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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작가 하근찬에 대해서
비공개 조회수 2,583 작성일2006.11.16

정확한 정보 부탁드립니다...

 

첫쨰, 하근찬 작가에 대해서

둘째,작품의 특징, 성격, 의미, 시대적배경, 인물의 성격, 구성방식등,,,,

셋째,작가의 다른 유명한 작품의 요약줄거리,,(10줄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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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입니다

1931년 10월 21일 경상북도 영천읍 금로동에서 출생하여 1948년 전주사범학교를 중퇴하고 몇 년간 교사로 근무하다가 1954년 부산대학교 토목과에 입학, 1957년 중퇴했다. 군복무를 마친 뒤 교육자료사 및 대한교육연합회 등에서 일했다.

1955년 신태양사가 주최한 전국학생문예작품 모집에 단편소설 《혈육》이 당선되었고, 1956년 교육주보사가 주최한 교육소설 현상모집에 《메뚜기》가 당선되었다. 1957년 일제하의 세계대전과 6·25전쟁이라는 양대 전란을 통하여 민족적 수난을 집약한 단편소설 《수난 2대()》가 《한국일보》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그의 작품세계는 처음에 농촌을 소재로 하여 형성되었다. 그 농촌이 폐쇄된 자연이 아니고 한국의 역사적 상황에 연관된 현실인 점에서 중요성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른바 실존주의의 영향과 전후파적() 취향이, 소설에 지적 허영 내지 관념적 난삽을 적지 않게 유행시켰던 1950년대 후반에 무지하고 가난한 시골 사람들 이야기를 들고 나온 사실 자체가 획기적이었다.

그가 그려내고 있는 농촌은 사회적 변화에서 유리된 자연공간은 아니다. 오히려 역사적 수난과 고통을 가장 절실하게 축적해온 삶의 현장이다. 농촌의 삶과 현실이 역사적 상황의식에 대응되어 문제성을 드러내고 있는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이 《수난 2대》이다. 전체적인 내용이 생활 속의 절실한 인정()과 역사적 수난의 아픔이며, 그 아픔을 이기고 일어서는 삶에의 강한 집념인 점에서 창작의 당연하고도 새로운 본령을 일깨웠다.

또 《흰 종이 수염》(1959)이나 《왕릉과 주둔군》(1963)은 주체적인 민족의식이 토착적인 세계 속에서 외래적인 것과 갈등하는 양상을 보여주는 작품들로서, 이처럼 농민 생활과 농촌 현실에 대한 그의 꾸준한 관심은 1950년대를 넘어서면서 농민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구축하게 되었다.

이외에도 자기 아들을 징용에서 빼주지 않는다고 면사무소에서 대변을 보는 아낙네를 그린 《분()》(1961), 전사통지서를 배달하지 않고 물에 띄웠다는 죄로 해고당하고 웃는 《미소》 등에서는 역사적 현실 속에 드러난 사회의 모순에 대해 강한 고발의 자세를 견지하였다.

하근찬은 현실의 어두움을 그리면서도 해학미를 잃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전후문학의 주역들과는 달리 농촌을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농민들의 삶과 그 애환을 작품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유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당시 대부분의 전후작가들이 전쟁의 상처로 황폐해진 도시 소시민의 내면세계와 메커니즘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그는 인정과 향토성이 짙은 농촌을 배경으로 그들이 겪는 민족적 수난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일에 주력하였다.

1970년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83년 조연현문학상, 1984년 요산문학상, 1988년 유주현문학상 등을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는 《낙뢰()》(1957), 《산중고발()》(1958), 《나룻배 이야기》(1959), 《붉은 언덕》(1965), 《삼각의 집》(1966), 《족제비》(1970), 《일본도()》(1971), 《야호()》(1971), 《필례 이야기》(1973), 《서울의 개구리》(1973), 《화가 남궁씨의 수염》(1985), 《은장도이야기》(1986)를 비롯한 많은 소설과 《전쟁의 아픔을 증언한 이야기들》(1985), 《전쟁과 수난-수난 2대》(1985) 등의 평론이 있다.

 둘째입니다

 

시간적배경은 6.25 한국전쟁 직후입니다.


