2의 국물에 넣어 끓인 다음 간을 맞춘다.

맛이 어우러지게 끓인 다음 간이 부족하면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4) 요리팁

육개장용 고기는 사태 뿐만 아니라 양, 곱창을 깨끗이 손질하여 함께 넣고 삶으면 맛이 더욱 깊고 진하다.

고기는 애벌 삶을 때 파, 마늘, 생강 등 향신채를 넣고 삶으면 고기의 누린내가 없어지고, 이 때 위에 생기는 거품과 기름기는 꼭 걷어내도록 한다.

고춧기름은 마른 고춧가루 : 식용유를 1 : 3 정도로 넣고 젖지 말고 끓여 내어걸른 것이다.

 

 

 

7).  전통 한식 비빔밥 

 

1). 비빔밥이란?

밥에 나물 ·고기 ·고명 ·양념 등을 넣어 참기름과 양념으로 비빈 밥을 말한다.

골동반(骨董飯)이라고도 한다. 전주 비빔밥이 가장 유명하며, 계절에 따라 재료를 변화 있게 하여 만든다. 섣달 그믐날 저녁에는 남은 음식을 해를 넘기지 않는다는 뜻으로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 풍습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밥을 고슬고슬하게 지어서 보기 좋은 대접에 담고 그 위에 미리 만들어 둔 여러 가지 나물 ·고기 ·달걀 등을 모양 있게 색을 맞추어 얹어 내면 먹을 때에 비벼서 먹는다. 나박김치와 장국을 곁들이면 좋다. 나물은 계절에 맞추어 고르는데 되도록 색채와 영양소의 배합이 좋도록 한다.

 

2). 비빔밥의 유래

비빔밥이 처음으로 언급된 문헌은 1800년대 말엽의 ` 시의전서 ` 인데 이 문헌에는 비빔밥을 부븸밥으로 표기하고 있다. 여기서 골동반의 ` 어지러울 골 ` 자이며, ` 비빔밥 동 `자인데 汨董 이란 여러 가지 물건을 한데 섞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골동반이란 이미 지어놓은 밥에다 여러 가지 찬을 섞어서 한데 비빈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3). 비빔밥 만드는 법

4인분기준 : : 4공기, 쇠고기: 100g(채썬것,갈은것 반씩), 표고버섯: 3, 도라지: 30g, 고사리: 30g, 콩나물: 30g, 계란: 2, 대파: 1/2, 다진마늘: 2큰술, 청포묵: 30g, 애호박: 1, 참기름, 깨소금, 후추, 소금, 설탕 약간씩- 쇠고기, 표고버섯, 고사리 양념: 진간장 1큰술, 다진파 1큰술, 다진마늘1/2큰술, 설탕 1작은술, 참기름 1작은술, 후추조금1). 밥은 약간 물을 적게 넣어 고슬고슬하게 짓는다.2). 호박은 길이로 1/2등분해서 두께 5mm로 반달 모양으로 썰어 소금에 절였다 짜서 다진파, 마늘, 깨소금에 살짝 볶는다.3). 콩나물은 꼬리를 떼고 소금을 넣어 데쳐서 다진파, 다진마늘, 참기름, 깨소금을 넣어 무친다.4). 고사리는 억센 부분을 다듬어내어 5cm 길이로 잘라서 양념장에 무쳐 볶아준다.5). 도라지는 길이 5cm로 썰어주고 가늘게 찢어서 소금에 절였다 씻음다음 잘 짜서 다진파, 다진마늘, 참기름, 깨소금을 넣어 볶는다.6). 청포묵은 채 썰어 소금, 참기름으로 무친다.7). 계란은 황, 백 지단을 부쳐 길이 5cm, 두께 3mm로 채 썬다.8). 표고버섯은 물에 불려서 기둥을 떼내고 채썰어 쇠고기 양념으로 무쳐 볶는다.9). 다시마는 기름에 튀겨 잘게 부순다.10). 채썬 쇠고기는 양념장에 무쳐 기름에 부드럽게 볶아준다.11). 다진 쇠고기는 양념하여 볶다가 고추장 4큰술, 설탕 2큰술, 참기름, 다진파 1큰술, 멸치육수를 넣어 주걱으로 저어가며 볶아 고추장 볶음을 만들어 놓는다.12). 그릇에 밥을 담고 그 위에 준비한 나물 등을 예쁘게 돌려 담고, 계란지단과 다시마 튀긴 것, 고추장 볶은 것을 위에 얹어낸다.

