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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남해미조면의 문화재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312 작성일2019.04.25

경상남도 남해군 미조면의 문화재로 현재 남아있는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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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신
2019 지역&플레이스 분야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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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남해군 미조면의 문화재)

 

1. 남해 미조리 상록수림


종 목 천연기념물  제29호 
면 적 3,441㎡(지정구역)
지 정 일 1962.12.03
소 재 지 경상남도 남해군  미조면 미송로12번길 14-7 (미조리 산121)


미조리의 상록수림은 바닷가에 위치한 마을 앞 언덕에 형성되어 있다.


상록수림을 구성하고 있는 식물들로는 후박나무, 육박나무, 생달나무, 감탕나무, 빗죽이나무, 모밀잣밤나무, 무룬나무, 식나무, 돈나무, 사스레피나무, 광나무, 팔손이나무, 모람, 송악, 보리밥나무, 자금우 등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상록활엽수들과 느티나무, 팽나무, 말채나무, 소사나무, 산돌배나무, 쉬나무, 이팝나무, 쇠물푸레, 때죽나무, 굴피나무, 팥배나무, 참느릅나무, 졸참나무 등의 낙엽활엽수, 조록싸리, 생강나무, 찔레나무, 보리수, 예덕나무, 천선과나무, 작살나무, 쥐똥나무, 붉나무, 검양옻나무, 윤노리나무, 화살나무, 누리장나무, 조피나무 등의 관목류, 계요, 댕댕이덩굴, 칡, 개머루 등의 덩굴식물이 자라고 있다.


이 숲이 우거지면 마을에 훌륭한 인재가 나온다는 전설이 있어 예로부터 잘 보호되어 왔다.


미조리의 상록수림은 강한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의 기능과 물고기가 서식하는데 알맞은 환경을 제공하여 물고기떼를 유인하는 어부림의 구실도 하고 있으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2.무민사


종 목  남해군 보호문화재 제1호
소 재 지  경상남도 남해시 미조면 미조리 남해대로 14-11 미조마을
시 대  조선시대


무민사는 최영 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일명 장군당이라고도 하는데, 신상같이 그려진 장군의 화상이 봉안된 데에서 연유한다.


최영장군은 고려의 유명한 충신인 최유청의 5대손으로 충숙왕 4년(1317)에 출생하였다. 1358년에 양광 전라도 왜구체복사가 되어 서해안과 남해안에 침입하는 왜구들을 격파하는데 큰 전과를 올린 명장이다. 1380년에는 해수도통사가 되어 삼남지방을 순찰, 왜구의 침입을 막기도 했다. 1388년에는 지금의 총리인 문하시중이 되었다. 최영장군은 문화시중이 되어 자신과 고려왕조의 운명을 결정한 요동정벌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는 왕과 비밀리에 의논하여 원나라를 도와 요동을 정벌하기로 결정했다.


최영 팔도도통사, 이성계 우군도통사, 조민수 좌군도통사. 이렇게 구성된 요동 정벌군 3만으로 원정을 떠났다. 고려말의 혼란을 극복하고 새 왕조를 건설할 야심에 차 있던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역사적인 회군을 하여 왕을 폐위시켰다. 최영 장군도 이성계의 손에 파란만장한 생을 마쳤다.


최영 장군은 고려 우왕 때 남해군 평산포 수군 진영(만호가 주둔하던 곳. 지금의 해군기지)을 순시한 뒤 미조항에 들러 수군들을 격려한 사실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무민사는 조선 중기에 지은 사당으로 알려졌다. 약 500년 전 미조진항을 지키던 첨사(종3품)는 어느날 꿈을 꾸었다. 꿈속에 나이가 많은 노인이 나타났다. 노인은 "최영장군의 영정과 칼이 바닷가에 있으니 찾아서 잘 모셔 놓으라"고 했다. 첨사는 꿈에서 깨어나 수문장인 봉장군에게 꿈 이야기를 들려주고 찾아볼 것을 지시했다. 봉장군은 급히 바닷가에 나가 나무로 만든 궤짝을 발견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최영장군의 영정과 칼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첨사는 이것을 짚으로 싸서 모셔 놓았는데 어느날 갑자기 불이 나자 영정이 날아 올랐다. 그리고 현재의 무민사 자리에 영정이 내려 앉았다. 첨사는 이곳에 조그마한 사당을 지었다. 그리고 이름을 '무민사'라 했다.


남해의 고도에서 항상 왜구에 시달리며 살아오던 어민들이 장군을 추모하면서 그들의 수호신으로 모시게 된 연유를 앞의 전설에서 느낄 수 있다. 예전에는 미조진에서 제사를 주관했으나, 1950년 경 이 지방 유지들로 구성된 고적보존회가 허물어진 사우를 중수하고, 끝까지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킨 장군을 기리기 위해 해마다 섣달그믐날과 8월보름날 두 차례 제향을 지내고 있다.

 

2019.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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