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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왜 홍익인간 인가...
wi**** 조회수 6,807 작성일2004.12.23
왜 홍익인간일가요?
철학적 질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합니다.
우리 선조들도 그생각을 했었을겁니다.
한단고기에는 인류의 출발이 2만1천년 전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는 모릅니다.
제가 생각하는 인간과 비인간의 기준은
"자기 자신에 대한 끝없는 질문"을 하는 종부터 인간이라는겁니다.

하여튼 서론이 길었군요.
그렇다면 왜 우리 선조들은 홍익인간을 자신들의 사상적 철학으로 완성시킨걸가요?
국조라면 분명 그 이전에 끝임없는 생각속에서 나온 답안일겁니다.


칸트는 인간은 다른 모든것을 목적으로 대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이성적으로 볼때 지극히 옳습니다.

그리고 과학이 발전한 지금 인간의 슬픔의 감정.. 선악의 감정..
성선설에서 주장하는 그 다른생물의 죽음을 볼때의 자동적으로 생기는 슬픔..
그것은 포유류들도 가지고 있는 감정이라고 합니다.
다른 점이라면 인간은 모든 종에게 그런 감정을 조금이나마 느낄수있다는것입니다.

철학에 모범답안 따위가 있을리 없지요.
그렇다면 왜.. 우리 조상은 홍익인간을 선택한것이지요?
답없는 물음속에서 굳이 왜 홍익인간을 선택한겁니까?


요즘들은 혼란만 무지하게 가중되는군요.
현대에 의미에서 홍익인간을 어떻게 해석할수있는지..
그리고 지금에서 홍익인간은 이 사회에 필요한 철학인지
아니면 구새대의 낡은 철학인지도..

왜 우리민족은 그 무수한 질문속에서 홍익인간을 정립한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 조상은 무슨생각으로 홍익인간을 창재했는지..궁금하군요

저의 이 허영과 허무주의에 빠져버린 철학을 아주 날카롭게
파괴시켜줄 대답을 기다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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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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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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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생각을 하고 계시군요...

한마디로,

홍익인간 -> 널리 이롭게 한다 -> 이타주의 -> 이기주의의 발전형 -> 진화 과정 속의 본능의 발전형

맞나요?

이 전제를 바탕으로 답변을 해 드릴텐데 틀리다면 채택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인간의 본성이 자신을 위하는 것, 맞습니다. 모든 유기체는 쾌를 추구하고 불쾌를 싫어하지요.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단순한 유기체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하시면 안됩니다.
인간은 판단을 할 수 있고 무조건 쾌를 추구하고 불쾌를 싫어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지 않나요? 인간이 단순하게 이 매커니즘을 따른다면 사회는 이미 붕괴되었을 것이 아닙니까.
한마디로 인간은 복잡한 동물이다 이겁니다.
일테면, 인간은 뭔가를 준다고 해서 덥석 받지도 않고, 뭔가가 필요없다고 해서 덥석 버리지도 않습니다.
인간의 동기화는 참으로 복잡하죠. 경영학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합니다. 이 인간을 어떻게 동기화시켜 어떻게 써야 가장 잘 쓸 수 있을까...

이런 예들에서 보듯 인간은 복잡한 동물이죠. 복잡한 동물이기에 무조건 쾌를 좋아하고 불쾌를 싫어하는 메커니즘대로 동작하지 않습니다.

이걸 홍익인간에 적용시켜 봅시다.

님의 말씀대로 인간이 단순히 이기주의(쾌를 좋아하고, 불쾌를 배척하는)적인 동물이라면, 홍익인간은 이율배반적인 사상이죠. 인간의 행동을 결정짓는 대 메커니즘에 따르는 것이 아니니까.