 

8). 전통 한식  된장찌개 

 

된장찌개를 싱겁게 하는 방법은 당연히 물을 더 넣고 끓이는 방법이 답입니다.

된장찌개를 만들때도 어떤 된장찌개를 만드느냐에 따라 맛이 틀려집니다.

된장찌개를 맛나게 만드는 방법을 좀 소개해 드릴게요.

 

1). 국물 만들기

 

양에 따라 틀리겠지만.

일단 물을 끓입니다.

 

멸치 10마리(큰거)를 채에 담아, 끓는 물에 투하하세요.

 

모시조개(마트가면 좀 비싼조개 있습니다.) 10알 정도를 넣으세요. 모시조개가 국물이 시원합니다.

 

20분정도 팔팔 끓입니다.

 

국물이 충분히 우러났다고 생각되시면, 모시조개 껍질과 멸치를 분리해 냅니다.

 

국물이 완성되었네요.

 

2). 야채 끓이기 / 기타 재료

 

호박, 버섯, 고추, 봄동(전 아주 즐겨먹습니다.), 두부 봄동을 넣고 끓입니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호박, 버섯, 고추동을 넣고 끓입니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두부를 넣습니다.

야채가 다 익을때까지 끓입니다.

 

3). 된장 넣기.

 

된장 큰 술로 한스푼 채에 받쳐 끓입니다. 충분히 된장이 풀어졌다 싶으면 간을 보시고, 싱겁다 생각되면 반술씩 더 풀어서 간을 봅니다. 짜다 싶으시면 물을 더 넣습니다.

된장을 넣고 너무 오래 끓이면 국물이 텁텁해 짐으로 가능한 짧게 끓입니다.

 

4). 꿇넣기.

 

국그릇에 먹을 만큼 덜어내고, 꿀을 조금 넣고 저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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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수는 미리 만들어 두고, 냉동 보관해 두었다가, 먹기 전에 냉장고나 상온에 놔두고 녹으면 사용하시면 됩니다. 봄동도 사와서 깨끗이 씻고, 끓는물에 데쳐서, 물을 짜내고, 먹을 만큼씩 나눠 냉동보관 해 두시면 다음에 먹기가 편하답니다.

 

두부나 조개는 집에 없드라구요~

양파½개를 네모지게 썰고 애호박개를 4등분해서 썰었어요

표고2개는 밑둥을 떼서 썰고  느타리3개는 4등분으로 찢었어요.

 

감자는 중간짜리 1개를 돌려썰기했는데(망침 ㅋㅋ)

돌려썰기가 뭔지 모르시면 먹기좋게썰어서 물에 담궈놔요~

 

멸치다시국물을 준비해주세요.

물양 재는것을 깜빡했는데 500ml정도 들어갔어요.

(멸치다시는..대형마트가면 티백으로 팔아요)

 

된장을 수북히1큰술을 넣으시거나 작게1큰술 반 넣으시고

고추장은 작게큰술 넣고 마늘다진것1큰술 넣고 끓여주세요

 

먼저 감자만 넣고 반정도 익힌후 그담에 나머지 야채를 모두 넣고

감자가 다 익을때까지 끓이다가 '소고기다시다'같은 조미료를 넣고

간맞춰주세요~ 2ts정도 넣었어요 좀 짜게 먹는걸 좋아해서....


