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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장미에대해서 좀 답변 빨리좀 ,..... 아시는분
wjdg**** 조회수 21,269 작성일2006.04.23

장미에 대해서 조사하려구하는데요..

 

자란는시기:

 

장미의크기:

 

장미의특징:

 

      좀알려주세요/..

                    빨리좀부탁이거 오늘 10시까지 해야하거든요 아시는분  답변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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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빠르죠 내공100!!!알겟죠?

 

장 미 꽃

장미를 빼고는 서양 문학을 말하는 것은 매화를 빼고서 동양 문학을 말하 는 것과 같을 것이다. 어디 문학뿐이겠는가. 미술에 있어서나 모든 일상 생활에 있어서나 서양인들에게 있어서 장미는 필수적인 꽃이다.때로는 감정 전달의 수단으로 때로는 아름다움의 표현 수단으로 장미는 언제나 유효 적절했다.

여인의 얼굴은 장미빛이라 했을 때 더 한층 아름다워지는 것이요 멋지고 낭만적인 인생도 장미빛 인생 이라고 표현되었을 때 비로소 실감을 얻게 되는 것이다.그러니 사랑에 있어서인들 장미가 빠질 수 있겠는가.이 꽃 저 꽃 다 그만두고 장미꽃이 제격이라.흰 꽃은 순결이요 노란 꽃은 위엄, 빨강은 정열 그리고 분홍은 사랑이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에서도 장미는 빠질 수 없다.5막2장은 질투심으로 괴로움의 극에 이른 오셀로가 드디어 그의 아내 데스데모나를 목졸라 죽이는 대목이다.

눈보다 희고,설화 석고( 雪花石膏 )보다 매끄러운 데스데모나의 잠든 얼굴이 촛불에 더욱 신비롭다.그는 잠시 그 아름다운 얼굴을 굽어본다.그리고 침상 머리에 켜져 있는 촛불을 맨손으로 끄면서 이렇게 독백한다.

“이 불을 끄고 다음에 저 불을 꺼야지.이 불은 껐다가도 다시 켤 수 있지만,그대의 오묘한 불은 한번 꺼지면 다시 켤 수 없는 것을.......... 아, 이 장미는 한 번 꺾어 버리고 나면 다시는 되살릴 수 없는 것을..........나무에 피어 있을 때 마지막 향기를 맡아야지.”

오셀로는 허리를 굽혀 그녀의 입술에 마지막 작별의 키스를 한다.애증으로 일그러진 무어인의 깊고 검은 눈가에도 이슬이 맺힌다.

장미는 원래 유럽에서부터 코카서스에 걸쳐 자생하던 것과 중국이 원산지인 것으로 나눌 수 있는데 지금 세계적으로 널리 보급된 것은 이것들을 교배하여 개량한 것들이라고 한다.우리나라의 산야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찔레꽃은 야생종 장미, 그러니까 들장미 인셈이다
장미 재배의 역사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어떤 사람은 기원전 2000년대에 이미 바빌론 궁전에서 재배되었다고 하며,그리스에서 발견된 벽화 가운데에도 장미가 그려진 그림이 있는 것으로 봐서 그리스 시대에도 장미가 재배되었을 것이라고 한다.이처럼 장미 재배의 역사는 오래되었다.하지만 이것이 원예종으로 취급되기시작한것은 서기 1500년경부터이며 18세기에 들어서부터 더욱 활발해졌다.
영국은 국화가 장미를 국화로 삼고 있을 정도이다.15세기 후반에 붉은 장미를 문장으로 한 랭커스터 가와 흰장미를 문장으로 한 요크가와의 사이에 왕위 계승권을 놓고 전쟁이 벌어졌다.이것이 그 규명한 장미 전쟁인데,30년간 계속된 이 싸움은 결국 랭커스터 가의 헨리7세가 요크가의 엘리자베스를 아내로 맞아 튜더 왕조를 세우는 것으로 끝났다.그때 양가의 문장인 붉은색과 흰색 장미를 합해 문장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투더 로즈 Tudor rose)라고 하며 꽃잎이 다섯개로 되어 있다.현재도 영국 왕실의 문장으로 남아 있다.이렇게 해서 영국의 국화로 정해진 것이다.

장미(薔薇 )라는 이름은 중국 이름으로,뜻은 벽이나 담장을 의지하고 피던 재래종의 찔레 같은 덩굴장미를 뜻한다.동서를 통틀어 장미를 노래한 시는 많다.하지만 좋은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당나라 시인 고병(高騈 )의 (산정하일/山亭夏日 )이 그중 낫지 않나 생각된다.

