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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쾀 Jun 06. 2017

<겟 아웃>

처음부터 끝까지 온몸의 털이 곤두서 있었다.

#스포주의



요즘 가장 평이 좋은 영화 <겟 아웃>을 드디어 보고 왔다. 이미 주변에서 '무섭다', '어둡다'라는 평을 귀에 박히도록 들었기 때문에 밤에 심야로 가서 혼자 볼라다가 부모님이랑 함께 가서 봤다. 늘 공포 영화 잘 본다고 큰 소리를 치다가 막상 영화관에 들어가 불이 꺼지는 순간 두 손이 눈 위로 올라가는 나이기에..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난 뒤, 부모님이랑 함께 영화를 본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겟 아웃>은 104분이라는 다소 짧은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온몸의 털이 누울 틈도 없이 소름 끼치는 영화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소름 끼치는 영화

대충 스토리를 요약하자면 <겟 아웃>은 크리스라는 흑인이 백인 여자 친구 로즈의 집에 초청받아서 생기는 일을 다룬 영화이다. 크리스는 로즈의 집에 초청받아서 가기 전부터 걱정을 했다. 혹시라도 백인 여자 친구 집에 가서, 자신이 흑인인 줄도 모르는 여자 친구 부모님의 미움을 살까 봐. 아무 일도 없을 거라는 여자 친구의 응원에 힘입어 크리스는 용감하게 로즈의 집에 도착한다. 근데 웬걸, 여자 친구 집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알고 보니 여자 친구 가족은 건장한 흑인을 납치해서 나이 먹어서 병든 백인들의 뇌를 이식하는 그런 변태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있던 사이코 집단이었다. 물론 여자 친구도 한 패였고. 크리스도 눈이 안 보이는 사이코 할아범의 뇌를 이식받을 뻔하다가 가까스로 탈출하게 된다. 

겉으로는 참 평화로워보이는 로즈네 가족

이렇게 써보니까 스토리는 나름 단순하다. 위기에 빠지고, 탈출하는 나름 전형적인 결말. 하지만 이 영화가 내게 끊임없는 소름을 준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영화 안에 깔려있는 수많은 상징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그 상징 때문이다. 내가 나름 중요하다고 생각한 상징들이 많은데, 이 영화를 이해하지 못 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내 마음대로 해석한 <겟 아웃>의 떡밥들을 써보고자 한다. 지금부터 쓰는 내용은 영화를 본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혹시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다면 좌측 상단의 '뒤로 가기' 버튼을 망설임 없이 누르도록 하자. 


1. 네모난 창 


크리스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특히 심각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데, 이는 바로 자신의 어머니가 뺑소니를 당해 죽어가는 상황에서, 자기 자신은 집에서 가만히 앉아 TV만 보고 있었다는 것. 어머니를 살릴 시간이 있었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TV만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그의 트라우마는 로즈의 어머니, 미시가 크리스에게 최면을 걸 때 나타난다. 그는 최면에 빠져서 '침잠의 방', 자신의 무의식 안으로 갇히는 과정을 경험하는데, 자신의 외부를 '네모난' 창을 통해서 바라보게 된다. 이는 과거에 어머니가 사고를 당한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본 TV의 브라운 관을 나타낸다. 과거에 TV를 보며 어머니가 죽어가는 데 아무것도 못했는데, 심지어 자기 자신이 최면에 걸려 몸이 마비되고, 이상한 곳으로 끌려가는 상황에서조차 '네모난 창'을 통해서 방관하게 된다. <겟 아웃>의 네모난 창은 자기 자신의 위험조차 방관할 수밖에 없는 크리스의 상황을 드러낸다. 

침잠의 방에 빠져버리는 크리스


2. 야밤에 거울을 쳐다보는 조지나,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월터 


<겟 아웃>을 본 사람들이라면 공감될 텐데, 이 영화에서 제일 무서운 게 흑인 가정부 조지나였다. 어떻게 생긴 것부터 소름 끼칠까. 조지나는 야밤에 사람들이 다 자는 시간에 홀로 돌아다니며 거울을 쳐다본다. 그리고 그냥 쳐다보는 게 아니라 머리를 정리하고 나름 예쁜 척(?)을 한다. 흑인 잡부 월터는 그 야밤에 전력으로 뛰어다닌다. 알고 보니 그들은 로즈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뇌를 이식받은 상태였던 것이다. 낮에는 그냥 평범한 흑인 행세를 하다가, 아무도 안 보는 밤에 그들은 본색을 드러낸다. 로즈의 할아버지는 과거 올림픽 육상 대회에 출전한 적이 있던 사람이었다. 흑인한테 밀려서 2등을 했기 때문에, 흑인의 몸에 자신의 이식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밤마다 달리기를 연습한다. 과거 육상 선수였으니까. 

