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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고대 이집트 최전성기인 신왕국 람세스2세 때의 영역은???
hspa**** 조회수 6,681 작성일2008.01.07
고대 이집트에 관한 책을 읽다가 신왕국 람세스 2세 때의 영역이 궁금해졌습니다. 고대 이집트를 나타낸 지도 와설명 주시면 감사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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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신

http://blog.daum.net/wjrwnr/1948396

위 사이트에 왕조별 이집트영토관련 내용이 있더군여.

 

 

출처 : http://search.empas.com/search/img.html?fv=V&q=%B0%ED%B4%EB%C0%CC%C1%FD%C6%AE%C1%F6%B5%B5&qn=&m=D&wi=55&n=0&cw=2

 

 

 

 

 

람세스 2세 [― 二世, Ramses Ⅱ]

이집트 역사상 2번째로 오랫동안 왕위에 있었다. 히타이트족·리비아족과의 전쟁 이외에도 방대한 건설사업과 이집트 여러 곳에 거대한 자신의 조상(彫像)을 많이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집권 배경과 집권 초기

종교개혁을 실시한 아크나톤(아멘호테프 4세, BC 1353~1336)의 재위가 끝나고 몇십 년이 지난 뒤, 원래 왕족은 아니었지만 권력을 잡은 람세스 집안은 아크나톤과 그의 계승자 투탕카멘 때 약해진 아시아 지역에서의 이집트 세력을 회복하는 일에 착수했다. 람세스의 아버지 세티 1세는 팔레스타인과 남부 시리아에서 반란을 일으킨 제후들을 진압했고, 그무렵 이집트에서 일어난 정치적 혼란으로 히타이트에게 넘어간 북쪽 지방들을 되찾기 위해 아나톨리아의 히타이트족과 싸움을 벌였다. 히타이트족과의 전투에서 세티 1세는 처음에는 약간의 승리를 거두었으나 이 승리는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다. 그의 집권 말기에 히타이트족은 오론테스 강 유역에서 강의 보호를 받는 튼튼한 요새 카데시에 확고하게 자리잡고 이곳을 그들의 남쪽 국경의 중심지로 삼았다.

재위 동안 세티는 후에 람세스 2세가 된 왕세자 람세스에게 섭정할 수 있는 특별한 지위를 부여했으며 왕의 것에 비할 수 있는 궁전과 궁녀들을 마련해주었고, 전투 때마다 데리고 다녔기 때문에 단독 통치자가 되었을 때 람세스는 이미 왕으로서의 통치 경험과 전쟁 경험을 갖추고 있었다. 세티가 왕위 계승을 확실히 하기 위해 람세스를 유례없이 어린 나이에 후계자로 지명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불과 10세 때 그는 군대 지휘관이 되었는데 상당한 군사 훈련을 받았다고는 해도 그 나이의 지휘관 직위는 분명 명예직이었을 것이다.

람세스 가문의 고향이 나일강 삼각주에 있었고 아시아 원정을 위한 편리한 기지가 필요했기 때문에 람세스는 '피람세스'(람세스의 집, 성서에는 Raamses)라 부르는 대규모 주거도시를 지었다. 이 도시는 정원, 과수원, 멋진 폭포 등이 있는 아름다운 설계로 유명하다. 사방에는 각각 주신(主神)이 있었는데 서쪽에는 아몬 신, 남쪽에는 세스 신, 북쪽에는 왕실 코브라 여신 부토, 특히 동쪽에는 시리아의 여신 아스타르테가 있었다. 당시 이집트에서는 아시아 신들이 유행했으며 람세스도 분명히 이 유행을 따랐다(→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의 종교).

단독 지배자가 된 뒤 그가 취한 첫번째 공적(公的) 행동은, 카르나크의 아몬 신이 장식배를 타고 룩소르 신전을 방문하는 행사인 오페트의 종교 대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남쪽에 있는 수도 테베를 찾은 것이었다. 그는 북쪽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가 추진하다 죽은 뒤에 중단된 대신전 건설 사업을 재개하고, 오리스 신을 경배하기 위해 아비도스에 들렀다. 또한 시니스 근처 안후르의 최고 사제 네브웨네네프를 테베의 새로운 아몬 신 최고 사제로 임명하기도 했다.

