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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축구선수 등번호 15번인 선수좀 많이알려주세요!
only**** 조회수 14,210 작성일2006.03.20

축구선수 등번호 15번인 선수좀 많이알려주세요!

 

제가알기로는

첼시 드록바선수가 15번이던데

드록바선수 국가유니폼번호도 15번인가요??

 

드록바선수정도로 유명한 선수중에서

등번호 15번좀 알려주세요!!

 

한국국가대표는 김정우가 15번인가요??

한국국가대표도 등번호 15번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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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첼시 드록바가 15번이죠~

근데 드록바는 코트디부아르에선 11번입니다~

 

한국 국대에선 김정우가 15번 달고 뛰었구요~.. 근데 독일에선 그가 15번 달지는 모르겠네요 김정우가 독일행 갈 가능성이 유력한것은 아니니까요.

 

그외의 15번 다는 선수들

 

지식in에서 검색하다가 퍼온겁니다~

 

[출처:지식in]

1.아르헨티나

클라우디오 우사인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의 오랜 신임을 받고 있는 우사인은 벨레스 사르스필드에서 미드필더로서 착실한 경력을 쌓아 왔다. 이후 그는 리버 플레이트로 이적하였고 다시 이탈리아의 나폴리로 옮긴 다음 지금은 부에노스아이레스 모뉴멘탈로 돌아왔다. 지난 시즌 그는 리버 플레이트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2.벨기에

재키 패터스

로베르 와세주 감독이 확보한 베테랑 선수 중에 하나인 33세의 페테스는 겡트팀의 수비수로서 화려한 축구 경력을 갖고 있으며, 벨기에 대표팀 수비라인의 중심축이 되고 있다. 그는 공중볼과 태클에 강할 뿐 아니라 빠른 발과 두뇌 회전까지 두루 갖추고 있어 포워드까지 연결하는 공격형 리베로의 역할을 수행한다. 1991년에서 1998년까지 레이싱 겡크에서 활약했던 페테스는 독일 아미니아 빌레펠트에서 한동안 부진을 면치 못하다가 2000년 다시 고향팀 겡트로 돌아와 지난 시즌 소속팀을 리그 4위로 이끌었다.

3.브라질

클레베르손

처음이자 유일한 소속팀 아틀레티쿠 파라낸스에서 활약하며 남미클럽선수권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미드필더 클레베르손은 올해 대표팀에 발탁되었으며 포워드의 역할까지는 기대하기 어렵지만 에메르손 페레이라를 충실히 지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4.카메룬

니콜라 알루지

카메룬의 또 한 명의 기대주 니콜라 알누지는 대표팀의 멤버로 시드니 올림픽 우승과 말리 아프리칸네이션스컵 우승의 영광을 함께 누리기도 하였다. 그는 오랫동안 대표팀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했으나 소속팀 터키의 리제스푸르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5.중국

자오 준지

자오준제의 프리킥 능력은 사상 최초의 FIFA 월드컵™을 맞이하는 중국 대표팀에게 아주 중요한 자원이다. 그는 랴오닝 소속의 미드필더로서 중국 C-리그에서 프리킥을 이용하여 많은 득점을 기록해 왔다. 대표팀에서는 후보 선수에 머물고 있지만, 중요한 순간에 교체 선수로 투입되어 팀의 활력을 불어넣는 선수이다. 바비 호튼 감독이 중국 대표팀을 이끌던 시기에 대표 선수로 발탁되었으나 이내 대표 선수 명단에서 제외되고 말았다. 밀루티노비치 감독은 최근에 그를 다시 대표팀으로 불러들였다.

6.코스타리카

아롤드 왈사레

아롤드 왈라세는 레프트 윙백으로서 과감한 전방 침투에 이은 크로스 능력이 좋은 선수로서, 무엇보다도 헤딩 능력과 강력한 태클 능력이 그의 강점이다. 그는 매우 거친 수비를 펼치며 공수 전환 속도가 매우 빠르다. 왈라스는 올시즌 그리스의 이오니키스에 입단할 예정이었으나 입단 계약 협상이 무산되며 유럽 진출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7.크로아티아

다니엘 사리치

다니엘 시리치는 크로아티아 클럽인 리예카에서 한 시즌을 보내고 스페인의 스포르팅 히욘으로 이적하였으나 두 시즌 만에 다시 국내로 복귀하였다. 그는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선수로 많은 우승 경력을 쌓아나갔다. 그가 자그레브에서 활약할 당시 팀은 1996년부터 1998년까지 3년 연속으로 시즌 2관왕을 차지하였고 1999, 2000 시즌 연속으로 리그 우승을 달성하였다. 다시 해외로 눈을 돌린 시리치는 더 많은 우승컵을 안기 위해 그리스의 명문 클럽 파나티나이코스로 이적하였으나, 아직까지 파나티나이코스에서는 우승컵을 만져보지 못했다.

