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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우리나라 문화
ggfo**** 조회수 39,855 작성일2015.01.06
우리나라의 문화 대표적인것 의식주로 1가지씩 꼭적어주세요.의식주 하낙 합해서 3가지만 적어주세요.그 문화를 소개해주는 글이있으면 채택해드리고 또 1시간안에 답오면 채택해드려요!!! 내공100겁니다!!!ㅠㅠ숙제입니다.....글써야되요...제발 빨리요.....지식인분들 도와주세요~/ㅡ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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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ul****
수호신
전통 예절, 의식 1위, 사회문화 1위, 폭행 15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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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질문에 답변을 합니다.

 

우리나라의 문화 대표적인것 의식주로 1가지씩 꼭적어주세요.의식주 하낙 합해서 3가지만 적어주세요.그 문화를 소개해주는 글이있으면 채택해드리고 또 1시간안에 답오면 채택해드려요!!! 내공100겁니다!!!ㅠㅠ숙제입니다.....글써야되요...제발 빨리요.....지식인분들 도와주세요~/ㅡ_-/

 

답변 : 우리나라 문화 대표적 의 식 주에 대하여 올려 드리겠습니다.

 

 

1. 한국인 의(衣) 생활

 

대표적인 옷은 한복

사계가 뚜렷하고 일교차가 심한 한반도 자연환경을 고려하여 한민족 조상들은 겨울에는 찬바람과 추위를 막아 는 따뜻한 견직물관 모직물을 즐겨 입고, 여름에는 덥고 습윤한 기후에 견딜 수 있는 통기성과 땀을 잘 흡수하는 삼베와 모시를 즐겨 입었다. 삼국시대이후로 한민족 남정네들은 통이 넓은 바지와 길이가 둔부까지 내려오는 저고리를 즐겨 입었으며, 부녀자들도 통이 넓은 바지와 품이 넓은 치마, 둔부까지 내려오는 저고리를 즐겨 입었다.

전통적으로 서민들 생활은 여름에는 로 삼베와 목면을 즐겨 입었고, 봄가을에는 목면을 즐겨 입었으며, 겨울에는 목면에 솜을 넣어 누빈 겹옷을 즐겨 입었다. 반면에 부유한 사람들은 여름에는 삼베와 모시옷을 즐겨 입었고, 겨울에는 명에 솜이나 털을 넣어 누빈 옷을 즐겨 입었으며, 여름에는 옷이 몸에 착달라 붙지 않도록 '등잠'을 걸치고 '토시'를 낀 후에 겉옷을 입었다. 양반들은 여름에도 버선을 신고 미투리나 갖신을 신었으며, 서민들은 맨발에 짚신을 신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머리에 우장을 덮어 썼고, 나막신을 신었다. 조선시대 후기에 이르러 겨울에 남정네들은 방안에 있을 때 마고자를 즐겨 입었으며, 부녀자들은 배자(褙子)를 즐겨 입었다. 외출할 때는 방한모를 쓰는데 남정네들은 '풍차'를 즐겨 썼고, 부녀자들은 '조바위'나 '아얌'을 즐겨 썼다. 외출할 때는 여름에도 양반들은 도포와 흑립으로 관을 갖추었고, 부녀자들은 머리에 장옷을 덮어 쓰고 외출을 하였고 외간남자와 마치면 얼굴을 피하였다.

그리고 혼례 때에는 신랑은 청색 관복을 입고, 혁대를 두르고, 사모를 쓰고, 혁화를 신고, 한삼을 손목에 끼운다. 신부는 꽃버선과 꽃신을 신고, 원삼을 입고 족두리를 쓰거나 활옷을 입고 화관을 쓴다.

◈ 우리나라 한복의 종류

 

한복은 우리의 옷이다. 한복의 역사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로부터 시작되었다. 부족국

가시대를 거쳐 삼국시대에 이르면 두루마기를 중심으로 저고리, 바지, 치마, 두루마기를 중심으로

모자, 허리띠, 화 또는 이를 착용하는 고유의 식 양식으로 이루어진다. 우리 옷은 아 한대성 기후

로 삼한 사온이 계속되는 자연 조건과 북방 유목민 계통의 문화요소가 결합되어 있다. 그래서 속

옷부터 겉옷인 두루마기에 이르기까지 몸을 싸는 형식이다. 또 저고리와 바지가 떨어져있고, 앞이

트여 있는 활동적인 옷이다. 복식이란 사람의 몸위에 표현되는 것이다.

 

- 한복의 소재

 

우리 옛조상들은 봄과 가을, 여름, 겨울에 따라 소재를 달리하여 계절에 맞는 옷을 입어왔다. 제

철에 맞는 옷감 선택은 한복의 멋과 품위를 살리고, 전통소재들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는 점에서 중요하다.


 

1. 남자한복

1) 평상복

① 속옷 : 속적삼, 속고의
② 저고리 : 적삼, 겹저고리, 솜저고리
③ 바지 : 고의,잠방이,겹바지,솜바지
④ 조끼,마고자,두루마기

 

2) 예복

① 평례복 : 평상복위에 두루마기
② 혼례복 : 평상복위에 옥색 두루마기,관복,각대,사모,목화,포선
③ 상례복 : 바지 저고리에 베 중단,굴건제복

             

3) 전통혼례복

(1) 사모관대
신랑이 입는 옷은 보통 '사모관대'라 일컬어지는 관복 일습인데,
평민 양반의 구별 없이 사모,단령,흉배,각대,목화를 착용했습니다.
 
2) 사모
사모는 원래 직품을 가진 자가 평상복에 착용하던 것이나,

직품을 갖지 않은 자라도 혼례때에는 이를 쓰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

재료는 검정색 실이며 뒤쪽에 붙은 양쪽 날개에는 구름 무늬를 넣었습니다.
 
 
3) 단령
단령은 관직자가 평상복으로 입던 옷으로,

작품에 따라 홍색,청색,흑색 등의 비단으로 만들었으며,

혼례 때에 입던 단령은 주로 청색계통이었습니다.
단령에는 흉배를 다는데, 보통 두 마리의 학이나 구름 등의 모양으로 수를 놓았습니다.
단령을 입은 뒤 허리에는 각대를, 신발로는 목화를 착용하였습니다.
 
 
4) 목화
목화는 원래 조선조 때 문무백관이 평상복에 신던 신발인데, 혼례 때에는 서민들이 신었습니다

 

2. 여자한복

1) 평상복

① 속옷 : 속저고리,속적삼, 다리속곳,속속곳,바지,단속곳
② 치마

 - 모양(통치마,풀치마,스란치마)
 - 안감의 유무(홑치마,겹치마)
③ 저고리

 - 봄·가을 (물겹저고리, 박이겹저고리)
 - 여름 (적삼, 깨끼저고리)
 - 겨울 (솜저고리)
④ 마고자,배자,두루마기,버선

 

2) 예복

① 평례복

 - 젊은이(다홍 치마,노란색(연두색) 회장저고리)
 - 중년이후(남치마,옥색 회장저고리)
② 소례복 : 당의,화관(족두리)
③ 혼례복 : 원삼(활옷),한삼(흰수건),화관(족두리),용잠,도투락댕기
④ 상례복 : 깃 광목으로 지은 치마,저고리,흰 족두리,짚과 삼으로 엮은 띠,짚신
⑤ 기제사복 : 옥색 치마 저고리

 

3) 전통혼례복

1) 활옷
원래는 궁중에서 의식이 있을 때에 왕비가 입던 대례복이었으나,

후에는 서민의 혼례복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활옷은 홍색비단에 청색으로 안을 받쳐서 만들었는데

이는 청색(여성)과 홍색(남성)의 화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 원삼

고려시대부터 대례복으로 궁중여인들과 신부의 웃옷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황후는 황색, 왕비는 홍색, 비빈은 자색, 공주나 옹주는 녹색원삼을 입었는데,
그 중에서 녹색원삼이 서민층의 혼례식에 사용되었습니다.

민간 원삼에는 금박을 하지 않았습니다.

 

3) 대대
홍색 공단에 심을 넣어 만들어 금박무늬를 찍습니다.
활옷이나 원삼을 입은 뒤 앞가슴께에 대대의 중앙이 오도록 대고 양쪽으로 돌려 뒤에서 묶어 늘어뜨립니다.
 
4) 스란치마/대란치마
스란치마는 소례복에 입고, 대란치마는 대례복에 입던 치마입니다.
금박무늬가 찍힌 천을 덧댄 스란단을 한 층 뭍인 것이 스란치마리고, 두 층 붙인 것이 대란치마입

니다.
가례나 길례 때는 속에도 남색 스란치마를 입었습니다.
 
5) 족두리
원래 몽고에서 여인들이 외출할 때에 쓰던 일종의 모자였으나,
고려말 우리나라에 들어온 뒤로 모양이 왜소해져 머리장식품으로 변하였습니다.
영조 때의 가발금지령에 따라 왕비나 세자빈이 칠보족두리를 쓰면서부터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는

데, 궁중이나 양반집에서 의식용으로 소례복에 족두리를 썼습니다.

 

 

아래는 전통한복 이미지도 올려드립니다.

 

전통 혼례복

 

남산한옥마을에서 식전 촬영을 마치고, 부랴부랴 한국의집으로 내려와서 본식준비 시작!

한국의집에서 전통혼례 준비중인 분들중에, 혹시 본식이 우리처럼 늦은 오후라면 꼭! 그전에 한옥마을 촬영을 강추합니다. 바로 옆에 붙어있는데다가 사진에도 참 예쁘게 나오기 때문에.....