그렇지만 홍익인간은 제 생각으로는 궁극적인 이타주의라고 봅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에겐 '사회' 라는 게 있습니다. 인간이 그토록 복잡해진 것은, 사회의 책임이 큽니다. 우린 사람과 사람과 부대끼며 살고, 살려면 참 복잡해져야 합니다.
뭘 주면 왜 주는지도 생각해보고, 누굴 만나면 목적에 따라 뭔가를 해야 하나 생각해보고, 참 복잡하죠. 인간은 오래서부터 사회를 이루며 살아왔습니다. 왜? 인간은 사회를 벗어나면 한없이 나약해지니까.
그러나 사회를 이룰려면 필요한 이타주의와 기존 인간이 지닌 본능적 이기주의적 사상은 충돌합니다. 그러면서 이기주의의 매커니즘이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죠.

사회를 위해서 희생해야 한다

즉 사회를 상위로 놓는 사고방식 - 이타주의가 생겨난 겁니다.

님의 말씀대로 이타주의는 이기주의의 발전형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렇지만 홍익인간의 이타주의는 단순한 이타주의가 아닙니다. 님의 말씀대로의 이타주의는 내게 이득이 되어야 남을 돕는다 아니겠습니까.

홍익인간은 아니죠. 아가페라고나 할까? 내게 이득이 없어도 널리 이롭게 한다.
어떤 인간이 이런 생각을 할까요. 신이나 할 생각 아닙니까? 그렇지만 인간은 신이 아니라도, 기꺼이 자신의 이득을 포기할 수 있는 동물입니다. 그 이득을 포기하고 남에게 줄 수 있는 동물입니다. 왜냐면, 사회가 있으니까, 사회에서 살고 있으니까.

우리 선조들은 이걸 알았던 겁니다.
고조선은 청동기 시대 국가고, 국가라고 해도 부족의 연합에서 겨우 나라 꼴을 갖춘 국가겠죠.
그러므로 사회적인 연대, 유대도 약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발전이 없겠지요. 사회를 이루어야, 보다 강력한 사회 즉 국가가 되어야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사상을 찾아야 했고 그 사상이 홍익인간일 것입니다. 홍익인간이야말로 진짜 국가, 레스 푸블리카를 만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비록 이상적인 것이지만 여기에 부합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약간인들 근접해질 수 있겠죠.

아마 그래서 국시로 홍익인간을 정했을 겁니다.

홍익 인간은, 존재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아니고, 사회를 어떻게 유지하고 더 나은 이상 사회로 나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던 겁니다.






이상 사회 - 모든 구성원이 그 사회의 영달만을 위해 노력하는 사회 - 는 우리 땅 속에도 있습니다.

바로 개미의 사회죠.
개미들은 자아가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도시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죠.

인간들 사회는 여기 미치려면 한참 멀었습니다. 님은 당장 대한민국을 위해 죽을 수 있나요?


아니죠.
그러나 누구나 나라를 위해 당장 죽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홍익 인간이 필요합니다.

혹 파시즘이라 할지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철학자들의 이상 사회와 파시즘 사회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파시즘은 근본적으로 도덕성이 결여된 사회죠. 그러나 이상 사회는 그런 게 아닙니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서 노파심에 하는 말입니다.


인간은 100년 후에도 천년 후에도 만년 후에도 인간입니다.
인간이 진화에 정점에 이르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정설입니다(왜 그런지 궁금하시면 쪽지를 주세요).

그러면 사회도 백년 후에도 천년 후에도 같을 겁니다.
비록 그 형태는 변화되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면 홍익인간 이론은 미래에도 정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천년 전 고조선 때의 미래는 우리가 사는 현재입니다.
그때의 이론이 지금도 정당할 것입니다.

2004.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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弘益人間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
시작부터가 잘못되었습니다.
이러한 관념은 어느 한 조상이 '홍익인간'으로 하자고 해서 된 것일까요?
원초적인 질문을 해봅시다~!
당신은 왜 밥을 먹나요? 배고프니까
당신은 왜 잠을 자나요? 잠이오니까
이건 정말 당연한 것이죠.
그렇다면 왜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를 한번 생각해볼까요?
질문 하나 더 하죠~!
당신은 왜 남을 해치지 않죠? 벌받으니까
이것을 반대로 당신은 왜 지금 누군가로부터 해침을 당하지 않죠?
이것은 인간 서로간의 암묵적인 계약이자 법률인 것입니다.
서로를 이롭게, 즉 해치지 않으므로서 살고자 하는 것이지요~!