군사적 업적

국민들의 눈에 람세스 2세가 위대한 왕으로 보일 수 있었던 것은 방대한 건설 사업을 하고 유명한 주거도시를 건설한 업적 이외에, 주로 군인으로서의 명성 때문인 것 같다. 왕이 된 지 4년째 되던 해에 그는 아버지가 영영 되찾지 못했던 잃어버린 지방들을 회복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북쪽으로 갔다. 첫번째 원정은 시리아 남부의 반역적인 지방 군주들을 진압하고 앞으로의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베이루트 근처의 알칼브 강에서 멈추었으며 비석을 세우고 이 전쟁의 여러 사건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러나 지금은 비문이 모두 비바람에 씻겨 단지 그의 이름과 날짜만 남아 있다.

그 다음해부터 본격적인 원정이 시작되었다. 목표는 카데시에 있는 히타이트족 요새였다. 군대는 해안길을 따라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을 지나 트리폴리 근처쯤 되는 아모르 땅 남쪽에 도착하여 멈추었다. 이곳에서 그는 특별 기동부대를 파견해 시미라 항구를 확보한 다음 엘케비르 강 유역을 따라가 카데시에서 주력부대와 합류하도록 했다. 오론테스 강쪽으로 계속 진군한 주력부대는 각기 5,000여 명의 전차부대와 보병부대로 이루어진 4개 사단으로 되어 있었다. 군대는 카데시에서 약 13㎞ 정도 떨어진 샤브투나 강 동쪽에서 서쪽으로 강을 건넌 뒤 숲을 지나 카데시 바로 앞 평원에 도착했다(→ 카데시 전투). 람세스는 붙잡힌 히타이트족 간첩 2명에게서 히타이트의 주력부대가 북쪽으로 좀 떨어진 알레포에 있다는 거짓 정보를 듣고 카데시에 있는 주둔군만 처치하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군대가 카데시의 야영장에 도착해서야 람세스는 비로소 히타이트의 주력부대가 도시 뒤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람세스는 바로 사람을 보내 나머지 부대를 서둘러 오게 했으나 더이상의 조치를 취하기도 전에 히타이트군이 공격해왔다. 이집트군이 2명씩 전차에 탄 데 비해 그들은 3명씩 탄 2,500대의 전차부대로 공격해왔다. 기습을 당한 이집트 선두부대는 무질서하게 흩어져 도망갔고 람세스와 그가 직접 이끄는 소규모 전차부대는 적군에 완전히 포위당한 채 필사적으로 싸웠다.

다행히도 전투 막바지에 시미라 기동부대가 나타나 주력부대와 합류했기 때문에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전투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전술상으로는 이집트가 승리했지만 전략적으로는 카데시를 함락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집트의 패배였다. 다음 날 양쪽 군은 모두 전투를 계속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휴전을 맺었고 이집트군은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 전투는 파라오 시대부터 자세한 내용이 전해지는 몇 안 되는 전투 가운데 하나로서, 커다란 역경을 이겨냈다는 람세스 왕의 자부심 덕분에 기록으로 남을 수 있었다. 그는 이집트와 누비아의 사원 벽에 공식 기록과 장시(長詩)의 형태로 이 전쟁에 관해 설명하고 그림을 그려넣었는데 그 장시는 파피루스에도 남아 있다.

카데시 함락 실패는 대외적인 이집트의 지위에 타격을 주어, 남 시리아와 북부 팔레스타인의 몇몇 속국들은 반란을 일으켰다. 따라서 람세스는 히타이트에 다시 도전하기 전에 이집트의 아시아 영토 북쪽 변경지역을 강화해야 했다. 재위 8년이나 9년째에 갈릴리와 아모르의 여러 도시를 함락하고 그다음 해에는 다시 알칼브 강으로 갔다. 히타이트의 수비를 뚫고 카트나와 투니프을 정복한 것은 재위 10년째 되던 해인 것 같다. 당시 람세스는 히타이트의 기습을 받아 아무런 장비도 없이 전투에 나가야 했으나 결국 승리를 거두고 그곳을 오랫동안 지배했으며 대군주로서 투니프에 자기의 조상(彫像)을 세웠다. 여기서 더 나아가 알렉산드레타와 카르체미시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코데를 공격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람세스는 근거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계속 히타이트의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그 지역을 오래 차지하고 있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으며, 결국 16년 동안 히타이트족과 간간이 충돌하다가 BC 1258년에 동등한 자격으로 상호 평화협정을 맺었다.

