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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미국의밥먹는문화
dleh**** 조회수 2,754 작성일2013.12.18

사회숙제로미구문화화조사를맞았는데요먹는문화점여내일까지라서빨리부탁여스공30드림(학림초등학교3학년1반이주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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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생활 분야 지식인 음식점, 맛집 1위, 음식 1위, 올림픽 1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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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의 식생활

 

미국식생활 예절 ◆.
테이블 매너의 취지는 참가한 파티나 식사가 즐겁게 진행되도록 하기 위하
여 정해진 일종의 규칙이다. 따라서 규칙을 잘 알고 지키면 그 곳에 참석한
사람들이나 모임 자체, 자기 자신까지도 즐겁게 지낼 수 있다. 테이블 매너
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식사 전
① 초대시간에 늦지 않도록 약속시간 5∼10분 전에 회합장소에 도착하여
주최자에게 인사한 후 응접실에서 기다린다.
② 회장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고 일을 마친다.
식사 도중에 자리를 뜨면 실례가 된다.
③ 회장에는 불필요한 물건을 가지고 들어가지 않는다.
④ 회장에는 서비스원의 안내에 따라 들어가 정해진 자리에 앉는다. 테이
블 매너로는 레이디 퍼스트가 기본규칙이므로 여성이 먼저 자리에 착
석한다.
⑤ 착석한 자세도 테이블 매너의 기본이 되므로 주의를 요한다. 테이블과
가슴과의 거리는 주먹 2개가 들어갈 정도로 떨어져야 하므로 의자를
잡아당겨 바싹 앉고 가슴을 편다.다리를 꼬지 않으며 테이블에 팔꿈치
를 괴지 않는다.
⑥ 냅킨은 전원이 착석한 후 펴서 무릎 위에 놓는데, 식사 중에 마루에 떨
어지지 않도록 한쪽 끝을 옷 사이에 살짝 끼워 놓는다.
⑦ 아페리티프(食前酒)는 자기의 기호에 따라 분명하게 주문하고, 무리하
여 익숙하지 않은 것이나 알코올분이 강한 것을 마시는 일은 삼간다.
⑧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양 옆에 앉은 사람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여 식사 중의 환담에 도움이 되게 한다.

식사 중
① 식사의 순서에 따라 사용하는 나이프, 포크, 스푼 등은 차려 놓은 상태
에서 바깥쪽으로부터 차례로 사용한다.
② 식사를 시작하는 것은 다른 사람과 함께 하여 보조를 맞춘다.
③ 식사하는 시간도 회장의 대부분의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어 혼자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도록 한다.
④ 수프는 소리나지 않게 떠먹는다.
⑤ 빵은 한번에 입에 넣기 좋은 크기로 떼어 버터를 발라 먹도록 한다. 큰
덩어리째로 버터를 바르지 않도록 한다.
⑥ 버터는 적당한 양을 자기 접시에 덜어다 놓은 후 빵에 바른다.
⑦ 빵은 나이프나 포크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떼어 먹는다.
⑧ 생선이나 육류요리를 서비스받을 때는 무리하여 자기가 덜어 오지 말
고 서비스하는 사람이 덜어 주는 대로 받도록 한다.
⑨ 고기 요리에 곁들이는 채소와 소스가 다 들어온 뒤에 먹기 시작한다.
⑩ 식사 중에는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하여 옆 사람들과 가벼운 담소
를 나누어야 한다. 묵묵히 식사만 하면 실례가 된다.
⑪ 때에 따라 식전 또는 식사 후 디저트를 들 때 테이블 스피치를 할 때가
있는데, 이 때는 사회자가 지명하여 스피치를 하게 되며, 결혼 축하연,
각종 축하연, 기념회, 송별회 등에서는 대개 스피치할 사람이 많으므
로 3분이 넘지 않게 간단히 끝내는 것이 실례가 안 된다.
⑫ 식사 도중에 자리를 뜨는 것은 실례가 되나 불가피하게 자리를 떠야 할
때는 냅킨을 의자 위에 놓도록 한다. 냅킨을 옷에 끼운 채 움직이면 실
례가 되고 보기에도 좋지 않다.
⑬ 나이프나 포크를 바닥에 떨어뜨렸을 때는 자기 스스로 집지 말고 서비
스원에게 얘기하면 다른 것을 가져다 준다.
⑭ 소금이나 후추는 팔을 길게 뻗어 집어오지 말고 옆 사람에게 부탁하여
패스해서 받는다.
⑮ 식사가 끝나면 나이프와 포크를 가지런히 접시 위에 놓고, 끝나지 않았
을 때는 접시 양쪽에 걸쳐 놓는다.
▶ 자기에게 배분된 음식은 되도록 남기지 말고 깨끗이 먹는다.
▶ 음료는 자기 오른쪽에 있는 것을 마시고, 빵과 샐러드는 왼쪽에 있는
것을 먹는다.
▶ 술 또는 커피 같은 음료를 원하지 않을 때는 분명하게 거절하도록 한
다. 마시다 남기면 실례이다.
▶ 생선은 접시 위에서 뒤집지 않는다.
▶ 로스트 치킨과 통째 내놓은 옥수수와 빵은 손으로 먹어도 좋으나, 그
외의 음식은 손으로 먹어서는 안 된다.
▶ 샐러드는 육류요리와 번갈아 먹어도 좋다.
▶ 스파게티는 포크에 감아서 먹는다.
▶ 아이스크림에 붙어 있는 웨이퍼는 아이스크림의 찬 느낌을 덜기 위
한 것이므로 아이스크림과 번갈아 먹는다.
▶ 커피를 다 마신 후 스푼은 컵 속에 담아 놓지 말고 접시 위에 놓는다.