 

9). 김치(Kimch)

 
1) 김치의 유래와 어원

김치는 인류가 시작하여 곡물을 주식으로 삼은 후부터 만들어 먹기 시작하였다. 곡물의 구성은 전분이 대부분이어서 에너지원은 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비타민이나 무기질이 풍부한 채소를 함께 섭취해야 한다. 채소는 곡물과는 달리 저장하기 어렵다. 말려서 보관할 수는 있지만 본래의 맛이 없어지고 영양소가 손실되기도 한다. 그래서 채소를 소금에 절이거나 장(), 초(), 향신료 등과 섞어 두어 새로운 맛과 향이 생기게 하는 저장법을 개발했는데 이것이 김치류이다.

김치가 처음 나오는 문헌은 약 3,000년 전 중국의 『시경』이다. “밭두둑에 외가 열렸다. 외를 깎아 저()를 담자. 이것을 조상에 바쳐 수()를 누리고 하늘의 복을 받자”고 하였는데 ‘저()’가 바로 김치류를 말한다. 실제로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한말의 『석명()』이라는 사전에 “저()는 조( : 막힐 조)이므로 채소를 소금에 절여 숙성시키면 유산이 생기는데 이것이 소금과 더불어 채소를 짓무르는 것을 막아준다”고 하였다. 그 이전의 옥편 『설문해자()』(기원후 100년경)에서는 “초()에 절인 외가 바로 저()”라 하였으니 김치류는 현재의 피클(pickles)처럼 초에 절이는 방법과 소금에 절여 유산 발효시키는 저장법 두 가지가 있었던 셈이다. 중국의 문헌은 김치류를 한결같이 ‘저’라 하였으나 우리는 ‘지()’라고도 하였다.

고려 시대 이규보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에는 외, 가지, 순무, 파, 아욱, 박의 여섯 가지 채소에 대해 읊은 『가포육영()』이라는 시가 있는데 그중에 순무로 장아찌((득장))를 담는 것과 소금절임((지염))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고려 시대의 김치류에는 지금과는 달리 고춧가루나 젓갈, 육류를 쓰지 않았다. 소금을 뿌린 채소에 천초나 마늘, 생강 등의 향신료만 섞어서 재워 두면 채소에 있는 수분이 빠져 나와 채소 자체가 소금물에 가라 않는 침지() 상태가 된다. 이를 보고 ‘침채()’라는 특이한 이름이 붙게 되었다. 조선 중중 때의 『벽온방()』에 “싄 무 딤채국((저즙))을 집안 사람이 다 먹어라”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저()’를 우리말로 ‘딤채’라고 했음을 알 수 있다.

국어학자 박갑수는 김치의 어원에 대해, ‘침채’가 ‘팀채’가 되고, 이것이 ‘딤채’로 변하고 구개음화하여 ‘김채’, 다시 ‘김치’가 되었다는 것이다.

2) 김장은 반식량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호화스러운 잔치 음식에도 김치 없는 음식상이란 있을 수 없고,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밥에는 꼭 김치가 따른다.

조선조의 『농가월령가』(1816년) ‘10월조’에 “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하오리다. 앞 냇물에 정히 씻어 함담()을 맞게 하소.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젓국지 장아찌라. 독 곁에 중두리요, 바탱이 항아리요. 양지에 가가() 짓고 짚에 싸 깊이 묻고······.” 하였으니 겨우내 식량으로 김장을 담그는 일이 가사 중 큰 행사였다.