일단 전쟁이 끝나자 양국은 우호관계를 맺고 정규적으로 외교 서신을 교환했다. BC 1245년 람세스는 히타이트 왕의 맏딸과 결혼했고 나중에는 둘째 공주와도 결혼한 것 같다. 히타이트족과의 싸움 이외에도 에돔, 모아브, 네게브를 정벌하기 위해 원정을 했으며 나일강 삼각주를 계속 침입하여 거기에 정착하려던 리비아인들과 큰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리비아인들과의 전쟁에는 람세스가 직접 나섰지만 작은 전투에는 그렇지 않은 듯하고 그의 치세 후반기에는 대체로 전쟁이 없었던 것 같다.

재위 동안의 번영

이집트에서는 왕의 재위기간에 지어진 신전의 수가 당시의 번영을 재는 하나의 척도로 쓰이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람세스 2세의 재위는 그 기간이 상당히 길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집트 역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시기이다. 19세기 이집트 학자들이 그를 '대왕'(大王)이라고 부른 것은 신전에 묘사되어 있는 대로 전쟁에서 보인 용맹성과 함께 재위 동안의 번영 때문이며, 그의 백성들이나 후손들도 그를 대왕으로 여겼다. 그들에게 람세스는 특히 훌륭한 군주였다. 제20왕조의 왕은 9명이나 그의 이름을 땄고 그의 후손이라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영광이었으며 백성들은 그를 '세세'(Sese)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이집트에서 람세스는 카르나크(테베)의 다주식(多柱式) 대집회장을 완성했고 세티 1세가 짓던 아비도스의 신전 건립을 계속했다. 이것은 둘 다 세티 1세의 죽음으로 작업을 중단했던 것이었다. 나일 강 서쪽의 룩소르(테베)에 아버지를 기리는 신전을 완공하고, 오늘날 라메세움(Ramesseum)으로 알려진 자신의 신전을 만들었다. 또한 아비도스의 아버지 신전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자신의 신전을 지었으며 수도에는 큰 신전 4개와 작은 신전 여러 개를 세웠다. 누비아(수단의 나일 강 유역)에는 최소한 6개의 신전을 지었는데 그중 왕의 조상이 4개 새겨져 있는 아부 심벨 절벽의 사원 2개가 가장 뛰어난 장관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2개의 신전 가운데 큰 것은 세티 1세 때 시작되었으나 주로 람세스 때 사업이 이루어졌으며 다른 하나는 완전히 람세스에 의해 지어졌다. 이집트로 들어가는 동쪽 어귀의 하나인 와디투밀라트에 페르아툼(성서에서는 비돔)이라는 도시를 세웠는데 성서는 이 도시를 곡식을 저장하는 도시(출애 1:11)로 적었으나 아마도 요새화한 변경도시이며 세관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중요 유적 가운데 람세스의 이름이 붙어 있지 않은 유적은 거의 없는데 그가 자신의 작품에는 물론이고 왕들의 기념비에도 서슴지 않고 자기 이름을 새겨넣었기 때문이다. 피람세스와 페르아툼을 세운 것 외에도 누비아 금광으로 가는 길에 있는 동부 사막에 우물을 판 일은 그의 두드러진 업적 가운데 하나이다.

람세스의 사생활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가 가장 좋아한 왕비는 첫번째 왕비인 네페르타리인 듯하다. 아부심벨에 지은 자그마한 신전을 사랑의 여신과 왕비에게 바쳤다는 사실은 왕비에 대한 그의 사랑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보여준다. 그녀는 람세스 재위초에 죽은 것 같으며 테베의 '왕비들의 무덤 계곡'에 있는 그녀의 훌륭한 묘는 유명하다. 이름이 남아 있는 또다른 왕비로는 이시노프레, 메리타문, 히타이트 공주 마트네프루레가 있다. 이시노프레는 람세스를 계승한 메르넵타를 비롯해 4명의 아들을 낳았다. 공식적인 왕비들 이외에도 관습에 따라 그는 많은 궁녀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100명이 넘는 자녀들로 이루어진 대가족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오늘날 토리노 박물관에 있는 젊은 시절의 조상은 그의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으며 카이로의 웅장한 무덤에 보관되어 있는 그의 미라는 높은 코와 큰 턱에 길고 좁다란 얼굴을 한 노인의 모습이다.

