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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우리나라를 빛낸 사람들
비공개 조회수 4,453 작성일2006.12.17

우리나라를 빛낸 사람들 중에서 탐사와 교육에 대해서요. 각각 2개씩

인물과 하는일 그리고 우리가 본받을 점을 가르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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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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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황우석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1952년 충청남도 부여에서 태어났다. 대전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수의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교 대학원에서 임공임신학을 전공, 수의학 석사(1979)·박사(1982) 학위를 받았다.

 

1984년 일본으로 건너가 2년간 홋카이도대학[北海道大學] 객원연구원으로 있으면서 가축 번식기술을 익힌 뒤, 동물의 유전자 조작과 인공번식 연맙?전념하였다. 1986년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교수로 부임한 이래, 동물복제 연구에 전념하여 1999년 2월 한국 최초로 체세포 복제젖소(송아지) '영롱이'를 탄생시켰는데, 동물 체세포 복제로는 세계에서 5번째이며, 젖소 복제로는 세계 최초이다.

 

같은 해 3월 복제한우 '진이'를 탄생시키면서 동물복제 연구의 세계적인 인물로 주목받았고, 2000년에는 소 난자에 호랑이의 체세포 핵을 이식해 사자를 대리모로 쓴 백두산호랑이 복제에 도전해 이종(異種) 동물의 핵 이식에 이어 세계에서 처음으로 임신까지 성공하였으나, 출산에는 실패하였다.

 

2004년 2월에는 사람의 체세포를 복제한 배아(胚芽)를 사람의 난자에 주입해 핵이식 난자를 만든 다음, 전기자극을 통해 세포융합을 유도함으로써 배반포 단계까지 발육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세계 최초로 '인간배아 줄기세포'를 만들어냈다. 이 연구로 배아 줄기세포를 이용해 뇌질환·당뇨병·심장병 등 각종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고, 그는 세계 각국의 언론으로부터 복제양 '돌리'에 버금가는 위대한 생물학적 발걸음을 내디딘 인물로 평가받았다.

 

2004년 현재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수의학회 학술위원장, 한국발생생물학회 부회장, 한국수정란이식학회 학술위원장,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부학장 등을 지냈다.

 

저서에는 《수의산과학》(1995), 《소 수정란 이식》(1995), 《동물 유전공학》(1997) 등이 있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우수과학기술논문상(1997), 대한민국과학기술상·홍조근정훈장(2000), 세종문화상 대통령상(2001), 과학기술훈장 창조장(2004) 등을 받았다

 

(2)정명훈

 

1953년 1월 22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4세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 7세 때 서울시교향악단과 협연을 할 정도로 음악에 자질을 보였다. 9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1963년 시애틀교향악단과 협연하였고, 1975년 매니스음악대학교 피아노과를 거쳐, 1978년 줄리아드학교를 졸업하였다.

 

1974년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국제음악콩쿠르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피아니스트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듬해 1975년 줄리아드학교 학생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를 맡으면서 지휘자로 진로를 바꾼 후, 다음해 뉴욕 청소년심포니 지휘자를 맡으면서 본격적인 지휘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 뒤 영국 런던필 객원지휘자, 프랑스 파리관현악단 객원지휘자 등을 거쳐 독일 자르브뤼켄방송교향악단 수석지휘자, 이탈리아 피렌체관현악단 수석 객원지휘자 등을 역임하면서 지휘자로서 확고한 발판을 굳혔다. 이어 1989년 프랑스의 세계적인 오페라단인 국립 바스티유오페라극장 음악총감독 겸 상임지휘자를 맡으면서 세계 최정상급 지휘자로 인정받았다.