 

나는 식전 촬영은 생각도 안하고 있었는데, 시월의봄 대표님이 먼저 제안해주셔서 촬영을 갔었고,결과는 매우 만족함.(사실 본식때보다 더 맘에 드는 사진이 여기서 많이 나왔다)



 

여하간 세시쯤 한국의집으로 돌아와서, 옷 갈아입는 중(이라기보단 옷 더 껴입는중....) 4월 12일이었고 날씨도 상당히 선선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야외예식이라 추울까봐 걱정했는데) 걱정이 무색하게도 한복을 겹겹이 껴입은 결과...매우 더웠음. 가뜩이나 더위에 약한 크렉은 본의아니게 4월초에 땀을 뻘뻘 흘리며 전통혼례를 치러야 했다. 다행히 센스있던 수모님들이 식 내내 열심히 크렉 땀을 닦아주심 ​이거 진짜 놀라웠다. 크렉이 조금이라도 땀을 흘린다 싶으면 어디선가 막 휴지가 송송 한복에 주머니도 없는데, 수모님들은 휴지를 어디에 숨겨두고 계셨던걸까...?!

 


 

족두리 쓰고 연지곤지 붙이는 중. 시엄마는 어머 이게 스티커였냐며 매우 놀라워하셨고 혹시 자기도 이걸 붙여야 하냐고....굉장히 조심스럽게(그리고 두려워하는 어조로) 물어보셨다 우리가족들 다 빵 터짐시.....신부는 저에요 어머님?!

 


 


 

식 시작하기 약 한시간 전, 신부는 언덕위 신부대기실에서, 신랑은 아래에 내려가서 하객맞이를 하는데 그전에 잠깐 짬을 내서 촬영중. 원래 서양에서(특히 북미에서는) 결혼식 당일엔 절대로 신랑이 신부를 봐선 안된다며 그래서 크렉도 절대 결혼식 당일엔 식전까지 나랑 만나는 일이 없게 동선을 짜자고 했지만, 근데 그럼 본식전에 촬영도 못하고, 메이크업하러갈때 알아서 혼자 길 찾아가라고 하자니 크렉이 한국어를 못하고 결국 아무리 상의를 해봐도 도저히 답이 안나와서, 한국에서 결혼하는건 한국식대로 따르라!고 설득한 끝에 우리는 한국의 여느 커플들처럼(?) 식 당일날 아침 메이크업부터 함께할 수 있었다. 대신 캐나다 결혼식때는 무슨일이 있어도 캐나다식으로 할거라며 크렉이 신신당부함

 


 


 

하객맞이중, 나는 이 시간 내내 신부대기실에 있었는데 네이버에서 한국의집 검색해본 예비신부들은 모두 알겠지만....한국의집 신부대기실은 언덕꼭대기에 있다. 그나마 신부대기실 위치 알려주는 표지판도 한군데밖에 없어서, 이건 정말...아는 사람만 찾아올 수 있는 신부대기실임 친구들은 물론이고 친척들(특히 나이드신 분들)은 더더욱 찾아오기 힘들다며 불평하는 후기들을 나도 많이 봤는데 우리도 그러했음. 식전에 신부대기실까지 무사히 찾아온 사람들이 내 베프들 여섯명을 포함해 열다섯명이 채 안됨. 신부대기실에서 약 한시간을 앉아있었는데...그동안 여길 스쳐지나간 사람이 열다섯명임 그나마 베프들은 식전 30분쯤 전에나 도착해서 그전까지 나는.........참.....할게 없었다.

 


 

그래서 뭘했냐면 잠을 잤음. 머리랑 한복 망가질까봐 앉아서 나름 예쁘게(...?) 잠들었지만 나중에 목이 부러질듯 아파서 깼다는거 대표님이 이것도 사진으로 찍어주신줄....몰랐는데 나중에 원본사진들 받을때보니 요 사진도 들어있었다ㅋㅋㅋㅋㅋ참 뻘쭘했음. 식전에 신부대기실에서 홀로 잠든ㅠㅠㅠ신부를 보며 대체 뭐라 생각하셨을까.....

 


 

내가 신부대기실에서 맘편히 졸고있던동안 가엾은 남편은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한 우리 가족들과 함께 어찌어찌 하객맞이를 해야했는데 다행히 기럭아범(서양식으로 치자면 베스트맨)인 크렉의 베프 토니가 한국어-영어 바이링구얼인 덕분에 무사히 하객맞이를 끝내고 그렇게 식 20분전, 장승 밑(ㅋㅋㅋ) 신랑대기석으로 돌아왔더니 왠지 너무 긴장이 됐었다고 합니다 숨을 못쉬겠다며 죽을거같다며 살려달라고 토니에게 호소했다는 슬픈 전설이 있...어요....!? 윗짤은....영혼까지 쥐어짜서 미소짓고 있는 소심한 남편 이 사진을 끝으로 극도의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고 합니다

출처 : http://blog.naver.com/jia_y?Redirect=Log&logNo=220099182322

 


 

 

조선족이 입고 있는 여성한복

 


조선족이 입고 있는 여성한복

 


어가 행렬

 


농악놀이

 


말을 타는 기예

 


말을 타는 기예

 


말을 타는 기예

 


말을 타는 기예

 


말을 타는 기예

 


   

말을 타는 기예

 


 

한복을 입고 외줄을 타는 기예 모습

 

아래는 한복을 입은 아름다운 모습들 입니다.


 

 


 

 

 

 


 

 


 


 


 


 


 


 


 


            

혼례복

 

 

 

 

 

 

 

 

 

 

 

 

 

 

 

 

 

 

[정의]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혼인할 때 신랑과 신부가 입는 옷.

 

 

[개설]

 

혼례(婚禮)는 성이 다른 남녀가 치르는 일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통과 의례 중 하나로, 혼례 의식에서 착용하는 옷을 혼례복이라고 한다. 과거 혼례를 신부 집에서 하던 시절에는 제천 지역에서는 마을 공동으로 보관하던 혼례복을 입었다. 요즘에는 결혼식장에서 혼례를 하기 때문에 서양식으로 신부의 경우 드레스를 입고, 신랑의 경우 양복을 입는다.

 

 

[전통 혼례복]

 

신부의 집에서 혼례를 올리던 시절 신부는 노란 저고리에 빨간 치마 혹은 연두색 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고, 그 위에 원삼(圓衫)을 입었다. 원삼의 소매는 빨간색, 연두색, 파란색을 사용한 색동 소매의 형태였다. 전체적으로 금박을 수놓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신부의 머리에는 족두리를 쓰고, 두 손 위에는 길게 하얀 천을 덮었다. 신랑의 경우 정해진 색깔 없이 저고리와 바지, 도포를 입고 단령(團領)을 입었다. 머리에는 사모(紗帽)를 쓰고 목화(木靴)를 신었다. 과거 마을에는 공동으로 상례 관련 도구를 보관하는 행상 집이 있었는데, 혼례 용구도 마을에서 공동으로 보관하는 집이 따로 있었다. 혼례복 역시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혼례 당일 날 빌려 입었다.

 

 

[현대 혼례복]

 

현재 신식 혼례에서 신부는 드레스를 입고 신랑은 양복을 입는다. 예식을 마친 후에도 신부나 신랑 모두 양복을 입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폐백을 드릴 때는 전통 혼례복을 착용하고 있다. 전통 혼례에 대한 관심으로 요즘에는 전통 혼례를 치르는 신랑, 신부도 늘어나고 있다. 전통 혼례를 치르는 경우 향교 등에서 전통 혼례복을 대여하기도 한다. 결혼식을 마치고 친정과 시댁으로 인사를 갈 때 더러 신부의 경우 한복을 착용하기도 한다. 이때 신부는 새댁이라고 하여 노란 저고리에 빨간 치마 혹은 연두색 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는다.

 

 

[의의]

 

제천 지역 혼례복은 다른 지역에 비해 뚜렷한 특징을 찾기가 쉽지 않다.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기성복의 보급으로 인하여 전통적 의미의 혼례복은 사라지고 없다. 그 자리를 기성복 형태의 서양식 복식이 대신하고 있으나 혼례에 대한 기본적인 의미는 변함이 없기 때문에 그 형태만 바뀌었을 뿐이다.

 

과거나 현재나 혼례 자체에 대한 기본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혼례복은 기성복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기성복 형태로 유지되는 상황 속에서도 폐백을 할 때는 전통 혼례복을 착용한다든지, 갓 결혼한 신부는 새댁이라고 하여 노란 저고리에 빨간 치마 혹은 연두색 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는 것이 변하지 않는 것은 눈여겨 볼만하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우리나라 전통한복 입고 전통혼례 상식

 

일반적으로 웨딩홀이나 성당,교회에서 결혼식을 진행하는데요~
기억에 남을 만한 결혼식으로는 전통혼례식을 빠트릴수 없는데요
보편화되지 않은 예식의방법이라서 이 분야에서 경험이 많은 전문가와 함께 진행을 하시는게 좋습니다.
의상, 진행순서, 도우미이모님, 음식 등등 예식에 차질이 없도록 미리미리 꼭 체크하셔야 합니다. 특히 여름철에 결혼을 하신다면 조금은 생각을 해보시는게..^^
전통혼례복은 의상이 크기 때문에 이동하기가 힘들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전통혼례를 생각하시다가 일반 예식홀 결혼식 하시는걸로 계획 변경되시는분들도 꽤 많습니다.