그의 재위기간은 이집트 제국의 마지막 절정기를 이룬다. 그가 죽은 뒤 이집트는 수세에 몰렸지만 제20왕조 후기까지는 팔레스타인과 그 주위 영토를 지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람세스 3세 이후 왕권이 약화되고 내정이 부패하여 이집트는 더이상 외부 영토를 지킬 수 없었다. 람세스 2세는 카데시에서 크게 패하기는 했지만 나중에 히타이트 영토 깊숙이 침투한 것으로 보아 분명히 훌륭한 군인이었다. 또한 재위 당시 국가의 번영을 이룬 유능한 행정가였으며 백성들에게 평판이 좋은 왕이었다. 그러나 명성 중 일부는 알리기 좋아하는 그의 성격 때문으로 돌려야 할 것이다. 그의 이름과 전쟁터에서의 공적에 대한 기록은 이집트와 누비아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당시 백성들과 그 후손들에게 람세스가 왕의 전형으로 보였던 이유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출처 : http://100.empas.com/dicsearch/pentry.html?s=B&i=130452

 

 

 

 

<이집트왕조계보>

선왕조(先王朝) 시대(Predynastic Period) BC 3300 ~ 3150
상(上)이집트 - 수도 : 티스

하(下)이집트 - 수도 : 멤피스(Memphis)

 

초기 왕조 시대(Early Dynastic Period) BC 3150 ~ 2690(제1 ~ 2왕조)

<제1왕조> - 수도 : 티스 → 멤피스

1. 메네스(Menes) = 나르메르(Narmer)(?) 3100 ~ 3050 - 상·하 이집트 최초 통일

2. 아하(Aha) = 메네스(?) 3050

3. 제르(Djer) - 재위 57년

메르네이트(Merneith) - 제트 섭정, 아하의 왕비

4. 제트(Djet) - '동방의 뱀'으로 불림

5. 덴(Den) - 재위 14 or 20년

6. 안지브(Anjib) - 재위 26년

7. 세메르케트(Semerkhet) - 재위 9 or 18년

8. 카아(Kaa) 2916? ~ 2890 

<제2왕조>

1. 헤텝세케무이(Hetepsekhemuy) - 재위 38년

2. 라네브(Raneb)[네브라(Nebra)] - 재위 39년

3. 니네테르(Nyneter) - 재위 23년

4. 웨네그(Weneg) - 재위 8년

5. 세네즈(Senej) - 재위 20년

6. 카이레스(Kaires) = 페립센(Peribsen)

7. 네페르케레스(Nepherkheres)

8. 세소크리스(Sesokhris) = 세케미브-페렌마아트(Sekhemib-Perenmaat)

9. 카세케무이(Khasekhemuy) - 재위 30년 

 

고왕국(古王國) 시대(Old Kingdom Period) BC 2686 ~ 2181(제3 ~ 6왕조)

<제3왕조> 2686 ~ 2613
1. 네브카(Nebka) = 사나크테(Sanakhte) 2686 ~ 2668
2. 조세르(Joser) 2668 ~ 2649
3. 세켐케트(Sekhemkhet) 2649 ~ 2643
4. 카아바(Khaaba) 2643 ~ 2637
5. 후니(Huni) 2637 ~ 2613 

<제4왕조> 2613 ~ 2498
1. 스네푸르(Snefur) 2613 ~ 2589
2. 쿠푸(Khufu)[그리스명 : 케옵스(Cheops)] 2589 ~ 2566
3. 제데프라(Jedefra)[라제데프(Rajedef)] 2566 ~ 2558
4. 카프라(Khafra)[그리스명 : 케프렌(Chephren)] 2558 ~ 2532

?. 비케리스(Bikheris)
5. 멘카우라(Menkaura)[그리스명 : 미케리누스(Mycerinus)] 2532 ~ 2503
6. 셉세스카프(Shepseskaf) 2503 ~ 2498

?. 탐프티스(Thampthis) 

<제5왕조> 2498 ~ 2345
1. 우세르카프(Userkaf) 2498 ~ 2491
2. 사후라(Sahura) 2487 ~ 2477
3. 네페리르카라 카카이(Neferirkara Kakai) 2477 ~ 2467
4. 셉세스카라 이시(Shepseskara Isi) 2467 ~ 2460

5. 네페르프라(Neferfra) 2460 ~ 2453
6. 나우세라 이니(Nauserra Ini) 2453 ~ 2422
7. 멘카우호르 카이우(Menkauhor Kaiu) 2422 ~ 2414
8. 제드카라 이세시(Jedkara Isesi) 2414 ~ 2375
9. 우나스(Unas) 2375 ~ 2345 

