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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레드 제플린과 딥퍼플 음악의 차이
rhap**** 조회수 14,621 작성일2004.12.01
제가 레드 제플린의 노래 몇 곡과
딥퍼플의 노래 몇곡 을 좋아합니다..(두 그룹 모두 팬은 아닙니다...단지
괜찮다고 생각하고 좋아하는 곡이 몇 곡씩 있을 뿐입니다..)
그 전까지는 그런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는데
어제 우연히도
윈앰프로 음악을 들을때 두곡을 연이어서 재생해서 듣게 되었습니다.
.................................
뭔가가 비슷하다....
그게 제 느낌이었습니다.(곡 자체에 대한 느낌이라기보다 두 그룹들의 음악에
대해서...)
제가 알기론 라이벌이었다고 들었거던요...
음악적인 면도 좀 다르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그렇게 다른 면을 찾지 못하겠더군요...
그래서..대략...10번정도....두 그룹의 대표곡(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해서
가장 유명하고 저 자신도 좋아하는 곡으로...)을 들었거던요..
레드 제플린-Stairway to heaven
딥퍼플-soldier of fortune
위에 두곡들로요...
근데 분위기랑 뭐랄까...반본되는 멜로디.....(밑에서 깔리는 멜리디의
반복말이죠....멜로디란 표현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제가
음악을 좋아하지만 깊이 파고 들진 않아서 음악적인 표현이 맞는지 틀린지는
잘 모르겠네요..암튼...) 전체적인 분위기도 그다지 다르다고 못
느끼겠더라구요...
라이벌이란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을때는...
뭔가 엄청 다를거란 생각을 했는데.....별로 그렇지 않은가 봐요..
(제가 잘 몰라서 그렇겠지만...)

암튼....차이점 좀 설명해 주세요.....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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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꾸 레드 제플린 얘기하면 맞는다. 형님 공부하니까, 조용히 해라!”
“딥 퍼플 좋아하는 애들은 왜 죄다 저 모양이냐? 싸그리 청량리로 보내야 돼!”

딥 퍼플과 레드 제플린은 서로 부딪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을 추종하는 팬들은 인내심이 없었다. 그들은 딥 퍼플과 레드 제플린을 경쟁 상대로 설정, 우열을 재단하면서 수많은 논쟁을 벌였다. 그러다가 설득이 안 되면 때로 험악하게 대치하기도 했다. 총성 없는 전쟁이었다. 70년대 교실은 90년대 교실이 서태지 신승훈 김건모로 갈렸듯이 딥 퍼플파(派)와 레드 제플린파로 나뉘었다. (그때도 나중에는 퀸파가 가세, 3분할되지만…)

록의 역사 서적을 진하게 인쇄한 불멸(不滅)의 그룹 딥 퍼플(Deep Purple)과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두 밴드 모두 결성한지 35년을 넘긴 추억의 그룹이지만 아직도 그 이름과 음악은 록 팬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다. 딥 퍼플은 현재까지 계속되는 왕성한 활동으로 '살아있는 전설'로 추앙되고 있고, 레드 제플린은 드러머의 사망으로 1980년에 그룹의 역사를 접었지만 '영원한 지존'으로 존경받는다.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딥 퍼플과 레드 제플린이 본의 아니게 경쟁의 평행선을 달리게 된 것은 두 그룹 모두 1968년 영국에서 결성되었다는 점, 그리고 하드록과 헤비메탈의 꼭짓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공통분모 때문일 것이다.

두 초특급 밴드의 음악은 그러나 하드록이라는 '이너 서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차이가 있었다. 그룹의 색깔을 결정지은 인물은 딥 퍼플의 경우 클래식을 전공한 오르간주자 존 로드(Jon Lord)였으며, 레드 제플린은 블루스 그룹 야드버즈(Yardbirds) 출신의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Jimmy Page)로서, 그 무게중심부터 달랐다.