8.덴마크

얀 미하엘슨

얀 미하엘슨은 아카데미스크 볼드클럽(AB)에서 5년간 활동한 이후 2001년 여름에 그리스의 명문 클럽 파나티나이코스에 입단했다. AB 소속의 선수로 뛰는 동안 1999년 덴마크컵 우승에 공헌하였고 2001년에는 준우승을 이끌었다. 유로2000에는 참가하지 못했으나 대회 직후 다시 대표팀에 복귀하였다.

9.에콰도르

마를론 아요비

데포르티보 끼또의 수비수로 경험이 풍부하며 풀백으로서의 능력이 뛰어나 항상 팀의 중추로 활약한다. 코파아메리카에 출전했었으며 골드컵에서도 대표팀으로 활약하였고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예선전에서도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다. 맨투맨 마크에 능하다.

10.잉글랜드

마틴 쿠언

마틴 쿠언은 아스날의 연습생 신분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1996년 아스톤 빌라로 이적했다가 다시 1993년 아스날의 하이버리 구장으로 복귀한 이후 노련함을 자랑하는 중앙 수비수로 활약하였다. 1994년에 파르마를 꺾고 유러피언컵위너스컵을 차지하는 기쁨을 맛보았고, 4년 뒤에는 리그 우승과 FA컵 우승 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해 또 다시 아스탈 팀과 함께 리그 컵과 FA컵 우승을 따냈다.

11.프랑스

릴리앙 튀랑

릴리앙 튀랑은 그의 견고한 수비력으로 이탈리아 세리에 A와 프랑스 대표팀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수비수이다. 또한 수비수임에도 결정적인 순간에 득점을 성공시키며 프랑스 대표팀의 성공 시대를 견인하고 있어 더욱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과델루페 출신의 튀랑은 프랑스 축구의 황금 시대를 열어놓은 선수이다. 그가 9살 되던 해, 가족과 함께 카리브 군도에서 프랑스의 파리로 건너와 정착한 이후 중소 축구 클럽을 통하여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했다. 20살의 어린 나이에 프랑스 남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AS 모나코에 입단하면서 프로 축구 선수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모나코의 뛰어난 활약은 곧 에메 자케 당시 프랑스 대표팀 감독의 눈에 띄어 청색 군단('레 블뢰')의 일원으로 발탁되었고, 1994년에 프랑스 대표 선수로 국제 경기에 첫 출전을 기록하였다.

튀랑이 주축을 이룬 프랑스 수비진은 1998 FIFA 월드컵 경기를 통틀어 단 2골만을 실점하는 안정된 수비력을 과시하였다. 그들이 실점한 두 골 중의 한 골은 4강전에서 크로아티아의 세계적인 공격수 다보르 수케르에게 당한 것이다. 후반 46분에 크로아티아에게 선제골을 내주며 1 대 0으로 끌려가는 어려운 처지에 빠진 프랑스를 구한 것은 수비수 튀랑이었다.

마치 브라질 대표팀이 구사하는 사이드 어태커의 활발한 공격 가담을 튀랑이 프랑스 대표팀에서 재현하기라도 하듯, 그는 과감하게 공을 전방으로 몰고 들어가 크로아티아 수비진을 허점을 파고 든 다음에 오른쪽 측면에서 강력한 슛을 구사, 실점을 당한 지 1분만에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그리고 22분 후 튀랑이 다시 일을 저질렀다. 거의 골 포스트와 동일한 각도에서 어렵게 슛한 볼이 크로아티아 골키퍼인 드라젠 라디치를 지나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프랑스는 튀랑의 2골에 힘입어 크로아티아를 격파하고 결승전에 진출하여 결국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였다. 놀랍게도 프랑스의 월드컵 우승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튀랑의 2골은 그가 국가 대표 선수로 데뷔한 이후 처음으로 기록한 것이었다.