 

 


2. 한국인 식(食) 생활

삼국 시대에 고구려인들은 육을 즐겼으며, 백제와 신라인들은 술·장·젓갈을 발달시켰다.
고려에서는 불교 영향으로 살생을 삼가서 육이 쇠토하고, 사찰에서 누룩·국수·소금·차 등 제조를 독차지했다. 고려 후기에 몽고군이 들어오자 육이 고개를 들어 설렁탕·순대·쇠머리 요리가 전해지고, 소가 그들이 둔했던 지역에서부터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이 때에 물성과 동물성 먹이를 고루 먹는 오늘날 사법이 자리를 잡았다.
철로된 솥이사용되고부터 밥을 짓고 난 솥바닥에 밥알이 눌어 붙은 것이 '누룽지'이고 누룽지에 물을 붓고 끓이면 숭늉이 된다. 한국인들 밥상에는 밥과 국, 찌개, 구이, 무침, 조림, 젓갈, 간장, 된장, 고추장, 김치 등이 한꺼번에 차려진다. 명절과 행사 날에는 쌀밥을 즐겨 먹고, 봄과 가을에는 보리밥이나 잡곡밥을 섞어 먹고, 여름에는 칼국수와 탕을 즐겨 먹고, 겨울에는 국밥과 수제비를 즐겨 먹었다.한국인은 계절에 따라 음 종류가 달랐다. 전통적으로 한국인들은 겨울에는 뜨거운 국물과 찌개, 구이, 김치 등을 즐겨 먹고, 여름에는 시원한 챗국과 무침, 조림, 쌈 등을 즐겨 먹는다.
또 한국인들이 즐겨 마시는 술은 곡, 여름에는 소를 선호했고, 례행사에는 청를 사용하였다. 서민들이 즐겨 찾는 술은 막걸리였고, 부자들이 즐겨 찾은 것은 소와 약였다. 전통적인 음료는 혜와 수정과, 화채 등을 즐겨 마셨고, 사찰이나 궁중에서 차(茶)를 즐겨 마셨다.
한국인 참은 로 막걸리, 혜, 칼국수, 수제비, 비빔밥, 떡. 감자, 고구마 등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음료수, 우유, 빵, 컵라면, 어묵, 김밥, 국수, 튀김 등을 즐겨 먹는다.


갈비는 소금 양념을 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데, 요즘은 꼭 그렇지도 않다. 사진은 소금 양념의 갈비이다.

 

'부드러운 갈비'

고기는, 대체로 찌거나 삶기보다 구워야 맛있다. 쇠고기도 그렇다. 한반도의 조상들도 오래 전부터 소를 잡아 구워 먹었을 것이다. 그런데, 옛날 농경시대의 쇠고기는 질겼을 것이다. 그때의 소는 일소였기 때문이다. 일을 하지 못할 정도로 늙었거나 발육이 빈약하거나 병든 소를 잡아 먹었을 것이니, 현재 한국인이 먹고 있는 곡물 사육 30개월령 소의 부드러운 고기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때의 쇠고기가 얼마나 질겼는지 짐작할 수 있는 조선의 조리법이 있다. 1809년의 저작물인 [규합총서]에 나오는 설하멱 조리법이다. "쇠고기를 썰어서 편으로 만들고 이것을 두들겨 연하게 한 것을 대나무 꼬챙이에 꿰어서 기름장으로 조미해서 기름이 충분히 스며들면 숯불에 굽는데, 구운 것을 급히 물에 담갔다가 꺼내고 굽고 또는 물에 담그는 일을 세 번 되풀이하고 기름을 바른 후에 또 굽는다." 중간중간 물에 담그면서 굽는 것은 쇠고기가 질기기 때문이다. 바짝 구워 결대로 찢어야 먹을 수 있을 정도의 고기였을 것이다. 그런데, 갈비는 이 질김이 다소 덜하다. 갈비에 붙은 살은 운동량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또 기름도 적당히 붙어 있다. 그러니, 갈비에 대한 한국인의 특별난 기호는 먼 옛날에 이미 형성된 것일 수도 있다.

소갈비를 구워 먹는 방법에 대한 기록은 1890년대 책인 [시의전서]에 '가리구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다. 살을 바르는 방법은 지금과 비슷해 보이며, 양념을 하여 구웠다. 일제강점기의 근대적 조리서에도 소갈비구이가 나온다. 이 무렵에는 갈비는 흔해졌다. 일제가 조선우(한우를 그때는 조선우 또는 조선소라 하였다) 사육을 적극 권장하였기 때문이다. 1930년대 자료를 보면, 쇠고기가 돼지고기보다 싸다. 불고기, 냉면, 설렁탕 등의 쇠고기 음식이 크게 번창하였고, 이때에 갈비도 널리 팔렸다. 갈비 가격도 쌌다. 1930년 동아일보에 강릉 지역 음식 가격이 나오는데, 국밥, 떡국, 비빔밥이 15전씩이고 갈비는 5전이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43&contents_id=7441

 

외국에도 널리 알려진 ‘불고기’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갈비구이와 불고기이며, 불고기는 외국에도 가장 많이 알려진 한국 음식이다. ‘불고기’란 말은 최근에 생긴 듯하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문헌에 나오는 것은 ‘너비아니’로, 불고기와 비슷하지만 만드는 법이 약간 다르다.

1939년의 『조선요리제법』에 나오는 ‘우육구이(너비아니)’ 만드는 법을 보면, “고기를 얇게 저며서 그릇에 담고 간장(진간장)과 파 이긴 것, 깨소금, 후추, 설탕을 넣고 잘 섞어서 굽는다”고 하였고, 1800년대 말의 『시의전서』에서는 정육을 잘게 저며 양념한 다음 불에 직접 굽는 것을 ‘너비아니’라 하였다. 하지만 요즘 불고기는 훤히 비치도록 얇게 썰어서 질척하게 양념해서 달구어지지도 않은 철판에 올려 굽는다. 불에 굽는 ‘불 고기’가 아니라 국물에 잠겨서 익는 ‘물 고기’가 되어 버렸다. 너비아니는 도톰하게 저며서 잔칼집을 내어 석쇠나 적틀에 구운 음식이다.

불고기의 근원을 찾아보면 상고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유라시아대륙의 넓은 초원에서 유목을 하던 한 부족이 동쪽으로 이동하여 만주 남부 지방의 토착민과 함께 맥(貊)족을 형성하여 우리 조상이 되었는데, 유목민이어서 가축을 조리하는 기술이 뛰어나 유라시아의 대초원에 야생하는 마늘이나 부추 등의 훈채를 장에 섞어 양념으로 사용하였으리라 생각된다.

중국에서는 우리 조상을 맥족이라 불렀고 우리 조상이 먹는 고기 구이를 ‘맥적(貊炙)’이라 하였다. 3세기 중국의 진(晉)나라 『수신기(搜神記)』에서는 “맥적은 본래 북쪽 오랑캐의 음식인데 옛날부터 중국에서 귀중히 여겨 중요한 잔치에 먼저 내놓는다”고 하였다. 중국인의 고기 굽는 법과는 달리 맥적은 미리 장(醬)에 부추나 마늘 등을 섞어 고기를 구웠기 때문에 이것을 귀하게 여겼다.

삼국 시대와 고려 시대에는 불교를 숭상하여 육식을 금했으므로 채식을 주로 하였다가 고려 말 몽골족의 침입으로 다시 육식을 즐기게 되었다. 특히 몽골 사람이 많이 와 있던 개경에는 ‘설하멱(雪下覓)’이라는 고기 구이가 명물로 전해졌다. 『산림경제』(1715년경)의 「치선(治膳)」편에도 ‘설하멱적(雪下覓炙)’이 나오는데 “쇠고기를 저며 칼등으로 두들겨 연하게 한 뒤, 대나무 꼬챙이에 꿰어서 기름과 소금을 바른다. 충분히 스며들면 뭉근한 불에 구워 물에 담갔다가 곧 꺼내어 다시 굽는다. 이렇게 세 차례 하고 참기름을 발라 다시 구우면 아주 연하고 맛이 좋다”고 하였다.

『해동죽지』(1925년)에서는 “설야적(雪夜炙)이란 개성부(開城府)에서 예부터 전해 오는 명물로, 쇠갈비나 염통을 기름과 훈채로 조미하여 굽다가 반쯤 익으면 냉수에 잠깐 담갔다가 센 숯불에 다시 굽는다. 눈 오는 겨울 밤 술안주로 좋고, 고기가 몹시 연하여 그 맛이 좋다”고 하였으니 찬물에 담갔다가 굽는 것이 비법이다. 원래 ‘설야멱(雪夜覓)’은 ‘눈 내리는 밤(雪夜(설야))에 찾는다(覓(멱))’는 뜻인데, 중국의 송나라 태조가 설야에 진(晉)을 찾아가니 숯불에다 고기를 굽고 있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고 『송남잡식(宋南雜識)』에 씌어 있다.

옛날 음식책에는 대부분 고기를 꼬치에 꿰어 구웠다고 씌어 있는데 석쇠나 철판이 생기고 나서는 굳이 꿰어 구울 필요가 없어졌다. 지금은 산적류만 꼬치에 꿰어서 굽는다.

『산림경제』에서도 중국의 『거가필용』을 인용하여 “고기를 구울 때는 대개 땔감으로 뽕나무와 닥나무 불을 꺼린다. 대꼬챙이에 꿰어 숯불 위에서 굽는데 먼저 기름, 소금, 장, 갖은 양념, 술, 초에 재웠다가 묽은 밀가루 풀을 살짝 발라 재빨리 구워 낸 뒤에 고기에 입힌 밀가루 껍질을 벗긴다”고 하였으니 지금의 조리법과는 많이 다르다. 이외에 고기를 구울 때 참깨꽃 가루를 고기 위에 뿌리면 기름이 흐르지 않는다는 비법도 적혀 있다.