1기부터 4기까지 오면서 복잡한 가계(家系)도를 그려낸 딥 퍼플, 그리고 4인조(존 보냄, 로버트 플랜트, 존 폴 존스, 지미 페이지)의 단란한 핵가족화를 이룬 레드 제플린 모두 각 구성원들의 탁월한 실력과 뜨거운 열정으로 막 태동하던 헤비메탈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존 로드, 닉 심퍼(Nick Simper/베이스), 로드 에반스(Rod Evans/보컬), 이안 페이스(Ian Paice/드럼), 리치 블랙모어(Ritchie Blackmore/기타)로 이루어진 초기 딥 퍼플은 고전음악을 근간으로 다른 가수들의 곡들을 커버하는 동시에 사이키델릭과 클래식을 바탕으로 한 웅장하고 스피디한 스케일의 하드록을 추구했다. 이들의 데뷔곡 'Hush'는 조 사우스(Joe South)의 원곡이었으며, 'We can work it out'과 'Help(이상 비틀즈)', 'Kentucky woman(닐 다이아몬드)', 'River deep, mountain high(아이크 앤 티나 터너)' 같은 로큰롤, 소울, 팝 등 다른 뮤지션들의 여러 형식을 섭렵하는 노력을 단행했다.

데뷔 싱글 'Hush'에 대해서 존 로드는 “1960년대 후반 미국에는 딥 퍼플이라는 이름의 약물이 있었기 때문에 'Hush'는 영국보다 미국, 특히 캘리포니아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았었다. 물론 그것은 우연이었다. 하지만 우리를 미국그룹으로 착각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회상한다. 이렇듯 기존 노래들을 재해석한 것은 아직 자신들의 '음악정책'을 확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드 제플린은 처음부터 블루스에 하드록을 입힌 '블루스 하드록'이라는 기초공사 위에 다채로운 색깔의 음악 벽돌을 쌓아 올렸다. 정통 블루스(Since I've been loving you)와 하드록(Communication breakdown), 헤비메탈(Immigrant song)은 물론, 포크(Going to California), 레게(D'yer mak'er), 라틴(Fool in the rain), 뉴웨이브(Carouselambra), 재즈(How many more times), 펑크(The crunge), 컨트리(Down by the seaside), 동양적인 민속 음악(Kashmir), 부기우기(Boogie with stu), 프로그레시브(In the light), 노이즈(We're gonna groove), 초기 로큰롤(Hot dog) 등 제한이 없었다.

제플린의 음악감독이라 할 지미 페이지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같은 스타일의 음반을 만들지 않는다. 앨범을 발표하면 전작과 다른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주변의 모든 것에 흥미를 갖는다. 특히 소리에 대해서는 호기심과 애정을 갖고 귀를 기울이며 분석한다.” 그는 레드 제플린의 사운드를 '우주의 모든 음향을 집약한 것'이라고도 했다.

열쇠는 신시사이저!
당시 두 그룹이 앞서갈 수 있었던 배경으로 악기의 발달과 다양함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70년대 중반 개발된 신시사이저가 본격적으로 발달하면서 기존의 일렉트릭 기타와 베이스, 드럼만으로 표현하지 못했던 사운드의 스케치가 가능했다.

클래식 음악으로 시작한 키보드 연주자 존 로드는 '하몬드 오르간'을 앞세워 딥 퍼플에게 고풍스런 사운드를 이식했다.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는 그 열매였으며, 신시사이저가 위력을 발휘한 'Anthem', 'April' 그리고 무엇보다 'Child in time' 같은 곡들은 훗날 새로운 장르로 각광받는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기틀을 다졌다.

초기 딥 퍼플의 매니저였던 토니 에드워즈(Tony Edwards)는 “1960년대 후반에 존 로드는 내게 와서 록 그룹과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하는 꿈을 꾼다는 얘기를 자주 했는데 이것을 실천으로 옮긴 것이 바로 였다.”고 증언한다. 본인 존 로드가 굳이 “그렇다고 이 음반으로 우리가 프로그레시브 밴드라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피력할 정도로 는 클래식에 바탕을 둔 '아트 록'을 시도했다.

