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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우리고장의 전통문화 축제에 대해서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165,655 작성일2007.11.16

우리고장의 전통문화 축제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빨리해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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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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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24위, 한국사 70위, 사회학 14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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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리농악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11-3호  

지 정 일 1966.06.29

 

이리농악은 익산(옛 이리)지방에서 전승되는 농악으로 호남우도농악에 속한다. 익산시 새실마을은 예로부터 마을농악이 왕성했고, 김제·정읍 등지에서 전문적인 농악을 배워온 사람들을 받아들여 오늘과 같은 높은 수준의 농악단을 배출할 수 있었다.

 

이리농악은 용기, 농기, 쇄납, 나팔, 사물(쇠4, 징2, 북2, 장고4), 법고(불교의식에서 쓰는 작은 북), 잡색(양반, 대포수, 조리중, 창부, 각시, 무동)으로 편성된다. 농악수들은 치배 또는 군총이라고도 하는데 흰 바지 저고리에 색동달린 반소매의 검은색 쇠옷이나 조끼를 입고 삼색띠를 두르며 머리에는 상모와 고깔을 쓴다. 쇠가락에는 일체, 이채, 삼채, 외마치질굿, 풍류굿, 오채질굿, 좌질굿, 양산도가락, 호호굿, 오방진가락 등이 있다. 판굿의 절차는 인사굿, 오체질굿(오른쪽으로 돈다 하여 우질굿), 좌질굿, 풍류굿, 양산도, 긴매도지(미지기 : 쇠와 장구가 마주보고 전진후퇴), 삼방진굿, 방울진굿, 호호굿, 달라치기, 짧은매도지, 짝드름, 일광놀이, 구정놀이(개인놀이), 기(旗)쓸기 순서이다.

 

상쇠의 부포놀이가 매우 다양하고 장구의 가락과 춤이 발달되어 있으며, 소고춤의 기법이나 진풀이가 많은 편이다. 비교적 느린 가락을 자주 쓰며, 가락 하나하나가 치밀하게 변형 연주되어 리듬이 다채롭다. 풍류굿, 덩덕궁이(삼채굿)에서는 악절마다 맺고 푸는 리듬기법을 쓰는 등 가락의 기교가 뛰어나다.

 

이리농악은 마을사회의 역사와 그 명맥을 함께 하는 민속예술로 농사의 고달픔을 잊고 서로의 화합과 마을의 단합을 도모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임실 필봉농악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11-5호

지 정 일 1988.08.01

소 재 지 전북 전북전역

 

 임실 필봉농악은 필봉리에 전승되고 있는 농악으로 호남좌도농악에 속한다. 필봉마을에는 예로부터 당산굿·마당밟기 정도의 단순한 농악이 전승되어 왔는데, 오늘날과 같은 높은 수준이 된 것은 1920년경에 상쇠(패의 지도자 격으로 꽹과리를 가장 잘 치는 사람) 박학삼을 마을로 초빙하여 그의 농악을 배우면서부터라고 한다.

 

필봉농악의 농악수들은 흰 바지저고리에 남색조끼를 입고 삼색띠를 두르는데, 쇠잡이(꽹과리나 징을 치는 사람)만 상모(털이나 줄이 달린 농악에서 쓰는 모자)를 쓰며 나머지는 고깔을 쓴다. 농기, 용기(그릇), 영기(깃발), 긴 쇠나발, 사물(꽹과리, 징, 북, 장구), 법고(불교의식 때 쓰는 작은 북), 잡색(대포수, 창부<남자광대>, 양반, 조리중<삼태기를 맨 중>, 쇠채만 든 농구, 각시, 화동과 무동<사내아이>)으로 편성된다.

 

농악의 종류에는 섣달 그믐의 매굿, 정초의 마당밟기(풍물을 치며 집집마다 도는 것), 당산제굿(당산에서 마을을 위해 제사지낼 때 농악을 치며 노는 것), 보름굿과 징검다리에서 치는 노디굿, 걸궁굿, 문굿, 농사철의 두레굿, 기굿과 판굿이 있다. 이 중에서 판굿은 가장 예술성이 뛰어나다. 뒷굿에 편성되는 영산가락은 가진영산, 다드래기영산(상쇠가 부포시범을 보임), 미지기영산, 재넘기영산(상쇠가 쇠시범을 보임) 및 군영놀이영산(개인놀이와 비슷함)으로 매우 세분화되어 있고 느린 편이다.