▶ 핑거 볼에는 양쪽 손을 함께 넣고 씻지 말고 한 손씩 씻는다.

식사 후
① 냅킨은 자리에서 일어날 때 보기 좋게 적당히 접어 테이블 위에 놓는다.
② 퇴석할 때는 옆 사람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한다.
③ 퇴장할 때는 주최자에게 반드시 인사를 해야 한다.

 

2. 우리나라의 식생활

 

구석기시대

이 시기에는 타제석기나 동물의 뼈, 나뭇가지 등을 사용하여 토끼, 노루, 사슴, 산양, 멧돼지, 곰 같은 야생동물을 사냥하거나 산야에서 자생하는 야생과일이나 야생식물의 열매와 잎, 뿌리등을 채취하였을 것으로 본다. 또한 작살, 뼈낚시 같은 유물로 미루어 이들 도구를 이용한 원시적인 어로가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사냥한 짐승을 익혀 먹기 위해 불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불 위에서 직화로 고기를 굽는 법은 인류가 발견한 최초의 요리법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갈비구이나 너비아니구이의 전통으로 이어진다.

신석기시대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은 강변과 바다 가까이에 있는 거대한 조개무지이다. 이것은 비교적 채취가 쉬웠던 조개류가 신석기인들의 주요 식량원이었음을 말해준다. 이같은 어로 중심의 생활은 신석기 중기에 중국의 동북방으로부터 농업을 아는 이주민이 들어옴으로써 농업으로 점차 바뀌게 되었다. 벼농사가 시작된 것은 신석기 후기인 기원전 1000년 경으로 그후 청동기에 이어 철기문화의 전래로 철제농구가 제작되면서 벼농사 기술이 크게 발달하게 됨으로써 쌀은 우리의 주식곡으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농업의 발전에 따라 곡류가 주요 식량원으로서의 자리잡게되었음을 보여준다. 수확한 곡식을 갈돌에 갈아서 토기에 죽을 끓이거나 돌판에 볶아 그대로 혹은 갈아서 먹거나 혹은 농촌에서 행해지는 콩서리 풍습처럼 이삭채로 불에 구워 먹는 방법 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동기시대

청동기 시대에는 무문토기가 제작되었는데, 무문토기가 등장하면서 갈돌과 갈판은 사라지고 확돌이나 절구가 쓰이기 시작한다. 발형 토기는 끓여서 익히는 조리용구로 쓰이거나 음식을 담는 용기로도 사용되었다. 증숙용 조리용기로 시루가 고안되어 찐밥, 찐떡, 어패류찜 등의 찌는 요리가 많이 이용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 고구려 사람은 장양을 잘한다 " 는 기록이 있는데 장양이란 술빚기, 장담기, 채소절임 같은 발효식품을 만드는 솜씨를 말한다. 또한 중국인들은 장 냄새를 고려취라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이미 우리음식의 기본을 이루는 장, 술, 김치, 장아찌 같은 발효식품의 제조법이 일반화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김해 패총과 부산 동삼동 패총에서 조개류, 꼬막, 고동, 전복, 홍합, 굴, 우렁이, 다슬기, 성게가시, 도미가시, 삼치가시, 상어뼈, 돌고래뼈 등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조개류가 여전히 중요한 식품이었으며 연안 어업이 적극적으로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염업을 통해 소금도 생산되었다. 부여의 벼슬이름에 마가, 우가, 저가, 구가, 견가가 있는 것으로 보아 말, 소, 돼지, 개와 같은 가축이 사육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

