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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옛날 어른이 주로 하던놀이
비공개 조회수 2,053 작성일2007.10.29

옛날 어른이 하던놀이 3가지좀 알려주삼!!내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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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hn****
수호신
세계사 24위, 한국사 69위, 사회학 14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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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퀴치기

 갈퀴치기란 나무꾼들이 산에 모여 나무를 해다 붙이고 갈퀴를 던져 엎어지는 사람이 이기게 되는데, 이 때 이긴 사람이 나무를 따먹게 되는 것이다. 갈퀴치기는 주로 나무를 다 마치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붙이는 나무는 보통 한 전씩이지만 때로는 나무 짐을 송두리째 걸고 하는 때도 있으니, 이때 지는 사람은 다시 나무를 해야 집에 돌아 갈 수 있으므로 매우 괴로움을 당하게 된다. 요즘은 이 같은 놀이도 거의 사라졌으며 또한 산에 가서 나무를 하는 예도 보기 드문 일이 된 것 같다.

 

 

골패(骨牌)

 골패는 한 때 바둑이나 장기와 같이 우리나라의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었던 놀이 기구의 하나였다. 그 모양을 보면 납작하고 네모진 작은 나무 바탕에 흰 뼈를 붙여 어른 손가락의 마디만하게 만들어서 여기에 여러 가지 수효의 구멍을 새긴 것이다. 또한 골패는 모두 32짝이 한 벌로 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백아·백사·아삼·어사·관이·아륙·삼사·삼오·삼륙·사오각이 한 짝이고, 다음은 통소·소삼·백오·진아·장삼·직흥·준오·사륙·오륙·준륙이 각 두 짝으로 되어 있었다. 골패는 바둑과 같이 심심할 때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매우 좋은 것이었으나, 때로는 도박적으로 악용된 때도 있었다. 요즘은 사라진 것 같다.

 

낫치기

 시골의 나뭇꾼들이 산에서 나무를 한전씩 붙여놓고 낫을 굴려서 멀리간 사람이 이기는 놀이이다. 낫치기를 달리 「낫딴치기」라고도 부르는데, 장소는 평평한 곳보다는 약간 경사진 잔디밭이 가장 좋은 것이다. 그리고 이 낫치기를 할 때에는 일정한 위치에 나뭇잎이나 풀잎 등으로 표시하여 놓고 뒤로 약 10여 미터 가량 물러갔다가, 거기서부터 낫을 어깨 위로 높이 들고 앞으로 힘차게 달려오면서 표시해 놓은 위치에 낫을 내리쳐서 굴러가게 하는 것인데, 이 때 제일 멀리 굴러간 낫이 승리하는 것이다. 낫치기를 잘하는 사람은 낫이 잘 굴러가도록 비교적 낫자루를 짧게하여 가지고 다닌다. 또한 낫치기는 지방에 따라다르다.  즉 나무를 한아름 모아 놓고 약 7내지 8미터 뒤에서 각각 나무단에 낫을 던진다. 이 때 낫이 바르게 꽂힌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요즘은 이 같은 놀이도 사라진 것 같다.

 

 

 

 

2007.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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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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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670****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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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인사 감사합니다.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내곤은15

 

팽이는 축()을 중심으로 둥근 동체가 회전운동을 하는 완구이다. 팽이치기의 시초는 도토리 따위를 돌려서 장난한 놀이 같은데, 이것을 연구하여 발달한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에서는 당()나라 때 성행한 것으로 여겨지며, 이것이 고려를 거쳐 일본으로 전해져, 일본에서는 팽이를 고마[]라고 한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으며, 종류도 나무 ·대나무 ·금속 ·유리 등이 있고 모양도 다양하다.

옛날 시골에서는 아이들이 나무로 팽이를 직접 깎아 만들어 추운 겨울 강가 ·연못 ·논바닥 등의 얼음 위에서 팽이치기를 하였다.

