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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서울시 관악구 낙성대로 77

1. 낙성대에 별이 떨어졌다고요?

준비물: 사진기, 필기도구
* 낙성대는 공원으로 언제든지 관람할 수 있어요.
*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 승강장에는 강감찬 장군과 관련된 아트 타일이 설치되어 있어요. 함께 둘러보면 좋아요.

우리 역사에는 위기의 순간에 나라를 구한 명장1)들이 참 많아요. 그중에서도 무예와 학문을 두루 갖춘 고려 시대의 영웅이 있어요. 바로 강감찬 장군이에요.

강감찬 장군은 거란 침략군을 귀주에서 크게 물리친 귀주 대첩의 영웅이었어요. 그래서 오랜 세월 백성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답니다.

강감찬 장군은 고려 시대(948년)에 태어났어요. 장군이 태어날 때 반짝반짝 빛나는 문곡성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설화가 전해져요. 이 문곡성은 사람의 운명을 점치는 9개의 별들 중에 네 번째 별로 학문과 재물을 관장2)하는 별이에요. 그래서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곳의 이름도 별이 떨어진 곳이라고 하여 ‘낙성대’로 이름 붙여졌지요.

강감찬 장군은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어린 시절부터 재주가 뛰어나고 용맹했어요. 또 누구보다 열심히 학업과 무예를 닦았지요. 침착하고 의지가 강해 과거시험에서도 일등으로 합격하여 벼슬에 오르게 되었어요.

강감찬 장군은 뛰어난 지혜와 용맹함으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고려 시대의 영웅이었답니다.

고려 시대에 잦은 외적의 침입에 맞서 싸운 명장들은 누가 있을까요?

고려 시대 거란에 맞서 싸운 강감찬과 서희가 있었고요. 고려 말, 중국에서 화약을 들여와 외적과의 싸움에서 공을 세운 최무선, 여러 차례 외적의 침입을 막고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최영 등이 있었어요.

2. 귀주 대첩의 승리에 대해 알아볼까요?

강감찬 장군은 거란과의 싸움인 귀주 대첩을 승리로 이끈 고려시대의 영웅이었어요. 그 당시는 거란족이 세 차례나 고려를 침입하던 시기였지요. 이처럼 위험해 처한 나라를 구한 영웅이 바로 강감찬 장군이에요.

1) 고려를 넘보던 거란의 침입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은 요나라를 세우고 맹위3)를 떨쳤어요. 고려는 이런 거란에 대해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북쪽으로 나라의 세력을 뻗쳐 나가려는 북진 정책을 펼쳤지요. 결국 북진 정책이 원인이 되어 993년 거란의 소손녕이 고려를 침입했어요.

하지만 서희의 외교 담판으로 압록강 동쪽의 땅을 회복할 수 있었어요. 그 후 1010년 거란이 두 번째로 침입했지요. 그리고 압록강 남쪽의 강동 6주가 군사적 근거지가 되자, 거란은 이를 차지할 목적으로 1018년 다시 침입해 왔답니다.

서희의 외교 담판은 무엇인가요?

거란의 소손녕은 고려를 1차 침입하면서 고려의 항복을 요구했어요. 하지만 서희는 거란의 소손녕을 찾아가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이며, 고려가 고구려의 옛 영토를 차지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했지요. 그 결과 거란은 고려가 고구려를 이어받은 나라라는 것을 인정하며 물러났다고 해요.

2) 큰 승리를 거둔 귀주 대첩

거란의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세 번째로 고려를 침입하자 강감찬 장군은 20만 군사를 이끌고 압록강 근처 흥화진으로 진격했어요.
이곳에서 강감찬 장군은 큰 밧줄에 소가죽을 꿰어 강둑을 막아 거란 군사들이 강을 건널 때 둑을 터뜨리는 전략을 사용했어요. 이 전략으로 거란군을 귀주로 몰아 그곳에서 거란군을 크게 물리쳤지요. 이 승리를 귀주 대첩이라고 해요. 이후 거란은 크게 패배하여 다시는 고려를 침범하지 못했어요.

3) 신화가 된 강감찬 장군

귀주 대첩으로 승리를 거둔 강감찬 장군은 북방 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곽을 쌓고 국방 강화에 힘썼어요.

1030년에는 고려 시대 최고의 관직인 문하시중에까지 올랐으며, 1031년에 생을 마쳤지요. 강감찬 장군이 죽자 덕종은 3일간 조회를 멈추고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르게 했다고 해요.

3. 강감찬 장군의 모든 것이 있다고요?

추천 체험 학습 코스
낙성대 공원 입구 → 유허비 → 사적비 → 삼층 석탑 → 안국사

추천 체험 학습 코스

추천 체험 학습 코스

1) 낙성대 공원 입구

낙성대 공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강감찬 장군의 기마 청동상을 볼 수 있어요. 거란의 10만 대군을 물리친 귀주 대첩의 영웅답게 칼을 빼들고 앞으로 돌진하는 자세가 늠름하지요.

