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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대한민국 보수정당정리 좀 해주세요 자...
비공개 조회수 7,021 작성일2019.01.05
대한민국 보수정당정리 좀 해주세요 자유당부터요 한국당 까지
와 진짜 장난 아니게 복잡하고 모르겠어서요 저도 대략적인 건 알지만 자세하게 알고 싶어요.자유당도 없어진 후 그정신을 받드려 다시 창당 한 것 처럼 이런 것도 자세하게 써주세요
저도 모르겠네요 쓰면 현피 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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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한국 정치판에는 보수.민주.진보 정당 외에도 극우.종교.충청 정당도 있으나 종교정당은 메이저가 된적이 없고 해서 극우와 충청권 정당도 섞어서 설명드립니다. 또한 최대한 민주당계의 역사는 덜 넣었으나 비교를 위해 18대 대선부터는 약간의 부가설명을 넣습니다


1951년. 대한청년단 등의 세력이 모여 자유당이라는 보수정당이 생기고, 이승만 대통령을 배출하며 최초의 여당이자 보수정당의 시초가 됩니다. 사실상 이승만 세력이 중심이 되어 이승만 대통령 장기집권과 함께하나... 3.15 부정선거로 인한 4.19혁명으로 완전히 쫄딱 망합니다.

그후, 5.16군사 쿠데타(정변)로 박정희가 등장. 당시 존재하던 모든 정당이 강제해산되고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세력이 민주공화당을 만들어 집권합니다. 이후, 박정희가 유신헌법을 만들어 국회의원 1/3을 대통령 지명으로 선출하는 유신정우회라는 정당(교섭단체)을 만들어 두 정당이 활동하다 10.26 사태로 몰락.

12.12와 5.17내란을 겪으며 전두환 정권의 첫 헌법이 탄생하며 다시 전부 해산(이런). 전두환.노태우 두 사람을 중심으로 한 민주정의당이 창당됩니다.

또한 박정희 사후 민공당과 유신회를 이어받은 한국국민당이 김종필을 중심으로 창당됩니다.

또 한참 넘어가 1987년 민주화 이후 1988년 총선에서 노태우 대통령(겸 총재)의 민정당이 선거에서 과반도 획득을 못하고 여소야대에 이르자, 삼당합당이라는 제안을 한국국민당의 후신 신민주공화당(김종필)과 민주당계 정당 통일민주당(김영삼)에 제안.

합당을 진행하여 200석이 넘는 거대 여당 민자당이 탄생합니다. 보통 현재 보수정당은 민자당을 기점으로 잡습니다.

그러나 합당전후로 민주계 외에도 보수정당계에서는 신정치개혁당과 새한국당이 갈라져 나오게 됩니다. 이중 새한국당 일부는 민주당계로, 정주영 현대회장의 통일국민당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그러나 이 통일국민당 역시 정주영의 정치적 몰락으로 신정치개혁당과 합쳐 신민당을 만들었으나 폭력사태 발생등 당 꼴이 말이 아니게 됩니다.

이때쯤 민자당에서 세력이 약해진 김종필이 당을 나와 자유민주연합을 만들고, 민자당은 신한국당으로 바뀌게 됩니다. 자민련은 완전히 망한 신민당을 흡수. 이듬해 총선에서 무려 50석을 얻게 됩니다.

이 다음해에는 대선을 앞두고 신한국당 내에서 경선에 패한 전설의 이인제께서 전설의 시작인 국민신당을 만들고 대선에 출마하여 19.2%라는 많은 지지율을 얻으나..... 독자세력은 얼마안가 민주당계로 넘어갑니다.

그리고 신한국당은 한나라당으로 바뀝니다(이때부터 당명만 변경합니다. 현재 한국당의 법적 정당 등록일은 한나라당 등록일입니다) 이중 민주당계에서도 일부가 한나라당으로 넘어옵니다.(물론 그안에 이인제는 없습니다. 나중에 옵니다) 

그동안 자민련은 민주당계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와 연정을 하면서 연립여당의 몫을 하다 역시 보수정당이다 보니 의견충돌이 많아 결국 연정은 깨지게 됩니다. 이 때 자민련에서 연정이 깨지기 전에 당시 총리를 하던 이한동 의원을 제명시키고 개각 때 총리직에서 물러나자 무소속의 이한동 의원은 하나로국민연합을 만들었으나.......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이 때 쯤 한나라당에서는 박근혜 의원이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이라는 당을 만들었으나 빠른 몰락으로 다시 한나라당에 합당합니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로 인해 한나라당은 당시 박근혜 대표의 노력과 리더십, 크리로 121석이라는 생각보다 많은 의석을 얻으나 같이 탄핵에 참여한 또다른 보수정당 자민련은 4석, 9선의 김종필은 비례1번임에도 불구 낙선하게 됩니다. 결국 자민련은 미니 정당으로 있다가 3명의 의원은 당시 심대평 충남지사의 신당 국민중심당으로 가고, 남아있는 1명의 의원은 자민련을 끌고 한나라당에 합치게 됩니다.