녹수음농하일장 ( 綠水陰濃夏日長 )
누대도영입지당 ( 樓臺倒影入池塘 )
수정염동미풍기 ( 水晶簾動微風起 )
일가장미만원향 ( 一架薔薇滿院香 )

푸른 나무 그늘은 짙고 여름 해는 긴데
거꾸로 비친 누대 그림자 못 속에 들었네
슬며시 수정발 들리니 실바람은 일고
한 시렁 장미에 집안 가득히 향기로구나

이처럼 아름다운 시가 전해지고 있다.

오늘날 장미의 종류는 정말 다양하다.지금까지 개량된 것은 약 2만여종이 넘는다고 하니 어떤 꽃도 그 종류의 다양함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지금껏 장미의 푸은색말고는 다 있지만 빨간새과 노란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그것은 로즈(Rose)라는 말의 어원이 그리스 어인 Rhodon으로서 고대 켈트(Celt)어의 붉은색을 뜻한다고 한다.그러니까 장미의 원종은 붉은색 계통이었다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푸은색 장미는 일본의 유전 공학자들이 만든다고 공언 했는데 아직 보지 못햇으니 알길이 막연하다.

우리나라에도 설총이 신문왕에게 훈계한 유명한 화왕계에 장미가 나온다.또한 중종 14년에 겨울이 따뜻하여 음10월인데도 전라도에 장미꽃이 활짝 피어 초봄 같았다는 기록이 (동각잡기)에 나온다.또 조선초의 학자인 강희안은 피는 꽃에 1품에서 9품까지 품작을 주었는데 장미는 5품을 주고 순수한 황색보다 아리땁고 맑으니 시인의 아내가 될만하다.라고 평하고 있다.

지금의 장미는 거의 외래종이며 국내에서도 농업 진흥청에서 토종 장미 6종을 개발했다는 보도가 있었다.본래 토종은 찔레꽃이니 만큼 뒤늦은 감은 있으나 고유 우리 장미가 개발 됬다니 반가운 소리고 널리 보급되어 꽃 가게에서 볼 날을 기대하여 본다.

 

참고 1. 찔레꽃

장미과에 딸린 낙엽 관목. 키는 1∼2m이고, 밑에서 가지가 많이갈라져 엉키며 가시가 있다. 잎은 깃 모양을 한 겹잎으로어긋맞게 난다. 작은잎은 길둥근 모양이며, 뒷면에 잔털이 있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5월에 향기가 있는 흰 꽃이피고, 열매는 약으로 쓰인다. 산과 들에서 자라며, 우리 나라와 일본에 분포한다.

 

조선 왕실과 오얏꽃 이야기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바로하지 않으며 외밭에서는 신들메를 고치치 않는다.”
우리 나라 사람치고 이 격언을 모를 사람이 거의 없다.어렸을 때 부터 늘 들어 온 말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오얏 이 무엇인지 정작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못하다.‘오얏리’자 이(李)씨들 중에서도 오얏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열이면 일곱은 된다.그렇다고 이씨가 박씨가 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좀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자두’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자두는 중국 이름 자도(紫桃 )에서 변한 말이고,오얏은 우리 고유어인데도 말이다.중종때 (훈몽자회)에도 자도가 아니라 ‘외엿 ?으로 나온다.지금은 속담에나 남아 있을 뿐이다.그나마 다행이지 싶다.아주 사어( 死語 )가 되어 버리지 않아서 하는 말이다.
오얏나무는 중국이 원산지이다.그러나 일찍부터 우리 나라 모든 지역에서 재배해 왔다.오얏꽃은 살구나 복사꽃과 마찬가지로 4월에서 5월 사이에 핀다.꽃잎은 다섯 장이고 빛은 흰색이며 살구꽃과 마찬가지로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그러나 연분홍색인 살구꽃과는 달리 어름처럼 차고 희다.꽃이 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어지럽게 날리는 봄의 서설로 착각할 정도이다.이런 시가 있다.

가지에 붙었을 젠 눈인 줄만 여겼더니

맑은 향기 그윽하여 꽃인 줄 알겟네

열매는 7월에 익는데 야생 상태에서는 아주 작아서 앵도나 탄알정도 이지만 개량종은 아주 크다.어떤 것은 달걀만한 것도 있다.맛은 신맛이 많아서 일본사람들은 신복숭아 라는 뜻으로 스모모라고 부른다.열매의 색은 연두색에 가까운 노락색과 자주색이 있고 과육은 연한 녹색이다.오얏은 과일로서만이 아니라 한약재로 쓰인다.그 씨는 진통,해소 ,통변,피로,치통,신장염등에 두루 좋다고 한다.