팽이를 치는 채는 40∼50cm의 싸리나무 같은 막대기 한 끝에 40∼50cm의 끈을 달아 팽이가 도는 방향으로 때리면 빠른 속도로 오래 돈다. 팽이치기에는 5∼10m의 목표 지점을 설정해 놓고 팽이채로 정확하게 팽이의 허리를 치면서 빨리 돌아오기를 겨루는 놀이, 돌고 있는 팽이를 맞부딪쳐 상대편 팽이를 쓰러뜨리는 팽이싸움놀이, 아래위로 총알을 박은 팽이를 팽이줄로 감아 머리 위로, 또는 팔을 옆으로 비켜서 마치 야구의 투수가 던지는 식으로 팽이를 던져 돌려 서로 맞부딪치게 하는 팽이찍기 등의 놀이 방법이 있다.

 

 

이름:널뛰기

즐기던사람들: 여성

할수있는것: 예전에는 여자들이 자유롭지못했다. 여자들은 밖에 세사을 보고싶었다.

 

 

 

 

*민속놀이 이름:
지경다지기놀이
*옛날이 즐기던 사람들:
평민 또는 농민등 집을 지을때 일을 하던 사람들

*이 놀이를 통해 알수 있는점;
지경다지기는 지경석이나 지경목으로 집을 지을 때 자리를 다지는 공동 노동행사다. 이때 불리는 소리를 지경소리, 지점이 소리, 지덩이 소리, 달구소리, 집터 다지는 소리라 부른다. 집터를 다지는 일은 노동의 행위를 넘어서 지신에 대한 숭배와 일체화 과정의 제례행위였으며 두레 공동노동과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공동체적 놀이 행위였다.
여느 지방에서와 달리 남녀간에 나누어 부르는 지경다지기 노래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갑천문화제에서 빼놓지 말고 보아야 할 것이 다름아닌 지경다지기놀이 시연이다.
이때 소리를 부름과 함께 그 선율에 맞춰 땅을 다지는 것이다. 이렇게 견고히 다져진 땅은 집터로 사용되는 것이다.
이것은 곧 인간과 땅을 죽음이 무관하지 않음을 직시한 결과였으며 노동형태도 흡사하였다.
땅을 다지는 것은 단지 땅을 견고히 하기 위한 노동을 넘어서 지신(地神)에 대한 숭배와 일체화 과정의 제례 행위였으며 두레 공동노동과 공동노동조직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공동체적 놀이행위였다.
땅을 살아있는 생명체로 생각했던 선조들의 정신때문에 지경다지기 행사는 그 자체가 생활과 신앙과
노동의 하나되는 과정이자 확인 과정이었던 축제였던 것이다
광주광역시 남구 대촌동 윷돌마을에서(전남 광산군 대촌면 칠석리) 매해 음력 정월 10경부터 2월 초하루에 걸쳐서 벌이던 놀이다.
큰 줄을 꼬아 앞 쪽에 고를 짓고 이것을 양쪽에서 밀어서 부딪게 한 다음 상대방의 고를 땅에 내려뜨린 쪽이 이기게 된다.
이 놀이의 유래에 대해 마을 주민들은 황소가 일어나면 큰 재난이 일어난다 믿고 있던 칠석리 마을은 풍수적으로 황소가 쭈그리고 앉은 와우상을 하고 있어 터가 거세다 하여, 거센 자세를 누르기 위해 이 마을에선 황소의 입에 해당하는 지점에 연못을 파 놓았고, 항소가 일어서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소의 고삐 부분을 나무에 묶어 놓고 꼬리부분을 돌 일곱 개로 눌러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속설은 전남 일대의 큰 마을마다 퍼져 있는 이야기로 믿을 만한 것은 못되며 고싸움놀이를 줄다리기 놀이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도깨비놀이
사내아이들이 정월밤에 쥐불놀이 할 때 그중 장난끼 있는 아이들이 얼굴에 종이 탈을 만들어 쓰고 바지를 홀쭉하게 입고서 한손에는 횃불을 들고 다른 한손에는 방망이를 들고 기성을 지르며 언덕으로 마을로 내딛는데 이 놀이를 도깨비 놀음이라 한다.
어른들이 보기에 망측스럽고 불이 조심스러워 말려도 듣지 않았다고 한다

