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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궁(덕수궁)☆에 관한 퀴즈 좀 풀어주세요(역사)
only**** 조회수 1,522 작성일2009.02.02

1. 대한제국기 황실의 오얏꽃 문양으로 장식되어지지 않은 건물은 무엇일까요?

 

1) 함녕전

 

2) 석조전

 

3) 덕홍전

 

4) 인정전

 

2. 옛 궁궐에서는 일반 백성들과는 다른 말을 썼답니다. 다음에서 일상생활 말과 궁중용어가 틀리게 짝지어 진 것은?

 

1) 식사 - 수라

 

2) 얼굴 - 용안

 

3) 불고기 - 너비아니구이

 

4) 그릇 - 매우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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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 답변
1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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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ai****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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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번은 '문제'가 좀 이상하네요^^;

 우선 "경운궁(덕수궁)"에 관한 '문제'라면~ 4번의 "인정전"이 '답'이지만

(인정전은 창덕궁의 건물이죠!!!), "이화문장(李花文章)"으로 '장식'되지 않은 '건물'은~

1번의 "함녕전'입니다!!!^^;;;

 

 2번은~ 4번인데, "매우"라는 말은 '임금의 대변'을 일컫는 말이고, 

"매우틀"은 '임금의 변기'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릇'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2009.02.02.

  • 출처

    본인 작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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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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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ami Kotori
영웅
한국사, 번역, 통역, 한문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1. 대한제국기 황실의 오얏꽃 문양으로 장식되어지지 않은 건물은 무엇일까요?

 

1) 함녕전(咸寧殿, 보물 820호) - 함녕전은 광무 1년(1897) 건립되었다.  그 뒤 1904년 4월 대화재로 소실된 것을1905년 1월 다시 상량 하였다.  함녕전은 왕의 침전으로 쓰였는데 1907년 순종이 즉위 한 뒤 잠시 이곳에 머물기도 했다고 한다. 
한편 강제 양위(讓位)당한 고종은 수옥헌(漱玉軒, 중명전)에 머물다 순종이 창덕궁으로 이어하자, 다시 함녕전에 거처하게 된다.  1919년 1월 고종이 이곳 함녕전에서 갑자기 승하 하고 만다.  고종 승하후 함녕전은 빈전(殯殿), 혼전(魂殿)으로 쓰이다가 후에 효덕전 (孝德殿)으로 불리기도 했다. 

1904년 4월의 덕수궁 대화재는 현재의 덕수궁 일대를 잿더미로 만들고, 오늘날 덕수궁 건물의 모습으로 남게 된 계기가 바로 함녕전에서 발화된 대화재 때문이다.  당시의 여러가지 정황으로 볼 때 함녕전에서 비롯된 덕수궁 대화재는 일제, 혹은 일제의 사주에 의한 방화라는 의혹이 짙다는 것이 대체적인 중론이다.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당시 고종이 외국공사관과 가까운 덕수궁에 기거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일제의 고의적인 방화였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3) 덕홍전(德弘殿) - 원래 이곳 덕홍전 자리에는 한때 명성황후의 빈전과 혼전으로 쓰이던 경효전(景孝殿)이 있었다.  1904년 대화재 이후 경효전을 수옥헌(漱玉軒) 방면으로 옮긴뒤, 1906년 지금의 덕홍전을 짓고 1911년 개조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덕홍전은 덕수궁에 현존하는 건물중 가장 나중에 지어진 건물인 셈이다.
덕홍전의 용도는 주로 외국사신들이나, 대신들을 만나던 접견실로 쓰였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덕홍전의 내부 전체는 넓게 터져 있고,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내부 모양 또한 접견실의 모습 그대로다.  내부에는 봉황과 오얏꽃(李花) 문양 등을 화려한 금색으로 장식 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대한제국기에 황실의 문장(紋章)으로 쓰인 것이다.

4) 인정전은 창덕궁의 중심 건물로 조정의 각종 의식과 외국 사신 접견 장소로 사용하였으며,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릴 때에도 이곳을 이용하였다.
또한 왕세자나 세자빈을 결정하였을 때나 국가의 커다란 경사가 있을 때에도 왕이 인정전으로 나아가 신하들의 축하를 받았다.
태종 5년(1405)에 창덕궁을 세우면서 함께 지었는데, 그 뒤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쳤다.
지금 있는 건물은 순조 4년(1804)에 다시 지은 것이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4칸의 2층 건물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보았을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2층의 높은 기단 위에 세웠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밖으로 뻗친 부재 끝이 날카롭게 표현되어 조선 후기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지붕 꼭대기에는 오얏꽃무늬로 장식하였는데, 이것은 한말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던 무늬이다.
건물 좌우에는 복도(행각)가 있고, 마당에는 신하들의 지위를 표시하는 품계석이 놓여 있다.
내부 천장 가운데는 한 단을 높여 구름 사이로 봉황 두 마리를 채색하여 그려 넣었다.
뒷면의 높은 기둥 사이에 임금이 앉는 의자가 마련되어 있고 그 뒤에는 해와 달, 5개의 봉우리를 그린 일월오악도 병풍이 있다.
인정전은 경복궁의 근정전, 창경궁의 명정전, 덕수궁의 중화전과 함께 조선왕조 궁궐의 정전다운 격식과 장식을 잘 갖추고 있는 건물이다.

 

때문에 답은 4번이 되는 것입니다. 즉 인정전은 창덕궁에 있게 때문에 바로 정답이지요.^^ 또한 석조전은 백과사전에 찾아보시면 그 내용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2. 옛 궁궐에서는 일반 백성들과는 다른 말을 썼답니다. 다음에서 일상생활 말과 궁중용어가 틀리게 짝지어 진 것은?

 

1) 식사 - 수라

 

2) 얼굴 - 용안

 

3) 불고기 - 너비아니구이

 

4) 그릇 - 매우틀

 

해설)

조선시대 왕이나 왕비가 사용한 이동식 화장실인 '매우틀'. 우리에게 익숙한 측간은 사용하지 않았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이다./김태식/문화/
2006.6.1 (서울=연합뉴스)(김태식)

 

이상 답변이었습니다..^^

2009.02.07.

  •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지식인+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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