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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화려한휴가요...........
tlse**** 조회수 5,946 작성일2007.08.01

저요 이번주 일요일에나 영화 화려한휴가볼려는데..... 영화가 그땐 끝날거 같아요

 만약 안끝나면 다행이지만 만약 끝나면요..... DVD언제쯤 나오나요????

   아무튼 일요일까지 흥행이 좋아서 연장까지갓으면 좋겟네요

  왠만하면 영화관에서 무삭제장면까지 다봣으면 하는데..... 암튼 화려한휴가 DVD언제쯤 나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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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

화려한 휴가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정말 펑펑눈이부을때까지

울다가 왔네요 ㅜ

김상경과 이준기는 형제이구요

이준기 친구가 공수부대에 맞아 죽은후

이준기는 시위에 가담하게 됩니다.

시민들의 시위에 공수부대가 물러난다는 소식이 떠돌고

사람들은 공수부대앞에서 애국가를 부르며

신나하죠. 하지만 애국가가 중간부분에

다다를무렵, 공수부대들은 총을 장전하고 막무가대로

쏘아댑니다. 그리고 그 총에 이준기역시 맞아 죽게되구요

상황이 이렇게 되니 김상경과 이요원 그리고 이요원의

아버지 안성기까지 모두들 공수부대와 맞써 싸웁니다.

이제 무고한 시민들까지 총을 들었으니

상황은 더욱 악화됩니다.

광주시민들은 도청건물을 기지로 삼게 됩니다.

건물에 있는 다이너마이트가 시민들의 유일한

협박수단이였기에 다이너마이트 한통을

공수부대에 보내, 자신들이 다이너 마이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죠

 시민들이 이렇게 나오니

공수부대는 도청건물을 아예 초토화시키기로 하죠

 그리고... 결말은 이요원빼고 다죽습니다,,

2007.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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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을 네이버에서 지금시각에 검색이 안되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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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을 위해 호남사투리를 버렸다?
<화려한휴가>는 호남인이 아닌 정치인을 위한 영화이다
 
변희재 기자
 
▲화려한 휴가의 시민군 총격 장면     © 기획시대
 

만만한 개그맨 심형래

<디워>의 논란 와중에, <화려한휴가>를 다룰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진중권 등 <디워>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은 <디워>가 작품성이 아닌 애국주의를 동원하여 흥행을 이어가는 점을 지적했다. 그게 문제라면 역시 작품성에 비해 정치권력이 뒤를 밀어주어 관객을 동원하는 <화려한휴가>의 문제점에는 왜 침묵하느냐는 것이다. <디워>를 비판하는 논리라면 분명히 <화려한휴가>도 비판해야하는데, 영화계와 지식계 전체가 <화려한휴가>는 예찬일색으로 몰아갔다. 유일하게 하나의 비판글이 나왔으나, 그 사람은 영화인이 아닌 소설가였다. 영화인 중에서는 <화려한휴가>를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단 말인가?

그렇다면 심형래 감독의 왕따라는 말이 맞는 거다. 자신들과 다른 세계에서 성장한 심형래 같은 개그맨은 두들겨패도 되지만, 충무로의 거대한 권력으로 떠오른 <화려한휴가> 제작자 유인택 같은 사람 앞에서는 입도 열지 못하는 게 영화계의 현실이 아닌가?

블로그에 썼든 매체에 썼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심형래 감독을 인신공격 수준으로 비판한 이송희일 감독과 김조광수 대표는 같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특히 순수영화를 고집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진정 분노해야할 대상은 <디워>가 아니라 <화려한휴가>이다. 그러나 이들이 공개적으로 <화려한휴가>를 비판하다는 건 아마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비겁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영화인 입장에서 심형래란 존재는 얼마나 만만한가. 다른 영화감독에게는 절대로 하지 못할 공격을 심형래이니까 퍼부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인은 아니지만 진중권도 마찬가지이다. 진중권은 정권과 영화권력에는 침묵하고, 아무런 힘도 없는 심형래와 네티즌을 폭도로 몰아 자신을 마치 희생양으로 위장시켰다. 이는 진중권이 늘 써온 수법이고, 이번에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비겁하다는 점에서는 진중권도 영화계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