<제6왕조> 2345 ~ 2181
1. 테티(Teti) 2345 ~ 2333

2. 우세르카라(Userkara) 2333 ~ 2332
3. 페피 1세 메리라(Pepi I Meryra) 2332 ~ 2283
4. 메렌라 넴티엠사프 1세(Merenra Nemtyemsaf I) 2283 ~ 2278
5. 페피 2세 네페르카라(Pepi II Neferkara) 2278 ~ 2184 - 94년 장기 집권. 너무 오래 사는 바람에 자식들이 모두 죽어 버려서 왕위를 계승할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6. 메렌라 넴티엠사프 2세(Merenra Nemtyemsaf II) 2184
7. 니티크레트(Nitikret)[그리스명 : 니토크리스(Nitocris)] 여왕 2184 ~ 2181 - 세계 최초의 여왕

 

제1중간기(First Intermediate Period) BC 2180 ~ 2040(제7 ~ 11왕조 전반)

<제7왕조> - 수도 : 멤피스

파라오의 숫자,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고 연대도 알 수 없다. 

<제8왕조> - 수도 : 멤피스
약 25명의 파라오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계승 순서와 연대는 불확실하다. 

<제 9왕조>,

<제 10왕조> - 수도 : 헤라클레오폴리스(Herakleopolis)
약 18명의 파라오가 있었지만 역시 계승 순서와 연대가 확실치 않다.
언급할 수 있는 건 케티 왕(2160년 경)과 메리카라 왕(2070년 경)뿐이다. 

<제11왕조> - 수도 : 테베(Thebes, 현재의 룩소르)
1. 멘투호테프 1세(Mentuhotep I) 2133 ~ ?
2. 안테프 1세(Antef I)
3. 안테프 2세(Antef II) 2188 ~ 2069
4. 안테프 3세(Antef III) 2069 ~ 2060

 

중왕국(中王國) 시대(Middle Kingdom Period) BC 2060 ~ 1785(제11왕조 후반 ~ 제12왕조)
<제11왕조(계속)>
5. 멘투호테프 2세(Mentuhotep II) 2060 ~ 2010 - 이집트 재통일
6. 멘투호테프 3세(Mentuhotep III) 2009 ~ 1997
7. 멘투호테프 4세(Mentuhotep IV) 1997 ~ 1991 

<제12왕조> 1991 ~ 1785 - 수도 : 잇타위(It-tawi, '두 지역의 정복자'라는 뜻)
1. 아메넴하트 1세(Amenemhat I) 1991 ~ 1962
2. 세누세레트 1세(Senuseret I)[그리스명 : 세소스트리스(Sesostris)] 1962 ~ 1928
3. 아메넴하트 2세(Amenemhat II) 1928 ~ 1895
4. 세누세레트 2세(Senuseret II) 1895 ~ 1878
5. 세누세레트 3세(Senuseret III) 1878 ~ 1842
6. 아메넴하트 3세(Amenemhat III) 1842 ~ 1797
7. 아메넴하트 4세(Amenemhat IV) 1797 ~ 1790
8. 세베크네페루(Sebekneferu) 1790 ~ 1785 

 

제2중간기(Second Intermediate Period) BC 1785 ~ 1570(제13 ~ 17왕조)

<제13왕조>

제13왕조에는 파라오가 60명이 넘었다.

1. 웨가프(Wegaf)

2. 세베크호테프 3세(Sebekhotep III)

3. 네페르호테프 1세(Neferhotep I) 1696 ~ 1686

4. 호르(Hor)[아우티브레(Aut-ib-Rê)]

5. 켄제르(Khenjer) 

<제14왕조> - 지배 지역 북부 델타(삼각주) 지대로 한정됨

제 14왕조에는 파라오가 70명 이상이었고, 그 중 몇몇 이름은 허구인 듯하다.

 

힉소스(Hyksos)의 지배 BC 1680 ~ 1570(제15 ~ 16왕조)

<제15왕조> - 이민족 왕조, 수도 : 아바리스(Avaris)

1. 살리티스(Salitis)

2. 캰(Khyan) 1600

3. 아페피 1세(Apepi I) 1555

4. 카무디( Khamudi) 

<제16왕조> - 이민족 왕조, 수도 : 아바리스

1. 아나테르(Anat-her)

2. 우세르아나트(User-anat)

3. 셈켄(Semken)

4. 자케트(Zaket)

5. 와사(Wasa)

6. 카르(Kar)

7. 페피 3세(Pepi III)

8. 베반크(Bebankh)

9. 네브마아트라(Nebmaatra)

10. 니카라 2세(Nikara II)