마디좀 놀이(가막다기,구럭다기)
연초 구럭다기날, 가막다기날, 마디좀날은 아낙네들이 모여 즐겁게 노는 날이다.
가막다기날은 정월 16일이며 이 날 나들이하면 재수없다 하여 아낙네들이 동네밖에 나가지 않고 모여 논다.
마디좀은 정월 22일날로 이날 놀지 않으면 곡식의 마디마디에 병이 난다고 하여 곡식이 마디 마디 잘 여물라고 아낙네들이 모여 놀았다.
구럭다기 날은 2월1일로 이 날 놀지 않으면 '구럭이 썬다' 고 한다.
이 세날에는 아낙네들이 마을의 큰 집에 모여 음식을 장만해 나눠 먹고 북 장구 혹은 큰 대야에 물을 가득 붓고 쪽박을 물위에 엎어 놓고 숟가락으로 때리며 물장구를치면서 돈돌나리와 같은 소리도 하고 넋두리 춤도 추며 즐겁게 놀았다고 한다.
이때 추는 넋두리 춤은 매우 간드러지고 흥겨운 춤이라고 한다

승경도 놀이
친족이 한 줄로 열을 지어 앉은 뒤 맨위에서 부터 벼슬을 정한다.
왕,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판서, 참판, 나졸, 거지 등 알기 쉽게 요즘식으로 차례를 매긴다.
먼저 거지가 바로 윗자리에 나아가 절을 한 번 하고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이기면 계속 그 다음 벼슬에 도전한다.
거지가 지면 그 자리에 남고 이긴 사람이 도전을 계속해 나간다.
이렇게 해서 왕에 도전한 사람이 지면 거지가 된다. 왕도 지면 거지가 된다.
왕이 도전자를 세 번 이기면 마지막에 도전한 사람에게 원하는 벌을 줄 수 있다.
원래 이 놀이는 양반층 자제들이나 부녀자들이 말판인 陞卿圖를가지고 즐겨하던 놀이인데 현대화한 것이다

쌍 륙 놀 이



쌍륙놀이는 장기와 윷놀이의 특성이 혼합된 놀이다.
쌍륙은 중국 한나라의 서역 개척후에 전래된 서역의 유희로 동생이 죄를 지어 옥에 갇혀 참형에 처하게 되자 이때 홀로 여러 무리를 치는 것을 쌍륙(악삭)놀이로 보아 왕에게 풍자한 것이 그 기원이다.

백제시대 때부터 즐겼던 놀이로 조선시대 화가 신윤복의 민속화에서도 그 놀이모습을 볼 수 있다.
인도지방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쌍륙은 동쪽으론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전해졌고,서쪽으론 중동지방을 거쳐 유럽, 아프리카지 역까지 전파됐다.
나라별로 놀이방법이 약간 차이가 있으나 지금은 통일된 놀이방법으로 세계선수권까지 개최될 정도이다.

우리의 전통 놀이방법과 비슷한 국제규칙에 따르면 두 사람이 각각 주사위 2개와 자기 말 15개씩을 일정한 방법으로 판 위에 배열한 후 주사위 2개씩을 던져 나온 숫자만큼 자기 말을 이동시켜 판을 돌아 나간다.
상대보다 먼저 자신의 말을 모두 판 밖으로 나가게 해야 이기게 되는데 도중에 상대방의 말을 잡거나 못 가게 막는 등 서로 견제하는 것이 재미있다.