옛날 노자(老子) 의 어머니가 그를 배고 81일 동안이나 오얏나무 아래에 있다가 아이를 낳았는데, 그 때문에 노자는 자기의 성을 ‘ 李 ’씨로 하였다는 것이다.아직 성이란 것이 정착되기 이전의 일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신라말 도선(道詵 )의 비결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왕씨를 계승하는 자는 이씨이고, 그는 한양에 도읍을 정한다.

( 繼王者李而都於漢陽 )

이에 고려 조정에서는 이씨가 득세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한양을 남경(南京 )이라 하여 왕도와 같은 대우를 하는 동시에 거기에 오얏나무를 많이 심어 놓고 해마다 관리를 보내어 잘라 내게 했다.일종의 모방 주술 또는 동종 주술이라 하겠다.다시 말하자면,비슷한 것끼리 서로 통한다는 원리에 근거한 주술이다.장희빈이 인현왕후의 화상을 그린 그림에다 화살을 쏘면서 왕후가 죽기를 빌었던 것과 같은 이치이다.오얏나무는 곧 오얏 리자 이씨들의 화상이나 다름없는 것이니 오얏나무를 자르는 행위는 이씨의 세력을 사전에 꺾는 것과 같은 효력을 가져 온다고 믿은 데서 나온 방비책이었던 것이다.이런 것을 풍수(風水 )에서는 염승(厭勝 )이라고 하는데,아주 힘을 못 쓰게 눌러 버린다는 뜻이다.
지금 동소문 근처 낙산 일대의 옛 지명이 ‘ 伐李 골 ’이었다고 한다.이는 ‘오얏나무를 자르는 마을 ’이라는 뜻이다.고려 때부터 내려온 이름이지 싶다.
결국 고려 말에는 ‘ 목자득국(木子得國 )’즉 이씨가 나라를 얻는다.는 참요(讖謠 )까지 떠돌더니 드디어 이성계가 역성 혁명을 일으켜서 왕권을 차지하고 말았다.이렇게 하나의 글자를 분리해서 일부러 뜻을 모호하게 하는 것을 파자( 破字 )라고 하는데 점괘나 예언 또는 참요 같은 것에 자주 쓰이던 수법이라 하겠다.재미 있는 것은 이것을 모방한 일이 그 후에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선조 때도 정여립(鄭汝立 )이란 사람이 참요의 신기한 효능을 믿어 일부러 노래를 지어 세상에 유포시켰는데 그 노래는

목자망( 木子亡 ) 전읍흥 (奠邑興 )

여기서 전읍은 정의 파자이니 정씨가 흥한다는 말인데 결국 그는 멸문지화를 당했다. 또 정감록( 鄭鑑錄 )에 나오는 정도령이라는 한국적 메시아의 출현설인데 지금까지도 추종하고 믿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일본 왕실은 사쿠라 문장을 사용한다고 한다. 이씨 조선에서는 오얏꽃이 언제 왕실의 문장이 되었는지 정확한 연대는 알 수가 없다.아마 고종 때거나, 아니면 그 이후로 봄이 타당하리라 생각된다.우리네 식으로 말한다면 왕실 문장이란 것이 일찍이 있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일본은 메이지 천황 때 국화(菊花 )를 황실 문장으로 삼았다.
지금도 비원에 가면 인정전 용마루와 인정문에 각각 다섯 개와 세 개의 오얏꽃 문장이 장식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잇다.

개나리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 처음 와서 받는 강한 인상이 두 가지가 있는데,하나는 가을 하늘이고 다른 하나는 개나리꽃이라고 한다.봄에 우리 나라에 다녀간 어떤 일본인 소설가는 한국 하면 노란 개나리가 떠오른다고 할 정도이다.길가고 방죽이고 개나리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이니 그럴 법한 일이다.

우라 나라의 산에서 가장 먼저 피는 꽃이 산수유이고, 들판에서 가장 먼저 피는 꽃이 유채꽃이며,울 안에서 가장 먼저 피는 꽃이 개나리라는 말이 있다.그 밖에도 생강나무꽃이 그렇고,양지꽃 또한 그렇다.모두가 일찍 피는 꽃인 동시에 노란색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노란 꽃은 추위에 강하다.추위뿐만 아니라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잘 살아가는 강인한 힘을 가진 억척스런 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노란색은 눈에 잘 띄는 색이기에 중세기에 창녀에게,제 2차 세계 대전 때는 유태인에게 노란 표지를 달게 하였고,도로의 중앙선에도 노란색을 쓰지만 유럽의 민간 생활에서는 노랑은 악마나 악정이나 악당이나 악조건에서 살아나는,부활과 끈기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그래서 봄에 노란 나비를 보는 사람에게는 행운이 오고 환자에게 노란 꽃을 선물하면 빨리 쾌유된다고 믿었다.