본래 몸 주인의 의식이 잠깐 표면에 드러날 때 모순된 표정과 행동을 보인다


뿌리 박힌 인종 차별적 사고방식

여기서 잠깐. 그럼 그 둘은 로즈의 할머니, 할아버지인데 왜 로즈의 가족은 그들을 부려먹을까. 버릇없이! 그냥 평범하게 동거하는 걸로 꾸며도 됐을 텐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들은 흑인처럼 행세를 하려고 나름 노력했다는 것이다. 이미 그들은 흑인=노예라는 인식이 머릿속에 뿌리 박혀있기 때문에, 평범한 흑인 행세는 즉, 백인 밑에서 일하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뿌리 박힌 인종 차별적인 생각이,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가정부, 잡부로 변장하게 만든 것이다. 다만 차마 흑인의 사고방식을 따라 할 순 없기에 말투, 행동은 본인들의 것을 유지한다. 지나치게 공손한 말투, 가식적인 웃음이 그 증거이다. 



3. 영화의 메인 OST 'Sikiliza Kwa Wahenga'


영화를 보면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사가 뭔지 이해가 안 갔었다. 알고 보니 이해가 안 가는 게 정상이었다. 왜냐하면 이건 아프리카 노래였기 때문에. <겟 아웃>의 감독 조던 필레는 평범한 영어 OST를 선택하지 않고 아프리카 언어로 된 음악을 선택했다. 왜냐고? 저 노래의 제목을 해석하면 바로 'Listen to ancestors', 즉 조상의 말을 들으라라는 뜻이다. 과거 흑인들은 아프리카에서 끌려와서 미국에서 노예 생활을 했다. 그들에게 백인은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었다. 이 OST는 겉으론 인종 차별이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미국 사회도 아직 흑인들에겐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일종의 경계심이 담긴 노래였다. 조상님들의 언어를 통해 조상님들의 말을 듣고 백인들을 너무 믿진 말라는 의도일까. 심지어 음악 내내 '안 좋은 일이 생길 거야'라는 내용의 가사가 담겨있다. 백인을 믿고 로즈의 집을 방문한 크리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 것이다. 조던 필레는 분명 방심했다가 호되게 인종차별의 도끼로 발등을 찍힌 경험이 있는 게 분명하다.  


이들의 경고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4. 로즈가 빵을 고르는 장면


영화 정말 첫 장면을 보면 로즈가 빵을 고르는 장면이 나온다. 크로와상, 바게트 등등 다양한 빵을 지나다가 도넛 앞에서 멈춰서 도넛을 고르는데, 이는 건장한 흑인 남성을 골라서 뇌 의식을 할 제물을 바치는 행위를 상징한다. 크로와상, 바게트가 아닌, 도넛을 고른 이유는 도넛 하면 상징적으로 흑인들이 떠올라서 그런 거 아닐까. 


잔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낸 <겟 아웃>

이밖에도 다양한 떡밥들이 존재하는 게 분명하지만 내가 나름 의미 있다고 생각한 떡밥들은 이 정도이다. 결국 <겟 아웃>의 로즈 가족들은 흑인들의 신체 조건이 백인들보다 뛰어나니, 그들의 제물이 되어야 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겟 아웃>은 흑인들에게 인종 차별이 뿌리 뽑히지 않는 이 미국에서 아예 'GET OUT' 하라고 외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과거 조상들이 백인들에게 당한 걸 떠올리며 그들을 믿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직까지 미국은 인종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 잔인하지만 진실한 사회의 단면을 <겟 아웃>은 다소 소름 끼치고, 뇌 이식이라는 충격적인 풍자를 통해 우리에게 드러낸다. 



일단 오늘 밤 꿈에서 조지나나 안 만났으면 좋겠다. 아직도 조지나 얼굴만 떠올리면 오싹하다. 그 웃으면서 눈물을 흘리며 'No... No.. No No..' 하던 그 모습. 꽤 오랫동안 잊어버릴 수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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