11. 아호테프라(Aahotepra)

12. 누반크라(Nubankhra)

13. 누부세라(Nubuserra)

14. 카우세라(Khauserra)

15. 카무라(Khamura)

?. 아포피스(마지막 왕) 

<제17왕조> - 수도 : 테베

1. 세케넨라 1세(Se kenenra I)

2. 세케넨라 2세(Sekenenra II)

3. 카메스(Kames)[카모세(Kamose)] 

 

신왕국(新王國) 시대(New Kingdom Period) BC 1550 ~ 1073(제18 ~ 20왕조)

<제18왕조> 1550 ~ 1292
1. 아하메스(Ahames)[아마시스 또는 아모시스, 아모세라고도 함] 1550 ~ 1525 - 카메스의 동생
2. 아멘호테프 1세(Amenhotep I)[그리스명  아메노피스] 1525 ~ 1504
3. 투트모세 1세(Thutmose I) 1504 ~ 1492
4. 투트모세 2세(Thutmose II) 1492 ~ 1479
하트셉수트(Hatshepsut) 여왕 1479 ~ 1457 - 투트모세 3세 섭정
5. 투트모세 3세(Thutmose III) 1479 ~ 1425 - '이집트의 나폴레옹'
6. 아멘호테프 2세(Amenhotep II) 1425 ~ 1399
7. 투트모세 4세(Thutmose IV) 1399 ~ 1389
8. 아멘호테프 3세(Amenhotep III) 1389 ~ 1351
9. 아케나톤(Akhenaton)[아멘호테프 4세(Amenhotep IV)] 1351 ~ 1334
세멘크카라(Semenkhkara) 1336 ~ 1334 - 아케나톤과 공동 통치
10. 투탕카멘(Tutankhamen) 1334 ~ 1325
11. 아이(Ay) 1325 ~ 1321 - 사제 출신
12. 호렘헤브(Horemheb) 1321 ~ 1292 - 장군 출신 

<제19왕조> 1292 ~ 1185
1. 람세스 1세(Ramses I)[라메세스(Ramesses), 라메수(Ramesu)] 1292 ~ 1290
2. 세티 1세(Seti I) 1290 ~ 1279
3. 람세스 2세(Ramses II) 1279 ~ 1213 - 재위 67년
4. 메렌프타(Merenptah)[메르넵타(Merneptah)] 1213 ~ 1203
5. 아멘모세(Amenmosse) 1203 ~ 1199
6. 세티 2세(Seti II) 1199 ~ 1193
7. 시프타(Siptah) 1193 ~ 1187
8. 타우세레트(Tauseret) 1187 ~ 1185 

<제20왕조> 1186 ~ 1069 - 일명 '람세스 왕조'
1. 세트나크트(Setnakht) 1186 ~ 1183
2. 람세스 3세(Ramses III) 1183 ~ 1152
3. 람세스 4세(Ramses IV) 1152 ~ 1146
4. 람세스 5세(Ramses V) 1146 ~ 1142
5. 람세스 6세(Ramses VI) 1142 ~ 1134
6. 람세스 7세(Ramses VII) 1134 ~ 1129
7. 람세스 8세(Ramses VIII) 1129 ~ 1125
8. 람세스 9세(Ramses IX) 1125 ~ 1107
9. 람세스 10세(Ramses X) 1107 ~ 1098
10. 람세스 11세(Ramses XI) 1098 ~ 1069

 

제3중간기(Third Intermediate Period) BC 1069 ~ 667(제21 ~ 25왕조)

<제21왕조> 1069 ~ 945 - 수도 : 타니스(Tanis), 리비아나 팔레스티나 출신 왕조라는 설이 있음

1. 스멘데스(Smendes) 1069 ~ 1043

2. 아메넴니수(Amenemnisu) 1043 ~ 1039

3. 프수센네스 1세(Psusennes I) 1039 ~ 991

4. 아메네모페트(Amenemopet) 993 ~ 984

5. 오소코르(Osochor) 984 ~ 978

6. 시아멘(Siamen) 978 ~ 959

7. 프수센네스 2세(Psusennes II) 959 ~ 945 - 딸을 솔로몬 왕과 결혼시킴 

<제22왕조> 945 ~ 720 - 수도 : 부바스티스, 리비아 출신 왕조

1. 세숀크 1세(Sheshonk I) 945 ~ 922 - 구약성서의 '시삭(Shishak)' > 뷴열된 이스라엘왕국침공하여 보물들을 가져 감.