노란 꽃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개나리는 우리 나라가 원산지이다.그래서 학명도 Forsythia koreana로 되어 있다.우리 나라 이름이 들어가는 몇 안 되는 학명의 하나이다. 개나리 종류는 많지 않다.세계적으로 여덟 가지 정도이며,중국과 일본에도 있지만 한국의 개나리처럼 그렇게 선명한 빛이 아니라고 한다.1960년대 까지는 충청남도와 함경북도를 제외하고 전국에 자생하는 것으로 보고 되어 있다.지금 함경북도를 제외하고 전국에 자생하는 것으로 보고 되어 있다.잊금 함경북도는 어떤지 알 수 없지만 충정남도에는 개나리가 많이 심어졌다.
무궁화가 국화로 마땅치 않으니 다른 꽃을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을 때 주요한(朱耀翰 )같은 분은 개나리를 국화로 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전국에 걸쳐 있는 꽃이면서 가장 친숙한 꽃이 라는 뜻에서였던 모양이다.개나리는 귀족적인 품위를 갖춘 그런 꽃은 아니다.거기에는 깊은 향기가 있는 것도 아니요,형태가 우아하다거나 고상한 것도 아니다.소박한 시골 처녀 같은 꽃이다.노랑 저고리를 입은 이쁜이라는 이름이 어울릴 듯하 꽃.
이 꽃을 꽂을 때는 고급 화병이 어울리지 않는다.그렇다고 요새 나오는 유리병이나 플라스틱 화병 같은 것에도 맞지 않는다.개나리가 잘 어울리는 화병은 검정 토기거나 아니면 번쩍거리지 않는 오지 항아리 정도가 좋다.물론 굽이 높은 신라 토기나 가야 토기면 더할 나위가 없지만.

우리 민요에

약달래 반달래
이가지 저 가지
노가지 향나무
진달래 왜철쭉
맨드라미 봉선화
누르퉁 호박꽃
모가지 잘룩 도라지꽃
맵시 있다 애기씨꽃
부얼부얼 함박꽃과
절개 있다 연꽃이야
이 꽃 저 꽃 다 버리고
개나리 네로구나

우리 나라에 자생하는 개나리 종류는 네 가지가 있다.중부 지방 깊은 산 속에서 자라는 만리화(萬里花 )라 불리는 것과 산개나리가 그것이고,역시 같은 중부 지방인 장수산 계곡에서 자라는 장수만리화와 경상북도 의성 지방에서 자생하는 의성 개나리가 그것이다.중국 사람들은 나뭇가지에 꽃이 매달려 있는 모양이 새의 긴 꼬리와 같다고 해서 연교(連翹)라고 부른다.서양 이름으로는 골든 벨(Golden bell)이라고 한다.꽃이 조롱조롱 달린 모양이 조그만 황금의 종이 달린 것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노란색은 왕성한 생명력의 표상이다. 그리고 노란 색은 풍요한 생산력 생식력의 표상으로 정착 농경민족의 상싱 색깔이다.
중국 문명이 황하의 퇴적인 누런 황토에서 생겨나 그 최초의 군주를 황제라고 일컬었음도 그 때문이다.고대 로마에서 생산을 기약하는 신부가 노란 베일 노란 구두 노란 우산을 받고 행진 했던것도 이 노랑의 생식력과 무관하지 않다.한국에서 신부에게 노랑 저고리를 입혔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비틀즈의 히트곡인 (옐로 서브마린 )은 빈사지경인 문명세계를 떠나 생명이 약동하는 반 문명세계에 안주한다는 노래인데 그 세상이 황색이다.노랑의 부정적인 이미지도 없지 않다.저승의 색이 노랗다 해서 황천이요 염라대왕 앞으로 인도하는 개는 황구이다.

중국의 전통 연극인 경극에서 속임수와 거짓말을 일상으로 하는 위선 자나 파렴치한 배역에는 노랑옷을 입힌다.
지금 우리 나라에는 저기 여의도에 노랑옷을 입고 열연하는 자들이 너무 많아 걱정이다.

비야 비야 양귀비야

비야 비야 양귀비야

당명황의 양귀비야

금색같이 염전인데

네 무삼 화초인데

삼일 만에 꽃이 지니

단수한 게 원이로다.