18대 총선이 가까워 지며 한나라당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에 가까운 이른바 친이계가 친박(친박근혜)을 공천학살(공천탈락)을 하는 사태가 일어납니다. 이에 김무성(당시 친박).서청원 등의 친박은 반발하며 당을 탈당. 서청원 등 일부는 미래한국당이라는 원외정당을 친박연대로 당명변경하고, 김무성 등 일부는 무소속으로 출마합니다(하지만 친박들은 당적은 둘이지만 친박.무소속연대라는 이름을 사용합니다)

또한 이때쯤에는 국민중심당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세력과 힘을 모아 자유선진당을 만들게 됩니다.

결과는 자유선진당. 친박.무소속연대 모두 어느정도의 재미를 봅니다. 친박.무소속연대는 박근혜 의원의 말(꼭 살아서 돌아와라)뜻에 따라 한나라당에 하나둘 입당합니다. 그러나 일부 세력은 친박연대에 남아있다가 당명을 미래희망연대로 바꾼 뒤, 19대 총선 전까지 남게 됩니다.

미래희망연대에서 일부는 미래연합이라는 당명을 가지고 지방선거에 나가 어느정도 결과를 거두나, 19대 총선때 쫄딱 망합니다

자유선진당은 창조한국당이라는 제3지대(중도)(어찌보면 민주당계)정당과 공동교섭단체를 구성하나 창조한국당 측에서 문국현 의원이 의원직을 잃고, 심대평 대표가 자유선진당을 나가 국민중심연합이라는 당을 만들어 이 교섭단체는 해체됩니다.

1년 후, 심대평 대표의 국민중심연합과 다시 합당합니다.

19대 총선을 앞두고 박근혜 지도부(비대위) 한나라당은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 추락과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이것도 이명박 대통령이 이유), 이를 노리고 뭉친 민주당.진보계열 정당(국민참여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 일부=통합진보당)의 통합으로 인해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상징색도 빨간색으로 바꿉니다.

이때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연대로 새누리당은 위태위태했으나 민주통합당의 삽질로 과반을 획득합니다.

자유선진당은 5석이라는 17대 총선급 결과를 받으며 망합니다. 그리고 돌아온 이인제 지도부(비대위)는 당명을 선진통일당으로 바꿨다가 연말에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에 흡수됩니다.

이후 18대 대선, 95년 자민련 분당 이후 17년만에 통합된 보수권과 초유의 야권연대(안철수.심상정.이정희 모두 문재인으로 단일화)로 찾아온 민주-진보권.

초박빙 승부는 보수의 1승추가였습니다. 이후 보수정당계열은 새누리라는 하나의 집으로 함께했습니다. 그러나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게 독이 될 줄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에서는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친박'에 이한구 의원이 들어오게 됩니다. 이한구 위원장은 '면접'이라는 방식으로 후보를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대표도, 최고위원도, 원내대표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친박과 비박의 대립이였습니다. 두 계파는 유승민(새누리로의 당명변경 후로 박근혜와 멀어짐. 탈박) 원내대표의 연설(증세없는복지는 허구)로 인해 시작됬고, 결국 유승민 대표 사퇴. 후임은 친박계 원유철(유승민 사건에서는 그나마 다른 친박계 의원들에 비해 유승민 편을 들어주는 모습이 보임) 비박(2009년부터 탈박)의 좌장 김무성 대표는 이를 보다 못해 김태호최고, 서청원최고와 같은 친박계와 갈등을 보였고. 유승민.주호영.류성걸.이재오.진영.조해진.강길부.장제원.안상수 등의 비박.친이계가 공천탈락. 이들은 무소속으로 출마합니다. 하지만 이를 보던 김무성 대표는 참다참다 결국 서울 은평 을(이재오), 송파 을, 대구 동 갑.을, 수성 을, 달성군에 도장(대표도장.당 도장)을 찍지 않겠다며 부산으로 내려가 지역구인 영도로 갑니다. 이를 본 친박(원유철 원내대표, 서청원.이인제 최고)들은 당황하다 김무성을 비판하였고, 원유철이 부산에 따라가 설득을 하여 대구 동 갑, 수성 을, 달성군에 공천 나머지 세 곳은 미공천하게 됩니다.. 또한 어떻게든 분위기를 무마하려고 반다송(반성과 다짐의 송)이라는 노래도 냅니다(이건 유튜브에서 직접 보시면 그 비주얼을 알게 됩니다. 정말... 말이... ㅓㅜㅑ)

그러나 이를 보고 화난건 비박도 친박도 박 대통령도 아니라 국민이였습니다.