2. 오소르콘 1세(Osorkon I) 922 ~ 887

3. 세숀크 2세(Sheshonk II) 887 ~ 885

4. 타켈레트 1세(Takelet I) 885 ~ 872

5. 오소르콘 2세(Osorkon II) 872 ~ 837

6. 세숀크 3세(Sheshonk III) 837 ~ 798

7. 세숀크 4세(Sheshonk IV) 798 ~ 785

8. 파미(Pami) 785 ~ 778

9. 세숀크 5세(Sheshonk V) 778 ~ 740

10. 오소르콘 4세(Osorkon IV) 740 ~ 720 

<제23왕조> - 수도 : 테베, 제22왕조와 병존

1. 타켈레트 2세(Takelet II) 840 ~ 815
2. 오소르콘 3세(Osorkon III)

3. 타켈레트 3세(Takelet III)

4. 루다멘(Rudamen) 

<제24왕조>727 ~ 715 - 하이집트 통일

1. 테프나크트(Tefnakht) 727 ~ 720

2. 바켄레네프(Bakenrenef)[보코리스(Bocchoris)] 720 ~ 715 - 샤바카에게 살해당함
<제25왕조> 751 ~ 656 - 누비아 왕조

1. 피예(Piye)[피안키(Piankhi)] 751? ~ 721

2. 샤바카(Shabaka) 721 ~ 707/706 - 이집트 재통일

3. 셰빗쿠(Shebitku) 707/706 ~ 690

4. 타하르카(Taharqa) 690 ~ 664

5. 탄타마니(Tantamani) 664 ~ 656(653년에 죽음)
→나파타(Napata) 왕국(BC 656 ~ 590)과 메로에(Meroë) 왕국(BC 590 ~ AD 4세기)으로 존속

아시리아(Assyria) 점령기 BC 667 ~ 664

아슈르바니팔(Ashurbanipal)[그리스명 사르다나 팔로스(Sardana pallos)] 669 ~ 626

 

후기 왕조 시대(Late Period) BC 664 ~ 332(제26왕조 ~ 알렉산드로스의 정복)
<제26왕조> 664 ~ 525 - 수도 : 사이스, 일명 '사이스 왕조(Saite dynasty)' 
네코 1세(Necho I) 672 ~ 664 - 아슈르바니팔 왕의 아들
1. 프사메티코스 1세(Psammetichus I) 664 ~ 610
2. 네코 2세(Necho II) 610 ~ 595 - 구약성서의 '느고(Neco)'
3. 프사메티코스 2세(Psammetichus II) 595 ~ 589
4. 아프리에스(Apries) 589 ~ 570
5. 아마시스 2세(Amasis II) 570 ~ 526
6. 프사메티코스 3세(Psammetichus III) 526 ~ 525

<제27왕조(제1차 페르시아 점령기)> = 아케메네스(Achemenes) 왕조 525 ~ 404

1. 캄비세스 2세(Cambyses II) 530 ~ 521

2. 다리우스 1세(Darius I)[페르시아명 다리야바우시] 521 ~ 486

3. 크세르크세스 1세(Xerxes I) 486 ~ 465

4.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Artaxerxes I) 464 ~ 424 - 별명 '롱기마누스(긴 팔)'[오른팔이 왼팔보다 길어서]

5. 크세르크세스 2세(Xerxes II) 424 ~ 423

6. 소그디아누스(Sogdianus) 424 ~ 423

7. 다리우스 2세(Darius II) 424 ~ 404

<제28왕조>404 ~ 398

1. 아미르타이오스(Amyrtaeus) 404 ~ 398 - 제26왕조의 후예

<제29왕조> 398 ~ 380
1. 네페리테스 1세(Neferithes I) 398 ~ 393
2. 프사무테스(Psammuthes) 393

3. 하코르(Hakor)[아코리스(Achoris)] 393 ~ 380
4. 네페리테스 2세(Neferithes II) 380

<제30왕조> 380 ~ 343
1. 넥타네보 1세(Nectanebo I) 380 ~ 362
2. 테오스(Teos) 362 ~ 360
3. 넥타네보 2세(Nectanebo II) 360 ~ 343 - 에티오피아로 망명

 

<제2차 페르시아 점령기(제31왕조라고도 함)> = 아케메네스 왕조 BC 343 ~ 332

1.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Artaxerxes III) 358 ~ 338

2. 아르세스(Arses) 338 ~ 336

3. 다리우스 3세 코도만누스(Darius III Codomannus) 336 ~ 330

 