삼국은 4세기 무렵에 왕권 중심의 국가 체제를 정비하였고,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지배구조가 형성됨으로써 식생활에서도 식기류와 상차림의 계층화가 뚜렷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 시대에 들어오면 무쇠솥이 고안되어 시루에 찌는 방식이 아니라 솥에서 끓여서 뜸을들이는 방식으로 밥을 짓게 되었다. 이에 따라 밥이 일상적인 주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구리나 쇠로 만든 쟁개비(오늘날의 냄비에 해당함), 숯불에 밖아 놓고 앉은 자리에서 전골을 끓이는 무쇠로 만든 전골 냄비도 있었다. [삼국사기] 신문왕 683년 조에 보면 왕이 부인을 맞아 납채를 하는 품목에 쌀, 술, 기름, 꿀, 장, 메주, 포와 더불어 해가 포함되어 있다. 이상을 종합해 볼 때 삼국시대에 이르러서는 농업이 정착됨에 따라 곡류나 채소와 같은 농산물에 기초한 음식문화의 전통이 다져지게 되었던 것으로 본다. 특히 떡에 대한 언급이 문헌에 자주 등장하는데 약밥, 설병 그리고 백결선생의 떡방아 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쌀밥을 엿기름에 삭힌 감주에 관한 기록도 보인다. 또한 부엌시설과 조리용구가 정비 고안되면서 죽, 장, 술, 채소절임, 젓갈, 포와 같은 기본 식품의 조리법이 다양하게 고안되었고 식생활의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쌀밥을 주식으로 하고 장, 채소절임, 젓갈 같은 상용식품을 반찬으로 하는 일상식사의 보편적 형태가 틀을 갖추게된 것으로 여겨진다.

통일신라시대

7세기에 신라에 의해 삼국이 통일되면서 그 동안 삼국에서 각 지역의 풍토를 바탕으로 형성. 발전되어 온 식생활 문화가 상호교류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식생활 문화는 공통적 보편성과 아울러 각 지방마다 향토적 특수성이 공존하는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던 것으로 본다. 이 시기에 이르면서 벼농사 기술의 향상에 따라 쌀밥이 보편화되기는 하였으나 일반 백성들에게 있어 쌀밥은 여전히 귀한 음식이었다.

고려시대

통일신라 시대를 지나 고려 시대를 거치면서 그 이전까지 이어져 오던 일상식의 기본 틀 위에 다과상, 잔치상, 제례상차림 같은 의례상이 일정한 형식을 갖추게 된다. 고려 초기에는 숭불정책 하에서 채소음식과 김치류가 분화 발달하게 되며 차 문화와 함께 한과류가 발달하였다. 쌀의 증산으로 떡이 더욱 다양하게 개발되었으며, 증류주의 도입과 양주업이 성행함으로써 술도 다양해졌다. 한편 공설주막이나 객관이 설립되는 등 가내에서 행해지던 식사가 상업화하는 단계를 맞게된다. 몽고를 비롯하여 여진, 거란, 송 등 외국과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외래식품과 음식문화가 전래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김치와 채소음식의 발달하고 차 문화와 떡 한과류, 양조업이 발달한다.

조선시대

오늘날 우리가 대하는 풍부하고 다양한 한식의 내용이나 일상식과 의례상차림의 규범, 세시음식, 식사예절 같은 식생활문화의 전통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다듬어 지고 정해진 형식을 갖추게 되었다. 유교와 가부장제의 영향으로 상차림의 형식과 식사예절이 정해진 법도를 갖추게 되었고, 식품 생산 측면에서는 농업과 수산업의 발전으로 주곡과 일부 어패류의 생산량이 크게 증가됨으로써 떡류와 젓갈류가 발달하는 등의 변화가 일어났다. 17∼18 세기 동안 청이나 일본을 통해 고추를 비롯하여 현재 우리 식생활에서 널리 이용되는 여러 농작물들이 전래되기도 하였다. 상업과 화폐경제의 발달은 지역간 음식문화의 교류를 촉진하는 한편 장터를 중심으로 한 주막거리는 일반 백성을 상대로 한 외식업의 시초가 되었다. 한편 조선 후기 이후 흉년이 잦아 기근이 만성화되는 환경 하에서 백성들은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산과 들에서 나는 수백 가지의 식용 식물을 구황식품으로 이용하게 되면서 다양한 야생식물들이 식생활로 도입되는 계기가 되었다. 활발한 향약연구와 사상의학이 정립되는 등 의학의 발전은 약식동원의 사상과 교류되면서 보양식과 양생식의 발전을 가져왔다.

근대와현대

개화기 청을 비롯한 외국과의 수교는 여러 외국의 식문화가 국내에 소개되는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조선왕조가 몰락하면서 궁에서의 음식관리를 담당하던 궁인들에 의해 고급 음식점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1970년대 초 통일벼 대량재배의 성공으로 쌀수확량이 크게 늘어나면서 식량생산량이 열량필요량을 충족할 수 있게 되었으며, 1980년도 이후에는 경제성장, 여성취업증가, 핵가족화, 레저문화의 확산 등에 따라 음식이 더 이상 배고픔을 충족하고 생명유지를 위한 영양소를 공급하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음식을 통하여 다양한 맛과 경험을 즐기고 건강을 증진시키려는 사회적 요구가 크게 늘고 있다.

2014.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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