라이브에서 하몬드 오르간의 신비하고 독특한 음감으로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나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뮤직' 같은 클래식 음악을 자주 연주해온 존 로드뿐만 아니라 리치 블랙모어 역시 클래시컬 음악에 대해 정통했던, 또 한 명의 천재였다. 1970년대 중반에 딥 퍼플을 떠나 레인보우(Rainbow)를 조직한 리치는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멋진 메탈로 편곡한 'Difficult to cure'를 창조했을 만큼, 존과 리치 두 사람은 생래적으로 고전 음악과 교분이 두터웠다.

레드 제플린도 기타 베이스 드럼 보컬의 재래식 방식에 안주하지는 않았다. 존 폴 존스(John Paul Jones)는 본업이 베이스주자였지만 오르간, 피아노, 신시사이저, 멜로트론 등 모든 건반악기를 전담해 사운드 확장의 실무를 떠맡았다. 'In the light'이나 'All my love', 'Carouselambra' 등에서 들려주는 화려한 키보드 연주는 존 폴 존스의 공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제한된 장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고 넓은 음악풍경을 보려면 건반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했고, 한편으로는 “딥 퍼플을 의식한 움직임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을 던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지미 페이지는 지휘자, 리치 블랙모어는 테크니션
그룹 멤버 가운데 기타리스트인 지미 페이지와 리치 블랙모어만을 따로 떼놓아 비교해보자. 여기서 차이가 나온다. 페이지는 뛰어난 연주자 작곡가를 넘어 음반을 책임지는 프로듀서이자 편곡자였다. 음반 제작에 관한 모든 것은 그의 손을 거쳤다. 로버트 플랜트, 존 폴 존스, 존 보냄과 공동으로 작곡하기도 하지만 프로듀싱과 어레인지먼트는 어디까지나 지미 페이지의 영역이었다. 그는 레드 제플린 비행선의 파일럿이자 씽크 탱크였다.

반면 리치 블랙모어는 기타 테크니션의 위치에서 이탈하려고 하지 않았다. 지미처럼 '기타와 전체적인 사운드의 조화'를 지휘하기보다는, 기타만을 애무하면서 그 자체로서의 마력을 분출하는데 몰두했다. 지미가 음악을 사랑했다면 그는 기타를 사랑했다. 'Highway star'에서의 신들린 기타 솔로는 당시까지만 해도 속주 기타리스트로 명성을 날리던 블루스 밴드 텐 이어스 애프터(Ten Years After)의 앨빈 리(Alvin Lee)를 능가하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며 전 세계 '기타 키즈'를 홀려버렸으며, 'Burn'을 통해서는 경이로운 바로크 메탈의 기타 연주 패턴을 선사했다.

그러나 딥 퍼플이 스위스 제네바의 호수 근처 호텔에서 일어난 화재를 보고 '2기 보컬' 이안 길런(Ian Gillan)란이 휴지에 가사를 적는 순발력(?)을 발휘한 'Smoke on the water'야말로 리치의 업적을 총 정리해줄 대표작일 것이다. 이 곡의 기타 리프는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 '팝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기타 리프'로 꼽힌다. (참고로 딥 퍼플의 2기는 베이스 닉 심퍼가 로저 글로버로, 보컬 로드 에번스가 이안 길런으로 대체되면서 존 로드, 리치 블랙모어, 이언 길런, 로저 글로버, 이언 페이치 5인으로 정립되었다. 흔히 이 때를 최고의 라인업이라고 한다)

1970년 앨범 을 기점으로 존 로드보다는 리치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그룹의 사운드는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강력하고 스피디한 스타일로 형체가 바뀌었다. 아트 록의 기운이 퇴색한 것이다. 그 최고점에 오른 결정체가 바로 딥 퍼플의 명반 중의 명반 이다.

