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로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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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로어: Føroyar /ˈfœɹjaɹ/[1]
덴마크어: Færøerne /ˈfæɐ̯øːˀɐnə/[2]
영어: Faroes Islands.

면적1,399km²
인구49,267명(2011)
민족구성페로인 91%, 덴마크인 5.8%
수도토르스하운(Tórshavn)
1인당 GDP명목 50,300$(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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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덴마크의 자치령. 다만 본국 덴마크와 달리 유럽연합(EU)에 소속돼 있지는 않다.[3]

지리적으로는 노르웨이 ~ 영국 스코틀랜드 ~ 아이슬란드를 잇는 삼각형의 중심에 있는 일군의 섬들이다. 이 섬의 넓이는 합치면 경주시보다 약간 적은 정도지만 인구밀도가 매우 낮아 5만명에 불과하다.[4]

역시 천혜의 자연이 관광자원이다. 또 고래사냥으로 유명한 섬이다.

2 역사

영국 스코틀랜드에 더 가깝지만, 바이킹 시대[5]노르웨이의 영토가 되었었다. 하지만 칼마르 동맹 시기와 덴마크-노르웨이 동군연합 시기를 거치면서 사실상 덴마크의 지배를 받는 땅이 되었다.[6]

그러다가 나폴레옹 전쟁 이후인 1814년 킬 조약에 따라 덴마크가 줄을 잘못 서는 바람에 노르웨이의 지배권을 상실하게 된다.[7] 하지만 킬 조약에서 그 동안 노르웨이의 일부였던 페로 제도를 따로 떼어내 덴마크의 영토로 넘긴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이에 따라 페로 제도는 이때부터 정식으로 덴마크 소속이 되었다.[8]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 4월 9일 나치 독일군이 덴마크 본토를 점령하자 영국군은 여기에 맞서 4월 12일에 페로 제도를 점령했다. 페로 제도의 유일한 공항도 이 시기 영국군이 지은 것이다. 2차 대전이 끝나자 영국은 1945년 9월에 철군하면서 페로 제도를 덴마크에 반환하였다. 1948년까지는 페로 제도가 덴마크의 일개 행정구역에 불과했지만 이 해에 자치령이 되었다. 이때부터 페로 제도의 공용어는 페로어가 되었고, 덴마크어는 제2언어로 교육되고 있다.

3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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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개의 큰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가장 큰 섬은 스트레이모이(Streymoy) 섬으로 토르스하운도 이 섬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이다.

북위 60도보다 북쪽의 고위도에 위치해 있으나, 바다의 영향으로 날씨는 동위도에 비해 온화한 편이다. 토르스하운의 1월 평균기온은 3.4℃로 거의 부산과 비슷한 수준. 다만 8월 평균기온도 10.6℃에 불과해 여름에도 춥긴 하다. 연강수량은 토르스하운의 경우 1,437mm로 비는 많이 오는 편이다.

다만 날씨는 연평균습도 89.2%로 습도가 매우 높고 변덕스럽고 바람이 잦아 체감온도는 그보다 더욱 낮다. 1년에 260일 이상 비가 온다고 한다.[9]

그리고 일조시간이 극단적으로 적다. 토르스하운의 연간 일조시간은 841시간에 불과한데 이정도면 하루에 평균 2시간 수준이다. 일조시간 적기로 악명높은 런던의 55% 정도에 불과한 수준이다. 사람이 정착해서 살고 있는 곳들 중 가장 일조량이 적은 지역 중 한 군데이다.[10]

그리고 토양이 매우 척박하여 초원만 있을 뿐 자연 상태에선 나무를 한 그루도 찾아볼 수 없다. 페로 섬에 대한 사진들을 찾아보면 간혹 나무들을 찾아볼 수 있을 텐데, 그 나무들은 사람들이 인공적으로 심어놓은 것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전통건축물들은 목조가 많은데, 이는 아이슬란드와 달리 덴마크나 노르웨이 등 인접 지역으로부터 목재를 수입하는 것이 쉬웠기 때문이다.[11]



한국에서는 바다와 맞닿아 있는 쇠르보그스바튼 호수(sørvágsvatn lake)가 유명하다.

4 고래사냥

페로 제도는 연례행사인 길잡이고래(Pilot Whale) 사냥으로 유명하다. 이 고래는 범고래과로, 긴지느러미 들쇠고래라고도 하며 성체의 몸길이가 3.8~6m정도이다. 섬 주민들은 오랜 옛날부터 길잡이고래를 식용으로 잡았는데, 한국 어부들이 멸치를 몰듯 바다에서 골짜기로 고래떼를 몰아서 포경을 했다. 농사를 거의 지을 수 없는 환경여건상 고래고기는 이들이 살아남기 위한 필수품이었으며 오늘날 고래고기는 슈퍼마켓에서 팔리지 않는다. 각 가족이 사냥에 참가하여 분배받은 몫을 보관해놓고 먹을 뿐이다.