요즘은 양념하여 재운 갈비나 불고기보다 양념을 전혀 하지 않은 생고기나 생갈비가 오히려 인기가 있는데 양념에 재우는 고기보다 육질이 더 좋아야 한다. 날고기를 구워서 소금을 찍어 먹는 것을 ‘등심구이’라고 하는데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서는 이를 ‘방자구이’라 하여 “연한 고기를 얇게 저며 씻지 말고 그냥 석쇠에 놓고 소금만 쳐서 구워 먹으면 고명한 것보다 더 맛있고 영양가도 높다”고 하였다. ‘방자(房子)’란 심부름하는 남자 하인을 이르는 말인데, 상전을 모시고 다닐 때 마당이나 부엌 근처에서 서성거리다가 운좋게 고기 한 점을 얻어 양념도 못 하고 불에 재빨리 구워 먹어서 ‘방자구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고도의 미각 문화를 지닌 우리 민족

육류는 도살 후 바로 강직 현상이 일어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고기 자체의 효소 작용으로 연하고 맛이 좋아진다. 쇠고기의 숙성 기간은 4∼7℃에서는 10일 전후, 2℃에서는 2주일 정도 걸린다. 그러므로 신선하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요즘 불고기는 워낙 얇게 썰어서 조리하므로 고기가 질긴지 아닌지를 잘 알 수 없으나 등심이나 안심을 두껍게 썰어서 철판이나 석쇠에 굽거나 스테이크를 만들 때에는 고기가 알맞게 숙성되어야 연하고 제맛이 난다.

고기는 숙성해야 맛있지만 내장류는 신선한 것이 좋다. 특히 소화관인 양이나 처녑, 곱창 등은 내용물이 들어 있어 시간이 지나면 냄새가 나고 쉽게 상한다. 간이나 처녑을 날로 먹을 경우에는 특히 신선한 것으로 골라야 한다.

돼지고기와 쇠고기는 부위별로 팔고 있으므로 음식 종류에 따라 골라서 살 수 있는데 구이로 쓰는 부위는 연한 등심이나 안심을 제일로 꼽는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은 유난히 질긴 것을 좋아해서 사태와 양지 부위인 차돌박이, 심지어는 쇠꼬리까지 구워서 먹는다.

쇠고기는 부위에 따라 맛이 다른데 우리나라 사람은 고기뿐 아니라 내장이나 뼈도 많이 이용한다. 인류학자인 마거릿 미드 여사는 “세계에서 부위별로 쇠고기 맛을 세분해 내는 고도의 미각 문화를 지닌 민족은 한국과 동아프리카의 보디족뿐”이라고 말한 바 있다.

조리법

불고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꼽힌다. 요즘은 고기를 얇게 썰어서 달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불고기 : 외국인들이 좋아함.

재료(4인분)
쇠고기(등심) 400g, 파 2뿌리, 배 ¼개, 양파 ½개
(가) 간장(진간장) 4큰술, 설탕 1큰술, 다진 파 2큰술, 다진 마늘 1큰술, 깨소금 1큰술, 참기름 1큰술, 후춧가루 약간

* 계량 단위
1작은술 - 5ml(cc) / 1큰술 - 15ml(cc) / 1컵 - 200ml(cc) / 1되 - 5컵(1,000ml)

만드는 법
1. 쇠고기는 기름기가 있는 연한 등심으로 0.3cm 두께로 얇게 저며서 적당한 크기로 썬다.
2. 배와 양파는 강판에 곱게 갈아서 합하여 쇠고기를 한 장씩 떼어 넣고 고루 주물러 10분간 재워 둔다.
3. (가)의 조미료를 모두 합하여 양념장을 만들고, 파는 어슷하게 썬다.
4. 과즙에 재웠던 고기에 ③의 양념장을 넣어 고루 주물러서 썬 파를 넣고 30분 정도 재워 둔다.
5. 석쇠나 불고기판을 충분히 달군 다음 기름을 약간 바르고 양념한 불고기를 한 장씩 펼쳐서 굽는다. 고기가 반 이상 익었을 때 뒤집어서 나머지를 살짝 익힌다.

 

너비아니

고기를 도톰하게 저며 양념한 다음 불에 직접 굽는 음식이다.

너비아니

재료(4인분)
쇠고기(등심·안심) 500g
(가) 간장(진간장) 4큰술, 배즙(육수) 4큰술, 설탕 2큰술, 다진 파 3큰술, 다진 마늘 1½큰술, 깨소금 1½큰술, 참기름 1½큰술, 후춧가루 약간

* 계량 단위
1작은술 - 5ml(cc) / 1큰술 - 15ml(cc) / 1컵 - 200ml(cc) / 1되 - 5컵(1,000ml)

만드는 법
1. 연한 등심이나 안심 부위를 0.5cm 두께로 썰어서 잔칼집을 넣어 연하게 한다.
2. (가)의 재료를 모두 합하여 양념 간장(진간장)을 만든다. 배가 없을 때에는 육수를 넣어도 된다.
3. 고기를 굽기 30분 전쯤에 ②의 양념 간장(진간장)으로 고루 주물러 간이 배게 해둔다.
4. 뜨겁게 달군 석쇠에 고기를 얹어서 양면을 고루 익힌다. 숯불에 석쇠를 얹어서 직화로 굽는 것이 번철에 굽는 것보다 훨씬 맛있다.

 

 

너무너무 맛나는 비빔밥, 밥과여러가지 나물, 고기, 양념, 고명들을 넣어서 참기름과 양념으로 비빈 전통음식 이지요. 비빔밥은 전주비빔밥이 가장 유명한데요비빔밥의 장점은 집에 반찬처리를 해야할 때 남은 재료를 넣고 비벼 먹어도 정말 맛있어요. 비빔밥은 여러 가지 영양소가 고루 갖춰있는 건강에 가장 좋은 음식 전통 음식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전통음식, 비빔밥의 유래


 

우리나라 전통음식이자 대표음식은 뭐 ?? 하면 외국인도 한국인도 다 '비빔밥!!!'이라고 외칠거에요. 비빔밥은 재료도 아야하고 지역의 특색도 강한 음식이에요.

 

 

1.김치만드는법, 유래

·배추 및 오이 등을 소금에 절여서 고추·마늘··생강·젓갈 등의 양념을 버무린 후 젖산 생성에 의해 숙성되어 저온에서 발효된 제품으로, 한국인의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반찬이다. 지방에서는 대개 지()라 하고, 제사 때는 침채(沈菜)라 하며, 궁중에서는 젓국지·짠지·싱건지등으로 불렀다.

김치를 담그는 것은 채소를 오래 저장하기 위한 수단이 될 뿐 아니라, 이는 저장중 여러 가지 미생물의 번식으로 유기산과 방향(芳香)이 만들어져 훌륭한 발효식품이 된다.

김치는 각종 무기질과 비타민의 공급원이며, 젖산균에 의해 정장작용(淨腸作用)을 하고 식욕을 증진시켜 주기도 한다. 상고시대(上古時代)에는 오이·가지·마늘·부추·죽순··박 등으로 '소금절이', '술과 소금절이' 또는 '술지게미와 소금절이' 등을 만들었는데, 오늘날의 김치와는 매우 달라서 김치라고 하기보다는 장아찌류에 가까웠다.2001 7 5일 식품 분야의 국제표준인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서 김치가 일본의 기무치를 물리치고 국제식품 규격으로 승인받았다.

매운 배추김치

 


덜매운 배추김치

  

    

맵지 않는 백김치

 

2.떡갈비보기만해도맛있네

칼로리429kcal / 1인분 고기류지만칼로리가낮으편은아님

 

만드는법, 유래

전라남도 담양·해남·장흥·강진 등지에서 시작된 요리로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고유한 요리는 아니다. 만드는 방법이 인절미 치듯이 쳐서 만들었다고 하여 떡갈비라 부르게 되었고 다른 갈비요리와는 달리 갈비살을 곱게 다져서 만들었기 때문에 연하고 부드러운 고기 맛을 느낄 수 있다.재료는 갈비 5토막, 밀가루·소금·후춧가루·생강즙 조금씩, 간장 3큰술, 다진 마늘 3큰술, 양파 1, 배즙 1/4개 분량을 준비한다.갈비는 5 길이로 토막내어 기름기를 제거하고 살만 발라 차질 정도로 곱게 다진다. 다진 갈비살에 후춧가루·소금·생강즙을 넣고 골고루 끈기가 나도록 치댄다.살을 발라낸 갈비뼈에 밀가루를 조금 바른 뒤 다져서 양념한 갈비살을 갈비뼈에 도톰하게 붙인다. 양념장은 냄비에 간장, 배즙, 양파 다진 것, 청주, 설탕, 참기름 등을 넣고 끓인 후 고운 체에 걸러 만든다. 뜨겁게 달군 석쇠에 떡갈비를 올려 애벌구이를 한 다음 기름솔로 양념장을 앞뒤로 발라가며 타지 않게 굽는다. 이때 떡갈비를 구우면서 양념장을 바르지 않고 미리 갈비살에 모든 양념을 하여 굽기도 한다. 또 만들 때 양념한 갈비살을 갈비뼈에 붙이지 않고 그대로 떡 빚듯이 네모나게 빚어서 굽기도 하는데 이럴 경우 양념을 해서 오래 치대야 구울 때 부서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떡갈비를 맛있게 먹으려면 양념을 너무 달거나 짜지 않게 하고 굽자 마자 바로 먹어야 한다. 석쇠에 구워서 기름이 다 빠진 상태라 식으면 뻣뻣해지고 맛이 없기 때문이다. 또 양념한 고기를 하루쯤 냉장고에 두었다가 구우면 더 연하고 감칠맛이 나며 고기 자체의 맛을 원한다면 양념해서 바로 굽는 것이 맛있다. 그밖에 당근·수삼··양념장 등에 물을 붓고 끓이다가 구운 떡갈비를 넣고 윤기나게 조려 찜으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3.여름보양식 삼계탕

 

칼로리677kcal / 1인분

만드는법, 유레 덤으로 더운 여름날을 잘 보내기 위해 농민이 들먹었다고 해서 계삼탕이라고도 한다. 병아리보다 조금 큰 영계를 이용한 것은 영계백숙이라고 한다. 내장을 꺼낸 닭의 뱃속에 깨끗한 헝겊으로 싼 찹쌀·마늘·대추 등을 넣고, 물을 넉넉히 부은 냄비나 솥에 푹 삶아 고기가 충분히 익었을 때 건져낸다. 인삼을 헝겊에 싸서 국에 넣고 푹 고아 인삼의 성분이 우러나게 하여 소금으로 간을 맞추어 국물만을 마시거나, 국물에 양념한 고기를 넣어 먹기도 한다. 그러나 인삼을 찹쌀 등과 함께 섞어서 닭 속에 넣어 고면 닭 뼈에 인삼의 영양분이 스며들어 인삼의 영양분이 감소된다.