 

임실 필봉농악은 쇠가락(농악의 대표격인 꽹과리 가락)의 맺고 끊음이 분명하여 가락이 힘차고 씩씩하며, 개개인의 기교보다 단체의 화합과 단결을 중시한다. 예능보유자로 박형래가 인정되어 보전하고 있다.

 

3.백동연죽장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65호

지 정 일 1980.11.17

소 재 지 전북 전북전역

 

 연죽이란 일반적으로 담뱃대를 말하며, 백동연죽은 백동으로 만든 담뱃대를 말한다. 백동담뱃대를 만드는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백동연죽장이라고 한다.

 

담뱃대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후 일본을 통해 담배가 전래되면서라고 전해지며, 그래서인지 대일무역의 중심지였던 동래가 전통적인 명산지이다. 담뱃대의 구조는 입에 물고 연기를 빨아들이는 물부리와 담배를 담아 태우는 대꼬바리 그리고 그것을 잇는 가는 대나무 설대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대꼬바리는 열을 받는데다가 구조상 파손되기 쉬워서 구리, 놋쇠, 백동과 같은 금속으로 만든다. 간혹 사기제품도 볼 수 있으나 극히 드문 예이다. 물부리는 쇠붙이에 한하지 않고 옥(玉), 상아, 쇠뿔 등 비교적 여러 가지 재료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편이다. 무늬에 따라 이름이 다른데, 무늬가 없는 백동연죽은 민죽, 무늬가 예쁜 것은 별죽·꽃대라 부른다. 별죽은 재료에 따라 은물죽, 오동죽이라 한다. 백동연죽을 만드는 과정은 제일 먼저 백동을 만드는데 동 58%, 니켈 37%, 아연 5%의 비율로 합금한다. 니켈의 함류량이 많으면 백색이 나타난다. 합금한 금속들을 두드려 매우 얇게 만들고, 무늬를 넣어 모든 부분을 땜질하여 만드는데 금·은세공과 같이 섬세한 작업이 필요하다.

 

오늘날 연죽을 제작하는 장인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나라의 연죽은 동래의 파란장식 연죽과 금·은으로 새긴 담뱃대, 그리고 경주·김천·영해·울산·예천 등에서 만들어진 것이 유명하며 그 가운데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는 지역은 전북 남원과 경기도 안성지방이다.

 

황영보가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4.위도 띠뱃놀이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82-3호

지 정 일 1985.02.01

소 재 지 전북 전북전역

 

 위도띠뱃놀이는 마을의 평안과 어민들이 고기를 잘 잡을 수 있도록 기원하는 굿으로, 부안군 위도면 대리 마을에서 매년 1월초에 열린다. 띠뱃놀이는 바닷가에서 용왕굿을 할 때 띠배를 띄워보내기 때문에 띠뱃놀이라 불려졌고 소원을 빌기 위해 세운 집인 원당에서 굿을 하기 때문에 원당제라고도 한다.

 

띠배는 띠풀과 짚, 싸리나무 등을 함께 엮어 길이 3m, 폭 2m 정도의 크기로 만드는데 안에는 각종 제물과 함께 7개의 허수아비, 돗대, 닻을 만들어 달아 배형태를 갖춘다. 놀이는 수호신을 모신 원당에 올라가 제물을 차리고 굿을 한 후 마을로 내려와 마을의 산을 돌고 바닷가에서 용왕굿을 함으로써, 굿의 공간이 산과 마을, 바다로 이어진다. 굿은 집안 대대로 내려온 무당이 하며, 성주굿, 산신굿, 손님굿, 지신굿, 서낭굿 1(원당·본당서낭), 서낭굿 2(애기씨서낭), 서낭굿 3(장군서낭), 깃굿, 문지기굿으로 진행된다.

 

뱃노래와 술, 춤이 함께 하는 마을의 향토축제로 고기를 많이 잡고 안전을 기원하는 어민들의 신앙심이 담겨져 있다.