양귀비 꽃의 단명함과 미인 양귀비의 비운을 함께 안타까워한 민요이다.그러나 이꽃의 원래 이름이 양귀비인 것은 아니다.
중국이나 한방에서는 앵속(罌粟 ) 이라 부른다. 열매가 항아리같이 생기고 그 속에 좁쌀 같은 씨가 들어 있다고 해서 ‘항아리 앵( 罌) ’에 ‘ 조 속(粟 ) ’자를 쓴 것이다.혹은 미낭화 (米囊花)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쌀이 가득 든 주머니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꽃보다 그 열매나 씨의 공리성을 더 중히 여겨서 붙인 이름이라는 데에 공통점이 있다.

양귀비 꽃은 꽃잎이 보통 넉 장이다.그러나 개중에는 겹꽃도 있는데, 이것을 여춘화(麗春花 ) 라고 부른다.공리성보다는 아름다움에 눈을 돌리게 되면서 생긴 이름인가 한다.

양귀비란 우리 나라에서만 통하는 이름이다. 일본어로는 게시라고 한다.15세기의 (양화소록)과 17세기의 (산림경제)에도 모두 앵속각(罌粟殼 )이라고 되어 있다.언제부터 양귀비라 부르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하지만 왜 양귀비라고 불렀는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추측이 가능할 것 같다.

첫째,이 꽃은 중국을 통해 우리 나라에 들어 왔으며, 일년초 가운데서 가장 예쁜 꽃이다.하지만 하루 밖에 못 사는 하루살이 꽃이기도 하다.중국을 통해 들어온 아름다운 꽃이라는 것과 단명한다는 사실에서 비운의 여인, 양귀비(楊貴妃 ) 를 연상하게 된 것이고,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리라.

둘째,이 꽃의 열매에서 뽑은 아편(阿片 )은 사람을 마취시키는데, 그것은 현종(玄宗 ) 을 현혹시킨 양귀비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다시 말해서 양귀비처럼 예쁘지만 그래서 더구나 양귀비 처럼 경계해야 할 꽃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미인 양귀비가 한 나라를 기울게 만든 경국지색(傾國之色 ) 이라면 화초 양귀비는 패가망신(敗家亡身 ) 의 꽃이란 뜻일까 ? 옛 선비들이 뜰에 심기를 꺼렸던 까닭을 알 것 같다.

아무튼 이 꽃은 키부터 훤칠하다.그 줄기가 긴 것은 5척이나 된다.꽃은 줄기 끝에 하나씩 피며 봉오리는 갸름한 것이 청솔방울만 하다. 피기 전에는 고개를 수기고 있다.마치 수줍음을 타는 소녀 같은 것이, 어떻게 보면 꾸중을 들을까 두려워 짐짓 고개를 숙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미인 선발 대회에 나온 아가씨들처럼 한껏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낸다.그럴 만도 한것이 주위에 있는 뭇 꽃들 가운데서 신비롭고도 요염한 그 미모를 다툴 만한 꽃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꽃색이 미묘 할 뿐만 아니라 아주 다양하다.하양,빨강,분홍,보라,연보라,등 하늘색과 노랑을 빼고는 없는 것이 없다.국화나 장미에 버금갈 만하다.그 가운데서 아편을 뽑는 것은 흰색인데, 오피움 포피 (Opium poppy) 라는 영어 이름은 이 흰 꽃을 가르키는 말이다.

꽃잎은 아주 연약한 것이 특징이다. 어떤 것은 튤립 비슷한 것도 있다.그러나 양귀비 잎은 튤립처럼 두껍지 않고 아주 얇다.비단에 그린 유리잔 같다고나 할까?
거기에 햇빛이 비치면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더구나 역광(逆光 ) 으로 볼 때는 루비처럼 빨갛게 불타는 것 같다. 꽃송이의 주위 공기마저도 모두 따스하게 한다.
꽃잎을 단단히 싸고 있던 두 쪽의 초록색 꽃받침은 꽃이 활짝 폈을 때 기다렸다가 아쉬운 듯 머뭇거리다가 땅으로 떨어지고 만다. 네 개의 꽃잎은 비로소 부드러운 바람결에 나부끼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치 번데기의 등을 가르고 막 나온 나비처럼 잠시 눈부신 햇빛에 어리둥절해 있는 것 같은 그런 모습이다.

