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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구약성서에서---아론과 모세의 관계를 설명해 주세요
비공개 조회수 1,381 작성일2019.02.02
구약성경에서-아론과 모세의
관계는?

1] 인간적으로==혈족으로?

2] 권위적으로[질서 상-]=직무상?

3]이 둘의 긴장? 관계를 [구약성서-신약성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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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신
건강상담, 정형외과, 개신교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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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와 아론은 형제이며, 아론이 세살 많은 형입니다.

레위지파의 자손으로 형 아론은 대 제사장으로 제직했고, 대대로 대제사장의 가문이 되었습니다.

관계적으로는 아론이 대제사장이니 더 높은 직분을 맏고있는듯 하지만, 모세는 하나님과 언제나 대면하는 관계였고, 아론이 사람의 편에서 대변하는 제사장 이었다면 모세는 하나님의 선지자이자 동행자였습니다.

모세는 무리바에서 반석을 두번치는 죄로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지만, 하나님께서 살리셔서 하늘로 데려가셨죠.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를 표상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모세와 아론 관계는 성경상 비슷한 예가 떠오르지 않네요...

2019.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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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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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 이라는 말에서 ‘애굽’ 이란 세상을 의미합니다.

 

출애굽의 과정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어진 후에 그 세상을 향한 마음을 온전히 지우는 과정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당신의 마음 밖의 어떤 대상으로부터의 벗어남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마음 안에 있는 세상에 속한 것을 향한 마음이 떨어져 나가는 과정에서 벌어질 일들에 대하여 가르치시는 말씀입니다.

 

애굽의 왕인 바로는 세상에 속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바로 당신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도 당신의 마음 안에, 바로와 그의 사람들도 당신의 마음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가 당하게 되는 재앙은 돌이키지 못하는 당신이 당하는 재앙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이치의 적용 범위는 개인의 범위 안에서도 적용이 되고, 무리의 범위 안에서도 적용이 되며, 세상이라는 범위 안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적용이 됩니다.

 

각각의 적용 범위에 따라 말씀에 대한 이해의 방법도 달라집니다. 그 다른 이해를 위한 해석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연결이 될 때에만 옳은 해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느 한 부분에 대하여 해석을 하되 다른 부분과 연결이 안 되는 해석을 한다면 그 해석을 한 사람은 맞는 말을 한 것이라도 전혀 모르는 것과 차이 없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가 되는 해석이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에서는 모세의 신분에 관한 이야기가 언급됩니다.

 

필자는 하나님의 율법을 받아 그것으로 치리를 하는 사람입니다. 이론상으로 보자면 오늘날 필자가 그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필자만 모세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아버지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이 모두 그 역할을 해야 합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바로에 대하여 모세를 신으로 세웠다.” 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에 대하여 필자가 신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필자는 세상에 속한 여러분의 마음에 성령의 법을 가르쳐서 세상에 속한 마음을 이기고 지우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바로 왕, 곧 세상에 속한, 부인되지 않은 자기에 대하여 필자는 신 곧 ‘의지할 수 있는 대상’ 인 것입니다.

 

사람으로는 안 되고 하나님으로는 되는데 ‘하나님으로’ 란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성령의 법’ 을 말합니다. 여러분이 그 성령의 법을 부음 받은 적이 없으므로 자기를 부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여러분 앞에 있는 제가 필요합니다.

 

물이 산 위의 샘에서 나서 바다로 흘러가듯이,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도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한 줄기 부으심으로부터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샘이 이곳저곳에서 날 수 있을까요? 물론 진짜 산이라면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산,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시온산에서는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혼란이 없으신 분이시므로, 하나님이 세우시고 흘려보내신 한 줄기 부으심 안에서만 하나님 백성의 낳아짐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마엘’ 로는 안 되고 ‘이삭’ 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 영적 질서 안에서만 기름 부으심이 가능하다는 것은 사도행전의 기록에도 논증되어 있습니다.

 

성령을 받는 일은 하나님이 세우신 자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모두 평신도나, 성도나, 교인이 되지 말고 반드시 성령의 법을 전하는 사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과 일대일의 관계 안에서 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하나님이 당신을 위하여 성경책을 주신 것이 될 때에만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땅에서 하늘의 날을 살고, 또 영원을 땅에서부터 느낄 수가 있게 되는 것이며, 육체가 한계에 다다르는 날 아버지를 뵙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질서에는 부르신 순서를 따라 정해지는 육적 질서와, 일꾼의 역할인 그릇의 모양으로 정해지는 영적 질서라는 두 가지 질서가 있습니다.