그리스 왕조 시대(Greek Dynastic Period) BC 332 ~ 30

<마케도니아(Macedonia) 왕조> 332 ~ 310

1. 알렉산드로스 3세(Alexandros III) 336 ~ 323 - 소위 '알렉산더 대왕'

2. 필리포스 3세 아리다이오스(Philippos III Arrhidaeus) 323 ~ 317 - 알렉산드로스 3세의 이복동생

3. 알렉산드로스 4세(Alexandros IV) 323 ~ 310 - 알렉산드로스 3세의 아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Ptolemaeos dynasty)> 305 ~ 30 - 수도 : 알렉산드리아

1.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Soter : 구원자) 305 ~ 285

2.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Philadelphos : 애자왕()] 285 ~ 246

3. 프톨레마이오스 3세 에우르게테스 1세(Euergetes I) 246 ~ 221

4. 프톨레마이오스 4세 필로파토르(Philopator) 221 ~ 204

5. 프톨레마이오스 5세 에피파네스(Epiphanes) 204 ~ 180

6. 프톨레마이오스 6세 필로메토르(Philometor) 180 ~ 164, 163 ~ 145

7. 프톨레마이오스 7세 네오스 필로파토르(Neos Philopator)

8. 프톨레마이오스 8세 에우르게테스 2세(Euergetes II) 170 ~ 163, 145 ~ 116

9. 프톨레마이오스 9세 소테르 116 ~ 107, 88 ~ 80

10. 프톨레마이오스 10세 알렉산드로스 107 ~ 101

11. 프톨레마이오스 11세 알렉산드로스 80

12. 프톨레마이오스 12세 네오스 디오니소스 아우레테스 80 ~ 51

13. 프톨레마이오스 13세 51 ~ 48

클레오파트라 7세(공동 통치) 51 ~ 30 -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딸.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공동 통치

14. 프톨레마이오스 14세 48 ~ 44 - 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동생.

15. 프톨레마이오스 15세 필로파트로 카이사르(카이사리온) 44 ~ 30 - 클레오파트라 7세와 카이사르의 아들

 

주요 왕들의 업적

메네스(나르메르) : 상·하 이집트 최초 통일

조세르 : 피라미드 건축

쿠푸 : 대(大)피라미드로 유명

페피 2세 : 장기 집권(94년)의 폐해로 왕조가 멸망할 지경에 이름

멘투호테프 2세 : 분열기(제1중간기)를 종식시키고 이집트 재통일

세케넨라 2세 : 힉소스 족에 항거하였으나 전사함

아하메스 : 세케넨라 2세의 아들로 힉소스 족을 몰아내고 이집트인의 나라를 되찾음. 제18왕조의 창시자

하트셉수트 여왕 : 온건적인 대외 정책으로 평화와 번영을 누림

투트모세 3세 : 활발한 대외 원정으로 고대 이집트 사상 최대의 영토를 개척. '이집트의 나폴레옹'

아케나톤(아멘호테프 4세) : 사제들을 견제하기 위해 유일신교인 아톤 신앙을 정립

투탕카멘 : 아케나톤 사후 사제 세력의 꼭두각시 왕으로 별다른 업적은 남기지 않았음

람세스 1세 : 장군 출신으로 제19왕조를 창건

세티 1세 : 활발한 정복 사업으로 팽창 정책

람세스 2세 : 고대 이집트 사상 최전성기를 구가한 왕. 히타이트 제국과 벌인 카데슈 전투 이후 강화 조약을 맺고 화평을 유지함.

샤바카 : 분열기(제3중간기)를 종식시키고 이집트 재통일

아미르타이오스 : 페르시아 제국에 대항하여 독립 운동을 전개함.

넥타네보 2세 : 이집트인에 의한 고대 이집트 왕조의 마지막 왕. 나라는 페르시아에 합병되었고 에티오피아로 망명.

 

출처 : http://blog.naver.com/02saram/40044764467

2013.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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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도 없고 설명드릴 지문도 없네요..

그러나 말씀드리고 싶은것은 람세스 2세는 영토확장보다는 문화번영에 힘썼다는걸 말씀드리고싶네요.

무려 100대의  이상의 전차를 사용했을 만큼 큰 전투도 몇번 이겼으나 결과적으로는 전쟁은 무승부르 끝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는 문화를 더 번영시킨걸로 알고있습니다.

 

2008.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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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하러왔다가내공먹고가지요

2008.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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