 

5.이리 향제줄풍류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83-2호  

지 정 일 1985.09.01

 

전라북도 이리시에서 이리정악원 사범으로 있는 율객 강낙승에 의하면 이리시 율회가 조직된 것은 1958년 경에 이리율림계가 조직되면서 부터라 한다. 그 조직은 10여명으로 율계를 조직하는데 계장에는 채규환이, 간사에는 강낙승이 맡았다. 이들은 매주 토요일에 율회를 가졌는데 흔히 잔영산에서 굿거리까지 연주하였다고 한다. 이리율림계는 1968년에 도교육위원회에 이리정악원 설립인가를 받았고, 5년 뒤에는 이리율림계원들이 이리정악회를 조직하였다.

 

6.윤도장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110호

지 정 일 1996.12.31

소 재 지 전북 전북전역

 

 윤도장은 24방위를 원으로 그려 넣은 풍수 지남침을 제작하는 장인이다. 윤도는 남북방향을 가리키는 자석바늘을 이용하여 지관이 풍수(집터 또는 묘자리를 정함)를 알아볼 때나 천문과 여행분야에서 사용되는 필수도구이다. 명칭의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 문헌에 처음 나오고, 일명 나침반, 지남철, 지남반, 패철이라고도 한다.

 

지남침의 원리는 중국에서 이미 한대에 실용화되어 점을 치는데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풍수지남침이 신라 후기부터 발달하였고, 고려 전기에는 풍수음양지리와 연결되어 땅의 형세를 보는 풍수가나 지관들에게 가장 중요한 기구로 사용되었다. 조선시대부터는 풍수가의 전용물에서 벗어나 여행자들도 사용하였으며, 특히 천문학자들에게는 휴대용 해시계에 정확한 남북을 가리키는 자오선을 정하는데 필수적이었다.

 

윤도는 중심의 지남침을 둘러싸고 24방위를 기본으로 하는 방위명들로 구성되어 있다. 거기에는 음양·오행·팔괘·십간·십이지가 들어 있다. 방위명 자체는 팔괘·십간·십이지가 조합되어 이루어져 있다.

 

근래에 윤도의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윤도 제작기술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으며 기능보유자로 김종대 씨를 인정하여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전라남도)

 

1.강강술래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  

지 정 일 1966.02.15  

 

강강술래는 노래와 춤이 하나로 어우러진 부녀자들의 집단놀이로 주로 전라남도 해안지방에서 추석을 전후하여 달밤에 행해졌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왜군에게 우리의 병사가 많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의병술로 마을 부녀자들을 모아 남자 차림을 하게 하고 옥매산을 돌도록 한데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원시시대부터 1년중 가장 달이 밝은 밤에 축제를 벌여 노래하고 춤추던 풍습에서 비롯된 민속놀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동쪽 하늘에 둥근 달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여인들은 손에 손을 잡고 오른쪽으로 돌며 둥근 원을 그려나간다. 목청 좋고 소리 잘하는 사람이 맨 앞에 서서 메기는 소리를 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강강술래’하며 받는 소리를 한다. 처음에는 늦은 가락으로 나아가다 노랫소리도 빨라지고 춤도 빨라져서 나중에는 뛰는 것처럼 동작이 빨라진다. 일반적으로 둥근 원을 그리며 원무를 추다가 흥이 나면 가운데 한 사람이 들어가 춤을 추는 남생이놀이를 비롯해서 고사리꺾기, 청어엮기, 기와밟기, 꼬리따기, 덕석말이, 문지기놀이, 실바늘꿰기 등으로 변화를 주었다. 강강술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노래하고 춤을 추어 구성지고 활기찬 한마당을 이룬다.