20세기 이후 고래 자원의 감소가 두드러지면서 포경 규제가 시작되었을 때 이들의 포경도 검토 대상이 되었지만 별다른 규제는 가해지지 않았다. 전통문화 유지 측면도 있었지만 이들이 잡는 고래는 상업적인 포경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점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처럼 고래를 식용하는 이누이트시베리아 원주민들이 잡는 북극고래(Bowhead whale)는 덩치 때문에 유럽인들의 상업적 포경 대상이었으므로 수가 격감했지만 덩치가 작은 길잡이고래는 상업적 포경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즉 이 동네 사람들밖에 안 잡는, 그것도 먹으려고만 잡는 고래니까 별로 개체수가 줄 일이 없었던 것.
현재도 페로 제도 사람들이 매년 잡는 길잡이 고래의 수는 전체 길잡이 고래 개체수의 0.1%를 조금 더 넘는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한다. 즉 고래 개체수에는 전혀 위협이 안 된다는 이야기.

21세기로 들어온 현대에도 페로 제도의 육류 공급량 중 30%를 직접 잡은 길잡이고래 고기가 차지하는데, 고래사냥을 중단할 경우 이만큼의 식량을 다른 곳에서 더 구해와야 한다. 바다에서 생선을 더 많이 잡든가, 육지에서 육류를 수입해오거나, 섬의 자원을 파괴하면서 키우는 가축의 수를 늘이거나...이런 결과를 피하기 위해 고래잡이에는 큰 규제가 가해지지 않았다. 잡힌 고래의 수는 1990년대에는 연평균 956마리이며 2006년에도 856마리가 잡혔다.

4.1 동물보호단체와의 충돌

하지만 주민들의 생존에 필요하다고 해서 동물보호단체가 그냥 넘어가지는 않는다. 피로 물든 바다라는 이미지가 주는 인상 때문이겠지만 동물보호단체의 사냥금지 요구는 꽤 거센 편이고, 이에 따라 포경 방식에 어느 정도 변화도 있었다. 가능한 고래에게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서, 포획시에 창이나 작살을 사용할 수 없을 뿐더러(1985년부터 금지) 날카로운 갈고리도 쓰지 못한다. 예전에는 스스로 올라오지 않는 고래를 해안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날카로운 갈고리를 지방층에 꽂아서 끌어당겼지만, 오늘날에는 무딘 갈고리를 고래의 분기공(숨구멍)에 꽂아서 끌어당기도록 하고 있으며 날카로운 갈고리의 사용은 이미 죽은 고래에만 한정된다. 1993년부터 이 무딘 갈고리를 쓰는 이유는 단 하나, "인간적"이라는 것 때문.
일단 해안으로 올라온 고래는 그린다크뉘부르(Grindaknívur)라는 전통 칼에 의해 목이 잘려 죽게 되며 목이 잘린 고래가 죽을 때까지는 수 초에서 수 분까지 걸리는데, 평균하면 30초라고.

4.2 중금속 오염 문제

다만 페로 제도 근해에서 잡히는 고래고기는 중금속에 심하게 오염되어 있다. 영국-프랑스-독일-미국 등의 국가들이 백 년 이상 퍼부어댄 산업폐수와 쓰레기의 영향으로 인해 북대서양이 상당히 오염되어 있기 때문. 그리고 이런 공해물질의 농축도는 먹이사슬의 위쪽으로 갈수록 심하게 마련이어서, 페로 제도에서 잡히는 길잡이고래의 체내에는 수은, PCB, 기타 오염물질의 농도가 위험한 수준으로 올라가 있다.
2008년 11월에는 페로 제도의 수석 의료관이 고래 식용을 중단해야 한다고 발표할 정도였으며, 2015년 현재까지 페로 제도의 인구 중 5천명 정도가 고래고기 속의 수은 때문에 앓고 있거나 사망했다고 한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알레르기 환자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건강을 생각하자면 고래잡이를 당장 중단해야 하지만 문제는 그럼 대신 뭘 먹느냐 하는 것이다. 위의 기후에서도 알겠지만 아이슬란드보다도 농사를 짓기에 매우 좋지 않은데다 양을 기르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수가 적다.