그는 대회 기간동안 강력한 대인 수비와 상대의 역습을 차단하는 태클로써 프랑스의 우승을 견인하였지만, 무엇보다도 크로아티아 전에서 기록한 2골이 그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는 세리아 A의 파르마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스트라이커들을 상대하면서 많은 경험을 축적해 왔다. 1998 FIFA 월드컵에서의 맹활약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레알 마드리드, 라치오와 같은 명문 클럽들이 그를 영입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튀랑은 유벤투스를 선택하고 2001/2002시즌을 앞두고 입단했다.

파르마의 팀 동료이기도 했던 이탈리아의 간판 수비수 파비오 칸나바로는 이탈리아의 떠오르는 신예 수비수 알렉산드로 네스타와 튀랑을 다음과 같이 비교, 평가하였다. “튀랑과 네스타 모두 대단한 수비수들이다. 그러나 일단 튀랑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그는 마치 외계에서 온 수비수처럼 놀라운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튀랑은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 공동 개최된 유로 2000에서도 뛰어난 수비력으로 프랑스의 수비를 안정시켜 우승을 달성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2002 FIFA 월드컵에서 대회 2연패를 노리는 프랑스 대표팀에서 등번호 15번을 달고 있는 튀랑은 프랑스의 목표

12.독일

세바스티안 캐흘

세바스티안 케흘은 세바스티안 다이슬러와 함께 독일에서 지대한 관심을 끌고 있는 신예 수비수이다. 지난 시즌, 분데스리가의 명문 클럽인 FC 바이에른 뮌헨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는 이 유망주를 영입하기 위해 일대 혈전을 벌인 바 있다. 당시 SC 프라이부르크 소속의 선수였던 케흘은 결국 도르트문트를 선택, 2002년 1월에 도르트문트에 입단했다. 2001년 5월 29일, 슬로바키아와의 친선 경기(2 대 0)에 국가 대표 선수로 첫 출전을 기록했다. 최근 그는 도르트문트에서 뛰며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했으나, UEFA 결승전에서는 패하고 말았다.

13.아일랜드

리처드 던

리처드 던은 17살의 나이에 에버튼 소속으로 처음 데뷔하였다. 강한 수비수인 그는 1997년 라이벌인 리버풀과의 경기에 출장하면서 머세이 더비에 출장한 최연소 선수로 기록되었다. 2000년 4월 26일 그리스전(0 대 1)에서 처음 대표팀 선수로 출장하였다. 던은 아일랜드 18세 미만 대표팀의 역사적인 1998년 유럽선수권대회 우승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2000년 맨체스터 시티 팀에 합류하였다.

14.이탈리아

마르크 율리아노

마르크 율리아노는 이탈리아 하위 리그 소속 클럽인 살레르니타나, 볼로냐, 몬짜 등에서 활동한 이후, 1996년 여름에 이탈리아의 거대 클럽 유벤투스에 입단하였다. 유벤투스에서 율리아노는 특유의 안정된 수비력을 바탕으로 팀이 유럽 수퍼컵과 이탈리아 리그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는데 공헌하였다. 그는 유벤투스에서 처음 맞이했던 1996시즌의 최종 경기였던 아탈란타와의 어웨이 경기에서 자신의 시즌 첫 골을 성공시켜 1 대 1 무승부를 이끌며 유벤투스에게 리그 우승컵을 선사하였다. 1998년에는 또 한번의 리그 우승을 그의 경력에 추가하였고, 유로 2000에 참가하여 준우승을 달성하였다. 그는 최근 이탈리아 리그 타이틀을 차지했다.

15.일본

후쿠니시 다카시

수비형 미드필더로 쥬빌로 이와타 팀이 국내 리그는 물론 대륙에서도 성공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던 선수이다. 강한 태클이 일품인 후쿠니시는 세트 플레이에서 활발하게 공격에 가담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16.한국

이민성

자신이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하는 틈을 타 인상적인 경기를 펼치며 활약했던 최진철과 함께 한국 대표팀 수비 라인을 맡는다.