 

4.갈비찜 : 외국인들이 좋아함.

칼로리531kcal / 1인분

만드는법,유레

돼지갈비를 이용하기도 하며, 갈비를 67 cm 길이로 토막내어 기름기를 떼낸 후 고기가 두꺼운 부분에는 칼집을 깊게 내고, 안쪽 뼈에도 가로 ·세로로 칼집을 내어 먹기 좋게 한다. 간장 ·설탕 ·다진 파와 마늘 ·생강즙 ·후춧가루 ·깨소금 ·참기름을 섞어서 양념장을 만든다. 솥에 갈비가 잠길 만큼 물을 붓고 푹 끓여 건져낸 후, 국물에 뜬 기름기를 걷어낸다. 삶아낸 갈비에 양념장을 골고루 발라 찜그릇에 담고, ·당근 ·달걀 지단채 ·표고버섯·석이 등을 색스럽게 위에 얹어 약한 불에 뜸을 충분히 들인다. 밑에 괸 국물을 1~2차례 떠서 갈비에 끼얹는다

 

5.곰탕(곰국)

 

칼로리190kcal / 1인분 낮은편

만드는법유래

육탕(肉湯)이라고도 하며 보양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밥을 말면 곰탕이 되고, 사골·등뼈를 많이 넣어 끓이면 설렁탕이 된다. 옛날 궁중에서는 수라상에 팥수라와 짝이 되는 음식으로 올렸다.양지머리·사태살 등 고기와 양(:소의 위곱창·부아 등 내장을 될수록 많이 넣고 오래 끓여야 감칠맛이 난다. ·마늘·무를 함께 넣어 푹 무르게 끓이고 건더기는 건져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다진 파와 마늘·참기름·후춧가루·간장 등으로 양념을 하여 국에 넣어 한소끔 다시 끓인다

 

6.설렁탕

 

칼로리423kcal / 1인분

쇠머리·사골·도가니 그 밖에 뼈·사태고기·양지머리·내장 등을 재료로 쓰며, 10여 시간 푹 끓이면 국물에 살코기와 뼈의 가용성분이 우러나와 국물이 유백색의 콜로이드성 용액 상태를 이루고 살코기만을 곤 국과는 다른 독특한 풍미가 난다.큰 솥에 물을 넉넉히 붓고 끓이다가 뼈를 넣고 끓이는데, 거품이 떠오르면 자주 걷어내고 누린내가 가시도록 생강··마늘 등을 넣는다. 고기류를 끓는 국에 넣어 국물이 뽀얗게 될 때까지 함께 끓인 후 뼈는 건져내고 살과 내장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다시 넣고, 고기가 손으로 뜯어질 때까지 끓인다. 뚝배기에 설렁탕을 담고 밥과 소금·고춧가루·후춧가루·다진파·다진마늘 등을 따로 결들여 내면 먹는 사람이 간을 맞추어 먹는다. 이때 삶은 쇠머리·우설(牛舌) 등을 따로 건져서 편육으로 썰면 술안주감으로도 좋다.

 


 

삼계탕

1) 요리재료

· 주재료 : 영계 2마리
· 부재료 : 대추 10개, 수삼 4뿌리, 찹쌀 1컵, 마늘 12쪽, 양파 1개, 대파잎 3대, 소금(약간), 후춧가루(약간), 물 24컵

2) 기본정보

· 분량 : 4인분 기준

3) 요리과정

01. 영계는 몸속 안쪽까지 물에 씻어 물기를 빼고 영계의 항문은 잘라내 누린내가 나지 않게 한다.
02. 대추는 주름부분까지 깨끗하게 씻고 수삼은 흙을 털어내고 물에 씻어 반을 가른다. 감초도 씻어서 물기를 뺀다.
03. 양파는 큼직하게 썰고 마늘은 껍질 벗겨 씻어 놓는다. 대파잎은 큼직하게 토막 낸다.
04. 찹쌀을 깨끗이 씻어 충분하게 불린 후 체에 밭쳐 물기를 뺀다.
05. 냄비에 물을 붓고 대파잎과 양파, 마늘 2~3쪽을 넣어서 한소끔 끓인다.
06. 영계의 몸속에 찹쌀과 수삼, 대추, 마늘을 넣어 꼬치를 끼워 속의 재료가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게 한다.
07. ⑤의 향신채를 넣은 물이 끓으면 준비한 영계를 넣어 중간 불에서 뚜껑을 덮고 40분 이상 푹 삶는다.
08. 삶은 영계에 젓가락을 찔러 보아 푹 들어가면서 찹쌀이 완전하게 익으면 불에서 내려 꼬치를 빼서 그릇에 담고 국물은 면포에 걸러 기름기를 걷고 맑은 국물만 영계에 부어서 구수하게 먹는다.

 

 

우리나라 사람은 예부터 구()자를 좋은 숫자로 여겼다고 합니다. ''는 모든 것을 의미하는 숫자로서 구족(九足)’ 하면 모든 백성

구중천(九重天)’은 우주를 뜻한다고 해요

 

구절판은 팔각으로 된 나무 그릇으로 가운데에 작은 팔모의 틀이 있어서 칸이 모두 아홉 칸으로 나뉘는데요가장자리 여덟 칸에는 고기와 전복해삼채소 등을 각각 채 썰어 익혀서 담고가운데 칸에 얇게 부친 밀전병을 담아서 싸먹는 음식이죠이 구절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밀 전병으로, 두꺼우면 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반죽에 소금 약간과 물을 부으면서 묽게하여 얇게 부쳐서 싸먹으면 훨씬 맛이 좋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밀가루를 활용한 우리나라의 전통음식들을 정리해보았는데요. 여기서 언급하지 않은 것 중 밀가루를 활용한 전과 부침개 등의 요리도 있죠? 요즘은 밀가루를 활용한 가공식품이 워낙 다양하여 밀가루 식품하면 빵, 과자, 라면 등을 많이 떠올리시지만 이렇게 옛부터 선조들이 특별하게 즐겨먹은 밀가루 전통음식들도 있다는 점 잊지 말아주세요!  순순한 자연식품 밀가루로 오늘은 다양하고 신선한 채소를 곁들인 전통음식을 추천합니다!

우리나라의 음식는 삼천리강산이라 불릴 정도로 산수가 수려하여 우수한 식품이 많이 생산된다. ··남은 바다에 접해 있고 북은 큰 강으로 경계를 짓고 있다. 그 지세는 남북으로 길게 뻗어 남과 북의 기후차가 현저하므로 곳곳의 산물이 달라지고 따라서 산업형태도 달라진다.

 

각 지방의 향토음식은 1900년 중반까지는 고유한 특색이 있었으나 점차 산업과 교통이 발달하여 다른 지방과의 왕래와 교역이 많아지고, 물적 교류와 인적 교류가 늘어나서 한 지방의 산물이나 식품이 전국 곳곳으로 퍼지게 되고, 음식 만드는 솜씨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지방마다 음식의 맛이 다른 것은 그 지방의 기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북부 지방은 여름이 짧고 겨울이 길어서 음식의 간이 남쪽에 비하여 싱거운 편이고 매운 맛은 덜하다.

 

음식의 크기도 큼직하고 양도 푸짐하게 마련하여 그 지방 사람들의 품성을 나타내 준다. 반면에 남부 지방으로 갈수록 음식의 간이 세어서 매운맛도 강하고 양념과 젓갈을 많이 쓰는 경향이 나타난다.

 

지형적으로는 북부 지방은 산이 많아 밭농사를 주로 하여 잡곡의 생산이 많고, 서해안에 면해 있는 중부와 남부 지방은 쌀 농사를 주로 하므로 북쪽 지방을 주식으로 잡곡밥을, 남쪽 지방은 쌀밥과 보리밥을 먹게 되었다.

 

찬품으로는 전국 어디에서나 좋은 반찬이라 하면 고기 반찬을 꼽으나 평상시의 찬은 대부분 채소류가 중심이고, 저장하여 두고 먹을 수 있는 김치류, 장아찌류, 장류가 있다.

 

산간 지방에서는 육류와 신선한 생선류를 구하기 어려우므로 소금에 절인 생선이나 말린 생선, 해초 그리고 산채로 만든 음식이 많고, 해안이나 도서 지방은 바다에서 얻는 생선이나 조개류, 해초류가 찬물의 주된 재료가 된다.

 

전국적으로 일상적인 식생활에서의 음식법은 공통적인 면이 많이 있지만 그 지방에서 나는 토산 식품과 특별한 양념이 보태어져 지방마다의 고유한 향토음식이 전수되어 왔다.

 

그러나 1900년 후반부터 새로운 외래 식품의 유입과 외국의 음식문화도입, 외식 산업의 발달 등의 영향을 받아서 고유한 향토음식은 변형되고 새로운 향토요리가 개발되고 있다.

 

서울은 양반음식이라고 하나 기실 생산하는 식료품은 별로 없다. 그러면서 음식이 사치스럽기는 개성·전주와 쌍벽을 이룬다. 특히 조선시대에서부터 계속 우리 나라의 수도였기에, 음식은 궁중의 풍속을 따라 격식이 복잡하고 맵시를 보는 전통이 전해졌다. 따라서 관북·관서 지방의 풍속과는 대조적이다.