 

필자는 육적 질서와 영적 질서 안에서 가장 먼저 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육적 질서는 변할 수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진행하는 일꾼으로서의 영적 질서는 얼마든지 변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시 나감이 없는 하나님의 안식” 의 상태에 들기 이전에는 자기의 면류관을 빼앗기는 일도 일어나며 경주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도 인생들의 나라와 같이 그다지 차이 없는 질서와 규모가 있습니다. 그 나라 안에는 도시로 일컬어지는 규모도 있으며, 성읍으로 일컬어지는 규모도 있고, 동네라는 개념도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작게는 집이라는 규모도 있으며, 개인의 범위 안에서 마음 안에 서는 집의 개념도 있습니다.

 

[전도서 5장]

8 너는 어느 도에서든지 빈민을 학대하는 것과 공의를 박멸하는 것을 볼지라도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높은 자보다 더 높은 자가 감찰하고 그들보다 더 높은 자들이 있음이니라

 

[전도서 9장]

14 곧 어떤 작고 인구가 많지 않은 성읍에 큰 임금이 와서 에워싸고 큰 흉벽을 쌓고 치고자 할 때에

 

[잠언 9장]

1 지혜가 그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

 

[잠언 24장]

3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히 되며

 

[잠언 24장]

27 네 일을 밖에서 다스리며 밭에서 예비하고 그 후에 네 집을 세울지니라

 

이 중에서 가장 작은 규모로 지어지는, 자기의 마음 안에서 지어지는 집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 집 안에서 하나님의 안식에 들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라로부터 출발한 그 이전의 단계는 사실상 내 집을 세우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세상의 악에 대하여, 당신 이후에 당신에게 보내지는 모든 이들에 대하여 모세의 역할만 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때로 아브라함도 되고, 때로 다윗도 되어야 하며, 때로 바울도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 안의 대표적인 인물들과 연관되어 있는 사건과 정황들은 어떤 한 사람의 영적 범위(마음) 안에서 경험되는 것들입니다.

 

‘그리스도’ 라는 말은 ‘기름 부음 받은 자’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잠언에 “돌이키라 그리하면 나의 신을 부어 주리라.” 하고 약속하셨으므로, 누구든지 성령의 법 안에 있으면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역할을 하고 가셨고, 그 역할은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오신다.” 하심은 완성하신 성령의 법의 권좌로, 즉 성령의 법의 말씀으로 다시 오신다는 뜻입니다. 성령의 법 안에 든 자는 그 안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기도 하고, 그 마음을 알기도 하며, 그 생각과 같은 생각을 하게도 되면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것이므로 다시 오심 또한 말씀의 몸을 입고 인생들에게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살이란 여러분이 이미 먹은 복음서의 가르침이며, 예수님의 피란 십자가의 피로 완성하신 성령의 법인 것입니다.

 

‘살’ 이란 뼈대에 붙여 주는, 본체의 완성도를 높이는 보조 수단의 말이나 글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보조 설명을 하신 복음서의 말씀이 곧 살입니다. 그리고 그 살은 사람이 아랫니와 윗니를 사용하여 씹어서 잘게 부수어야, 즉 헤아려 따져 보아야 먹을 수가 있는 ‘비유’ 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살은 ‘먹으라’ 는 것입니다.

 

“피를 마시라.” 는 말은 성령의 법, 성령이 가르치시는 말씀은 사람이 씹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받아야 하는 말씀이기 때문에 그리 표현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령을 “부어주신다.” 하신 이유가 그것입니다. 마음의 법은 마음에 새김을 받는 것이지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뇌리에 새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나의 신을 부어 주리라.” 하신 약속의 말씀을 구원의 언약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자는 결단코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봅시다. 오늘날 세상의 어느 교단에서 잠언의 말씀을 성령의 법이라, 마음의 법이라 가르치고 있습니까? 세상 어디에도 그런 곳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서에, “이 세대에 하나님의 공의가 사라졌으므로 이 공의 세대를 폐하신다.” 는 말씀이 그대로 응해지는 것에 대해 아무런 토를 달 자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님이 완성하신 공의 실현의 결과인 성령의 법이 당신의 마음 안에서 실현되어야 하는 때가 온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 안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이 된다면 당신은 육신이 죽기 전에 땅에서 하늘의 날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자기 부인과 안식이 느껴지게 될 것입니다.

 

인생에게는 자기를 부인하는 수단으로, 또한 하늘의 날을 사는 수단으로 사용이 되는 것이 백성의 무리 안에서 시행되는 하나님 섭리의 진행을 도우는 ‘일’ 입니다.

중략....

위의 내용이 있는 곳은 네이버 카페 "마음의 율법" 입니다. 성경의 모든 내용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2019.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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