(역사적사건에 의한 민족적인 비극과 개인의 고통, 가족의 사랑)을 나타냅니다.

 

흰종이수염

 

주제:전쟁이가져온비참한현실과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

제제:흰종이수염

흰 종이수염이의미하는것:
1.우스꽝스럽고 익살스러운분위기와함께 비극적인분위기를연출함
2.가난과 전쟁이라는 고통에 처한 한 가장의모습(처절함,책임감)을 상징함
3.전쟁의비극성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현실 극복 의지를 보여 줌.

 

셋째 입니다.

 

다른 작품으로써는 흰종이수염,금병매,수난이대등이 있습니다.

 

제가 읽은 것으로써는 흰종이 수염이 있는데요.

 

흰종이 수염은

 

동길이라는 아이가 있습니다.동길이는 아버지가 노무자(전쟁터)에 나갔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사친회비를 못냅니다. 그리고 학교에 가지 않고 용돌이라는 아이와 수영을 즐깁니다. 어느날 아버지가 기차를 타고 돌아오십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오른팔 한쪽이 없으셔서 동길이가 놀랍니다. 하지만 배고픔때문에 다 잊어버리죠.

그 오른팔이 없어진  동길이 아버지는 원래 직업인 목수도 못하게됩니다. 그리고 동길이가 학교를 때려치겟다는 말을하자 선생님께 찾아가 사친회비를 드린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창식이라는 아이가 동길이 아버지는 팔이 없어서 '외팔뚝이'라고 놀리지요.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서 돌아옵니다. 아버지가 극장에 취직했다고 말하시면서 잠이 듭니다. 그 다음날 동길이는 학교에 갑니다. 학교에 갔다오는 도중에 광대한명이 흰종이 수염 을 끼고 극장 광고를 합니다. 동길이도 신기해서 그 광대를 쫓아가는데 눈이 마주치는 순간 자기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그런데 그 옆에서 창식이라는 녀석이 아버지의 흰종이 수염을 가지고 장난을 치게 됩니다. 그래서 동길이는 창식이를 때리는데 아버지가 '와 이카노?' '와이카노' 하고 끝나게 됩니다.

 

 ex) 대화 도중에 끝나는 걸로써 독자의 상상력을 첨부하는거겟죠^^


2006.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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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입니다

1931년 10월 21일 경상북도 영천읍 금로동에서 출생하여 1948년 전주사범학교를 중퇴하고 몇 년간 교사로 근무하다가 1954년 부산대학교 토목과에 입학, 1957년 중퇴했다. 군복무를 마친 뒤 교육자료사 및 대한교육연합회 등에서 일했다.

1955년 신태양사가 주최한 전국학생문예작품 모집에 단편소설 《혈육》이 당선되었고, 1956년 교육주보사가 주최한 교육소설 현상모집에 《메뚜기》가 당선되었다. 1957년 일제하의 세계대전과 6·25전쟁이라는 양대 전란을 통하여 민족적 수난을 집약한 단편소설 《수난 2대()》가 《한국일보》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그의 작품세계는 처음에 농촌을 소재로 하여 형성되었다. 그 농촌이 폐쇄된 자연이 아니고 한국의 역사적 상황에 연관된 현실인 점에서 중요성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른바 실존주의의 영향과 전후파적() 취향이, 소설에 지적 허영 내지 관념적 난삽을 적지 않게 유행시켰던 1950년대 후반에 무지하고 가난한 시골 사람들 이야기를 들고 나온 사실 자체가 획기적이었다.

그가 그려내고 있는 농촌은 사회적 변화에서 유리된 자연공간은 아니다. 오히려 역사적 수난과 고통을 가장 절실하게 축적해온 삶의 현장이다. 농촌의 삶과 현실이 역사적 상황의식에 대응되어 문제성을 드러내고 있는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이 《수난 2대》이다. 전체적인 내용이 생활 속의 절실한 인정()과 역사적 수난의 아픔이며, 그 아픔을 이기고 일어서는 삶에의 강한 집념인 점에서 창작의 당연하고도 새로운 본령을 일깨웠다.

