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는약, 몸짱약, 천재약…기상천외 별의별 약 정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좋다면 '꿀꺽'

[일요시사 취재1팀] 신승훈 기자 = 키 크는 약, 몸 크는 약, 공부 잘하는 약, 커지는 약 등 각종 약들이 난무하고 있다. 거짓·과장광고, 불법복제, 오·남용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이 약들은 소비자들의 그릇된 욕망을 부추기고 있다. <일요시사>는 이 같은 각종 약의 실태를 추적해봤다.

우리나라의 키 성장 관련 시장은 8000억원 규모로 알려진다. 세부 시장으로는 키 성장 기능식품, 운동센터, 한의원, 호르몬 시장으로 나눌 수 있다. 키 성장 약은 키즈앤지, 키움정, 롱키원, 롱키원골드, 마니키커, 키클아이, 키플러스, 키노피업 등의 키 성장을 암시하는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다.

또한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를 광고 모델로 내세우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다. 키움정-박태환, 키즈앤지-송종국, 롱키원-박남정 등이 광고모델로 활약 중이다. 문제는 제약회사들이 부모들의 자녀의 키에 대한 높은 관심을 이용해 거짓광고 및 과장광고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키 크는 약’
거짓 임상실험

▲키 크는 약 =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14일 키성장 효과를 거짓·과장 광고한 닥터메모리업·메시지코리아·에이치앤에이치 등 8개 판매업체와 내일을·칼라엠앤씨 광고대행사에 시정조치 및 과징금 총 6000만원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2014년부터 2015년 8월까지 키즈앤지, 키움정, 롱키원, 마니키커, 롱키원골드, 키클아이 등의 식품들이 객관적 자료 없이 거짓·과장 광고로 팔려나갔다”고 밝혔다.


이 제품들은 유명 제약회사 제품인 것처럼 광고·유통되고 있지만 총판 또는 대리점에서 기획되고, 제품 개발 및 제조는 대부분 중소기업에서 이루어졌다. 마니키커의 경우 ‘특허받은 성장촉진용 조성물 2개 함유!’, ‘성장의 저해 요소들을 분석하고 관리해 평균 성장 크기보다 매년 10∼30%씩 더 알차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식의 거짓광고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키즈앤지는 ‘세계 5개국 특허원료 YGF251로 만든 신제품’, ‘인체 임상실험 결과 혈압, 간기능 등 부작용 없이 안전함 확인’이라는 내용의 거짓·과장 광고를 했다. 이같이 거짓·과장 광고가 판을 치는 가운데도 제품이 팔려나가는 이유는 키에 민감한 부모들이 이러한 유혹에 약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A음료회사가 지난 2014년도에 만 7세부터 17세까지 자녀를 둔 부모 1000명을 대상으로 자녀의 키에 대해 고민이 있는지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50%가 ‘고민이 있다’고 답했다.

성능 부풀린 거짓·과장광고
불법 복제, 오·남용도 문제

이 자료를 놓고 보면 성장기 자녀를 둔 부모의 절반가량이 자녀의 키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대한소아내분비학회가 지난해 10월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자녀의 최종 키가 작을 때 우려하는 점’으로 부모들의 72%가 ‘구직 활동 등 사회생활에서 차별’을 꼽았다. ‘친구 및 이성 교제 등 대인관계’(61%)에 대한 고민이 뒤를 이었다. ‘작은 키로 인해 걱정되는 부분이 없다’라고 응답한 부모는 전체의 5%에 불과했다. 

키와 외모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 대해 임운택 계명대 교수는 “사람의 키나 외모도 하나의 경쟁력으로 보는 신자유주의적 맥락 속에서 내 자식이 어떤 것 하나도 부족하면 안 된다는 우리 사회의 절박함과 경쟁 피로도, 부모들의 욕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며 “키와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경향은 인종차별주의와도 연결될 수 있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모델을 뽑는 게 아니라면, 사무직이나 연구직 등 신체 조건과 직무 능력이 관계 없는 직종에까지 외모가 평가요소가 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고 언론을 통해 밝혔다.


몸 만드는 데
단백질이 최고

▲몸 키우는 약 = 몸을 키우는 약은 각종 보충제가 대표적이다. 보충제는 운동선수나 일반인들이 일상생활에서 활동이나 운동을 위한 영양소와 에너지를 빠르고 간편하게 얻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식품이다. 식사만으로 필수 영양소나 칼로리를 완벽히 섭취하기 어렵기 때문에 보충제를 통해 좋은 몸을 만들고자 하는 이들의 숫자가 늘고 있는 상황이다. <멘즈헬스>에 따르면 보충제의 종류는 크게 5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탄수화물 보충제다.

탄수화물은 우리 몸에 글리코겐을 만들어 낸다. 글리코겐은 운동능력을 향상시키고 근육이 아미노산을 흡수하는 것과 단백질 합성을 도와 근육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준다. 두 번째는 단백질 보충제다. 단백질은 우리 몸에서 계속 분해되고 새롭게 합성한다. 약 6개월 이내에 몸속의 단백질은 파괴되고 새로운 단백질이 인체를 구성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인체는 계속해서 단백질을 공급해 주어야 한다.

