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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부시대통령에대해 소개.
newd**** 조회수 3,634 작성일2008.08.07
부시대통령에 대한 소개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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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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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는 미국의 영도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즉 자유, 정의, 평등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국가의 영도력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가족 및 우리가 속한 사회 공동체에 대해 수행해야 할 개인으로서의 의무가 있는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자유로운 나라인 미국의 시민으로서 수행해야 할 집합적인 의무도 있습니다. 미국은 물리적인 국경의 범위 내에서 웅크리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미국이 수출하는 가장 위대한 가치는 자유이며 우리에게는 전세계에 자유를 주창해 나가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습니다.”



 


 












조지 W. 부시는 미국의 제 43대 대통령이다. 우리는 미국의 최고 지도자들 속에서
낯익은 이름을 만날 수 있다. 이는 조지 W. 부시가 미국의 제 41대 대통령인 조지 H.W. 부시의 큰 아들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이어 아들이 미국 대통령이 된 것은 제 2대 대통령인 존 아담스의 둘째 아들이었던 존 Q. 아담스가 1825년 6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또한 부시 대통령은 주지사를 지낸 정치인으로서 미국의 최고 권좌에 오른 또 한 명의 정치인으로
기록되었다. 조지아 주지사를 지낸 민주당의 지미 카터가 1976년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1980년에는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역임한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이, 1992년에는 알칸소 주지사를 지낸 민주당의 빌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된 바 있다. 그리고 이제 공화당의
조지 W. 부시가 텍사스 주지사로 재임 중에 43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다.
대선 유세 기간 동안 부시 대통령이 전달한
메시지는 공화 및 민주 진영의 보수주의자 및 온건주의자, 양당을 모두 지지하지 않는 이들, 남성 및 여성, 히스패닉계 및 흑인 등
사회 각계 각층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부시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포용(idea of inclusion)’이라는 것이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이와 관련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물론 우리나라는 계속 번영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번영에는 뚜렷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미국의 번영은 의지가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미국의 꿈’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번영을 추구하는
목적은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그 누구도 뒤쳐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src="http://usembassy.state.gov/seoul/wwwg903pic1.gif">
부시 가족 3대가 모였다. 사진 중앙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할아버지인 프레스코트 부시와 할머니인
도로시 워커 부시. 프레스코트 부시는1952년부터 1963년까지 커네티컷 주의 상원의원을 역임한 바 있다. 조지 부시와 바버라 부시
부부 옆 왼쪽 끝에 서 있는 소년이 조지 W. 부시, 그리고 형제인 제브 부시와 닐 부시.
    


부시 대통령은 이러한 철학을 “배려하는 보수주의”로 명명했다. 이와 관련 부시 대통령은
유권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저는 보수주의란 개개인이 각자의 최고 잠재력을 성취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철학이라고 깊게 믿고
있습니다. 세금 감면은 보수주의이며 소비할 수 있는 돈이 사람들에게 더 많이 돌아가게 하는 것은 배려입니다. 또한 학교의 관할권을
지방 자치단체에 귀속되도록 하는 것과 높은 기준 및 성과를 유지하는 것은 보수주의며 모든 어린이가 읽기를 배우고 아무도 뒤쳐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배려입니다.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일을 하도록 만드는 복지 제도의 개혁은 보수주의며 사람들이 정부에 대한
의존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는 것은 배려입니다. 마지막으로 잘못된 행동에 대한 결과를 강조하는 청소년 관련 법규의 개혁은 보수주의이며
원칙과 사랑이 별개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은 배려입니다.”
부시 대통령은 이와 같은 보수주의의 정의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되는 배려하는 보수주의는 유약하거나 모호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구체적이며 강력한 것입니다. 이러한 보수주의는 선량한 의도가 아니라
좋은 결과를 보다 중요시 하는 것입니다. 배려하는 보수주의는 빈곤층 및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계층을 포함, 모든 사람을 지원하는데 있어
보수주의 및 자유 시장 원칙을 적용합니다. 또한 제가 생각하는 배려하는 보수주의의 비전에는 미국의 영도력이 세계에 영향을 발휘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미국의 힘을 강력하게, 동시에 평화를 유지하고 자유를 확산시킬 수
있도록 배려하는 방식으로 사용해야 합니다.”라고 얘기했다.
칼럼니스트인 디온 2세(E.J. Dionne Jr.)는 워싱턴 포스트
지에 실린 칼럼에서 부시 대통령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조시 W. 부시가 거의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얻을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그가 아주 오래된 정치적 비법에 통달했기 때문이다. 즉 그는 사람들, 각계 각층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게
만든다.”