 

또한 외국의 사신이 드나들었기 때문에 음식에 화려한 멋을 내는 풍이 나타나고, 극히 의례를 존중하는 풍이 복잡한 음식의 차림으로 표현되고 있다. 가짓수가 많고 한 가지의 양을 조금씩 차리는 풍이 보인다. 음식은 식품을 복합적으로 쓰고 양념도 많이 써서 복잡한 맛이 난다.

 

떡의 모양에서도 서울과 지방의 차이가 있고. 그 고장 사람의 성격을 잘 나타내고 있다. 송편의 예를 들면 서울의 송편은 큰 밤톨만 하고 통통하다. 이에 비하여, 황해도의 송편은 손바닥만하고, 강원도의 감자송편은 손으로 꽉 쥐었다 놓은 문양을 그대로 둔다.

 

 

1 식사(食事) ()

 

장국밥·설렁탕·흑임자죽·잣죽·떡국·비빔국수·국수장국·메밀만두·생치만두·편수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설렁탕은 구전에 의하면 동대문 밖 선농단(先農壇)에서 시작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널리 퍼진 음식이다.

 

이 음식은 음력 정월 하순경 왕이 선농단에서 친경을 한 뒤에 이날 나온 노농(老農)들과 많은 사람들을 먹이기 위하여 소를 잡아 큰 가마솥을 수십 개를 걸어놓고 국을 끓여서 뚝배기에 국밥을 말아먹은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선농단에서 끓인 탕이라 해서 선농단탕이라 하였는데 점차 선농탕’·‘설렁탕으로 변하였다고 전한다.

 

2) 찬류

 

열구자탕(신선로떡찜·떡볶이·갈비찜·호박선·각색전골·홍합초·전복초·간납·우설편육·양지머리편육·갑회·굴회·어채·육포·구절판·숙주나물·묵은나물볶음·김쌈·장김치·숙깍두기·매듭자반·수란·족편 등이 있다.

 

굴비나 관메기, 암치 등 말린 생선을 굽거나 지짐이를 하고, 육포, 젓갈류와 장아찌 등의 밑반찬의 종류가 특히 많다.

 

3) 떡류

 

두텁떡(봉우리떡상추떡·물호박떡·각색편·느티떡·약식·화전·주악·석이단자·대추단자·쑥구리단자·밤단자·유자단자·은행단자·건시단자·율무단자·솔방울떡 등이 있다. 고급 재료를 써서 손이 많이 간 떡이 많다. 조선시대에는 남촌과 북촌을 일러 남주북병(南酒北餠)이라고 칭할 정도로 떡을 많이 만들었다.

 

4) 후식류

 

조과류로는 매자과·약과·만두과·흑임자다식·콩다식·송화다식·밤다식·진말다식·녹말다식·쌀다식·실깨엿강정·땅콩엿강정·백자편 등이 있다.

 

음청류로는 오미자화채·흰떡수단·진달래화채(두견화채원소병·보리수단·미삼차·유자차·대추차·생강차·곡차·오미자차·구기자차·결명자차·당귀차·제호탕·오과차·모과차·계피차 등이 있다.

 

옛 서울 개성을 포함한 경기도는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산과 바다에 면하여 있고, 기후는 중부에 위치하여 비교적 좋은 편이다. 서해안의 해물과 산골의 산채는 물론 밭곡식도 여러 가지가 고루고루 있어 음식도 소박하면서 다양하다.

 

음식은 서울에 접하고 있으면서도 소박한 편이고, 간도 중간정도이고 양념도 수수하게 쓰는 편이다. 경기도는 강원도·충청도·황해도와 접하고 있어 이들 지방의 음식과 서로 공통점이 있다. 음식명도 같은 경향의 것이 많이 보인다.

 

음식은 범벅이나 풀대죽·수제비와 같이 호박·감자·옥수수·밀가루·팥 등을 섞어서 만든 구수하고 양이 많은 음식이 많다. 곡류음식에서는 오곡밥·찰밥을 즐긴다.

 

국수는 맑은 장국국수보다 칼국수를 제물에 끓인 것 같은 제물국수와 메밀칼싹두기 같은 국물이 걸쭉하고 구수한 음식이 많아 관서지방의 동치미냉면과는 대조적인 입맛을 즐기고 있다. 냉콩국은 충청도·황해도와 똑같이 잘 만드는 음식이다. 국수는 가는 것보다는 칼로 썬 부드러운 것을 즐기고 있다.

 

개성은 떡국도 조랭이떡국처럼 흰떡에 공을 들여 멋을 부리고, 편수도 서울지방의 편수처럼 모지게 싸지 않고 동글게 모자모양으로 싸서 매우 부드럽고 매끈하게 만든다. 특별히 많이 생산되는 것은 없으나 밭곡식도 나물도 고루고루 먹을 수 있는 환경이다.

 

1) 주식류

 

팥밥·오곡밥·팥죽·조랭이떡국·냉콩국수·제물국수·칼싹두기·버섯장국수제비·수제비·개성편수 등이 있다.

 

특히 조랭이떡국은 조선이 들어서자 고려의 수도인 개성지방에서 조선왕조에 대한 사무친 원한을 한풀이하려고 가래떡 끝을 비비 틀어서 만들기 시작한 데서 유래하였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이와 같이 경기도 지방의 음식에는 고려시대 음식의 잔영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2) 찬류

 

계삼탕(영계백숙갈비탕(가리탕곰탕·족탕·닭젓국·뱅어국·냉이토장국·민어매운탕·감동젓찌개·종갈비찜·무찜·두부장조림·주꾸미조림·배추꼬랑이볶음·송이산적·쇠갈비구이(숯불갈비구이돼지고기구이·꽁치된장구이·두부적·홍해삼전·조개전(대합전유어배추잎장아찌·쇠머리수육·양지머리수육·잡회·생굴회·연평도조기젓·오징어젓·굴젓·메밀묵무침·물쑥나물·파상추절이지·달래무침·용인외지·수무짠지·순무김치·꿩김치·고구마줄기김치·숙김치(삶은 김치보쌈김치·수무섞박지·무비늘김치·백김치·장떡·풋고추부각·파래·튀김·순대·오징어순대·족편별법 등을 들 수 있다.

 

3) 떡류

 

색떡·여주산병·우매기·개성경단·각색경단·근대떡·수수도가니·수수지지미(부꾸미개떡 등 떡종류도 많고 상당히 멋을 내고 있다. 여주는 산병, 강화도는 근대떡, 가평은 메밀빙떡, 개성은 경단, 우매기 등 독특한 떡이 많다.

 

4) 후식류

 

조과류로는 약과·강정·정과·다식·엿강정 등이 있다. 가평의 송화 다식, 강화의 인삼정과, 여주의 땅콩엿강정, 개성모약과가 특색이 있다. 음청류는 화채는 모과 화채·배화채·노란장미화채·송화 밀수 등이 있고, 차는 강화 수삼꿀차·연천 율무차 등이 있다.

 

강원도는 한류와 난류가 엇갈리는 깊은 동해바다에 면하고, 우리 나라의 척추 구실을 하는 태백산맥의 깊은 산과 골짜기와 그 사이사이에 분지가 자리잡은 곳이다. 그 분지와 산골마다 각각 다른 생산품이 많다. 그러나 소박한 풍토로 인하여 묘미있고 깊이 있는 음식으로 다듬어지지 못한 감이 있다.

 

이 고장의 특산품은 감자·옥수수·메밀·도토리 등이다. 이것들을 주식의 재료로 삼았다. 이러한 것들은 특히 예로부터 구황식품이 되던 것이다. 따라서 강원도는 구황식품의 보고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구황식품들은 평상시에는 주식으로 하였고 또 한편으로는 향토 별미로서 사랑을 받는 음식이 되었다.

 

강원도의 감자는 하얀 분이 많이 나고 질척거리지 않으며 특히 맛이 좋다. 옥수수도 알이 굵고 차진 것이 유명한 찰옥수수이다. 감자로 음식을 만드는 법이 많은데 통으로 쓰기도 하나 주로 강판에 갈아서 녹말을 내어 이용하는 것이 특색이다.

 

이렇게 하면 상당히 질긴 맛을 낼 수 있고 또 감자의 형태가 달라져서 조리법의 다양성을 보여줄 수 있다. 산골에는 소음식(素飮食: 단일한 제료를 사용한 음식)이 많으나 해안지방에서는 멸치·조개 등을 넣어 맛을 내고 있다.

 

1) 주식류

 

강냉이밥·감자밥·차수수밥·토장아욱죽·메밀막국수·팥국수·감자수제비·강냉이수제비·강냉이범벅·감자범벅 등이 있다. 옥수수와 감자를 다양하게 주식으로 이용하는 점이 특색이다.

 

2) 찬류

 

삼시기국·꾹저구탕(뚜거리탕쏘가리매운탕·대게찜·감자조림·도치두루치기볶음·석이볶음·풋고추볶음·송이장아찌·마른오징어젓갈무침·물오징어불고기·동태구이·감자부침개·느리미·강어회(향어회·가물치회오징어무침·오징어회·가자미식해·건어포(암치·대구·북어·오징어박나물·취나물·지누아리무침·파래무침·더덕생채·취쌈·창란젓깍두기·채김치·동치미·돌김·들깨송이부각·메추리튀김·올챙이묵(옥수수묵메밀묵 등을 들 수 있다. 동해의 해산물과 산골의 산나물이 찬물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3) 떡류

 

쌀떡보다는 잡곡으로 만드는 떡이 많고 비교적 소박한 맛과 모양이다. 영동지역과 영서지역의 차이가 조금 있다. 영동지역에서는 송편을 많이 만들고 다음은 시루떡이다.

