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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비공개 조회수 2,847 작성일2015.08.13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거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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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국토종주
태양신
40대 이상 남성 성 고민 1위, 연애, 결혼, 시설보수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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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문화 유산에서 빠진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프랑수의 세게 문화 유산에 등제된 건물들을 대충 실어 보았읍니다.

 

 

프랑스

 

1.샹보르성관 (Chateau de Chambord)

1515년 스위스와의 마리냐노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프랑수아 1세는 블루아의 오래된 왕궁이 그가 이룩한 업적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꿈의 궁전을 짓기로 결심하고 만든 성이 샹보르성(Chateau de Chambord)이며 1519년 건설하기 시작해서 1658년에 완성되었다. 중세의 성채와 같은 구성으로 중정(中庭)을 둘러싸는 외벽과 성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완전한 좌우대칭으로 배치되어 있고, 뚜렷한 수평성에 북이탈리아의 초기 르네상스 모티프를 적용하고 있으나, 요철이나 기복이 심하여 중세적인 성격을 나타낸다.

성은 너비 156m, 안길이 117m로서 원형 첨탑이 솟아 있고, 건물 한가운데에는 왕족의 피난장소로 만든 내성이 있다.
 

성 안에는 방 440개, 굴뚝 365개, 계단 65개가 있다. 1층에서 테라스를 향해 뻗어 있는 이중 나선형 계단은 한쪽 계단이 다른 쪽 계단을 에워싸는 형태로 되어 있어서 올라가는 사람과 내려가는 사람이 만날 수 없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고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프랑스 정부의 귀빈용 숙박시설인 영빈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1981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2.퐁텐블로궁전 (Chateau de Fontainbleau)

파리에서 남쪽으로 50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퐁텐블로 궁전은 프랑스에서 규모가 가장 큰 궁전이다.

프랑소와 1세를 시작으로 하여 수 많은 왕들을 거치며 오랜 기간 동안 건축 된 이 궁전에서는 프랑스의 궁정 역사와 문화를 한 눈에 감상 할 수 있다.

왕의 사냥터로 사용되었던 퐁텐블로 궁전 근처의 숲은 아직도 아름답게 잘 보존되어 있다. 퐁텐블로 궁전은 실내 장식과 궁전 내 정원 조성에 프랑스에서는 처음으로 이탈리아의 매너리스트 스타일을 도입해 독특하고 매력적인 모습을 자랑한다. 그래서 16세기 프랑스 실내 장식의 매너리스트 스타일은 ‘퐁텐블로 스타일’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조각과 금속 공예, 그림, 화려한 벽토 등이 조화를 이루는 퐁텐블로 스타일은 실외 장식에도 도입되어 퐁텐블로 스타일의 정원 또한 그 아름다움이 뛰어나다.
 

4만ac 규모의 웅장한 이 궁전과 고급스럽게 정돈된 넓고 아름다운 정원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수백 년 간 여러 왕들이 살았던 궁전이었을 뿐만 아니라 나폴레옹이 자신의 전용 궁전으로 사용 하기도 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어 더욱 그 가치가 높다. 베르사유 궁전에 비해 많이 붐비지 않기 때문에 조용하고 여유롭게 아름다운 궁전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퐁텐블로 궁전 까지는 파리에서 버스를 타고 45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성인의 입장료는 6.5유로이며 18세 미만의 아동, 청소년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매 달 첫 번째 일요일에는 누구에게나 무료로 개방한다.   

 
 
3.에펠탑 (Tour Eiffel )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의 교량기술자 A.G.에펠이 설계하여 만든 탑으로 1889년 파리의 만국박람회장에 세워졌다. 높이는 984피트(약 300m)로 그 이전에 건설된 어떤 건물에 비해서도 약 2배에 이르는 높이였다. 재료에는 프랑스에서 제조된 7,300t의 시멘즈 마르탕 평로강이 사용되었다. 탑이 만들어지던 당시에는 파리의 경관을 해치는 것이라고 반대가 심하였으나 완공 후 프랑스를 상징하는 조형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탑의 시한인 20년이 지나 1909년에 해체될 예정이었으나 송신탑으로 이용되면서 계속 존속하게 되었다. 탑에는 저층부, 중층부, 상층부 3개소에 각각 전망 테라스가 있으며 각 전망대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갈아타고 올라가야 된다. 관광객이 붐비는 시즌이면 지루하게 기다려야 된다. 



4.베르사유궁전 (Chateau de Versailles)

베르사유궁전의 기원은 17세기 전반 수렵을 즐겼던 루이 13세가 고요한 마을에 불과했던 이곳을 수렵장으로 만들고 작은 성을 지은 것에서 비롯한다. 그 후 루이 14세가 1661년 건축가 르보, 실내장식가 르 브룅, 정원예술가 르 노트르 등을 초빙하여 50년이라는 긴 세월과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여 궁전을 지었다. 1668년 건물 전체를 증축하여 외관을 가로축 부분이 앞으로 튀어나온 U자형 궁전으로 개축하였고, 1672년 왕궁을 이곳으로 옮겼다. 이 후 베르사유는 왕국의 수도로서 정치, 문화, 사교의 중심이 되었다. 루이 14세 시대는 황금시대를 이루었으므로 베르사유의 명성은 높았으며, 빛나는 고전주의 문화의 전당으로서 자리잡았다. 1680년대 다시 커다란 건물 2동을 증축하고 남쪽과 북쪽에 별관과 안뜰을 추가하여 전체길이가 680m에 이르는 대궁전을 이루었다. 이때 정원 쪽에 있던 주랑을 '거울의 방'이라는 호화로운 회랑으로 만들고, 궁전 중앙에 있던 방을 '루이 14세의 방'으로 꾸몄다. 거울의 방은 길이 73m, 너비 10.5m, 높이 13m인 회랑으로서 거울이 17개의 아케이드를 천장 부근까지 가득 메우고 있고 천장은 프레스코화로 뒤덮여 있다.
 