 













조지 W. 부시 신임 대통령은 정치를 중요한 소명으로 생각하는 가문 출신이다. 부시
대통령의 조부인 프레스코트 부시(Prescott Bush)는 1952년부터 1963년까지 커네티컷 주 상원의원을 역임했다. 또한
부친인 부시 전 대통령 역시 1966년 텍사스 주 휴스턴의 하원 의원으로 선출되면서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부시 신임 대통령의 부친인
조지 부시는 1981년부터 1989년까지의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부통령 직을 수행했고 1989년부터 1993년까지는 대통령으로서
미국을 이끌었다. 또한 조지 W. 부시 신임 대통령의 남동생인 제브 부시(Jeb Bush)는 현재 플로리다 주지사이다.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자서전[“A Charge to Keep”]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조부인 프레스코트 부시는 한 개인이 기여하는
것 중 가장 영속적이고 중요한 것은 공공 봉사의 요청을 귀담아 듣고 이에 따르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볼때 부와 물질은
삶의 지표가 될 수 없으며 만약 부와 물질을 가지고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봉사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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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는 1946년 7월 6일, 당시 예일 대학교 학생이던 부시 전 대통령이
거주하던 커네티컷 주 뉴 헤이븐에서 태어났다. 2년 후 예일 대학을 졸업한 부시 전 대통령은 부인인 바바라 여사와 어린 아들과 함께
서부 텍사스로 옮겨가 석유 회사에서 처음 사회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조지 W. 부시는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텍사스 주 미들랜드에서
보냈으며 아직도 그 곳을 고향으로 생각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자서전에 고향에 대한 회상을 담고 있다. “미들랜드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고 작은 마을의 가치를 유지하고 있었다. 우리는 어른을 공경하고, 어른의 말씀을 따르며, 좋은 이웃이 되어야 한다고
배웠다. 우리는 교회를 다녔다. 또 야외에서 여러 가족이 모여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어른들이 얘기를 하는 동안 아이들은 야구를 하거나
구슬치기, 요요를 하면서 놀았다. 가정 생활 못지않게 학교 생활도 중요했다. 미들랜드의 지도층 인사들은 학교에 최고의 자질을 갖춘
교사들을 유치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또 친구와 이웃을 깊이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에 문을 잠그는 집이 없었다. 나는 사랑과 친구와
스포츠로 둘러싸인 아주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특히 스포츠 활동이 활발했다. 조지 W. 부시와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마이크 프록터(Mike Proctor)는 당시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항상 함께 놀았습니다. 학교가 파한 후나 쉬는
시간에나 야구를 할 수 있는 장소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팀을 결정하고 곧장 시합에 들어갔지요. 그때 마다 조지(조지 W. 부시)는
대장 역할을 맡아 하곤 했습니다.”
1956년 텍사스 주 미들랜드의 자택 앞에서 조지 부시, 바버라 부시와 함께 선 조지 W. 부시
(오른쪽). 위로부터 부시의 동생인 닐, 제브, 마빈, 그리고 1959년 태어난 도로시.
        
 

1949년 12월 조지 W. 부시의 여동생인 로빈(Robin)이 태어났고, 뒤이어 둘째 동생인
존(John, 보통 “제브(Jeb)”라고 부름)이 1953년 2월 태어났다. 그런데 제브가 태어난 지 몇 주 후에 로빈이 백혈병에
걸린 사실이 혈액 검사 결과 밝혀졌다. 현재는 어느 정도 치료가 가능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이 병에 대해서 거의 알려진 바가 없었다.
결국 로빈은 1953년 10월, 3살의 어린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여동생의 죽음은 어린 소년이었던 조지 W. 부시에게 상당한
충격이었고 당시의 상황을 자서전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나는 슬펐고 아무런 경황이 없었다. 물론 당시 로빈이 아프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죽음이라는 건 상상하기조차 힘들었다. 몇 분전만 하더라도 나에게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여동생이 없어진
것이었다. 46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의 몇 분간은 내 행복한 어린 시절의 뼈저린 아픔으로 각인되어 있다.”
부시 가족이 서부
텍사스에 머무르는 동안 세 명의 자녀가 더 태어났다. 1955년에는 닐(Neil)이, 1956년에는 마빈(Marvin)이 그리고
1959년에는 도로시(Dorothy)가 각각 태어난 것이다. 도로시가 태어난 직후 부시 가족은 주 남단에 위치한 휴스턴으로 이사했으며
그 곳에서 아버지인 부시 전 대통령은 자신이 설립을 도왔던 해외 석유 채굴회사를 인수했다. 당시 조지 W. 부시는 산 재신토(San
Jacinto) 중학교 1학년을 마쳤으며 다음 해 반장으로 뽑혔었다. 그런데 가족이 이사를 가게 됨으로써 조지 W. 부시는 자신이
다녔던 익숙한 학교를 떠나 휴스턴 교외에 위치한 사립학교로 전학해야
했다.