2) 유허비

유허비가 있는 곳은 원래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곳이에요. 강감찬 장군의 탄생지를 성역4)화한 곳은 낙성대이지만 장군이 태어난 곳은 유허비가 있는 이곳이지요.

유허비란 무엇인가요?

선조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에 그들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를 말해요.

3) 사적비

삼층 석탑 맞은편에 거북 모양의 사적비가 있어요. 사적비 뒷면에는 강감찬 장군의 생애와 업적에 대한 글이 새겨져 있지요. 강감찬 장군에 대해 알려면 이곳도 들러 보세요.

강감찬 장군 사적비

강감찬 장군 사적비

4) 삼층 석탑

안국문을 들어서면, 장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고려 시대 백성들이 세웠던 삼층 석탑이 있어요. 원래 낙성대 유허비에 있던 탑을 이곳으로 옮겨 놓은 거예요.

낙성대 삼층 석탑

낙성대 삼층 석탑

5) 안국사

안국문을 거쳐 돌계단을 올라가면 사당이 있는데, 그곳에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어요. 강감찬 장군이 ‘안국공신’이라는 칭호를 받았기 때문에 ‘안국사’라고 부르지요. 안국사는 고려 시대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부석사 무량수전을 본떠 만들었어요.

낙성대 안국사

낙성대 안국사

6) 이것만은 해 봅시다.

① 낙성대 숲 속 여행 프로그램을 이용해 보세요.
낙성대 공원과 숲 속 여행을 한번에 체험할 수 있어요. 낙성대 공원에서부터 자작나무 조림지, 소나무 군락 등 약 3킬로미터 거리를 걸으며, 역사와 자연 생태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 보세요.

② 매년 10월에는 낙성대 인헌제가 열려요.
낙성대 안국사에서는 1988년부터 강감찬 장군의 호국 정신과 위업을 기리는 추모 제향이 열리고 있어요. 낙성대 인헌제에서는 구민 백일장, 구민 휘호 대회에 참여할 수 있어요.

③ 전통 야외 소극장에서 전통문화를 느껴 보세요.
전통 혼례와 국악 놀이마당이 펼쳐지는 전통 야외 소극장에서는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와 미풍양속을 체험할 수 있어요. 우리 조상의 얼과 멋을 느끼고 배우는 소중한 기회가 될 거예요.

4. 체험 학습 보고서

낙성대를 다녀와서

낙성대는 고려 시대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곳이다. 낙성대는 공원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나와 있었다.

강감찬 장군을 기리는 낙성대
낙성대 공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힘찬 모습으로 말을 타고 전진하는 강감찬 장군을 볼 수 있었다. 꽤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동상은 그 위엄이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안국사로 가는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었는데 가운데 태극 문양이 있어서 인상 깊었다. 강감찬 장군의 영정이 있는 사당은 장군의 이야기를 벽화로 꾸며 놓았다. 안국문 옆으로 오솔길을 따라 나무들이 울창해서 삼림욕하기에도 좋았다.

삼림욕하기 좋은 낙성대 공원
낙성대 공원은 전체적으로 깔끔했지만, 주변에 울창한 숲들이 많아 삼림욕하기에도 무척 좋았다. 공원 안에는 전통 야외 소극장이 있어서 전통 혼례를 볼 수 있고, 예절 교육도 한다고 했다.

낙성대에 대해 느낀 점
문득 낙성대라고 해서 대학교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그곳은 별이 떨어진 곳이라고 해서 낙성대라 부르며, 위기에 처한 고려를 구한 강감찬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곳이었다. 또 한 명의 위인에 대해서 알게 되어 기뻤고, 잘 가꾸어진 공원이 우리 집 가까이에 있어서 좋았다.

5. 여기도 좋아요

1) 김유신 장군 탄생지

김유신 장군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 통일을 이룬 인물이지요. 김유신 장군은 신라 역사상 가장 높은 관직인 태대각간을 지냈어요. 김유신 장군 탄생지에는 김유신 장군의 영정이 모셔진 길상사, 진천 종박물관, 보탑사 등도 있으니 함께 둘러보세요.

위치: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김유신길 170-4

2) 허균·허난설헌 생가

강릉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인 《홍길동전》을 쓴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소설가 허균과 그의 누이이자 조선 시대의 여류 시인인 허난설헌의 생가가 있어요. 허균·허난설헌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허균·허난설헌 기념관도 있지요.

위치: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 477-8

3) 유관순 열사 생가

유관순 열사는 최대의 독립운동인 아우내 만세 운동을 주도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어요. 옥중에서도 만세 운동을 하다가 1920년 순국했지요. 유관순 열사의 애국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1년 옛 집터에 생가를 복원했어요. 생가 옆에는 기념비와 열사가 다녔던 매봉교회, 유관순 열사 기념관 등이 있어요.

위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 338-1

관련이미지

안국사

안국사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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