또 《흰 종이 수염》(1959)이나 《왕릉과 주둔군》(1963)은 주체적인 민족의식이 토착적인 세계 속에서 외래적인 것과 갈등하는 양상을 보여주는 작품들로서, 이처럼 농민 생활과 농촌 현실에 대한 그의 꾸준한 관심은 1950년대를 넘어서면서 농민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구축하게 되었다.

이외에도 자기 아들을 징용에서 빼주지 않는다고 면사무소에서 대변을 보는 아낙네를 그린 《분()》(1961), 전사통지서를 배달하지 않고 물에 띄웠다는 죄로 해고당하고 웃는 《미소》 등에서는 역사적 현실 속에 드러난 사회의 모순에 대해 강한 고발의 자세를 견지하였다.

하근찬은 현실의 어두움을 그리면서도 해학미를 잃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전후문학의 주역들과는 달리 농촌을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농민들의 삶과 그 애환을 작품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유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당시 대부분의 전후작가들이 전쟁의 상처로 황폐해진 도시 소시민의 내면세계와 메커니즘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그는 인정과 향토성이 짙은 농촌을 배경으로 그들이 겪는 민족적 수난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일에 주력하였다.

1970년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83년 조연현문학상, 1984년 요산문학상, 1988년 유주현문학상 등을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는 《낙뢰()》(1957), 《산중고발()》(1958), 《나룻배 이야기》(1959), 《붉은 언덕》(1965), 《삼각의 집》(1966), 《족제비》(1970), 《일본도()》(1971), 《야호()》(1971), 《필례 이야기》(1973), 《서울의 개구리》(1973), 《화가 남궁씨의 수염》(1985), 《은장도이야기》(1986)를 비롯한 많은 소설과 《전쟁의 아픔을 증언한 이야기들》(1985), 《전쟁과 수난-수난 2대》(1985) 등의 평론이 있다.

 둘째입니다

 

시간적배경은 6.25 한국전쟁 직후입니다.


(역사적사건에 의한 민족적인 비극과 개인의 고통, 가족의 사랑)을 나타냅니다.

 

흰종이수염

 

주제:전쟁이가져온비참한현실과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

제제:흰종이수염

흰 종이수염이의미하는것:
1.우스꽝스럽고 익살스러운분위기와함께 비극적인분위기를연출함
2.가난과 전쟁이라는 고통에 처한 한 가장의모습(처절함,책임감)을 상징함
3.전쟁의비극성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현실 극복 의지를 보여 줌.

 

셋째 입니다.

 

다른 작품으로써는 흰종이수염,금병매,수난이대등이 있습니다.

 

제가 읽은 것으로써는 흰종이 수염이 있는데요.

 

흰종이 수염은

 

동길이라는 아이가 있습니다.동길이는 아버지가 노무자(전쟁터)에 나갔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사친회비를 못냅니다. 그리고 학교에 가지 않고 용돌이라는 아이와 수영을 즐깁니다. 어느날 아버지가 기차를 타고 돌아오십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오른팔 한쪽이 없으셔서 동길이가 놀랍니다. 하지만 배고픔때문에 다 잊어버리죠.

그 오른팔이 없어진  동길이 아버지는 원래 직업인 목수도 못하게됩니다. 그리고 동길이가 학교를 때려치겟다는 말을하자 선생님께 찾아가 사친회비를 드린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창식이라는 아이가 동길이 아버지는 팔이 없어서 '외팔뚝이'라고 놀리지요.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서 돌아옵니다. 아버지가 극장에 취직했다고 말하시면서 잠이 듭니다. 그 다음날 동길이는 학교에 갑니다. 학교에 갔다오는 도중에 광대한명이 흰종이 수염 을 끼고 극장 광고를 합니다. 동길이도 신기해서 그 광대를 쫓아가는데 눈이 마주치는 순간 자기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그런데 그 옆에서 창식이라는 녀석이 아버지의 흰종이 수염을 가지고 장난을 치게 됩니다. 그래서 동길이는 창식이를 때리는데 아버지가 '와 이카노?' '와이카노' 하고 끝나게 됩니다.

 

2008.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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