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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체게바라의 생애와 본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18,888 작성일2010.02.21

체게바라의 생애와 

 

체게바라에게서 본받을점   체게바라를 존경 할수있을만한 부분

 

좀 알려주세요   생애는  아무데서나 복사하셔도되는데

 

본받을점하고 존경할수있을만한 부분읜 성심성의껏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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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
우주신
철학, 심리철학 5위, 사회, 도덕 7위, 국어, 한문 5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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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아르헨티나 출신의 사회주의 혁명가, 정치가, 의사, 저술가, 쿠바 게릴라 지도자이다. 원래 이름은 에르네스토 라파엘 게바라 데 라 세르나(Ernesto Rafael Guevara de la Serna, 문화어: 에르네스또 체 게바라)이다.

 

1928년 6월 14일,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의 바스크-아일랜드 혈통의 중산층 가정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는데, 그들의 부모는 사회주의자는 아니었으나 진보적 사고를 갖고 있었다. 1952년에 볼리비아인민운동에 참가하여 외국자본의 국유화에 반대하였다. 1953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의학대학을 졸업한 후 과테말라에서 독재정치에 반대하는 정치운동을 하다가, 1954년 멕시코로 망명하였다. 체 게바라는 1955년, 망명지 멕시코에서 자신처럼 망명하던 쿠바출신의 사회주의 혁명가들과 알게 되었으며 그 때로부터 쿠바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그들과 함께 활동하였다.

 

1956년 12월 피델 카스트로가 이끄는 쿠바혁명가들과 함께 《그란마》호를 타고 쿠바에 상륙한 후 바티스타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쿠바 혁명에 대대를 지도하는 군사활동으로 참가했다. 당시 카스트로는 혁명에 실패하여 감옥살이를 했었는데-재판 당시 피델 카스트로는 판사 앞에서 역사가 나중에 나를 다시 평가할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한다.-체 게바라등의 동지들의 참여로 다시한번 혁명에 도전하여 친미성향의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붕괴시킨다. 그는 쿠바혁명 승리후 쿠바 공산당과 쿠바 혁명정부의 중요직책에 있으면서 쿠바혁명에서 얻은 것들을 지키며 혁명을 더욱 전진시키기 위하여 정력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쿠바혁명승리후 얼마간 아바나의 라 까바니아 요새수비대 사령관으로 있다가 산업발전을 조종하는 책임자로 있었으며 동시에 토지개혁의 준비에 참가하였다. 1959년 11월∼1961년 2월에 쿠바국립은행총재, 1961년 2월부터 쿠바산업부장관도 함께하였으며 1962년에 쿠바통일혁명조직 전국지도부 및 비서국에서 일했다.

 

그는 쿠바에서 많은 일들을 했음에도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일을 찾아 떠났다. 1965년 4월부터 쿠바를 벗어나 볼리비아로 투쟁무대를 옮겨 바리엔토스 정권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벌였으나, 1967년 10월 9일 미국이 가담한 볼리비아 정부군에게 잡혀 총살당했다. 그의 시체는 30년후 볼리비아에서 발굴되어 그가 혁명가로 활동했던 쿠바에 안장되었다.

 

체 게바라는 볼리비아 혁명 당시 사상적 동지인 볼리비아 공산당의 지원과 지역주민들의 적극적 지지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반정부혁명을 벌였다. 결국 게릴라전에 패해서 볼리비아군에게 사살당하고 말았다. 사후에 전 세계적으로 '체 게바라 열풍'을 일으킬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 이유로서 쿠바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도 이를 박차고 또 다른 혁명을 위해 헌신하는 숭고한 모습이 사람들을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교훈

 

체 게바라는 소영웅주의에 빠진 몽상가라는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남미혁명' 이라는 대업을 이루기 위해 직접 실천했던 위대한 영웅적인 면모가 더 부각된다. 실제로 체 게바라가 쿠바재무국장이었던 시절, 쿠바의 경제는 형편없었고, 게릴라전을 펼쳤을 때도 그의 작전능력과 정보수집능력은 볼모양이 없었다고 생각된다. 볼리비아에서는 그의 오판으로 인해 부하들뿐만 아니라 그자신도 요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그의 삶이 지금까지 찬연히 빛나고 있다.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자라고, 일은 쿠바에서 혁명하고, 볼리비아에서 39세란 젊은 청춘을 마지막 불태웠다. 그는 아르헨티나 사람이었지만,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전 남미를 위한 억압받는 민중 편이었다. 그는 혁명가 이전에 휴머니스트이었다. 비록 가슴에 품은 꿈이 실현 불가능 할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있는 그런 이상주의자이었다. 현실주의자들은 현실에 충실하지만, 이상주의자들은 현실의 틀을 뛰어넘어 다음시대로의 발판을 만들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간다. 인류역사는 언제나 이런 소수의 이상주의자에 의해서 역사발전은 해왔다.