재이 있는 것은 연약한 꽃잎이 비좁은 꽃받침 속에 같혀 있는 동안에 생긴 듯한 구김살이 꽃이 다 질때까지도 그대로 있다는 것이다. 지난날 겪어야 했던 비운의 그림자가 한 여인의 아름다움에 미묘한 음영과 깊이를 더하듯이, 이 섬세한 상흔이 오히려 연약한 이 꽃을 한결 애처로운 마음 없이는 결코 바라볼 수 없게 하는 그런 독특한 매력을 가지게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꽃이 고우면 향기가 업는 것이 보통이다.하지만 양귀비는 그렇지 않다.요염할 뿐만 아니라 그 향기 또한 각별하다.다만 이꽃은 너무 섬세하고 연약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조심해서 다루지 않으면 화판이 떨어져 버리기 쉽다.아름다운 것치고 연약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던가마는 양귀비의 그 유약함은 차라리 애처오울 정도이다. 청순 가련미라고나 할까.

대부분 꽃의 얽힌 전설은 비극적인게 많은 데 이 꽃에는 아름다운 전설이 있다.

아득한 옛날 인도에 한 행복한 왕자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정원을 거닐다 이상한 새가 나무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왕자는 시종들에게 그 새를 잡아오게 했다.잡혀 온 새의 발목에는 금실이 매어져 잇었고,몸에서는 이상한 향내가 났다.왕자는 이 새를 금으로 된 새장에 넣었다.그리고 침실 곁에 매달아 놓고 매일 바라보는 것을 하나의 즐거움으로 삼았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이 새는 통 노래를 하지 않았다.그런던 어느 날 왕자가 꿈을 꾸었는데 먼 나라 공주가 시종들과 함께 자기의 꽃밭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것이었다.왕자가 물었다.무엇을 찾고 있느냐고, 그랬더니 공주가 말하기를 자기는 남쪽 아라후라 라는 나라의 공주인데 자기의 새가 발목에 금실을 끊고 달아나서 찾는 중이라고 했다.왕자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새가 바로 그녀의 것임을 알자 그만 가슴이 뜨끔했지만 시치미를 뚝 떼고 그 새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그러자 공주는 그새의 이름은 자기 이름과 같아서 말할 수 가 없다고 했다.자기네 나라에서는 공주의 이름을 알아내는 사람이 국왕이 되는 동시에 공주의 남편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그런데 그 이름은 새만이 알고 있으며, 새가 부르는 노래가 곧 공주의 이름이라고 하는 것이었다.그리고 그 새는 한 가지 꽃만을 좋아하고, 그 꽃이 자기의 이름과 같은데 그 꽃이 여기에 없으니 그 새도 여기에 없는 것이 틀림 없다고 하며 그 곳을 떠나 버리고 말았다.꿈에서 깬 왕자는 비로소 새의 비밀을 알게 되어서 여간 기쁘지 않았다.이제 공주의 뜰에 핀 그 꽃만 따오면 되었다.그래서 힘센 용사를 뽑아 공주의 나라로 보냈다.그러나 한 사람도 돌아 오지 않았다.결국 왕자 자신이 그 꽃을 찾아 아라후라로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공주가 사는 곳은 하늘까지 닿는 성이 세 겹으로 둘러 잇고, 파수병들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었다.하지만 슬기로운 왕자는 무사히 성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꽃밭을 지키는 용사들은 모두 자기의 부하들이었다.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하지만 이나라에는 이상한 약이 있어 한번 먹으면 그 전의 일을 모두 잊어 버리게 되어 있었다.왕자는 밤을 틈타서 드디어 꽃을 따오는 데 성공했다. 꽃을 가지고 돌아온 왕자는 새장 앞에 그 꽃을 놓았다.그 때서야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던 새가 비로소 아름다운 목소리로 “ 파파베라 파파베라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해서 이 새의 이름도 ,꽃의 이름도 그리고 공주의 이름도 모두 “파파베라”임을 알게 된 것이다.그 후 왕자는 공주를 왕비로 맞아들여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파파베라 ’는 아편꽃의 라틴어 이름이다. 그러니 인도의 왕자도 당나라 현종처럼 하나의 양귀비에 취해 버리고 만 셈이라고나 할까?

양귀꽃은 인도의 국화이다.그러나 원산지는인도가 아니라 유럽 동부이다. 유럽에서는 일찍이 석기 시대에 재배되었다는 사실이 스위스 지방의 호서 민족(湖棲民族 )의 유적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리스 시대에는 열매에서 나온 유액(乳液 )을 어린이에게 먹여서 잠을 재우는데 사용하였으며 아편이 제족된 것은 기원전 300년경 소아시아 사람들에 의해서였다고 한다.
이 꽃이 중국에 전해진 것은 7세기경 당나라 때 아라비아 사람들에 의해서인데,그것이 우리 나라에 들어온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최초로 문헌에 나타난 것은 15세기, 그러니까 적어도 그보다 전인 신라 말이나 고려 때가 아닌가 한다.