너희는 경쟁, 우리는 화합!
지미와 리치는 극도의 매스컴 기피증을 보인다는 사실은 같지만 그 외는 모든 게 달랐다. 그룹을 바라보는 시각도 큰 차이를 보였다. 지미가 전체를 본 반면, 리치는 자신에게 집중했다. 지미 페이지는 “나는 단지 레드 제플린의 1/4를 차지하는 구성원일 뿐”이라며 겸손한 태도로 다른 세 멤버들을 배려했다. 개성을 한 손에 쥔 대신 다른 한 손에는 '밴드사랑'을 쥐고 있었다. 존 폴 존스의 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별난 성격에 판이한 기호를 가지고 있다. 우린 그것을 상호 존중했다. 어쩌면 그것이 레드 제플린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는 바탕일지 모른다!”

제플린 성원들의 찰떡궁합은 나중 독자적인 레이블 스완송(Swansong) 레이블을 설립할 때에도 이견 없이 일체된 모습을 보여준 것이 말해준다. 팀의 간판 로버트 플랜트는 말했다. “레코드 회사는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도 하는 일은 별로 없다. 이것은 레코드 회사의 횡포에 대해서 이전처럼 우리가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다.” 그것은 로버트 개인의 심정이 아니라 전 멤버의 간절한 바람이었다.

반면 리치 블랙모어는 어둡고 무뚝뚝한 성격(연주할 때 그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으로 짙은 개성, 멋지게 표현해서 '카리스마'를 발산했다. 그룹 이름 'Deep Purple'은 자신의 할머니가 좋아했던 노래 제목에서 따올 정도로 애초 그의 파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베이스 주자 로저 글로버의 회고. “1970년 독일 공연에서 리치는 몸이 아파서 무대에 서지 못했다. 그의 모습을 보지 못한 수많은 관중들이 공연장에서 난동을 피우자, 리치는 자신이 팀의 리더뿐 아니라 딥 퍼플의 간판스타로 부상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이때부터 그룹 내에서 리치 블랙모어와 존 로드, 그리고 이안 길런 사이에 긴장감이 팽배해지기 시작했다.”

부터 강력한 사운드의 추진으로 자신의 위치가 공고해진 리치 블랙모어는 존 로드, 이안 길런과의 헤게모니 쟁탈전에서 승리하면서 대권(?)을 잡았다. 로저 글로버의 말을 더 들어보자.

“무대 위에서도 리치와 존은 주도권 싸움을 했다. 그들은 이것이 경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앨범제작 당시부터 리치는 우리를 점점 더 강압적으로 대했고 이안 길런은 그때부터 과음하기 시작했다. 불화의 시작이었다. 1973년에 를 제작할 때는 이안 길런과 리치 블랙모어는 대화도 안했다.”라고 술회한다. 한편 드러머 이안 페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나는 그들의 경쟁을 즐겼다!”

딥 퍼플의 음악은 팀워크보다는 경쟁과 긴장감을 밑반찬으로 했다. (이 정도면 딥 퍼플의 라이벌은 레드 제플린 아니라 그룹 내 멤버들!!). 하지만 로저의 말에 따르면 서로 눈을 붉혔다고 시너지 효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른 쪽이 '호혜평등'을 먹고사는 동안 그들은 '상호갈등'이 식단이었던 셈이다.

이들의 성적은?
그러면 이들의 음악에 대한 음악적, 상업적 성과는 어떨까? 싱글 차트에 오른 곡들은 비슷하지만 앨범 차트 성적과 평가는 레드 제플린이 월등히 앞선다.

딥 퍼플은 'Hush(4위)', 'Kentucky woman(38위)', 'River deep-mountain high(53위)', 'Black night (66위)', 'Smoke on the water(4위)', 'Woman from Tokyo(60위)', 'Might just take your life(91위)', 'Perfect stranger(61위)'까지 모두 8곡을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에 올려놓아 2곡이 톱10을 기록했다. 반명 레드 제플린은 톱10은 'Whole lotta love(4위)' 한 곡에 그치지만 'Good times bad times(80위)', 'Living loving maid(She's just a woman-65위)', 'Immigrant song(16위)', 'Black dog(15위)', 'Rock and roll(47위)', 'Over the hills and far away(51위)', 'D'yer mak'er(20위)', 'Trampled under foot(38위)', 'Fool in the rain(21위)' 등 싱글은 9곡으로 결과는 서로 비등하다.