적절한 대답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질문자님의 질문은 법은 왜 만들어졌을까와도 같은 느낌입니다.

200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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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고 그른 것은 없다고 보여집니다. 다만 그 시대의 상황 그 사람에 따라서 달라지겠죠.

하지만 님의 질문은 조금 잘 못 되었다고 보여집니다.

홍익인간은 한 사람의 철학이나 한 민족의 철학이 아닌 한 국가의 통치 이념입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이며, 법치국가라는 것과 같이 고조선은 '홍익인간'이라는 기조 아래 생겨난 국가입니다.

한 민족, 한 부족만을 위하는 것이 아닌 여러 부족을 통합하여 국가를 형성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비차별이었을 것입니다. 즉, 모두 다 이롭게 한다는 의미이죠.

현대 국가에서도 이러한 통치이념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한 국가 안에서는 빈부의 격차를 줄이고,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며,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차별하지 않는 것.

하지만 나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기에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에서는 글쎄요. 이득을 취하지 않았을런지.....

전쟁에서는 물러서지 않지만, 침략적 전쟁은 하지 않는 그런 것이 아니었을런지.


국가의 정책적 통치이념과 한 사람의 철학을 구별하시는 것이 어떨런지요.

2004.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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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생각을 하고 계시군요...

한마디로,

홍익인간 -> 널리 이롭게 한다 -> 이타주의 -> 이기주의의 발전형 -> 진화 과정 속의 본능의 발전형

맞나요?

이 전제를 바탕으로 답변을 해 드릴텐데 틀리다면 채택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인간의 본성이 자신을 위하는 것, 맞습니다. 모든 유기체는 쾌를 추구하고 불쾌를 싫어하지요.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단순한 유기체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하시면 안됩니다.
인간은 판단을 할 수 있고 무조건 쾌를 추구하고 불쾌를 싫어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지 않나요? 인간이 단순하게 이 매커니즘을 따른다면 사회는 이미 붕괴되었을 것이 아닙니까.
한마디로 인간은 복잡한 동물이다 이겁니다.
일테면, 인간은 뭔가를 준다고 해서 덥석 받지도 않고, 뭔가가 필요없다고 해서 덥석 버리지도 않습니다.
인간의 동기화는 참으로 복잡하죠. 경영학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합니다. 이 인간을 어떻게 동기화시켜 어떻게 써야 가장 잘 쓸 수 있을까...

이런 예들에서 보듯 인간은 복잡한 동물이죠. 복잡한 동물이기에 무조건 쾌를 좋아하고 불쾌를 싫어하는 메커니즘대로 동작하지 않습니다.

이걸 홍익인간에 적용시켜 봅시다.

님의 말씀대로 인간이 단순히 이기주의(쾌를 좋아하고, 불쾌를 배척하는)적인 동물이라면, 홍익인간은 이율배반적인 사상이죠. 인간의 행동을 결정짓는 대 메커니즘에 따르는 것이 아니니까.

그렇지만 홍익인간은 제 생각으로는 궁극적인 이타주의라고 봅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에겐 '사회' 라는 게 있습니다. 인간이 그토록 복잡해진 것은, 사회의 책임이 큽니다. 우린 사람과 사람과 부대끼며 살고, 살려면 참 복잡해져야 합니다.
뭘 주면 왜 주는지도 생각해보고, 누굴 만나면 목적에 따라 뭔가를 해야 하나 생각해보고, 참 복잡하죠. 인간은 오래서부터 사회를 이루며 살아왔습니다. 왜? 인간은 사회를 벗어나면 한없이 나약해지니까.
그러나 사회를 이룰려면 필요한 이타주의와 기존 인간이 지닌 본능적 이기주의적 사상은 충돌합니다. 그러면서 이기주의의 매커니즘이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죠.

사회를 위해서 희생해야 한다

즉 사회를 상위로 놓는 사고방식 - 이타주의가 생겨난 겁니다.