요즘에는 김치를 사 먹는 집이 많아졌다. 하지만 예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김치와 장을 얻어먹는 것을 부끄러운 일로 여겼다. 이 점에 대해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은 밥에 김치가 없으면 못 견디니, 만반 진수가 있어도 김치가 없으면 음식 모양이 못 될 뿐 아니라 입에도 버릇이 되어 안 먹고는 안 되니 어찌 소중하지 않은가. 봄과 여름과 가을은 춥지 않으므로 조금씩 담가 먹어도 무방하나 겨울은 불가불 한꺼번에 담가 대여섯 달을 먹는다. 따라서 ‘진장()’이라 하는 말은 긴할 때 먹는 것이므로 보배로 감춘다는 말이다. 또 이 진장 때 하지 못하면 대여섯 달을 찬수()에 욕을 볼 뿐이고 다른 반찬을 해 먹으면 도리어 좋지 않다. 오죽하면 진장을 못 하겠는가마는, 원래 없는 사람은 미리 요량을 못 해 그런 일도 있다. 또 남에게 청하는 것 중에 장이나 김치를 얻어먹는 것이 아주 부끄러운 일이다.”

김치는 소금에 절여서 저장하는 동안 발효되어 유산균이 생겨서 독특한 신맛이 나며 고추의 매운맛과 잘 어울러져 식욕을 돋우고 소화 작용도 돕는다. 특히 고추는 비타민 C가 풍부하고 유산균이 있어 건강에도 좋다. 보통 봄, 여름, 가을에는 제철에 나는 열무, 풋배추, 오이, 부추 등의 채소로 김치를 담근다. “김장은 반식량”이라는 말이 있듯 추운 겨울 내내 먹을 김치는 11월 말쯤 저장용으로 한꺼번에 많이 담근다. 김치는 무와 배추가 주재료이지만 여러 푸성귀나 고추, 파, 마늘, 생강 등의 향신 채소와 젓갈이 들어간다.

지금 흔히 먹는 배추 통김치는 속이 찬 배추가 생산되기 시작한 1800년대 말부터 담근 것으로 보인다. 일제 시대에는 당시 중국인들이 서대문 밖 아현동과 신촌 일대에 채소를 가꾸어 천평 광주리에 담아 메고 다니며 속이 꽉 들어차고 싼 배추를 팔았는데 중국인들이 키워 판다고 하여 ‘호배추’라고 불렀다. 서울 근교에서 나는 좋은 배추로는 훈련원(을지로6가)과 연동(연지동, 연건동) 배추였는데 거의 대갓집으로 공급했다고 한다. 그 외 녹번동, 제기동, 마장동의 배추도 광복 전에는 이름 나 있었으나 집들이 들어선 후에는 경기도 양주군이나 파주, 광주의 배추가 서울로 들어왔다. 이곳의 김장거리는 손수레, 우마차 또는 지게로 날라 와 먹었고 남대문, 동대문의 큰 시장과 낙원동, 공평동, 통인동 따위에 손꼽을 정도의 임시 김장 시장이 있었다. 충청도나 전라도에서 김장거리를 열차로 수송한 것은 광복 이후의 일이라 한다.

3) 조리법

지금 흔히 먹는 배추통김치는 속 찬 배추가 생산되기 시작한 1800년대 말부터 담근 것으로 추정한다. 우리 음식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본 반찬이다.

재료
배추 20통(60kg), 무 10개(10kg), 미나리 300g, 갓 300g, 실파 300g, 파 300g, 생굴 300g, 생새우 300g, 생동태 2마리, 고춧가루 5컵, 다진 마늘 100g, 다진 생강 50g, 새우젓 2컵, 조기젓국 3컵, 소금 1컵, 설탕 ½컵
(가) 소금 4컵, 물 40컵(8리터), (나) 소금 2컵

* 계량 단위
1작은술 - 5ml(cc) / 1큰술 - 15ml(cc) / 1컵 - 200ml(cc) / 1되 - 5컵(1,000ml)

만드는 법
ㄱ) 배추 절이기
1. 배추는 다듬어서 포기를 가른다. (가)의 소금물에 담갔다가 건져서 뿌리 쪽의 두꺼운 부분에 (나)의 소금을 뿌려서 가른 단면이 위로 오게 큰 독이나 용기에 차곡차곡 담아 절인다. 다섯 시간쯤 후에 위아래를 바꾸어 전체를 고루 절인다.
2. 절인 배추를 깨끗이 씻어서 채반이나 소쿠리에 엎어서 건져 물기를 뺀다. 포기가 큰 것은 다시 반으로 가르고 뿌리 부분을 깨끗이 도려낸다.

