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주제분류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한국근현대사사전

이철규 변사사건

[ 李哲揆變死事件 ]

시대명 현대
연도 1989년

1989년 5월 10일 조선대 교지 <민주조선> 창간호의 북한동조 논문 게재사건과 관련,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광주·전남지역 공안합동수사부의 지명수배를 받아오던 교지 편집위원장 이철규(전자공학과 4년)가 광주시 북구 청옥동 제4수원지 상류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

이군이 숨진채로 발견되자 조선대생과 재야권은 이군의 사체에 수갑을 채운 흔적이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수사당국에 의해 연행된 후 피살된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 <이군사인규명 대책위원회>를 즉각 구성하는 한편, 전남대 병원 영안실 앞과 전남도청 앞 광장 등지에서 대규모 군중집회를 갖고 <이군 사인규명> <공안합수부 즉각 해체>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 사건은 광주민주화운동 9주년을 10여 일 앞두고 발생한 만큼 매우 민감한 문제로 부각, 국회에서는 유신 이후 처음으로 국정조사권까지 발동하는 정치문제로 비화됐다.

검찰은 사건발생 20일 만인 5월 30일 이군의 사체에서 다량의 플랭크톤이 발견돼 익사한 것이라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발표를 토대로, 야간에 불심검문을 받고 산속으로 도주하다 실족, <수원지에 빠져 익사한 것>이라고 최종결론을 지었으며, <국회 이철규군변사사건 진상조사특위> 역시 검문당시 도주한 이군을 체포하지 못한 이유와 이를 은폐한 사실, 이군을 놓치고도 근무규정시간을 어겨가며 조기 철수한 이유 등 많은 의문점을 해결하지 못한 채 조사활동을 마무리 지었다. 결국 이 사건은 정동년(鄭東年)·배종렬(裵宗烈)·지선(知詵)·김현장(金鉉奬) 등 사인규명대책위 측 재야인사의 검거선풍을 거쳐 11월 4일 망월동 5·18묘역에 이군의 사체가 안장되는 것으로 끝났다.

연관목차

2. 6월항쟁과 5공화국의 몰락
3. 제6공화국의 출범
이철규 변사사건 지금 읽는 중
4. 산업구조조정과 독점자본의 재편
5. 80년대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6. 80년대 학생운동과 재야단체

출처

제공처 정보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1,800여 항목을 가려 뽑아 간략하게 풀이하였다. 역사의 흐름과 관련성을 고려하여, 항목들을 시대 순으로 엮어 나란히 풀이함으로써 이해가 쉽도록 하였다. 가나다 순의 찾아보기를 덧붙였으며, 1860년부터 2004년까지의 연표를 수록하였다. 자세히보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외부 저작권자가 제공한 콘텐츠는 네이버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