17.멕시코

루이스 에르난데스

에르난데스는 멕시코 대표팀 선수 중에서 35득점으로 최고의 득점을 기록하고 있다. 2000년에 그는 이전 기록 보유자인 카를로스 에르모실로(32득점)를 제쳤다. 그는 팀내 최고의 스피드를 자랑하며 일대일 상황에서도 언제든지 돌파구를 찾을 실력을 갖고 있다. 다혈질의 성격으로 꽤 알려져 있으며 지난 2년간 부상을 겪기도 하였다. 에르난데스는 멕시코가 아닌 아르헨티나와 미국으로 진출하였지만 양쪽 모두에서 큰 활약을 보이지는 못했다.

18.나이지리아

저스티스 크리스토퍼

크리스토퍼는 현재 벨기에의 로얄 안트워프 소속의 선수로 2002 FIFA 월드컵™ 에 끝난 후에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한 잉글랜드의 맨체스터 시티에 입단할 예정이다. 지난해 라이베리아와의 2002 FIFA 월드컵 아프리카 지역 예선전에서 처음으로 대표 선수로 출전하였고, 이후 말리에서 열렸던 2002 아프리카네이션스컵에 참가하였다.

19.파라과이

카를로스 보네트

카를로스 보네는 기량이 상승중인 24살의 미드필더로서 최근 런던에서 열린 나이지리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국제 무대에 데뷔한 바 있다. 한동안 솔 데 아메리카와 아르헨티나 2부 리그인 아틀레티코 라파엘라에서 뛴 바 있으며, 최근엔 파라과이의 리베르타드에서 활약하고 있다. 세사레 말디니 감독의 예상치 못한 복병이다.

20.폴란드

토마시 바우도흐

토마시 바우도흐는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 결승에서 진 폴란드 대표팀의 멤버였다. 1994년 수비수인 바우도흐는 소속팀이던 고르닉 자브르제를 떠나 독일 VfL 보슘으로 이적하였다. 그는 그 팀에서 두 번이나 승격하여 분데스리가에 진출하게 되었지만 1999년 보슘이 2부리그로 격하되면서 샬케 04로 이적하였고 2001년에 독일 컵에서 우승하였다. 그는 현재 이 팀의 주장이기도 하다.

21.포르투갈

넬손

26세의 골키퍼인 넬손은 스포팅 리스본 소속으로 2001-2002 시즌에서 3년 만에 두 번째로 포르투갈 리그 선수권대회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는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지역 예선 두 경기에 골키퍼로 출전할 예정이었으나 아쉽게도 두 경기 모두에 기용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역 예선 첫 다섯 경기에 출장했던 큄이 출장 정지를 당하자 주전 골키퍼로 발탁되었다.

22.러시아

드미트리 알레니체프

드미트리 알레니치예프는 러시아 미드필더 진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선수이다. 그는 로코모티프 모스크바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스파르타크 모스크바로 이적한 이후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97년 올해의 러시아 선수상을 수상하였다. 1994년에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에서 시즌 2관왕을 경험한 후, 1996년부터 1998년까지 러시아 리그 3연패를 달성하였다. 그의 현 소속 클럽인 FC 포르투에서는 2001년 포르투갈컵과 포르투갈 수퍼컵 우승 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상대의 수비를 일시에 무너뜨릴 수 있는 정확한 패스 능력을 보유한 플레이메이커이다.

23.사우디 아라비아

압둘라 알도사리

압둘라 알도사리는 비록 대부분의 경기에서 벤치를 지키고 있지만, 공격은 물론 미드필드도 소화할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장거리 슈팅능력이 뛰어나다. 2000년 아시아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알 히랄 소속이다.

24.세네갈

살리프 디아오

디아오는 2002 말리 아프리카네이션스컵 본선 최우수 선수로 거명 되었을 정도로 세네갈 대표팀의 간판 미드필더라고 할 수 있다. 나이지리아와의 준결승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세네갈을 대회 사상 처음으로 결승전까지 진출시켰다. 최근 몇 주 동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메이저급 클럽으로 이적할 것이라는 추측이 무성했다. 디아오는 15세에 세네갈에 있는 모나코 아카데미를 통해 프랑스로 옮겨갔지만 부상으로 인해 발전이 더디었다. 세당으로 이적한 후 성장 궤도에 올라섰다.