새누리는 16년만에 과반확보가 아니라 여소야대. 더민주에 1당까지 내줍니다. 당시 야권분열(더민주-국민-정의)에 야권연대도 없는 상황에 이런 드라마틱한 상황이 발생한겁니다.(오히려 더민주는 100석도 감사해야 한다 했지만 민주당계 최초로 야당인데 1당이 되는 역사를 씁니다) (선거결과 상관없이 물러날꺼였지만) 김무성 대표는 사퇴, 최고위원들도 줄줄이사탕으로 사퇴하게됩니다

이에 침통한 새누리. 새누리 탈당 무소속 당선자 7명(윤상현.안상수.유승민.주호영.강길부.이철규.장제원)을 모두 받아도 1당은 되도 과반은 훨씬 모자른 상태. 결국 국회의장을 더민주에 넘겨줍니다.

또... 20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지 약 5개월만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세상에 알려지며 새누리당은 더욱더 분위기가 얼었습니다.

이때 박근혜 탄핵 소추안에 234인이 찬성하며 새누리당의 일부도 참여한 것으로 보입니다.(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수치상으로.)

하지만 변화하려는 기미가 안보이는 새누리당을 김용태(서울 양천 을)를 시작으로 비박계 33인이 탈당해 바른정당을 창당하게 됩니다. 새누리당에서는 인명진(목사)비대위 체제에서 당명을 자유한국당으로 바꾸게 됩니다. 이때쯤 성향상 정 반대인 조원진 의원과 이재오 전 의원이 각각 새누리당과 늘푸른한국당을 창당해 두사람 모두 대선에 출마합니다.

하지만, 대선이 가까워 질수록 보수계는 한국당으로 다시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유승민 후보는 홍준표 후보와 경쟁력이 많이 떨어지게 됬고, 이에 대선 직전. 이은재(서울 강남 병)을 시작으로 13명이 한국당에 복당합니다. 결국 정권교체가 되긴 했지만 유승민 후보의 득표가 홍 후보의 1/4정도에 그치며 아쉬움을 내뱉습니다.(각각 홍 후보 2위, 유호보 4위, 새누리당 조원진 후보는 6위, 늘푸른한국당 이재오 후보는 12위를 합니다) 하지만 바른정당은 포기하지 않고 활동을 합니다. 또다른 보수후보였던 조원진 의원은 대선 후에 새누리당에서 박사모와 갈등이 생겨 제명되고, 결국 대한애국당이라는 당을 창당합니다. 한국당에서는 홍준표 후보가 대표에 취임하고 박근혜 대통령을 제명시키자 바른정당 쪽에서 김무성 의원을 중심으로 한 9명의 의원들이 추가 탈.복당을 하여 11석으로 쪼그라듭니다. 결국 바른정당은 지지율이 바닥을 기던 국민의당과 합당 얘기가 나오게 됩니다. 이에 남경필 도지사, 박인숙 의원 김세연 의원(이분은 지역구민의 반발이 거세서 결국 합당에 합류못했다 합니다.)의 바른정당에서 이탈합니다. 국민의당측에서도 큰 이탈(보수정당과 합당을 반대하는 호남계 의원 일부)이 있어 30석의 바른미래당(원래는 미래당이 당명이였으나 우리미래라는 진보정당과의 갈등이 있었습니다)이 출범합니다. 이념은 중도~중도보수로 창조한국당 해체 이후 6년만의 제3지대 중도정당의 탄생입니다. 한국당은 홍준표 대표의 거친 표현(막말)이나 친박받아주자는 홍대표의 발언으로 부정적 의견이 많아지고, 바른미래당 역시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명박근혜 정권의 부역자라는 주장이 있습니다)이 많아 지방선거에서 두 당 모두 망하고 맙니다.(이후 방송에서는 한국당 소속 정치인이 스스로 망했다고 자처할 정도였습니다) 이에 한국당은 김병준 전 부총리(참여정부 출신)를 비대위원장으로 부르고 바른미래당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대표에 취임하게 됩니다. 그러나 바른미래당에서의 일부 의원이 이탈한다는 얘기가 제기되어 오다가 실제로 이학재 의원이 한국당으로 간 바른미래당 첫 주자가 됩니다. 또한 이언주 의원 등 꾸준히 야권정계개편과 탈당이 제기되어 오고 있습니다.

이에 현존하는 주요 보수정당을 정리하자면

자유한국당(우파) 바른미래당(중도~중도우파) 대한애국당(극우)

이 3개의 정당이 있습니다.

201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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