영화권력과 정치권력은 야합한다

<화려한휴가>를 논하기 전에 왜 영화계는 정치권력 앞에 고개를 숙일 수 없는가부터 지적해야 한다. 사실 이 부분이 핵심이다. 한국에는 정부가 영화계를 직접 지원하는 시스템이 있다. 대표적인 기관인 영진위이다. 또한 문화관광부 내에서 콘텐츠진흥원 등 다양한 지원기구가 있다. 이 모든 지위는 문화관광부 장관, 실질적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러다보니 현재 영화계 내의 막강한 권력기관인 영진위는 여당 원혜영 의원의 부인인 안정숙씨가 맞고 있다. 특히 한국영화의 해외진출 등에 대해서는 정부기관의 절대적 협조가 필요한 만큼, 정권과 영화계의 유착 현상은 좀처럼 해결되지 못할 전망이다.

이런 시스템적 구조 이외에, 명계남과 문성근이라는 영화계의 거물이 노무현 정권의 실세로 움직인 것도, 악영향을 미쳤다. 특히 명계남은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영화인들 수백명을 노무현 정권에 줄세웠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이 스크린쿼터를 축소해버리니, 명계남과 그의 하수인들은 오히려 영화인들의 저항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순식간에 수많은 영화인들이 명계남 하나 때문에 어용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영화 <화려한휴가>는 철저히 대선기획용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제작자는 친노세력의 실세 유인태 의원의 친동생 유인택이다. 제작비는 무려 100억원이다. 영화계에서 제작비 100억원을 모을 수 있다는 건 보통 수준의 흥행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유인택은 이제껏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둔 적이 없는 제작자이다. 그런데 누가 무엇을 믿고 100억을 모아주었을까?

안 봐도 뻔한 일이지만, 이 영화의 투자자들은 어차피 2007년 대선 기획용 영화이니, 범여권과, 어용진보단체들에서 단체관람을 유도해줄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이 점이 고려되지 않았다면, 100억투자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호남을 위한 영화라면서 호남사투리를 버렸다

<화려한휴가>에서 주인공들의 표준말 사용은 절대 그냥 아쉽다고 넘어갈 성격의 실수가 아니다. 그게 바로 이 영화의 본질이다. 정동영 등 범여권 대선주자들은 <화려한휴가>를 본 뒤 “아직도 광주는 끝나지 않았다”고 외친다. 뭐가 끝나지 않았단 말인가? 자신들이 권력을 한번 더 잡을 때까지 이용하겠다는 것밖에 더 있나?
권력자들과 달리, 일반 호남인들에게 광주가 끝나지 않았다는 점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호남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선 글에서 언급했듯이, 광주항쟁 이후 영화와 드라마 주인공들로부터 호남사투리는 완전히 말살당했다. 모든 영화와 드라마에서 호남사투리를 쓰는 놈은 사기꾼에 배신자와 조폭이다. 이러한 대중문화 현상이 현실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겠는가? 무의식적으로 호남인들은 호남사투리를 버리려는 노력을 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이것이 호남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게 되었다.

제작자 유인택과 감독 김지훈은 광주의 문제가 과거가 아닌 현재라고 이야기한다. 바로 그 점이다. 호남을 위해 만들었다는 영화에서조차 호남사투리를 쓰는 주인공이 없다는 점, 그간 얼마나 호남이 억압을 당했으면 이런 일이 있겠냐는 것이다. 광주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면서, 어떻게 이렇게 중요한 부분을 미스할 수 있을까? 광주항쟁이 호남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그에 대해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무슨 광주항쟁에 대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나섰는가?

참고로 김지훈 감독은 전작인 <목포는 항구다>에서조차, 사기꾼은 호남사투리를 쓰고, 주인공은 표준말을 쓰는 구도를 설정했다. 아예 상습범에 가깝다. 대구 출신의 감독으로서, 단 한 번도 호남차별의식에 대해 고민한 바가 없다는 점을 드러낸 것이다.