연날리기

연날리기는 세계 곳곳에서 신분, 연령의 구분없이 즐겨오는 놀이다.
대가지를 가늘게 잘라서 연살을 만들고 종이를 붙여 연을 만들고 살에 매어 바람 부는 언덕에 올라 날린다.
때로 다른 사람과 서로 연실을 부벼 끊는 연싸움을 하기도 한다.
연을 띄울 때 '송액영복'이란 글자를 써 붙이는데 이것을 질병, 사고, 흉년등 나쁜 액운은 멀리 사라지고 복이 찾아 오도록 비는 마음에서이다.
우리나라에서 연날리기가 널리 민중에게 보급된것은 조선시대의 영조왕 때라고 한다.
영조왕은 연날리기를 즐겨 구경했고 또 장려 하였다고 한다.
정월에 연날리기가 성행하게된 이유중 하나는 일 년 사계절 중 이때가 연날리기에 가장 적당한 바람이 불고 있다는 점이다

자치기

마당에서 막대기를 쳐서 그 길이를 자막대기로 재면서 노는 놀이이다.
자치기는 나무로 된 길고 짧은 2개의 막대기를 가지고 마당이나 골목등에서 치며 노는 어린아이들의 놀이를 말한다. 그 명칭을《조선의 향토오락》에서는〈척취尺取놀이〉,〈척타尺打놀이〉등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것을 보아 오늘날 어린이들 사이에 널리 불리어지고 있는〈자치기〉라는 명칭이 1941년 당시에 이미 통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의 말의 구조는 [자]와 [치기]의 합성어로서, [자로 치는] 놀이라는 뜻이 되겠지만 이 [자]는 길이나 높이를 재는 [자]가 아니라, 나무 막대기를 가지고 놀되 거리를 재어 점수를 삼는 기준으로 이 막대기를 자처럼 쓰기 때문에 [자치기]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이 놀이는 지방에 따라서 [메뚜기차기], [오둑테기] 또는 [막대], [마패]라고도 한다.
또한 경남 창원 지방에서는 이를 [토끼방구]라 부르기도 한다.

자치기를 하는 데 쓰이는 긴 막대를 [채]라 하며 이는 대체로 20∼30㎝ 가량 되고, 짧은 쪽은 [알] 또는 [메뚜기]라 하여 양쪽 끝을 뾰족하게 깎았는데 길이가 7∼10㎝ 가량 된다.
이때 채를 쥐고 공격하는 편을 [포수]라 하고, 수비하는 편을 [범]이라고 부른다.
점수는 [동] 또는 [자]라고 하는데, 놀이를 할 때 몇 동 내기 몇 자 내기를 할 것인지 미리 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다음의 놀이방법을 일반적으로 많이 하고 있는 전라도 지방의 자치기를 소개한 것이다.

첫째, 길쭉하게 파놓은 함정 위에 [알]을 가로로 얹어놓고 [채]의 끝을 이 함정에 넣어 알을 떠서 멀리 날린다. 이때 [범]은 알이 날아오리라고 생각되는 장소에 미리 가서 서 있다가 손으로 잡는다. 만약 범이 이를 잡으면 차례가 바뀌어 범이 [포수]가 되나 그렇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알을 함정으로 향하여 던진다.
이때 포수는 채로써 날아오는 알을 되받아 쳐서 멀리 날릴수록 유리하다.
알이 떨어진 곳에서부터 채로 거리를 제어 자로 셈하기 때문이다.
거리를 재기 전에 범이 포수에게 「몇 자?」하고 물으면 포수는 짐작을 잘하여 이에 대답하여야 한다.
범의 추측에 그 거리가 충분하다고 생각되면 그대로 인정하지만 모자랄 듯싶으면 실제로 재어보는데, 포수가 실제의 길이보다 많이 부른 경우에는 그가 범이 되고 범은 포수가 되어 공격으로 들어간다.

둘째, 알의 한끝을 함정에 비스듬히 세웠다가 채로 쳐 올린 것을 다시 쳐서 멀리 보내게 된다.
이때 범이 그 알을 잡으면 약속한 점수를 얻게 되고, 놓치면 알이 떨어진 지점에서 함정으로 던진다.
그 결과 알이 함정에 걸리거나 또는 함정과 알의 사이가 알의 길이로 2자 안에 들면 범이 살고, 그렇지 못하면 죽는다.
함정과 알 사이의 거리는 놀이를 시작할 때 미리 정하여 둔다.