 

1992년에는 음악을 통해 인류의 화합에 이바지한 공로로 초대 국제연합 마약대사로 임명되었고, 이후 KBS교향악단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1997), 아시아 필하모닉오케스트라 창단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1997), 이탈리아 산타체칠리아오케스트라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1997), 라디오프랑스 필하모니오케스트라 음악감독(2000)을 지냈다. 2000년 10월부터는 일본 도쿄필하모니오케스트라 예술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탈리아 토스카니니상(1989), 프랑스 올해의 음악상(1991), 프랑스 비평가상(1991), 프랑스 국가훈장(1992), 프랑스 음악의 승리상(최고의 음반상, 1995), 금관문화훈장(1995), 호암상 예술상(1997), 프랑스 클래식 음악의 승리상(2003) 등을 받았고, 1995년에는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 서울협회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3)이봉주

 

1970년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광천고등학교 1학년 때 육상 장거리에 입문하였다. 1990년 서울시청에 입단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고, 1991년 말 정봉수 감독의 권유로 코오롱에 입단해 황영조·김완기 등과 함께 훈련을 받았다. 이듬해 1992년 1월 도쿄국제하프마라톤대회에서 1시간 1분 4초의 한국 최고기록을 수립하였다.

 

이후 1992년 자신의 첫 풀코스인 올림픽경기대회 대표선발전에 출전하여 경기 중반까지 황영조 등과 선두 그룹에 속해 달리다가 넘어져 올림픽행이 좌절되기도 하였으나, 1993년 10월 광주에서 열린 제74회 전국체육대회에서 2시간 10분 27초의 기록으로 정상에 올랐다. 그해 12월 호놀룰루마라톤에 출전하여 케냐의 코스마스 엔데티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1994년 세계적인 마라톤 경주대회인 보스턴마라톤에서 2시간 9분 59초의 기록으로 마침내 10분 벽을 돌파하였다.

 

이후 1995년 제67회 동아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한 뒤, 춘천마라톤에서도 4위를 차지하였고, 1996년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제26회 올림픽경기대회에서는 아쉬운 준우승에 그쳤다. 1998년 로테르담마라톤에서 2시간 7분 44초를 기록하여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의 한국 최고기록인 2시간 8분 9초를 깨고 2위에 올랐고, 1998년 타이의 방콕에서 열린 제13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한국의 마라톤 3연패를 달성하였다.

 

황영조 이후 한국의 대표 마라토너로 온 국민의 관심을 모았던 그는 2000년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에서 열린 제27회 올림픽경기대회에서 저조한 성적을 냈으나, 2001년 4월 보스턴마라톤을 제패함으로써 남승룡 이후 51년 만에 우승컵을 한국으로 되찾아왔다

 

(4)한국국제협력단

 

영문 머리글자를 따서 코이카(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KOICA)라고도 한다. 정부 차원의 대외무상협력사업을 전담 실시하는 기관으로, '함께 잘 사는 인류사회 건설'이라는 모토 아래 1991년 4월 설립되었다. 한국과 개발도상국의 우호협력관계 및 상호교류를 증진하고 이들 국가들의 경제사회 발전을 지원함으로써 국제협력을 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주요 활동으로 전문가, 의사, 태권도 사범 등의 전문인력 및 해외봉사단 파견, 국제협력 요원을 포함한 연수생 초청사업, 국제비정부기구(NGO) 지원, 개발조사 및 물자공여 사업, 아프가니스탄 지원 사업, 기타 프로젝트 사업 등을 전개하고 있다.

 

국제협력단의 로고는 세계인에게 친근하고, 평화와 봉사를 상징하는 월계수를 그려넣어 국제협력단이 세계평화와 인류번영에 이바지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발간물로는 반연간지 《지구촌 가족 Global Village》, 국제협력단 연보, 만화 리플릿 등을 발행하고 있다.

 

조직은 2003년 현재 총재, 비상근 감사, 이사 3인의 임원과 1본부 6부(총무부·기획총괄부·연수사업부·인력사업부·개발사업1부·개발사업2부) 20팀 2반(협력정책반·아프가니스탄지원사업특별반)과 17개 해외사무소로 구성되어 있다. 인원은 177명이며, 본부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에 있다

 

(5)백남준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나 1949년 홍콩 Royden School을 졸업하였다. 1950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대학 미학문학부에서 공부하고, 1956년 독일로 유학하여 뮌헨 루드비히막시밀리안대학교를 수료하였다. 그 뒤 유럽과 미국을 떠돌며 전위적이며 실험적인 미술집단, 플럭서스(Fluxus)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테이프리코더와 피아노음악 공연(독일 뒤셀도르프, 1959), 피아노포르테 연구 공연(1960), 심플 공연(스웨덴 스톡홀름, 1961), 뮤직일렉트로닉TV전(1963) 등 많은 공연과 전시회를 가졌다.