님의 말씀대로 이타주의는 이기주의의 발전형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렇지만 홍익인간의 이타주의는 단순한 이타주의가 아닙니다. 님의 말씀대로의 이타주의는 내게 이득이 되어야 남을 돕는다 아니겠습니까.

홍익인간은 아니죠. 아가페라고나 할까? 내게 이득이 없어도 널리 이롭게 한다.
어떤 인간이 이런 생각을 할까요. 신이나 할 생각 아닙니까? 그렇지만 인간은 신이 아니라도, 기꺼이 자신의 이득을 포기할 수 있는 동물입니다. 그 이득을 포기하고 남에게 줄 수 있는 동물입니다. 왜냐면, 사회가 있으니까, 사회에서 살고 있으니까.

우리 선조들은 이걸 알았던 겁니다.
고조선은 청동기 시대 국가고, 국가라고 해도 부족의 연합에서 겨우 나라 꼴을 갖춘 국가겠죠.
그러므로 사회적인 연대, 유대도 약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발전이 없겠지요. 사회를 이루어야, 보다 강력한 사회 즉 국가가 되어야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사상을 찾아야 했고 그 사상이 홍익인간일 것입니다. 홍익인간이야말로 진짜 국가, 레스 푸블리카를 만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비록 이상적인 것이지만 여기에 부합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약간인들 근접해질 수 있겠죠.

아마 그래서 국시로 홍익인간을 정했을 겁니다.

홍익 인간은, 존재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아니고, 사회를 어떻게 유지하고 더 나은 이상 사회로 나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던 겁니다.






이상 사회 - 모든 구성원이 그 사회의 영달만을 위해 노력하는 사회 - 는 우리 땅 속에도 있습니다.

바로 개미의 사회죠.
개미들은 자아가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도시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죠.

인간들 사회는 여기 미치려면 한참 멀었습니다. 님은 당장 대한민국을 위해 죽을 수 있나요?


아니죠.
그러나 누구나 나라를 위해 당장 죽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홍익 인간이 필요합니다.

혹 파시즘이라 할지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철학자들의 이상 사회와 파시즘 사회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파시즘은 근본적으로 도덕성이 결여된 사회죠. 그러나 이상 사회는 그런 게 아닙니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서 노파심에 하는 말입니다.


인간은 100년 후에도 천년 후에도 만년 후에도 인간입니다.
인간이 진화에 정점에 이르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정설입니다(왜 그런지 궁금하시면 쪽지를 주세요).

그러면 사회도 백년 후에도 천년 후에도 같을 겁니다.
비록 그 형태는 변화되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면 홍익인간 이론은 미래에도 정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천년 전 고조선 때의 미래는 우리가 사는 현재입니다.
그때의 이론이 지금도 정당할 것입니다.

출처 : 직접작성

2007.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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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홍익인간 -> 널리 이롭게 한다 -> 이타주의 -> 이기주의의 발전형 -> 진화 과정 속의 본능의 발전형

맞나요?

이 전제를 바탕으로 답변을 해 드릴텐데 틀리다면 채택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인간의 본성이 자신을 위하는 것, 맞습니다. 모든 유기체는 쾌를 추구하고 불쾌를 싫어하지요.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단순한 유기체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하시면 안됩니다.
인간은 판단을 할 수 있고 무조건 쾌를 추구하고 불쾌를 싫어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지 않나요? 인간이 단순하게 이 매커니즘을 따른다면 사회는 이미 붕괴되었을 것이 아닙니까.
한마디로 인간은 복잡한 동물이다 이겁니다.
일테면, 인간은 뭔가를 준다고 해서 덥석 받지도 않고, 뭔가가 필요없다고 해서 덥석 버리지도 않습니다.
인간의 동기화는 참으로 복잡하죠. 경영학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합니다. 이 인간을 어떻게 동기화시켜 어떻게 써야 가장 잘 쓸 수 있을까...

이런 예들에서 보듯 인간은 복잡한 동물이죠. 복잡한 동물이기에 무조건 쾌를 좋아하고 불쾌를 싫어하는 메커니즘대로 동작하지 않습니다.

이걸 홍익인간에 적용시켜 봅시다.