 

큰일 때에는 절편과 인절미를 주로 만든다. 개피떡을 주로 만들고 흰떡은 별로 많이 만들지 않는다. 영서지역은 화전마을이 많아서 옥수수··수수·감자·메밀로 만드는 떡이 많다. 특히 옥수수의 생산이 많아 옥수수가루에 강낭콩을 섞어서 만드는 잡곡설기떡을 잘 만들고 특색이 있다.

 

감자시루떡·감자떡·감자녹말송편·감자경단·옥수수설기·옥수수보리개떡·메밀전병(총떡댑싸리떡·메싹떡·팥소흑임자·각색차조인절미·무송편·방울증편 등을 이 지역의 특색 있는 떡으로 꼽을 수 있다.

 

4) 후식류

 

조과류로는 과줄(산자·박산약과·송화다식·황골엿(옥수수엿) 등을 잘 만들고, 음청류로는 앵두화채·책면·연엽식혜(연엽주) 등이 있고, 차는 강냉이차·당귀차 등이 있다.

 

충청도는 바다에 전혀 접하지 않은 북도와 황해에 면하여 있는 남도로 그 지역적 여건이 다른 점이 많으나, 일반 생업은 농업이다. 특히 충청남도의 예당평야 백마강 유역에 펼쳐진 지역은 농경에 적합하여 곡물이 풍부하고 황해에는 좋은 어장을 갖추고 있다.

 

삼국시대 당시 신라에서는 보리를, 고구려에서는 조를 주식으로 하던 때에도 백제에서는 쌀이 주곡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충청도 지역이 바로 백제의 중심지였다. 따라서 주식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은 밥이다. 밥은 흰밥을 으뜸으로 숭상하고 일반적으로는 보리밥을 많이 먹었다.

 

보리밥은 보리를 잘 대껴서 먹으면 촉감이 흰밥과 다름없을 정도로 매끈하고 구수하며 맛이 있다. 이를 통하여 충청도 사람들의 소박함과 동시에 숙련된 조리기술의 정도를 알 수 있다.

 

그 밖에도 죽·밀국수·수제비·범벅 등이 있는데, 늙은 호박을 많이 쓴다. 이것은 영양적으로 우수하다고 평가된다. 늙은 호박으로 죽을 쑤고 범벅을 만드는 것은 타도와 비교해서 특징적이다.

 

국물을 낼 때에 여름에는 닭과 소합을 쓰고 겨울에는 굴 같은 해물을 쓰는 것이 특징이다. 과거에는 고기를 먹기 힘들었으므로 주로 소()국을 끓였다. 그런데 충청도에서 해물을 넣고 맛을 내어 날떡국·밀국수 등을 끓이는 방법을 개발한 것은 식생활의 합리적인 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1) 주식류

 

콩나물밥·보리밥·찰밥·녹두죽·호박풀대죽·보리죽·날떡국·칼국수·나박김치냉면·호박범벅 등을 잘 만든다.

 

2) 찬류

 

굴냉국·넙치아욱국·봄아욱국·콩김치국·청포묵국·콩국·시래기국·콩나물찌개·호박지찌개·청국장찌개·담북장·상어찜·홍어어시육·마른조갯살조림·떡볶이·말린묵볶음·명태볶음·장떡·갈비구이·돼지고기고추장양념구이·더덕고추장양념구이·굴비구이·호박고지적·감자부침개·깻잎장아찌·오이지·콩나물짠지·파짠지·돼지머리편육·육회·오징어회·미꾸라지회·어리굴젓·고추젓·애호박나물·취나물·늙은호박나물·참죽나물·오가리나물·콩나물무침·열무물김치·가지김치·박김치·시금치김치·새우젓깍두기·청포묵 등이 있다.

 

3) 떡류

 

꽃산병·쇠머리떡·약편·해장떡·막편·곤떡·볍씨쑥버무리·수수팥떡·감자떡·감자송편·칡개떡·햇보리떡·도토리떡 등을 들 수 있다.

 

4) 후식류

 

조과류로는 무릇곰·모과구이·무엿·수삼정과 등이 있고, 음청류로는 찹쌀가루·천도복숭아화채·미수 등이 있다.

 

전라도는 개성에 버금가게 음식솜씨가 사치스럽다. 위치는 남과 북으로 매우 떨어져 있다. 개성은 고려의 음식을 전통적으로 지키고 있는 매우 보수적인 데가 있는 반면에 전라도는 조선의 양반풍을 멋있게 받아서 고유한 음식법을 지키고 있다.

 

황해와 남해의 보고를 끼고 기름진 호남평야를 안고 있어 쌀이 풍부하고, 해물을 곁들이는 음식이 매우 여러가지가 있다. 깊은 산이 유명하여 산에서 나는 귀한 산물이 많아 음식을 다양하게 하고 있다. 콩나물을 기르는 법이 특수하고 각색 죽은 보양식으로 매우 중요한 음식이다.

 

전라도는 부유한 토반들이 대를 이어서 좋은 음식을 전하고 있는 고장이다. 따라서 그 상차림은 음식의 가짓수를 많이 올리는 것을 즐기고 있어 외지사람을 놀라게 하며, 음식솜씨 자랑을 많이 한다. 이것은 혼인의 선물 음식을 보면 알 수 있다.

 

기후가 온난하여 젓갈은 간이 매우 세고, 김치는 고춧가루를 많이 쓰고 간이 짜고 국물이 없는 김치를 담근다. 이것으로 다른 음식의 간을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의 김치와 대조적이다.

 

1) 주식류

 

전주비빔밥·콩나물국밥·피문어죽·깨죽·오누이죽·대추죽·합자죽·대합죽·냉국수·고동칼국수 등이 있는데, 특히 전주비빔밥과 콩나물국밥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2) 찬류

 

머우깨국·천어탕·추어탕·죽순찜·홍어어시육·붕어조림·멸치자반·두루치기·장어구이·숯불불고기·생치섭산적·송이산적·산돼지고기구이·애저·육회·홍어회·고막회·생산대구아가미젓·젓갈류·육포·어포(민어포·대구포산채·겨자잡채·톳나물·파래무침·꼴뚜기무생채·갓쌈지·고들빼기김치·배추포기김치·검들김치·굴깍두기·반지(백지굴비노적·마른찬(짠 반찬가죽부각·부각·황포묵 등이 있다. 특히 홍어회는 혼례·환갑 등 큰 잔치 때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잘 만드는 음식이다.

 

3) 떡류

 

국내 최고의 쌀 생산지인만큼 곡식으로 만드는 떡도 다양하다. 식생활이 윤택하여 아낙네들의 음식솜씨도 각별하다. 따라서 떡의 종류도 매우 많으며 사치스럽게 만든다.

 

감시리떡·감고지떡·나복병·호박메시리떡·복령떡·수리취떡(수리취개떡송피떡·고치떡·삐삐(삘기송편호박고지차시루떡·감인절미·감단자·전주경단·해남경단·우찌지·차조기떡·섭전 등 다양한 종류의 떡이 있다.

 

4) 후식류

 

조과류로는 산자(유과유과별법·고구마엿·동아정과·생강정과·연근정과 등을 잘 만들고, 음청류로는 유자화채·곶감수정과를 잘 만든다.

 

동해와 남해를 끼고 있어 전라도와 비슷한 기후이면서도 해산물의 종류가 다르고, 들판에서 곡식도 골고루 생산이 되고 있다. 그러나 물고기를 고기라고 할 만큼 생선을 제일로 치고 있다.

 

음식은 해산물을 회로 먹는 것이 제일이라고 한다. 젓갈은 멸치젓을 가장 많이 담그며, 밥상에 놓는 젓갈의 종류도 전라도의 다음으로 많다. 음식의 간은 소금간이 세고 매운 점은 전라도를 능가한다. 음식의 풍은 멋을 내거나 사치하지 않다.

 

해산물을 가미하는 음식이 매우 많다. 신선한 생선을 국에 넣어 소금간을 하여 좋은 맛을 내는 것은 내륙이나 산간지방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조리법이다. 곡물음식 중 국수를 가장 즐기고 날콩가루를 섞어서 손으로 밀어 칼로 써는 부드러운 국수를 제일로 친다. 제물국수와 장국국수도 즐긴다. 국수장국은 쇠고기보다는 멸치장국이나 조개를 주로 쓴다. 범벅이나 풀대죽은 별로 즐기지 않는다.

 

찾아보시면 엄청나게 음식류가 우리나라에 있습니다.  미국의 음식도 우리나라에서 외국인에게 인기인 것이 스테이크입니다. [네이버 백과 사전] 일부인용 

 


3. 한국인 주(住) 생활


한민족은 춥고 찬바람이 불고 눈이 많이 내리는 긴 겨울을 지내기 위해서 방바닥을 따뜻하게 해 는 '온돌'이라는 난방시설을 사용하였고, 덥고 비가 자 내리고 습기가 많은 여름을 지내기 위해서 바닥이 시원한 '마루'를 사용하였다. 추운 북쪽지방에서는 온돌방이 발달하였고, 더운 남쪽 지방에서는 마루가 발달되었다. 한옥 가장 큰 특징은 온돌과 마루라고 할 수 있다. 한옥을 짓는 재료는 자연속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와 흙, 돌 등을 활용하였고, 골격은 로 나무를 사용하였고, 지붕은 나무를 사용하였고 그 위에 풀을 덮거나 흙으로 구운 기와를 사용하였다. 벽체와 바닥은 흙과 돌을 혼합하여 사용하였고, 방바닥은 진흙으로 발라 그 위에 종이를 발라 사용하였다.
한옥을 짓는 터전은 배산임수 지형에 북쪽 찬바람을 막아 고 남쪽 땅을 경작하기 쉬운 곳을 선택하였다. 한민족은 대부분 남향집을 선호하고, 동쪽이나 남쪽으로 대문과 출입구를 설치하였다. 초가인 경우에는 일년에 한번 추수를 한 후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볏짚으로 이엉을 엮고 용구새를 틀고 새끼를 꼬아서 지붕을 한다. 겨울에는 아궁이에 불을 지펴 로 방안에서 생활하고, 여름에는 로 시원한 마루에서 생활 한다. 대문을 제외한 한옥 출입문은 문을 오른손으로 밖으로 당겨 열게 되어 있고, 방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댓돌을 밟고 문턱을 넘어 서거나 마루를 거쳐 방안으로 들어 간다. 방바닥에 앉아서 로 생활하고, 손님이 왔을 경우 사랑방으로 모시고, 인은 방아랫목에 자리를 잡고 방웃목에 앉은 손님과 대화를 나눈다.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면 부녀자들이 거처하는 안채와 남정네들이 거처하는 사랑채가 보이는데 안채가 사랑채 보다 약간 높은 곳에 있다. 서민들 집은 로 초가 지붕으로 되어 있고, 한지붕 아래 부녀자들이 거처하는 안방과 남정네들이 거처하는 사랑방, 밥을 짓는 부엌 등이 배치되어 있다.