 

놀이는 늦은강강술래로 시작하여 중강강술래, 잦은강강술래로 변화하면서 발놀림이 빨라지고 흥이 절정에 이르는데, 이중 가장 아름답고 여성놀이다운 멋이 깃들여 있는 것이 늦은강강술래이고, 중강강술래는 해남과 진도지방에서만 보이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강강술래는 여성의 놀이가 적었던 때에 활달한 여성의 기상을 보여준 민속놀이의 하나로 민족정서가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2.나주의 샛골나이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28호

지 정 일 1969.07.04

 

 나주의 샛골나이는 전남 나주 샛골의 무명짜는 직녀 또는 무명짜는 일에 대한 통칭이다. 무명의 원료인 목화는 고려말 문익점이 중국 원나라에서 들여온 것으로, 조선 초기부터 쌀과 함께 화폐구실을 할 정도로 급속히 보급되었으며, 일본으로 보내는 주요 교역품 가운데 하나였다.

 

무명의 제작과정은 재배와 수확, 씨앗기와 솜타기, 고치말기, 실잣기, 무명날기, 베매기, 무명짜기 순으로 이루어 진다. 8월 중순부터 목화를 따기 시작하는데, 처음 딴 목화가 가장 좋다. 볕에 말린 목화를 씨아틀로 씨를 빼내 씨앗기를 하고 솜활이라는 기구를 이용해 솜을 부드럽게 만드는 과정인 솜타기를 거친다. 탄 솜을 말판 위에 펴놓고 말대로 비벼 고치를 만든 후 물레를 이용해 실을 뽑아 가락에 감는 실잣기를 한다. 실의 굵기에 의해 한 폭에 몇 올이 들어갈지 결정하는 무명날기를 하고, 베매기인 풀먹이기 과정을 거친 후 베틀을 이용하여 직물을 짠다. 예전에는 개성의 송도목과 진주의 진주목이 명품으로 날렸으나 오늘날에는 나주의 나주세목 또는 샛골목이 12승 무명으로 유명하다.

 

나주의 샛골나이는 흰색으로 인해 백의민족으로 일컬어지는 한민족의 옷을 풍요롭게 하며, 한민족의 애환을 담고 있는 역사적인 전통직물로 가치가 높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기능보유자로는 노진남이 인정받아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3.낙죽장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31호

지 정 일 1969.11.29

소 재 지 전남 전남전역

 

 낙죽장이란 불에 달군 인두를 대나무에 지져가면서 장식적인 그림이나 글씨를 새기는 기능 또는 그러한 기술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낙죽이 물건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고대 중국에서부터이며,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드문 기술이었으나, 조선 순조(재위 1800∼1834)때 박창규에 의해 일제시대까지 전승되었다.

 

낙죽은 온도를 맞추어 그려야 하고 인두가 식기 전에 한 무늬나 글씨를 마무리지어야 하기 때문에 작업 경험과 속력을 필요로 하는데, 주로 화살대·침통·칼자루·병풍·담뱃대·부채·대나무필통 등에 쓰인다. 낙죽은 접는 부채의 맨 처음과 마지막에 쓰이는 두꺼운 대나무(합죽선)살에 가장 많이 쓰인다. 합죽선에는 나비무늬를 많이 사용하지만 간혹 박쥐무늬도 보인다.

 

낙죽장은 전통적인 공예기술로 현재는 수요가 줄어 관광지에서나 맥이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므로 그 기술을 전승하고 보호하기 위해 문화재 보전차원에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다. 기능보유자로는 김기찬이 인정받아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4.곡성의 돌실나이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32호

지 정 일 1970.07.22

 

 ‘돌실’은 전남 곡성군 석곡면을 가르키는 것으로, ‘나이’는 삼베를 짜는 일(길쌈) 또는 그러한 기술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삼베는 ‘베’라고도 불리며, 한자어로는 마·마포·포 라고도 한다. 곡성의 돌실나이는 예로부터 품질이 우수하고 섬세하여 삼베의 대명사로 불리웠다.

 

삼베는 전기 신석기시대의 유적인 궁산조개더미에서 뼈로 만든 바늘에 실이 감겨 있는 것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기술이 발달하여 중국으로 수출하였고, 문물교환의 수단으로 모시와 함께 사용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면의 재배로 삼베의 생산이 약간 줄어들었다.

 

삼베의 제작과정을 보면 우선 재배를 해서 수확을 한 후, 잎을 훑은 삼단을 삼굿에 넣고 쪄서 껍질을 벗기고 햇볕에 말린다. 삼을 쪼개는 과정을 거친후, 실을 한올 한올 길게 잇는다. 그 후 베 한 필의 길이와 삼베에 따라 몇 올이 들어갈지 결정한다. 마지막으로 풀 먹이는 과정을 거친 다음 베틀을 이용해 베를 짠다.