단백질은 근육을 성장시키는 결정적 요소로 근육은 단백질로 이루어진다. 세 번째는 크레아틴 보충제다. 크레아틴 보충제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널리 사용되며 스포츠 영양 보충제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후 꾸준한 연구를 통해 그 효과가 입증된 것으로 알려져 운동선수들이 널리 사용하는 보충제다.

네 번째는 아미노산 보충제다. 아미노산은 단백질을 구성하는 원료로 모두 20여 가지에 이른다. 이 중 루신, 발린, 라이신 등 9가지는 체내에서 합성되지 않아 반드시 식품을 통해 섭취해야 하는 필수아미노산이다.

마지막으로 호르몬 보충제가 있다. 호르몬 보충제는 인위적으로 제조한 호르몬으로 스테로이드 계통의 제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타 보충제보다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어 복용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특히 호르몬 보충제인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면서 운동하면 순수 근육만 1년에 10kg 정도까지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또한 운동할 때 지지치 않고 평소에 들어올리지 못한 중량도 쉽게 들 수 있어 마법의 약으로 불린다. 신체적 부작용으로는 칼슘의 흡수가 억제돼 골다공증을 유발하고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인다. 또한 간 질환의 발생률도 높아지고 피부 재생능력 또한 감소해 피부염에 노출될 우려도 있다.
 

심리적 부작용으로는 테스토스테론의 과도한 증가로 성격이 공격적으로 바뀌어 난폭한 행동이 잦아지고 충동적으로 변한다. 또한 근심과 공포, 의심, 감정의 기복이 커져 우울증에 빠질 확률도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번 달 3일에는 함량 미달의 단백질 보충제를 제조·판매한 A씨 등 식품제조업자 3명이 식품위생법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7월27일부터 8월18일까지 부산과 대구에서 단백질의 주원료보다 싼 탄수화물 원료를 이용해 단백질 보충제를 제조·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단백질 보충제 1회분 60g당 단백질 44g이 첨가됐다고 표기했지만, 실제 단백질 함량은 3.6g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단백질의 주원료보다 20배가량 싼 탄수화물 원료를 대량 첨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최근 몸짱 열풍으로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며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단백질 보충제를 섭취하는 이들이 많은데, 단백질 보충제인 줄 알고 먹었던 보충제가 사실 주원료가 탄수화물인 만큼 자칫 탄수화물 중독이나 비만을 유발할 우려가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전했다. 경찰은 이 같은 함량 미달의 단백질 보충제가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고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몸 키우려다…몸무게만 늘어
집중력 늘어? 머리만 아프다
커지는 약은…스그라·자하자

이런 가짜 단백질 보충제를 섭취하면 살이 찌는 것으로 알려진다. 가짜 단백질 보충제를 섭취한 피해자는 “2년 넘게 구매해서 복용하고 있는데 몸무게가 15kg 정도 불었다”며 “제가 근육량이 늘어난 줄 알고 보건소에 가서 체지방 측정을 해 봤는데 근육이 아니라 체지방이 늘어서 이상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미향 신라대 교수는 “지나치게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하면 체내에서 저장지방이 돼 지방이 축적되는 경우가 있다”며 “근육을 만드는 데는 탄수화물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ADHD 치료제
공부에 좋다?

▲공부 잘하는 약 = 수험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집중력 향상과 면역력에 도움이 되는 각종 영양제, 한약, 건강보조식품, 보양식 섭취에 노력을 기울인다. 특히 ‘공부 잘하는 약’의 대명사는 총명탕이다. <동의보감>에는 ‘총명탕을 오래 먹으면 매일 천 마디의 말을 기억한다’라는 말이 적혀 있다. <동의보감>에 나오는 총명탕은 건망증을 치료하는 13가지 처방 중 하나로 ‘공자대성침중방’이라는 처방이 있다. 즉 ‘공자처럼 똑똑해져 대성할 수 있다’는 뜻이다.

총명탕은 백복신·원지·석창포·생강이라는 4가지 약재가 전부다. 원지와 석창포는 우울증을 해소하고 불면·불안에 효과가 있고 생강은 소화기능 개선에 주로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김래영 한의사는 “총명탕은 수험생들이 긴 수험기간 동안 체력을 유지하면서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보약”이라며 “그러나 사람마다 체질이나 섭취 방법, 용량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건강상태에 맞게 처방 받아 복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요즘에는 ADHD(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 장애) 치료용 약으로 알려진 메칠페니데이트가 강남 엄마들 사이에서 ‘공부 잘하는 약’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메칠페니데이트는 마약인 암페타민이나 코카인의 구조와 비슷해 복용 후 뇌에 마약과 비슷한 영향을 미치는 향정신성 물질이다. 이 약은 정신과 의사의 처방이 없으면 구매할 수 없지만 일부 학부모들은 온라인 중고매매 사이트를 통해 ADHD 치료제 구입에 나서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ADHD 환자가 아닌 사람이 이 치료제를 복용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이 뒤따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메칠페니테이트는 중추신경을 자극해 우울성신경증, 수면발작 등을 치료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 약을 복용한 보통 사람은 신경과민, 불면증, 식욕감소, 두통 등 부작용이 올 수 있다고 보고된 상태다.