궁정의식을 치르거나 외국특사를 맞을 때 사용되었으며, 화려한 내부장식을 한 '전쟁의 방'과 '평화의 방'으로 이어진다. 전쟁의 방에는 색조 회반죽으로 된 타원 모양의 커다란 부조가 있는데, 말을 타고 적을 물리치는 루이 14세의 위엄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남쪽에 있는 평화의 방 역시 유럽 평화를 확립한 루이 14세의 모습이 상징적으로 그려져 있다. 1783년 미국독립혁명 후의 조약, 1871년 독일제국의 선언,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후의 평화조약체결이 거울의 방에서 행해지는 등 국제적 행사 무대가 되었다. 프랑스혁명으로 가구·장식품 등이 많이 없어졌으나 궁전 중앙부, 예배당, 극장 등을 제외한 주요부분은 오늘날 역사미술관으로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프랑스식 정원의 걸작인 정원에는 루이 14세의 방에서 서쪽으로 뻗은 기본 축을 중심으로 꽃밭과 울타리, 분수 등이 있어 주위의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기본 축을 따라 라톤의 분수, 아폴론의 분수, 십자 모양의 대운하 등을 배치하였다.  대운하 북쪽 끝에는 이탈리아식 별궁인 그랑트리아농(1687년)과 프티트리아농(18세기)이 루이왕조의 장려함과 섬세한 양식으로 세워져 있다. 1979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5.에투알개선문 (Arc de triomphe de l'Etoile)

프랑스 파리의 드골(에투알) 광장 중앙에 있는 석조 개선문. 1806년 나폴레옹 1세가 휘하 군대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계획하였다. 설계는 주로 J.F.샬그랭이 맡았으나 그는 얼마 안 가서 죽고 나폴레옹 자신도 실각하였기 때문에 공사는 중단되었다가 1836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완성되었다.
 

높이 49m, 너비 45m로 대체로 고대 로마의 개선문의 양식을 따랐으나 프랑스 근세 고전주의의 걸작으로 꼽힌다. 각부를 장식한 조각 가운데 F.뤼드의 《라 마르세예즈》(1833~1836)은 특히 유명하다. 아치의 중앙 밑에는 제1차 세계대전의 무명용사 묘비가 세워져 있다. 

 

6.카루젤개선문 (Arc de Triomphe du Carrousel)

루브르 궁전의 양쪽 날개에 안겨 있는 안뜰을 카루젤 광장이라고 한다. 이곳은 튈르리 궁전이 있었던 곳으로 광장 중앙에 개선문이 서 있다. 카루젤 개선문은 나폴레옹 1세가 거둔 많은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문 위에는 나폴레옹이 베네치아에서 가져 온 4마리의 황금빛 말이 장식되어 있었으나, 1815년 이후에 왕정복고를 상징하는 여신상을 중심으로 한 마차와 병사의 상으로 바뀌었다. 



 

6.스톤헨지  
 
소 재 지  영국 윌트셔주 솔즈베리 평원  
 
거석주라고도 한다. 영국의 에브벨리, 프랑스의 엘라니크의 것과 더불어 장대한 규모의 스톤서클의 유구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름 114m의 도랑과 도랑 안쪽에 만들어진 제방에 둘러싸여 2중의 고리 모양으로 세워진 82개의 입석의 뽑힌 자리가 보인다. 중심부에는 2중으로 환상열석과 말발굽 모양의 열석이 둘러쳐 있다. 바깥쪽의 환상열석은 지름이 30m인데 30개의 열석이 늘어서 있고, 그 위에 순석을 난간처럼 걸쳐 놓았으며 지름 23m의 안쪽 열석에는 순석은 없다.


다시 안쪽에는 두 개의 입석 위에 횡석을 놓은 5쌍의 삼석탑이 중앙의 제단석으로 불리는 네모난 돌을 에워싸듯 놓여 있다. 이 석조구축물의 주축이라고 할 동북부에는 바깔 도랑이 잘리어 4각형의 광장이 부설되었고, 그 중간에 힐스톤이라고 불리는 1개의 돌이 있다.


이 구축물들은 건조시기가 각각 다른데 바깥 도랑과 제방 그리고 힐스톤은 방사성탄소연대측정으로 BC 1848±275년에 건조되었고, 입석류는 BC 1700∼BC 1600년, 중앙의 석조물은 BC 1500∼BC 1400년 건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스톤헨지가 고대의 태양신앙과 결부되고, 하지의 태양이 힐스톤 위에서 떠올라 중앙제단을 비추었던 시기가 천문학적으로 BC 1840±200년이라고 계산됨으로써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의 결과와 일치하는 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201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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