우리나라 한옥의 구조 및 명칭


 
 
 
우리나라 전통한옥구조와 특징

 

한옥은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특징을 지니고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온돌방과 마루가 함께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온돌과 구들은 추운 북쪽 지방에서 시작되고, 마루는 따뜻하고 습기가 많은 남쪽 지방에서 구조와 특징을 갖고있다.
한옥의 양식은 좌식 생활에 기초하고 있는데 구조는 지방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대체로 한옥에 포함되는 시설은 다음과 같다.

 

 

- 온돌 : 북쪽 지방의 취위를 막기위해 구들을 놓은방, 굴뚝과 고래 사이 아궁이에 불을
            피워 방을 따뜻하게 했다.
- 마루 : 무더위를 식히는 휴식 공간으로 사용한다.
- 처마 : 추녀와 지붕이 내미는 서까래가 처마에 지붕의 멋을 용마루에서 처마끝까지 경사
            면 을 조절해야한다.
            (이것이 우리 전통의 한옥에 멋이다.)겹처마는 서까래를 이중으로 만드는 처마다.
            한옥의 아름다움이 더욱더 하다.
- 담장 : 담은 여러가지의 담을 꾸미는 방법이 많이있다. 한옥의 아름다움을 더하기 위해서
            이다.
- 안방 : 주인 여자가 거처하는 방
- 대청마루 : 안방과 건넌방 사이의 마루
- 건넌방 : 노인이나 자녀가 거처하는 방
- 사랑방 : 주인 남자가 사용하며 손님을 맞기도 한다.
- 정주간 : 부엌과 방사이에 벽이 없이 부뚜막과 방바닥이 잇닿은 곳.
- 바당 : 부엌
- 행랑채 : 머슴이 거처하는 곳
- 별당 : 사랑채와 안채에서 출입할 수 있는 별도의 집, 상류층 한옥에만 있다.

* 한옥을 통해 본 조상들의 멋과 지혜
* 지혜 : 한옥의 위치와 구조, 기능에서 찾을 수 있다.
- 위치 : 북쪽(뒤쪽)으로는 산이 막아 주고, 남쪽(앞쪽)으로는 들판이나 개천이 흐른다.
- 구조 : 지방의 기후 특징에 따라 집의 구조가 달랐으며, 온돌과 마루가 이용되었다
- 기능 : 마루와 방, 마당이 계절에 따라 알맞은 기능을 수행하고, 가족들이 편리한 생활을
            도왔다

*멋 : 지붕의 선과 담 그리고 문살의 무늬 등에서 민족의 은은한 마음씨와 정겨움, 자연과
        의 이상적인 일치감을 느낄 수 있다.


 

가구형식

 

가구란 건물의 뼈대, 즉 골조(骨組)를 말한다. 이처럼 뼈대를 짜 맞추는 법식을 가구형식 또는 가구법이라 할 수 있다. 가구를 크게 나누면 벽체가구와 지붕가구로 크게 나눌 수 있고 마루․천장․계단가구 등이 있으나 보통 가구라면 지붕가구를 뜻한다.


지붕가구는 지붕을 이루는 골조부분으로 기둥 상부의 공포와 보(梁, 樑), 도리(道里), 장여(長舌), 대공(臺栱), 서까래 등이 포함되는데 목조건축 중에서 가장 복잡하게 결구되며 구조적으로나 의장적으로 중요시되는 부분이다. 건물바깥 처마 밑이나 내부에 노출되는 지붕가구에는 의장적 고안이 필요하며 건물규모나 공포양식에 따라 시대적으로도 변화가 많고 또 가장 복잡하고 아름답게 꾸민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목조건축의 가구는 일반적으로 건물의 종단면을 기준으로 하여 건물의 층수, 고주(高柱)의 수와 위치, 도리의 수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보통 2고주 5량 또는 2고주 7량 등으로 부르는데 이는 대체적인 건물의 규모와 구조를 알기 위해 사용하는 구분법이다.


 

일반적으로 층수와 고주의 수(數)는 건물의 규모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중층이 되거나 건물의 규모가 장대해지면 보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길어지게 되고 목재의 한계 때문에 보의 경간(徑間)을 줄이고 구조를 더 안정되게 하기 위하여 고주의 도입은 필수적이게 된다.
이 경우 고주가 하나 있으면 1고주, 고주가 중심에 위치하면 심주(心柱), 2개이면 2고주 등으로 부른다.


 

서까래를 받는 도리(종도리, 중도리…)의 총수에 따라 삼량(三樑)․오량(五樑)․칠량(七樑) 지붕틀 등으로 구분된다. 이때 중도리는 동자주 또는 고주가 직접 받게 되고 종도리(마루도리)는 대공이 받게 된다. 동자주는 쪼구미라고도 하며, 오량쪼구미, 칠량쪼구미라는 말도 있다.


5량가 가구


지붕 가구형식의 종류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①삼량(三樑, 세마루) : 단칸집에 쓰이는 제일 간단한 가구형식으로 앞뒤의 주심도리(처마도리)와 종도리만으로 구성된 것이다. 보칸의 규모가 적은 회랑 등의 간단한 건물형식에만 볼 수 있다.
②사량(四樑), 평사량(平四樑) : 한칸사이에 전후중도리가 접근되어 있을 때 종도리 없이 서까래를 수평으로 걸고 그 위에 적심재나 보토(補土)로서 용마루를 꾸민 것이다. 비각(碑閣), 대문 등의 좁은 간사이에 쓰이는 형식이다.
③무고주 오량(無高柱 五樑) : 한칸 또는 두칸의 간사이에 전후중도리를 걸어 꾸민 지붕가구로서 일반 건물에 가장 많이 쓰인다. 이 경우 간사이는 넓으나 높은 기둥이 없이 결구된 것이 특징이다.
④반오량(半五樑) : 전면지붕은 오량으로 꾸미고 후면 지붕은 삼량로 된 것으로서 주택 등의 간소한 건물에 쓰인 예가 있다.
⑤일고주 오량(一高柱 五樑) : 툇마루 또는 복도 등이 있어 중간에 기둥이 설 때 이것을 높이하여 동자주를 겸하게 하고 전후에 지붕보(들보)를 받은 고주를 쓴 오량이다.
⑥심고주 오량(心高柱 五樑) : 건물 중심에 고주를 세운 오량으로 성문(城門) 등에서 볼 수 있다.
⑦이고주 오량(二高柱 五樑) : 건물의 앞과 뒤에 대칭을 이루며 고주와 평주로 짜이고 앞뒤에 퇴칸을 둔 형식으로 양반집에서 흔히 볼 수 있다.
⑧무고주 칠량(無高柱 七樑) : 두칸 이상의 긴보를 쓰는 가구에서 전후에 상하 중도리를 각각 써서 도리의 합계가 일곱이 되는 지붕틀이다. 이 경우 넓은 간사이에 고주가 없이 동자주와 중보, 종보 등 상부구조를 이루기 때문에 상부하중을 지탱하기에는 무리가 되는 구조로 그 예가 드물다.
⑨일고주 칠량(一高柱 七樑) : 동자주를 겸하여 중간에 고주를 세운 것이고 작은 불전 등에서 뒤쪽에 복도를 둘 때에 흔히 쓰인다.
⑩심고주 칠량(心高柱 七樑) : 간사이의 중간에 고주를 세우고 전후로 지붕보(들보)를 받게 되며 위는 중종보나 종보를 받게 된다. 이 기법은 성곽의 문루처럼 측면이 두칸으로 될 때 흔히 쓰인다.
⑪이고주 칠량(二高柱 七樑) : 전후에 고주를 세우고 고주 위에는 오량으로 하고 퇴칸을 달은 형식의 지붕가구로서 중앙은 큰 간사이가 되고, 전후에 복도를 두는 등의 대청이나 큰방에 쓰인다.
⑫무고주 구량(九樑) : 3칸(18자) 내지 4칸(24자)되는 지붕가구로서 도리의 합계가 아홉이 되는 가구로서 단일재의 보로서는 최대형이고 재의 단면높이도 2자 또는 2자반이상이 되어야 한다.
⑬일고주 구량(一高柱 九樑) : 구량각 내부에 고주를 하나 세워서 보의 간사이를 작게 하고 고주 뒤는 툇마루, 복도 또는 다른 용도로 쓰일 때에 유리한 것이다.
⑭이고주 구량(二高柱 九樑) : 내부에 고주 두 개를 세운 큰 간사이의 건물에서 중앙에 대청을 두고 앞에 툇마루․ 복도, 뒤에 고방이나 부속방을 둘 때에 쓰이며 구조적이며 고주 위에는 오량이 되고 평주와의 사이는 삼량형식의 가구로 되는 것이다.

 


 

 

 

 
끝으로 님의 건강과 행복이 충만 하시기를 빌겠습니다.

2015.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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