 














2000년 8월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을 받아들이면서 조지 W. 부시는 자신이
미국의 목표를 재설정 하기위해 “앞장서기를 갈망”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만약 저를 신임해 주시면 저는 그
믿음을 지킬 것입니다.... 제게 명령을 하시면 저는 그 것을 이행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 나라를 이끌어 갈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면 저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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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유세 장면. 조지 부시
대통령이 부인인 로라 부시(왼쪽), 부통령 후보인 딕 체니 부부와 함께 알칸소 주 스프링데일에서 열린 유세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또한 지난 10년 간 미국이 누린 경제적 호황을 반영하여 부시 대통령은 풍족한
시기는 위기와 마찬가지로 미국을 시험하는 시기라고 얘기했다.
“번영은 우리의 손에 확보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도구로
이 나라를 더 낫게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번영은 우리에게 마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긴급한 일에 대한 우리의 감각, 공감, 의무감
등을 마비시켜 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부시는 현재 미국이 누리고 있는 번영의 호기를 활용하여 원대한 목적을 달성하겠다고
공약했다. “우리는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 건강에 대한 위협, 퇴직 후 안정된 생활에의 위협 등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도전
상황이 우리 자손의 시대에 위기로 비화되지 않도록 맞서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호황에서 소외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번영의
약속이 미치게 할 것입니다. 모든 여성과 남성에게는 성공의 기회를, 모든 어린이에게는 배움의 기회를, 모든 가족에게는 희망을 가지고
품위있게 생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 했다. “물론 제 앞에 놓여있는 과업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는 압니다. 또 대통령으로 일을 하다 보면 자긍심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뀌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제 앞에 놓인 일을 시작하기를 갈망합니다. 그리고 미국이 새롭게 시작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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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공화당 대선 후보를 위한 승리 자축 파티에서 2000년 3월 열린 예비 선거에서
부시가 승리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모니터를 보면서 조지 W. 부시의 지지자들이 열렬히 환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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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8월 2일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 대회에서 와이오밍주 선거단이 자신들의 투표 이후 부시가 공식적으로 공화당 대선 후보로
결정되자 축하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소위 “독특한 미국식 국제 주의”를 믿는다. 다음은 국제 외교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잘 보여주는 부시 대통령의 얘기이다.

“미국에게 있어 가장 큰 유혹은 물러섬에의 유혹입니다 - 즉 보호주의와 고립주의의 철옹성을 쌓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래된 적수간에 화해를 유도하고 뿌리 깊은 여러 야심들 사이의 균형을 잡도록 미국에 기대를 걸고 있는 현 세계에서
미국이 물러서게 되면 그 즉시 혼돈 상태가 될 것입니다. 미국이 물러선다는 것은 우리의 우방국과 우리의 이상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미국의 외교 정책은 두려움을 근간으로 수립되어서는 안됩니다. 즉 미국 근로자가 경쟁을 할 수 없다는 두려움, 그리고 미국이 전 세계를
부패시킨다는 혹은 미국이 부패한다는 두려움을 바탕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미국에 대한 두번째 유혹은 표류입니다. 미국이
바다에 부유하는 코르크처럼 위기에서 위기로 옮겨 다니는 것입니다. 만약 대통령이 스스로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하면 대통령의 우선순위는
반대자들, 해당 시기의 위기, 혹은 CNN 생방송 등에 의해 결정되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외교 정책은 단순한 위기 관리 이상의
것이어야 합니다. 미국의 외교 정책은 위대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하나의 목적으로써 현 시대에 미국의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다음 몇
세대의 민주적인 평화로 변환시켜주어야 할 것입니다.”