 

검은 베레모에 손질하지 않은 긴 머리칼. 텁수룩한 턱 수염. 정 열적인 눈빛. 굳게 다문 입술, 아르헨티나의 촉망받는 의사출신으로 인간을 옭아매는 모든 독재에 대항하기 위해 전 세계 전장을 뛰어다닌, 1960년대 저항운동의 상징 체 게바라는 혁명가였지만, 너무나 인간적인, 인간에 대한 불가사의한 애정에 우리들 가슴을 쥐어짜고 있다. 그러나 가난에 찌든 민중의 아우성을  남미여행을 통해 확인한 뒤 “인간의 질병을 고치는 것보다, 이 세계의 모순을 치유하는 것이 우선”이라 고 결심한 그의 결단에 고개가 숙여 진다.

 

또한 체 게바라가 확실히 뜨거운 피를 가진 세기의 풍운아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쿠바장관이었던 시절에는 몸소 농민들과 함께 농사일을 하고 무거운 짐을 나르는 등 단 한시도 나태해지지 않고 노동을 몸소 실천하였다. 또한 안주하지 않고 전 세계를 누비며 대업을 이루기 위해 발로 뛰어다닌 그 정열은 그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인지를 보여 주고 있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에는 불가능한 이상을 품자" 이 명언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 삶을 살아온, 불꽃같이 타오르는 혁명가. 자신이 한번 품은 이상과 대의에 목숨까지 내걸고 직접 뛰어들 수 있었던 그 패기와 정열. 자신의 동지들과 함께 정글이나 오지를 전전하며 동고동락했던 그 우애는 본받을 만하다.

 

사람들은 숨 막히는 사회에 동화되어 무미건조하게 살아가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거나 무모한 것에는 현실적인 판단을 하기 전에 아예 그것을 거부한다. 그러나 그의 불꽃과도 같은 인생은 세상에 파묻혀 사는 우리가 무엇을 잊고 있는지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해준다. 우리들 각자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솔직히 저마다의 삶은 아무런 향기도 없다는 것이 생각 되지나 않은지, 오히려 향기보단 악취로 점철된 나를 보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악취가 어쩔 수 없는 것 인양 포기하면서 살아가는 저마다의 더 큰 절망을 또한 보게 되지나 않은지 생각해보야 한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더 말하거니와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자지자!"라는 체 게바라의 말을 능력 있게 지금 저마다 자기를 세워가자는 것이다. 일회적(一回的)인 인생을 이따위의 치졸한 욕심 따위에 빼앗기지 않으련다는 각오와 실천을 해보자는 것이다.

 

지금은 체 게바라가 살았던 당시의 게릴라 혁명의 시대는 분명 아니다. 그러나 당시 보다 더한 급격한 변화의 시대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1960년대 라틴아메리카 변혁의 한 복판에 서있던 체 게바라의 정신과 열정은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부분의 급격한 변화에 직면한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 훌륭한 교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 우리는 정신의 중심을 날카롭게 세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게바라의 활동과 정신이 이 시대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가졌던 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와 열정, 꿈, 자신의 땀과 노력과 사상을 소중히 여기고, 거기에 전폭적으로 열중하는 그 모습을 본받을 만하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가지는 생각들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통해 사람들을 설득하고, 그 목적의 방향으로 우리의 인생도 설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영웅 없는 시대의 영웅에 대한 그리움에 흠뻑 젖게 한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가는가를 심심히 반성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의 삶을 통해서, 인간과 그 인간이 이루고 있는 사회의 모순을 보면서 체념하지 않는 삶이 그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실천하는 삶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해나가는 그를 보면서, 저마다 “나는 뭘 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가슴 아픈 자성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가 싸운 제국주의와 다시 싸우고자하는 것이 우리들의 독백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 목표가 무엇이든지간에, 불의에 대항하고 인간성을 회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처절한 몸부림 없이 살아가는 우리자신들을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전 세계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주도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저절로 해결시킬 것을 예측했던 '아담 스미스'의 경제이론과는 달리, 여러 가지 사회 문제들이 생겼다. 따라서 국가가 개입하게 되었고, 국가의 개입에서도 많은 불평등과 부조리가 있었다.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개선을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고, 우리나라 또한 과거 군부독재시절에서 민주화되기까지 많은 피가 흘려진 끝에 지금의 민주 사회를 이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불평등과 부조리의 문제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이 존재하며 해결해야할 과제들이 많다고 생각하면서 필을 놓는다.

2010.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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