이들은 인터뷰에서 대중성 확보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한다. 즉 주인공이 호남사투리를 쓰면, 타지역 사람들이 거북스러워하니, 표준말로 바꿨다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해서 타 지역 관객 한명 더 얻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영화 <친구>의 두주인공은 마음껏 영남사투리를 구사해도 전국적 흥행에 성공했다. 왜 영남사투리는 되는데 일찌감치 호남사투리는 인정못받는다는 현실에 그냥 굴복해버리냐는 것이다.

제작자와 감독이 현재진행형인 호남차별의식에 대해 이들이 무감각했기 때문에, 영화는 국적 모를 군대와, 시민혁명군과의 총질하는 판타지영화로 전락해버렸다. 과연 이 영화를 보고 광주와 역사와 현재를 고민하는 관객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을까? 그냥 첫장면부터 두들겨 맞다가 신나게 총싸움하면서, 최루성으로 끝나버리는 판타지 이상의 영화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미국의 영화 <300>과도 차이가 없을 정도이다.

올바른 광주영화가 아닌 정치인이 바라는 광주영화

이들이 진정한 광주정신을 예술로 승화시키기 보다는 한 명의 관객이라도 더 불러들이는데 주력한 이유는 바로 정치성과 상업성의 목적 때문이다. 부리나케 <화려한휴가>를 보러다닌 범여권의 대선주자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광주항쟁은 2007년 대선을 잡기 위한 수단 이상의 것이 아니다. 이들은 광주항쟁을 다룬 좋은 영화를 원하는 게 아니라, 권력을 총동원해서라도 1000만명 이상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영화를 원한다. 그렇게 해서 곳곳의 어용시민단체를 동원하여 끊임없는 대선 이벤트를 연출하고 싶어한다. <화려한휴가>는 일반국민이 아닌 바로 이러한 정치인들을 위한 영화가 되어버린 셈이다.

문제는 영화계와 호남이다. 이런 수준의 정치적 상업적 술수가 난무하는 어용 영화에 대해서 영화계나 호남의 지식인들 누구 하나도 이를 제대로 비판하지 않는가? 영화계와 호남 모두 권력에 굴복했단 말인가?

호남의 일반 서민 입장에서 “전두환 정권이 호남인들을 잔인하게 쏴죽였다”라고 영화에서 한번 더 외치는 게 뭐가 중요할까? 호남사투리를 감추려고 피눈물나는 노력을 해왔던 호남인들, 그 사람들의 평생의 자존심을 위해, 주인공들이 당당하게 호남사투리를 써주는 것, 그게 훨씬 더 중요한 문제 아닌가? 호남을 위해 만들었다는 영화에서조차 주인공이 호남사투리를 버리면서, 탈호남을 추구하는 것, 이게 얼마나 슬픈 일인가? 마치 민주당의 호남이미지로는 전국정당이 될 수 없으니, 열린우리당을 창당해버린 권력의 억압과 뭐가 다른가? 주인공이 호남사투리 쓰면 전국적 영화가 안 되니, 호남사투리를 버리겠다는 영화를, 호남인들이 앞다투어 동원해서 봐줘야할 이유가 뭐냐는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호남에서 이러한 의견이 나오지 않고 있다.

영화계도 마찬가지이다. 호남사투리 문제는 상징적인 부분이지만, 영화 한 장면 한 장면 따지고 들어가면, 완성도는 크게 떨어진다. 신세대 배우 이준기를 쓰기 위해, 고등학생이라면서 머리도 깎지 않고 출연시키는 건, 이건 그야말로 영화와 광주에 대한 모독이다. 또한 광주항쟁 장면 역시 <모래시계>나 <제5공화국>에 비해 뭐가 그리 달라졌는가? 영화계에서 이 영화에 대해서 입을 열지 못하고 있는 것,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다. 언제부터 영화계가 어용화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정권 끝나면 청문회라도 열어 확인을 해봐야할 사안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광주항쟁 등 우리가 역사를 다시 공부하는 이유는, 아무리 거대한 권력이라도 역사적 진실마저 덮을 수는 없다는 평범한 진실을 배우기 위해서이다. 지금 <화려한휴가>의 모든 심각한 문제점을 권력이 덮고 있다. 정말로 <화려한휴가>의 제작진들은 역사를 다루면서 역사의 두려움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란 말인가? [e조은뉴스 기사제휴사=빅뉴스]
 

2007.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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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dh****
평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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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해서 아직 필름 내리지도 않은 영화를 DVD찾으시면.. 흠..;

 

보통의 영화들이 개봉과 동시에 DVD를 출시 하지 않고..