셋째, 한 손에 채와 알을 쥐고 있다가 알만을 공중에 던져 올려서, 떨어질 때 이를 채로 받아치는 방법이다.
이를 헛치면 포수가 죽고, 날아오르는 알을 범이 잡으면 약속한 점수를 얻는다.
그러나 범이 죽으면 알이 떨어진 지점에서부터 채로 거리를 재어 자수를 셈한다.

넷째, 채와 알을 두 손에 따로 쥐고 알만을 공중에 던져서 채로 후려치는 방법이다.
어느 편이 죽고 사는가 하는 점과 자수를 세는 내용은 앞의 놀이와 같다.

다섯째, 한 손에 알을 쥐고 다른 손의 채로 알의 끝을 쳐서 공중에서 뱅글뱅글 돌아가게 하였다가 채로 힘껏 쳐서 멀리 보내는 방법이다.
이때 헛치면 채를 범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여섯째, 함정에 알을 놓고 채를 쥔 손을 가랑이 밑으로 넣어서 가볍게 때려 공중에 뜨게 한 다음 채를 빨리 가랑이에서 빼내어 후려치는 방법이다.

이와 같은 순서로 놀이가 진행되는데 그 외에도 지방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고, 이 여섯 가지 놀이순서를 모두 거쳐야 한판이 끝난 것으로 하기도 한다.
그러나 단둘이 놀 때에는 포수가 실패할 때마다 범이 포수가 된다. 또 승부를 자수로써 미리 정하기도 하고, 앞의 순서는 다 거치는 동안 채로 잰 거리의 수를 모두 합하여 정하기도 하며, 미리 몇 번 할 것인가를 정하여 놓고 그 횟수의 총 자수를 합하여 결정하는 수도 있다.

또한 땅에 함정을 파는 대신 둥근 원을 그려놓고 하기도 하는데, 원을 세 겹으로 그려놓고 그 원의 제일 작은 가운데 원 속에 던지는 막대기(자)가 들어가면 세 번, 그 다음 원 속에 들어가면 두 번, 제일 바깥 원 속에 들어가면 한 번 계속해서 공격자가 공격하는 방법도 있다.

제기차기

제기는 엽전이나 구멍이 뚫린 주화를 얇고 질긴 한지나 비단에 접엇 싼 다음 양끝을 구멍에 꿰고 그 끝을 여러 갈래로 찢어서 너풀거리게 한 것인데, 주로 설날에 즐기는 놀이기구이다.

엽전을 종이에 싸거나 실로 꿰어 장식하여 발로 차면서 노는 놀이를 제기차기라 한다.

제기차기가 어떻게 유래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2700년 무렵 중국에서 무술을 연마하기 위해 고안된 '축국놀이'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주로 겨울철에 많이 하며 한 발로 몸을 지탱하면서 다른 발로 제기를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차야 하기 때문에 매우 활동적인 놀이라 할 수 있다.

신체 단련이나 인내심과 지구력을 기르는데 도움이 된다.

이 놀이는 <축구>에서 발전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축국은 고대 중국에서 무술을 연마하기 위하여 행하던 것으로, 넓은 마당에 높은 장대를 여러 개 세워 그 위에 망을 치고, 털로 싼 가죽공을 여러 사람이 다투어 차서 공을 망 위에 얹는 결과로 승패를 짓던 것이었다.

뒷날 공에 바람을 넣어 사용하게 되어 이름도 축구 또는 타구로 바뀌었다.