25.슬로베니아

라이코 타브차르

라이코 타브차르는 이번 시즌에서 분데르리가의 뉘렌베르크 팀에서 쫓겨날 뻔했다. 28세의 수비형 미드필더인 라이코 타브차르는 독일태생으로 쾰른, 운터하힝, 오그스베르크 등 독일의 여러 클럽을 거쳤다. 2000년 8월 체코와의 경기로 데뷔했다.

26.남아프리카 공화국

시부시소 주마

주마는 소속 클럽인 FC 코펜하겐을 덴마크 리그 우승으로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2001년 올해의 덴마크리그 선수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챔피언스리그와 UEFA컵에 출전하여 양 대회에서 모두 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대표팀에서 라이트 윙을 담당하는 주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새로운 축구 스타로서, 2002 아프리카네이션스컵 직후 발표된 대회 베스트 11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2002 FIFA 월드컵™ 아프리카 지역 예선전에 참가하여 골을 기록하였다.

27.스페인

엔리케 로메로

엔리케 로메로는 최근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제외된 바르셀로나의 세르히를 대신하여 레프트 윙백을 담당하는 선수이다. 냉정한 자세로 경기에 임하는 그는 제공 장악 능력과 스피드가 뛰어나고 문전에서의 볼 처리 또한 탁월하다. 그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와 유럽 챔피언스리그의 많은 경기에 출전해 왔다. 데포르티보에서 헥토르 쿠페르, 루이스 아라고네스, 하비에르 이루레타 감독 등을 섬기며 줄곧 주전 선수로 뛰어왔지만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아본 적은 없는 선수이기도 하다. 그는 공격형 미드필더임에도 수비력이 매우 뛰어나다. 이는 팀 동료인 마리우 실바로부터 수비에 관한 기술을 전수 받았기 때문이다. 원래 스워퍼 출신으로서, 1997-98 시즌 리그 전 경기를 출전하면서도 단 한 차례의 경고를 받지 않은 기록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지능적인 플레이를 구사하는 선수이다.

28.스웨덴

안드레아스 자콥슨

안드레아스 자콥슨은 2000/2001 시즌 전에 헬싱보리스에서 분데스리가의 한자로스토크로 이적했다. 그 후 그는 해당 클럽의 고정 멤버가 됐고 강력함과 놀라운 발재간으로 스웨덴 국가 대표팀에서도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29세 때 토미 소저버그와 라스 라저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공동 코치 자리를 제의 받았다. 그리고 그가 비록 국가 대표로서는 아직 한 골도 기록하지 못했지만 놀라운 헤딩 기술과 골 결정력으로 위협적인 코너킥을 구사할 수 있다.

29.튀니지

라디 자이디

자이디는 아프리카 축구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선수로 상대를 압도하는 능력을 가진 센터 백이다. 그는 에스페란스 팀의 선수로 활약하면서 수많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여 기량을 입증 받았다. 1994년 아프리칸챔피언스컵 우승, 1998년 아프리칸컵위너스컵 우승, 1997년 아프리카 축구 협회 컵 우승, 1995년 아프리칸수퍼컵 우승, 같은 해 아프리칸 아시안클럽챔피언쉽 우승, 1994년 아랍챔피언스컵 우승, 그리고 1996년 아랍수퍼컵 우승 등이 그것이다. 대표팀에서 그는 짧은 기간 동안 50경기라는 A 매치 출전 경력을 쌓았다.

30. 터키

니아트 카베시

22세의 포워드 카베지 니아트는 터키 리그의 베시크타스에서 이름을 떨친 뒤 스페인 레알 소시에다드 진출에 성공하였다. 그는 스트라이커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할 뿐 아니라 뒤로 물러나 공격형 미드필더로서도 활약할 수 있는 창의적인 선수로 평가된다.

31.우루과이

니콜라스 올리베라

안드레스 올리베라는 우루과이가 준우승한 1997년 FIFA 세계 청소년 선수권대회에서 최고의 선수로 뽑혔다. 스트라이커인 그는 데펜소르 스포르팅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하였다가 1997년 발렌시아 CF로 이적하였다. 하지만, 1998년부터 지금까지 세비야 FC에서 활약 중이다.