5 경제

아이슬란드처럼 대체로 어업이 주 산업이며 그 외에 소규모 선박 수리업 등이 존재한다.

나라는 아니지만 이 지역도 일본과 같은 시기에 너무 많은 걸 '잃어버린' 시대가 있었다(...) 당시 자치정부 부채는 140%까지 치솟았으며 결국 디폴트 선언까지 하기에 이르렀었다.

다행히도 90년대 후반부터 4%대의 성장세를 보이며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했고 정부부채도 급격히 줄기 시작해 2008년에는 되려 경제위기에 빠졌던 아이슬란드지원해주기도 했다.

6 사회

1985년까지는 TV가 없었다

2016년에 페로제도에서도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었다. 이미 2013년에 있던 페로 제도 내 여론조사에서도 68%가 동성결혼에 찬성한다고 밝혀졌었다. 이로서 모든 노르드+스칸디나비아국가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었다.

6.1 종교

루터교회 목사가 평범한 정장차림으로 설교하던 동네였다. 요즘은 다른 지역의 루터교회처럼 전례복 착용 비율이 늘긴 했지만 성 올라프의 날 같은 행사 때만 입는 듯. 루터교 외에는 플리머스 형제교회와 가톨릭도 존재하나, 사실상 페로 제도에 보이는 교회들은 절대 다수가 루터교회라 봐도 틀리지 않다.

실질적으로는 여느 노르딕 국가들이 그렇듯 무종교인들이 대다수이다.

6.2 교육

고등교육기관은 페로 제도 대학교가 유일하다. 교원 76명, 직원 24명, 대학생 850명 정도의 미니 학교. 대부분의 교육은 페로어로 이루어지지만, 서부 북유럽학 (West Nordic studies) 석사에 한해 영어로 수업이 이루어진다.

7 스포츠

7.1 올림픽/패럴림픽

IOC에 가입하지 않아 현재로서는 자체적인 올림픽 대표팀을 보낼 수 없다. 페로 제도 출신 선수는 덴마크 올림픽 대표팀의 일원으로만 참가할 수 있다. 다만 국제 패럴림픽 위원회(IPC)에는 가맹이 돼 있어서 패럴림픽 대회에는 덴마크와 별도의 대표팀을 내보낸다. 그래서 패럴림픽과의 관계 때문에 FRO라는 IOC 국가코드가 할당은 돼 있다.[12]

1990년대에 개정된 올림픽 헌장에 따르면 헌장 개정 이전에 IOC에 가입한 경우를 빼고는 속령이 IOC에 신규 가입할 수 없다. 올림픽 헌장에서는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는 주권 국가(독립 국가)만 IOC에 가입할 수 있게 해놓은 것. 그래서 페로 제도가 IOC에 가입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가능하게 하려면 올림픽 헌장부터 개정해야 할 듯.

7.2 축구

비록 독립국가는 아니지만 FIFA에 가입한 축구 대표팀이 있다. 하지만 산마리노, 리히텐슈타인, 안도라와 함께 유럽 축구계의 공인 승점셔틀. 하지만 1992년 첫 유로컵 예선 경기에서 오스트리아를 안방에서 1-0으로 이기기도 했다. 다만 당시 오스트리아는 동네북 신세로 페로 제도랑 같은 1승 1무 6패를 기록할 정도로 유럽 약체급으로 떨어지던 시절이긴 하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원정은 0-3으로 설욕당했다.

그래도 자체 프로리그인 프리미어 리그가 있으며 리그 스폰서 이름을 따서 에포다일딘(Effodeildin)이란 이름[13]으로도 불리운다. 1942년부터 리그를 열었지만 1993년까지 유럽 클럽대항전은 나가질 못했었다. 1993년부터 리그를 다시 재편성며 2부리그 체제로 1부리그에는 10개팀이 소속되어 있으며 우승팀은 UEFA 챔피언스 리그 2차예선에 나간다. 2,3위팀은 UEFA 유로파 리그 2차예선에 진출권을 가진다. 어쨌든 프로축구 리그 성적과 달리 축구는 인기가 가장 많은 구기 종목이다.

국제축구에서도 1993년부터 나가기 시작했지만 당연히 월드컵이나 유로컵에선 동네북 신세이다. 그래서 노르딕컵이라는 노르만계 지역 축구대회에 주로 나가는데 여기서 1985년 아이슬란드에게 0:9로 크게 진 게 역대 최다 실점패 기록이다. 반대로 최다 득점승리기록은 1989년 올란드 제도(핀란드 자치령인 섬인데 페로 제도와 달리 피파에 가입하지 않았다)를 7:1로 이긴 바 있다. 상대가 피파 미가입국이긴 해도 그래도 최다골 기록이 1:0(...)인 산마리노보단 앞선..셈.