 

오늘날 삼베의 폭은 30∼35㎝ 정도로 돌실나이가 9승, 안동포가 12승이 짜지고 있으며, 숫자가 높을수록 섬세한 포가 된다. 예전에는 북포(함경도 육진), 강포(강원도), 영포(경상도), 안동포(경북 안동)가 유명하였으나 서양문물의 유입에 따라 가내수공업으로 전락하면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곡성의 돌실나이는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는 김점순이 인정되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5.남도 들노래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51호

지 정 일 1973.11.05

 

 남도들노래란 전라남도 진도지방의 농부들이 농사일을 할 때 부르는 노래를 가리키는데 크게 논일 노래와 밭일 노래로 이루어진다.

 

모판에서 모를 찔 때에는 모뜨는 소리를 부르고, 논에 모를 심을 때에는 못소리를 부르며 논에서 김을 맬 때에는 절로소리를 부른다. 김매기가 끝나고 농부들이 마을에 들어올 때에는 길꼬냉이를 부른다. 여흥으로 진도아리랑을 부르기도 한다. 농부들이 들일을 하며 노래를 부르는 것은 예로부터 어느 고장에서나 볼 수 있었으나 전라도 서남지역의 노래는 특히 그 종류가 많고 음악성도 뛰어나다. 또한 진도군의 논매는 소리는 전라남도의 다른 지방에 비해 단순한데, 이는 토질이 비옥하여 호미로 논을 맬 필요없이 손으로 매면 족하기 때문이다. 밭일 노래는 콩밭을 매며 부르는 콩밭노래, 목화밭 일을 하면서 부르는 미영밭노래가 있다.

 

남도들노래는 향토색이 짙고 가락이 매우 흥겨운 노래이다.

 

6.채상장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53호

지 정 일 1975.01.29

소 재 지 전남 전남전역

 

 채상장은 얇게 저민 대나무 껍질을 색색으로 물을 들여 다채로운 기하학적 무늬로 고리 등을 엮는 기능 또는 기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언제부터 채상장이 있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채상은 고대 이래로 궁중과 귀족계층의 여성가구로서 애용되었고, 귀하게 여겨졌던 고급공예품의 하나였다. 조선 후기에는 양반사대부 뿐만 아니라 서민층에서도 혼수품으로 유행하였으며, 주로 옷·장신구·침선구·귀중품을 담는 용기로 사용되었다.

 

채상의 제작기술은 대나무 껍질을 균등하게 떠내는 데에서 시작된다. 대나무껍질을 입으로 물어 얇게 떠낸 다음, 떠낸 대나무 껍질을 물에 불린 후 그것을 무릎에 대고 일일이 다듬어 정리한다. 염색을 하고 나서 1∼5가닥씩 엇갈려 가며 엮는다. 모서리와 테두리에 남색이나 검정색 등 바탕무늬와 어울리는 비단으로 감싸면 완성된다. 채상의 무늬는 완자·수복강녕·십자·번개·줄무늬 등 주로 길복을 추구하는 길상적인 무늬이다.

 

채상장은 근대 이후 플라스틱 제품이 범람하면서 단절 위기에 직면하였으나 전통 민속공예로서 그 가치가 높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하게 되었다. 기능보유자로 서한규씨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200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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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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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두 그거 해야되는데 제가 쓴거 알려드릴께여 내공 마니 주삼여~~~~*^^*

웃다리농악,
종    목 시도무형문화재 
제1호 (대덕구)
명     칭웃다리농악(웃다리農樂)
분     류 무형유산 / 전통연행/ 음악/ 민속음악
수량/면적
지 정 일 1989.03.18
소 재 지 대전 대덕구 
시     대
소 유 자
관 리 자
상 세 문 의 대전광역시 대덕구 문화공보과 042-620-6225
일반설명 | 전문설명
농악은 농부들의 두레를 짜서 일할 때 치는 음악으로, 꽹과리·징·장구·북과 같은 타악기를 치며 벌이는 음악을 두루 가리키는 말이다. 굿·매구·풍장·금고·취군 등으로도 불린다.