32.미국

조시 울프

조시 울프는 또 한명의 떠오르는 유망주로서 미래 미국 대표팀의 주축을 담당할 선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대담한 신예 스트라이커가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북중미 예선전에서 기록한 2골은 모두 팀의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결승골이었다. 울프는 빠른 스피드가 강점이며 골 결정력 또한 수준급을 자랑한다. 울프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했고, 프로젝트-40의 대상 선수중의 한 명으로 메이저리그 사커 무대에 데뷔하였다. 조지아주의 애틀란타 출신의 울프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는 클린트 매시스의 동료였다. 울프와 매시스는 사우스 캐롤라이나 대학에서 함께 선수 생활을 한 이후, 다시 대표팀에서 만나게 되었다. 남부 출신의 이 두 신예는 지금 미국 대표팀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월드컵은 끝.. 그럼 그냥 클럽의 15번 선수도 올립니다..

유명 클럽 것좀 찾아 볼라구 했는데.. 15번 선수가 없는 팀이 상당히 많네요..

위에꺼는 그냥 15번선수는 다한겁니다..

AC밀란

욘달 토마슨-선수 소개는 2002년 전에 껍니다..

욘 달 토마손이 대표팀에 복귀한 이후 덴마크의 공격력은 한층 배가되었다. 토마손은 네덜란드 프로 축구 리그인 에레디비지에서 꾸준한 득점력을 자랑하는 정상급 스트라이커로서 대표팀에서도 많은 골을 기록해왔다. 2002 FIFA 월드컵™에서도 많은 득점과 함께 조국 덴마크의 선전을 주도하는 활약이 기대되는 선수이다.

토마손은 1994년 네덜란드 클럽인 SC 히렌빈의 정식 선수로 등록, 축구 선수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다음 시즌에 그는 히렌빈의 주전 스트라이커로서 30경기에 출전, 14골을 기록하였다. 1996/1997 시즌에 토마손은 자신의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인 18골을 성공시키는 활약을 바탕으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하였다.

1997년, 청운의 꿈을 안고 뉴캐슬 유나이티드에 입단했으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덴마크에서 건너온 신인에게 호락호락한 무대가 아니었다. 그는 프리미어리그에서 한 시즌 동안 단 3골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을 거두고 말았다. 프리미어리그에서의 실망스러운 선수 생활을 접고 다시 네덜란드에 복귀를 시도, 1998/1999 시즌을 앞두고 페예노르트에 입단하였다. 네덜란드 리그에서 그는 재기에 성공하며 페예노르트를 대표하는 선수가 되었다.

토마손은 대표 선수로 발탁된 후 한동안 뉴캐슬에서의 상황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그는 최전방 타켓맨의 역할을 담당하기에 충분한 182 센티미터에 달하는 큰 신장을 가졌지만 대표팀의 주전 경쟁에서 열세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2000 유럽선수권대회 예선전은 그에게 그간의 곤란한 상황을 일시에 떨쳐버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그는 전통의 강호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뽑아냈고 이스라엘과의 플레이오프전에서 3골을 기록하는 등, 예선 마지막 5경기에서 6골을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친 것이다.

소속 클럽인 페예노르트의 유럽 클럽 대항전에서도 발군의 기량을 과시하며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1999년에는 이탈리아의 강호 라치오를 상대로 2골을 성공시키는 활약으로 팀을 UEFA컵 결승전까지 견인하였다.

토마손은 페예노르트에서 뛰는 동안 매 시즌 꾸준히 10골 이상씩을 기록해왔다. 그에게 페예노르트는 궁합이 매우 잘 맞는 클럽인 셈이다. 올 시즌 초반에도 4경기 연속골을 기록하며 팀의 4연승을 주도하였다.

올 여름 아시아에서 열리는 세계 최고의 축구 대회는 토마손에게 있어 뉴캐슬에서의 실패 이후 따라다니는 그의 능력에 대한 사람들의 의구심을 확실히 불식시키는 동시에 덴마크의 새로운 축구 스타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의 장인 것이다.

2006.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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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
중수
대학 입시, 진학, 휴대전화, 사람과 그룹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http://blog.daum.net/fcgbdrhmth/5413675

여기에 많이나오네요

글복사가 안되서 주소 링크시켰어요

2006.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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