ㄴ) 소 버무려 넣기
1. 무채에 고춧가루를 넣고 버무려서 빨갛게 색을 들인 후 미나리, 갓, 실파, 파를 넣어 섞는다. 이어서 다진 마늘, 생강, 젓갈을 넣고 간을 보아 부족하면 소금, 설탕으로 맞추고 생굴, 생새우, 동태 살을 넣어 버무린다.
2. 소를 넓은 그릇에 덜어서 절인 배추를 놓고 배춧잎 사이사이에 고르게 채우고 바깥 잎으로 전체를 싸서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는다. 항아리의 맨 위에는 배추 겉에 절인 것을 덮고 깨끗한 돌로 눌러 놓는다. 국물이 적으면 물을 끓여서 소금이나 젓국으로 간을 맞추어 붓는다.
3. 배추통김치는 김장철에 담그고 대개 3주일쯤 지나면 맛있게 익는다.

배추통김치 담그기

① 절인 배추를 씻어서 물기 빼기

② 소 양념 준비하기

③ 소에 젓갈 넣기

 

5. 우리나라 전통 문화 놀이 탈춤

 

1). 탈춤이란?

얼굴에 탈을 쓰고 추는 한국의 춤.

그리고 탈춤이란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이 가면으로 얼굴이나 머리 전체를 가리고 다른 인물, 동물 또는 초자연적 존재(신) 등으로 분장한 후 음악에 맞추어 춤과 대사로써 연극하는 것을 말한다.

 

2). 탈춤의 유래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주술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굿에서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를 예술적으로 표현하려는 극으로의 전황에서 굿에 이용되었던 극적 요소들을 발전시켜내며 탈춤은 생성되었다

 

3). 탈춤의 종류

산대가면극(山臺假面劇)은 서울의 아현(阿峴)·녹번(碌磻)·구파발(舊把撥)·노량진(鷺梁津) 등의 본산대(本山臺) 양주(楊州)에는 별산대(別山臺)가 있었는데 지금은 양주 별산대놀이와 송파 산대놀이 등

 

4). 탈춤의 특징

중부지방의 산대춤은 비교적 섬세한 맛이 있고 형식도 갖추고 있으며 특히 몸짓의 연극적 약속이 잘 정형화 되어 있고 손을 내놓고 추기 때문에 손짓 동작이 많으며 매듭이 확실한 타령장단, 매듭춤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 탈춤의 특징 요약 >

- 관객이나 악공이 공연의 제3자가 아니라 극중 현실에 개입한다.

- 탈춤은 관객, 악공 등 서민들의 세계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이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예술이다.

- 공동체적 유대감을 가지고 신명나는 놀이판을 형성하는 동시에 비판적인 현실 인식을 유발하는 공연 효과를 지닌다


  


  

우리의 전통 가면 강령탈춤의 한장면

 

5). 탈춤의 종류

 

1). 서울을 중심으로한 중부지방의 탈춤

: 양주별산대놀이, 송파산대놀이

2). 황해도를 중심으로 한 북부지방의 탈춤

: 강령탈춤, 봉산탈춤, 은율탈춤

3). 낙동강을 중심으로 한 남부지방의 탈춤

: 통영오광대놀이, 고성오광대 놀이, 수영들놀음, 동래들놀음

4). 이 밖의 탈춤

: 안동 하외별신굿, 강릉 관노놀음

위의 12가지 탈춤은 주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6). 동영상

 

1) 안동 하회마을 입니다. 아래를 클릭해서 보십시오.

↓↓↓↓↓↓

 

[네이버 백과사전] 일부인용

 

 

끝으로 님의 건강과 행복이 충만 하시기를 빌겠습니다.

201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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