“미국은 반드시 세계의 움직임에 개입해야 합니다. 하지만 개입이라는 것이 미군이 모든 어려운 외국 정치
상황에 대한 해답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개입이란 전략을 대체하는 것입니다. 미국식 국제주의는 비전이 없는 행동, 우선 순위가 없는
활동, 목적이 없는 임무 같은 것이어서는 안됩니다. 이런 식의 국제주의는 미국의 의지를 낭비하는 것이며 미국의 힘을 고갈 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지속적인 국익에 집중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습니다. 제 우선순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 대통령은 유럽
및 아시아의 강력한 민주 우방국과 협력하여 평화를 확산시켜 나가야 합니다. 미국 대통령은 자유 무역으로 강력한 유대가 형성되어 있는
서반구의 완전한 민주주의 정착을 촉진해야 합니다. 미국 대통령은 걸프 지역에서 미국의 국익을 보호하고 안정된 이스라엘을 바탕으로 중동
지역에 평화를 정착시켜야 합니다. 미국 대통령은 대량 살상 무기 및 대량 살상 무기 운반체의 확산을 견제해야 합니다. 미국 대통령은
자유 무역이 이루어지는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미국 대통령은 앞에 열거한 이 모든 노력을 집중적으로,
인내를 가지고, 강력하게 추진해 나가야 합니다.”
 



src="http://usembassy.state.gov/seoul/wwwg912pic1.gif">


조시 W. 부시 대통령 후보가 2000년 4월 26일 러시아의 이고르 이바노프 외무장관과 워싱턴
D.C.에서 비공개 만남을 가진 후 이별의 악수를 나누고 있다.

                                

“미국은 자유 무역을 추구함으로써 부유해질 것입니다. 저는 전세계의 모든
관세와 무역장벽을 완전히 없앰으로써 전 세계가 자유 무역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해외에 생산 기지가 있는 미국의 생산업체를 위해
시장을 개방함으로써 국내에서 번영을 구가할 수 있습니다. 신뢰가 있어야만 관세와 무역 장벽을 없앨 수 있습니다. 저는 미국 근로자,
농민, 생산 업체를 신뢰합니다. 저는 미국 내에서 최고이면 세계 무대에서도 최고라는 것을 믿습니다. 미국은 식량을 외교 무기로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미국은 위대한 나라로, 외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들을 굶주리게 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는 미국의 제품과
서비스를 수출하면서 미국의 가치도 수출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은 미국이 외국의 국적 산업에 대한 편애와 불공정한 보조금 지급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간단하고도 명백한 메시지를 외국 정부에 알려야 합니다. 우리는 경쟁을, 공정한 경쟁을 원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게
주어진 모든 수단을 사용하여 전세계의 농산물 시장을 개방할 것입니다.”


“세계의 전략 요충지인 유럽과 아시아는 미국이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는 지역입니다. 유럽과 아시아에는
오랜 우방 국가들이 있는 동시에 새로운 경쟁국가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광대한 지역에 대해서는 야망뿐 아니라 비전을
통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비전 속에서는 어떤 강대국이나 강대국의 동맹도 우리의 우방국을 지배하거나 위협하지 못합니다. 또한
이러한 비전 속에서 미국은 강자의 입장에서 안정을 촉진해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이 비전을 통해 사람과, 자본과, 정보는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으며 발전이 보장되고, 문화가 서로 연결되며 민주주의를 향한 계기가 마련됩니다.
“여기서 도전 과제가 있다면 이는
유라시아의 두 강대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현재 변화를 겪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들 국가의 미래가 불확실한 현재 상황에서 이들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점치는 것은 어렵습니다. 만약 이 두 나라가 미국의 우방이 된다면 이러한 우정을 통해 세계가 안정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반대의 상황이 발생 한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를 달성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미국이 우방 국가에 오랫동안 보여왔던 의지는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의 가장 큰 주춧돌입니다.
미국은 우리의 우방을 침략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의지를 계속 지켜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미군이 교전하는 두 상대방을 갈라놓아 주는
영구적인 평화 유지군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미국은 우방과의 협력을 통해 보스니아, 코소보 등의 지역에서 미군을 철수, 귀환 시킬 수
있도록 정치적인 해법을 마련하고 일정을 수립해야만 합니다.”