웃다리농악은 지역에 따른 분류 명칭으로서 충청·경기지역의 농악을 가리킨다. 즉 지역적으로 충청·경기의 웃다리농악과 호남지역의 우도농악· 좌도농악· 영남농악· 영동농악으로 나눌 수 있다. 웃다리농악이 다른 지역과 구분되는 큰 특징은 칠채가락과 무동타기로서 이러한 특징은 황해도 일부 지역의 농악과도 일부 연관성이 있다.,

충청·경기농악 가운데 지금도 연희되고 있는 대표적인 농악으로는 대전의 웃다리농악 외에 서울 남사당농악, 평택농악, 천안 흥타령농악, 안성 남사당농악 등이 있다. 각 농악단의 상쇠들은 1950년대 후반에 김복만을 중심으로 새로 조직된 남사당패에 직간접으로 관여했던 탓에 현재도 각 농안단의 판제(연희 진행방법 및 구성)는 서로 유사성을 갖는다.

대전 웃다리농악의 판제는 인사굿-돌림벅구-당산벌림-칠채오방감기와 풀기-무동쾌자놀이-소고절굿대놀이-십자걸이(가새치기)-사통백이-원좌우치기-네줄좌우치기-쩍찌기-풍년굿-고사리꺽기-도둑굿-소고판굿놀이-무동꽃받기-개인놀이(따벅구, 설장구)-뒷풀이-퇴장굿으로 이루어져 있다. 판제중 가장 고형인 것은 당산벌림, 칠채가락에 의한 오방감기, 무동타기이며 기타는 다른 지방 농악 판제의 모방 또는 창안에 의해 더해진 것이다.
대전의앉은굿,
종    목 시도무형문화재 
제2호 (중구)
명     칭대전의앉은굿(大田의앉은굿)
분     류 무형유산 / 전통연행/ 의식/ 무속의식
수량/면적
지 정 일 1994.06.07
소 재 지 대전 중구  문창1동 54-1
시     대
소 유 자
관 리 자
상 세 문 의 대전광역시 중구 문화공보과 042-606-6284
일반설명 | 전문설명
굿은 형태에 따라 크게 선굿과 앉은굿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선굿은 무당이 서서하는 일반적인 굿을 뜻하고, 앉은굿은 충청지역에서 무당이 앉아서 주로 경을 읽는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역사적으로 불교, 도교 등 다른 종교와 상호관계를 맺으며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앉은굿은 굿에 춤이 더해져 한국 무속의 한 갈래로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대전을 중심으로 한 충청지역은 앉은굿의 전통이 강해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앉은굿 중심 무속문화권을 이룬다.,

대전의 앉은굿은 안택굿과 미친굿, 설경이 있는데, 안택굿과 미친굿의 예능보유자는 신석봉으로 1940∼50년대 행했던 방식으로 재현하고 있다. 설경의 예능보유자인 송선자는 1977년부터 무업에 종사해오면서 고(故) 황하청으로부터 15년간 설경을 비롯한 앉은굿을 전수받았다.

들말두레소리,
종    목 시도무형문화재 
제13호 (대덕구)
명     칭들말두레소리(들말두레소리)
분     류 무형유산 / 전통연행/ 음악/ 민속음악
수량/면적
지 정 일 2002.12.30
소 재 지 대전 대덕구  신일동 1682-8
시     대
소 유 자
관 리 자
상 세 문 의 대전광역시 대덕구 문화공보과 042-620-6225
일반설명 | 전문설명
들말두레소리는 대덕구 목상동 일원에서 전래되어 오던 논농사와 관련된 일노래이다. 갑천과 금강이 만나는 넓은 들에 자리잡은 목상동은 땅이 기름져 예로부터 이곳에서는 농사일이 성했고 농요 또한 많이 불리었다. 모를 심고 논을 매는 일은 집약적인 노동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예전에는 마을 단위로 공동작업을 하기 위한 두레가 조직되었다. 농번기가 되어 두레를 짤 때에는 보통 한 집에서 한 사람이 참가한다. 들말에 80호 정도가 살았다고 하니 들말의 두레는 80명 규모의 큰 노동조직이었던 셈이다.,

