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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백과

송몽규

[ 宋夢奎 ]

요약 일제 강점기에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로 일본 유학 중에 윤동주와 함께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獄死)하였다.
출생-사망 1917. 9. 28 ~ 1945. 3. 7
별칭 송한범(宋韓範), 왕위지(王偉志), 고문해(高文海)
국적 한국
활동분야 독립운동
출생지 중국 지린성[吉林省] 룽징[龍井]
주요수상 건국훈장 애국장(1995)

본적(本籍)은 함경북도 경흥(慶興)이며, 중국 지린성[吉林省] 룽징시[龍井市] 지신진[智新鎭]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송한범(宋韓範), 왕위지(王偉志), 고문해(高文海)이다. 1931년 3월 명동소학교(明東小學校)를 졸업하여 다라쯔[大拉子]의 중국인 소학교 6학년에 편입해 1년을 더 다닌 뒤, 1932년 4월 룽징의 은진중학교(恩眞中學校)에 입학하였다. 은진중학교 에 재학중이던 1935년 4월 중국 난징[南京]으로 건너가 김구(金九)가 광복군(光復軍)의 무관을 양성하기 위해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中國中央陸軍軍官學校)에 설치한 한인특별반(韓人特別班)에 2기생으로 입학하여 군사 훈련을 받았다. 그 뒤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가, 1936년 3월 산둥성[山東省] 지난[濟南]의 일본 영사관 경찰에 사로잡혀 본적지인 함경북도(咸鏡北道) 웅기(雄基) 경찰서로 강제 송환되었다. 8월까지 치안유지법 위반과 살인 등의 혐의로 조사를 받다가 석방되었다. 1937년 4월 룽징의 대성중학교(大成中學校) 4학년으로 편입한 뒤, 1938년 4월에는 외사촌 동생인 윤동주(尹東柱)와 함께 서울 연희전문학교(延喜專門學校) 문과에 입학하였다.

대학 입학 후 송몽규(宋夢奎)는 윤동주(尹東柱), 백인준(白仁俊), 강처중(姜處重) 등과 한국 문학 동인지의 간행과 문학작품 품평회 등을 열며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1942년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 문학부 사학과에 입학하였다. 함께 유학을 떠난 윤동주는 도쿄[東京]의 릿쿄대학[立敎大學]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하였다가, 그 해 10월 교토[京都]의 도지샤대학[同志社大學]으로 옮겼다. 송몽규(宋夢奎)는 교토[京都]에서 윤동주, 제3고등학교생 고희욱(高熙旭) 등과 자주 모임을 가졌는데, 1943년 7월 14일 한국인 유학생을 모아놓고 조선의 독립과 민족문화의 수호를 선동했다는 죄목으로 일본 특별고등경찰에 체포되었다. 송몽규는 ‘재쿄토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사건’으로 기소되어, 1944년 4월 13일 교토 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선고 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함께 수감되었던 윤동주는 1945년 2월 16일 옥사(獄死)하였고, 송몽규도 3월 7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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