하지만 앨범 차트는 레드 제플린의 완승이었다. 음반 10장 모두가 빌보드 앨범 차트 10위에 진입했으며 그 중에서 , , , , 자신들의 기록 영화 사운드트랙인 , , 는 1위를 차지했다. 데뷔 앨범 도 10위, 는 2위를 기록했으며 마지막 음반 역시 6위에 올라 대미도 화려하게 장식했다.

반면 딥 퍼플의 앨범차트 성적은 들쑥날쑥. 발표한 앨범도 50여장이나 될 만큼 다작이기도 했지만 그 가운데 , , 만이 10위안에 들었을 뿐 다른 앨범들은 빅 히트를 맛보지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록의 성경'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은 은 143위, 은 32위, 그리고 국내에서 유독 사랑받은 곡 'Soldier of fortune'이 수록된 은 20위에 그쳤다. 8년 만에 재결성해 공개한 도 17위에서 더 이상 상승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음반 전체에 대한 평가나 록 음악 역사에 끼친 영향력을 비교해도 사정은 변함이 없다. 쿼텟(4인)의 음반들은 '원 투 쓰리 포'를 비롯해 등 대부분 마스터피스의 대열에서 빠짐없이 언급되고 있지만, 퀸텟(5인)의 작품들은 , 등 몇몇 음반을 제외하곤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일례로 메탈 전문지 <히트 페레이더>(Hit Parader)가 97년 8월에 발표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하드 록 앨범 100선'을 보자. 여기서 당당 1위는 레드 제플린의 <Ⅳ>였고, <Ⅰ>이 12위, <Ⅱ>가 17위를 차지한 것에 비해 딥 퍼플은 가 15위, 은 54위에 머물렀다.

<롤링 스톤>지가 같은 해 잡지 30주년을 맞아 내놓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팝 앨범 200선'에서도 레드 제플린은 <Ⅱ>와 <Ⅳ>가 200장 안에 들어간 반면(순위를 매기지 않았다) 딥 퍼플의 것은 없었다. 이런 결과는 음악도 음악이겠지만 록의 뿌리가 되는 블루스에 수절하면서도 '아름다운 해산'을 결정한 레드 제플린에 대한 예우가 어느 정도 작용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는?
그렇다고 딥 퍼플이 패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바로 우리나라가 딥 퍼플을 살려준다. 대한민국에서는 명백히 딥 퍼플의 완승이다. 지금까지 세 번의 내한 공연을 통해 그 지명도를 확인할 수 있었던 'Highway star'와 'Smoke on the water', 매년 4월이면 라디오에서 들을 수 있는 'April'과 현충일마다 나오는 'Soldier of fortune' 등을 비롯해 'Child in time', 'Burn', 'Black night', 'Speed king', 'Lazy', 'Space truckin'', 'Strange kind of woman' 등 많은 곡들이 라디오전파에서 영생(永生)한다. 특히 전성기 시절 'Smoke on the water'와 'Highway star'의 기타 리프를 모르면 간첩으로 몰렸을 정도였다. (지금도 그렇고)

분명 우리에게 하드록을 가르쳐준 존재는 제플린이 아니라 딥 퍼플이었다. 그래서 40대 이상의 우리 기성세대 대중들에게는 딥 퍼플이 더 머리 속에 남아 있다. 할머니도 'Highway star'에 맞춰 고고 춤을 췄으니까. 제플린은 그것에 비하면 마니아들의 음악이었다. (결국 레드 제플린의 우위는 386세대에 와서야 비로소 확립된다)