 

1963년 독일 부퍼달 파르니스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어 비디오 예술의 창시자로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1969년 미국에서 샬롯데 무어맨(Sharlotte Mooreman)과의 공연을 통해 비디오 아트를 예술 장르로 편입시킨 선구자라는 평을 들었다. 1977년 위성TV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발표하였고, 1993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1996년 6월 뇌졸중으로 쓰러져 몸의 왼쪽 신경이 모두 마비되었다. 그러나 신체장애를 극복하고 국내외에서 도시와 영상전(서울시립미술관, 1996), 교과서 미술전(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997), 독일 비디오조각전(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997), 97 바젤국제아트페어(스위스 바젤, 1997), 개인전(미국 국립미국미술관, 1997), 98서울판화미술제(예술의전당 미술관, 1998), 한국현대미술전-시간(호암갤러리, 1998) 등 많은 전시회를 열었다.

 

1996년 10월 독일《포쿠스》지가 선정한 '올해의 100대 예술가' 중에 들었고, 1997년 8월에는 독일 경제월간지 《캐피탈》이 선정한 '세계의 작가 100인' 가운데 8위로 올랐다. 1998년 미국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미술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대예술과 비디오를 접목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공로로 '98년도 교토상'을 수상하였고, 한국과 독일의 문화교류에 기여한 공로로 '괴테메달'을 받았다.

2000년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06.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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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순신장군 등이있지만 저는 이순신장군을 좋아해서 이순신으로..

 간결하게 이순신장군은 임진왜란때 큰 일을 하셨던 분 입니다.

2006.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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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탐사와 교육을 빛낸 사람들이라면 여러가지가 많지요.

훈민정음을 창시한 세종대왕, 훈민정음을 한글로 고치고, 널리 알린 주시경 선생님,

천문대 등을 만든 장영실 선생님,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 선생님 등.. 

이 중에서 세종대왕과 장영실 선생님만을 하겠습니다.

사진도 올리겠습니다.

 

세종대왕

생애: 1397~1450

세종 대왕의 업적 가운데 가장 빛나는 것은

훈민정음의 창제로, 이는 한국 민족 문화 유산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라고 할 수있다.

 

업적 : 1438년 도천법을 만들어 인재를 모음.

1420년 새로운 구리활자 '경자자'를 만듬.

1434년에 새 구리 활자인 갑인자를 만듬.

이것은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만든 것보다 훨씬 더 앞섬.

이 활자들로 찍어 낸 책에는 고려 시대의 역사책 <고려사>, 부모에게 효도하도록 일깨운

<효행록>, 예절에 관한 <오례의>, 정치에 관한 <치평요람>, 백성의 건강을 돌보는 의학책인 <항약집성방>과<의방유취>, 농사를 잘 짓도록 한 <농사직설>, 지리책인 <팔도지리지>등이 있다.

세종은 가난한 백성을 위해 환곡법 제도 실시,

1423년 조선통보 엽전 개발

1426년 금화도감 설치

1433년 천체 관측하는 '간의', '혼천의' 발명

그밖에 해시계인 '앙부일구', 낮과 밤의 기상관측하는 '일성 정시의', 물시계인 '자격루'발명

1443년 닿소리(자음) 17자 홀소리(모음)11자가 만들어짐. 훈민정음 발명

이듬해 훈민정음으로 만들어진 용비어천가(조선의 건국을 찬양하는 노래)개발.

본받을 점 :  끈기있는 노력과 실천,백성을 위한 마음, 인재를 아끼는 마음,

 

 

장영실

생애 : ?~?

노비출신인 장영실은, 측우기와

물시계,해시계 등을 만들어 우리 나라의

과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과학자이다.

이것으로만 쓰겠습니다.

좋은 자료 되었기를 바랍니다.

 

 

 


 

 

2006.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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