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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읽어주는 남자] 황재형 ‘아버지의 자리’
문화 문화일반

[그림 읽어주는 남자] 황재형 ‘아버지의 자리’

인생의 희노애락 담긴 ‘얼빛’

벌써 4년이 흘렀네요. 2012년 저는, 1982년에 혜성처럼 등장했던 리얼리즘 작가들을 연구하기 위해 사발팔방으로 찾아다녔어요. “임술년, ‘구만팔천구백구십이’에서”라는 미술동인이 그 작가들이었죠.

1982년 10월에 덕수미술관에서 창립전을 가졌었는데요, 2012년이 30주년이었거든요.

그 이듬해 그러니까 2013년 10월에 수원의 대안공간 눈에서 ‘앗사라비아프로젝트 제2탄’으로 임술년 작가들의 자료를 모아 아카이브 전시를 열었어요. 후배 비평가가 바치는 오마주라고 할까요? 저는 그분들의 정신이 지금까지도 참 고귀하게 느껴졌거든요.

 

이 동인의 긴 이름이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하죠? ‘임술년’은 1982년을 말하고 ‘구만팔천구백구십이’는 82년 당시의 남한 국토 면적이에요. 2015년 기준 남한의 국토 면적이 10만188㎢이니 34년 전 남한의 국토는 지금 보다 작았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간지(干支)와 면적이 상징하는 바는 “‘지금(1982년) 이곳(남한의 땅)’에서 시작한다!”는 당대적 절실함 혹은 구체적 실존자각을 표방한다고 할 수 있어요.

 

오늘부터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리얼리즘 복권’전이 열린다고 해요. 기사를 찾아 읽다가 도판으로 실린 황재형 작가의 ‘아버지의 자리’를 보게 됐죠. 그는 임술년 동인이었어요. 기사는 “무거운 노동과 삶의 무게를 지닌 탄광촌 광부를 그림으로써 단순한 인물의 재현을 넘어 당대의 처절한 현실을 고발하고 원초적 생명력을 표현했다”고 적고 있더군요.

 

4년 전 저는 황재형 작가를 만나러 강원도 태백의 작업실을 찾았어요. 그 작업실에 작업 중인 ‘아버지의 자리’가 있었어요. 그는 1983년에 가족과 함께 태백으로 이주해서 탄광촌의 현실은 물론, 탄광촌을 에둘러 싼 산과 강과 나무와 집과 사람들의 풍경을 새겼죠.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의 정신이 가꿔 온 대지예요. 논밭에서 작물이 자라고 시드는 세월들, 길섶에서 새파란 들풀이 키를 키우는 시간들, 샛바람 하늬바람 마파람 높새바람 댑바람 선들바람 소슬바람 서릿바람이 부는 순간들, 비바람이 불고 뙤약볕이 쏟아진 여름과 눈 쌓인 겨울이 모두 그 얼굴에 조금씩 깊게 새겨지니까요. 그뿐일까요?

 

탄광촌에서는 막장의 노동이 나날이고, 그 안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깔깔 웃음이 나날이고, 탄가루가 흩날린 노란 탄천의 노을이 나날이고, 흙바람 돌바람 골바람이 또한 나날이죠. 그 나날의 기쁨과 슬픔이 저 얼굴에 있어요. 그런데 말예요. 저 얼굴에 빛이 있어요.

 

정신은 투명한 사리처럼 사람의 내부에 신명이라는 빛을 키우죠. 얼의 빛으로서의 ‘얼빛’. 저는 지금 저 얼굴에서 그런 투명한 얼의 환한 빛을 보고 있는 거예요. 혹시 보이나요?

 

김종길 미술평론가ㆍ경기문화재단 문예진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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