<구당서>에 고구려 사람들이 축국을 잘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신라의 김유신이 축국을 빙자하여 김춘추의 옷고름을 밟아 떼어 누이인 문희에게 달게 함으로써 두 사람의 인연을 맺게 하였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실려 있다.
또한 <수서> <동이전 백제조>를 보면 백제에서도 축국놀이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와같이 이 놀이가 삼국시대부터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널리 행해져 왔음을 짐작하게 한다.
조선시대에는 한자어 <축국>에 우리말 음을 넣어 <적이>라 했다.

그후 <적이>란 말은 <제기>로 바뀌게 되고, 놀이방법도 공을 차올리는 것에서 오늘에 보이는 소년들의 <제기차기>로 변했으리라는 설도 있다.

투호

삼국 시대 때부터 유행되었으며 이조 초기에는 궁중에서 투호를 한 기록이 보임. 여자들도 즐겨하던 놀이임.
투호는 본래 중국의 놀이로 당나라 때에 성행 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놀이가 일찍부터 전해져 행해진 것은 당나라 때의 학자 이연수의 '북사' 백제전에 투호·저포·농주와 악삭 등 잡회가 있다 하였고 '신당서' 고구려전에도 고구려인은 바둑과 투호놀이를 좋아한다고 하였음을 보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주로 궁중과 조정의 고관들이 기로연 잔치 때에 여흥으로 많이 하였다.
이 놀이는 오늘날 민간에 전승되어 오지 않는 놀이 중 하나이다.

※ 기로연 : 조선시대에 70세 이상의 원로 문신들을 위로하고 예우하기 위해 봄 ·가을에 정기적으로 국가에서 베푼 잔치

⑴ 놀이 방법
① 편을 나눈다.
② 화살은 청백별로 색깔로 구분하고 각각 2개씩 준비하여 경기 위치에 선 다.
③ 경기장 구성은 도해처럼 다양하게 할 수 있다.
④ "준비" 구령에 의해 제 1번 자기 화살을 던져 병속에 넣을 준비를 한다.
⑤ "시작" 구령에 따라 통을 향하여 가지고 있던 화살을 던진다.
⑥ 반복하여 차례로 던진다.
⑵ 승부 정하기와 규칙
· 던진 화살 가운데 통 속에 꽂힌 화살 수를 가려 많이 꽂힌 사람이 이기게 된다.

팽이치기
겨울에 사내 아이들이 얼음판 위에서 많이 하는 놀이로 도래기치기라고도 한다.
팽이에는 아랫쪽은 뾰족하게 깎고 위는 평평하게 깎아 만든 보통 팽이 와 위 아래 모두 뾰족하게 깎아 만든 불팽이가 있다
얼음판이나 땅바닥에 손으로 팽이를 돌린 다음 가는 막대기에 헝겊 또는 삼실을달아 만든 팽이 채로 쳐서세게 돌리는데 여러 아이들이 저마다 팽이를 힘껏 친 다음 일제히 팽이채를 거두고 가장 오래 가는 팽이를 장원으로 뽑는다.
먼 옛날 도토리나 상수리처럼 둥글고 길쭉한 물체를 돌리기 시작한데서 유래됐을 것이라고도 하고,또 다른 설은 당나라때 놀이가 시작되어 삼국시대때 우리 나라에 전해지고 다시 일본에 건너가서 '고마'라는 이름으로 성행, 발전하여 우리 나라에 역으로 전해졌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놋다리밟기

놋다리 밟기란 부녀자들이 행하던 놀이로 기와밟기, 동교, 인다리 등으로 불려진다.
수십 명의 부녀자들이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허리를 굽히고 앞사람의 허리를 두손으로 껴안아 긴 사람다리(인다리)를 만든다.
다리를 만든 다음, 맨 뒷 사람부터 한 명씩 순서대로 건너게하고 다 건넌 뒤는 내려서 그 자리에 허리를 굽히고 다시 놋다리를 구성한다.
놋다리 밟기에 참가하는 여인들은 신분, 연령에 구애없이 누구나 참가하여 즐길 수 있었다

2007.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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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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윷놀이 장기 바둑 등등

2007.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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