 

필름을 내리고 2~3개월 뒤에 DVD를 출시 합니다.

 

화려한휴가 역시 마찬가지 일거 같구요..

 

이번 주말까지는 아마도 화려한휴가를 상영할거 같군요..

 

지역마다 극장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럼 나름 도움이되는 답변이었으면 합니다.

 

채택해주세요~*^^*

2007.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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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우연히 5.18에 대해 알릴 기회가 있어서 준비한 5.18프레젠 테이션 자료를 참고해 글을 적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날의 참상을 담은 사진은 너무 잔인해 보다가 눈을 감고 컴퓨터를 끄고 말았지만 원하시면 주소만 알려드리죠. 

http://bbs2.hani.co.kr/board/ns_northkoreare/Contents.asp?Idx=63136&STable=NSP_001003010

 

 

5.18은 솔직히 한국에서보다 외국에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정부는 MBC 방송국등 모든 언론매체를 차단하여 국내 기자들은 광주에 출입금지 시키고 오직 CNN같은 외신기자들만 광주 출입을 허락했고 국내에는 북한 간첩이 선동한 반란이라고 선전했으니까요..

 

 

1.화려한 휴가가 작전명이라고 하던데 무슨의미인가요?

당시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의 작전명이 화려한 휴가입니다.

공수부대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휴가라고 일컬은 것이죠.

답변을 위해 좀 더 검색해보다가 제가 가장 공감갔던 분의 답변을 스크랩하자면,

 

 

'너희는 시민을 죽이는게 아니라 폭도를 죽이는거다

이것은 살인이 아닌 휴가다 너희가 배운 총술등을 이 휴가에서 마음껏 펼치고오라

화려하게 휴가를 즐기다 와라 '

이의미로 볼수 있습니다.

 

2.왜 하필 광주 였나요?

먼저 1960년 벅정희 정권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 독재정권은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경제성장에 집착하였고 솟구치는 민주화 운동에 대한 극심한 탄압으로 일관하였다. 저곡가 저임금 정책은 경제성장을 위한 필수 조건이었으며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는 민주화운동 세력을 압살하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우선 수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운동은 전국적으로 그칠 줄 모르고 전개되었다.

마침내 한계에 도달한 박정희 독재정권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자신의 심복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의해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 때부터 군부내에서 자신의 세력을 규합해 온 전두환을 주축으로 한 신군부 일당은 오히려 민주화 과정의 과도기를 틈타 자신들의 집권 시나리오를 준비하여 착착 진행하고 있었다. 12·12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장악한 다음, 당시 분출되고 있던 전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민주화운동세력과 야당의 정적을 제거해야 했다.

 

그 제물이 광주였다. 민주화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온 곳이며 야당의 정적 중에서 가장 많은 대중적 지지를 받고있던 김대중의 정치적 고향이 전라도 광주였던 것이다.

전라도 광주는 70년대 박정희 개발 독재 때부터 희생양이었다. 철저히 소외되었고 경제에서는 낙후되었으며 우리 민족을 다시 동서로 가르는 지역감정의 볼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장은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마저 내던지며 투쟁해 온 민주투사의 고장이었다.

 

전두환 신군부 일당의 학살만행에 맞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시민전체가 일심동체로 저항하였던 것은 정신적 측면에서든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든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피의 진압으로 5·18민중항쟁은 끝났지만 그 후 청년학생을 비롯한 양심적인 민주인사들과 민중운동에 의해 전두환 일당을 역사의 심판대에 세움으로서 항쟁의 정당성은 온 천하에 입증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광주는

서울은 물론, 가까운 어느 도시(목포, 여수, 순천, 전주)와도 전혀 연락할수 없는 "고립된 외로운 도시"였습니다.-1980년 5월 대한민국 광주

 

 