꽃이 지고 나서 2,3일 뒤에 대나무칼로 열매의 껍질에 상처를 내면 젖 같은 즙이 나오는데 이것을 섭씨 60도에서 건조시키면 아편이 된다.

식물학자 린네에 의하면 아직퍼지직 전의 파란 솔방울만한 양귀비 열매 속에는 3만2천여개의 씨앗이 들어 있다고 한다. 그 씨가 얼마나 작은지를 알고도 남을 일이다.이처럼 많은 씨앗 때문에 예로부터 양귀비는 다산(多産 ) 의 상징으로 알려져 왔다.석류가 많은 씨 때문에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 되어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크기는 작지만 생명력만은 어떤 씨앗에도 뒤지지 않는 것이 양귀비꽃이다. 24년이 지난 씨앗도 발아했다고 한다.3,000년이 지난 연꽃의 씨가 발아한 것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크기에 비해서 명줄이 되게 질긴 셈이라 하겠다.

양귀는 꽃을 완상하는 것만이 아니다.어렸을 때는 그 잎사귀를 먹고 열매에서는 진정제를 그리고 씨는 빵이나 과자에 사용하거나 기름을 짜기도 한다. 꽃에서부터 잎사귀에 이르기까지 버릴것이 업는 것이 또한 양귀비이다.사람들이 아편에 중독되어 패가 망신을 하는 것은 이 꽃의 탓이 아니다.동네 총각이 병이 났다고 이웃집 처녀의 죄랄 수는 없는 것이다.잘 쓰면 약이고 지나치면 독이 되는 것이 어디 양귀비뿐인가.다 사람 마음먹기에 따라 다를 뿐이다.

양귀비는 옮겨 심는 것을 싫어한다.곧은 뿌리라서 그렇다.그러니 밭에다 직파(直播 )해야 한다.그런데 양귀비는 만월인 추석날 밤이거나 음력 9월9일 중양절(重陽節 ) 날 밤에 발가벗고 심으라고 했다. 아니면 부부가 함께 고운 옷을 입고 밤중에 마주않아 심으면 아름다운 꽃이 많이 핀다고 한다.(산림경제)에 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왜 그렇게 되는 것인가에 대한 설명은 없다.고대인들에 의해 시작된 주술적 관습이 세월이 오래 지나는 동안에 그 이유가 잊혀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 꽃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서는 허가 없이는 심을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조밭이나 옥수수밭 가운데에 몰래 심었다.아니면 야산 후미진 곳에 몰래 씨를 뿌려 두었다가 아편을 거둬 들이기도 했다. 아편을 짜서 팔자는 것이 아니라 의약품이 귀하던 시절에 없어서는 아니될 구급약이라서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국제적으로 양귀비가재배가 유명한 곳은 골든 트라이앵글이다.이곳은 양귀비 재배의 최적지. 붉고 하얀 양귀비들이 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을 보면 절로 섬뜩해진다. 태국, 라오스, 미얀마 세나라의 국경이 만나는 황금의 삼각지대 골든 트라이앵글. 문명의 때가 거의묻지 않은 소수민족들의 삶의 중심지이다. 그러나 이들은 마약왕 "쿤사"세력으로부터 양귀비 재배를 강요받았으며 기타의 살인,폭행, 강간,징집등의 횡포에 시달려왔다. 이지역에서 생산되는 양귀비가 한때 연간 500-1000톤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또 의약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는 北 주민들 양귀비 일상적으로 섭취 북한주민들이 아편의 원료인 양귀비를 일상적으로 섭취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97년 10월 북한을 탈출한 이애란씨(가명. 양강도 출신) 는 20일 탈북자동지회 회보 '망향' 12월호에 기고한 수기에서 "북한주민들은 양귀비를 대장염, 설사 치료제등으로 사용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양귀비 잎을 깨끗이 씻어 쌈을 싸 먹고 있다"고 밝혔다. 이씨는 또 "북한주민들은 양귀비씨를 모아 깨 대용으로 사용하고, 떡고물을 만드는 데도 이 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북한에 있을때 양귀비씨를 많이 먹었다"면서 "그 맛이 얼 마나 고소하고 맛있는지 몰랐다. 깨 대용으로 제격이었다"고 술회했다. 살길이 막막한 북한주민들은 아편을 먹고 슬그머니 죽는 것이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특히 노인들은 자식들에게 외면당하고 배고픔을 참을 수 없을 때 고통없이 죽기 위해 알사 탕 크기의 생아편을 필수품으로 간직하고 있다고 이씨는 증언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한 관계자는 이와관련,"양귀비의 잎과 씨에는 소량이나마 마취성분이 들어 있어 매일 섭취할 경우 중독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가히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목적 여부를 막론하고 삶의 부정적인 요소로 자리잡은 양귀비는 국내법상 일반인들은 신고후 관상용으로 밖에 기를 수 없게 되어 있다.