님의 말씀대로 인간이 단순히 이기주의(쾌를 좋아하고, 불쾌를 배척하는)적인 동물이라면, 홍익인간은 이율배반적인 사상이죠. 인간의 행동을 결정짓는 대 메커니즘에 따르는 것이 아니니까.

그렇지만 홍익인간은 제 생각으로는 궁극적인 이타주의라고 봅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에겐 '사회' 라는 게 있습니다. 인간이 그토록 복잡해진 것은, 사회의 책임이 큽니다. 우린 사람과 사람과 부대끼며 살고, 살려면 참 복잡해져야 합니다.
뭘 주면 왜 주는지도 생각해보고, 누굴 만나면 목적에 따라 뭔가를 해야 하나 생각해보고, 참 복잡하죠. 인간은 오래서부터 사회를 이루며 살아왔습니다. 왜? 인간은 사회를 벗어나면 한없이 나약해지니까.
그러나 사회를 이룰려면 필요한 이타주의와 기존 인간이 지닌 본능적 이기주의적 사상은 충돌합니다. 그러면서 이기주의의 매커니즘이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죠.

사회를 위해서 희생해야 한다

즉 사회를 상위로 놓는 사고방식 - 이타주의가 생겨난 겁니다.

님의 말씀대로 이타주의는 이기주의의 발전형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렇지만 홍익인간의 이타주의는 단순한 이타주의가 아닙니다. 님의 말씀대로의 이타주의는 내게 이득이 되어야 남을 돕는다 아니겠습니까.

홍익인간은 아니죠. 아가페라고나 할까? 내게 이득이 없어도 널리 이롭게 한다.
어떤 인간이 이런 생각을 할까요. 신이나 할 생각 아닙니까? 그렇지만 인간은 신이 아니라도, 기꺼이 자신의 이득을 포기할 수 있는 동물입니다. 그 이득을 포기하고 남에게 줄 수 있는 동물입니다. 왜냐면, 사회가 있으니까, 사회에서 살고 있으니까.

우리 선조들은 이걸 알았던 겁니다.
고조선은 청동기 시대 국가고, 국가라고 해도 부족의 연합에서 겨우 나라 꼴을 갖춘 국가겠죠.
그러므로 사회적인 연대, 유대도 약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발전이 없겠지요. 사회를 이루어야, 보다 강력한 사회 즉 국가가 되어야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사상을 찾아야 했고 그 사상이 홍익인간일 것입니다. 홍익인간이야말로 진짜 국가, 레스 푸블리카를 만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비록 이상적인 것이지만 여기에 부합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약간인들 근접해질 수 있겠죠.

아마 그래서 국시로 홍익인간을 정했을 겁니다.

홍익 인간은, 존재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아니고, 사회를 어떻게 유지하고 더 나은 이상 사회로 나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던 겁니다.






이상 사회 - 모든 구성원이 그 사회의 영달만을 위해 노력하는 사회 - 는 우리 땅 속에도 있습니다.

바로 개미의 사회죠.
개미들은 자아가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도시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죠.

인간들 사회는 여기 미치려면 한참 멀었습니다. 님은 당장 대한민국을 위해 죽을 수 있나요?


아니죠.
그러나 누구나 나라를 위해 당장 죽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홍익 인간이 필요합니다.

혹 파시즘이라 할지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철학자들의 이상 사회와 파시즘 사회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파시즘은 근본적으로 도덕성이 결여된 사회죠. 그러나 이상 사회는 그런 게 아닙니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서 노파심에 하는 말입니다.


인간은 100년 후에도 천년 후에도 만년 후에도 인간입니다.
인간이 진화에 정점에 이르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정설입니다(왜 그런지 궁금하시면 쪽지를 주세요).

그러면 사회도 백년 후에도 천년 후에도 같을 겁니다.
비록 그 형태는 변화되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면 홍익인간 이론은 미래에도 정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천년 전 고조선 때의 미래는 우리가 사는 현재입니다.
그때의 이론이 지금도 정당할 것입니다.

출처 : 직접작성

2008.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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