식약처 관계자는 “이번 안전사용매뉴얼을 통해 일반인의 ADHD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치료제의 올바른 사용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ADHD 치료제가 공부를 잘 할 수 있게 해준다는 말은 잘못된 오해며 오·남용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홍혜걸 박사는 방송에 출연해 ADHD 치료제에 대해 “이 약은 질병을 치료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집중력도 상당히 높인다”며 “잠을 자지 않는데도 피로하지 않기 때문에 공부를 잘하게 하는 약으로 쓰인다”고 말했다.

이어 “질병에 해당되지 않는데 은연중에 이 질병으로 처방되도록 유도해서 이 약으로 성적이 올라가게 하는 걸 기대하는 것은 큰 문제”라며 “부모와 의사의 합작품일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같은 공부 잘하는 약의 오·남용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도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미국 대학생들에게 굉장히 인기가 많아서 약국에서 가장 많이 도난당하는 약이기도 하다. 미국 내에서는 대학생들이 이 약의 남용이 심각해지자 시험을 볼 때는 소변에서 약물 검사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다.

▲커지는 약 = 커지는 약의 대명사는 비아그라다. 비아그라는 1998년 화이자제약에서 개발해 비아그라(Viagra)라는 상표명으로 출시된 남성 발기부전치료제다. 처음에는 심장 질환 치료를 목적으로 개발됐지만 임상 실험 과정에서는 심장 치료 효과는 미비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비아그라를 처방 받은 환자에서 발기가 일어나는 효능 부작용이 발견돼 이후 발기부전치료제로 쓰이게 됐다. 화이자는 비아그라 하나로 미국 제약업체 매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1998년 화이자제약에서 개발해 비아그라(Viagra)라는 상표명으로 출시된 남성의 발기부전 치료제는 본디 심장 질환 치료를 목적으로 개발된 약이었으나 임상 실험 과정에서 정작 심장 질환 치료 효과는 그저 그래서 사장될 뻔 했다가 약물을 처방 받은 환자에게서 발기가 일어나는 효능 부작용이 발견되어 이후 발기부전치료제로 쓰이게 됐다. 통계에 따르면, 비아그라는 전 세계적으로 20억정 이상이 소비됐고, 지금도 6초에 1명꼴로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무분별한 비아그라 복용은 위암, C형간염, 신체 부분마비, 안면 홍조, 소화 장애, 두통, 어지럼증 등 다양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2012년 5월 비아그라 약의 특효가 만료되자 복제약이 쏟아졌다. 국내 제약회사들이 식약청에 신청한 복제약은 29개로 제품명은 불티스, 헤라크라, 포르테라, 누리그라, 프리야, 스그라, 자하자, 그날엔포르테, 오르거라 등이 있다.

복제약도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다. 가짜 비아그라 등을 정상적인 유통 경로를 거치지 않고 판매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 1월 중국산 가짜 발기부전치료제를 불법 유통한 일당 8명이 경찰에 적발됐다. 지난해 경기도 고양시에서는 가짜 발기부전치료제를 불특정 다수의 남성에게 판매한 일당 2명이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위조 약 증가
“부작용 우려”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가장 많이 적발된 위조 상품은 비아그라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 비뇨기과 원장은 “인터넷 쇼핑의 발달로 인해 최근 온라인 쇼핑몰에서 발기부전치료제를 판매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며 “이는 정품과 달라 인체에 심각한 부작용을 끼칠 수 있는데 특히 불법 업자들은 정품 발기부전치료제를 소량만 넣은 뒤 이를 다른 약물 등과 혼합하는 방식을 자주 사용해 부작용 우려를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발기부전 환자 가운데 고혈압에 의해 발기부전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이때 불법 조제된 발기부전 치료제를 복용할 경우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부작용 속출 불법 낙태약 활개

낙태가 엄격하게 금지된 우리나라에서 불법 낙태약 거래가 활개를 치고 있다. 지난 2014년 3월 중국에서 낙태약을 국내로 몰래 반입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 약을 먹은 임산부들은 뱃속에 남은 태반이 썩거나 과다출혈 등의 부작용을 호소했다. 안전하고 부작용도 없다는 말에 구입했지만 성분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불법 낙태약이었다.

불법 낙태약은 인터넷을 통해 1박스에 38만원에 거래됐다. 또한 이들은 마치 실제 약국처럼 이름을 내걸고 정품사이트라는 점도 강조해 낙태약을 버젓이 유통시켰다.

A의사는 “전문가와 상의하지 않고 불법 낙태약을 샀을 때 심각하게는 불완전 유산이 돼서 과다출혈로 생명이 위험해 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불법 낙태약에 대해 “의사 처방 없이 인터넷에서 약을 사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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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