논일을 하러 나갈 때에는 마을 빈터에 두레꾼이 모두 모인 후 농기를 앞세우고 풍장을 치며 논으로 향한다. 논에 도착하여 작업을 시작하면 선소리꾼의 선창에 따라 모든 두레꾼이 우렁차게 뒷소리를 받으며 작업을 한다. 이 논농사소리는 온 들에 울려 퍼지는데 멀리서 듣는 사람까지 저절로 신명이 나게 했다고 한다. 바로 이 신명난 논농사소리를 통해 일의 고됨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농요는 옛사람들의 집단적 신명을 담아낸 소중한 문화자산이다.

제37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바 있는 들말두레소리의 대표적인 노래로는 모찌는 소리인 ‘뭉치세’, 모심는 소리인 ‘상사소리’, 논매는 소리인 ‘긴 상사소리’와 ‘자진 상사소리’가 있고, 이밖에 맞두레소리, 도리깨질소리 등이 있다.

보유자 고석근은 목청은 다소 거치나 단단하고 울림이 좋으며 선소리꾼으로 갖춰야할 초성(목청)과 문서(사설)가 좋고 사설을 선택하고 가락에 안배하는 솜씨가 탁월하다.
1. 목달미의 대보름 액막이 놀이

목달동에는 목달미 디딜방아 액막이 놀이가 전해 오고 있다. 이 액막이 놀이는 특히 정월 대보름날 한 해의 액을 방어하는 큰 행사로 치러졌고, 돌림병이 돌 때에는 놀이적 성격보다는 액막이 마을 굿에 가까운 형태로 행해졌다 한다.

목달미 마을에서 전해 오는 민속놀이는 마을에 액운이 꼈을 때 그 액귀를 물리치기 위해서 이웃 마을의 디딜방아를 훔쳐와서는 마을 삼거리에 세우고, 그 마을에서 액귀를 몰아 내는 제향을 행하며 마을 사람들이 흥겹게 노는 놀이이다.
*대전광역시 중구/ 으능정이 문화제/ 중구.중구문화원/ 예술축제 
1.자미축제

북구는 풍부한 문화·예술·관광자우너이 많아 역사와 문화가 조화롭게 숨쉬고 잇는 정답고 자랑스러운 고장이다.
이처럼 우리 고장의 훌륭한 정신문화를 우리 후손들이 본보기로 삼고 이를 통해 구민 모두가 하나가 되기 위해 광주의 무등산권을 중심으로 한 시가문화재를 보존·복원하여 선인들의 정신문화를 되새기며, 사라진 자미탄의 아름다움을 되살려 북구민의 멋과 여유를 한데모아 공동체의식을 높이고자 ‘자미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자미탄은 식영정 앞 절벽 아래로 원효계곡에서 흐르는 창계천이 있었으며, 이곳에 백일홍(배롱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7월부터 9월까지 진홍색 백일홍 꽃이 만발해 창계천 여울에 비춰졌다. 그러나 1974년 광주호 댐 공사로 그 아름다운 절경(絶景)이 모두 물 속에 잠겨 버렸다.
이른바 성산사선이라 하던 석천 임억령, 서하당 김성원, 제봉 고경명, 송강 정철 등이 식영정과 환벽당을 오가며 작시제영한 '식영정 이십영'이 있으며, '식영정 20경' 가운데 이들 성산사선들이 찬미하는 시(詩)를 읊었던 한곳을 자미탄( 백일홍 꽃 핀 여울이란 뜻)이라 불려져 왔다.
기 간 : 10월 경
장 소 : 북구일원
주요행사 : 전시회, 퍼레이드, 체험행사

2.칠석동 고싸움놀이 대축제

고싸움놀이는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 웇돌마을에 정월대보름 세시풍속으로 전해 내려온 민속놀이다. 고싸움놀이를 통해 마을사람들은 그 해 농사의 풍년과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였으며, 마을사람들의 협동과 단결을 조장하고 굽힘 없는 투지와 끈질긴 인내심을 키우도록 하였다.