레드 제플린의 애청곡은 'Baby, I'm gonna leave you', 'Stairway to heaven', 'Whole lotta love', 'Black dog', 'Rock and Roll', 'Since I've been loving you' 정도에 그칠 정도로 상대적으로 적었다. 미국의 블루스를 자주 접하지 못했던 1970년대 팝송 팬들에게 흑인 블루스를 토대로 한 레드 제플린의 음악은 어렵고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음악 시간부터 클래식을 접했던 우리 학생들은 고전음악과의 퓨전을 시도한 딥 퍼플 음악이 편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오 필승 딥 퍼플!!'

'애정'과 '애증'
두 그룹을 확연하게 갈라놓는 차이점으로 흔히 팀의 결속력이 논의된다. 구성원들 사이에 불거져 나온 음악적인 의견 차이와 그로 인한 불화는 악명 높은 딥 퍼플 멤버 교체의 근인(根因)이었다. 특히 존 로드와 리치 블랙모어의 헤게모니 쟁탈전은 핵심 멤버인 블랙모어의 탈퇴를 가져온 결정적인 이유였으며 팀 내의 '스타'의 위치를 점하기 위한 이안 길런과 리치 블랙모어와의 신경전은 길런이 결국 딥 퍼플의 보컬리스트로서 마이크를 내려놓은 결정적인 이유였다.

게다가 기수에 따른 분류와 소위 '딥 퍼플 패밀리'라고 불리는 화이트스네이크(Whitesnake)와 레인보우(Rainbow)를 거친 멤버들이 직렬과 병렬로 상호 연결되면서 복잡한 트리를 그려냈다. 이 난해한 족보를 정확하게 정리하지 않고 구성원들의 이름을 순서대로 외우지 못하면 그는 애처롭게도 팬 축에도 끼지 못했다.

딥 퍼플을 거친 뮤지션으로는 보컬리스트 데이비드 커버데일(David Coverdale), 기타 주자 토미 볼린(Tommy Bolin), 베이스 연주자 글렌 휴스(Glenn Hughes) 등이 있다. 1976년에 해산했다가 1984년에 재결성 한 이들은 현재는 가장 화려한 멤버를 자랑하는 2기 라인업에다가 다만 스티브 모스(Steve Morse)가 리치 블랙모어를 대신한 멤버로 전 세계를 돌면서 왕성한 공연 활동을 하고 있다. (아마 리치가 있다면 또 이언 길런이 자진 그만둘 것이다. 팬들은 리치가 연주하는 'Smoke on the water'를 듣고 싶은데, 사정은 그러하니 참 환장할 노릇이다)

한편 리치 블랙모어는 자신의 여자 친구와 함께 포크를 기반으로 한 뉴 에이지 성향의 듀엣 '블랙모어스 나이트'(Blackmore's Night)를 결성해 치열하게 살았던 젊은 시절을 사색적인 음악으로 반추하고 있다.

레드 제플린은 록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의롭게 마침표를 찍었다. 1980년 9월 25일, 드러머 존 보냄이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나머지 멤버들은 다음과 같은 담화문을 발표하고는 의연하게 그룹을 해산했다.

“우리는 다정했던 친구의 죽음에 대해 고인의 가족에게 깊은 애로의 뜻을 밝히며 동시에 우리와 매니저들이 지녔던 화목함과 연대감을 다시 확인하면서 더 이상 활동을 계속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그들은 돈 대신 영원히 퇴색하지 않는 아름다운 우정을 지켰다. 딥 퍼플은 화려한 현세를, 레드 제플린은 꺼지지 않는 무한한 내세를 선택했다고 할까. 현재 딥 퍼플은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스타'로 활동 중이지만 레드 제플린은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밟았다.

위대한 두 록 밴드는 그렇게 그들이 남긴 노래와 같은 음악 인생을 택했다.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는 없다. 그들이 역사에 길이 남는 것은, 그리고 지금까지도 '영원한 맞수'로 언급되는 것은 바로 그 '다름' 때문일 것이다.