3.5.18이 발생한 이유와 결말을 알려주세요

1979년 10월 26일 독재 정치를 하던 박정희대통령이 당시 김재규 정보부장(head of the Korean Central Intelligence Agency)에게 암살당하자 전국적으로 민주화의 열망이 뜨겁게 올라오고 있었죠...(박정희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하는데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독재정치를 했던데는 논란의 여지가 없음) 그래서 전국적으로 데모도 많이 일어났는데 이때 전두환이 12.12사테로 알려진 구데타를 일으켜 군부를 장악한 다음 임시 대통령이었던 최규하에게 압력을 넣어 계엄령를 선포하게 하죠.

 

그리고 그 계엄령을 선포한 다음 데모가 심했던 광주에 공수부대를 투입하여 당시 민주화를 열망하고 개혁을 원하던 대학생들을 탄압하기 시작합니다.

 

사건의 발단은 광주의 대학생들이 데모가 심하자 국가에서 대학교를 폐쇄했고 이에 반발한 학생들이 전남대 정문으로 몰려서 항의하자 군인들이 폭력으로 저지하자 진로를 바꿔 광주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도청광장으로 몰려갑니다. 거기서 시민들과 합세해 데모를 했는데 거기서 진압군이 발포를 시작한 것이죠.

 

(General Chun Doo-hwan declared martial law on May 17, 1980 to suppress student demonstrations around the country. The next day, students in Gwangju protested at the gate of Chonnam National University against the closing of the university, when armed forces blocking the university responded with violent means. After the incident, students moved into the downtown area, where they were joined by the citizens of the city. The growing crowd was met by the use of force, including gunfire, that caused some fatalities.)

 

 

그리고 여기서 한가지 덧붙일 내용은 그 사건 전에 김대중씨가 민주화 투사로서 정치판에서 박정희대통령과 맞붙었는데 부정투표로 밀렸었고 이에 위기감을 느낀 박정희가 김대중대통령에게 억울한 죄명을 씌우고 사형시키려다 실패하자 김대중씨를 묶어서 헬기에서 바다에 떨어트릴려고 했는데 미국에서 이를 저지했죠.

(이는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 여사가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비폭력시위를 하다가 군사정부에 의해 탄압을 받자 국제사회가 이를 비난하며 압력을 가하는 것과 흡사합니다.)

그리고 5.18당시에는 계엄령아래서 계엄 사령관이 김대중씨를 포함한 수 많은 민주투사를 체포하여 시민 선동을 했다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내립니다.

 

(The Martial Law Command arrested several opposition politicians, including Kim Dae-jung, who was south Korea's president, and charged him with fomenting rebellion. He was eventually sentenced to death.) - from Western Media

 

 

이 이야기를 덧붙인 이유는 이 당시 민주화의 열망의 한 과제가 그 당시 민주투사로 신망이 높았던 김대중씨의 석방이 한가지 광주시민들의 요구였기에 덧붙임니다.

 

 

그리고 이 사건중 광주의 MBC건물이 광주 시민들에 의해 불타게 되는데 그 이유는 MBC가 정부의 간섭에 의해 당시 광주 사건을 간첩들에 의한 폭동으로 전국민들에게 보도를 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특전사들에게 처참하게 죽음을 당하고 폭도로 매도되자 이에 광분한 광주시민들은 경찰서 등을 습격해 무기를 탈취하여 스스로 무장을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광주의 모 자동차공장의 창고에서 탱크를 발견하여 중무장을 하게 됩니다.

 

외신에 보도된 희생자는 191명에 불과하지만 당시 생존자들이나 광주 공무원들은 그 수가 2000에 달한다고 주장합니다.

 

(The government says 191 people were killed in the uprising, but Kwangju officials and survivors insist the figure is closer to 2,000.)

 

 

(너무 어렵게 말고 14살 여자얘가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요.)

4.만약에 이런일이 또 생길수 있는 가능성이 있나요?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지않고 반성하고 고치려하지 않는다면 그역사는 또 반복되는것입니다.

전두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죠?

이게 한국의 현실입니다.

5.전두환 대통령이 광주시민들께 정식 사과를 했나요?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2007.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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