고싸움은 「고」와 「싸움」의 복합어로서 두 개의 고가 서로 맞붙어서 싸움을 벌인다는데서 연유된 것으로 보며, 여기서 「고」는 한가닥을 길게 뺍서 둥그런 모양을 만들의 맺는 것을 지칭하고 있다. 남자를 상징하는 동부와 여자를 상징하는 서부의 두패로 갈라져서 싸움을 벌이는데 여자를 상징하는 서부가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있다. 고싸움놀이는 가장 남성적인 남도민의 기상과 멋이 깃든 민속놀이로, 지난 86아시아대회와 88올림픽경기대회에서 개막 식후 공개행사로 시연되어 세계인에게 한국인의 진취적 기상과 강한 패기를 널리 알려 세계적인 민속놀이로 자리잡아 왔다.

기 간 : 매해 정월 대보름
장 소 : 남구 칠석동 고싸움놀이 전수관
주요행사 : 고 행진, 체험행사. 농악놀이

3.만드리 풍년제

만드리는 6월 초순에 모를 심은 후 6월 중순에 초벌, 7월 초순에중벌에 이어 7월 중순인 백중 즈음에 세벌 김매기를 하면서 불렀던 전통적 농요이며, 만드리 풍년제는 이날 농사를 잘 지은 농주들이 머슴의 노고를 위로하고 마을 주민의 화합을 다지기 위해 즐거운 한때를 보내게 했던 풍년기원 마을축제이다.

만드리 재현행사는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농기를 앞세운 선소리꾼이 선소리와 농악팀의 풍물장단에 맞춰 뒷소리꾼의 후렴이 이어지면서 논으로 이동한 후 김매기를 하며 풍년 농사를 기원한다, 김매기를 마친 머슴들은 황소를 타고 꽹과리 등을 치면서 들녘을 순회한 후 마을로 돌아온다.

마을에서는 엿장단타령, 풍물놀이, 판소리공연 등의 다채로운 부대행사와 함께 행사에 참여한 모든 주민이 한데 어울리는 신명난 한마당 잔치가 펼쳐지며 대미를 장식한다, 모든 농사일이 기계화되면서 20여년전까지 흔히 볼 수 있던 농촌 전통문화가 사라져가고 있는 시점에서 만드리 노래가락을 복원하고 많은 주민들이 함께 하면서 우리 농촌 전통문화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4.충장로 축제

광주의 중심상권이며 광주시민의 젊음과 낭만, 추억이 넘치는 충장로에서 시민들에게 문화예술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고,
축제를 통한 주민화합 및 축제의 관광상품화를 위한 추억의 7080[광주충장로축제]가 전국규모로 개최될 예정이다.
 

수원 갈비축제:수원갈비축제는 매년10월에월초 수원에서 벌어지는 푸짐한먹거리 마당입니다.

수원이 자랑하는 향토 음식인 갈비를 전 셰계에  소개하기 위하여 시작한 야외 음식 축제입니다.

수원 갈비 축제기간에는 야외 공원에서 맛 좋은 갈비를 먹을수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우리의 전통 예술 공연도 함께열림니다.

 이상 제가 알고있는것은 여기 까지 입니다*^^*

2007.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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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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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oo****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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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장의 축제는 다산 정약용 그림,글짓기,시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진이 안나와서 사진은 못합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저도 숙제인데 아는것만 말씀드린것 이에요

 ㅎㅎ 좀 모자라더라도 써주세요
 Bye, Bye

200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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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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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i****
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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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단오제

-강원도 강릉

-음력5월3일~5월7일동안지내는마을굿

-제의(유교식제의)와단오굿

-주요행사:관노가면극,국악,공연,연극공연,씨름,줄다리기등

 

한산대첩 축제

-경상남도 통영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왜군을 물리친 한산 대첩을 기념 하기 위한 축제

-8월13일~8월17일동안

-주요행사:군점,풍어재,승잔무,통영오광대,마당놀이등

 

2007.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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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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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닝
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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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구에는 도봉산 축제, 강릉에는 강릉 단오제,  통영에는 한산대첩축제가 있습니다.

근데 어디??

2007.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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