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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째 답변
역사기행
수호신
열심답변자
한국사 8위, 문화재 6위, 남양주시 2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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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답변드리겠습니다.
1506년 중종반정이 일어났을 때 유자광은 정국공신 1등 무령부원군에 임명되었습니다.
1507년 유자광은 대광보국숭록대부를 제수받았지만 대간들이 반대했습니다. 유자광은 자신의 끝을 에감하고 중종에게 미리 사직을 청하여 윤허를 받았지만사간원, 사헌부, 홍문관 등이 모두 유자광을 탄핵했습니다.
그 이유는 유자광이 무오, 갑자사화의 원흉이라는 이유였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그가 서자 출신이라는 점이 영향을 끼쳤습니다. 당시 새롭게 등장한 사림파의 분노를 무마시킬 제물로 유자광이 또 선택된 것 입니다.
그 이유는 유자광이 무오, 갑자사화의 원흉이라는 이유였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그가 서자 출신이라는 점이 영향을 끼쳤습니다. 당시 새롭게 등장한 사림파의 분노를 무마시킬 제물로 유자광이 또 선택된 것 입니다.
당시 대간들은 유자광의 극형을 청했지만 왕은 반정공신이라고 해서 듣지 않았습니다. 유자광은 유배갔으며, 몇 번의 유배지를 옮기는 과정에서 그는 병을 얻어 실명을 했으며 1512년 73세에 병으로 죽었습니다.
이러한 파란만장한 생을 살다간 유자광을 사후 394년이 지나 이완용에 의해서 복권되었습니다.
이러한 파란만장한 생을 살다간 유자광을 사후 394년이 지나 이완용에 의해서 복권되었습니다.
2017.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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