“미군은 세계에서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미군은 적의 침입을 막고 미국이
안정된 평화를 구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등 우방국가에서도 많은 신임을 얻고 있습니다.... 미국은 세계에서 철수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저는 현재의 분산된 공약을 집중적인 것으로 바꿀 것입니다. 불확실하게 정의된 현재의 임무를 명확하게 정의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미국의 힘과 공공 의지라는 자원을 보호하게 될 것입니다. 미군의 해외 주둔은 우방에 대한 우리의 공약을 보여주는 가장 근본적인
상징입니다. 또한 미국이 모든 지역에 대해 차별 없이 이러한 공약을 한다면 우리의 우방국은 이 모든 것에 대해 의혹을 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군사력을 활용하는데 있어 선택적인 방식을 써야 합니다. 특히 경시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원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은 냉전을 등뒤로 흘려 보내고 21세기의 새로운 위협에 대응할 때입니다. 미국은 가능한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최선의 선택에 기초한 효과적인 미사일 방어 체제를 구축해야 합니다. 우리가 구축할 미사일 방어 체제는 적성 국가의 의도적인
미사일 공격이나 우발적인 미사일 발사의 상황에서 미국 본토의 50개 주는 물론이고 우리의 우방 국가, 해외 주둔 미군까지도 보호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합니다.... 미사일 방어 체제는 단순히 우리 나라만을 보호해서는 안됩니다. 미사일 방어 체제는 우리가 계획을
수립하면서 협의를 하는 우리의 우방도 역시 방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탄도탄 요격미사일협정(ABM : Antiballistic
Missile Treaty)을 변경하게 되면 반드시 적절한 미사일 방어 체제의 전개에 필요한 기술개발 및 실험을 허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미국은 새로운 안보 환경에서의 핵 억지 필요 요건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냉전 시대 당시 핵무기
감축 목표를 설정하는 데 사용된 전제 조건은 더 이상 유효한 가정으로 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안보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고도 START II 조약에서 합의한 것 보다 미국의 핵무기를 훨씬 더 많이 감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군사 기획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 이상의 무기를 유지해서는 안됩니다. 필요 이상의 무기는 이미 사라진 대결 시대의 값비싼 유물입니다. 그리고 이런
무기들로 우리가 더 안전해 지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아직까지도 냉전 시대 대립상의 불필요한 유물인 현재의 고도 경계, 즉각
발사 체제에서 벗어나 가능한 한 많은 수의 무기를 없애야 합니다. 공격 경고 후 수분 내에 대응 공격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신속 발사
체제는 초 강대국 간의 경쟁 시대를 지배하던 규칙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평화 관계를 유지하는 두 나라간에 그렇게 많은 수의 무기를
보유하고 고도 경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허용할 수 없을 정도의 우발적인 무기 발사 혹은 사고에 의한 무기 발사의 위험을 조장할 수도
있습니다.”


“NATO가 강력해 지고, 결속이 강화되고 더욱 활성화 되려면 NATO의 목적, 방어 능력에 대한 유럽의
추가 투자 필요성, 필요한 경우 군사 분쟁에 대한 추가 투자에 대해 대통령이 일관성 있게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필요한 경우
우방들에게 의지를 하려면 필요하지 않은 평상시에 존중을 해야만 합니다.
“안보 문제가 발생한 경우 미국은 미주 지역 뿐 아니라
유럽 지역 우방 국가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우리의 우방들이 유라시아 지역의 엄청난 가능성을 나눈다는 것은 동시에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위험과 부담을 함께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방의 지원을 통해 미국은 우리가 함께 나누는 꼭 필요한 이익을 지키기 위한 힘과
의지를 보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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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기타] http://usembassy.state.gov/seoul/wwwhk912.html

2008.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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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워커 부시(영어: George Walker Bush 듣기 , 문화어: 죠지 부쉬, 1946년 7월 6일 - )는 현재 미국의 43대(2001년-) 대통령이며, 텍사스 주의 46대 주지사를 지냈다. 41대 대통령인 조지 H. W. 부시의 장남으로 코네티컷 주에서 태어났다. 2000년 11월 7일 치루어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앨 고어선거인단 수에서 꺾고 당선되어으며 2004년 11월 2일 치루어진 선거에서도 민주당 존 케리를 누르고 재선됨으로써 미국 역사상 두번째로 부자(父子) 대통령 중 재선되는 영광을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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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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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조지워커부시 george walker bush구요

 

1946년생 즉 62살이구요

 

생일은 7월 6일이구요

 

하버드대학교경영대학원이 최종학력이구요

 

2000년 에 미국대통령에 당선됫다가 2005년1월에 다시재선됫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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