-출처 이즘

200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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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a****
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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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두 밴드의 분위기는 상당히 다릅니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쌍벽이라 불리웠고 두 밴드 모두 락 역사에 공헌도가 지대한 그룹들입니다.

그러나 서로 무대에서 마추친 적은 없다지요.

단 한 번 마추쳤으나 딥퍼플 얘들이 연주중 악기를 다 때려뿌셨다지요.





레드 제플린-Stairway to heaven
딥퍼플-soldier of fortune

이 두곡의 비교보다

Led Zeppelin 은 Going To California, Immigrant Song, Since I`ve Been Loving You


그리고 딥 퍼플은 Fireball 이나 Highway Star , Smoke On The Water, Child In Time

이 정도 들어보시면 그 차이를 확연히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말하면 레드는 굉장히 섬세한 락을 하는 반면 딥 퍼플은 뭉툭하면서도 다채롭고 화려하지요. 뭉툭한 화려함과 섬세한 화려함이랄까?


음악적 성향 외에도 하나의 차이점이 있으니, 레드는 드러머 좀 본햄이 죽자 밴드의 해산을 결정했지만, 딥퍼플은 기타리스트 리치 블랙모어의 거의 일인 독재체제로 멤버를 막 갈아치웠지요. 이러한 리치 블랙모어의 성향은 이후 '레인보우'에서도 계속됩니다.

200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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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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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메탈 음악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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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멤버구성부터 틀리죠. 제펠린은 락그룹의 공식화된-비틀즈 혹은 버디할리에서 기인했다죠 아마..- 멤버가 4명(보컬,기타,드럼,베이스)인 반면 퍼플은 거기다 건반 연주자-그것도 클래식 전공을 한 엘리트.다름아닌 존 로드-를 더했죠. 여기서부터 엄청난 차이죠.퍼플은 요즘엔 조금 덜 하지만(물론 돈에어리란 거장이 대신하고 있지만 존의 그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음) 클래식 화성을 바탕으로 한 -ex) Child In Time - ,그리고 키보드가 전면으로 등장한다든지 기타와 대등하다든지 한 그런 긴 곡들이 꽤 있음다. 물론 Speed King나 Highway Star같은 곡들도 많았고...그에 비해 제펠린은 -존 폴 존스의 스트링을 차치하고서라도- 꽤 정직하고 퍼플에 비해 여러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했다. 그룹의 바탕이 되는 블루스에서부터 포크,사이키델릭,훵키한 리듬,재즈적인 어프로치, 심지어는 레게,두왑까지..이런 음악적인 시도에서 만큼은 제펠린이 조금 더 유연하지 않았나 싶다. 또 제펠린의 모든 음반은 다 걸작이라고 불릴만큼 이런 면에서 많은 점수를 받지 않았나 싶다(하지만 완성도도 뛰어나다). 보컬에서만 봐도 로버트 플랜트는 블루스와 소울을 기반으로 한 허스키하고 깊이있는 목소리를 지닌 반면 이언 길란은 샤우팅과 반가성을 주로 쓰죠.(길런의 전성기때 목소리는 뻑가죠.가늘긴 하지만 아주 소름끼치죠.지금은 늙어서 영 목소리가 안나오지만) 대략 이정도면 만족은 못하시겠지만 이해는 하셨으리라 봅니다. 두밴드 자체가 워낙 어마어마하고 후대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밴드들이라 감히 이정도로 밖에 쓰지 못하게씀다.물론 본인의 글쓰기가 딸려서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혹자도 이야기한 바있지만- 십년넘게를 슈퍼세션에 가까운 라인업을 유지한것과 그들중 한명이 사라졌을때 과감하게 밴드를 놓아버릴수 있었던, 그래서 그야말로 밴드다운 밴드라 할수 있는 레드제펠린에게 더 애정이 가는건 본인만의 생각일까요??그럼 갑기조심!!

200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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