최근에는 아일랜드 출신의 브라이언 커 감독이 부임하여 비기는 횟수도 늘었고, 가끔은 이기기도 하며 많이 나아졌다. 하지만 커는 2011년에 사임하게 되었다.

그런데 2014년 11월 15일 유로 2016 예선에서 그리스를 그것도 원정에서 1:0으로 잡아냈다. 무승부도 아닌 승리를 따낸것. 그동안 고춧가루팀도 못되던 페로 제도로써는 유로컵에서 강호급을 상대로 처음이자, 가장 큰 승리를 거둔 셈.

물론 그리스가 유로 2016 예선에서 이전에 1무 2패에 시달리며 부진 중이었긴 하지만 겨우 이 경기 몇 달전인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사상 첫 16강 진출을 이뤘고 피파랭킹 18위까지 올랐었다! 그런 그리스를 187위인 페로 제도가 원정에서 이길 줄은 예상하지 못한 이들이 수두룩했기에 이변 중 대이변이다. 그리고 그 뒤 2015년 6월에 열린 그리스와의 2차전 안방경기에서도 2:1로 잡아내며 더블을 완성한다. 비록 나머지 경기들은 싸그리 다 져서 2승 8패를 기록했지만 사상 처음으로 국제대회 예선에서 2승을 거두고 나아가 첫 꼴지 탈출이었기에 페로 제도에서는 감격한 쾌거였다...반대로 유로 2004 우승국이자 유로 2012대회 8강,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사상 첫 16강을 거둔 그리스는 단 1년만에 유로컵 예선 꼴지 달성...

이 승리 여파로 피파 랭킹이 무려 74위까지 뛰어올랐다!

8 창작물에 나타나는 페로 제도

  1. 푀로야르 정도로 쓸수 있지만 발음기호에서 보듯이 페로어의 r발음은 영어랑 비슷하기 때문에 실제론 푈얄(...)정도로 들린다
  2. 외래어 표기법 대로 적으면 '페뢰에르네'. 실제 발음은 '패어외어너' 정도.
  3. EU 회원국의 속령들은 각자 상황에 따라 EU에서 제외할 수 있다. 덴마크의 또 다른 자치령인 그린란드는 EU의 전신인 유럽 공동체에 억지로 소속됐다가 이후 탈퇴하여 역시 현재는 EU 소속이 아니다.
  4. 1,464.14㎢의 면적에 4만3천여명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평창군과 가장 비슷한 규모이다.
  5. 사실 그 시절에는 현 영국도 상당 지역이 바이킹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6. 스코틀랜드 최북단 섬들인 셰틀랜드 제도와 오크니 제도도 1468년까지는 페로 제도와 상황이 비슷했다. 하지만 이때 덴마크-노르웨이의 마르가레테(마거릿) 공주가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3세에게 시집을 가면서 지참금을 안 보내는 대신 그 일대의 섬을 스코틀랜드에 담보(...)로 맡겼다. 그 후로 덴마크-노르웨이가 따로 지참금을 스코틀랜드에 안 보냈기 때문에 자동으로 스코틀랜드 땅으로 흡수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덕분에 스코틀랜드의 북해 유전이 넓어졌다 심지어 셰틀랜드와 오크니 제도에는 페로어와 비슷한 바이킹 언어인 노른어가 19세기 중반까지 존재했었을 정도다.
  7. 이때부터 스웨덴-노르웨이 동군연합이 성립된다.
  8. 비슷하게 동군연합이 끝나면서 일부 지역의 소속국이 바뀐 케이스로 세우타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를 참고할 것.
  9. 한국의 경우 1년 총강수량은 페로제도보다 좀 적은 수준이지만, 대부분이 한여름에 몰아서 내리기 때문에 강수일수는 생각보다 적다.
  10. 페로 제도보다 일조시간이 적은 동네는 노르웨이의 비외르뇌위아(Bjørnøya) 같은 극지방의 작은 섬들 몇 개 정도와 저기 남쪽에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령인 프린스 에드워드 제도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비외르뇌위아와 프린스 에드워드 제도에는 사람이 살지 못한다.
  11. 반면 아이슬란드는 독립 이전에도 노르웨이나 덴마크 본국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목재를 수입하기보다는 흙집을 짓는것이 더 효율적이었다.
  12. 이런 식으로 올림픽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패럴림픽에는 참여하는 케이스로 마카오가 있다.
  13. 과거에는 포르물라다일딘(Formuladeildin)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