 

(답변는 계속 합니다........)

2006.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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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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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효능

지중해 동부와 근동에서는 지금까지도 장미 꽃잎과 들장미 열매로 만든 당과와 잼이 있다.

파리 왕립약초원의 의약 연구원인 '피에르 포메'는 저서 '약의 역사' 에서, 장미가 없었더라면

의학이 이처럼 발전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히포크라테스, 디오스코리데스, 플리니우스 등 고대의 약리학자들은 장미를 이용한 생약들을

개발했다. 12세기 독일 빙겐의 수녀원장 '성 힐데가르트'는 분노와 신경질을 가라앉히는 데는

장미가 특효라고 기록했으며 18세기에도 심장이 두근거릴 때에는 장미가루 찜질을 권했었고,

장미와 설탕을 혼합한 물에 졸인 레몬이 해독과 전염병 예방에 특효가 있다고 생각했다.

최근의 장미에 대한 효능을 밝히자면, 장미오일에 함유된 향기 성분이 여성 특유의 정신적,육체적

문제를 완화시키기 때문에 '필수오일의 여왕'이자, 모든 여성을 위한 오일이라 불려진다.

프랑스의 유명한 피트세라피스트 H.Leclerc 는 로즈음료 (장미잎, 장미수, 설탕 글리세린)와 

로즈시럽 (로즈음료와 설탕을 섞은 것)을 변비나 폐결핵 등 폭넓은 의학분야에 사용하였다.

여성 특유의 트러블을 완화시켜 상처와 여드름, 주름살을 없애주고 피부 살균과 햇빛에 노출된

피부를 안정시킴과 동시에 보습효과도 뛰어나다. 로즈워터는 피지 밸런스를 유지해주고

모공을 수축시켜 윤택하고 매끄럽게 해주며 어떤 피부 타입에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

비타민 C가 레몬보다 17 배, 비타민 A가 토마토의 20 배 많아 피로회복과 노화방지에 효과가 있다

세포 재생력이 뛰어나 지친 피부에 활력을 주고 밝고 유쾌한 기분을 갖게 해준다.

스트레스 저항 호르몬 분비를 촉진하여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며 불안한 마음을 안정시켜

편안함을 얻기도 한다. 화려하고 풍부한 향은 우울증 치료에도 좋다.

특히 장미의 향은 콩팥을 강하게 해주며 기억력과 집중력을 높여주고 두통에 효과적이다.

프로뱅 지방은 수많은 약제사들이 약품이나 화장품을 만들 때 장미를 사용해 왔는데

이곳의 약품 중에는 빻은 꽃잎을 물, 설탕과 반죽해 만든 장미 연고도 있다.

 

 

장미의 효능이에여~

도움이 되셧으면 좋겠네요

효능만 올려서 죄송해요..

2008.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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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답변
쌍떡잎식물 장미목 장미과 장미속에 속하는 식물의 총칭.
학명Rosa spp.
분류장미과 장미속
원산지서아시아
분포지역북반구의 한대·아한대·온대·아열대

 

오늘날의 장미라 불리는 품종은 야생 장미와 자연잡종으로 만들어낸 개량 품종

 

입니다.

 

그래서 하나하나 다 색다르고 예쁜 색, 생김새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장미는 북반구의 한대,아한대,온대,아열대에 분포하며, 서식

 

합니다.(약 100종이상이 알려져 있답니다.^^)

 

장미의 촉감은 수분량에 따라 달라집니다.

 

수분이 많고 관리가 잘된경우 조금 빳빳한 느낌이 들면서,

 

힘을 가하면 뚝뚝하며 끊어지는 특징을 가지며,

 

부드러운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분이 적은경우, 그냥 빳빳한 느낌이 들지 않고 푸석푸석한

 

느낌에, 힘을가할경우 잘 끊어지지 않는 성질을 가진답니다.

 

이상 허접한 답변이었습니다.^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슴다..ㅋㅋ

200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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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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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입력 포함 정보

이 홈페이지에 들어가세여.쿠루쿠루(좌절금지)

http://www.sense-flower.com/rose_photo.htm

2008.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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