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다시 봄이 피어나는 길 / 문육자

문육자 (데레사) 수필가
입력일 2018-04-03 수정일 2018-04-03 발행일 2018-04-08 제 3089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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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잃어가는 겨울의 자락을 잡고 봄이 살포시 발을 디밀었습니다. 훼사 짓던 꽃샘바람도 저물녘이라 집으로 갔는지 성당 가는 길이 아지랑이 같기만 했습니다. 조배라도 할 양으로 일찍 나선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는 길엔 마음 아픈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높은 사다리차를 탄 아저씨들이 가로수 나뭇가지를 잘라내고 또 다른 아저씨는 굵은 밑둥치를 전기톱으로 자르고 있었습니다. 이 가로수는 7년 전 서울을 사정없이 강타한 곤파스라는 태풍으로 플라타너스들이 쓰러진 자리에 대신 심어진 낭만적인 마로니에였습니다. 그런데 얘네들은 토양이 맞지 않은지 여름이면 아저씨들의 손을 빌려 수액의 주사를 맞는 환자처럼 늘 5리터쯤 되는 물주머니를 달고 있어 안타깝게 하더니 기어이 우리 마을에서 삶을 마감하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마로니에의 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그들도 여기에 무척 살고 싶었겠지만 여긴 아니었나 봅니다. 몽마르트 언덕이나 루르드처럼 조금은 늘 촉촉한 터전이 그들에겐 제자리 같기만 하네요. 그들도 뿌리내릴 수 있는 자리를 용케도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린 눈으로 그 밑둥치에 눈이 갔습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잡초더미 속에 아기의 볼우물 같은 제비꽃이 소담스럽게 피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봄이 오면 고개를 간들거리며 춤출 수 있음을 어찌 알았을까요. 또 그 곁에 선 벚나무엔 물이 오르고 있었습니다. 여린 눈엽(嫩葉)이 눈웃음을 보내게 하고 탱탱 불은 여인의 젖가슴 같은 망울은 곧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가고 옴이 우리의 뜻이 아님을 부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 봉사자님, 그동안 건강하셨죠?” “네, 어머닌 잘 계시죠?”

내게 보례를 받은 할머니의 딸이었습니다. 할머닌 수술하러 들어갈 때 하늘나라에 가지 않고 돌아온다면 주님 말씀 더 공부하겠다는 약속을 했기에 나를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난청이 심해 말을 들을 수 없으니 어쩌면 좋으냐고 주님과의 약속은 어쩌느냐고 했습니다. 난 아주 담대하고 건방진 대답을 했습니다. 할머니의 귀는 가슴에 있으니 내 말을 아니 주님의 말씀을 내 입을 보면서 가슴으로 들으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솔깃하게 넘어가 준 할머니가 더없이 고맙고 7개월을 거뜬히 해낸 후는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할머닌 거의 십 년 세월을 주님 말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주님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뿌듯함으로 생을 이어나가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할머닌 내 입술이 연출하는 말을 알 수 있었을까요? 모르긴 하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옮기고 있다고 생각한 것만은 틀림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할머니의 가슴이 뜨겁게 주님의 음성을 받아들인 건 아닌지.

성당으로 가는 길은 봄이 피어나는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건사하고 있는 군식구들을 데리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병마들입니다. 오지랖 넓은 줄을 알고 아주 오래전에 내게 와서는 기식을 하더니 이젠 당당해졌습니다. 나를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주객이 전도되었지만 이 모든 일이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의 섭리며 선물이라 믿기에 감사히 받습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문육자 (데레사)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